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3–6장 · 성전 공사와 방해
성전을 막아선 사람들의 편지
에스라 4장은 뜻밖의 제안으로 시작합니다.
성전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말합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짓게 해 주세요. 우리도 여러분처럼 여러분의 하나님을 섬겨요.」
처음 듣기에는 반가운 제안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아직 사람 수도 재정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에는 많은 일손과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집을 함께 세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리고 성전을 세우려는 일이 어떻게 제국에 대한 반역 혐의로 바뀝니까?
처음에는 성전 건축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훨씬 뒤의 왕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이전 시대로 돌아갑니다. 이 시간의 이동을 이해하면, 에스라 4장은 단순한 공사 중단 기록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회복을 둘러싼 오랜 갈등의 역사로 읽힙니다.
적대자들이 도움을 청하다
유다와 베냐민을 적대하는 사람들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백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해 성전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에스라 4:1 · 두루새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찾아온 사람들의 말을 들려주기도 전에 그들을 「유다와 베냐민을 적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들이 하는 말은 적대적인 협박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각 집안의 지도자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짓게 해 주세요. 우리도 여러분처럼 여러분의 하나님을 섬겨요.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 때부터 그분께 제사를 바쳐 왔어요.」에스라 4:2 · 두루새김
적대하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근거로 이들의 모든 말이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으므로 진실하게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마음속 동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의 이름이 왜 등장할까?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된 역사를 언급합니다. 그들에게 그 역사는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북왕국은 기원전 722/721년 무렵 아시리아에 멸망했습니다. 열왕기하 17:24는 아시리아 왕이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을 데려와 사마리아의 성읍들에 살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아시리아는 정복한 지역의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정복한 땅에 다른 지역 주민을 이주시켜 지배 질서를 다시 짜는 정책을 폈습니다.
에스라 4:2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이주의 역사와 연결된 집단임을 밝힙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아왔으며, 자신들도 하나님께 제사를 바쳐 왔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열왕기하 17:24–41을 읽으면 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그곳에서는 아시리아가 사마리아에 이주시킨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지만, 동시에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도 계속 섬기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에스라 4:2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바쳤다고 해서,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같은 예배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열왕기하 17장의 기록만으로 에스라 4장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몇 세대가 지난 뒤에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여러 신을 섬기고 있었다고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두 집단이 같은 성전 건축에 참여할 자격을 놓고 마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긴장은 다음 절에서 겉으로 드러납니다.
같은 하나님을 찾는다는데 왜 거절했을까?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이스라엘의 나머지 집안 지도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은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할 일이 아니에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우리끼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한 성전을 지을 거예요.」에스라 4:3 · 두루새김
「당신들은 사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거나 「당신들의 제사는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누가 건축을 맡을 것인지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고레스의 명령을 제시합니다.
이 거절을 모든 외부인에 대한 배척으로 읽을 수 있을까?
구약의 여러 본문은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섬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56:6–7은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을 섬기려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나아올 수 있음을 말합니다. 에스라 6:21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 땅 민족들의 부정함에서 자신을 구별한 사람들이 유월절에 참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스라 4:3을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원칙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절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특정한 집단이 성전 건축에 함께 참여하는 문제에 관한 판단입니다.
협력을 제안했던 사람들과 관련된 갈등은 이제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발전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거절에는 서로 구분해야 할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동체의 신앙을 지키려는 판단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배를 회복하려 하고 있었습니다(에스라 3:2–5). 열왕기하 17장에 기록된 사마리아 지역의 종교적 역사는 그러한 걱정이 왜 생길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둘째는 고레스에게서 받은 건축 권한과 책임을 지키려는 판단입니다. 에스라 1:2–4에서 고레스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하고, 이를 지원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두 해석은 서로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다만 본문이 직접 밝히는 근거는 고레스의 명령이며, 서로 다른 신앙이 섞일 것이라는 구체적인 걱정은 관련 문맥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돌을 무너뜨리기 전에 사람들의 손을 약하게 하다
그러자 그 땅 사람들은 유다 백성의 기운을 꺾고,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었습니다.에스라 4:4 · 두루새김
「기운을 꺾고」(רָפָה)에 해당하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손은 일을 해내는 힘과 능력을 나타냅니다. 성전을 세우려는 사람들의 손을 약하게 만든다는 것은 건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만큼 의욕과 일을 해낼 능력을 떨어뜨리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유다 백성의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조언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이런 방해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다스리는 내내,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다스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에스라 4:5 · 두루새김
앞에서는 건축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제는 건축을 막기 위해 사람을 고용합니다.
