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3–6장 · 성전 공사와 방해

하나님의 눈 아래에서

에스라 5장에는 두 종류의 권위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페르시아 제국의 권위입니다. 총독이 예루살렘에 찾아와 성전을 지을 권한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묻습니다. 건축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왕에게 편지를 보내 공식적인 판단을 요청합니다.

다른 하나는 첫 두 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자,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됩니다.

에스라 5장은 모든 방해가 사라져서 다시 일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제국의 감시 아래 있으면서도 건축을 계속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95장 본문 읽기 →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한 것은 왕의 명령이 아니었다

에스라 5:1–2 본문 →

예언자 학개와 잇도의 아들 스가랴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시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한 말이었습니다.에스라 5:1 · 두루새김

에스라 4장의 마지막에서 성전 공사는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5장은 공사 중단을 해제하는 왕의 명령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이 등장합니다.

무엇을 예언했는지보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언했는지를 먼저 강조합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도 제국의 명령과 허가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절은 그들을 다스리시는 분을 「이스라엘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살아가지만,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백성입니다.

학개서는 공사가 멈춘 이유를 더 깊이 보여준다

에스라 5:1은 예언의 내용을 자세히 전하지 않지만, 학개서와 스가랴서를 통해 그 말씀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성은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학개 1:2).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 집을 돌보는 동안 하나님의 집은 폐허로 남아 있는 현실을 지적하십니다(학개 1:4, 9).

에스라 4장은 외부의 방해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학개서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미루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압박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동시에 그 압박 속에서 공동체가 먼저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과 의지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예언은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했습니다.

성전이 폐허로 남아 있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개 1:13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전해집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어서 학개 1:14–15는 하나님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와 남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셨으며, 그들이 다리오 이 년째 여섯째 달 스물나흗날부터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나서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자들도 그들과 함께하며 도왔습니다.에스라 5:2 · 두루새김

예언자들도 그들과 함께했다

예언자들은 성전 건축을 명령한 뒤 멀리서 결과만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건축을 다시 시작한 지도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도왔습니다. 「도왔습니다」라는 표현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공동체를 격려하며 건축이 진행되도록 지원한 역할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새로운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성전 건축에 참여했던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도자로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공사가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지도자가 없어서 멈춘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단된 일을 다시 움직이게 한 출발점은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나 새로운 왕의 허가가 아니라, 이미 있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행동한 데 있었습니다.

총독이 나타나자 다시 묻게 되는 질문

에스라 5:3–5 본문 →

그때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이 성전을 짓고 이 벽을 완성하라고 명령했느냐?」에스라 5:3 · 두루새김

「강 건너편」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부에서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역을 가리키는 행정적 표현입니다. 닷드내는 그 지역의 총독으로 소개되므로, 유다에서 진행되는 건축 사업을 조사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명령했느냐」는 말은 단순히 누구의 제안을 받아 건축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건축을 수행할 공식적인 권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에스라 4장의 고발자들은 예루살렘이 반역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읍과 성벽의 재건을 문제 삼았습니다. 반면 에스라 5장의 닷드내는 우선 성전 건축의 허가 여부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닷드내가 처음부터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거짓 혐의를 꾸며 냈다는 증거는 이 장에 없습니다. 그는 누가 명령했는지 묻고, 건축 책임자들을 확인하며, 왕에게 보고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제국 관리가 수행하는 행정적 조사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제국의 조사

닷드내의 방문은 건축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던 역사를 경험한 공동체입니다. 다시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넓은 지역을 맡아 다스리는 총독이 직접 찾아와 허가를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의 장로들을 돌보고 계셨으므로, 관리들은 다리오에게 보고가 전해지고 이 일에 대한 답장이 올 때까지도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에스라 5:5 · 두루새김

두루새김의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의 장로들을 돌보고 계셨으므로」는 원문의 「하나님의 눈」(⁨עַיִן⁩)이라는 표현을 풀어 옮긴 말입니다. 신명기 11:12는 하나님의 눈이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약속의 땅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33:18도 하나님의 눈이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들 위에 있다고 노래합니다.

이러한 표현에서 하나님의 눈은 단순히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다는 뜻을 넘어, 자기 백성을 주의 깊게 살피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고 계셨다고 해서 총독의 조사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왕에게 편지를 보내는 절차도 그대로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제국의 절차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백성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때 우리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건물을 짓는 사람들의 이름은 무엇이냐?」에스라 5:4 · 두루새김
조금 더 깊이

아람어 본문은 실제로 「우리가 말했다」라는 일인칭 복수 형태를 사용합니다. 건축자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답변을 기록한 표현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뒤에 이어지는 질문을 그들의 말로 자연스럽게 이해하려면 문장에서 생략된 관계를 보충해야 합니다. 문맥상으로는 닷드내 일행이 건축 책임자들의 이름을 물었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5:9–10에서는 그들이 장로들에게 공사 허가를 물었고, 이어 책임자들의 이름도 물었다고 보고합니다. 그래서 일부 본문 전승과 번역은 여기서 「그들이 말했다」로 읽습니다. 칠십인역도 그러한 읽기를 보여줍니다. 이 문제를 근거로 에스라 자신이 현장에 있었거나 이 문장을 직접 기록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라 5장은 아직 에스라의 등장과 활동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보낸 보고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에스라 5:6–10 본문 →

6절부터는 닷드내가 다리오 왕에게 보낸 편지를 옮겨 적은 내용이 소개됩니다.

