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5–18장 · 바다를 건넌 뒤 광야

바다의 노래와 광야의 믿음

이스라엘은 바다를 건넌 뒤 여호와야훼를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노래했고, 그분이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사흘 뒤, 같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지 못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바다에서는 물이 갈라져 이스라엘을 살렸습니다. 마라에서는 물이 있었지만 마실 수 없어 생존을 위협했습니다. 엘림에서는 마침내 샘 열두 개와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물이 등장하지만, 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야훼와 그분을 알아 가는 백성의 모습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915장 본문 읽기 →

구원의 사건이 백성의 노래가 되다

출애굽기 15:1–3 본문 →

출애굽기 14장의 마지막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를 경외하고 여호와야훼와 모세를 믿었습니다(14:31). 15장은 그 믿음이 노래로 표현되는 장면입니다.

그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야훼께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여호와야훼께 노래하겠습니다. 그분께서 크게 위엄을 떨치셨기 때문입니다. 말과 그 위에 탄 사람을 바다에 내던지셨습니다.」출애굽기 15:1 · 두루새김

공동체 전체가 부르는 노래를 한 사람의 고백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바다를 건넜지만, 그 구원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일이었습니다.

「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십니다. 그분께서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찬양하겠습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높이겠습니다.」출애굽기 15:2 · 두루새김

이 고백에는 두 가지 시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조상들에게서 이어져 온 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자신을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알리셨던 일이 실제 구원의 사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노래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고백도 함께 나옵니다.

조상들이 알고 있던 하나님이 이제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전쟁의 용사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야훼입니다.」출애굽기 15:3 · 두루새김

이집트의 강력한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은 스스로 싸워 승리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다를 건너는 동안 실제로 싸우신 분은 여호와야훼이셨습니다. 출애굽기 14:14에서 모세가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말한 일이 여기서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고대 세계에서 신을 전쟁의 용사로 묘사하는 말은 낯설지 않았지만, 이 노래에서는 누가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가 중요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백성을 노예로 붙잡아 두었던 권력과, 탈출한 백성을 다시 추격해 온 군대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노래가 여호와야훼를 전쟁의 용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마음대로 정당화할 권한을 주는 선언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었던 백성을 위해 여호와야훼가 직접 행동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조금 더 깊이

훗날 요한계시록 15:3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함께 언급합니다. 이는 출애굽의 노래가 후대의 구원과 승리를 찬양하는 말로 다시 사용되는 사례입니다. 출애굽기 15장 자체가 직접 예수님의 사건을 예언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구원을 경험한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주제가 성경 전체에서 이어진다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파라오가 내세운 손과 여호와야훼의 오른손

출애굽기 15:4–10 본문 →

노래는 이제 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파라오의 병거와 군대가 바다에 내던져지고, 파라오가 골라 뽑은 지휘관들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5절은 그들이 「돌처럼」 가라앉았다고 묘사합니다.

고대 전쟁에서 병거는 강력한 군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집트가 동원한 병거와 골라 뽑은 병력이 바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은, 파라오가 자랑하던 힘이 얼마나 무력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오른손은 힘이 넘쳐 위엄이 있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오른손은 원수를 산산이 부숩니다.」출애굽기 15:6 · 두루새김

고대 히브리 시에서 오른손은 힘과 행동 능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이 노래에서는 「주님의 오른손」이라는 표현을 두 번 반복하여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9절에 이르면 갑자기 원수 자신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원수가 말했습니다. 『내가 뒤쫓겠다. 따라잡겠다. 빼앗은 것을 나누겠다. 그들로 내 욕심을 채우겠다. 칼을 뽑겠다. 내 손으로 그들을 멸망시키겠다.』」출애굽기 15:9 · 두루새김

그 말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원수는 자신의 계획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그 모든 계획이 무너집니다.

