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마지막 환상과 약속
기도는 들렸으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세 주 동안 슬퍼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고기와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몸에 기름을 바르는 일조차 삼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온 존재는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네가 깨달음을 얻기로, 또 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로 마음먹은 첫날부터 네 말이 들렸다.」
첫날부터 그의 말이 들렸다면, 왜 스물하루가 지나서야 응답이 도착했을까요?
다니엘 10장은 하나님이 미래에 관해 무엇을 알려 주시는지만큼, 그 말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을 어떻게 일으켜 세우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귀환이 시작된 시대에도 다니엘은 슬퍼하고 있었다
다니엘 10장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다스린 지 셋째 해를 배경으로 합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뒤 유다 사람들이 돌아가 성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한 왕으로 에스라 1:1–4에 등장합니다. 그 명령은 고레스가 다스리기 시작한 첫해에 내려졌습니다. 따라서 다니엘 10장의 시점에는 이미 돌아가 성전을 다시 지을 길이 열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회복을 향한 첫 명령이 내려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스라 3장에는 돌아온 사람들이 제단을 세우고 성전의 기초를 놓는 일이 기록되어 있고, 에스라 4:1–5에는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방해하는 세력의 활동이 나타납니다. 특히 에스라 4:5는 그 방해가 고레스가 다스리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배경은 다니엘이 왜 슬퍼했는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그의 슬픔의 원인을 밝히지 않습니다. 성전을 다시 짓는 데 겪는 어려움 때문인지, 앞으로 일어날 고난을 염려했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1절은 그에게 드러난 말씀이 참되었으며 「큰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큰 전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차바(צָבָא) 가돌입니다. 차바는 군대와 전쟁뿐 아니라 복무나 힘든 임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큰 전쟁이나 심각한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중대한 일이라는 뜻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페르시아의 우두머리와 그리스의 우두머리가 등장하고, 다음 장에서 왕국들의 충돌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전쟁이라는 읽기에 무게를 실어 줍니다.
그런데 1절은 다니엘이 그 내용을 깨닫고 환상의 뜻을 이해했다고도 밝힙니다.
본문은 그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의 이해는 곧바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두려움과 회복을 거쳐 주어지는 일입니다.
다니엘은 꼬박 세 주 동안 슬퍼했습니다.
3절에서 그가 삼간 것은 음식 전체가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과 고기와 포도주를 멀리했고, 몸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일상의 즐거움과 몸을 돌보는 관습을 절제함으로써 슬픔을 표현한 행동입니다.
원문은 세 번의 일곱에 해당하는 기간에 「날들」(יוֹם)을 붙여 말합니다. 따라서 이곳의 세 주는 21일을 가리킵니다. 9장에서 말하는 일곱씩 묶인 기간과 달리 실제 날수를 나타낸다는 점이 명확합니다.
세 주가 다 찬 뒤 첫째 달 스물넷째 날,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가에 있었습니다.
첫째 달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있습니다. 레위기 23:5–8에 따르면 유월절은 첫째 달 14일이고, 무교절은 15일부터 21일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24일 직전에 끝난 다니엘의 세 주의 슬픔은 달력상 이 절기들과 겹치는 기간을 포함합니다. 다만 본문은 그가 이 절기 때문에 슬퍼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회복이 함께 놓인 시기라는 점은 그의 처지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제 그가 눈을 들어 바라본 강가에 놀라운 존재가 나타납니다.
눈은 보았지만 몸은 견디지 못했다
다니엘은 아마포 옷을 입은 한 사람을 봅니다.
그는 허리에 금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있고, 몸은 타르시스 보석 같으며, 얼굴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고, 눈은 불붙은 횃불 같습니다. 팔과 발은 광을 낸 청동처럼 빛나고, 목소리는 수많은 사람의 소리처럼 우렁찹니다.
다니엘이 본 이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나 다니엘만 그 환상을 보았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환상을 보지 못했지만,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달아나 숨었습니다.다니엘 10:7 · 두루새김
그러나 다니엘이 다른 사람들보다 담대했기 때문에 남아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그는 자신의 힘이 모두 사라졌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혼자 남아 이 큰 환상을 보았습니다. 내게는 힘이 전혀 남지 않았고, 내 모습은 생기를 잃었습니다. 나는 힘을 낼 수 없었습니다.다니엘 10:8 · 두루새김
여기서 다니엘의 모습이 「생기를 잃었습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는 말보다 강합니다.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기운과 모습이 무너지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환상의 존재는 빛으로 가득하지만, 그 빛을 마주한 사람은 자신의 힘조차 유지하지 못합니다.
9절에서 다니엘은 그 존재가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동안 얼굴을 땅에 댄 채 깊은 잠에 빠집니다.