여기서 갈등의 성격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누가 성전 건축에 참여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었습니다. 이제는 성전 건축 자체를 계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잠깐의 다툼이 아니라 상당 기간 이어진 갈등이었습니다. 성전 기초를 놓았을 때의 커다란 함성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제 공동체는 완공을 향해 나아가는 일보다 건축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지키는 일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독자를 예상하지 못한 시대로 데려갑니다.
이야기가 갑자기 미래로 건너뛰다
아하수에로가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고발하는 글을 썼습니다.에스라 4:6 · 두루새김
이 구절부터는 앞의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이어 읽으면 혼란이 생깁니다.
5절은 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 시대까지 이어진 방해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아하수에로가, 7절에서는 아닥사스다가 등장합니다.
페르시아 왕들의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역사적 순서는 고레스, 다리오 1세, 아하수에로로 알려진 크세르크세스 1세, 아닥사스다 1세의 순서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이 절들에서 언급하지 않는 다른 왕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6–23절에 등장하는 고발 사건들을 다리오 이전의 성전 건축 중단 사건과 같은 시기의 사건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한 번의 방해가 아니라 반복되는 적대
이렇게 읽으면 6–23절은 성전 건축의 중단 원인을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는 부분이라기보다, 예루살렘을 향한 반대가 이후에도 여러 형태로 반복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이해됩니다. 갈등의 대상과 시대는 달라지지만, 예루살렘의 회복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성전 기초를 놓던 날의 기쁨처럼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어려움이 해결되어도 다른 시기에 새로운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그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 제국의 행정 체계 안에서 다루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람어로 기록된 제국의 고발장
아닥사스다가 다스리던 때에는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썼습니다. 그 편지는 아람 문자로 쓰였고 아람어로 옮겨졌습니다.에스라 4:7 · 두루새김
여기서 이야기는 새로운 언어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에스라서의 앞부분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4:8부터 6:18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7:12–26에서도 아람어가 다시 등장합니다. 아람어는 페르시아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행정과 의사소통에 널리 사용된 언어였습니다.
이 장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내용에는 고발 편지와 왕의 답장이 포함됩니다. 이어지는 5–6장에도 관리들의 편지와 왕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독자는 이제 돌아온 공동체 안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제국의 관리들이 작성하고 왕에게 전달한 공식 문서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7절의 「아람 문자로 쓰였고 아람어로 옮겨졌습니다」는 표현 자체에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자 체계와 사용 언어를 각각 가리킨다고 읽을 수도 있고, 기록과 전달 또는 해석의 절차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절은 뒤따르는 이야기가 아람어 공문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누구인가?
8절부터는 행정관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등장합니다. 9–10절에는 그들의 동료들뿐 아니라 여러 지역과 민족의 이름이 길게 이어집니다.
에스라 2장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집안과 성읍별로 기록했습니다. 반면 4장의 이 명단은 아시리아 제국의 이주 정책과 연결된 여러 집단이 사마리아와 그 주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0절은 그들의 정착을 「위대하고 존경받던 오스납발」이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와 살게 한 일과 연결합니다.
그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강 건너편에 사는 왕의 종들이 글을 올립니다.」에스라 4:11 · 두루새김
여기서 「강 건너편」은 유프라테스강을 기준으로 제국의 중심부에서 바라보는 서쪽 지역을 가리키는 행정 용어입니다. 이 편지에서 그들은 지역의 종교적 갈등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자신들이 왕에게 속한 충성스러운 신하들이라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처음 성전 건축에 참여하려 했던 사람들은 「우리도 여러분처럼 여러분의 하나님을 섬겨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자신들을 「왕의 종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두 사건의 당사자들이 모두 같은 사람들은 아니며 시대도 다릅니다.
논쟁의 언어가 예배와 공동체의 문제에서 왕의 권력과 제국의 이익에 관한 문제로 바뀐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어떻게 반역 혐의로 바뀌는가
고발 편지는 처음부터 예루살렘을 부정적으로 규정합니다.