「주님께서 바람을 불어 보내시자 바다가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들은 거센 물속에 납처럼 가라앉았습니다.」출애굽기 15:10 · 두루새김

원수는 여러 행동을 계획하고 선언했지만, 여호와야훼의 행동은 한 번의 바람으로 표현됩니다.

원수는 「내 손으로 그들을 멸망시키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건을 결정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오른손입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콧김」에 물이 쌓여 올라 길이 열립니다. 10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바람을 불어 보내시자 물이 돌아와 이집트 군대를 덮습니다. 같은 바다가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길이 되고 이집트 군대에게는 심판의 장소가 됩니다. 이는 바다가 본래 어느 한쪽을 위해 존재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그 바다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은 대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조금 더 깊이

창세기 1:9–10에서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으시고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14:21–22에서도 여호와야훼는 바다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걷게 하셨습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물을 질서 있게 다스리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에서도 물을 다스리십니다. 시편 114:3–8은 바다가 물러나는 일과 바위가 물의 샘으로 바뀌는 일을 함께 노래합니다. 자연을 다스려 자기 백성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출애굽기 14–15장과 주제로 이어집니다.

「누가 주님과 같습니까?」 — 힘에서 거룩함으로

출애굽기 15:11–13 본문 →

「여호와야훼여, 신들 가운데 누가 주님과 같습니까? 거룩함으로 위엄이 있으시고, 찬양을 받으시는 두려운 분이시며, 놀라운 일을 하시는 주님과 누가 같습니까?」출애굽기 15:11 · 두루새김

지금까지의 노래가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면, 11절은 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이것은 답을 모르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야훼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질문의 형식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살던 세계에는 여러 신을 숭배하는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신들 가운데」라는 표현은 그러한 종교적 세계를 배경으로 여호와야훼의 유일한 위대함을 선언하는 시적 언어입니다. 이것만으로 다른 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완성된 철학적 주장을 읽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질문은 출애굽기 12:12에서 여호와야훼가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이집트가 의지하던 권력과 신들을 중심으로 한 질서가 여호와야훼의 행동 앞에서 무너졌다는 것이 출애굽 이야기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11절은 여호와야훼를 단지 가장 강한 분이라고만 부르지 않습니다. 「거룩함으로 위엄이 있으시고」라고 노래합니다. 거룩함은 여기서 단순히 도덕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다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며, 그분의 존재와 행동이 두려움과 공경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3절은 그 거룩하고 두려우신 분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주님께서는 구해 내신 백성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끄셨습니다. 주님의 힘으로 그들을 주님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출애굽기 15:13 · 두루새김

원수를 산산이 부수던 힘이 이제 백성을 이끄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한결같은 사랑」은 단순한 애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관계 속에서 보이는 신실함과 변함없는 사랑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됩니다. 여호와야훼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백성을 구하셨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관계를 변함없이 지키시기에 그들을 구하시고 이끄십니다.

앞부분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백성을 위협하는 세력을 어떻게 무너뜨리셨는지 노래했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구원하신 백성을 어디로 데려가시는지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적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하신 백성을 자신이 머무시는 곳으로 이끄시는 일까지 포함합니다.

바다 건너편을 내다보는 노래

출애굽기 15:14–18 본문 →

여기서 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막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노래에는 블레셋, 에돔, 모압, 가나안의 주민들이 등장합니다. 이 민족들의 이름은 출애굽 이야기가 어느 곳을 향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세계가 노래 속에 미리 나타납니다.

이미 일어난 일처럼 묘사하는 구절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내다보는 구절이 섞여 있습니다. 이것을 모든 사건이 노래를 부를 당시 이미 일어났다는 시간 순서의 기록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는 바다에서 확인한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바탕으로 앞날을 확신에 차서 그립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그들에게 닥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백성이 지나갈 때까지, 주님께서 얻으신 백성이 지나갈 때까지, 주님의 강한 팔 앞에서 그들은 돌처럼 잠잠할 것입니다.」출애굽기 15:16 · 두루새김

