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2–14장 · 유월절과 떠남

하나님은 왜 막다른 바닷가로 인도하셨는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탈출했습니다. 파라오가 마침내 그들을 내보냈고, 여호와야훼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은 이상한 곳에서 멈춥니다.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다가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명령하신 분이 바로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자신의 백성을 그런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출애굽기 14장은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다가 갈라지는 순간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군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백성과 그들 앞에서 하시는 모세의 말, 그리고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사이로 자리를 옮기는 구름 기둥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출애굽기 14장은 단지 바다가 갈라진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백성이 자신들 앞에서 일하시는 여호와야훼를 새롭게 알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1014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은 일부러 길을 돌아가게 하셨다

출애굽기 14:1–4 본문 →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이동하던 방향을 바꾸어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되돌아가 피 하히롯 앞에 진을 쳐라. 그곳은 믹돌과 바다 사이, 바알 츠폰 앞이다. 너희는 바알 츠폰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쳐야 한다.』」출애굽기 14:2 · 두루새김

이 지명들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어느 장소에 진을 쳤는지를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를 오늘날의 지리와 일치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믹돌은 일반적으로 망대나 요새와 관련된 지명으로 이해되며, 바알 츠폰이라는 이름은 고대 근동의 바알 신앙과 관련하여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의 지명들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장소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출애굽기 13:18은 이스라엘이 갈대 바다를 향하는 길로 인도받았다고 말하지만, 14장에서는 주로 「바다」라고 부릅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위치가 파라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입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을 두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광야에 갇혔다.』」출애굽기 14:3 · 두루새김

3절의 파라오가 내릴 판단과 4절 마지막의 「이스라엘 자손은 그대로 했습니다」라는 서술이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파라오에게는 어지럽게 헤매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이 실제로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스라엘도 파라오도 아직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여호와야훼께서 왜 그곳에 진을 치게 하셨는지에 관한 설명을 먼저 듣습니다.

「내가 파라오의 마음을 굳게 만들겠다. 그러면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을 것이다. 나는 파라오와 그의 온 군대를 통해 영광을 얻겠다. 그러면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대로 했습니다.출애굽기 14:4 · 두루새김

여기서 「영광을 얻겠다」는 표현은 여호와야훼가 부족한 명예를 사람들에게서 얻으셔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의 힘과 다스리심이 사건을 통해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닷가에 진을 치게 하신 명령은 단순히 이동 경로를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백성을 구하시는 일이 파라오와 이집트 군대 앞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시작입니다.

다만 이러한 설명을 근거로 우리가 겪는 모든 막다른 상황을 하나님이 특별한 기적을 준비하기 위해 일부러 만드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상황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목적을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해방된 백성을 여전히 자기 노동력으로 보았다

출애굽기 14:5–9 본문 →

이스라엘이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후회합니다.

백성이 달아났다는 소식이 이집트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파라오와 신하들은 백성에 대한 마음을 바꾸어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스라엘을 보내 주어 우리에게 종살이하지 않게 하다니!」출애굽기 14:5 · 두루새김

그는 그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떠났다는 사실을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더 이상 종살이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습니다. 이스라엘이 떠난 것을 사람들의 해방이 아니라 자기들의 손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셨지만, 파라오는 그들을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붙들어 둘 사람들로 취급했습니다. 마지막 재앙을 겪은 뒤에는 그들을 내보냈으나, 재앙의 긴박함에서 벗어나자 그 결정이 가져온 손실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병거를 준비하여 뒤쫓으러 나섭니다.

그는 골라 뽑은 병거 600대와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이끌고 갔습니다. 모든 병거에는 지휘관들이 있었습니다.출애굽기 14:7 · 두루새김

병거는 고대 전쟁에서 중요한 군사 장비였습니다. 걸어서 싸우는 병사들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고, 조직된 병거 부대는 넓은 지형에서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파라오가 적은 수의 병사만 보내어 달아난 사람들을 잡으려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군사력을 동원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마음을 굳게 만드시자,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출애굽기 14:8 · 두루새김

「당당하게」는 글자 그대로는 「높이 든 손으로」라는 뜻이며, 드러내 놓고 자신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해방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파라오는 아직 그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파라오의 병거가 그들을 따라잡습니다.

