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35편
이 장의 자리 · 1–41편 · 첫째 권
누가 마지막 말을 할 것인가
시편 35편은 매우 거친 기도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 저와 다투는 자들과 다투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으며,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뒤로 물러나고, 마침내 자신들이 놓은 함정에 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의 길이 어둡고 미끄럽게 되기를 바라며,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에 어째서 이런 말이 들어 있을까요? 앞선 시편 34편에서 여호와야훼께 피하는 사람의 복을 노래했던 다윗이, 이번에는 하나님께 무기를 들고 싸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두 시편 사이에는 짧지만 의미 있는 연결이 있습니다. 시편 34편에서 여호와야훼의 천사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둘레에 진을 치고 그들을 구해 냈습니다(34:8). 그런데 시편 35편에서는 그 천사가 적들을 밀쳐 내고 뒤쫓습니다(35:5–6).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의 자리에서, 이제 그를 위협하는 세력을 향해 시선이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35편의 중심은 단순히 적들을 없애 달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이 시편을 끝까지 읽으면 다윗을 괴롭히는 것이 몸에 닥친 위협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고, 그가 베푼 선을 악으로 갚으며, 그가 불행해졌을 때 모여들어 기뻐합니다. 그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들이 모든 것을 보았다고 떠듭니다.
다윗이 빼앗길 위기에 놓인 것은 목숨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말할 기회, 사람들 앞에서 정당하게 인정받을 자리, 그리고 평화롭게 살아갈 가능성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가장 절실하게 구하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닙니다.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의 말과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자신의 삶에 대한 마지막 말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시편은 세 차례에 걸쳐 그 기도를 깊게 만듭니다. 첫째 장면인 1–10절에서는 하나님을 전쟁터로 부릅니다. 둘째 장면인 11–18절에서는 자신이 당한 배신과 억울함을 밝힙니다. 마지막 19–28절에서는 하나님을 재판관으로 부르며 자신의 다툼을 맡깁니다.
세 부분은 각각 찬양의 약속으로 끝납니다(9–10절, 18절, 27–28절). 그러나 그 찬양은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보고가 아닙니다. 아직 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구원을 바라보며 드리는 약속입니다.
바로 여기에 시편 35편의 긴장이 있습니다. 다윗은 아직 적들의 입을 막지 못했지만, 언젠가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찬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싸움에 불러들이는 기도
다윗의 첫마디에는 법정과 전쟁터가 겹쳐 있습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야훼여, 나와 다투는 자들과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들과 싸워 주십시오.시편 35:1 · 두루새김
첫 번째 「다투어 주십시오」에 사용된 말은 단순한 말다툼을 넘어 법적인 분쟁이나 재판에서 벌이는 다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는 상황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반면 뒤의 「싸워 주십시오」는 실제적인 전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요청합니다. 자신을 대신해 법정의 다툼을 맡아 주시고,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과 싸워 달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여호와야훼께 무장을 요청합니다.
방패와 큰 방패를 붙잡으시고 나를 도우러 일어나 주십시오.시편 35:2 · 두루새김
창을 뽑아 나를 뒤쫓는 자들 앞을 막아 주십시오. 내 영혼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너의 구원이다.」시편 35:3 · 두루새김
방어와 공격을 위한 무기가 모두 갖추어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쟁에 나서시는 용사처럼 묘사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인간의 무기를 사용하신다는 진술이 아니라, 그분이 나서시는 모습을 전쟁의 이미지로 표현한 시적 언어입니다.
3절의 「막아 주십시오」(סָגַר)는 동사로 읽을 수도, 무기 이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다윗이 바라는 것은 뒤쫓는 자들을 막을 수 있는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그런데 무기들이 등장하는 이 장면은 뜻밖의 요청으로 끝납니다.
다윗은 적들을 무찔러 달라고 요청하다가 갑자기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구합니다. 원문에서는 자신의 영혼에게 말을 건네 달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깥의 위험이 물러나는 일만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너의 구원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단지 구원의 수단을 제공하신다는 뜻보다 더 직접적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다윗의 구원이 되신다는 선언입니다.