앞서 5절에서 이집트의 군대는 「돌처럼」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같은 돌의 이미지가 다른 장면에 사용됩니다. 바다에서는 원수들이 돌처럼 가라앉았다면, 앞으로의 길에서는 민족들이 돌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또한 16절에서는 「지나갈 때까지」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행동은 여기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가 길을 열어 주시면 그들은 그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이어서 노래는 마침내 목적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데려다가 주님의 소유인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여, 그곳은 주님께서 머무시려고 마련하신 곳입니다. 주님, 주님의 두 손으로 세우신 성소입니다.」출애굽기 15:17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움직이는 백성이었습니다. 이집트를 떠났고, 바다를 건넜으며, 앞으로도 광야를 걸어야 합니다.

사람은 이동하지만, 나무는 한곳에 뿌리를 내립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살았고, 이제는 아직 머물 곳을 얻지 못한 채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 백성이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심으실 것입니다」라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산은 단순히 백성의 소유지가 아닙니다. 「주님의 소유인 산」이며, 여호와야훼가 머무시려고 마련하신 곳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백성을 데려다가 자신이 머무시는 곳에 살게 하려 하십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단지 이집트의 노예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6:7에서 주어진 약속, 곧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말씀의 방향과도 일치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영원히, 끝없이 왕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출애굽기 15:18 · 두루새김

노래의 시작에는 파라오의 말과 병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파라오가 아니라 왕으로 다스리시는 여호와야훼가 남습니다.

출애굽은 한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게 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곳이 정확히 어느 산을 가리키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장차 약속의 땅에 세워질 성소, 특히 후대에 예루살렘의 시온과 성전을 중심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내산과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강조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이 구절만으로 특정 장소와 건축 시점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미리암과 여자들의 노래 —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는 구원

출애굽기 15:19–21 본문 →

긴 노래가 끝나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다시 등장합니다.

19절은 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짧게 요약합니다. 파라오의 군대가 물에 잠기는 동안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걸었습니다.

아론의 누이인 예언자 미리암이 손에 손북을 들었습니다. 여자들은 모두 손북을 치고 춤을 추며 미리암을 따라 나왔습니다.출애굽기 15:20 · 두루새김

미리암은 이곳에서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본문은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예언 활동을 해 왔는지 설명하지 않지만, 그녀가 예언자로 인정되는 인물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노래로 응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노래하십시오. 그분께서 크게 위엄을 떨치셨기 때문입니다. 말과 그 위에 탄 사람을 바다에 내던지셨습니다.」출애굽기 15:21 · 두루새김

15장의 노래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미리암과 여자들의 찬양으로 다시 울려 퍼집니다. 모세가 사건의 의미를 노래했다면, 미리암은 다른 이들을 이끌고 그 노래에 참여합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함께 기억하고 소리 내어 선포합니다.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가 계속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광야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의 「미리암이 그들에게 노래로 응답했습니다」(⁨עָנָה⁩)에서 히브리어의 동사는 노래나 말에서 서로 주고받는 응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미리암이 앞서 부른 찬양에 노래로 답하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이것은 남녀가 일정한 순서로 노래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구체적인 음악 형식까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하던 백성이 물을 달라고 불평하다

출애굽기 15:22–24 본문 →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갈대 바다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수르 광야로 나아가 사흘 동안 걸었지만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출애굽기 15:22 · 두루새김

앞에서는 너무 많은 물이 위험이었습니다. 바다가 앞을 가로막았고, 그 물은 이집트 군대를 덮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물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흘 동안 광야를 걸었다는 설명은 이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 마실 물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마라에 도착했지만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쓰다’라는 뜻의 마라라고 불렀습니다.출애굽기 15:23 · 두루새김

물을 보았을 때의 기대에 관해 원고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이 보였을 때 사람들은 마침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은 마실 수 없었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마셔야 합니까?」출애굽기 15:24 · 두루새김

이 말은 1절의 「나는 여호와야훼께 노래하겠습니다」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앞에서는 구원의 기쁨이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갈증과 불평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요구하는 것이 모든 고통을 불평 없이 견디는 태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갈증은 실제였고, 하나님은 그 갈증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바다를 건넌 경험이 그들에게 앞으로 아무런 어려움도 없으리라는 보장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바다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광야에서는 그 능력을 기억하며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마라」라는 지명은 히브리어에서 쓴맛을 나타내는 말과 연결됩니다. 시편 106:12–13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믿고 찬양했으나 곧 그분의 행하신 일을 잊었다고 돌아봅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찬양 직후에 불평이 등장하는 장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결입니다.

