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8장 ·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아하시야 왕은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위층 방에서 떨어져 앓아눕자, 그는 자신이 살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낸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길에서 엘리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왕이 묻지도 않은 질문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아하시야가 알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미래였지만, 여호와야훼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그가 누구에게 미래를 물으려 했는가였습니다.
누가 참으로 말씀할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누구의 말이 마침내 이루어지는가요?
나라의 반란과 왕의 추락
열왕기하는 한 나라의 반란으로 시작합니다.
아합이 죽은 뒤, 모압이 이스라엘의 지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열왕기하 1:1 · 두루새김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던 모압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모압의 반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열왕기하 3장에서 펼쳐집니다. 그곳에는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에 바치던 막대한 조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3:4–5).
그런데 1장은 모압의 반란을 소개하고 곧바로 다른 사건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위층 방의 격자 사이로 떨어져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왕은 사람들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가서 내가 이 병에서 나을지 물어보아라.」열왕기하 1:2 · 두루새김
나라 밖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배력이 흔들리고, 왕궁 안에서는 왕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워집니다. 아합의 죽음으로 시작된 불안정이 나라의 경계와 왕궁 내부에서 각각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가 왜 떨어졌는지, 사고에 특별한 원인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책망은 추락이라는 사고가 아니라 그 이후 왕이 내린 결정에 집중됩니다.
에그론은 블레셋의 주요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여호수아 13:3). 이스라엘의 왕이 자기 나라의 하나님이 아니라 블레셋 성읍의 신에게 답을 구하러 사람을 보낸다는 점이 이 장의 갈등을 일으킵니다.
열왕기상 마지막 부분은 아하시야가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의 길을 따라 바알을 섬겼다고 평가합니다(열왕기상 22:52–54). 따라서 그의 행동은 위급한 순간에 처음으로 낯선 신을 찾은 일이라기보다, 이미 따르던 종교적 방향이 생명의 위기 속에서도 이어진 것으로 읽힙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신명기 6:13–15). 이 명령은 단지 어떤 종교 의식을 택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생존과 미래를 누구에게 맡기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질병에 걸렸을 때 의학적 도움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치료 행위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에서 문제가 된 것은 치료를 찾는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 신에게 답을 구한 일이었습니다.
왕의 문제는 자신이 살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바알세붑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글자 그대로 「파리의 주인」으로 읽힙니다. 다만 이것이 그 신의 본래 이름이었는지, 이스라엘 쪽에서 바꾸어 부른 이름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분명한 것은 바알세붑이 에그론의 신으로 소개되며, 아하시야가 그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길 만한 지식이 있다고 기대했다는 사실입니다.
왕이 보낸 사람들을 가로막는 여호와야훼의 천사
2절과 3절을 자세히 읽으면 서로 다른 보냄이 나란히 나타납니다.
2절에서 아하시야는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원문에서는 왕이 보낸 사람들과 여호와야훼의 천사를 가리킬 때 모두 말아크(מַלְאָךְ)라는 낱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 곧 사자를 뜻합니다. 문맥에 따라 사람이 보낸 심부름꾼을 가리키기도 하고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왕은 자신의 뜻을 수행할 사람들을 보냈지만, 그들이 목적지에 닿기 전에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움직여 엘리야를 보냅니다. 왕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서 무엇을 물을지 명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답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지는 결정하지 못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이 보낸 사람들을 만나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열왕기하 1:3 · 두루새김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행동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이루어지고 있다는 책망입니다.
그런데 질문 다음에는 즉시 심판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누워 있는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다.』」 엘리야는 길을 떠났습니다.열왕기하 1:4 · 두루새김
아하시야는 「이 병에서 나을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찾지 않았던 여호와야훼로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습니다.
이 장에서 죽음의 선언은 왕이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한 행동과 분명하게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시는 것은 생명의 한계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 자체가 아니라, 그 한계 속에서 드러난 왕의 불충실함입니다. 또한 모든 질병이나 사고를 개인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으로 일반화할 근거도 주지 않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듣고 돌아온 사람들
왕이 보낸 사람들이 돌아오자 왕이 물었습니다. 「너희가 왜 돌아왔느냐?」열왕기하 1:5 · 두루새김
에그론까지 다녀오기에는 너무 이른 귀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다른 말씀을 전달받았다고 보고합니다.
