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47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좋은 땅에서도 나그네로 남은 사람

창세기 47장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무리가 등장합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에 들어와 가장 좋은 땅을 얻습니다. 반면 이집트 사람들은 흉년 때문에 자신들의 가축과 땅을 잃고, 마침내 파라오에게 속한 노예가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끄는 사람은 요셉입니다.

이 장은 무엇을 얻었느냐보다, 얻은 것을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가느냐를 묻습니다. 이집트의 땅과 권력, 먹을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닌 야곱은 그 모든 것 앞에서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547장 본문 읽기 →

이집트에서 땅을 얻은 나그네들

창세기 47:1–6 본문 →

요셉이 준비한 말에 형제들이 덧붙인 것

요셉은 파라오에게 가족의 도착을 알린 뒤, 형제 가운데 다섯 사람을 데려가 파라오 앞에 세웁니다.

파라오가 요셉의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무슨 일을 하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임금님의 종들인 저희는 양과 염소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저희 조상들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창세기 47:3 · 두루새김

그런데 거기서 말을 마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왜 이집트에 왔는지 설명하고, 구체적인 요청을 덧붙입니다.

그들이 파라오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이 땅에 나그네로 머물려고 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심해 임금님의 종들인 저희의 양과 염소 떼를 먹일 풀밭이 없습니다. 부디 저희가 고센 땅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창세기 47:4 · 두루새김

그들은 이집트에 정복자로 오지 않았습니다.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을 이어 갈 장소를 구합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이집트를 본래부터 자기들의 땅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라오의 대답은 그들의 요청보다 훨씬 후합니다.

「이집트 땅이 네 앞에 있다. 이 땅에서 가장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형제들을 살게 하라. 고센 땅에서 살게 하라. 그들 가운데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거든, 네가 알아보고 내 가축을 맡을 책임자로 세워라.」창세기 47:6 · 두루새김

이 대목은 이집트 사람들이 양과 염소를 치는 사람들을 몹시 싫어한다는 앞 장의 말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이집트에는 왕의 가축이 있고, 그것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축을 기르는 일 자체가 없거나 모든 가축 관리가 금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가족은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능력은 왕에게도 쓸모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가족을 맞아들이는 아들이면서, 왕의 명령을 실행하는 관리입니다.

땅을 얻었다는 것과 그 땅의 주인이라는 것은 다르다

형제들은 나그네로 머물게 해 달라고 청했지만, 11절에서는 요셉이 그들에게 땅을 주어 「자기 땅으로 갖게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잠시 머무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안정된 생활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 땅을 갖는 데 어떤 법적 권리가 포함되었는지까지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파라오의 허락과 요셉이 취한 조치로 얻은 땅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파라오에게 복을 비는 야곱

창세기 47:7–12 본문 →

왕은 나이를 묻고, 나그네는 자신의 삶을 말한다

형제들과 파라오의 만남이 끝나자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데려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데려와 파라오 앞에 세웠습니다. 야곱은 파라오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창세기 47:7 · 두루새김

파라오는 이집트 땅에서 막대한 권력을 가진 왕입니다. 야곱은 그 왕의 허락으로 살아갈 곳을 얻은 외국인 노인입니다. 권력과 재산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야곱이 도움을 받는 사람이고, 파라오가 도움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사이 파라오는 야곱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파라오가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창세기 47:8 · 두루새김

야곱은 단순히 백삼십 살이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파라오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나그네로 살아온 세월은 130년입니다. 제 삶은 짧고 고달팠습니다. 제 조상들이 나그네로 살아온 세월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창세기 47:9 · 두루새김

「나그네로 살아온 세월」(⁨מָגוּר⁩)이라는 표현은 앞에서 형제들이 이집트에 「나그네로 머물려고」 왔다고 말했을 때 사용한 히브리어와 같은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형제들에게 나그네살이는 이집트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생활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나그네살이는 이미 백삼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삶입니다.