쓴물을 바꾸신 하나님,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다

출애굽기 15:25–26 본문 →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하자 모세는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나무 하나를 가리켜 주시자,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물이 달아졌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백성에게 지켜야 할 규정과 법을 정해 주고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출애굽기 15:25 · 두루새김

이야기의 중심은 나무 자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그것을 가리켜 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물이 달아진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광야의 첫 여정에서 여호와야훼가 백성에게 지켜야 할 규정과 법을 정해 주셨다고 합니다.

물의 문제를 해결하신 다음, 왜 갑자기 규정과 시험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려 하시는 것이 단지 물을 얻는 방법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는 이스라엘이 살아남기 위해 여호와야훼의 행동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마라에서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인 나 여호와야훼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내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모든 규정을 지키면, 내가 이집트에 내린 질병 가운데 어느 것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야훼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5:26 · 두루새김

여기에는 「말을 잘 듣고」, 「내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라는 표현으로 듣는 일이 거듭 강조됩니다. 단지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씀을 삶에서 따르는 일을 가리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야훼이기 때문이다.」라는 선언을 마라에서 물이 마실 수 있게 된 사건과 떼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야훼는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마실 수 없던 물을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 내리신 재앙과 질병을 언급하시며 자신이 그들을 치료하시는 분임을 알리십니다.

26절의 약속은 이스라엘이 순종하면 앞으로 질병에 전혀 걸리지 않는다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의학적 보증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본문의 표현은 특별히 「이집트에 내린 질병」을 가리키며,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와 순종을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또한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여호와야훼가 백성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어 괴롭히셨다는 의미로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6:4에서도 여호와야훼는 만나를 주시면서 백성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시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의 시험과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주시는 일은 서로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이지만, 그 요구에 앞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순종하여 바다를 건널 자격을 얻은 백성이 아닙니다. 먼저 구원받았고, 이제 구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 나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물론 25절은 어떤 규정과 법이 구체적으로 주어졌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의 로페에카(⁨רָפָא⁩)는 「너를 치료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두루새김은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풀어 「너희를 치료하는」이라고 옮겼습니다.

엘림 — 마침내 물가에 진을 치다

출애굽기 15:27 본문 →

15장의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도 매우 조용합니다.

그들은 엘림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샘 12개와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출애굽기 15:27 · 두루새김

22절에서는 사흘 동안 걸어도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23절에서는 물이 있어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27절에서는 물이 있는 곳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림이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광야로 들어가고, 이번에는 먹을 것을 두고 불평하게 됩니다(16:2–3).

조금 더 깊이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나,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 집안의 일흔 명(출애굽기 1:5)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상징적 연결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숫자의 뜻을 하나로 확정하기보다는 풍성한 물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출애굽기 15장이 보여 주는 구원의 깊이

출애굽기 15:1–27 본문 →

여호와야훼는 백성을 억압하는 힘에서 구해 내시는 분이시며, 구원하신 백성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이 두 행동의 목적은 백성이 마침내 그분이 머무시는 곳에 이르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구해 내시고, 이끄시며, 자신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앞으로도 광야를 걸어야 하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를 지나 엘림에 이른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새롭게 경험했습니다. 바다를 건너게 하신 여호와야훼가 광야에서도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샘 열두 개가 물을 솟게 하고,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서 있는 곳.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

바다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머물러 물을 마실 자리도 마련하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