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마지막 환상과 약속
왕들의 싸움과 하나님을 아는 백성
다니엘 11장에는 많은 왕이 등장합니다. 어떤 왕은 막대한 부를 쌓고, 어떤 왕은 대군을 일으키며, 어떤 왕은 결혼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왕들은 서로 속이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패배를 복수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지만 왕들의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긴 이야기에서 뜻밖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왕들의 힘이 역사의 중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왕들의 전쟁은 성소와 언약을 침해하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합니다.
다니엘 11장의 중심 질문은 어느 왕이 마지막에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왕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할 때 누가 끝까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남느냐입니다.
이 장은 앞 장에서 다니엘에게 찾아온 존재가 전하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 존재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군주들과 맞서는 일을 말한 뒤, 이제 땅 위의 왕국들 사이에서 일어날 일을 상세히 알려 줍니다.
제국의 역사는 왕의 뜻대로 움직이는가?
말씀은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가 다스린 첫해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나도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가 다스린 첫해에 그에게 힘을 주고 그를 지켜 주려고 나섰다.」다니엘 11:1 · 두루새김
여기서 「그에게」와 「그를」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 장 마지막에 나온 미가엘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고, 이 절에 등장하는 다리우스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가엘을 가리킨다면, 말씀을 전하는 존재가 이전에도 미가엘을 도우며 대립에 참여했다는 뜻이 됩니다. 다리우스를 가리킨다면, 인간 왕의 통치와 관련된 도움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두 읽기 모두 문맥상 가능하므로 어느 한쪽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도입은 앞으로 등장할 왕들의 역사가 땅 위에서 그들이 행사하는 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어서 페르시아에 왕들이 더 일어나고, 특별히 많은 재물을 모은 넷째 왕이 그리스에 맞서는 움직임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페르시아 왕들의 역사에서 고레스 이후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를 세 왕으로 세면 넷째 왕은 크세르크세스 1세가 됩니다. 크세르크세스가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여 그리스를 침공한 사건은 이 구절의 묘사와 잘 들어맞습니다. 다만 모든 페르시아 왕을 차례대로 나열한 명단이라고 보기에는 이어지는 설명이 여러 통치자를 건너뛰므로, 그 순서에 관한 모든 세부 사항을 확정적인 연대표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강한 왕이 일어나 큰 힘으로 다스리며 자기 뜻대로 할 것이다.」다니엘 11:3 · 두루새김
페르시아 다음에 등장하는 강한 왕은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연결됩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넓은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어서면 그의 왕국은 무너져 하늘의 네 방향으로 나뉠 것이다. 그 나라는 그의 후손에게 이어지지 않고, 그가 다스리던 때만큼 강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의 왕국이 뿌리째 뽑혀 그 후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다니엘 11:4 · 두루새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그가 죽은 뒤 후계자들의 전쟁을 거쳐 여러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그의 가족이 제국 전체를 안정적으로 물려받지 못했고, 권력은 여러 장군과 그 후계자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마카베오기상 1:1–9도 이 제국의 분열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소개합니다.
큰 힘으로 다스리며 자기 뜻대로 행동하던 왕에게 일어난 결과가 뿌리 뽑힘입니다. 그가 일으킨 거대한 제국이 영원히 이어질 가문의 유산으로 남지 못합니다.
권력이 크다고 해서 그 권력을 계속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왕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자기 뒤에 무엇이 남을지까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거대한 정복의 역사가 네 절 만에 끝난 뒤, 말씀은 제국의 중심에서 갈라져 나온 두 왕국의 오랜 경쟁으로 옮겨 갑니다.
평화를 위한 결혼이 더 큰 비극으로 끝나다
이제 남쪽 왕과 북쪽 왕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보면 남쪽은 이집트이고 북쪽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이 분열된 뒤 이집트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자리 잡았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5절의 남쪽 왕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그의 지휘관 가운데 하나로서 더 강해져 다스리는 인물은 셀레우코스 1세와 연결됩니다.
그들은 완전히 낯선 외부 세력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을 함께 물려받은 후계 세력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서로를 무너뜨리는 경쟁자가 됩니다.
