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입을 다물 때와 입을 열 때
집회서 20장은 서로 모순되는 듯한 두 말씀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처음에는 입을 다무는 것이 지혜라고 말하더니, 마지막에는 지혜를 감추어 두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입을 다물고, 언제 말해야 합니까?
19장에서 스승은 소문을 함부로 믿거나 퍼뜨리지 말고, 이웃의 잘못을 확인한 뒤 바로잡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20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과 침묵이 각각 어떤 상황에서 지혜롭고 어떤 상황에서 해로워지는지 살핍니다.
그런데 스승은 단순히 말하는 기술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모욕하는 사람, 체면 때문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사람, 권력자의 호의를 얻는 사람, 선물에 눈이 멀어 잘못을 짚어 주지 못하는 사람까지 등장시킵니다.
사람은 언제 자기 말의 주인이 되고, 언제 자기 욕망과 체면과 이해관계에 붙잡혀 말을 잃거나 함부로 내뱉게 됩니까?
책망보다 중요한 것은 책망하는 방식과 때다
잘못을 짚어 주는 말도 때에 맞지 않을 수 있고,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슬기로울 수도 있다.집회서 20:1 · 두루새김
첫 문장은 잘못을 짚어 주는 일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바로잡으려는 말이라도 그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상황에 맞지 않게 전달된다면 목적을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잘못을 짚어 주는 일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화를 내기보다 잘못을 짚어 주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손해를 피할 것이다.집회서 20:2 · 두루새김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반면 잘못을 짚어 주는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도록 하는 행동입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상처를 주려는 말과,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도록 하려는 말은 다릅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들이는 일이어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한쪽은 분노를 앞세우지 않고 바로잡아야 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폭력으로 내리는 판결의 모순
고자가 젊은 처녀와 잠자리를 같이하기를 바라듯, 폭력으로 판결을 내리는 사람도 그러하다.집회서 20:4 · 두루새김
본문의 「고자」는 고대 사회에서 거세된 남성에 관해 품었던 통념을 사용한 표현입니다. 스승은 성적으로 침해하려는 욕망과 폭력적인 판결을 나란히 놓습니다. 따라서 이 비유를 인간의 신체나 성적 능력에 관한 보편적인 사실처럼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판결은 무엇이 옳은지를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폭력에 사로잡히면, 판결이 이루려는 정의 자체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올바른 목적을 내세운다고 해서 그 목적을 이루는 모든 방식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뿐 아니라 그 진실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신중함까지 요구합니다.
똑같이 침묵해도 이유는 다르다
입을 다물고 있어서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고, 말이 많아서 미움을 받는 사람도 있다.집회서 20:5 · 두루새김
여기까지만 읽으면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언제나 유리하다는 교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절은 그 생각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고, 때를 알아서 입을 다무는 사람도 있다.집회서 20:6 · 두루새김
첫 번째 침묵은 대답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침묵은 판단과 선택에서 나옵니다. 스승은 입을 다무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그 사람의 지혜를 확정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가 올 때까지 입을 다물겠지만, 허풍을 떠는 어리석은 사람은 때를 넘겨서까지 말할 것이다.집회서 20:7 · 두루새김
지혜로운 사람의 침묵은 끝없는 침묵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반면 허풍을 떠는 어리석은 사람은 알맞은 때를 놓칩니다. 너무 일찍 말하거나 너무 오래 떠들어서 정작 말이 필요했던 순간을 지나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역겹게 여겨질 것이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미움을 받을 것이다.집회서 20:8 · 두루새김
사람은 말로 다른 사람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신의 말만 반복하거나,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스승은 그런 말을 지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신의 말을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자신이 말해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보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 판단은 말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이익처럼 보이는 일이 실제로 이익인지 판단할 때도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점에서 잠언 26:4–5의 두 명령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의 어리석음대로 대답하지 말라고 하면서, 동시에 그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도록 그의 어리석음에 맞게 대답하라고 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듯한 명령이 나란히 놓이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고 다른 상황에서는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야고보서 1:19–20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하라고 권합니다. 이는 집회서 20장을 직접 인용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성급한 분노보다 신중한 말을 중시하는 공통된 지혜의 주제로 연결됩니다.
이익처럼 보이는 손해, 손해처럼 보이는 이익
불행 속에서도 사람에게 일이 잘 풀리는 때가 있고, 뜻밖에 얻은 이익이 손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집회서 20:9 · 두루새김
9절부터 스승의 말투가 달라집니다.
