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내가 하나님보다 옳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옳게 사는 것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죄를 짓는 것보다 무슨 이익이 있을까?』
제가 당신에게 대답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친구들에게도 대답하겠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당신보다 높이 있는 구름을 바라보십시오.당신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당신의 잘못이 많아진들 그분께 무슨 해를 입히겠습니까?
당신이 옳게 산다고 그분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그분께서 당신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습니까?
당신의 악은 당신 같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당신의 올바른 삶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줍니다.」
「사람들은 심하게 짓눌려 부르짖고,
힘센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도와 달라고 외칩니다.그러나 아무도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
나를 만드시고 밤에 노래를 주시며,』
『땅의 짐승들보다 우리를 더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 우리를 더 지혜롭게 하시는 분 말이야.』」
「그들이 거기서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사람들의 교만 때문입니다.참으로 하나님께서는 헛된 외침을 듣지 않으시고,
샤다이께서는 그것을 살피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나는 그분을 뵐 수 없어』라고 하셔도,
판결을 구하는 일은 그분 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애타게 기다리십시오.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분노로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어리석은 짓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시니,욥은 헛된 말을 쏟아 내며,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늘어놓습니다.」
35장 해설 모두 보기 635:3 엘리후는 욥의 말을 어떻게 되짚나요?
32장 2절에서도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의 옳음을 앞세운다고 여겨 화를 내요. 35장 2절의 표현은 ‘내가 하나님보다 옳다’로 읽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옳다’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3절의 원문은 먼저 ‘당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고 하고, 이어 ‘내가 무슨 이익을 얻는가’라고 해요. 본문에서는 두 질문 모두 욥 자신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연결했어요. 첫 질문을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는 말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35:8 사람이 어떻게 살든 하나님과는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엘리후는 먼저 사람보다 높이 있는 하늘을 가리키고, 사람의 죄나 올바름이 하나님께 무엇을 더하거나 빼겠느냐고 물어요. 이어서는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친다고 말해요. 같은 발언 안에서 하나님께서 외침을 들으시는지, 벌을 내리시는지도 다루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동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로 넓히기는 어려워요.
35:10 밤에 노래를 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 말은 사람을 만드시고 지혜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부르는 표현들 사이에 있어요. 엘리후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도움을 외치면서도 자신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찾지는 않는다고 주장해요. 밤의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요.
35:12 고통받는 사람들이 교만해서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교만은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는 태도예요. 응답이 없는 이유로 읽으면, 악한 사람들은 도움을 외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교만을 부르짖음의 원인으로 읽으면, 앞에 나온 힘센 가해자들의 교만 때문에 사람들이 도움을 외친다는 말이 돼요. 이 구절만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모두 교만해서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35:15 벌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말은 욥의 고난과 어떻게 이어지나요?
15–16절을 이 번역처럼 연결하면,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시니 욥이 계속 말을 늘어놓는다고 비난해요. 34장 37절에서도 그는 욥의 말을 반항이라고 평가했어요. 따라서 여기서는 욥의 고난이 없다는 설명보다 지금 하는 말을 향한 비난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다만 원문에서 ‘어리석은 짓’으로 옮긴 말은 뜻을 확정하기 어려워요. 이 두 절을 엘리후 자신의 설명으로 읽었지만, 욥의 주장을 되받아 말하는 것으로 연결할 여지도 있어요.
35:14 기다리라는 권유인가요, 욥의 말에 대한 비판인가요?
이 번역에서는 ‘그분을 뵐 수 없다고 하셔도’로 앞뒤를 잇고, 마지막 말을 기다리라는 요구로 옮겼어요. 이 요구가 반드시 위로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른 읽기에서는 첫 연결을 ‘하물며’로 옮기고, 하나님을 뵐 수 없다는 말과 사정이 그분 앞에 있다는 말, 그분을 기다린다는 말을 모두 욥의 주장으로 묶어요. 그러면 앞 절의 ‘듣지 않으신다’는 말이 욥에게도 이어지는 질책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