6절에서는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른 방법이 등장합니다.
「몇 해 뒤에 남쪽 왕과 북쪽 왕은 서로 손을 잡을 것이다. 남쪽 왕의 딸이 두 나라 사이에 합의를 이루려고 북쪽 왕에게 갈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힘을 유지하지 못하고, 북쪽 왕도 그의 세력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여자는 자기를 데려온 사람들, 자기 아버지, 그때 자기를 도와주던 이와 함께 모두 넘겨질 것이다.」다니엘 11:6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딸 베레니케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2세와 결혼한 사건과 연결됩니다. 당시 왕실의 결혼은 개인의 혼인만이 아니라 국가 사이의 협정을 만드는 수단이었습니다. 혼인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안티오코스 2세에게는 이미 라오디케라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베레니케와의 결혼을 둘러싼 왕실의 갈등은 왕위를 물려받는 문제로 이어졌고, 결국 베레니케와 그 자녀는 살해되었습니다. 안티오코스 2세 역시 이 권력 투쟁 속에서 죽었습니다.
이야기는 왕실 혼인을 단순히 외교적 성공이나 실패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왕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마련한 합의가 한 사람의 삶과 가족을 파괴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왕들이 평화를 말했지만, 그 평화를 유지할 만한 신뢰는 없었습니다.
7절에서는 베레니케의 가문에서 나온 새로운 인물이 북쪽을 공격합니다. 그 인물은 그녀의 형제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와 연결됩니다. 그는 북쪽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공격하고, 승리하여 많은 재물을 이집트로 가져왔습니다.
「그는 그들의 신들과 금속을 녹여 부어 만든 신상들, 귀한 은그릇과 금그릇까지 빼앗아 이집트로 가져갈 것이다. 그 뒤 몇 해 동안은 북쪽 왕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다니엘 11:8 · 두루새김
고대의 전쟁에서 신상과 성전의 재물을 빼앗는 일은 단순한 약탈을 넘어 종교적·정치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패배한 나라가 섬기던 신들을 정복자의 나라로 가져가는 행위는 그 나라의 권력과 보호가 무너졌음을 보여 주는 승리의 표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종교적 침해는 아닙니다.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이스라엘의 성소 자체가 공격받습니다.
9절에서 북쪽 왕은 남쪽 왕의 나라를 공격하지만 다시 자기 땅으로 돌아갑니다. 몇 차례의 승리와 패배, 결혼과 복수가 이어졌지만 두 왕국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여 이전 세대의 싸움을 다시 시작합니다.
수만 명을 쓰러뜨리고도 강해지지 못한 왕
10절은 북쪽 왕의 아들들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아들들은 셀레우코스 3세와 안티오코스 3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안티오코스 3세는 큰 군대를 일으켜 남쪽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맞섰습니다.
「남쪽 왕은 몹시 화가 나서 북쪽 왕과 싸우러 나갈 것이다. 북쪽 왕이 큰 군대를 일으키겠지만, 그 군대는 남쪽 왕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다니엘 11:11 · 두루새김
이 장면은 기원전 217년 라피아 전투와 연결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안티오코스 3세의 군대를 물리친 전투입니다.
그런데 12절은 승자의 상태를 뜻밖의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그 군대가 쓸려 나가면 남쪽 왕은 마음이 교만해질 것이다. 그는 수만 명을 쓰러뜨리겠지만, 강해지지는 못할 것이다.」다니엘 11:12 · 두루새김
3절에서는 강한 왕이 일어나 자기 뜻대로 했습니다. 12절에서는 남쪽 왕이 큰 승리를 거두고 수많은 적을 죽였지만 강해지지는 못합니다.
승리는 곧 지속적인 힘이 아닙니다.
북쪽 왕은 다시 더 큰 군대를 준비합니다. 몇 해가 흐른 뒤 그는 더 많은 군사와 물자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13절은 시간의 흐름이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패배한 왕이 더 큰 전쟁을 준비할 시간이 됩니다.