아직 원수들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전투 결과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먼저 자신을 향해 말씀해 달라고 합니다. 적들의 위협이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위협보다 더 결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기도가 온화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제 적들이 어떤 결말을 맞기를 바라는지 거리낌 없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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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에서 창과 함께 사용된 히브리어 세고르는 해석이 갈립니다. 「막다」라는 동사의 명령형으로 읽어 뒤쫓는 자들의 길을 막아 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문맥상 무기 이름으로 이해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앞의 가능성을 따라 「저를 뒤쫓는 자들 앞을 막아 주십시오」로 옮겼습니다. 한편 사무엘상 24:12–15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앞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양쪽 사이를 판단하시고 자신의 다툼을 맡아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를 얻었으면서도 직접 손을 대지 않습니다. 시편 35편의 구체적인 배경이 그 사건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점에서는 두 본문이 만납니다.
자신이 놓은 함정에 자신이 빠지게 하십시오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부끄러움과 모욕을 당하고, 나를 해칠 궁리를 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나 수치를 당하게 해 주십시오.시편 35:4 · 두루새김
여기서 부끄러움은 단순히 기분이 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여기며 추진하던 계획이 무너지고,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나는 결과를 포함합니다.
시인은 이어서 적들이 쫓겨나는 모습을 연달아 그립니다.
그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겨처럼 되게 하시고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그들을 밀쳐 내게 해 주십시오.시편 35:5 · 두루새김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해 주십시오.시편 35:6 · 두루새김
바람 앞의 겨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가볍고 힘없이 흩어집니다. 어둡고 미끄러운 길에서는 발을 디디기도 어렵습니다.
이 두 이미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적들이 자신들의 힘과 계획을 더 이상 뜻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까지 다윗을 뒤쫓던 자들이 오히려 뒤쫓기는 자들이 됩니다. 역할이 뒤집힙니다.
다윗은 왜 이런 뒤집힘을 구할까요?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을 그물을 구덩이에 숨겼고, 까닭 없이 내 목숨을 노려 땅을 팠으니,시편 35:7 · 두루새김
여기에는 「아무 까닭 없이」가 두 번 등장합니다. 이 말은 아무 대가 없이, 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행해지는 일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윗을 해치려는 행동에 정당한 근거가 없다는 그의 호소를 강조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적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공격이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물과 구덩이는 사냥의 이미지입니다. 사냥감은 보이지 않는 그물이나 감추어진 구덩이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준비한 위험에 자신도 모르게 걸려듭니다. 다윗은 자신이 바로 그러한 처지에 놓였다고 고발합니다.
8절에서는 이 이미지가 뒤집힙니다.
그자에게 뜻밖의 파멸이 들이닥치고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걸려 그 안에 떨어져 망하게 해 주십시오.시편 35:8 · 두루새김
남을 붙잡으려고 감추어 둔 그물이, 그물을 놓은 사람 자신을 붙잡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 정의의 뒤집힘입니다. 시편 7:15–16에서는 악인이 구덩이를 파고 깊이 팠으나 자신이 만든 구덩이에 빠지고, 자신이 저지른 해악이 자기 머리 위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행한 악이 결국 그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만 시편 35편의 요청을 악한 계획이 실패하게 해 달라는 온건한 말로만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실제로 적들에게 부끄러움과 파멸이 닥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노를 담은 기도이며, 오늘의 독자에게도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불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 일을 직접 실행하겠다고 선언하지 않고 여호와야훼께 요청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이 기도가 모든 형태의 보복 욕망을 자동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은 상처 입은 사람이 실제로 품는 격렬한 감정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있으며, 그 결과를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은 갑자기 자신의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깊이
8절에서는 앞에서 여러 적들을 가리키던 표현이 「그런 자」라는 단수로 바뀝니다. 원수 가운데 특정한 우두머리를 가리킬 수도 있고, 여러 적을 하나의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승리의 기쁨보다 더 큰 고백
내 영혼은 여호와야훼 안에서 기뻐하며 그분의 구원으로 즐거워할 것입니다.시편 35:9 · 두루새김
지금까지 적들이 부끄러워지고 망하기를 기도했지만, 정작 다윗이 자신의 기쁨으로 삼겠다고 말하는 대상은 적들의 고통이 아닙니다.
내 모든 뼈가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여, 누가 당신과 같습니까? 당신은 가난한 이를 그보다 힘센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쪼들리는 이를 빼앗는 자에게서 건지십니다.시편 35:10 · 두루새김
뼈는 몸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떠올리게 하는 신체 이미지입니다. 말하는 것은 입이지만, 시인은 온몸이 함께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자기편을 승리하게 하시는 분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짓눌리는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세상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힘의 차이로 정의를 결정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여호와야훼, 누가 주님과 같습니까?」라는 질문은 출애굽기 15:11에서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넌 뒤 불렀던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의 군사력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셨습니다. 시편 35편에서는 가난하고 쪼들리는 사람을 더 강한 자와 그의 것을 빼앗는 자에게서 건지십니다.
