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욥기 24장

이 장 풀어 읽기

보이지 않는 심판의 때

욥이 말을 이었습니다.

「왜 샤다이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해 두지 않으실까? 그분을 아는 사람들이 왜 그분의 날을 보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땅의 경계 표시를 옮기고, 양 떼를 빼앗아 풀을 먹여. 아버지 없는 아이들의 나귀를 몰아가고, 남편을 잃은 여자의 소를 담보로 잡아. 가난한 사람들을 길에서 밀어내니,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은 함께 몸을 숨겨.」

「봐, 그 가난한 사람들은 광야의 들나귀처럼 먹을 것을 부지런히 찾아 일하러 나가. 메마른 벌판이 그들과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내줘. 그들은 남의 밭에서 가축 먹일 풀을 베고, 악한 사람의 포도밭에서 뒤늦게 남은 포도를 거둬. 입을 옷도 없이 벌거벗은 채 밤을 지내고, 추위에도 덮을 것이 없어. 산에서 쏟아지는 비에 젖고, 피할 곳이 없어 바위를 끌어안아.」

「어떤 사람들은 젖 먹이는 어머니 품에서 아버지 없는 아기를 빼앗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담보를 잡아. 가난한 사람들은 입을 옷도 없이 벌거벗고 다니며, 굶주린 채 곡식 묶음을 나르고 있어. 남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고, 포도를 밟아 즙을 내면서도 목말라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신음하고, 죽을 만큼 다친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외쳐.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잘못을 문제 삼지 않으셔.」

「악한 사람들은 빛을 거역하는 무리에 속해. 그들은 빛의 길을 인정하지 않고, 빛의 오솔길에 머물지도 않아. 살인자는 동틀 무렵 일어나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죽여. 밤에는 도둑처럼 다녀. 간음하는 사람은 해 질 무렵을 기다리며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겠지』 하고 얼굴을 가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집을 뚫고 들어가고, 낮에는 문을 닫아걸고 지내. 빛을 모르고 살아. 그들 모두에게는 아침이 죽음의 그늘이야. 그들은 죽음의 그늘이 주는 공포에 익숙하거든.」

「악한 사람은 물 위에서 가볍게 떠내려가. 땅에 있는 그들의 밭은 저주를 받고, 그는 포도밭 쪽으로 발길을 향하지 않아.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빼앗듯, 스올은 죄지은 사람들을 빼앗아. 그를 낳은 어머니도 그를 잊고, 구더기는 그를 달콤한 먹이로 삼아. 아무도 그를 더는 기억하지 않아. 악은 나무처럼 꺾여.」

「그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를 괴롭히고,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도 좋은 일을 하지 않아. 그는 자기 힘으로 강한 사람들까지 끌고 가. 그가 일어서면 사람들은 제 목숨이 안전하다고 믿지 못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안전을 주시고, 그는 그것을 의지해. 그분께서는 그들이 가는 길을 지켜보셔. 그들은 잠시 높아졌다가 사라지고, 낮아져 다른 모든 사람처럼 거두어져. 곡식 이삭의 윗부분처럼 잘려 나가.」

「그렇지 않다면 대체 누가 내가 거짓말한다고 밝혀내겠어? 누가 내 말을 헛된 것으로 만들겠어?」

24장 해설 모두 보기 7
24:1 욥이 보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날은 어떤 날인가요?

뒤에는 땅과 가축을 빼앗는 사람들, 굶주리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나와요. 그 흐름을 따라 원문의 ‘때들’을 본문에서는 ‘심판하실 때’로 풀었어요. 어느 특정한 날짜나 세상 마지막 날이라고 밝힌 말은 아니에요.

24:2 땅의 경계 표시를 옮기는 것이 왜 잘못인가요?

양 떼를 빼앗는 행동과 나란히 나오는 말이에요. 땅의 경계를 슬쩍 바꾸는 일도 남의 재산을 빼앗는 행동으로 제시돼요.

24:12 하나님은 이런 잘못을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뜻인가요?

이 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왜 보지 못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요. 여기서도 욥은 사람들이 도움을 외치는데 하나님께서 잘못을 문제 삼지 않으신다고 항의해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서술자가 확정하는 설명과 욥의 고통스러운 주장을 구별해야 해요.

24:15 간음은 무엇인가요?

이 절은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이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 질 무렵을 기다리고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말해요.

24:17 왜 아침을 죽음의 그늘이라고 하나요?

15–16절에는 해 질 무렵을 기다리고 어둠 속에서 집에 들어가며 낮에는 문을 닫아거는 모습이 나와요. 이 흐름에서 17절의 아침은 두려운 때이고, 죽음의 그늘은 오히려 익숙한 어둠으로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14절의 ‘동틀 무렵’까지 이런 대조에 매끄럽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에요. 14절을 ‘날이 밝기 전’으로 읽어 연결하려는 해석도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의 해당 표현은 빛을 가리키며 ‘빛이 없다’는 말은 없어요. 이 번역은 동틀 무렵이라는 읽기를 유지했어요. 각 행동의 시간과 17절의 비유가 정확히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요.

24:18 악한 사람이 안전하다더니 왜 이제 사라진다고 하나요?

18–20절은 죽음과 잊힘을 말하고, 23절은 안전을, 24절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죽는 모습을 말해요. 안전하게 살아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는 연결이 가능하지만, 모든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18–20절을 욥이 친구들의 주장을 인용하는 말로 읽거나, 악한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말로 읽는 대안도 있어요. 원문에는 이 대목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기 시작한다는 표시가 따로 없어요. 본문은 인용이나 소원을 명시하지 않고 진술로 옮겼어요.

24:22 강한 사람들을 끌고 가는 이와 안전을 주는 이는 누구인가요?

히브리어는 두 절에서 이름 대신 생략된 주어나 대명사를 써요. 그래서 22절부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여기서는 악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데도 자신은 안전을 누리는 모습으로 연결했어요. 이 주어 선택은 확정된 것으로 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