이어서 14절에는 다니엘의 백성이 처음으로 직접 등장합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남쪽 왕에게 맞서 일어날 것이다. 네 백성 가운데 폭력을 일삼는 자들도 환상을 이루려고 들고일어나겠지만, 쓰러질 것이다.」다니엘 11:14 · 두루새김
이들이 어떤 구체적인 집단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남쪽 왕에게 반대하는 움직임에 가담한 유다 내부의 무리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어떤 예언적 기대와 연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시도를 성공한 믿음의 행동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쓰러집니다.
그들이 실제로 어떤 환상을 염두에 두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 11장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보이는 모든 행동을 무조건 긍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들의 행동으로 예언을 이루려는 폭력적 시도는 그 결과를 통해 비판적으로 제시됩니다.
이후 북쪽 왕은 성벽을 공격할 흙더미를 쌓고 방어 시설이 튼튼한 도시를 차지합니다. 남쪽 왕이 골라 뽑은 뛰어난 군사들조차 그를 막지 못합니다.
그리고 16절에 이르면 전쟁의 중심이 다니엘의 백성에게 더욱 가까워집니다.
「공격해 온 북쪽 왕은 자기 뜻대로 할 것이며, 아무도 그에게 맞서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땅에 자리 잡을 것이며, 그 땅을 멸망시킬 힘이 그의 손에 있을 것이다.」다니엘 11:16 · 두루새김
「아름다운 땅」은 문맥상 유다 땅을 가리킵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세력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지배권의 변화와 군사적 충돌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티오코스 3세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 아래 있던 유다 지역을 장악한 사건은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과 연결됩니다.
왕들에게 그곳은 정복해야 할 영토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백성에게는 그들이 살아가는 땅이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삶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왕들의 싸움은 이제 점점 더 하나님의 백성의 삶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또 다른 혼인 동맹과 무너지는 왕의 계획
북쪽 왕은 유다 땅에 영향력을 확보한 뒤 남쪽 왕의 나라를 향해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는 온 나라의 힘을 모아 남쪽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남쪽 왕과 공정한 합의를 맺어 실행할 것이다. 그는 남쪽 왕의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딸을 남쪽 왕에게 아내로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버티지 못하고 북쪽 왕의 편도 되지 않을 것이다.」다니엘 11:17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안티오코스 3세가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를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 결혼시킨 사건과 연결됩니다. 앞에서 베레니케의 결혼이 두 왕국의 평화를 위한 협정으로 등장했다면, 이번에는 딸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려는 의도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클레오파트라 1세는 이집트 왕실의 일원이 되어 활동했고, 아버지의 정치적 목적에 단순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왕들은 혼인 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언제나 왕의 계산대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해안 지방들로 방향을 돌려 많은 곳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한 지휘관이 그가 남들에게 모욕을 주는 일을 그치게 하고, 오히려 그 모욕을 그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다니엘 11:18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안티오코스 3세가 소아시아와 에게해 지역으로 세력을 넓히려다 로마와 충돌한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는 처음에는 승리를 거두지만 결국 로마에 패배합니다. 기원전 190년 마그네시아 전투에서의 패배와 그 뒤에 맺은 평화 협정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힘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강한 왕은 자신이 다른 나라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강한 세력을 만나면 자신이 다른 나라에 가했던 일을 도리어 당하게 됩니다.
19절에서 왕은 자기 땅의 요새들로 돌아가지만 비틀거리다 쓰러져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안티오코스 3세는 동방 지역에서 성전의 재물을 빼앗으려던 과정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어서 그의 자리에 새로운 왕이 일어납니다.
20절의 왕은 셀레우코스 4세와 연결됩니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왕국을 물려받았지만, 로마에 지불해야 할 배상금 등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은 나라의 영광스러운 곳에 세금을 거두는 관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그 왕은 며칠 지나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누군가의 분노 때문도, 전쟁 때문도 아닐 것이다.」다니엘 11:20 · 두루새김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과 패배 이후의 재정적 부담은 제국이 다스리는 지역들에서 세금을 거두는 일과 연결됩니다. 마카베오기하 3장에는 셀레우코스 4세 시대에 헬리오도로스가 예루살렘 성전의 재물을 조사하고 가져가려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왕국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손길이 성전의 재물에까지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왕 역시 오래가지 못합니다.