이후 17절까지 이어지는 보고서가 에스라 5장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편지에는 관리들이 현장에서 관찰한 내용도 있고, 유다 장로들에게서 들은 내용도 있습니다.

먼저 관리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보고합니다.

「왕께 알려 드립니다. 저희는 유다 지방에 있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다녀왔습니다. 그 성전은 굴려 옮기는 돌로 지어지고 있으며, 벽에는 목재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있으며, 공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에스라 5:8 · 두루새김

돌과 목재가 보여주는 현실

「굴려 옮기는 돌」은 해석이 다소 어려운 아람어 표현입니다. 돌이 크고 무거워 굴려 운반해야 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 낱말만으로 돌의 정확한 크기나 가공 방식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기록 뒤에, 이제 왕에게 제출된 공식 보고서가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고 확인합니다. 원문에서는 그들의 손에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표현합니다.

앞 장에서는 건축자들의 손을 약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의 손에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원문의 두 표현은 정확히 같은 문법적 구조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속에서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룹니다.

왜 닷드내는 공사를 좋은 상태로 보고했을까?

그가 성전 건축을 개인적으로 지지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는 공사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누가 그 일을 허락했는지 조사했으며, 최종 판단을 왕에게 요청합니다.

앞 장의 고발자들은 예루살렘을 반역적인 성읍이라고 규정하고, 왕에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반면 이 장의 보고서는 성전을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르며, 공사의 진행 상황과 유다 장로들의 답변을 전달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그가 현지 주민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했거나, 그들의 종교적 언어를 보고서에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발자가 제기한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한 건축과 그 권한에 관한 질문이 중심이 됩니다.

「저희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에스라 5:11 본문 →

「그들은 저희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저희는 아주 오래전에 지어졌던 성전을 다시 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그 성전을 지어 완성했습니다.』」에스라 5:11 · 두루새김

닷드내가 물은 것은 누가 건축을 명령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의 답변은 페르시아 왕의 이름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누구의 종인지를 먼저 밝힙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살고 있습니다. 총독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왕의 결정에 따라 공사가 중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에스라 1:2에서도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5:11에서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다시 지으려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솔로몬도 첫 성전을 봉헌할 때 하나님을 건물 안에 가둘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열왕기상 8:27에서 그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특정한 성전의 중요성이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한 장소에 가두는 건물이 아니라, 그분을 예배하도록 구별된 장소입니다.

총독이 묻는 것은 허가이고 장로들이 먼저 말하는 것은 정체성이다

그렇다고 장로들의 답변을 페르시아 왕의 권한을 무시하는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곧이어 고레스가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왕의 허가를 근거로 건축이 법에 맞는 일임을 설명하지만, 자신들이 누구인지는 왕의 허가보다 더 근본적인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장로들은 자신들이 왜 이 성전을 다시 짓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예상 밖으로 솔직합니다.

성전이 무너진 이유를 숨기지 않다

에스라 5:12 본문 →

장로들은 아주 오래전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성전을 지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왕은 솔로몬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열왕기상 6–8장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봉헌한 일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장로들은 그 영광스러운 역사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 조상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분노하시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갈대아 사람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이 성전을 허물고 백성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에스라 5:12 · 두루새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더 깊은 원인을 조상들의 행동과 하나님의 심판에서 찾습니다.

그들의 대답에는 자기 공동체의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없습니다.

성전의 파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이것은 열왕기하 24–25장과 역대하 36장의 역사 해석과 연결됩니다. 특히 역대하 36:14–20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예루살렘이 멸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과거 유다의 멸망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말입니다. 모든 국가의 멸망이나 개인의 고난이 반드시 그들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이라고 일반화할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유다의 멸망을 이미 주어진 언약과 예언의 역사 안에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장로들이 성전 건축이 법에 맞는 일이라는 점만 설명하려 했다면 고레스의 명령만 인용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왜 성전을 잃었는지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회복은 과거를 변명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과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인정하면서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게 하셨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장로들의 설명은 다음 절에서 방향을 바꿉니다.

같은 바벨론 왕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일이 일어나다

에스라 5:13–15 본문 →

「『하지만 바벨론 왕 고레스는 다스린 첫해에 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에스라 5:13 · 두루새김

고레스는 페르시아 왕이지만, 바벨론을 정복한 뒤 바벨론의 왕권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 절에서는 느부갓네살을 바벨론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왕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렸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 왕으로서 그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같은 「바벨론 왕」이라는 칭호 아래 전혀 다른 행동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한 왕조에서 다른 왕조로 권력이 넘어갔다는 역사적 변화이기도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통치자였고, 고레스는 그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로들의 역사 설명에서 더 중요한 변화는 왕의 이름이 아닙니다. 파괴되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심판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가 심판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성전 기물의 반환이 왜 다시 등장할까?