왕은 그 말의 내용에 관해서 더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질문합니다.
왕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를 만나러 올라와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느냐?」열왕기하 1:7 · 두루새김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디셉 사람 엘리야로구나.」열왕기하 1:8 · 두루새김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에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 수 있을지 묻기 위해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 장에서 엘리야의 이름은 처음부터 소개되지만, 왕은 한참 뒤에야 그 이름을 입에 올립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확인한 뒤 처음으로 하는 일은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바알 세아르는 글자 그대로 「털의 임자」라는 표현입니다. 몸에 털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 털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원문에서는 두 해석 모두 가능하므로 그의 정확한 외모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산꼭대기에 앉은 사람과 왕의 명령
엘리야가 누구인지 알아낸 아하시야는 병사 쉰 명을 지휘하는 장교를 부하 쉰 명과 함께 보냅니다.
왕은 병사 쉰 명을 지휘하는 장교 한 명을 부하 쉰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냈습니다. 장교가 올라가 보니 엘리야는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장교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려오너라.』」열왕기하 1:9 · 두루새김
문제는 호칭과 태도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가 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로 말합니다.
엘리야는 그 호칭을 그대로 받아 응답합니다.
엘리야가 장교에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쉰 명을 태워 버리기를 바란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장교와 부하 쉰 명은 불에 타 죽었습니다.열왕기하 1:10 · 두루새김
여기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이라는 조건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이 보낸 장교가 입으로 인정한 그 호칭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내는 조건입니다.
두 번째 장교는 무엇을 달리했는가?
첫 번째 장교와 병사들이 죽었는데도 아하시야는 다시 다른 장교를 부하 쉰 명과 함께 보냅니다.
왕은 다시 다른 장교 한 명을 부하 쉰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냈습니다. 그 장교가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둘러 내려오너라.』」열왕기하 1:11 · 두루새김
첫 번째 부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타 죽었는데도, 왕의 명령은 거두어지기는커녕 더욱 급해졌습니다. 적어도 두 번째 장교가 엘리야에게 전한 말에서는 왕의 의지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같은 조건을 말하고, 다시 불이 내려옵니다. 다만 이번에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그 불을 「하나님의 불」이라고 부릅니다(1:12).
왕의 명령을 수행하러 온 병사들은 죽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장교, 그리고 각각의 부하 쉰 명입니다. 모두 102명입니다.
이들이 왕의 명령에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각 병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본문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 모두가 같은 정도로 악한 뜻을 품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 사건을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당연한 처벌로 가볍게 넘겨서도 안 됩니다.
이야기는 심판의 엄중함을 보여 주지만, 그 심판을 인간이 마음대로 반복할 수 있는 행위의 본보기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의 말은 하늘의 불이 내려오기를 구하는 조건부 선언이었으며, 그 불을 실제로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장면은 이 엄중한 이야기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열왕기상 18장의 갈멜산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했고, 여호와야훼의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삼켰습니다(열왕기상 18:36–39). 그 사건의 핵심 질문은 누가 참으로 하나님이신가였습니다. 이번에도 바알과 여호와야훼의 권위가 문제 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이 그 대답이 됩니다. 갈멜산에서는 제물이 불에 삼켜졌고, 여기서는 사람들에게 불이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왕의 명령으로 억누르려는 시도와 그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신약의 누가복음 9:54–55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마을에 하늘의 불을 내릴지 묻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엘리야 이야기와 주제가 연결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열왕기하의 심판 장면을 제자들이 그대로 따라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세 번째 장교는 왜 살아남았는가?
아하시야는 세 번째로 장교를 부하 쉰 명과 함께 보냅니다.
여기까지 보면 왕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두 번이나 부대를 잃고도 다시 병사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장교는 앞선 두 사람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왕은 세 번째로 장교 한 명을 부하 쉰 명과 함께 보냈습니다. 세 번째 장교는 올라와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시여, 부디 제 목숨과 당신의 종인 이 쉰 명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열왕기하 1:13 · 두루새김
하지만 이번에는 그 호칭 뒤에 명령이 오지 않습니다.
앞선 두 장교는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에 집중했습니다. 세 번째 장교는 자기 부하들의 생명까지 자신의 간청 안에 담습니다.