셀레우코스 4세는 전장에서 적군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라 궁정 내부의 암살로 죽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며칠간의 통치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앞선 통치자들에 비해 그의 통치가 제한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1절부터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이전에도 왕들은 서로를 속이고 약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등장하는 왕은 단지 다른 왕국을 정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의 권력은 하나님의 언약을 직접 겨냥합니다.
군대보다 먼저 속임수로 왕권을 얻은 사람
21절은 새로운 통치자를 소개합니다.
「그의 자리에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왕의 지위를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있을 때 들어와, 듣기 좋은 말로 환심을 사서 왕권을 차지할 것이다.」다니엘 11:21 · 두루새김
이 인물은 역사적으로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와 뚜렷하게 연결됩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셀레우코스 4세의 형제였습니다. 왕위를 물려받을 더 직접적인 권리를 가진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는 복잡한 왕실의 권력 관계를 이용하여 왕위에 올랐습니다.
본문이 그를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성격이 나쁘다는 평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꾀를 써서 다스릴 권한을 확보한 사람이라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그는 이전의 왕들과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합니다.
23절은 그가 동맹을 맺은 뒤에도 속임수를 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군사력과 속임수를 함께 사용합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동맹 관계를 이용하며, 사람들이 방심하는 순간 권력을 확대합니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군대도 그의 앞에서는 도리어 휩쓸려 무너질 것이다. 언약의 지도자도 그렇게 될 것이다.」다니엘 11:22 · 두루새김
이제 왕의 권력은 다른 나라의 군대만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거룩한 책임을 맡은 지도자의 생명과 지위까지 위협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있을 때 그 지방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들로 들어갈 것이다. 그는 자기 조상들도, 그 조상의 조상들도 하지 않은 일을 할 것이다. 남에게 빼앗거나 전쟁에서 얻은 물건과 재산을 사람들에게 널리 나누어 주고, 요새들을 공격할 계획을 꾸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동안만 이어질 것이다.」다니엘 11:24 · 두루새김
여기서 재물을 나누어 주는 행위는 단순히 마음이 넉넉해서 베푸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있을 때」라는 표현이 21절과 24절에 반복됩니다. 권력의 확대가 언제나 공개적인 전쟁의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안정과 우호의 모습으로 접근하여 상대가 경계하지 않는 사이 자신의 뜻을 이룹니다.
이 왕의 계획은 실제로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 성공에도 정해진 기간이 있습니다.
이제 왕은 확보한 권력을 이용하여 다시 남쪽을 공격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언약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으로 읽는다면, 이 지도자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언약과 관련된 지위를 지닌 인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와 연결하는 해석에 중요한 근거가 있습니다. 마카베오기하 4:33–38은 오니아스가 부당하게 살해되는 과정을 전합니다. 그렇다고 22절이 오니아스의 이름을 직접 밝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약의 지도자를 다른 인물이나 정치적 협약의 지도자와 연결할 가능성도 문맥에 따라 논의될 수 있습니다.
같은 식탁에서 거짓을 말하는 두 왕
25절부터 북쪽의 통치자는 큰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를 공격합니다.
이 전쟁은 안티오코스 4세가 프톨레마이오스 6세가 다스리던 이집트에 침입한 사건들과 연결됩니다. 북쪽 왕의 군대는 강하고, 남쪽 왕도 그에 맞설 만큼 많은 군사를 동원합니다. 그러나 남쪽 왕은 버티지 못합니다.
「남쪽 왕이 주는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그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의 군대는 휩쓸려 가고, 많은 사람이 죽어 쓰러질 것이다.」다니엘 11:26 · 두루새김
왕이 좋은 음식을 함께 먹을 만큼 가까이 두었던 사람들이 그를 무너뜨리는 일에 관여합니다. 궁정 내부의 배신과 음모가 군대의 패배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왕은 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자기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조차 믿을 수 없습니다.