가나안에 살 때도, 하란에 머물 때도,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의 삶은 나그네살이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사라를 묻을 땅을 구하면서 자신을 나그네요 거류민이라고 불렀던 장면과 연결됩니다(창세기 23:4).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땅 전체를 아직 소유하지 못한 조상들의 처지가 야곱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나그네라는 말은 단순히 집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땅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약속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백삼십 년을 살고도 짧고 고달팠다고 말하다

야곱의 대답에서 또 하나 뜻밖인 것은 「제 삶은 짧고 고달팠습니다」라는 평가입니다.

그에게는 비교할 대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칠십오 년을 살았고(창세기 25:7), 이삭은 백팔십 년을 살았습니다(35:28). 야곱은 아직 그들의 나이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달팠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수명의 비교를 넘어섭니다.

야곱의 삶을 돌아보면 이 말이 이해됩니다. 형 에서를 피해 집을 떠나야 했고, 라반의 집에서 오랜 세월 힘겹게 일했으며, 사랑하는 라헬을 잃었습니다. 딸 디나가 겪은 일과 아들들의 폭력적인 보복도 있었고, 무엇보다 요셉이 죽었다고 믿고 오랫동안 슬퍼했습니다.

야곱은 분명히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열두 아들이 있고, 큰 가족을 이루었으며, 죽은 줄 알았던 요셉까지 다시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그 복들이 지나온 고통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삶이 고달팠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약속을 받은 삶과 고통스러운 삶은 그에게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겪은 세월을 그대로 말합니다.

왕에게 복을 전하는 나그네

야곱은 파라오에게 복을 빌어 주고 그 앞에서 물러났습니다.창세기 47:10 · 두루새김

7절과 10절의 동일한 행동이 이 만남을 감싸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야곱에게 땅을 주었습니다. 야곱은 파라오에게 복을 빕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풍요가 마주합니다.

파라오는 땅과 가축과 곡식을 가진 왕입니다. 반면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고달픈 나그네살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야곱에게는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땅의 여러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2–3). 따라서 야곱이 이집트 왕에게 복을 비는 모습은 이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가 처음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복의 약속은 이제 이집트 궁정에 선 늙은 나그네의 행동 속에서 다시 울려 퍼집니다.

가족에게 공급되는 양식

이 만남이 끝나면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라암세스 지역에 자리 잡고 살게 합니다.

11절에서 「라암세스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은 앞에서 고센이라고 불렀던 지역과 연결됩니다. 요셉은 가족이 자리 잡고 살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대 줍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롯한 아버지의 온 집안에 아이들의 수에 맞추어 먹을 것을 대 주었습니다.창세기 47:12 · 두루새김

「아이들의 수에 맞추어」라는 표현은 가족의 실제 필요를 고려한 공급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을 주었는지,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양에 따라 나누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제 요셉이 자기 가족에게 했던 일을 이집트 전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수행했는지 보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복을 빈다는 동사는 일반적인 인사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특별한 종교 의식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만남의 시작과 끝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여 기록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살린 정책이 왕의 소유를 늘리다

창세기 47:13–26 본문 →

창세기 47장에서 가장 신중하게 읽어야 할 부분입니다.

요셉의 흉년 대책을 훌륭한 경제 정책으로만 평가하거나, 반대로 백성을 착취한 정책으로만 단정하면 본문이 실제로 보여 주는 중요한 긴장을 놓치게 됩니다.

돈에서 가축으로, 가축에서 땅과 몸으로

흉년이 너무 심해 온 땅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굶주림에 지쳐 갔습니다.창세기 47:13 · 두루새김

「굶주림에 지쳐 갔습니다」라는 표현은 흉년이 단순히 곡식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집트와 가나안의 사람들이 굶주림 때문에 힘을 잃어 가는 상황입니다.

이때 요셉은 저장해 둔 곡식을 사람들에게 공급합니다. 그런데 곡식은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받고 판매됩니다.

