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9–10장 · 부림절의 시작

죽음의 날이 기념일이 되기까지

에스더 9장은 처음부터 결말을 알려 줍니다.

하만이 정해 놓은 아달월 13일이 마침내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유다인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예정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에스더 9장의 절반 가까이는 싸움이 끝난 뒤의 이야기에 쓰입니다. 모르드개가 편지를 쓰고, 유다인들이 날짜를 정하고, 에스더가 다시 그 규정을 확정합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기록하면서, 후손들이 그날을 잊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에스더 9장은 단지 유다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기로 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9장 본문 읽기 →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다

에스더 9:1–4 본문 →

1절에서 눈여겨볼 것은 원수들과 유다인들이 같은 날을 서로 다르게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열두째 달인 아달월 13일, 왕의 명령과 법을 실행할 날이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원수들은 그날 유다인들을 제압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뒤집혀 오히려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제압하게 되었습니다.에스더 9:1 · 두루새김

두루새김에서도 원수들은 유다인들을 「제압하기를」 기대했고, 유다인들이 오히려 원수들을 「제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그 관계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하만이 제비를 뽑아 정해 놓은 날의 의미 자체가 뒤집혔음을 보여 줍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모든 지방에서 유다인들은 자기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각자 사는 도시에 모였습니다. 모든 민족이 유다인들을 두려워했으므로 아무도 그들에게 맞서지 못했습니다.에스더 9:2 · 두루새김

하만은 처음 왕에게 유다인을 고발하면서 그들이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따로 사는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에 3:8). 넓은 제국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은 하만이 이용한 그들의 약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흩어진 사람들이 각자 사는 도시에 모입니다.

하만이 그들을 없애기 좋은 조건으로 여겼던 흩어짐이, 이제 그들의 공동 행동을 막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후의 부림절 제정과도 연결됩니다. 유다인들은 하나의 땅에 모여 살지 않아도, 같은 날을 기억하고 함께 지키는 공동체가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승리하는 데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합니다.

각 지방의 높은 관리들과 태수들과 총독들, 그리고 왕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유다인들을 도왔습니다. 그들도 모르드개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에스더 9:3 · 두루새김

모르드개의 힘이 커지고 있다는 소문이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지방 관리들은 중앙 권력의 변화를 알고 있었고, 그 변화에 맞추어 행동했습니다.

왕의 인장 반지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관리들의 태도가 바뀝니다. 그들이 유다인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유다인을 존중하거나 유다인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사건 속에 서로 다른 인간의 계산과 선택이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 반복되는 뜻밖의 문장

에스더 9:5–10 본문 →

5절부터 본문은 전투의 결과를 기록합니다.

유다인들은 모든 원수를 칼로 쳐서 죽이고 없앴습니다. 자기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자기들 뜻대로 다루었습니다.에스더 9:5 · 두루새김

앞 장의 명령은 자기 목숨을 지키도록 허락하는 내용이었고(8:11), 이 장도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맞섰다고 설명합니다(9:2). 따라서 이야기 전체는 이 전투를 모두 죽임당할 위협에 맞선 생존 투쟁으로 제시합니다.

6–10절에서 수산 성채의 유다인들은 500명과 하만의 열 아들을 죽입니다. 하만의 열 아들은 한 사람씩 이름이 기록됩니다. 수많은 사망자가 숫자로만 소개되는 가운데, 하만의 아들들만은 이름이 남습니다.

이들은 단지 이름 없는 적들이 아니라, 유다인을 없애려 했던 하만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만 개인의 몰락에 이어 그의 아들들도 죽었다는 사실을 본문은 특별히 드러냅니다.

그런데 10절 끝에 예상 밖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곧 함므다다의 아들이며 유다인들의 원수인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습니다.에스더 9:10 · 두루새김