그는 이전에도 왕들의 꿈을 해석하고 기이한 환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이 지금의 두려움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다니엘은 아직 아무것도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저 땅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자 한 손이 그에게 닿습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타르시스 보석」은 오늘날 어느 광물에 해당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1:7에는 광을 낸 청동처럼 빛나는 발이 등장하고, 1:16에는 보석과 같은 광채를 지닌 바퀴들이 나타납니다. 에스겔 1:24와 43:2에서는 많은 물소리와 같은 압도적인 소리가 묘사됩니다. 또한 에스겔 9:2–3에는 아마포 옷을 입은 존재가 등장합니다. 두 책의 모습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인간의 일상적인 말로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하늘의 영광을 빛과 소리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아마포 옷을 입은 존재를 뒤에 등장하는 전달자와 같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서로 구별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후대의 기독교적 읽기에서는 이 장면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다니엘 10장 자체가 그가 누구인지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 1:13–16이 다니엘 10장의 아마포 옷을 입은 존재를 묘사할 때 사용된 것과 비슷한 빛과 불, 강한 목소리의 이미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이는 다니엘의 환상 언어를 후대에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데 사용한 문학적·신학적 연결입니다. 그 모습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다니엘이 본 존재를 예수님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귀한 사람 다니엘에게 찾아온 손길
다니엘이 땅에 엎드려 있을 때 한 손이 그에게 닿습니다.
그 손은 다니엘을 단번에 똑바로 세우지 않습니다. 먼저 그를 흔들어 무릎과 두 손바닥으로 몸을 받치게 합니다.
회복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귀한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하는 말을 잘 깨닫고 똑바로 서라. 내가 지금 네게 보내졌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말할 때 나는 떨며 일어섰습니다.다니엘 10:11 · 두루새김
다니엘은 자신에게 힘이 없다는 사실만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그를 찾아온 존재는 그에게 새로운 일을 이루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지를 먼저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그의 두려움을 다르게 보게 합니다.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깨달음을 얻기로, 또 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로 마음먹은 첫날부터 네 말이 들렸다. 나는 네 말 때문에 왔다.」다니엘 10:12 · 두루새김
「자신을 낮추기로」(עָנָ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에는 스스로를 괴롭게 하거나 낮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금식과 절제라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그의 마음속 태도와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다니엘이 자신을 괴롭힌 정도에 따라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12절이 강조하는 시점은 세 주가 끝났을 때가 아닙니다.
첫날입니다.
다니엘이 응답을 듣기 시작한 시점과 그의 말이 들린 시점은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다리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그 시간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에스겔 2:1–2에서는 엎드려 있던 예언자가 일어서라는 말씀을 듣고, 영의 도움으로 일어섭니다. 다니엘 10장에서는 손길과 격려를 통해 쓰러진 사람이 일어서고 힘을 얻습니다. 두 장면은 세부적인 방식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능력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움과 연결된다는 공통된 주제를 지닙니다.
스물하루 동안 길을 막은 페르시아의 군주
「페르시아 왕국의 우두머리가 스물하루 동안 내게 맞섰다. 그때 으뜸가는 우두머리들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나를 도우러 왔다. 나는 그곳 페르시아 왕들 곁에 남아 있었다.」다니엘 10:13 · 두루새김
다니엘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던 시간은 말씀을 전하는 존재가 저항에 부딪혀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조금 전까지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 말씀을 전하는 존재 역시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는 마지막 날들에 네 백성에게 닥칠 일을 네가 깨닫게 하려고 왔다. 이 환상은 아직 다가올 날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다니엘 10:14 · 두루새김
여기서 「마지막 날들」을 곧바로 세계의 최종적인 종말과 같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문장은 그 날들에 「네 백성」에게 닥칠 일을 설명하려 한다고 밝힙니다. 다니엘서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이 정하신 미래의 결정적인 시기를 내다보는 것과 관련됩니다.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는 이어지는 말씀에 따라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슬픔과 두려움은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가 듣게 될 내용은 그 자신만을 위한 비밀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아직 그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말을 잃습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은 페르시아 왕국의 「우두머리」와 「페르시아 왕들」을 구별하여 말합니다. 또한 이 우두머리는 하늘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에게 맞서고, 미가엘의 도움을 통해 대립이 이어지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문맥은 그를 단순히 페르시아의 인간 통치자 한 명으로 보기보다, 페르시아 왕국과 관련된 보이지 않는 영역의 권세로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다만 본문은 그를 악한 천사나 특정한 종류의 영적 존재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한쪽으로는 본문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대립을 단순히 당시 나라들 사이의 형편을 표현한 비유라고만 설명하는 읽기가 있습니다. 반대쪽으로는 나라별로 특정한 영적 우두머리가 배정되어 있고, 지상의 모든 사건이 그들의 싸움에 의해 결정된다는 완성된 체계를 세우는 읽기가 있습니다. 다니엘 10장은 보이지 않는 대립을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읽기만으로는 본문이 보여 주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차원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러한 존재들의 모든 역할과 권한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읽기처럼 자세한 영적 지도를 그리는 것 역시 본문이 허락하는 범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말을 잃은 사람에게 먼저 입술을 만지다
14절까지 설명을 들은 다니엘은 다시 고개를 땅으로 숙이고 말문이 막힙니다.
