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6장 · 속죄의 날

휘장 안의 제사장과 광야로 떠나는 염소

레위기 16장은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야훼 앞에 가까이 나아갔다가 죽은 뒤에,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레위기 16:1 · 두루새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레위기 10장에서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지 않은 불을 바쳤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다가 죽었습니다.

두 아들이 죽은 장소와 관련하여, 아버지에게는 살아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제시됩니다.

아론은 피를 가지고 휘장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반대로 살아 있는 숫염소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짊어지고 광야로 나갑니다.

이 두 움직임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레위기 16장은 이 두 장면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와 부정함을 지닌 백성 가운데 어떻게 계속 머무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16장 본문 읽기 →

아론도 준비 없이 들어갈 수 없다

레위기 16:1–4 본문 →

3–4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 준비해야 할 제물과 옷을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 아론에게 전하여라. 그는 아무 때나 휘장 안쪽 성소, 곧 궤 위에 있는 속죄판 앞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래야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름 속에서 속죄판 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레위기 16:2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는 아론에게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어떻게 들어와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아론은 자신을 위한 정화 제물로 어린 수소 한 마리, 번제로 숫양 한 마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몸을 씻은 뒤 거룩한 아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는 대제사장을 위해 금실과 청색, 자주색, 진홍색 실로 장식된 옷과 에봇, 흉패 등을 만들도록 명령합니다. 그 옷에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새긴 보석들도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6장에서 안쪽 성소에 들어갈 아론에게는 아마포 속옷과 속바지, 띠와 두건이 요구됩니다.

이 옷 역시 거룩한 옷입니다. 다만 평소 대제사장의 화려한 예복과 달리, 이날의 특별한 성소 예식에는 아마포 옷이 지정되어 있다는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 차이를 겸손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옷의 상징적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가장 높은 제사장조차 가장 거룩한 곳에 들어갈 때 자기 방식으로 옷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론은 백성의 죄를 처리하는 제사장이지만, 그 자신도 속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론은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먼저 속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은 그 자체로 정결함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특권을 가진 사람일수록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숫염소 두 마리 —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서 떠난다

레위기 16:5–10 본문 →

5절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정화 제물로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로 숫양 한 마리를 내놓습니다.

그러나 두 숫염소는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론은 두 마리를 여호와야훼 앞, 만남의 천막 입구에 세우고 제비를 뽑습니다.

「아론은 숫염소 두 마리를 놓고 제비를 뽑아야 한다. 제비 하나는 여호와야훼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것이다.」레위기 16:8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비가 뽑힌 염소는 정화 제물로 바칩니다. 다른 염소는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남겨 둡니다. 나중에 광야로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어 아자젤(⁨עֲזָאזֵל⁩)의 의미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광야와 관련된 어떤 존재의 이름으로 읽는 것입니다. 둘째, 염소를 보내는 광야의 특정 장소나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읽는 것입니다. 셋째, 죄를 멀리 내보내거나 제거하는 행위와 관계된 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느 해석을 택하느냐에 따라 8절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따라서 아사셀이 정확히 누구인지, 어디인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성소의 제단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채로 여호와야훼 앞에 세워졌다가 광야로 보내집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아사셀이라는 다른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아론이 피를 가지고 휘장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와야훼를 위한 것이고」와 「아사셀을 위한 것이다」가 나란히 놓인 표현은 아사셀을 어떤 존재의 이름으로 이해할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칠십인역은 이 표현을 ‘내보내기’와 관련된 말로 옮기는데, 이는 제거의 의미로 이해한 고대의 읽기를 보여 줍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히브리어의 본래 의미가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10절의 「그 염소를 두고 속죄 예식을 치르고」라는 자리는 원문에서 염소 위에서 예식을 한다는 뜻인지, 염소를 위해 예식을 한다는 뜻인지 해석이 갈립니다.

향의 구름과 피 — 죽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는 방법

레위기 16:11–15 본문 →

11절에서 아론은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한 수소를 잡습니다.