그는 짧은 문장에 서로 반대되는 상황을 나란히 놓습니다. 이익과 손해, 선물과 보답, 명예와 낮아짐이 계속 뒤바뀝니다.
보통 사람은 좋은 것을 얻으면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무엇인가를 잃으면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승은 눈앞에 나타난 결과만으로 그 일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불행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모든 뜻밖의 이익이 재앙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네게 도움이 되지 않을 선물도 있고, 보답이 두 배인 선물도 있다.집회서 20:10 · 두루새김
어떤 선물은 받은 뒤에 불편한 의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나중에 훨씬 큰 대가를 요구받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선물은 좋은 관계와 호의 속에서 더 큰 도움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명예를 위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낮아진 처지에서 머리를 든 사람도 있다.집회서 20:11 · 두루새김
앞의 표현은 명예를 얻거나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가치 없는 희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단락의 여러 역설 속에서는 명예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헤아리게 합니다.
「머리를 든 사람」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입니다. 낮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 다시 자신감을 얻거나 명예를 회복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 낮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적은 돈으로 많은 것을 사고도 그 값을 일곱 배로 갚는 사람이 있다.집회서 20:12 · 두루새김
여기서 일곱 배라는 숫자를 모든 거래에서 실제로 갚아야 하는 비율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매우 큰 대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어떤 일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알려면 지금 손에 들어온 것뿐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고 앞으로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스승은 이제 선물의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듭니다.
선물의 가치는 물건 자체보다 그것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 말 때문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빵은 주면서 사람을 잃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말로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베푼 호의는 헛되이 쏟아질 것이다.집회서 20:13 · 두루새김
지혜로운 사람은 알맞은 말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실제로 무엇을 주면서도 그 행동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주는 선물은 네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를 주고도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집회서 20:14 · 두루새김
이 사람은 선물을 줍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지보다 자신이 얼마나 큰 보답을 받을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조금 주고 많이 나무라며, 소식을 외쳐 알리는 사람처럼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오늘 빌려주고 내일 돌려 달라고 할 것이니, 그런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집회서 20:15 · 두루새김
그의 선물이 마치 온 마을에 알려야 할 중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듯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베푼 것을 다른 사람이 잊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말 때문에 선물의 가치가 사라집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빚진 사람처럼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그가 처한 형편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는 왜 친구가 없을까?
16절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직접 등장해 불평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할 것이다. 「내게는 친구가 없고, 내가 베푼 좋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도 없다. 내 빵을 먹는 사람들은 고약한 말을 한다.」집회서 20:16 · 두루새김
스승은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행동과 그 결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자신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도움보다 모욕적인 말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가 베푼 빵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빵을 주면서 상대방을 어떤 사람으로 대했느냐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스승은 그가 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반드시 선행에는 언제나 감사가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좋은 일을 하고도 부당한 오해를 받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태도가 관계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감사 부족만 문제 삼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그 사람을 잘 대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선물에는 물건뿐 아니라 그것을 건네는 태도도 함께 전달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이 욕심과 기대를 눈의 이미지로 드러냅니다. 실제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길에서 미끄러지는 것보다 혀로 미끄러지는 것이 위험하다
말로 실수하는 것보다는 땅바닥에서 미끄러지는 편이 낫다. 그처럼 악한 사람들의 몰락도 빠르게 닥칠 것이다.집회서 20:18 · 두루새김
사람이 길을 걷다가 미끄러지면 넘어지거나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실수는 그보다 오래가는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몸이 넘어졌을 때에는 다시 일어나면 될 수도 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습니다. 잘못된 말로 신뢰를 잃었다면 그것을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몸이 미끄러지는 것과 혀로 실수하는 것을 비교합니다. 두루새김은 혀로 미끄러진다는 표현을 「말로 실수하는 것」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뒤이어 악한 사람들의 몰락이 빠르게 닥친다는 말은 단순한 말실수가 언제나 즉각적인 파멸을 가져온다는 예언이 아닙니다. 이 장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생각 없이 내뱉는 말과 악한 행동이 그 사람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강한 경고입니다.
