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온 땅을 치려는 왕

평화를 청한 사람들, 신을 빼앗는 제국

전쟁보다 무서운 일이 있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었는데, 정작 지키고 싶었던 것까지 빼앗기는 일입니다.

유딧기 3장은 전투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해안 지방의 사람들이 홀로페르네스에게 사신을 보내 평화를 청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과 밀밭과 가축을 내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도시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까지 홀로페르네스의 뜻대로 처분해도 좋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이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은 재산이나 노동력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읽는 시간 12분소단락 63장 본문 읽기 →

평화를 구한다는 말의 무게

유딧기 3:1–5 본문 →

앞 장에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가 여러 지역을 파괴하자, 해안 지방의 주민들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3장은 그 두려움이 어떤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해안 지방 사람들은 홀로페르네스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평화를 청하는 이런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유딧기 3:1 · 두루새김

그러나 이 평화는 서로 대등한 사람들이 만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한쪽은 거대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고, 다른 쪽은 그 군대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희는 느부갓네살 대왕의 종으로 나리 앞에 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저희를 쓰십시오.」유딧기 3:2 · 두루새김

특히 2절부터 4절까지는 같은 형식이 세 차례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을 내어줍니다.

다음에는 생활의 기반을 내어줍니다.

「보십시오. 저희가 사는 곳들과 모든 밀밭, 양 떼와 소 떼, 저희 천막에 딸린 모든 가축 우리가 나리 앞에 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쓰십시오.」유딧기 3:3 · 두루새김

마지막에는 도시와 주민들까지 내어줍니다.

「보십시오. 저희 도시들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나리의 노예입니다. 오셔서 이 도시들을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유딧기 3:4 · 두루새김

세 절은 모두 「보십시오」로 시작합니다. 또한 그들이 내어주는 대상이 점점 넓어집니다.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여 사는 곳과 밀밭과 가축으로, 다시 도시 전체와 그 안의 주민들로 넓어집니다.

여기서 사신들은 단순히 재산 목록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는 한 공동체가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차례로 내려놓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전쟁에 나갈 병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장사하는 사람도, 아이와 노인도 있을 것입니다. 본문이 그 구성원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지만, 「저희 도시들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라는 표현은 항복의 대상이 공동체 전체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들이 이처럼 철저히 항복하는 까닭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홀로페르네스는 저항하는 지역의 밭을 불태우고 가축을 없애며 젊은이들을 죽였습니다. 그 군대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선택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항복을 단순히 비겁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본문이 보여주는 현실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는 해석입니다.

그들은 살아남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항복문에는 한 가지 중요한 빈자리가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가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어디까지 보호해 줄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없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것은 조건부 평화협정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무조건적인 복종입니다.

원문의 아가톤(ἀγαθός)은 좋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여기서는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하라는 뜻이라기보다 홀로페르네스가 좋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이제 무엇이 좋은지 결정하는 기준이 주민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도시를 어떻게 다룰지 판단하는 권한이 정복자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얻으려고 했지만, 평화의 내용을 결정할 권리까지 넘겨준 셈입니다.

항복한 도시를 자기 군대의 일부로 만들다

유딧기 3:6 본문 →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군대는 해안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높이 솟은 도시들에 그곳을 지킬 군대를 배치했습니다. 그의 군사들은 그 도시들에서 남자들을 가려 뽑아 자기들과 함께 싸울 병사로 데려왔습니다.유딧기 3:6 · 두루새김

도시를 지킬 군대가 머문다는 것은 단지 적군이 공격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도시 안에 제국의 군대가 머물며 그곳을 통제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미 도시 전체가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홀로페르네스가 그곳 사람들을 자기 군대에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도시만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국의 다음 원정에 동원될 수 있는 병력이 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힐 뿐 아니라 전쟁을 벌일 힘도 키우고 있습니다.

처음에 주민들은 「원하시는 대로 저희를 쓰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말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어준 것은 군사적 협력만이 아닙니다.

