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모든 싸움에 뛰어들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맞서야 할까요? 상대방의 잘못을 알고 있다면 끝까지 다투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까요?
다투지 마십시오.
권력 있는 사람과 다투지 말고, 부유한 사람과 다투지 말고, 말 많은 사람과도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과 싸우지 말고, 재판장을 상대로 재판을 벌이지도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돈을 빌려주거나 함께 여행할 사람도 조심스럽게 선택하라고 권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집회서가 비겁하고 소극적인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고,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자기 안전만 지키라는 말일까요?
집회서가 경계하는 것은 단순히 다툼 자체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그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하지 않은 채 관계에 뛰어드는 태도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위험한 상대에게 자신을 함부로 맡기지 않지만, 약해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거리를 두어야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존중을 보여야 하며, 어떤 사람에게서는 배워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집회서 8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권력자의 손아귀, 부자의 저울, 말 많은 사람의 불
본문은 세 종류의 사람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권력 있는 사람과 다투지 마라. 그의 손아귀에 떨어질까 두렵다.집회서 8:1 · 두루새김
문제는 다툼의 양쪽이 같은 조건에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다툼에서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맞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 있는 사람과의 다툼에서는 한쪽이 다른 쪽을 처벌하거나 억누를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손은 무엇인가를 붙잡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입니다. 권력자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부유한 사람과 다투지 마라. 그가 재력으로 너를 짓누를까 두렵다. 금은 많은 사람을 망하게 했고, 왕들의 마음까지 그릇된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집회서 8:2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부자가 가진 재산의 힘을 저울의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재력으로 상대방을 짓누르는 것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마치 양쪽 저울 접시에 서로 다른 무게가 놓인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말과 주장을 가지고 서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 주장에 재산의 무게까지 더할 수 있습니다.
왕은 세상에서 큰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왕조차 금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부자와 다투면 손해를 본다는 현실적인 충고를 넘어섭니다. 재물이 사람의 판단을 그릇되게 만들 수 있으며, 그 영향력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미친다는 사회적 관찰입니다.
신명기 16:19는 재판에서 뇌물을 받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뇌물이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말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집회서 8:2는 그와 같은 위험을 부유한 사람과의 다툼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합니다.
집회서는 앞 장에서 재판장이 불의를 없앨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권력 있는 사람 앞에서 올곧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7:6). 따라서 8장의 경고를 정의보다 안전을 언제나 우선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해석하면 책 전체의 가르침과 충돌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불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힘의 차이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는 일입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위험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닙니다.
세 번째 인물은 앞의 둘과 다릅니다.
말 많은 사람과 다투지 말고, 그의 불 위에 장작을 쌓지 마라.집회서 8:3 · 두루새김
말 많은 사람과 끝없이 논쟁하는 것은 그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옳은지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반응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합니다.
이것은 잠언 26:20의 말씀과 가깝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불이 꺼지듯, 험담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툼이 그친다는 것입니다.
4절은 여기에 한 가지 위험을 덧붙입니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을 놀리지 마라. 네 조상들이 모욕당하지 않게 해라.집회서 8:4 · 두루새김
여기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단순히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글을 모르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어 아파이데우토스(ἀπαίδευτος)는 교육이나 훈육을 받지 않은 사람을 뜻하며, 지혜문학의 문맥에서는 말과 행동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농담을 적절하게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농담은 서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거나 공격의 구실로 삼는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고대의 가족 중심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명예가 그 사람의 가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소한 말다툼이 가족의 명예에 관한 갈등으로 커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질문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힘을 조심해야 한다면, 반대로 내가 누군가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죄에서 돌아서는 사람을 욕하지 말라는 이유
죄에서 돌아서는 사람을 욕하지 마라. 우리 모두 벌을 받을 처지라는 것을 기억해라.집회서 8:5 · 두루새김
앞에서는 위험한 사람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죄에서 돌아서는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은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을 존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죄에서 돌아서는 사람을 욕하지 말라고 합니다. 문맥상 이 사람은 죄를 떠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삶을 바꾸려 할 때,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계속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이유로 현재의 변화를 무시하거나, 이미 저지른 죄를 근거로 영원히 그 사람을 낮게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죄에서 돌아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선언도 아니지만, 회복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너뜨리는 조롱도 아닙니다.