무례한 사람은 때에 맞지 않는 이야기와 같다. 그런 이야기는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입에 늘 붙어 있을 것이다.집회서 20:19 · 두루새김
이 절은 원문이 짧은 명사구들을 나란히 놓기 때문에 해석상의 갈림이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 자체를 때에 맞지 않는 이야기에 비유할 수도 있고, 무례한 사람이 늘 때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는 평가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뒤에 계속 입에 붙어 있는 것이 사람인지 그 이야기인지도 문법적으로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무례한 사람은 때에 맞지 않는 이야기와 같다」라고 사람을 이야기에 비유하고, 「그런 이야기」가 입에 붙어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이러한 읽기에서는 무례한 사람의 존재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처럼 불편함을 일으킨다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비유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알맞은 때에 그 비유를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20:20 · 두루새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황과 맞지 않으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벼운 격언을 들려주거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순간에 엉뚱한 교훈을 늘어놓는다면, 그 말은 내용과 관계없이 알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언 25:11은 경우에 알맞은 말을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에 비유합니다. 말의 아름다움이 단순히 내용뿐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상황과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집회서의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올바른 말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는 말하지 않아야 할 순간에 입을 여는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다음에는 말하고 행동해야 할 순간에 체면 때문에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죄를 짓지 못하는 것과 죄를 짓지 않는 것
가난해서 죄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편히 쉴 때에도 마음이 찔리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20:21 · 두루새김
가난하거나 힘이 부족한 탓에 어떤 잘못을 저지를 기회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실제로 기회가 생겼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는 이 구절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속으로 악을 바라고 있다는 식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스승이 보여 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마음속에서 한 모든 선택까지 알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뒤의 「편히 쉴 때에도 마음이 찔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해석이 갈립니다. 그리스어 아나파우시스(ἀνάπαυσις)는 쉼이나 안식을 뜻하며, 문맥에 따라 편안하고 넉넉한 상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카타뉘게세타이는 찔리거나 고통을 겪는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가난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었던 사람이 편안히 쉴 때에도 죄책감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읽기는 가난에서 벗어나 여유가 생겼을 때에도 마음의 찔림을 겪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읽기는 행동하지 않은 결과 죄책감이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두 번째 읽기는 행동을 막는 상황과 마음속 양심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원문만으로 어느 해석이 확정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의 행동을 가로막는 외부의 조건과 그 사람 자신의 도덕적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체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
부끄러움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 그 목숨을 잃을 것이다.집회서 20:22 · 두루새김
여기서 「부끄러움」은 잘못을 깨닫고 느끼는 건전한 수치심과 구별해야 합니다. 이 구절의 흐름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태도가 문제 됩니다.
특히 두루새김이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라고 옮긴 자리에는 원문에서 얼굴이나 낯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어,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낯을 보며 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체면 때문에 파멸에 이른다는 뜻으로 읽는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은 그 얼굴의 주인을 확정해 주지 않으므로 두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 구절의 「목숨을 잃는」 것도 반드시 실제 죽음만을 뜻한다고 한정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파괴하거나 심각한 손해를 입는다는 넓은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23절은 그러한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합니다.
부끄러워서 친구에게 약속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공연히 그 친구를 원수로 만들었다.집회서 20:23 · 두루새김
그 사람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기가 부끄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킬 수 있을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약속합니다.
그 순간에는 관계를 지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그 관계가 깨질 수 있습니다.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보다 관계를 더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체면을 지키려고 하는 말이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왜 사람에게 오래 남는 흠인가?
거짓말은 사람의 고약한 흠이며,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입에 늘 붙어 있을 것이다.집회서 20:24 · 두루새김
거짓말은 단순히 순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그 사람의 성품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또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에서 배움은 지혜와 교훈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깊이 관련됩니다. 이 문맥에서 문제 되는 것은 도덕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줄곧 거짓말하는 사람보다는 도둑이 낫지만, 둘 다 멸망을 물려받을 것이다.집회서 20:25 · 두루새김
그럼에도 도둑보다 줄곧 거짓말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3–26절의 흐름을 살펴보면 신뢰의 문제가 중요하게 드러납니다.
도둑질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부당하게 빼앗는 행동입니다. 반면 반복되는 거짓말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가 약속을 해도 사람들은 믿기 어렵습니다. 사실을 말해도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의심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비교를 모든 도둑질이 모든 거짓말보다 가벼운 죄라는 보편적인 법적·도덕적 서열로 확대할 근거는 없습니다. 스승은 반복적인 거짓말이 지닌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충격적인 비교를 사용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행실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은 늘 그를 따라다닌다.집회서 20:26 · 두루새김
거짓말로 잠시 위험을 피하거나 체면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습관이 드러나면 부끄러움이 오래 남습니다.