두 노래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힘 그 자체보다, 그 힘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시는 그가 왜 그토록 절실하게 하나님의 개입을 구하는지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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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강한 자」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대명사의 형태 때문에 다른 읽기의 가능성도 있지만, 문맥에서는 가난한 사람보다 힘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내가 애도했던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다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을 내게 캐묻습니다.시편 35:11 · 두루새김
첫 장면은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지만, 이제는 법정과 같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부당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은 원문에서 폭력과 불의를 나타내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그들이 단순히 불리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다윗을 공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공식적인 재판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은 거짓 고발과 공격적인 심문을 법정의 언어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2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일어나 주십시오」라고 했는데, 11절에서는 부당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원문에서는 이들의 행동에도 일어난다는 표현을 씁니다. 다윗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개입과 달리, 적들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아픈 사실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그들은 내게 선을 악으로 갚으며 내 영혼에 자식 잃은 슬픔을 안깁니다.시편 35:12 · 두루새김
단순히 악한 사람들에게 공격받는 것과 자신이 선하게 대했던 사람들에게 공격받는 것은 다릅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어떤 선을 베풀었을까요?
그러나 그들이 병들었을 때 나는 자루옷을 입고 굶으며 내 영혼을 낮추었습니다. 내 기도는 내 품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시편 35:13 · 두루새김
친구나 형제의 일처럼 슬퍼하며 다녔고, 어머니를 잃은 사람처럼 어두운 얼굴로 몸을 굽혔습니다.시편 35:14 · 두루새김
이 두 절을 읽으면 다윗이 말하는 선함이 막연한 친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루옷은 슬픔과 애도,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드러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기도했습니다. 상대방의 병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처럼 슬퍼했다는 표현은 가까운 가족의 상실에 비길 만큼 깊은 애도를 나타냅니다.
13절의 마지막 문장 「제 기도는 제 품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는 직역하면 기도가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고 자신에게 되돌아왔다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반대로 그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결국 기도한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앞뒤 문맥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있습니다. 다윗은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자 상대방은 정반대로 행동합니다.
이것이 12절의 「자식을 잃은 듯한 슬픔」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실제로 자녀를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형제처럼 여겼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이 공격은 단순히 적대하는 행동 이상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가 잃은 것은 사람들의 호의만이 아닙니다. 서로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관계 자체였습니다.
시편의 다음 장면은 그 배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그 표현을 기도하며 몸을 굽히는 자세를 묘사한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문맥과 어법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문장을 다윗의 기도가 반드시 거절되었다는 증거로 삼거나, 그에게 특별한 보상이 돌아왔다는 약속으로 읽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나의 불행이 그들의 잔치가 되다
그러나 내가 비틀거리자 그들은 기뻐하며 모였습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나를 치려고 모여 쉬지 않고 나를 찢어 대듯 헐뜯었습니다.시편 35:15 · 두루새김
다윗이 병든 사람을 찾아가 함께 슬퍼하던 모습과 정면으로 대조됩니다. 그들이 아플 때 다윗은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비틀거릴 때 그들은 기뻐합니다. 「비틀거릴 때」는 실제로 발을 헛디디는 모습이면서, 삶의 어려움이나 몰락을 나타내는 이미지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 사람이 불행해졌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불행을 기뻐했다는 사실입니다.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다윗을 대적하여 모여들었고, 그들의 공격이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빵을 두고 조롱하는 불경한 자들 틈에서 그들은 나를 향해 이를 갈았습니다.시편 35:16 · 두루새김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적들의 조롱이 여럿이 함께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며, 그들이 이를 갈 정도로 적개심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묘사는 시편 35편의 원수들이 단지 다윗에게 실제적인 해를 끼치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그의 어려움을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로 만듭니다.
다윗이 고통받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함께 웃고 즐길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바라보고 계시겠습니까? 나를 짓부수려는 그들에게서 내 목숨을 되찾아 주십시오. 젊은 사자들에게서 내 하나뿐인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시편 35:17 · 두루새김
다윗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고 여깁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보시면서도 아직 행동하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언제까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분이 왜 아직 나서지 않으시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적들은 이제 젊은 사자로 묘사됩니다. 사냥감을 덮치는 강한 짐승의 모습입니다. 「하나뿐인」이라는 표현은 특별히 귀하고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자신이 잃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것은 적들이 많고 강하다는 사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들은 모여들어 다윗을 공격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지켜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다시 찬양을 약속합니다.