요셉은 곡식을 팔아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에 있던 은을 모두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는 그 은을 파라오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창세기 47:14 · 두루새김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에서 은이 다 떨어지자, 이집트 사람들이 모두 요셉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은이 다 떨어졌다고 저희가 나리 앞에서 죽어야 합니까?」창세기 47:15 · 두루새김

이 말의 핵심은 거래 조건을 흥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고 싶다는 호소입니다.

요셉은 은이 없다면 가축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해에는 사람들이 말과 양과 염소와 소와 나귀를 넘겨주고 먹을 것을 얻습니다.

그다음 해가 되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해가 지나고 다음 해에 사람들이 요셉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나리께 숨기지 않겠습니다. 은은 다 떨어졌고 가축도 나리께 넘어갔습니다. 이제 나리 앞에 내놓을 것은 저희 몸과 땅뿐입니다.」창세기 47:18 · 두루새김
「나리 눈앞에서 저희는 죽고 저희 땅은 버려져야 합니까? 저희와 저희 땅을 사시고, 그 값으로 먹을 것을 주십시오. 저희는 파라오의 노예가 되고 저희 땅은 파라오의 것이 될 것입니다. 씨앗도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죽지 않고 살고, 땅도 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창세기 47:19 · 두루새김

식량은 오늘을 살게 하지만, 씨앗은 다음 수확을 가능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을 공급받으며 살아남는 동시에 농사를 다시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그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대가는 엄청납니다. 이제 땅은 파라오에게 속하게 되고, 사람들 자신도 파라오의 노예가 됩니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이 잃는 것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살아갈 기반입니다.

이곳에서 「파라오의 노예가 되고」라는 표현은 파라오 앞에서 사용하는 단순한 공손한 호칭으로 줄여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절과 23절은 사람의 몸과 땅을 함께 파라오에게 넘기는 거래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후 모두 어떤 노동 조건에서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한 통제를 받았는지까지 이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을 살리는 일과 권력이 집중되는 일

요셉은 이미 창세기 41장에서 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그 지혜로운 대책 덕분에 이집트에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 곡식을 살 수 있을 만큼 저장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47장은 그 구원의 결과가 어떻게 나뉘는지도 보여 줍니다.

곡식은 파라오의 통제 아래 있고, 백성들의 은은 파라오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가축이 넘어가고 땅도 넘어갑니다. 결국 파라오는 이집트의 땅을 소유하는 왕이 됩니다.

본문은 백성들이 스스로 거래를 요청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요셉에게 자신들을 살려 주었다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극심한 흉년 속에서 죽지 않기 위해 모든 재산을 넘기는 선택을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유로운 거래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상황을 근거로 요셉이 백성들을 일부러 굶겨 재산을 빼앗았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의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정책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켰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경제적 독립성은 줄어들었으며 파라오의 소유와 권력은 커졌습니다. 성경은 이 결과들을 함께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정책의 모든 측면을 도덕적으로 승인하거나 비난하는 직접적인 판결을 이곳에서 내리지 않습니다.

도시로 옮겨진 백성, 땅을 지킨 제사장들

요셉은 이집트 땅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백성을 도시들로 옮겼습니다.창세기 47:21 · 두루새김

마소라 본문을 따르면, 요셉은 땅을 파라오의 소유로 넘기면서 주민들을 도시로 이동시키는 조치도 시행했습니다. 반면 고대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요셉이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다는 뜻으로 전합니다. 두 본문 모두 파라오의 지배력이 강화되었다는 큰 흐름과 연결되지만, 도시로 옮기는 일과 신분이 바뀌는 일의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분명한 예외를 기록합니다.

제사장들의 땅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파라오가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몫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몫으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야곱의 가족 역시 왕의 호의를 통해 가장 좋은 땅을 얻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장의 사회적 관계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왕의 보호와 공급을 받는 사람들은 생활 기반을 유지하거나 얻습니다. 반면 그런 공급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흉년 속에서 자신의 재산을 팔아야 합니다.