본문은 인간을 죄를 범한 사람과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두 종류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벌을 받을 처지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죄이며, 피해에 대한 책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그런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집회서가 요구하는 것은 죄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겸손한 판단입니다.
6절은 또 다른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사람이 늙었다고 업신여기지 마라. 우리 가운데에도 늙어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집회서 8:6 · 두루새김
어떤 사람은 늙은 사람의 몸이 약해지고 행동이 느려지는 것을 보며 그를 업신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인간에게 낯선 일이 아닙니다. 지금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사람도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은 사람을 멸시하는 행동에는 자신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태도가 들어 있습니다.
7절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가장 마지막 단계까지 이어집니다.
누가 죽었다고 고소해하지 마라.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해라.집회서 8:7 · 두루새김
본문은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었는지 악한 사람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우월함이나 승리를 확인하는 기회로 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5절과 7절에는 「우리 모두」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6절에서도 늙어 가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에도」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위험을 알아볼 줄 알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기억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늙은 사람의 말에는 여러 세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지혜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그들의 속담을 가까이하며 살아라. 그들에게서 교훈을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법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8:8 · 두루새김
앞부분에서는 말 많은 사람과 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 다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 말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한쪽의 말은 불을 키우지만, 다른 쪽의 말은 사람을 가르칩니다.
앞에서는 훈육되지 않은 사람의 말을 경계하라고 했고, 이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훈육과 가르침을 얻으라고 합니다. 어떤 말을 가까이해야 자신의 삶이 올바르게 형성되는지를 묻습니다.
이 장의 첫 구절은 권력 있는 사람과 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그러한 권력자들을 대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다.
권력자를 무조건 피하는 것만으로는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그들에게 말해야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복종도 아니고, 무모한 대결도 아닙니다. 상황에 알맞게 행동할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본문은 지혜로운 사람의 가르침이 그러한 실제적인 판단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합니다.
9절은 이 가르침이 어떻게 전해지는지 설명합니다.
나이 든 이들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마라. 그들도 자기 아버지들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필요한 때에 대답하는 법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8:9 · 두루새김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다음 세대로 그 지혜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혜는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유산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나이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말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도 단순히 나이 든 이들의 모든 의견을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배워 온 이야기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으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질문에 즉시 대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는 사람입니다.
잠언 15:23은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를 말하고, 잠언 25:11은 알맞게 한 말을 아름다운 장식에 비유합니다. 집회서 8:9 역시 말의 양보다 말이 필요한 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말 많은 사람은 불에 장작을 더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대답을 합니다.
이어서 본문은 다시 위험한 상대와 맞닥뜨리는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상대방의 불에 자신의 삶까지 태우지 마라
죄인의 숯불을 타오르게 하지 마라. 그의 타오르는 불에 네가 타 버릴까 두렵다.집회서 8:10 · 두루새김
3절에서는 말 많은 사람의 불 위에 장작을 쌓지 말라고 했습니다.
3절에서는 상대방의 다툼을 키우는 행동이 문제였습니다. 10절에서는 그렇게 커진 불에 자신이 타 버릴 수 있다는 결과가 강조됩니다.
숯불은 겉으로 보기에 큰 불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열기가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다시 불을 붙이면 불길이 살아납니다.