큰 모임에서 당신께 감사하고 수많은 백성 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겠습니다.시편 35:18 · 두루새김
처음에는 한 사람이 적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와 수많은 백성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지 위험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의 불행을 기뻐하며 모여드는 사람들과는 다른 공동체 가운데 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더욱 분명히 밝히며 하나님께 판결을 요청합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의 히브리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두루새김이 「저를 치는 자들」로 옮긴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모여든 사람들이 누구였는지에 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어떤 읽기에서는 낮은 처지의 사람들 또는 공격하는 자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16절 역시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원문에는 조롱과 관련된 표현, 그리고 빵이나 둥근 과자와 관련될 수 있는 낱말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남을 조롱하는 사람들, 잔치 자리에서 희롱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눈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하나님이 보신 것
거짓으로 나를 적대하는 자들이 나를 두고 기뻐하지 못하게 막아 주십시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막아 주십시오.시편 35:19 · 두루새김
「까닭 없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합니다. 7절에서도 다윗은 원수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함정을 팠다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적들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적대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합니다.
그들은 평화를 말하지 않고, 이 땅에서 조용히 사는 이들을 해치려고 속이는 말을 꾸미기 때문입니다.시편 35:20 · 두루새김
여기서 공격 대상이 다윗 한 사람을 넘어서는 듯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원문의 표현은 비교적 드물기 때문에 정확한 대상과 상황을 짚어 내기는 어렵지만, 20절은 원수들의 행동이 평화로운 삶을 방해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표현은 시편 34:14에서 평화를 찾고 뒤쫓으라는 권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시편 35편은 다른 자리에서 문제를 보여 줍니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려는 사람을 공격할 때,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나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습니다. 「아하, 아하, 우리 눈으로 보았다!」시편 35:21 · 두루새김
「아하, 아하」라는 말에는 상대방의 불행이나 잘못을 발견했다며 떠드는 조롱과 승리감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앞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속이는 말을 꾸민다고 했으므로, 이 말은 다윗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았다는 말을 근거로 상대방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같지 않습니다.
이때 다윗이 바로 다음 절에서 대답합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은 보셨습니다.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주님, 내게서 멀리 계시지 마십시오.시편 35:22 · 두루새김
적들은 「우리 눈으로 보았다!」라고 말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야훼, 주님은 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문제는 누가 보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판단이 진실을 드러낼 것이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눈과 적들의 눈이 서로 경쟁하도록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사실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이 보셨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17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언제까지 보고만 계실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잠잠히 계시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억울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시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바탕으로 행동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마지막 장면에서 재판을 요청하는 이유입니다.
저를 향한 판결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떨쳐 일어나 내게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 깨어나 나를 위해 다투어 주십시오.시편 35:23 · 두루새김
시편의 처음에 등장했던 법정의 언어가 다시 돌아옵니다.
1절에서 다윗은 자신과 다투는 자들과 다투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중간에는 전쟁, 함정,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 배신, 조롱이 등장했습니다. 그 모든 경험을 지나 시인이 다시 도달한 자리는 하나님의 재판정입니다.
당신의 의로움으로 나를 재판해 주십시오, 여호와야훼, 나의 하나님. 그들이 나를 두고 기뻐하지 못하게 막아 주십시오.시편 35:24 · 두루새김
여기서 결정적인 말은 「주님의 의로움에 따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분이나 원한에 따라 판결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의로움에 따라 판단해 달라고 합니다. 이 의로움은 올바름을 가리키며,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과 기도자가 바라는 정당한 판결을 연결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물론 시편은 다윗 자신의 목소리로만 상황을 전합니다. 따라서 독자는 실제 다툼의 모든 사실을 따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의로움에 따라」라는 기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을 단지 자기편을 들어 주시는 존재로 부르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이어지는 기도는 적들이 바라는 결말을 직접 드러냅니다.