그는 앞선 두 부대에 일어난 일을 감추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앞서 온 두 장교와 그들의 부하 쉰 명씩을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열왕기하 1:14 · 두루새김
이것은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가 마음속으로 어떤 신앙의 변화를 경험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왕의 명령에 복종시켜야 할 대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그와 함께 내려가라.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엘리야는 일어나 그 장교와 함께 왕에게 내려갔습니다.열왕기하 1:15 · 두루새김
처음 두 장교는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명령했지만, 엘리야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장교는 내려오라고 명령하지 않았는데, 엘리야가 마침내 내려갑니다.
엘리야는 왕의 명령에는 내려가지 않았지만, 여호와야훼의 명령에는 내려갑니다.
엘리야는 왕의 권위로부터 자유롭지만, 하나님에게서 독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왕을 거절할 자유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내려가라 하실 때에는 내려가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야훼의 천사는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합니다. 이 명령은 왕에게 가는 일이 위협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앞서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의 권위는 불을 내리는 심판으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간청하는 사람들을 살리고, 예언자를 다시 왕에게 보내시는 말씀에서도 드러납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을 공경하면 무조건 안전하고, 그를 거스르면 반드시 죽는다는 일반적인 규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을 모든 종교적 권위자에게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누구든 올바른 말투로 기도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법칙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왕 앞에 선 엘리야, 그러나 변하지 않은 말씀
마침내 엘리야가 아하시야 앞에 섭니다.
왕이 처음부터 원하던 상황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자신을 향해 죽음을 선언한 예언자가 이제 왕의 눈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왕 앞에 선 엘리야의 말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사람들을 보냈다. 이스라엘에는 네가 말씀을 구할 하나님이 안 계시느냐? 네가 그렇게 했으므로, 너는 지금 누워 있는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다.』」열왕기하 1:16 · 두루새김
같은 심판의 말씀이 세 번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으로, 다음에는 왕이 보낸 사람들이 왕에게 전달한 말씀으로, 마지막에는 엘리야가 왕 앞에서 직접 전한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아하시야는 말씀을 듣고도 엘리야를 불러들이기 위해 병사들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부대가 죽었고, 세 번째 부대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왕에게 하신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야훼의 말씀대로 죽었습니다.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여호사밧의 아들인 유다 왕 여호람이 다스린 지 둘째 해였습니다.열왕기하 1:17 · 두루새김
왕이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죽기 전 무슨 말을 남겼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에 관하여 본문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의학적 경과도, 왕궁의 상황도 아닙니다.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야훼의 말씀대로」라는 사실입니다.
다음 장들에서 드러나듯 여호람 역시 아합의 아들입니다(열왕기하 3:1). 왕위는 같은 집안 안에서 이어지지만, 아하시야 개인의 통치는 여기서 끝납니다.
18절은 그가 한 나머지 일들이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 기록책에 적혀 있다고 말합니다. 열왕기에서 왕의 통치를 마무리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상 21장에서 엘리야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에게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합은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며 스스로 낮아졌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가 자신 앞에서 낮아진 것을 보시고 재앙의 시기를 늦추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열왕기상 21:27–29). 아하시야에게도 엘리야를 통해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는 그가 스스로 낮아졌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가 직접 말씀을 전했을 때도 본문은 왕이 무엇이라고 응답했는지 서술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잊어버린 것
아하시야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왕이 원하는 답만을 제공하는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왕이 누구에게 묻고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판단하셨으며, 그에게 필요한 말씀을 먼저 주셨습니다.
아하시야는 높은 위층 방에서 떨어져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 수 있을지 물어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뒤로도 왕궁에서는 계속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앉은 엘리야는 왕의 명령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장교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했을 때,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와 함께 내려가라.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제야 엘리야는 일어나 산에서 내려갔습니다.
누가 내려오라고 명령했는가보다, 누구의 말씀에 따라 내려왔는가가 중요했습니다.
왕은 자기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왕이 부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 앞에 선 엘리야는 처음 주어진 말씀을 한마디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왕궁의 명령은 여러 번 반복되었고 병사들도 잇달아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이 끝난 뒤 이루어진 것은 처음부터 왕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여호와야훼의 말씀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