「두 왕은 모두 악한 마음을 품고 한 식탁에 앉아 서로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끝이 올 정해진 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다니엘 11:27 · 두루새김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겉으로는 우호와 신뢰를 표현합니다. 칼을 내려놓고 함께 앉아도 마음속에서는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싸움이 계속됩니다. 이 장면은 앞에서 나온 왕실 결혼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결혼도, 동맹도, 식탁도 평화를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협정의 형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이루는 사람들이 진실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왕들은 상대를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자신들의 계획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8절에서는 북쪽 왕의 관심이 다시 성소와 언약을 향합니다.
「북쪽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룩한 언약을 거스를 마음을 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그런 뒤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다니엘 11:28 · 두루새김
안티오코스 4세는 이집트 원정 뒤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했습니다. 마카베오기상 1:20–24에는 그가 성소의 금과 은, 여러 기물을 빼앗아 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왕의 행동은 뚜렷하게 종교적 의미를 띠기 시작합니다. 그는 재물을 얻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침해합니다.
29절에서는 그가 정해진 때에 다시 이집트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깃딤의 배들이 그에게 맞서 오면 그는 기가 꺾여 돌아갈 것이다. 그는 거룩한 언약에 분노를 쏟으며 행동에 나설 것이다. 또 돌아가 거룩한 언약을 저버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다니엘 11:30 · 두루새김
외부의 강대한 세력 앞에서 좌절한 왕이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노를 돌립니다. 다니엘의 백성 안에도 그의 정책에 협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외부의 강압과 내부의 협력이 함께 작용합니다. 왕은 모두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언약을 저버리려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공동체를 갈라놓습니다.
문제의 중심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옮겨 왔습니다.
조금 더 깊이
「깃딤」은 본래 지중해 동부, 특히 키프로스와 관련된 명칭이지만, 성경과 고대 유대 문헌에서는 더 넓은 서방 세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문맥에서는 로마의 개입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 역사적 근거가 있습니다. 기원전 168년, 안티오코스 4세가 이집트를 공격하자 로마는 그에게 군대를 물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고대 역사가 폴리비오스의 『역사』 29권 27장에는 로마 사절 포필리우스가 안티오코스에게 군대를 물리라고 요구한 장면이 전해집니다. 안티오코스가 생각할 시간을 요구하자, 포필리우스는 지팡이로 왕의 주위에 원을 그리고 그 원을 벗어나기 전에 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결국 로마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왕이 제사를 없애고 혐오스러운 것을 세우다
31절은 이 장에서 가장 심각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가 보낸 군대가 일어나 요새인 성소를 더럽힐 것이다. 늘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폐허를 만드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울 것이다.」다니엘 11:31 · 두루새김
여기서 「늘 드리는 제사」는 앞서 다니엘 8장에 등장했던 표현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드려야 하는 예배가 강제로 중단된다는 뜻입니다.
마카베오기상 1:41–64는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예배와 관습을 금지하고, 안식일과 절기를 더럽히며, 성소에 이방의 제사를 들여오도록 강요한 일을 기록합니다. 성전의 제단 위에는 폐허를 만드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졌고, 율법 두루마리들이 불태워졌으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때 왕이 빼앗으려 한 것은 단지 성전의 재물이나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을 결정하려 했습니다.
정치적 권력이 자신이 다스리는 사람들의 종교적 충성까지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 건물을 파괴하거나 제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언약을 향한 충성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언약을 어기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듣기 좋은 말로 꾀어 타락시킬 것이다. 그러나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굳세게 서서 행동할 것이다.」다니엘 11:32 · 두루새김
이들의 힘은 왕과 같은 종류의 힘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더 큰 군대를 조직하여 곧바로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충성하며, 그분의 언약을 자신의 삶을 이끄는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왕은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의 충성을 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그러한 말에 꾀어 자신의 충성을 바꾸지 않습니다.
왕은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로 바꿀 수 있지만, 그들이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진실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 세 친구들은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6장에서 다니엘은 왕이 금지했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개인이 왕의 명령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11장에서는 같은 문제가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왕은 이제 개별 사람의 행동만이 아니라 언약을 따르는 삶 자체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성소는 단지 기도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이면서 왕국의 군사적 권력이 공격하는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거룩한 장소가 전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9:23–24에서는 하나님을 안다는 일이 그분이 한결같은 사랑과 정의와 의로움을 행하시는 분임을 아는 것과 연결됩니다. 호세아 4:1–2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상태가 사회의 거짓과 폭력, 살인과 연결됩니다.