그다음 불그릇에 숯을 담고, 향을 두 손 가득 가지고 휘장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은 첫 절에서 언급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레위기 10:1–2에서 아론의 두 아들은 불그릇에 불과 향을 담아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지 않은 불을 바쳤다가 죽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 여호와야훼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여호와야훼 앞 제단에서 숯을 가져오고, 향을 휘장 안쪽으로 가지고 들어가 정해진 방식으로 피웁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 향을 숯불 위에 놓아, 향 연기가 증언 위에 있는 속죄판을 덮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죽지 않을 것이다.」레위기 16:13 · 두루새김

아론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들어가지만, 아무런 가림 없이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향 연기가 속죄판을 덮은 다음, 피를 뿌리는 예식이 시작됩니다.

아론은 수소의 피를 속죄판의 동쪽 면 위에 뿌리고, 속죄판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그다음 아론은 백성을 위한 숫염소를 잡고, 그 피도 같은 방식으로 속죄판 위와 앞에 뿌립니다.

이제 아론은 성소 안에서 피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다음 절에서 그 이유를 뜻밖의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피가 필요한 대상은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두 절 모두 구름이라는 말을 쓰지만, 두루새김은 13절의 구름을 「향 연기」로 풀어 옮겼습니다. 2절의 구름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방식과 관련되고, 13절의 향 연기는 아론이 향을 피워 만드는 것입니다. 속죄판은 히브리어 카포레트(⁨כַּפֹּרֶת⁩)로, 증언의 궤를 덮는 덮개입니다. 출애굽기 25: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바로 그 속죄판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와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4절에서 동쪽 면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속죄판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동쪽 방향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성소도 속죄가 필요한가?

레위기 16:16–19 본문 →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함과 그들이 거역한 일, 곧 그들의 모든 죄 때문에 성소를 위한 속죄 예식을 치러야 한다. 그들의 부정함 가운데 그들과 함께 있는 만남의 천막에도 같은 예식을 치러야 한다.」레위기 16:16 · 두루새김

우리는 보통 속죄라고 하면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받는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속죄는 사람이 지은 죄의 책임만을 다루는 개념이 아닙니다. 죄와 부정함이 성소에 미치는 예식상의 영향도 다룹니다.

따라서 성소에 대한 속죄는 죄를 짓지 않은 건물에 용서를 베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부정함으로 인해 예식상 영향을 받은 거룩한 장소를 깨끗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백성의 부정함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 가운데 머물고 계신다는 사실 역시 본문이 전제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머무시는 장소를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정하십니다.

속죄일에는 백성의 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백성 가운데 계속 머무시는 일이 문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16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부정함」뿐 아니라 「그들이 거역한 일」과 「모든 죄」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다루는 문제는 몸의 부정함이나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뜻을 거스른 죄까지 포함됩니다.

이는 레위기 4장에서 주로 실수로 지은 죄를 다루는 정화 제물 규정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집니다. 물론 속죄일 예식이 모든 고의적인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자동으로 면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여기서 성소와 공동체의 속죄 예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는 아론이 성소에서 속죄 예식을 치르려고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다른 누구도 만남의 천막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아론은 자신과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 온 공동체를 위해 홀로 성소 예식을 치릅니다.

18–19절에서는 예식이 제단으로 이어집니다.

아론은 수소의 피와 숫염소의 피를 제단 둘레의 뿔들에 바르고, 다시 일곱 번 뿌립니다. 본문은 그 목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또 그 피를 손가락으로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려야 한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함에서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구별해야 한다.」레위기 16:19 · 두루새김

여기서 피는 예식상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레위기 17:11은 피와 생명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피가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도록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설명을 함께 읽으면 피가 왜 이처럼 중요한 예식의 수단인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 깨끗하게 되었다면, 이제 백성의 죄악을 어떻게 할 것인가요?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어느 제단을 가리키는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출애굽기 30:10에서 향 제단의 뿔에 해마다 속죄 예식을 치르도록 한 규정과 연결하면 성소의 향 제단으로 읽을 근거가 있습니다. 반면 아론이 제단으로 「나가」는 이동 경로와 성소 밖으로 넓어지는 예식의 흐름을 고려하면 마당의 번제 제단으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문은 제단의 종류를 특정하지 않으므로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놓인 모든 죄악

레위기 16:20–22 본문 →

20절에서 살아 있는 숫염소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 염소는 앞서 제비를 뽑았을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염소는 이미 죽임을 당했고 그 피는 성소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살아 있는 염소에게 다른 역할이 주어집니다.