이 비유는 이미 갈등이나 악한 의도를 품고 있는 사람을 함부로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부당한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상대방의 분노와 적개심을 더욱 키운다면, 처음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11절에서는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함정을 놓는 상황이 등장합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맞서 일어나지 마라. 그가 숨어 기다리며 네 말을 노리지 못하게 해라.집회서 8:11 · 두루새김
매복은 상대방이 지나갈 곳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잡아 공격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무기를 든 사람이 아니라 말할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무례한 사람은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온 말을 붙잡아 공격의 근거로 삼거나, 상대방이 스스로 불리한 말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잠언 26:4는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의 어리석음에 맞게 대답하라고 합니다.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두 권고는 상황에 따라 말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울 수도 있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상대방이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공격의 도구로 삼으려 할 때에는, 감정적인 반응 자체가 함정에 빠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침묵은 언제나 두려움의 표현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악용될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 기회를 주지 않는 판단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의 앞부분은 그리스어에서 「일어서다」, 「자리를 떠나다」, 「맞서 일어나다」와 관련된 동사를 사용하므로 구체적인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지 여지가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맞서는 행동을 경계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고, 무례한 사람 앞에서 성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행동을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는 일에도 힘의 차이가 있다
집회서는 이제 논쟁과 말의 문제에서 재산과 법적 책임의 문제로 이동합니다.
너보다 힘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마라. 빌려주었다면 이미 잃은 셈으로 여겨라.집회서 8:12 · 두루새김
보통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빚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가 있다는 것과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사회적으로 강한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이 빚을 갚지 않을 때, 돈을 빌려준 사람은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도 그것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권력이나 인맥을 이용해 압박할 수도 있고,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가더라도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과 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미 잃은 셈으로 여겨라」는 표현은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예언이 아닙니다.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고려하라는 경고입니다.
13절에서는 다른 사람의 빚을 보증하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보증을 서지 마라. 보증을 섰다면 네가 갚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해라.집회서 8:13 · 두루새김
보증을 서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대신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는 행동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돈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다른 사람을 믿고 이름을 빌려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실제로 빚을 감당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잠언 6:1–5와도 연결됩니다. 잠언은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선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책임에 얽매였는지 깨닫고 빠르게 벗어날 길을 찾으라고 경고합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모든 결과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알아야 합니다.
14절에서는 다시 법정이 등장합니다.
재판장을 상대로 재판을 벌이지 마라. 사람들이 그의 지위를 생각해서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8:14 · 두루새김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여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이 예상하는 상황에서는 누가 더 높은 지위에 있는가가 판결에 영향을 미칩니다.
레위기 19:15는 가난한 사람을 편들거나 힘 있는 사람을 두둔하지 말고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집회서 8:14는 현실에서는 재판장의 지위가 결과를 그릇되게 만들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레위기는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집회서는 재판이 실제로 어떻게 그릇될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집회서는 부당한 판결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제도가 언제나 정의롭게 작동한다고 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옳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권리가 실제로 보호받는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은 나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과 함께 길을 가지 마라. 그가 네게 무거운 짐이 될까 두렵다. 그는 제 뜻대로 행동할 것이고, 너도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함께 망할 것이다.집회서 8:15 · 두루새김
이제 본문은 법정과 거래의 자리에서 길 위로 장소를 옮깁니다.
고대의 여행은 오늘날보다 많은 위험을 동반할 수 있었습니다. 낯선 지역을 지나야 했고, 날씨나 지형의 영향을 받았으며, 도중에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제 뜻대로 행동할 것이고」라는 설명에 핵심이 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안전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위험한 길로 가자고 해도 다른 사람의 형편을 살펴야 하고, 위협이 나타나면 함께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만을 따릅니다. 그는 동행자가 겪을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어리석음은 그 사람 혼자만의 결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와 삶을 함께하는 사람도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16절에서는 더욱 위험한 동행자가 등장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과 싸우지 말고, 그와 함께 광야를 지나가지 마라. 그는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도움받을 수 없는 곳에서 너를 쓰러뜨릴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8:16 · 두루새김
광야는 사람의 도움을 쉽게 기대하기 어려운 장소입니다. 주변에 마을이나 사람이 없을 수 있고, 위험이 생겨도 누군가 즉시 개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누군가의 분노를 다른 사람들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그러한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집회서는 사람의 성격과 함께, 그 사람과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를 고려하라고 가르칩니다.