왕들은 사람을 속이고, 깨달음이 있는 이들은 사람을 깨우쳐 준다
「백성 가운데 깨달음이 있는 이들이 많은 사람을 깨우쳐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동안 칼과 불에 쓰러지고, 포로로 끌려가며 재산을 빼앗길 것이다.」다니엘 11:33 · 두루새김
왕은 사람들을 듣기 좋은 말로 꾀어 타락시킵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있는 이들은 많은 사람을 깨우쳐 줍니다.
다니엘서에서는 깨달음이 단순히 어려운 환상을 해석하는 능력에 그치지 않습니다. 11장에서 깨달음이 있는 이들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줍니다. 그들은 혼자 안전한 자리에 머물며 역사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 참인지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승리가 아니라 고난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실제로 심각한 폭력을 겪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고난을 그들 자신의 잘못이나 믿음의 부족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쓰러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진실하지 않은 말로 환심을 사며 그들에게 합류할 것이다.」다니엘 11:34 · 두루새김
여기서 도움을 주는 세력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에 저항한 마카베오 가문의 활동과 연결하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마카베오기상 2–3장에는 마타티아와 그의 아들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점차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합류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도움을 「조금이나마」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완전한 구원이나 최종적인 승리와 구별됩니다. 도움은 실제로 주어지지만, 고난 전체를 끝내지는 못합니다.
같은 편에 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동기와 충성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위기의 순간에 어떤 사람은 진실을 위해 행동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접근합니다.
「깨달음이 있는 이들 가운데 일부가 쓰러질 것이다. 이는 마지막 때까지 그들을 불에 거르듯 단련하고, 깨끗하게 하며 희게 하려는 것이다. 정해진 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다니엘 11:35 · 두루새김
그러나 두 가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첫째, 본문은 깨달음이 있는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이 고난을 겪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많은 사람을 깨우쳐 주는 가운데 박해를 당합니다.
둘째, 그들이 겪는 폭력 자체를 좋은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 폭력은 앞에서 묘사한 악한 왕의 통치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단련이라는 표현은 악한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말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고난을 겪더라도 그 고난이 그들의 충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왕들의 전쟁에서도 정해진 때가 있었고, 악한 통치자의 성공에도 정해진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건의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는 사람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깨닫고,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왕들은 역사를 움직이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지만, 깨달음이 있는 이들은 사람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의 오만은 이제 모든 신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자신을 모든 신보다 높이는 왕
36절에서 왕의 모습은 한층 더 극단적으로 변합니다.
「왕은 자기 뜻대로 하며 모든 신보다 자신을 높이고 크게 여길 것이다. 그는 신들의 하나님을 거슬러 놀라운 말을 하고, 하나님의 분노가 끝날 때까지 하는 일마다 성공할 것이다. 이미 정해진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다니엘 11:36 · 두루새김
3절에서 강한 왕은 큰 힘으로 다스리며 자기 뜻대로 했습니다. 16절에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정복자가 자기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이제 36절의 왕 역시 자기 뜻대로 합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든 신보다 높입니다.
처음에는 왕들이 다른 왕들의 권력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이후에는 성소의 재물을 빼앗고 제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이제 왕은 자신이 사람들이 섬기는 대상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여깁니다.
「그는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도, 여자들이 바라는 것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신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 위에 자신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다니엘 11:37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분명한 것은 왕이 자신보다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을 모든 것 위에 높입니다.