「아론은 살아 있는 숫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그 위에 대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악과 거역한 모든 일, 곧 그들의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 죄들을 숫염소의 머리에 지운 뒤, 그 숫염소를 미리 준비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내야 한다.」레위기 16:21 · 두루새김

처음 성소에 들어갈 때 아론의 두 손에는 향이 가득했습니다. 이제 성소의 속죄 예식을 마친 그의 두 손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놓입니다.

그리고 「모든」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표현은 그날 처리되는 죄가 몇몇 작은 잘못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들이 일부러 거역한 일까지 고백의 대상이 됩니다.

앞에서 피를 뿌릴 때는 이스라엘의 죄와 부정함이 성소에 미친 영향을 깨끗하게 하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죄악 자체를 염소에게 지워 밖으로 보내는 행위가 중심입니다.

「그 숫염소는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외딴 땅으로 가게 된다. 염소를 데려간 사람은 그 염소를 광야에 놓아주어야 한다.」레위기 16:22 · 두루새김

염소는 단순히 진영의 경계를 조금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거주지와 분리된 광야로 보내집니다.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더라도 염소가 계속 진영 안에 머물러 있다면 이 예식의 마지막 동작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염소는 광야로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고백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멀리 옮겨져야 합니다.

하나의 염소는 피를 통해 성소를 깨끗하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다른 염소는 죄악을 지고 진영 밖으로 떠납니다.

둘은 서로 경쟁하는 예식이 아니라, 속죄라는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본문은 광야로 떠난 염소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22절은 그 염소를 광야에 놓아주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예식의 핵심을 염소의 죽음에 두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른 제사 규정에서도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가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1:4에서는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그런데 16:21에서는 전통적으로 읽어 온 히브리어 본문이 두 손을 명시합니다. 기록된 글자의 형태와 전통적으로 읽는 형태 사이에는 손이 하나인지 둘인지에 관한 차이가 있지만, 두루새김이 따른 전통적 읽기는 두 손입니다. 시편 103:12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서 죄를 멀리 옮기시는 일이 동쪽과 서쪽 사이의 거리로 표현됩니다. 이 시편이 레위기 16장의 숫염소 예식을 직접 인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멀리 옮기신다는 이미지는 살아 있는 염소가 죄악을 짊어지고 외딴 땅으로 떠나는 장면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의식이 끝난 뒤에도 남는 일들

레위기 16:23–28 본문 →

숫염소가 광야로 떠난 뒤, 아론은 만남의 천막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아마포 옷들을 벗어 그곳에 둡니다.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은 다음 나가서 자신과 백성을 위한 번제를 드립니다.

처음에는 몸을 씻고 특별한 아마포 옷을 입어야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성소 예식을 마친 뒤에는 다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옷을 입는 행위와 벗는 행위가 예식의 시작과 끝을 구분합니다.

아론의 제사장 신분은 변하지 않지만, 그가 특별한 성소 예식을 치를 때 입어야 하는 옷과 그 일을 마쳤을 때 취해야 하는 행동은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정화 제물의 지방을 제단 위에서 태웁니다.

그런데 26–28절에 이르면 시선이 제사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 갑니다.

숫염소를 광야로 보낸 사람은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성소에서 피를 사용한 수소와 숫염소의 가죽과 고기와 오물도 진영 밖으로 내보내 불태워야 합니다. 그것들을 태운 사람 역시 옷을 빨고 몸을 씻은 뒤에 진영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일을 했는데도 몸과 옷을 씻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식상의 정결이 단순히 선한 행동을 했는지 악한 행동을 했는지를 판단하는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성소, 진영, 광야는 아무 구별 없이 넘나드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진영 밖에서 필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영구히 공동체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맡은 일을 마치고 씻은 다음 돌아옵니다. 따라서 정결 규정에서 경계는 단순히 누군가를 내보내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절차를 거쳐 돌아올 수 있는지도 알려 줍니다.

이제 공간을 따라 진행되던 설명은 시간에 관한 명령으로 바뀝니다.