14절부터는 고레스가 바벨론의 신전에서 금과 은으로 된 성전 물건들을 꺼내 세스바살에게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에스라 1:7–11에 이미 기록된 사건입니다.

앞에서는 성전 물건들을 돌려받은 일 자체가 귀환의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성전 건축이 정당한 일임을 입증하는 역사적 근거로 제시됩니다.

고레스가 물건들을 돌려주었다는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습니다. 장로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명령과 함께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세스바살에게 이 물건들을 가져가 예루살렘의 성전에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이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워지도록 하라고 했습니다.』」에스라 5:15 · 두루새김

이 말은 장로들이 닷드내에게 한 답변을 닷드내가 보고서에 옮기고, 그 안에서 다시 고레스의 명령을 전한 것입니다. 장로들은 고레스가 명령했던 내용을 근거로 자신들이 하고 있는 건축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원래 자리」가 중요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종교 시설을 마음대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성전이 있던 장소에서 같은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세스바살이 기초를 놓았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에스라 5:16 본문 →

「『그 뒤 세스바살이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의 성전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전을 짓고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에스라 5:16 · 두루새김

에스라 3장에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성전 건축을 주도했으며, 건축자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을 때 백성이 찬양했다고 기록했습니다(3:8–13). 그런데 여기서는 세스바살이 와서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기초를 놓았을까요?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관계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을 동일 인물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이며 성전 재건의 시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라서는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을 서로 다른 인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세스바살이 성전 건축의 초기 준비나 기초 작업을 맡았고, 스룹바벨이 이후 건축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기초를 놓았습니다」라는 표현이 처음 공사를 시작한 일을 넓게 가리키는지, 실제로 구분되는 두 단계의 기초 작업을 가리키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설명이 옳은지 에스라 5장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로들이 현재 건축의 출발점을 고레스의 명령과 그가 임명한 세스바살의 활동에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이 공사는 얼마 전에 갑자기 시작한 새로운 사업이 아닙니다.

중단되었던 공사를 계속 진행해 왔다고 말하는 까닭

앞 장에서는 성전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공사가 이루어진 것처럼 들립니다.

장로들은 건축의 모든 중단 기간을 빠짐없이 설명하기보다, 고레스 때 시작된 성전 재건 사업이 현재까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전체적인 상태를 요약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전을 짓고 있지만」이라는 말은 공사에 한 번도 중단이 없었다는 뜻이라기보다, 오래전 시작된 건축 사업이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장로들은 새로운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허락받은 일을 완성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이제 왕의 기록을 통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다

에스라 5:17 본문 →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바벨론에 있는 왕실 보물 창고를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에 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왕의 뜻을 저희에게 보내 주십시오.」에스라 5:17 · 두루새김

에스라 5장은 이 요청으로 끝납니다.

닷드내는 왕에게 당장 공사를 중단시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유다 장로들의 설명이 거짓이라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앞 장의 고발자들은 예루살렘이 반역적인 성읍이라는 판단을 먼저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록을 조사하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 장의 닷드내는 유다 장로들이 제시한 역사적 근거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종교적 고백이 행정적 증거와 만나는 자리

고레스가 실제로 성전 건축을 명령했는가?

이것은 왕실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반면 유다 장로들이 하늘과 땅의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고백이나, 조상들이 하나님을 분노하시게 했기 때문에 유배를 겪었다는 해석은 왕실 보물 창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주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 성전을 짓고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일이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정당하게 허락된 사업임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왕의 판단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니 어떤 조사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현재 자신들이 속한 정치적 질서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오늘날에도 신앙 공동체가 어떤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추진할 때, 그 믿음이 현실의 책임이나 사실 확인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현실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함께 놓입니다.

왕의 답신을 기다리는 동안

에스라 5:1–17 본문 →

하나님께서 장로들을 돌보고 계셨지만, 다리오의 답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돌보심은 반드시 모든 문제가 미리 해결되고 모든 길이 확정된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에스라 5장에서 그 돌보심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다시 시작하고, 그 일을 진행하는 동안 하나님의 관심 아래 있다는 사실로 묘사됩니다.

에스라 5장은 모든 종교적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이 장은 성전 재건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행동한 백성과 그들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록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돌이 쌓이고 목재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지도자들과 일꾼들은 성전을 세우는 일을 계속합니다.

한편 강 건너편 총독이 보낸 편지는 페르시아 왕에게 전달됩니다. 그 편지에는 유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왜 성전을 다시 짓고 있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이제 왕의 답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답장이 오기 전에도 건축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스라 5장은 공사가 허락되었다는 소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허락을 확인하는 답장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있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