머리에 두르는 관과 춤 뒤에 벌어진 파괴

유딧기 3:7 본문 →

7절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그 도시들과 주변 온 지역의 사람들은 머리에 두르는 관과 춤과 손북으로 홀로페르네스를 맞이했습니다.유딧기 3:7 · 두루새김

머리에 두르는 관은 환영과 축하의 표시가 될 수 있고, 춤과 손북은 기쁨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진정한 기쁨의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마음속으로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앞서 그들이 홀로페르네스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환영은 정복자에게 충성과 호의를 표시하려는 행동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춤을 추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들의 땅을 파괴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장면 사이에 오랜 시간의 경과나 새로운 갈등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환영과 파괴가 바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배열은 독자가 항복과 환영을 안전의 보장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5:20에서는 미리암과 여자들이 손북을 들고 춤추며 바다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기뻐합니다. 사사기 11:34에서는 입다의 딸이 손북과 춤으로 아버지를 맞이합니다. 유딧기 3장에서도 사람들은 이러한 환영의 몸짓을 사용합니다.

모든 언어가 한 사람을 신으로 부르게 하다

유딧기 3:8 본문 →

여기서 정복 전쟁은 종교적 지배로 넓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땅을 온통 파괴하고, 그들이 신들을 섬기던 숲을 베어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온 땅의 모든 신을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이 느부갓네살만 섬기고, 어떤 언어를 쓰든 어느 종족에 속하든 모두 그를 신으로 부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유딧기 3:8 · 두루새김

처음에 주민들은 느부갓네살의 종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홀로페르네스가 요구하는 최종적인 상태는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갑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을 신으로 불러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세금을 바치거나 군사적 명령을 따르는 것은 정치적 복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신으로 부르고 그만을 예배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적 충성까지 그에게 바치는 일입니다.

그리스어는 두 가지 행동을 구별합니다. 첫 번째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누구를 신으로 인정하고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왕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을 통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게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이 오직 한 사람을 예배하고 신으로 부르도록 강제하는 방식입니다.

다니엘 3:4–6에도 주목할 만한 장면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러 민족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리라고 명령합니다.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위협으로 제시됩니다.

두 본문은 왕이 요구하는 숭배의 구체적인 대상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는 왕이 세운 금 신상이고, 유딧기 3장에서는 느부갓네살 자신입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제국이 여러 민족의 종교적 충성을 하나의 대상으로 집중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신명기 12:2–3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민족들이 신들을 섬기던 장소를 없애고 그들의 제단과 신상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합니다. 유딧기 3:8에서도 다른 민족의 종교적 장소가 파괴됩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에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에서 그 행동을 설명하는 목적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만을 섬겨야 한다는 언약의 요구가 중심입니다. 반면 유딧기의 홀로페르네스는 한 인간인 느부갓네살만을 신으로 섬기게 하려고 다른 민족들의 신들을 없앱니다. 그러므로 단지 종교적 시설을 파괴했다는 사실만으로 두 행동을 동일한 신학적 의미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시편 86:9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주 앞에 와서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유딧기에서는 느부갓네살이 모든 민족에게 자신을 예배하도록 요구합니다. 시편의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지만, 유딧기의 제국은 피조물인 왕을 그 자리에 놓으려 합니다.

출애굽기 5:1에서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어 광야에서 여호와야훼를 위해 절기를 지키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여호와야훼가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이스라엘을 보내기를 거절합니다(출애굽기 5:2).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히 노동 조건이 개선되거나 거주지가 바뀌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길 수 있도록 해방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며 누구를 섬기는가 하는 문제는 자유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6:13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야훼를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른 통치자에게 넘겨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근거로 유딧기 3장의 주민들이 당장 무기를 들고 저항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이 어떤 신앙적 판단을 했는지 말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선택의 가능성과 위험도 충분히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 나오는 해안 주민들이 느부갓네살을 신으로 섬기라는 요구에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두 자신의 신앙을 버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국이 사람들에게 왜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아직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제국이 무엇을 요구하는지가 분명해지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앞으로 어떤 문제에 맞닥뜨릴 것인지도 점차 선명해집니다.