그런데 38절은 뜻밖의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 대신 그는 요새들의 신을 공경할 것이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그 신에게 금과 은과 보석과 귀한 물건들을 바치며 공경할 것이다.」다니엘 11:38 · 두루새김
본문은 그가 모든 신을 완전히 부정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모든 것 위에 높이면서도,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되는 신은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새들의 신」이라는 표현은 군사적 요새나 방어하는 힘을 보호하는 신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이방 신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지만, 본문만으로 정확한 이름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39절에서는 낯선 신의 도움으로 요새들을 공격하고,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들을 크게 높여 주고 많은 사람을 다스리게 합니다. 왕은 신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숭배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일과 깊이 연결됩니다. 신에게 바치는 값비싼 예물과 요새의 공격, 사람들에게 다스릴 권한을 나누어 주는 일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종교는 자신을 제한하는 더 높은 진리라기보다,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권력의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킵니다. 반면 이 왕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신을 선택하고, 자신의 권력을 높이는 데 종교를 이용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말을 악한 통치자의 모든 행동을 승인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속임수와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꾀는 일, 성소를 더럽히는 일과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악한 행동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끝을 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왕의 악행을 의로운 행동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있다는 사실은 그 악행이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선언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앞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면 안티오코스 4세에 관한 묘사가 계속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성소를 더럽히고 거룩한 언약에 맞섰으므로, 그 오만이 모든 신 위에 자신을 높이는 모습으로 확대되는 것은 글의 흐름에서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이 절에서 단순히 「왕」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데 가까운 오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여기부터 안티오코스 4세를 넘어서는 마지막 때의 통치자를 묘사한다고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여자들이 바라는 것」은 해석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헤므다트 나쉼은 여성들이 바라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지만, 여성들을 향한 욕망이라는 뜻으로 이해될 여지도 있습니다. 앞뒤에 신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정한 신이나 종교적으로 섬기는 대상을 가리킨다고 읽을 근거가 있습니다. 반면 인간적인 애정이나 욕망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대상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 신이나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왕들이 자신을 높이는 모습은 이사야 14:12–15에 나오는 바벨론 왕에 대한 조롱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왕은 자신을 하늘 위로 높이고 가장 높은 자와 같아지려 하지만, 결국 스올로 내려가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에스겔 28:1–10의 두로 통치자에 대한 말씀도 비슷한 주제를 다룹니다. 두로의 통치자는 자신의 지혜와 부로 권력을 얻었고, 그 마음이 교만해져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사람의 손에 죽는 존재라는 사실이 선언됩니다. 두 본문은 다니엘 11장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권력이 자신을 신의 자리로 높이려다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같은 주제를 나눕니다. 기독교에서 성경 전체의 흐름에 따라 읽을 때는 이 장의 오만한 왕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지막 때 권력의 한 모습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3–4에는 자신을 신적 권위 위에 높이는 인물의 모습이 나타나며, 요한계시록 13장에도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들을 공격하는 짐승의 권력이 등장합니다. 이는 다니엘이 그린 제국의 권력 모습을 이어받은 주제와 표현의 연결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을 근거로 다니엘 11장의 각 왕과 전쟁을 신약 시대 이후의 특정 국가나 사건에 하나씩 대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 전쟁은 누구의 전쟁인가?
40절은 새로운 시간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때에 남쪽 왕이 그 왕에게 싸움을 걸 것이다. 북쪽 왕은 전차와 말을 탄 군사들과 많은 배를 이끌고 그에게 폭풍처럼 몰아칠 것이다. 그는 여러 나라로 쳐들어가 홍수처럼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다니엘 11:40 · 두루새김
첫 번째는 40–45절을 안티오코스 4세에 관한 전망이 계속되는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느 시점부터 안티오코스 4세를 넘어서는 미래의 마지막 때 통치자로 시야가 넓어진다고 읽는 것입니다. 두 읽기는 각각 앞뒤 흐름에서 찾을 수 있는 근거와 설명해야 할 문제를 가집니다.
따라서 어느 해석을 따르든 이 구절을 근거로 현대의 특정 국가나 지도자, 전쟁의 날짜를 확정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는 아름다운 땅으로 들어갈 것이며, 많은 나라가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에돔과 모압은 그의 손에서 벗어날 것이다. 암몬 자손 가운데 으뜸가는 이들도 벗어날 것이다.」다니엘 11:41 · 두루새김
아름다운 땅은 다시 유다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언급되는 에돔과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동쪽과 남동쪽에 자리했던 고대의 이웃 민족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왕의 손에서 벗어납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예외적으로 살아남는 일을 하나의 영적 법칙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구절은 왕의 정복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모든 곳을 똑같이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42–43절에서는 이집트가 다시 등장합니다. 왕은 이집트의 금과 은, 귀한 물건들을 차지하며 리비아 사람들과 구스 사람들까지 그의 뒤를 따르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앞에서 왕들은 금과 은으로 군대를 키우고, 혼인 관계를 맺고, 요새를 공격했습니다. 43절에서는 그들이 노렸던 재물을 쌓는 일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을 차지하는 왕에게도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동쪽과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그는 크게 놀랄 것이다. 그는 몹시 화가 나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나갈 것이다.」다니엘 11:44 · 두루새김
그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크게 놀랍니다.