15절에서 수산의 추가 전투를 설명한 뒤에도, 16절에서 제국의 다른 지방에서 벌어진 전투를 설명한 뒤에도 같은 문장이 반복됩니다. 본문은 유다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밝힌 직후,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앞 장에서 유다인들은 자기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도록 허락받았습니다(8:11). 하만의 원래 명령에도 유다인의 재산을 빼앗으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3:13).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갖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반복을 통해 유다인들의 행동을 재산을 얻기 위한 약탈과 구별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하만은 계속해서 「아각 사람」으로 불립니다. 사무엘상 15장에는 아말렉 왕 아각이 등장합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아각과 좋은 가축들을 남겨 두었고, 특히 전리품 문제 때문에 사무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삼상 15:8–23). 에스더서는 모르드개를 베냐민 사람 기스의 자손으로 소개합니다(에 2:5). 사울 역시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이었습니다(삼상 9:1–2). 따라서 에스더서의 아각 사람 하만과 베냐민 사람 모르드개의 대립을 사울과 아각의 오래된 이야기와 연결하여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원수들의 재산을 가져가지 않는 행동은 사울이 저질렀던 잘못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다만 에스더서가 하만의 실제 혈통을 아말렉 왕 아각에게까지 증명하거나, 유다인들이 사울의 실패를 바로잡으려 했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이름과 행동의 대응을 바탕으로, 성경의 이야기들을 서로 연결하여 읽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에스더는 왜 하루를 더 요청했는가

에스더 9:11–16 본문 →

에스더 9장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은 12–13절에서 생깁니다.

왕이 에스더 왕후에게 말했습니다. 「수산 성채에서 유다인들이 500명과 하만의 열 아들을 죽여 없앴구나. 내 나머지 지방들에서는 무슨 일을 했겠느냐?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들어주겠다. 더 부탁할 일이 무엇이냐? 그것도 해 주겠다.」에스더 9:12 · 두루새김

에스더가 처음 왕에게 민족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도 왕은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에 7:2–3). 당시 에스더는 죽음의 위협 앞에 있었습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또 하나의 요청을 합니다.

에스더가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수산의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의 법에 따라 행동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또 하만의 열 아들의 시신을 나무 기둥에 매달게 해 주십시오.」에스더 9:13 · 두루새김

그러나 본문은 에스더가 하루를 더 요청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15절에서 수산의 유다인들은 이튿날에도 모여 300명을 더 죽입니다. 16절에서는 다른 지방의 유다인들이 자기 목숨을 지켜 원수들에게서 벗어나 쉴 수 있게 되었으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사람 7만 5천 명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그 숫자가 나타내는 죽음의 규모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본문은 승리자의 관점에서 그 사건을 기록하지만, 죽임당한 사람들의 개별 사정이나 피해 상황을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서술만으로 모든 죽음의 구체적인 상황을 되살려 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앞 장의 명령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에 관한 폭력까지 허락했지만(8:11), 9장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실제로 죽임당했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 일하고 계신가

에스더 9장은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이 승리한 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에 개입하셨다고 선언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하만은 유다인을 없앨 계획을 세웠고, 그 날짜까지 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해치려던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그 사건을 후손들에게 기억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전을 이스라엘의 신앙 안에서 읽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역사의 강한 권력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도록 내버려지지 않았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에스더서의 사건 전체를 신앙적으로 읽는 해석입니다. 9장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전투 행위를 승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읽는 것과 인간이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승인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첫째, 수산에 아직 유다인을 공격하려는 세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추가 방어가 필요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 유다인의 생존 투쟁이라는 점이 이러한 해석의 근거입니다. 둘째, 이미 승리한 뒤에 적대 세력을 더욱 철저히 없애려는 요청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첫날 500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보고된 뒤에도 에스더가 추가 행동을 요청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수산에 남아 있던 적들의 규모나 새로운 공격 계획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만의 열 아들은 이미 10절에서 죽었습니다. 두루새김은 13절과 14절에서 「시신」이라고 밝혀 옮겼습니다. 따라서 14절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새로 처형한 장면이 아니라, 죽은 뒤 그 시신을 공개적으로 매단 일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시신을 공개적으로 매다는 행위는 패배와 수치를 드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신명기 21:22–23에서도 나무에 매달린 시신에 대한 규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에스더가 특별히 어떤 목적에서 이 공개적인 행위를 요청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전투의 다음 날이 기념일이 되다

에스더 9:17–19 본문 →

이제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 일은 아달월 13일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14일에 쉬며 그날을 잔치를 열고 기뻐하는 날로 삼았습니다.에스더 9:17 · 두루새김

16절에서 이미 유다인들은 「원수들에게서 벗어나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17절의 「쉬며」와 18절의 「쉬었습니다」에도 같은 뜻이 이어집니다. 원문에서는 이 자리에 같은 어근이 반복됩니다.

