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호세아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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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의 몰락과 늘어나는 우상

에브라임이 말하면 사람들이 떨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가운데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알을 섬겨 죄를 짓고 죽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죄를 더 짓습니다. 자기들의 은을 녹여 부어, 자기들이 생각한 모양대로 우상들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기술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이들이 송아지 우상들에게 입을 맞춘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처럼, 일찍 사라지는 이슬처럼 될 것입니다. 타작마당에서 거센 바람에 날아가는 겨처럼,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연기처럼 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이집트 땅에 있을 때부터 네 하나님인 여호와야훼다. 너는 나 말고 다른 신을 네 하나님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너를 구해 줄 이는 나밖에 없다. 나는 광야에서, 몹시 메마른 땅에서 너를 돌보았다. 그들은 풀밭에서 먹고 배가 불렀다. 배가 부르자 마음이 거만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잊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자처럼 되었다. 표범처럼 길가에서 그들을 노리겠다. 새끼를 잃은 곰처럼 그들을 덮쳐 찢겠다. 거기서 사자처럼 그들을 먹어 치우겠다. 들짐승이 그들을 찢어 버릴 것이다.」

「이스라엘아, 너를 돕는 나에게 맞섰기 때문에 네가 멸망했다. 그러면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해 줄 네 왕은 어디 있느냐? 네 재판관들은 어디 있느냐? 네가 『저에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십시오』라고 하며 바라던 자들 말이다. 나는 분노하여 네게 왕을 주고, 크게 분노하여 그 왕을 빼앗는다.」

「에브라임의 죄는 묶여 있고, 그 죄는 감추어져 있다. 에브라임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이 닥칠 것이다. 그는 어리석은 아들이다. 태어날 때가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겠느냐? 내가 그들을 죽음에서 되찾겠느냐? 죽음아, 네 전염병들은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파멸은 어디 있느냐? 나는 마음을 돌리지 않겠다.」

에브라임이 형제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더라도, 동풍이 불어올 것입니다. 광야에서 올라오는 여호와야훼의 바람입니다. 그 바람에 에브라임의 물 근원이 마르고 샘이 말라 버릴 것입니다. 그 바람이 온갖 귀한 물건이 든 보물 창고를 약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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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에브라임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계속 죄를 짓나요?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가운데 높이 있었지만, 바알 때문에 죄를 짓고 죽었다고 해요. 바로 다음 절에서도 백성의 행동이 이어지므로, 모든 주민이 이미 죽었다는 뜻으로 읽지는 않아요.

13:2 정말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말인가요?

히브리어에서 ‘제물을 바치는 이들’과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져요. 본문은 본디새김과 같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이들이 송아지 우상에게 입을 맞춘다는 읽기를 택했어요. 입맞춤은 여기서 우상을 받드는 행동으로 나와요. 마지막 인용은 우상을 섬기는 이들의 행동을 두고 하는 말로 옮겼어요. 히브리어 원문은 말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따로 밝히지 않아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읽거나, 우상에 입을 맞추라는 지시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13:3 겨는 무엇인가요?

겨는 가벼워 바람에 쉽게 날아가요. 여기서는 구름과 이슬과 연기처럼 곧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줘요.

13:12 죄가 묶이고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묶어 두고 감추어 둔 물건처럼 에브라임의 죄가 보관되어 있는 모습이에요. 이어지는 고통과 죽음의 경고는 그 죄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줘요.

13:13 에브라임은 아이를 낳는 사람인가요, 태어나는 아이인가요?

앞부분은 닥쳐오는 고통을, 뒷부분은 태어날 때가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 줘요. 본문은 이를 ‘어리석은 아들’이라고 평가하지만, 아이가 왜 나오지 않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덧붙이지는 않아요.

13:14 스올은 무엇인가요?

여기서는 스올과 죽음을 나란히 놓고, 손아귀로 사람을 붙잡거나 대답할 수 있는 존재처럼 말해요. 죽음의 힘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표현이에요.

13:14 죽음에서 구해 주겠다는 약속인가요?

처음 두 문장은 히브리어에서 질문인지 선언인지 명확히 표시되어 있지 않아요. 앞뒤의 심판 경고와 마지막의 마음을 돌리지 않겠다는 말을 따라 반문으로 옮겼어요. 이 읽기에서는 죽음과 스올을 향한 질문도 그 힘을 불러내는 말로 이어져요. 구원을 선언하고 죽음의 힘에 도전하는 말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5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여 죽음을 이기는 승리를 말해요. 이는 호세아의 심판 문맥에서 택한 현재 본문의 읽기와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13:15 바람이 어떻게 보물 창고를 약탈하나요?

에브라임은 열매를 맺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여호와야훼의 바람이 불면 물도 재물도 잃어요. 바람이 자연의 피해만을 뜻하기보다 백성의 풍요를 무너뜨리는 심판을 나타낸다고 읽을 수 있어요.

13:10 백성은 언제 왕을 달라고 했나요?

왕을 주었다가 빼앗는다는 말은 첫 왕 사울의 이야기와 연결해 읽을 수 있어요. 또 북쪽 이스라엘에서 왕들이 잇달아 바뀐 일과 연결하기도 해요. 호세아 7:7에서도 왕들이 쓰러졌다고 말해요. 여기서는 어느 한 왕의 이름을 밝히기보다, 백성이 바라던 왕도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는 점을 드러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