스승은 정직을 단순히 도덕적 의무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정직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지탱하는 중요한 조건임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제 시선은 개인적인 관계를 넘어 사회적 권력의 자리로 옮겨갑니다.
그곳에서는 지혜로운 말이 사람의 앞길을 열 수도 있지만, 선물이 그 입을 막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높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언제 지혜이고, 언제 위험한가?
지혜로운 사람은 말로 자기 앞길을 열 것이고, 슬기로운 사람은 높은 관리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집회서 20:27 · 두루새김
앞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특히 고대 사회에서 높은 관리들의 신임을 얻는 일은 현실적인 중요성을 지녔습니다. 왕이나 관리, 영향력 있는 사람의 인정이 어떤 사람의 지위와 기회에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알맞은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신임이 사회적인 인정과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땅을 일구는 사람은 자기 곡식 더미를 높이 쌓을 것이고, 높은 관리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불의를 씻어 낼 것이다.집회서 20:28 · 두루새김
농부가 땅을 일구면 수확을 얻습니다. 그렇듯 높은 관리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도 그 관계에서 어떤 도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호의를 얻으면 죄까지 없어지는가?
하지만 이 구절을 하나님 앞에서 죄가 속죄된다는 신학적 선언으로 곧바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장의 주어는 높은 관리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문맥상 높은 관리들의 호의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거나 문제가 된 일을 넘어가게 되는 사회적 상황을 가리킨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높은 관리들의 신임을 얻는 일이 실제로 도움이 되며, 그 신임 덕분에 잘못을 용서받을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지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바로 그러한 사회적 관계가 공정한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위험에 주목합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바로 다음 절과 연결됩니다.
대접과 선물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입에 물린 재갈처럼 잘못을 짚어 주는 말을 막는다.집회서 20:29 · 두루새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의 빚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호의를 잃고 싶지 않거나, 받은 선물 때문에 자신의 판단을 굽힐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입에 재갈이 물리다
재갈은 동물의 입에 씌워 움직임이나 소리를 제한하는 도구입니다.
처음에 스승은 잘못을 짚어 주는 말도 때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잘못을 짚어 주어야 할 때에도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침묵은 6–7절에서 묘사한 지혜로운 침묵과 정반대입니다.
앞에서는 알맞은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여기서는 말해야 할 때가 왔는데도 입을 열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침묵은 스스로 말할 때를 선택하는 것이지만, 선물에 매인 침묵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선택할 자유를 잃는 것입니다.
사람은 큰소리를 치는 권력 때문에 침묵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베풀어진 친절과 선물 때문에 침묵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정한 판단을 지키려면 노골적인 압력뿐 아니라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호의도 살펴야 합니다.
스승은 사람이 높은 관리들의 신임을 얻는 현실적인 이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임을 얻거나 유지하는 일이 진실을 말하는 책임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됩니다.
감추어진 지혜는 감추어진 보물과 같다
감추어진 지혜와 드러나지 않는 보물, 그 둘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집회서 20:30 · 두루새김
스승은 지혜를 보물에 비유합니다.
보물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누구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아무리 훌륭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필요한 때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면 그 지혜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어리석음을 감추는 사람이 자기 지혜를 감추는 사람보다 낫다.집회서 20:31 · 두루새김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추는 사람은 적어도 함부로 말을 내뱉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그것을 끝내 드러내지 않는다면, 잘못을 바로잡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데 그 지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이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1–7절의 가르침과 함께 읽으면, 스승은 알맞은 때를 기다리는 침묵과 필요한 때에도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 침묵을 구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가치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마땅히 사용해야 할 순간에 올바르게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재갈을 물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말이 필요한 순간을 알아보는 판단력, 그리고 그 순간에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한 지혜로운 사람의 눈앞에 잘못된 일이 있습니다.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이 있고, 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습니다.
그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혜로 아무것도 바로잡지 못합니다.
스승은 그런 지혜를 감추어진 보물에 비유합니다. 보물은 분명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감추어진 채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삶 속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 말이나 하지 않지만, 옳은 말을 해야 할 순간까지 자신의 입을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은 입을 열 수 있을까요?
스승이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혜를 알고 있는지가 아닙니다. 재갈을 벗고 말해야 할 바로 그 순간에, 그 지혜가 실제로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