왕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분노합니다. 바깥의 강한 세력에 막히면 더 약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쏟습니다.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으면 더 큰 파괴를 일으키려 합니다.
권력이 커질수록 불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 왕은 자신이 잃을 수 있는 것에도 더욱 민감해집니다.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진영을 설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금 더 깊이
40절의 남쪽 왕과 북쪽 왕은 앞부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를 가리켰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같은 왕조의 배경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남쪽 왕이 「그 왕에게」 싸움을 걸고, 북쪽 왕도 「그에게」 몰아친다고 말합니다. 이 두 표현이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지, 36절부터 등장한 왕이 북쪽 왕과 같은 인물인지, 아니면 구별되는 인물인지를 본문이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마지막 전쟁에 등장하는 세력들의 관계를 하나의 확정적인 구도로 그리기는 어렵습니다. 마카베오기상 6:1–16은 그가 동방 지역에서 원정하다가 페르시아 땅에서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45절의 마지막 장면과 그대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에 관한 전망이 계속되는 것으로 읽는 경우 그의 역사적 박해와 앞으로의 몰락을 하나의 묵시적 이야기 안에서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원정과 죽음의 구체적인 모습은 확인되는 역사의 흐름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본문이 내다보는 마지막 장면과 실제 역사 사이의 긴장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미래의 마지막 때 통치자로 읽는 해석은 36절에서 자신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모습과 40절의 「마지막 때」라는 표현을 중요하게 봅니다. 그러나 본문이 새로운 왕을 분명하게 소개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그 미래의 왕이 누구인지, 어느 시대에 등장할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동쪽과 북쪽에서 어떤 소식이 들려왔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반란이나 적군의 움직임과 관련된 소식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궁처럼 쓰는 천막들을 쳤지만, 그를 도울 사람은 없었다
「그는 바다들과 아름답고 거룩한 산 사이에 왕궁처럼 쓰는 천막들을 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을 맞을 것이며, 아무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다.」다니엘 11:45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듯 거룩한 산 가까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왕의 권력과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가 마지막까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마지막 전투의 자세한 과정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누가 왕을 공격하는지, 어떤 무기로 그를 죽이는지, 그의 군대가 어떤 순서로 무너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1절에는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지켜 주려는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 인간의 권력을 끝없이 높이려 했던 왕에게는 그를 도울 사람이 없습니다.
권력의 크기와 최후의 안전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왕궁처럼 쓰는 천막들」은 왕의 힘과 군사적 위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왕이 전쟁터에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그 공간에도 왕실의 위엄이 드러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산」은 앞뒤 흐름에서 예루살렘의 시온산 또는 성전이 자리한 거룩한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다들」은 지중해와 사해를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지만,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본문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왕들의 역사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군대의 크기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속임수에 굴복하지 않고, 많은 사람을 깨우쳐 주며, 때로는 자신들의 충성 때문에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충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역사적 사건의 승패를 미리 아는 능력이 아니라, 그 사건들 속에서 무엇이 참된지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다니엘 11장은 마지막에 다시 거대한 권력자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마침내 그는 아름답고 거룩한 산 가까이에 왕궁처럼 쓰는 천막들을 칩니다. 거대한 군대가 그를 따랐을 것이고, 왕의 천막은 그의 위엄을 드러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면에서 본문은 군대의 숫자를 세지 않습니다. 왕이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했는지도 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권력을 향해 마지막 한 문장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는 끝을 맞을 것이며, 아무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지배했던 왕의 곁에는 마지막에 그를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