본문은 이 차이를 직접 비난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오분의 일을 바치는 제도

요셉은 땅을 파라오의 소유로 만든 뒤 백성들에게 씨앗을 줍니다.

「수확한 것의 5분의 1은 파라오에게 바쳐라. 나머지 5분의 4는 너희 몫이다. 그것으로 밭에 뿌릴 씨앗을 마련하고, 너희와 너희 집안사람들과 아이들이 먹도록 하라.」창세기 47:24 · 두루새김

이 비율이 당시 농민에게 얼마나 무거운 부담이었는지는 이 장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땅에서 얼마나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었는지, 다른 의무는 무엇이었는지, 실제 수확량은 얼마였는지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6절은 요셉이 이집트 땅에서 거둔 것에 관한 규정을 세웠고, 그 규정이 「오늘까지」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오늘까지」는 이 이야기를 전하는 시점까지라는 뜻입니다. 흉년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형성된 소유 관계와 세금을 바치는 제도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창세기 41:34에서 요셉은 풍년 동안 수확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저장하도록 제안했습니다. 그때 오분의 일은 앞으로 닥칠 흉년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47:24에서는 오분의 일이 파라오에게 지속적으로 바치는 몫이 됩니다.

두 경우 모두 같은 비율이지만 그 기능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위기를 준비하는 저장 체계였고, 이제는 위기 이후 형성된 왕실의 땅 소유와 연결된 제도입니다.

「저희를 살려 주셨습니다」

백성이 대답했습니다. 「나리께서 저희를 살려 주셨습니다. 부디 저희를 좋게 보아 주십시오. 저희는 파라오의 노예가 되겠습니다.」창세기 47:25 · 두루새김

이들의 감사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전의 독립적인 생활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제도가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권력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이 장은 바로 그 복잡한 현실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요셉이 수행한 이집트의 행정을 무조건 동일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창세기 45:5–8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형제들보다 먼저 보내셨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요셉이 시행한 모든 경제 정책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나 완전한 이상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에서 마소라 본문을 따르면, 그 이동이 일시적이었는지, 영구적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었는지, 어떤 행정적 목적이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칠십인역을 따르면 앞뒤 문맥에서 반복되는 종속 관계가 21절에서도 강조됩니다. 따라서 어느 읽기가 본래의 형태였는지 이 장의 문맥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번성하면서도 그곳에 묻히기를 거절하다

창세기 47:27–31 본문 →

번성하는 이스라엘

이집트 전체의 경제 구조가 바뀌는 이야기가 끝나면, 본문은 다시 야곱의 가족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이스라엘 집안은 이집트의 고센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기 땅을 얻었고, 자손을 낳아 그 수가 매우 많아졌습니다.창세기 47:27 · 두루새김

27절의 「자손을 낳아 그 수가 매우 많아졌습니다」라는 표현은 창세기에서 반복되는 생명과 번성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 인간에게 자손을 낳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8). 또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수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17:2–6; 35:11).

이제 그 번성이 이집트에서 일어납니다.

독자는 출애굽기 1장에서 이스라엘의 번성이 결국 이집트 왕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출애굽기 1:7–10). 창세기 47장 자체는 아직 그런 억압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가족이 보호받으며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번성의 이야기 다음에 야곱의 죽음을 준비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열일곱 해가 지나고, 야곱에게 마지막 부탁이 생기다

28절은 야곱이 이집트에서 열일곱 해를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가 파라오를 만났을 때 백삼십 살이었으므로, 열일곱 해를 더 살아 백마흔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요셉을 부릅니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어디에 묻을 것인지를 부탁합니다.