유다인들에게 쉼은 전쟁을 멈춘 뒤 찾아오는 휴식인 동시에, 자기들을 죽이려던 원수들로부터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부림절의 기쁨은 원수들을 죽인 날이 아니라, 싸움이 끝나고 쉴 수 있게 된 날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수산 밖의 유다인들은 아달월 13일에 싸우고 14일에 쉬었습니다. 수산의 유다인들은 14일까지 싸우고 15일에 쉬었습니다. 이 차이는 이후 두 날을 함께 기념하는 부림절 규정의 배경이 됩니다.

여기서 본문의 시선은 승리한 전투에서 그 승리 이후의 삶으로 옮겨갑니다.

죽음의 위협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끝없이 원수를 추격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시 함께 모여 음식을 먹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왜 음식을 나누었는가

에스더 9:20–23 본문 →

모르드개는 이 사건을 기록하여 제국의 모든 유다인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의 목적은 매년 아달월 14일과 15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면 예상 밖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날들은 유다인들이 원수들에게서 벗어나 쉬게 된 날들이었습니다. 그달에는 슬픔이 기쁨으로, 통곡이 축제로 바뀌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날들을 잔치를 열고 기뻐하는 날로 삼고, 서로 음식을 보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도록 했습니다.에스더 9:22 · 두루새김

하나는 서로 음식을 보내는 일입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주고받는 행위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일입니다. 이것은 잔치에 필요한 것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까지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쁨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즐거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기쁨을 누리기 어려운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유다인들은 적의 재산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절기를 지킬 때에는 자기들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눕니다. 물론 본문이 두 행동 사이의 원인과 결과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순서는 재산을 빼앗지 않는 행동에서 음식을 나누는 행동으로 독자의 시선을 옮겨 놓습니다.

부림절은 원수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 무엇을 나누는지를 보여 주는 날이 됩니다.

23절은 유다인들이 모르드개의 편지를 받아들였다고 말합니다. 모르드개가 기록하여 보내고, 유다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함께 나타납니다.

왜 절기의 이름을 하만이 던진 제비에서 가져왔는가

에스더 9:24–28 본문 →

24절부터 본문은 이미 지나간 사건을 다시 돌아봅니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므다다의 아들이며 모든 유다인의 원수인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들을 없애려고 계획을 꾸몄습니다. 그는 유다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없애려고 푸르, 곧 제비를 뽑았습니다.에스더 9:24 · 두루새김

부림절이라는 이름은 에스더의 이름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의 이름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유다인을 없애려고 하만이 뽑은 제비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히브리어 푸르(⁨פּוּר⁩)는 본문에서 제비를 가리키며, 푸림은 그 복수형입니다. 그는 유다인들을 없앨 날짜를 정하려 했습니다(에 3:7).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그의 계획 아래 놓여 있다고 여긴 셈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 제비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년 그 이름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부림절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기억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의 기억은 하만이 유다인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원수가 자신들의 마지막 날로 정해 놓았던 날짜를,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억 속에 다시 기록한 것입니다.

25절은 이 역전을 다시 요약하면서 하만의 악한 계획이 하만 자신에게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만 25절은 사건의 경과를 엄격한 시간 순서대로 다시 서술하지 않습니다. 하만의 계획과 그 결과를 요약하여 연결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기로 하는 사람들

27–28절에서 본문은 다시 미래를 향합니다.

유다인들은 해마다 기록된 대로 정해진 때에 이 두 날을 지키기로 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자기들과 후손들, 그리고 자기들에게 합류하는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지켜야 할 일이었습니다.에스더 9:27 · 두루새김

여기서 유다인 공동체는 단지 한 번의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건을 직접 겪지 않은 후손들과 새로 합류하는 사람들도 같은 기억을 이어받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의미는 공동체 안에 남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들은 이러한 기억을 전하는 일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월절 규정에서도 후손들이 절기의 의미를 물을 때, 조상들이 경험한 구원을 이야기해 주도록 합니다(출 12:26–27). 에스더서의 부림절도 이러한 구약의 기억을 전하는 큰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월절은 출애굽이라는 구원 사건을 기념하고, 부림절은 페르시아 제국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의 생존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배경이 다릅니다. 에스더서는 이 차이를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공동체의 기억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날들은 대대로 모든 집안과 지방과 도시에서 기억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유다인들 가운데서 부림절이 사라져서는 안 되며, 그 후손들도 이 날들을 잊어서는 안 되었습니다.에스더 9:28 · 두루새김