그들이 속으로 말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아하, 우리가 바라던 대로다!」 이렇게도 말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그를 삼켜 버렸다!」시편 35:25 · 두루새김
21절에서 원수들은 자신들이 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이 원하던 결과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를 삼켜 버렸다」라는 표현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만이 아니라 완전히 집어삼키고 없애 버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의 존재가 그들의 승리 속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17절의 젊은 사자 이미지와도 어울립니다. 다윗은 사자들에게서 하나뿐인 생명을 지켜 달라고 했는데, 여기서 원수들은 그를 삼켜 버렸다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내 불행을 기뻐하는 자들이 모두 함께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고, 나보다 높은 체하는 자들이 부끄러움과 모욕을 옷처럼 입게 해 주십시오.시편 35:26 · 두루새김
시인은 그들이 입을 옷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사람이 옷을 입으면 그 옷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입니다.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듯, 이제 그들의 부당한 행동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시편은 그 감정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요청이 「주님의 의로움에 따라 제게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라는 기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 판결이 이루어진다면 사람들 가운데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시인은 마지막 두 절에서 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자기 종의 평안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내가 옳다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이들이 기뻐 외치며 즐거워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늘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자기 종의 평안을 기뻐하시는 여호와야훼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시편 35:27 · 두루새김
지금까지 시인은 원수들이 기뻐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처음에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구원으로 기뻐하겠다고 말했습니다(9절). 그러나 그가 비틀거릴 때 원수들이 기뻐했습니다(15절). 그들이 다윗의 불행을 두고 기뻐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요청은 이후에도 반복됩니다(19절, 24절, 26절).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한쪽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쪽은 억울한 사람이 올바르게 인정받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그의 관심이 단순히 어느 편이 이기느냐가 아니라 진실과 정당함의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말, 「자기 종의 평안을 기뻐하시는 여호와야훼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은 시편 35편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선언입니다.
첫머리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싸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방패와 창을 들고 적들을 막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하나님께 붙이는 설명은 전쟁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기서 「평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보다 넓은 뜻을 지닙니다. 삶이 평안하고 온전한 상태, 관계의 안정과 번영을 포함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20절에서 원수들은 「평화를 말하지 않고」 속이는 말을 꾸미는 사람들로 묘사되었습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자기 종의 평안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싸워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싸움 자체가 그의 마지막 소망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 때문에 잃어버린 평안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힘만으로 그것을 되찾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시편 35편이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단지 악한 자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위협받던 사람이 평안을 되찾으며, 그 회복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앞부분의 심판 요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평안을 파괴하는 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에 맡긴 채, 그 판단이 자기 종의 평안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절에서 다윗은 다시 자신의 말로 돌아옵니다.
내 혀는 당신의 의로움을 읊조리며 온종일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시편 35:28 · 두루새김
「읊조리며」는 조용히 되뇌거나 계속해서 말하는 행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시편의 처음에는 적들과 싸워 달라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중간에는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의 말과 원수들의 조롱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읊조리는 다윗의 혀가 등장합니다.
거짓 증인들의 말이 끝나는 자리
시편 35편은 보복을 구하는 기도처럼 시작하지만, 끝에 이르면 시인이 무엇을 가장 간절히 회복하고 싶어 하는지 드러납니다. 그것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 아래에서 자신의 평안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결말은 단지 적들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뒤틀렸던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통해 바로잡히고, 이제 자신의 입으로 그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경계도 있습니다. 시편 속 기도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오늘날 어떤 갈등에서든 기도하는 사람이 자동으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입장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판결을 미리 확정하는 것은 24절에서 요청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과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자신이 겪는 일을 감추지 않고 하나님께 아뢰되, 그 사건에 대한 마지막 판단을 자신의 분노보다 더 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35편을 다시 펼쳐 보면 두 종류의 모임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다윗이 비틀거릴 때 기뻐하며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를 조롱하고, 입을 크게 벌려 자신들이 모든 것을 보았다고 떠듭니다.
다른 하나는 다윗이 아직 들어가지 못한,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입니다. 그는 언젠가 그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찬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두 모임 사이에서 다윗은 지금 혼자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적들을 잠잠하게 할 힘이 없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베푼 선을 되돌릴 수도 없고, 사람들의 판단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확신하고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여호와야훼, 주님은 보셨습니다.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다고 주장하는지 이미 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보신 사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자신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인정받기를 바랐던 사람들도 함께 기뻐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이 부를 노래는 원수들의 패배를 자랑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자기 종의 평안을 기뻐하시는 여호와야훼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다윗은 아직 그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 서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서게 되기를 바라며, 지금 자신의 다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혀가 온종일 무엇을 말하게 될지 약속합니다. 「제 혀는 주님의 의로움을 읊조리며, 온종일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