한쪽은 훈련된 군대와 병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길을 떠난 백성입니다. 앞 장의 번역은 이스라엘이 무장한 채 이집트를 나왔다고 전하지만, 이들이 파라오의 병거 부대를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곧 이스라엘 자신도 그 차이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해방된 백성이 다시 이집트의 종살이를 원하다

출애굽기 14:10–12 본문 →

이스라엘이 보니, 자신들을 뒤쫓아 오는 이집트 군대가 있습니다.

파라오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보니, 이집트 군대가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습니다.출애굽기 14:10 · 두루새김

여기서 그들이 두려워한다는 사실 자체를 믿음이 없다는 증거로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병거와 군대가 다가오고 있고, 그들은 바닷가에 진을 친 상태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위험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은 뒤 모세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이집트에는 무덤이 없어서 우리를 광야에서 죽으라고 데려오셨습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시다니,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출애굽기 14:11 · 두루새김

이 말에는 깊은 슬픔과 원망을 담은 비꼼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행동을 해방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끄는 결정으로 해석합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우리를 내버려 두십시오. 이집트 사람들에게 종살이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종살이하는 편이 우리에게는 낫습니다.」출애굽기 14: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고통받았고,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출애굽기 2:23–25). 본문은 이들의 마음속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눈앞에 닥친 죽음의 위협과 과거의 종살이를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위험보다 이미 알고 있는 이집트의 삶이 더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노예 생활이 실제로 좋은 삶이었다는 판단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앞 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전쟁을 보면 마음을 바꾸어 이집트로 돌아갈까 염려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13:17). 이제 그 우려가 실제로 드러납니다.

파라오가 더 이상 그들을 붙들어 두지 못한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위기 앞에서도 파라오에게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그들의 몸은 이집트 밖에 있지만, 두려움 속에서 판단하는 방식은 여전히 이집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 백성에게 모세가 대답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집트는 죽은 사람을 위한 무덤과 장례 관습이 발달했던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말에서 중요한 것은 이집트의 장례 문화 자체가 아니라, 무덤이 없는 곳을 찾아 자신들을 죽게 만들었느냐는 비난입니다.

「자리를 지키고 서서」 —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출애굽기 14:13–14 본문 →

모세는 백성에게 세 가지를 말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리를 지키고 서서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여러분을 구해 주시는 것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본 이집트 사람들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출애굽기 14:13 · 두루새김

이 말씀의 중심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적을 물리치라는 요구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지 바라보라는 명령입니다. 실제로 다가오는 이집트 군대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 내시는 일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잠잠히 있으십시오.」출애굽기 14:14 · 두루새김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곧바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움직여야 합니까?

여기서 잠잠히 있으라는 말은 앞으로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이 전쟁을 해결할 것인가에 관한 선언입니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바다 한가운데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다를 갈라 길을 만드시고 이집트 군대를 물리치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걸어야 하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바다를 갈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두루새김이 「구해 주시는 것」으로 풀어 옮긴 히브리어 예슈아(⁨יְשׁוּעָה⁩)는 위험이나 억압에서 건져 내는 구원과 승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14절의 「잠잠히 있으십시오」는 히브리어 하라시(⁨חָרַשׁ⁩)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상태를 나타내며, 문맥에 따라 잠잠할 것이라는 예고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백성의 두려움과 모세를 향한 항의가 바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말은 적을 보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는 백성에게, 스스로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려 하지 말고 여호와야훼께서 하실 일을 보라는 권고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왜 나에게 부르짖느냐?」 — 이제 움직여야 할 때

출애굽기 14:15–18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여라.」출애굽기 14:15 · 두루새김

지금 그들 앞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단순히 지금까지 가던 길을 계속 걸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갈라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마른 땅을 밟고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갈 것이다.」출애굽기 14: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눈에는 바다가 길의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말씀에서는 그 바다가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됩니다.

바다를 갈라 마른 땅을 드러내는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하실 일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스스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는 이집트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통해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며, 이집트 사람들은 그분이 여호와야훼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가 갈라지기 전에 먼저 다른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앞서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모세가 직접 부르짖었다는 서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왜 자신에게 부르짖느냐고 물으십니다. 모세가 기록되지 않은 기도를 드렸을 가능성도 있고, 백성의 부르짖음에 대해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에게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어느 쪽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가시던 하나님이 뒤로 가셨다

출애굽기 14:19–20 본문 →

이스라엘 진영 앞에서 가던 하나님의 천사가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갔습니다. 구름 기둥도 앞에서 뒤로 옮겨 가 섰습니다.출애굽기 14:19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앞에 나아가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뒤에서 다가오는 적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은 이집트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구름과 어둠이 있었고, 구름 기둥이 밤을 밝혔습니다. 밤새 두 진영은 서로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출애굽기 14:20 · 두루새김

여기서 구름 기둥의 이동은 하나님의 인도가 중단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나는 위치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앞에 길이 열리기 전에, 여호와야훼는 먼저 뒤에서 다가오는 군대를 막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다가 갈라지는 일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시간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시편 121편의 보호 이미지와 주제적으로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시편에서 여호와야훼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4장이 특별히 보여 주는 것은 그 보호가 실제 공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입니다.