「왕께 알려 드립니다. 왕의 곁을 떠나 저희 쪽으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반역적이고 악한 이 성읍을 다시 짓고 있습니다. 성벽을 마무리하고 기초를 보수하고 있습니다.」에스라 4:12 · 두루새김
「반역적이고 악한 이 성읍」이라는 말은 객관적인 지리 설명이 아니라, 왕이 예루살렘을 위험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평가입니다. 고대의 성벽은 주민을 보호하는 시설이면서 동시에 성읍의 방어 능력과 스스로 다스릴 힘을 뒷받침하는 시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의 관리들은 성벽 복구를 단순히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군사적·정치적 의미를 가진 행동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벽을 세운다는 사실만으로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발자들은 예루살렘의 건축 활동을 제국의 통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일로 해석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왕께서는 이 점을 알아 주십시오. 이 성읍이 세워지고 성벽이 완성되면, 그들은 조공과 세금과 통행세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왕들께 손해가 돌아갈 것입니다.」에스라 4:13 · 두루새김
서로 다른 세 가지 부과 항목을 나열하여, 예루살렘을 다시 짓는 일이 제국의 재정 수입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왕에게 어떤 지역의 건축 활동을 중단시키려면, 그 일이 왕의 권력과 이익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하는 편이 설득력 있을 수 있습니다.
고발의 초점은 하나님의 집에서 페르시아 왕의 금고로 옮겨 갔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실제로 납세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건축 활동이 미래의 반역 가능성으로 해석되고, 그 가능성이 공사를 중단시켜야 할 이유로 제시됩니다.
왕궁의 소금을 먹는 사람들 — 14절
「저희는 왕궁에서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왕께서 모욕당하시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보내 왕께 알려 드립니다.」에스라 4:14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왕궁의 소금을 먹는다」(מְלַח)는 말입니다. 이는 왕궁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받거나 혜택을 받는 관계, 곧 왕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처지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됩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풀어 「왕궁에서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발이 개인적인 원한이나 지역적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건축 활동을 내버려 두는 것이 곧 왕이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지역적 갈등은 제국에 대한 충성의 문제로 바뀝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혐의로 사용하다 — 15–16절
「왕보다 앞서 다스린 왕들의 기록을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그 기록을 보시면 이 성읍이 반역을 일으켜 왕들과 여러 지방에 손해를 끼친 곳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반란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이 성읍이 파괴되었습니다.」에스라 4:15 · 두루새김
이 주장에는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해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반역했다는 기록은 실제로 열왕기하 24:20에 나옵니다. 이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전을 파괴한 사건도 열왕기하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발 편지는 그 역사 전체를 반역을 일으키는 성읍이라는 하나의 성격으로 요약합니다. 열왕기하와 예레미야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설명하면서 유다의 정치적 반란만이 아니라 왕들과 백성의 불의, 우상숭배, 예언자들의 경고를 거부한 일 등 훨씬 복잡한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반역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지금 돌아온 사람들이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앞의 것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과거의 사건입니다. 뒤의 것은 과거를 근거로 내놓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판단입니다.
「저희가 왕께 알려 드립니다. 이 성읍이 세워지고 성벽이 완성되면, 왕께서는 강 건너편 지역을 더는 다스리지 못하실 것입니다.」에스라 4:16 · 두루새김
예루살렘 한 성읍의 재건을 제국의 서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잃는 일과 연결한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전망이 실제로 얼마나 가능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건축 활동을 왕이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위험으로 제시합니다.
성경 안에 기록된 말이라고 해서, 그 말을 한 모든 인물의 판단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이 장에는 고발자들의 편지와 왕의 답장이 길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들은 당시의 정치적 판단과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지만, 그 안의 모든 평가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의 최종적인 신학적 판단과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12절의 성벽 공사를 이미 마친 것으로 말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성벽을 마무리하고」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13절에서는 「성벽이 완성되면」이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고의적인 거짓말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성벽의 일부와 전체를 구별하거나, 이미 진행된 공사와 앞으로 완공될 상태를 달리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두 표현이 자연스럽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왕은 과거를 확인했지만, 미래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
「내가 명령을 내려 기록을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이 성읍이 오래전부터 왕들에게 맞서 왔고 그 안에서 반역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에스라 4:19 · 두루새김
여기서 왕의 판단은 단순히 고발자들의 말을 아무런 확인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확인된 것은 예루살렘의 과거에 관한 정보입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장차 세금을 거부할 것이라는 미래의 행동까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강력했던 옛 왕들 — 20절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강력한 왕들은 강 건너편 온 지역을 지배했고, 조공과 세금과 통행세를 받았다.」에스라 4:20 · 두루새김
이것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열왕기상 4:21과 4:24는 솔로몬이 유프라테스강에서 블레셋 땅과 이집트 국경에 이르는 지역을 다스리며 조공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아닥사스다의 답장이 구체적으로 어느 왕들을 가리키는지는 밝히지 않지만, 예루살렘이 한때 넓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왕국의 중심이었다는 역사적 기억과 연결됩니다.