그때 사람의 모습을 한 이가 내 입술을 만졌습니다. 나는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이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 환상 때문에 고통이 밀려와 저는 힘을 잃었습니다.」다니엘 10:16 · 두루새김
그는 새로운 환상을 더 보여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이 그 환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주인님의 종인 제가 어떻게 주인님과 말씀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게는 힘이 남아 있지 않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습니다.」다니엘 10:17 · 두루새김
다니엘이 왕의 궁정에서 맡았던 역할을 생각해 보면 「주인님의 종」은 깊은 뜻이 담긴 표현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왕들 앞에서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왕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한 일에 대해 그에게 설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은 자신이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능력조차 부족한 종임을 인정합니다.
다니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만이 아닙니다. 그 정보를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붙들어 주는 도움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이사야 6:5–8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자신이 깨끗하지 못함을 고백하고, 입술에 제단의 숯불이 닿은 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이사야의 경우에는 죄를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가 명시되어 있고, 다니엘에게는 말을 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다시 말하게 되는 일이 강조됩니다. 하지만 두 장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맡은 인간이 먼저 자신의 무능력을 경험한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힘을 내라. 힘을 내라.」 — 말씀이 힘을 회복시키다
사람의 모습을 한 이가 다니엘을 다시 만집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귀한 사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게 평안이 있기를 바란다. 힘을 내라. 힘을 내라.」 그가 내게 말할 때 나는 힘을 얻어 대답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제게 힘을 주셨으니,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다니엘 10:19 · 두루새김
다니엘은 혼자 마음을 다잡아 힘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말할 때 힘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존재를 통해 다니엘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다니엘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감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무너진 몸을 억지로 일으키라고 압박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그를 만지고 평안을 말하며 힘을 회복시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말씀을 청합니다.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다니엘에게 평안을 바라는 말이 전해졌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곧이어 페르시아의 우두머리와 다시 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평안은 전쟁이 모두 끝났다는 소식이 아니라,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회복된 상태와 연결됩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군주, 그리고 진실의 글
이제 말씀을 전하는 존재는 자신이 왜 왔는지 다시 묻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왜 네게 왔는지 아느냐? 이제 나는 돌아가 페르시아의 우두머리와 싸울 것이다. 내가 나갈 때 그리스의 우두머리가 올 것이다.」다니엘 10:20 · 두루새김
다니엘 8장에서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숫양을 그리스의 숫염소가 무너뜨리는 환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장에서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땅 위의 제국 이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제국들과 관련된 우두머리들이 보이지 않는 대립의 참여자로 등장합니다.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대립의 대상이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의 소식을 듣는 다니엘에게 전달될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진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네게 알려 주겠다. 이 우두머리들에게 맞서 나와 힘을 합하는 이는 너희 백성의 우두머리 미가엘뿐이다.」다니엘 10:21 · 두루새김
1절은 다니엘에게 드러난 말씀이 「참되었고」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이제 그에게 「진실의 글」에 기록된 것을 알려 주겠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참되다는 뜻이 장의 처음과 끝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들려올 이야기가 단순히 왕들의 음모나 군대의 움직임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고 계신 역사의 방향을 밝히는 말씀임을 보여 줍니다.
이제 미가엘은 「너희 백성의 우두머리」라고 불립니다. 앞에서는 으뜸가는 우두머리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여기서는 다니엘의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존재로 나타납니다. 미가엘이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12:1에서 더 분명하게 설명됩니다.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강대한 제국에 비하면 작고 약한 집단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오직 제국의 결정에만 달려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다니엘에게 보이지 않는 대립이 알려졌지만, 그 대립을 다루는 권한까지 그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이 하도록 부름받은 일은 페르시아의 우두머리와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미가엘을 지휘하거나 보이지 않는 전쟁의 전략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깨달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전달되는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그는 여전히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내가 나갈 때」라고 말한 것도 그가 다니엘 곁을 떠나는 순간을 뜻하는지, 싸움에 나서는 일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로 하늘의 전쟁을 시간 순서에 따라 완전히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주어진 평안
다니엘에게 전쟁의 종료가 선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들려올 말씀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얻었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은 바로 그렇게 드러납니다. 모든 싸움을 다니엘의 눈앞에서 끝내시는 방식이 아니라, 그가 두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는 방식입니다.
이 장은 그러한 모든 지연을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의 방해로 설명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니엘에게 일어난 특정한 사건을 모든 사람의 기도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법칙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티그리스 강가에서 다니엘은 처음에 홀로 남아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달아났고, 그의 몸에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존재는 아직 페르시아의 우두머리와 다시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의 우두머리도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제 더 이상 얼굴을 땅에 대고 말없이 쓰러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힘을 준 존재 앞에서 말씀을 청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다니엘은 다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