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5–16장 · 승리와 감사 노래
달아나는 군대와 노래하는 백성
홀로페르네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만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시리아 군대는 여전히 엄청난 병력을 갖추고 있었고, 베툴리아를 둘러싼 진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딧기 15장에서 그 군대는 싸워 보지도 못한 채 무너집니다.
전투는 몇 절 만에 지나가고,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복을 빌고, 전리품을 나누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에 쓰입니다. 이 장의 관심은 적이 어떻게 패배했는가에서 이스라엘이 그 승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로 옮겨 갑니다.
그 변화는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드러납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한꺼번에 달아나면서 서로 흩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모여 적을 추격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찬양합니다.
같은 전쟁터에서 한쪽은 공동체를 잃어버리고, 다른 한쪽은 공동체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장막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15장은 아시리아 진영에 퍼지는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천막에 있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벌어진 일에 놀라 넋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었습니다. 아무도 더는 동료 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모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평야와 산지의 온갖 길로 달아났습니다.유딧기 15:1–2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유딧은 홀로페르네스가 없는 천막을 확인하게 되면 아시리아 군대에 두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14:3). 이제 그 예고가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함께 싸우기 위해 모인 군대였지만, 이제는 동료 곁에 머물지도 못합니다. 천막마다 사람이 가득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하나의 군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아시리아의 막강한 힘은 수많은 병사뿐 아니라 그들을 하나의 뜻 아래 묶어 두는 지휘 체계에 있었습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그 체계가 무너진 것입니다.
2절에서 아시리아 병사들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달아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스라엘의 군사들도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나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읍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물길과 통로를 장악했기 때문에, 성읍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적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과 같았습니다(7:17–22). 이제는 정반대입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이 산과 평야의 모든 길로 달아나고, 베툴리아 사람들이 성읍 밖으로 나아갑니다.
앞서 길을 지배하던 군대가 이제 그 길을 통해 도망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원문은 두 움직임에 같은 동사에서 나온 표현을 사용합니다. 같은 표현이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도망치기 위해 쏟아져 나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추격하기 위해 쏟아져 나옵니다.
한꺼번에 흩어지는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모이는 사람들
아시리아 군대가 달아나자 웃시야는 주변 지역으로 소식을 전할 사람들을 보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알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적을 추격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일」을 알립니다(15:4).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던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함께 도망치지만 서로를 돌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함께 싸우고, 마침내 함께 복을 빕니다. 아시리아의 집단행동은 공포에 이끌리고, 이스라엘의 집단행동은 구원의 소식에 함께 응답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베툴리아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과 산지의 사람들이 합류하고, 길르앗과 갈릴리에 있던 사람들도 적들이 달아나는 길을 공격합니다. 추격의 범위는 다마스쿠스와 그 일대까지 넓어집니다.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천막 안에서 행동했을 때, 그녀 곁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가 일으킨 변화에 각지의 사람들이 응답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 공동체 전체의 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6–7절은 그 결과로 얻은 전리품을 기록합니다. 베툴리아에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 아시리아 진영을 약탈하고, 추격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주변 마을들도 많은 물건을 차지합니다.
실제로 본문은 적들이 죽임당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전쟁 이야기이며, 승리한 사람들이 적의 재물을 차지하는 것도 그 전쟁 현실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현대의 모든 전쟁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명령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아시리아 군대는 베툴리아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항복을 강요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진영에 쌓여 있던 풍부한 물자가 베툴리아와 이스라엘 여러 마을로 넘어갑니다. 목숨과 살아갈 수단을 빼앗길 위기에 놓였던 사람들이 살아남았고, 자신들을 위협하던 군대가 남긴 물자로 생활을 다시 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은 아시리아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아났다고 말합니다. 5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적들을 덮쳤다고 말합니다. 두루새김에서는 서로 다르게 옮겼지만, 그리스어 원문에는 두 곳 모두 호모튀마돈(ὁμοθυμαδόν)이 쓰였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뜻을 같이하여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같은 단어가 9절에서 유딧에게 「한마음으로」 복을 비는 장면에도 다시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유딧을 찾아오다
군사적 승리가 끝나자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대제사장 요야김과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장로들입니다.
대제사장 요야김과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장로들이 찾아왔습니다. 주가 이스라엘에 베푼 좋은 일들을 보고, 유딧을 만나 평안을 비는 인사를 건네려는 것이었습니다.유딧기 15:8 · 두루새김
지금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온 사람들은 베툴리아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장로들은 이전에 조언과 지시를 전했지만(4:6–8), 이번에는 직접 베툴리아를 찾아옵니다.
종교적 권위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한 여인이 이루어 낸 일을 인정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이 베푸신 「좋은 일들」을 보러 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유딧에게 「이스라엘을 위해 좋은 일을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일을 두고 누가 했는지를 다르게 말하지만, 본문은 두 설명이 서로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을 유딧이 자신의 손으로 행했다는 것, 그것이 본문이 제시하는 승리의 이해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유딧의 앞선 기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의 손으로 하려는 일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9:9–10). 그 기도가 있은 뒤 실제 행동에 나섰고,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 결과를 보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유딧에게 주어진 세 가지 이름
지도자들이 유딧에게 건네는 찬사는 점점 범위를 넓혀 갑니다.