본문은 극단적인 위험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자신의 안전을 맡기지 말라는 경고를 전합니다.
1절에서는 권력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떨어질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16절에서는 도움받을 수 없는 곳에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두 상황의 공통점은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잃는다는 데 있습니다. 한쪽은 권력의 힘이고, 다른 한쪽은 고립된 장소에서의 폭력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다스릴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아무런 대비 없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 부분은 사람을 믿는 일 자체가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맡길 수 있는지 분별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어리석은 사람과 의논하지 마라. 그는 들은 말을 비밀로 간직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8:17 · 두루새김
우리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 그 사람이 올바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어도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면 중요한 일을 의논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에서 「들은 말을 비밀로 간직할 수 없을」(στέγω)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말을 견디거나 지탱할 수 없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자기 안에 지니고 있을 능력이 없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비밀을 간직하지 못하는 것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말을 듣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들은 말을 언제까지나 자기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어떤 사람에게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하고 싶은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18절은 이 경고를 낯선 사람에게까지 넓힙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비밀로 할 일을 하지 마라. 그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네가 모르기 때문이다.집회서 8:18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이 자리를 출산의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본문은 은밀한 행동이나 이야기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말로 풀어 옮겼습니다.
이것은 앞 장(7:3)에 등장했던 불의의 씨앗과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 알게 된 말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고, 처음 이야기한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상대방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들은 말을 어떻게 사용할지, 자신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공개하지 않습니다.
19절에서는 이 경고가 가장 개인적인 차원으로 이어집니다.
아무에게나 네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고, 그가 네게 호의를 갚게 하지 마라.집회서 8:19 · 두루새김
「속마음」은 사람의 생각과 의도, 내면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생각과 감정, 비밀을 상대방에 대한 분별 없이 모두 털어놓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 본문에 충실하면 호의와 보답을 둘러싼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히브리어의 읽기를 따르면 함부로 속마음을 드러냈을 때 자신이 겪을 손실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당연한 의미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적절합니다.
집회서 6장은 이미 믿음직한 친구를 생명의 약과 든든한 피난처에 비유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읽으면 책 안의 다른 가르침과 충돌합니다.
문제는 마음을 여는 행동 자체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맡기는 행동입니다.
신뢰는 사람을 믿을 줄 아는 능력만이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맡길 수 있는지 알아보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네게 호의를 갚게 하지 마라」는 글자 그대로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의나 은혜를 되돌려 주지 못하게 하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함부로 털어놓지 말고, 불필요한 호의를 받아 그 사람에게 빚진 처지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12–13절에서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일을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권고와 연결됩니다. 실제로 전해지는 히브리어 본문 계열에는 마지막 행을 자신의 행복이나 좋은 것을 잃게 된다는 취지로 읽을 수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읽기에 따르면 자신의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는 일이 결국 자신의 행복을 해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결론 — 장작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
사람은 모든 잘못에 직접 맞서 싸울 필요가 없고,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부탁을 받아들일 의무도 없습니다. 동시에 잘못에서 돌아서는 사람을 조롱하거나, 늙은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다른 사람의 죽음을 자신의 승리로 여길 권리도 없습니다. 위험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는 배우며, 연약한 사람에게는 존중을 보여야 합니다.
이 장의 경고를 모든 부자와 권력자, 화를 잘 내는 사람과 낯선 사람에 대한 일률적인 불신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행동과 상황이 가져오는 위험을 묘사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속한 모든 개인의 성품을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이 끝난 뒤에도 3절의 불은 눈앞에 남습니다.
한 사람이 여전히 불 앞에 서 있습니다. 불은 타오르고 있지만, 그에게는 불을 키울 장작이 있습니다.
그는 그 장작을 불 속에 던지지 않습니다.
지혜는 언제나 더 큰 힘으로 상대방을 이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키울 수 있는 불을 키우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