유다 사람들에게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는 자신들의 역사와 왕국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에게는 같은 역사가 경계해야 할 정치적 가능성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같은 과거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왕이 명령한 것은 영구적인 파괴가 아니다
「그러니 명령을 내려 그 사람들의 일을 멈추게 하라. 내가 명령을 내릴 때까지 이 성읍을 짓지 못하게 하라.」에스라 4:21 · 두루새김
이것은 왕이 건축 허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자신에게 두었다는 뜻입니다. 제국의 관점에서 예루살렘이 안전한지, 그곳의 재건을 허락해도 되는지는 왕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고발자들이 주장했던 위협은 왕의 정치적 판단 속으로 들어왔고, 그 판단은 실제적인 행정 명령이 됩니다.
고레스는 성전 건축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아닥사스다는 훨씬 뒤 시대에 예루살렘의 건축을 중단시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두 왕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건축 활동에 대해 명령했으므로 이를 같은 사건에 대한 정반대 결정으로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제국의 명령은 때로 하나님의 백성이 예루살렘을 다시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때로는 그들의 건축 활동을 막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왕의 권력 자체가 언제나 돌아온 공동체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말로 시작된 갈등이 무력으로 끝나다 — 23절
아닥사스다 왕의 편지 사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들의 동료들 앞에서 읽혔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서둘러 예루살렘의 유다 사람들에게 가서 무력을 써서 강제로 공사를 멈추게 했습니다.에스라 4:23 · 두루새김
앞에서 사람들의 손을 약하게 만들고 계획을 무너뜨리려 했던 방해가, 여기서는 제국의 공식 명령과 강제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특히 「무력을 써서 강제로」라는 표현은 공사가 단순히 행정상의 요청을 받아 스스로 중단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18절에서는 고발 편지가 왕 앞에서 읽힙니다. 23절에서는 왕의 답장이 관리들 앞에서 읽힙니다. 첫 번째 읽기는 왕의 판단으로 이어지고, 두 번째 읽기는 예루살렘에서의 강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문서에 기록된 말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결국 건축 현장의 운명을 바꿉니다.
조금 더 깊이
이후 느헤미야 2:1–8에서는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건에 필요한 일을 하도록 허락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면 페르시아 왕의 정책이 언제나 예루살렘의 재건을 똑같이 금지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에스라 4장의 중단 명령과 느헤미야 2장의 허가 사이에 어떤 행정 절차와 정책 변화가 있었는지는 완전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절에서 시간이 되돌아가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공사는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다스린 둘째 해까지 멈춘 채로 있었습니다.에스라 4:24 · 두루새김
24절은 6–23절의 뒤 시대 사건들을 소개한 뒤, 다시 4–5절에서 이야기하던 성전 건축의 시대로 돌아가는 문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8–23절의 고발은 예루살렘 성읍과 성벽의 건축을 대상으로 합니다. 반면 24절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말합니다.
그다음 에스라 5:1–2에서는 학개와 스가랴가 예언하고,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하나님의 집 건축을 다시 시작합니다. 따라서 24절은 앞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연결점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 장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명령을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등장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고발자들을 막으시거나 왕의 결정을 뒤집으시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작된 일인데 왜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까? 본문은 이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반대를 겪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모든 방해가 자동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세우려는 사람들조차 실제 정치적 권력과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활동해야 했다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돌아온 공동체에게는 성전을 지으라는 고레스의 허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허락이 주변 사람들의 협조를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의 편지가 읽힌 뒤
왕은 그 편지를 받고 기록을 조사합니다. 그리고 공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합니다. 누가 건축의 권한을 갖는가,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제국의 행정 질서 속에서 어떻게 공사를 계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함께 얽힙니다. 에스라 4장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공사가 멈추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끝났다고 선언할 수도 없습니다. 에스라 4장 자체는 아직 공사가 다시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만 24절이 다음 장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게 하면서, 독자를 중단된 건축 현장 앞에 세워 둡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다리오 시대의 성전 건축 현장으로 돌아옵니다.
3장 마지막에서 성전의 기초를 놓던 사람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기쁨과 울음이 뒤섞인 함성이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그러나 4장 마지막에는 그러한 함성이 없습니다.
성전의 기초는 이미 놓였지만, 그 위로 건축이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장은 성전이 무너지는 장면이 아니라, 이미 놓인 기초 위에서 공사가 멈춘 장면으로 끝납니다.
사람들은 성전을 세우기 위해 돌아왔고, 제단을 세웠으며, 마침내 기초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집이 남아 있습니다.
그 위에 다음 돌이 언제 놓일지는, 이 장의 마지막에서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