모든 백성이 참여하지만, 모든 백성이 일하지는 않는다

레위기 16:29–34 본문 →

29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이 예식을 해마다 반복해야 하는 규정으로 정하십니다.

「이것은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정이다. 일곱째 달 열흘째 날에는 너희 자신을 괴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든 너희 가운데 머물러 사는 외국인이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레위기 16:29 · 두루새김

지금까지는 아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온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등장합니다.

「너희 자신을 괴롭게 하여라」는 명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표현은 전통적으로 금식과 연결되어 이해되었습니다. 이사야 58:3–5에서도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과 금식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나 레위기 16장 자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어느 시간부터 금식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날 백성이 자신의 평소 생활을 절제하며 낮추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일을 하지 말라는 명령은 분명합니다. 31절은 이날을 「일을 완전히 멈추고 쉬는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제사장은 이날 복잡하고 엄중한 예식을 치러야 합니다. 제물을 준비하고, 성소에 들어가고, 피를 뿌리고,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동안 온 백성에게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렇다고 백성이 아무 관계 없는 구경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괴롭게 하라는 명령은 그들 역시 이날의 의미에 맞게 참여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백성은 제사장이 치러야 할 속죄 예식을 자기들의 노동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날에 너희를 깨끗하게 하려고 너희를 위한 속죄 예식을 치를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너희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질 것이다.」레위기 16:30 · 두루새김

제사장이 정해진 예식을 치르는 동안, 백성은 자신을 낮추고 일상적인 노동을 멈춥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지는 일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내는 성취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정하신 속죄 예식을 통해 받습니다.

29절은 이 명령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난 사람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머물러 사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속죄일의 쉼에 관한 명령이 단순히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건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레위기 23:26–32에서는 속죄일이 이스라엘의 절기 규정 안에 다시 등장합니다. 거기서도 일곱째 달 열흘째 날,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 노동을 멈추는 일이 강조됩니다. 이는 레위기 16장의 속죄 예식이 제사장만의 특별한 예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의 정기적인 예배 생활을 이룬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32절에 이르면 시선이 미래로 넓어집니다.

아론의 뒤를 이어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식을 치른 제사장이 이 예식을 맡아야 합니다. 처음 이 장은 아론의 두 아들이 죽은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는 아론이 아닌 후임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이제 속죄일은 아론 개인을 위한 한 번의 특별 허가가 아닙니다. 제사장직을 이어받는 사람들도 따라야 할 지속적인 규정이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에 대해 해마다 한 번 그들을 위한 속죄 예식을 치러야 한다. 이것은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정이다.」 아론은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레위기 16:34 · 두루새김

처음에는 명령받지 않은 방식으로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갔다가 죽은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방식으로 행하는 일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이 장은 죽음의 기억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속죄의 질서로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했다는 짧은 문장이 나옵니다. 두루새김은 그 행위자를 아론으로 밝혔지만,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9:7–14와 10:1–4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는 예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이는 레위기 본문을 직접 인용하여 동일한 절차를 반복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후대의 그리스도교적 읽기에서 속죄일 예식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모형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을 그 연결로 곧장 건너뛰어 읽으면 이 장이 이스라엘에게 말했던 중요한 문제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광야로 멀어지는 염소

레위기 16:1–34 본문 →

성소를 깨끗하게 하는 일과 백성의 죄악을 제거하는 일은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라는 하나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마주한 질문은 자신들의 죄와 부정함 가운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6장의 답은 여호와야훼가 그들 가운데 머무시기 위해 성소와 백성을 깨끗하게 하는 길을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살아 있는 숫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었습니다. 그는 그 위에 대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과 거역한 모든 일과 모든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런 다음 염소를 미리 준비된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이제 염소는 진영을 떠납니다.

만남의 천막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제단으로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거주지에서 멀어지는 광야로 향합니다.

그날 성소 안에서는 피가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장소를 깨끗하게 하는 예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성소 밖에서는 살아 있는 염소가 백성의 죄악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날 일을 멈추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고, 그들의 죄악을 멀리 옮기도록 정하신 날이었습니다.

진영에서는 속죄일의 쉼이 이어지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진 염소는 광야를 향해 멀어져 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