그들의 생존을 위협했던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 위협에서 벗어난 기억은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사람을 없애려던 계획이 도리어 그 사람들의 기억을 더욱 오래 남게 만든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자」라는 번역에는 원문상 여지가 있습니다. 해당 히브리어의 여성 단수 접미사는 에스더를 가리킬 수도 있고, 앞서 언급된 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후자로 읽으면 그 일이 왕 앞에 알려졌을 때라는 의미가 됩니다. 두 읽기 모두 이야기의 중심 결과, 곧 하만의 계획이 자신에게 돌아갔다는 점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에스더의 마지막 명령: 기쁨을 문서로 확정하다

에스더 9:29–32 본문 →

에스더 9장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시 편지가 등장합니다.

아비하일의 딸 에스더 왕후와 유다인 모르드개는 자기들의 모든 권위를 담아 이 두 번째 부림절 편지를 써서 그 내용을 확정했습니다.에스더 9:29 · 두루새김

앞서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사람은 모르드개였습니다(9:20). 그러나 이번에는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함께 부림절 편지의 내용을 확정합니다.

에스더의 명령으로 부림절에 관한 이 규정들이 확정되었고, 이 일은 책에 기록되었습니다.에스더 9:32 · 두루새김

처음 에스더는 왕궁으로 들어간 한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는 모르드개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민족을 숨겼습니다(에 2:10). 왕 앞에 나아가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책은 「에스더의 명령」을 말합니다.

처음에 그는 왕의 명령과 왕궁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민족이 대대로 지킬 절기의 규정을 확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민족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했던 선택이, 마침내 공동체의 기억을 형성하는 책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30절은 이 편지에 「평안과 진실의 말」이 담겨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평안」은 단순히 충돌이 없다는 뜻을 넘어 무사하고 온전한 삶을 떠올리게 하며, 「진실」은 참됨과 믿을 만함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편지의 성격을 표현하는 흔히 쓰이는 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기록으로 시작한 장이 평안의 말을 담은 편지로 끝나가는 것입니다.

그 편지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에스더 왕후가 정해 준 날짜에 부림절을 지키도록 확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부르짖는 일을 자신들과 후손들이 지키도록 정했듯이, 부림절을 지키는 일도 확정한 것입니다.에스더 9:31 · 두루새김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알았을 때, 제국의 여러 지방에서는 금식하고 울며 부르짖는 일이 있었습니다(에 4:3). 에스더도 수산의 유다인들에게 함께 금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4:16).

그때 그들은 자신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사람들은 잔치와 기쁨의 날을 확정하고 있습니다.

금식과 잔치, 부르짖음과 기쁨이 한 이야기 안에 놓입니다.

마지막 32절은 「이 일은 책에 기록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서를 가리키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문서로 보존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문서가 작성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서가 작성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구원을 잊지 않기 위해 문서가 작성됩니다.

죽음의 명령에서 생존의 명령으로, 그리고 기억의 규정으로 이어지는 변화입니다.

조금 더 깊이

31절의 히브리어 문장 구조는 간결하지 않아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는 유다인들이 앞서 금식하며 부르짖는 일을 스스로 정한 것처럼 부림절도 정했다는 읽기입니다. 두루새김은 「정했듯이」라고 옮겨 이 읽기를 따릅니다. 다른 하나는 금식하며 부르짖는 일에 관한 규정도 함께 확정했다는 읽기입니다. 이 구절만으로 특정한 금식일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지켜졌는지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의 의미: 기억해야 할 것은 승리뿐인가

에스더 9:1–32 본문 →

부림절의 규정은 기억을 기쁨과 나눔으로 연결합니다. 고난을 잊어버리면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를 잊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난만을 기억하면 공동체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끊임없는 두려움과 적대감에 묶일 수도 있습니다.

한때 아달월 13일은 하만이 유다인들의 죽음을 위해 정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다음 날에는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습니다.

서로에게 음식을 보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전합니다. 직접 그 위기를 겪지 않은 자녀들에게도 왜 이 날을 지키는지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잊히지 않도록 책에 기록합니다.

한 사람이 제비를 뽑아 정했던 죽음의 날이, 한 민족이 대대로 기억하는 기쁨의 날이 되었습니다.

에스더 9장은 그날의 전투가 아니라, 그날 이후에도 계속 차려질 잔치상을 남겨 놓으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