왜 허벅지 아래에 손을 놓는가

이스라엘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아들 요셉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좋게 여긴다면,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놓아 다오. 내게 친절을 베풀고 신의를 지켜 다오. 부디 나를 이집트에 묻지 마라.」창세기 47:29 · 두루새김

분명한 것은 이 행위가 가벼운 약속이 아니라 엄숙한 맹세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아들이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 달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마지막 부탁에서 신실함은 추상적인 미덕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이집트에서 옮겨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 주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가장 좋은 땅을 얻었지만,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은 다른 땅이다

이집트는 그에게 나쁜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요셉을 다시 만났고, 굶주림에서 벗어났으며, 가족이 번성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열일곱 해를 살았습니다.

야곱이 이집트를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단순히 이집트가 불결하거나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야곱에게 이집트로 내려가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말씀을 따라 내려왔고, 그곳에서 실제로 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묻힐 곳을 이집트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내가 조상들과 함께 잠들면, 내 몸을 이집트에서 옮겨다가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 다오.」 요셉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할게요.」창세기 47:30 · 두루새김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었을 때 가나안의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밭을 묻을 곳으로 샀습니다(창세기 23:17–20). 이후 아브라함 자신도 그곳에 묻혔고(25:9–10), 이삭도 그곳에 묻혔습니다(35:27–29; 49:29–31).

가나안 전체를 하나님에게 약속받았지만 아직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 조상들에게, 그 묘지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것은 조상들과의 가족적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땅과 연결된 하나님의 약속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가 이집트에서 받은 좋은 땅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가나안의 약속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요셉의 맹세와 침대 머리맡의 절

그런데 야곱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말했습니다. 「내게 맹세해 다오.」 요셉은 아버지에게 맹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침대 머리맡에서 몸을 굽혀 절했습니다.창세기 47:31 · 두루새김

야곱은 요셉의 말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엄숙한 약속으로 확정하려 합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마지막 뜻을 지킬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야곱이 요셉의 맹세를 받은 뒤 몸을 굽혔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허벅지 아래에 손을 놓고 맹세하는 행위는 창세기 24:2–9에도 등장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에 관하여 맹세하게 했습니다. 허벅지 아래에 손을 놓는 행위의 정확한 상징적 의미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후손이나 자손을 낳는 능력과 관련된 상징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이 확정된 해석은 아닙니다. 또한 31절에는 침대 머리맡에서 절했다는 읽기와 지팡이 끝에 의지하여 절했다는 읽기가 존재합니다. 두루새김이 「침대」로 옮긴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의 함미타(⁨מִטָּה⁩)는 침대를 뜻합니다. 그러나 모음 표시가 없는 자음 형태는 지팡이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그의 지팡이 끝으로 옮겼습니다. 히브리서 11:21 역시 칠십인역의 표현을 따릅니다. 또한 히브리어 본문은 야곱이 누구를 향해 절했는지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고, 요셉의 맹세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의 대상이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어느 하나를 본문이 확정적으로 말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11:13–16은 이러한 조상들의 나그네살이를 더 큰 믿음의 여정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땅에 관한 구체적인 약속을 지우는 설명이 아니라, 후대에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읽으며 그 신앙의 의미를 넓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7장 자체는 무엇보다 야곱이 조상들의 땅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둡니다.

현재의 은혜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

창세기 47:1–31 본문 →

야곱은 이미 받은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잊지도 않습니다. 이집트의 이야기는 소유가 점차 파라오에게 집중되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자신이 소유한 땅보다 아직 온전히 받지 못한 약속의 땅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창세기 47장은 뜻밖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야곱은 이제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얻은 가족의 어른입니다. 그의 아들은 이집트의 막강한 관리이고, 그의 자손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늙은 야곱이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해 두려는 일은 그 모든 것을 보존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요셉을 불러 조상들의 무덤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도 다시 맹세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맹세하자 침대 머리맡에서 몸을 굽힙니다.

그의 가족이 살아갈 곳은 이집트입니다. 그러나 그가 묻히기를 원하는 곳은 가나안입니다.

좋은 땅을 얻고도 자신이 나그네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야곱은, 이제 침대 곁에서 아들이 맹세한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