그들은 유딧을 만나자 모두 한마음으로 복을 빌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을 빛내는 분입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큰 자랑입니다. 당신은 우리 민족의 큰 자랑입니다.」유딧기 15:9 · 두루새김
유딧은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가 구한 성읍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툴리아입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그녀를 「예루살렘을 빛내는 분」이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 이름으로 유딧을 높이는 것은 그녀의 승리가 지방 성읍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과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관계된다는 인정입니다. 이어서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찬사를 받는 사람은 군대를 지휘하는 왕도, 제사장도, 전쟁 경험이 풍부한 장군도 아닙니다. 남편을 잃고 베툴리아에 살던 유딧입니다. 그녀는 앞서 성읍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항복의 기한을 정해 두었을 때 그 판단을 비판했습니다(8:11–17). 이제 그 지도자들의 판단을 넘어 행동했던 그녀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까지 인정합니다.
온 백성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함으로써 지도자들의 축복은 공동체 전체의 축복이 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장막이 유딧에게 주어지다
11절은 다소 뜻밖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천막과 그 안에 있던 은그릇, 침대, 대접, 모든 물건을 받는 것입니다.
백성은 무려 서른 날 동안 적의 진영에서 전리품을 거둡니다. 이 기간은 아시리아 군대가 남긴 물자의 규모를 강조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은 아시리아 군대의 권력이 집중된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명령을 받기 위해 그곳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열리는 잔치는 그의 부와 위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침대는 유딧을 자기 뜻대로 차지하려던 홀로페르네스의 욕망이 드러난 장소였습니다(12:16; 13:2–4).
그런데 이제 그 천막과 침대는 유딧의 소유가 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믿었던 장소가, 그가 굴복시키려던 여인에게 전리품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야기는 유딧이 그것들을 노새와 수레에 싣는 모습까지 보여 줍니다.
그의 천막은 더 이상 누구도 두려워하며 들어가야 할 장소가 아닙니다. 이제 사람들이 그 천막의 물건들을 수레에 실어 밖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유딧은 앞에서 춤추고, 무장한 남자들은 뒤따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여자가 유딧을 보러 달려와 복을 빌어 주고, 유딧을 위해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유딧은 덩굴로 꾸민 지팡이들을 손에 들고, 함께 있던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유딧기 15:12 · 두루새김
이 장면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축제의 모습을 사용하면서, 그 축제의 중심에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놓습니다.
노래의 앞자리에 선 여인
13절은 행렬의 순서를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유딧과 여자들은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을 썼습니다. 유딧은 모든 여자를 이끌고 춤을 추며 온 백성의 앞에서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무기를 갖추고 관을 쓴 채 찬송을 부르며 뒤따랐습니다.유딧기 15:13 · 두루새김
이들은 조금 전까지 적을 추격하며 싸우던 사람들입니다. 아직 무기를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행동은 싸움이 아니라 찬송입니다. 무기와 관이 한 사람의 몸에 함께 놓이고, 군사들이 춤추는 여자들 뒤에서 노래합니다.
전투가 벌어질 때 사람들은 적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며 노래합니다. 앞서 나가는 유딧의 손에는 더 이상 홀로페르네스를 죽일 때 사용한 칼이 아니라 축제를 위한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유딧이 이끄는 마지막 행렬은 더 이상 적을 죽이기 위한 행렬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는 행렬입니다.
유딧이 시작하고 온 백성이 부르는 노래
15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유딧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앞장서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온 백성도 그 찬양을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유딧기 15:14 · 두루새김
이것은 앞서 유딧의 행동이 이스라엘 전체의 행동으로 이어졌던 과정과 닮았습니다. 유딧은 혼자 적의 진영에 들어갔지만,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이 적을 추격할 수 있었습니다.
유딧의 승리가 온 백성의 승리가 되었듯이, 유딧의 감사도 온 백성의 찬양이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덩굴로 꾸민 지팡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튀르수스(θύρσος)입니다. 이 말은 본래 그리스 문화에서, 특히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축제에서 사용하던 장식 지팡이를 가리킵니다. 흥미롭게도 마카베오기 하권 10:7에서도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그곳에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한 뒤 축하하는 사람들이 이 지팡이와 아름다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송합니다. 따라서 유딧기에 이 지팡이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행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 15:20–21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집트의 군대가 바다에서 멸망한 뒤, 미리암은 소고를 손에 들고 나아갑니다. 여자들은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그녀를 따르고, 미리암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사사기 4–5장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군대의 장군 시스라는 한 여인 야엘의 손에 죽임당하고, 이어서 드보라와 바락의 승리 노래가 나옵니다. 특히 사사기 5:24는 야엘을 여자들 가운데 복 받은 사람으로 높입니다. 유딧이 여자들 가운데 복 받은 사람으로 찬양받는 장면(13:18)과 함께 읽으면, 적의 군사력을 뒤집은 여인의 행동이 공동체의 노래로 이어지는 공통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딧기 15장이 이 두 본문을 직접 인용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개별 문장보다 이야기의 구조와 이미지가 함께 보여 주는 관계가 나타납니다.
승리의 마지막 모습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용기와 공동체의 응답을 통해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유딧은 자신이 할 일을 행했고, 사람들은 그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함께 받아들였으며, 마침내 그 일을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로 이해했습니다.
15장의 마지막 장면에는 더 이상 홀로페르네스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의 천막도 이제 비어 있습니다. 적들이 도망친 산길을 따라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어느새 전쟁의 함성 대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유딧이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을 쓰고 앞에서 춤춥니다. 여자들이 그녀와 함께 나아갑니다. 무기를 든 남자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온 백성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한때 두려움 때문에 성읍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함께 노래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유딧기 15장은 그 행렬 속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