바로 그 밤에 바다가 갈라집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문장은 구름과 어둠이 있었고 밤이 밝아졌다는 흐름을 지닙니다. 이를 구름이 이집트 쪽에는 어둠을 가져오고 이스라엘 쪽에는 빛을 비추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은 빛을 받은 대상이 어느 진영인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다르게 전하며, 어둠과 밤이 지나간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구름의 한쪽 면은 반드시 어둡고 다른 쪽 면은 반드시 밝았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다가 물러가고 마른 땅이 드러났다

출애굽기 14:21–22 본문 →

모세가 손을 바다 위로 뻗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밤새 동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게 하여 바닷물을 밀어내고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물이 갈라졌습니다.출애굽기 14:21 · 두루새김

이 구절은 하나님의 행동과 자연현상을 함께 기록합니다. 여기서 자연현상을 사용하신다는 사실과 그 사건이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을 구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앞서 메뚜기 재앙에서도 바람이 등장했습니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 메뚜기를 이집트로 실어 왔고, 방향이 바뀐 바람이 그것들을 몰아냈습니다(출애굽기 10:13, 19). 이제 바람은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너는 일에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마른 땅을 밟고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물은 그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 되었습니다.출애굽기 14:22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 물을 물러가게 하시자, 죽음의 경계처럼 보이던 바다 한가운데에 백성이 걸어갈 땅이 생겼습니다.

이때 물이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 되었다는 묘사는 이스라엘이 실제로 바다 한가운데의 길을 통과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위험의 공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길로 이집트 군대도 들어옵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물을 한곳으로 모으시고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바다의 물이 갈라지고 그 가운데 마른 땅이 나타납니다. 두 본문 사이에는 분명한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물이 물러나면서 사람이 살아가거나 지나갈 수 있는 땅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출애굽기 14장이 창세기 1장을 직접 인용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창조주 하나님이 물과 땅을 다스리신다는 성경의 큰 주제가 여기서 다시 드러난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 77:16–20에서는 물이 하나님 앞에서 떨고,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며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백성을 인도하신 일을 시로 돌아봅니다. 특히 시편 77:19는 하나님의 길이 바다 가운데 있었으나 그분의 발자취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노래합니다. 이사야 43:16–19에서도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는 여호와야훼의 행동이 다시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기억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하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신약에서는 고린도전서 10:1–2가 이스라엘이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를 통과한 사건을 언급하며, 그 경험을 모세와 관련된 세례의 이미지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바다 사건을 후대에 신학적으로 다시 읽은 분명한 연결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4장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스라엘이 실제로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군대에게 다시 붙잡힐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같은 바닷길이 누구에게는 구원이 되고 누구에게는 심판이 되었다

출애굽기 14:23–28 본문 →

파라오의 병거와 말을 탄 군인들이 이스라엘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간 곳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그 길 안에서는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진 것이 더 이상 승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24절은 새벽에 여호와야훼께서 불과 구름으로 된 기둥 속에서 이집트 진영을 내려다보시고 혼란에 빠뜨리셨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병거 바퀴를 떼어 내어 병거를 몰기 어렵게 하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달아나자!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위해 우리와 싸우신다.」출애굽기 14:25 · 두루새김

이집트 군대가 자랑하던 병거가 더 이상 그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지 못합니다.

뒤쫓던 사람들이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위해 우리와 싸우신다.」 이것은 앞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했던 말과 직접 연결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전했던 말이 이제 적군의 입에서 확인됩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구원의 결말을 보지 못했을 때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싸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군대가 자신들의 병거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들 스스로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고 계심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다시 손을 바다 위로 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손을 뻗자 날이 밝아 올 무렵 바다가 본래의 흐름으로 돌아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달아나려 하지만, 물이 돌아오면서 그들을 덮습니다.