이제 군대는 해안을 떠나 유대의 산지를 향해 움직입니다.

조금 더 깊이

바로 뒤에서 땅의 모든 신을 없애는 목적이 설명되므로, 이 장의 숲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숲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그들이 신들을 섬기던 숲」으로 옮겼습니다. 또한 「땅」으로 옮긴 호리아는 본래 경계나 영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두루새김의 「그들의 땅을 온통 파괴하고」는 이 지역 전체에 대한 파괴를 표현하지만, 그 문구만으로 모든 건물과 들판이 예외 없이 무너졌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적 문맥을 고려하여 첫 부분을 성소의 파괴로 보는 읽기도 있습니다. 그리스어 자체에서 분명한 것은 그들의 영역을 파괴하고 숲을 베었다는 사실이며, 이어지는 문장이 그 행동의 종교적 목적을 밝힌다는 점입니다. 본문은 홀로페르네스에게 「온 땅의 모든 신을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앞 장에 기록된 느부갓네살의 연설에는 모든 민족의 신들을 없애라는 명령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홀로페르네스가 왕에게서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 정책을 지시받았는지, 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정복 권한을 어디까지 넓혀 실행한 것인지 본문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도단 앞에 도착한 군대

유딧기 3:9–10 본문 →

그는 에스드렐론 앞쪽, 도단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도단은 유대의 큰 산줄기 맞은편에 있었습니다.유딧기 3:9 · 두루새김

에스드렐론은 구약에서 이스르엘 평야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펼쳐진 넓은 평야로, 고대에 군대와 사람들이 이동하는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군대는 넓은 지역을 가로질러 산지의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정복당한 해안 도시에서 아직 정복되지 않은 산악 지역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의 군대는 게바와 스키티아 사람들의 도시 사이에 진을 쳤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군대의 짐을 모두 모으려고 그곳에서 꼬박 한 달 동안 머물렀습니다.유딧기 3:10 · 두루새김

군대에 필요한 보급품과 장비를 한데 모으는 시간입니다. 앞선 장에서 군대는 엄청난 속도로 여러 지역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유대의 산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그 앞에 도착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37:17–28에서 요셉은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형들에게 붙잡히고, 결국 이집트로 팔려 갑니다. 도단은 한 사람이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의 손에 넘겨지는 이야기의 배경이었습니다. 또 다른 도단 이야기는 열왕기하 6:13–17에 나옵니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붙잡으려고 군대를 보내 도단을 에워쌉니다. 엘리사의 종은 성읍을 둘러싼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지만, 엘리사는 자신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적군보다 많다고 말합니다. 그가 기도하자 종의 눈이 열리고, 산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유딧기 3장과 이 사건 사이에 저자가 의도한 직접적인 문학적 암시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지명을 배경으로 거대한 군대의 위협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성경 안의 두 이야기를 의미 있게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스키티아 사람들의 도시」는 그리스어로 스키토폴리스라 불린 벳산을 가리킵니다. 이 도시는 이스르엘 평야의 동쪽 끝에 자리한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게바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

유딧기 3:1–10 본문 →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항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자신들이 신으로 부르는 대상까지 바꾸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참된 자유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누구를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지까지 다른 사람이 결정한다면, 그 사람의 가장 깊은 자유는 침해당한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유대의 큰 산줄기 맞은편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병사들은 흩어진 것이 아니라 한데 모여 있습니다. 군대의 짐도 모이고 있습니다. 군대는 꼬박 한 달을 머물며 다음 움직임을 준비합니다.

그들은 넓은 평야를 지나왔고, 이제 산지가 눈앞에 있습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자신들의 신을 버리게 했던 군대가, 이제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백성의 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