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우리가 여호와야훼께 돌아가자.
우리를 찢으신 그분께서 우리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신 그분께서 상처를 싸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이틀 뒤에 그분께서 우리를 살려 주실 것이다.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켜 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 앞에서 살 것이다.우리가 여호와야훼를 알자. 여호와야훼를 아는 데 온 힘을 쏟자.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새벽이 오는 것처럼 확실하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늦은 비처럼 오실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의 한결같은 사랑은 아침 구름 같고,
아침이면 금세 사라지는 이슬 같다.그러므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해 그들을 돌처럼 쪼았고,
내 입에서 나온 말로 그들을 죽였다.
너희에게 내릴 판결은 빛처럼 드러날 것이다.나는 제물이 아니라 한결같은 사랑을 바라고,
모두 태워 바치는 제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
거기서 나를 배신했다.길르앗은 악을 저지르는 자들의 성읍이다.
피 묻은 발자국으로 얼룩져 있다.강도 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도 세겜으로 가는 길에서 사람을 죽인다.
참으로 그들은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나는 끔찍한 일을 보았다.
거기서 에브라임이 음행하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다.」
「유다야, 너에게도 거둘 때가 정해져 있다.
내가 내 백성의 형편을 다시 좋게 바꿀 때에,」
6장 해설 모두 보기 86:1 누가 여호와야훼께 돌아가자고 말하나요?
1–3절은 ‘우리’가 함께 여호와야훼께 돌아가자고 권하는 말이에요. 호세아가 백성에게 하는 권유로 읽을 수도 있어요. 5:14에서 여호와야훼는 백성을 ‘찢겠다’고 했고, 여기서는 찢으신 그분이 고쳐 주시리라고 기대해요. 또 5:15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사람들이 여호와야훼께 ‘돌아가자’고 말해요.
6:2 왜 이틀 뒤와 셋째 날을 말하나요?
‘살려 주신다’와 ‘일으켜 주신다’는 말이 짝을 이루어요. 다친 백성이 회복되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요. 이 대목만으로 구체적인 날짜를 정할 수는 없어요.
6:3 늦은 비는 어떤 비인가요?
메마른 땅을 적시는 비처럼 여호와야훼께서 오셔서 살려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말이에요. 새벽과 비의 비유는 그분께서 오시리라는 확신을 드러내요.
6:4여호와야훼께서는 돌아가자는 말에 어떻게 답하시나요?
백성은 여호와야훼께서 새벽처럼 확실하게 오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의 사랑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대조는 회복을 기대하는 말과 실제로 하나님께 충실하게 사는 일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요.
6:5 예언자들을 통해 쪼고 말로 죽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예언자들이 직접 무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정도로 약하게 말하지도 않아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죄를 드러내고 죽음에 이르는 심판을 선언하는 힘을 가진다는 표현이에요.
6:7 ‘아담처럼’의 아담은 누구인가요?
히브리어 ‘아담’은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이름으로 쓰이기도 해요. 뒤의 ‘거기서’라는 말 때문에 장소 이름으로 보는 읽기도 있어요. 어느 경우든 이 절의 핵심 고발은 백성이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야훼를 배신했다는 것이에요.
6:11 유다에게 정해진 ‘거둘 때’는 무엇인가요?
현재 본문에서 마지막의 ‘내가 내 백성의 형편을 다시 좋게 바꿀 때에’는 다음 장 첫 절과 한 문장이에요. 백성을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을 고치려는 때에 죄가 드러났다는 흐름이에요. 이 시간 표현을 앞의 ‘유다에게도 거둘 때가 정해져 있다’에 붙여 읽기도 해요. 어디에 연결하느냐에 따라 거둘 때의 뜻을 이해하는 데 차이가 생겨요.
6:6 왜 제물보다 사랑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바라나요?
‘제물이 아니라’라는 말씀은 사랑 없이 제사만 드리는 모습을 강하게 거부해요. 이어지는 ‘제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무엇을 바라시는지 보여 줘요. 이 대목을 모든 제사를 없애라는 명령으로 읽기보다, 제사로 대신할 수 없는 관계와 삶을 요구하시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어요.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9:13과 12:7에서 이 절의 사랑과 제사에 관한 말씀을 인용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