물이 되돌아와 병거와 말을 탄 군인들을 덮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따라 바다로 들어온 파라오의 온 군대가 물에 덮여,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출애굽기 14:28 · 두루새김

여기서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는 말은 바다로 들어온 이집트 추격 부대에 관한 것입니다. 이 구절만으로 이집트 전체의 군대가 모두 사라졌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파라오 자신이 반드시 그 바다에서 죽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이 장에서 파라오 개인의 최후를 따로 서술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지만, 이집트 군인들에게는 죽음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마치 아무런 인간적 비극도 없는 통쾌한 승리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 죽음을 단순히 군대가 패배했다는 말로만 처리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 사람들을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의 죽음은 이야기 속에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새벽에」로 옮긴 원문의 표현은 밤이 끝나고 새벽이 가까워지는 파수 시간대를 가리킵니다. 25절은 원문과 고대 번역 전통에서 바퀴가 실제로 떨어져 나간 것으로 읽거나, 바퀴의 움직임이 방해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27절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달아나고 있었지만 그 앞에는 되돌아오는 바닷물이 있었다고 옮깁니다. 원문은 그들이 돌아오는 바다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그 방향에 대한 히브리어 문장은 이해가 쉽지 않아, 돌아오는 물을 피해 도망치려 했다는 의미로 옮기는 전통도 있습니다. 정확한 이동 방향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다가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가운데 이집트 군대가 그 물에 휩쓸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시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그들은 다시 보았다

출애굽기 14:29–31 본문 →

모세는 다시는 이집트 사람들을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을 봅니다.

그날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구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출애굽기 14:30 · 두루새김

모세가 13절에서 말한 것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추격자들을 다시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30절에서 이스라엘이 보는 것은 더 이상 자신들을 뒤쫓을 수 없는 죽은 군인들입니다.

이스라엘은 같은 적을 보지만, 그들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4:10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군대가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4:13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구해 주시는 것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14:30에서 그들은 죽어 있는 이집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14:31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드러내신 큰 힘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그들이 본 것은 적군의 위협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이 본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이루신 구원이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달라지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드러내신 큰 힘을 보았습니다. 백성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했고, 여호와야훼와 그분의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출애굽기 14:31 · 두루새김

10절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군대를 보고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31절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큰 힘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합니다. 같은 「두려워하다」라는 표현이지만 그 대상이 다릅니다.

여기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집트 군대를 두려워했던 것과 완전히 같은 감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드러내신 큰 힘을 본 백성이 그분의 힘을 인정하며 두려워하는 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보고 그분을 신뢰하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모세가 여호와야훼의 종으로서 전했던 말이 참되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됩니다.

앞서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자신들을 죽게 하려고 광야로 데려왔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전했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모세의 권위 역시 자신의 능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바다를 가를 능력을 스스로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셨고, 그는 그 말씀대로 손을 뻗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세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종으로서 맡은 역할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제 여호와야훼를 믿었다고 해서 앞으로 다시 두려워하거나 불평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다음 이야기들은 그들이 광야에서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불평하며, 여호와야훼를 신뢰하는 법을 배워 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5장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야훼께 노래합니다. 그 노래는 바다에서 하신 일을 찬양하며 여호와야훼의 구원과 승리를 선언합니다. 14장이 사건을 서술한다면, 15장은 그 사건을 경험한 백성이 노래로 응답하는 장면입니다. 시편 106:7–12도 이 사건을 돌아봅니다. 그 시편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반역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온전한 믿음으로 바다 앞에 서 있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 결과 백성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출애굽기 14:1–31 본문 →

이스라엘이 막다른 길에 이른 것은 여호와야훼의 인도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내보낸 분이 누구신지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파라오가 그들을 내보내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들을 다시 붙잡으려는 군대가 무너지는 사건을 통해 결정적으로 확인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믿게 된 것은 두려움을 스스로 모두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을 위해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장의 교훈을 현실을 보지 말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는 말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위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위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힘은 아니라는 사실을 구별하는 태도입니다.

밤새 동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다는 갈라졌고, 이스라엘은 그 한가운데로 걸어갔습니다. 뒤에서는 이집트의 병거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되자 물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섰을 때, 자신들을 뒤쫓던 이집트 사람들은 더 이상 병거를 몰고 다가오는 적군이 아니었습니다. 바닷가에는 죽은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서 드러내신 큰 힘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 않았고, 앞으로 광야를 걸어가야 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 수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아직 그들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집트의 추격은 끝났습니다.

아침이 밝았을 때 바다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이집트 군대에게 쫓기는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