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스가랴 12장

이 장 풀어 읽기

예루살렘과 유다를 지키는 여호와야훼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 곧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하늘을 펼치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사람 안에 그 사람의 영을 빚는 여호와야훼의 선언입니다.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주변의 모든 민족을 비틀거리게 하는 잔으로 만들겠다. 예루살렘을 에워싼 공격은 유다에도 미칠 것이다. 그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로 만들겠다. 그 돌을 들어 올리는 자는 누구나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이다. 온 땅의 모든 나라가 예루살렘을 치려고 모일 것이다.」

여호와야훼의 선언입니다.

「그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혼란에 빠뜨리고, 그 말을 탄 자들은 제정신을 잃게 하겠다. 나는 눈을 뜨고 유다 백성을 살피겠다. 민족들의 말은 모두 쳐서 눈멀게 하겠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말할 것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 안에서 내게 힘이 된다.』 그날에 내가 유다의 지도자들을 장작 사이에 놓인 불 담긴 화로처럼, 베어 놓은 곡식 사이의 타오르는 횃불처럼 만들겠다. 그들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주변의 모든 민족을 삼킬 것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인 예루살렘에서 살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유다의 천막들을 먼저 구하실 것입니다.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영광이 유다의 영광보다 커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날에 여호와야훼께서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비틀거리는 사람도 그날에는 다윗처럼 될 것입니다. 다윗 집안은 하나님처럼, 그들 앞에 선 여호와야훼의 천사처럼 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나는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나라를 없애 버리려고 나서겠다.」

「내가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간절한 기도의 영을 쏟아붓겠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볼 것이다. 외아들을 잃고 울며 슬퍼하듯 그를 두고 울며 슬퍼하고, 맏아들을 잃고 몹시 괴로워하듯 그를 두고 몹시 괴로워할 것이다. 그날 예루살렘에서는 므깃도 골짜기의 하닷림몬에서처럼 크게 울며 슬퍼할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은 집안마다 따로 울며 슬퍼할 것이다. 다윗 집안은 따로, 그들의 아내들은 따로, 나단 집안은 따로, 그들의 아내들은 따로, 레위 집안은 따로, 그들의 아내들은 따로, 시므이 집안은 따로, 그들의 아내들은 따로, 나머지 모든 집안도 집안마다 따로, 그들의 아내들도 따로 울며 슬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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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예루살렘이 어떻게 잔과 돌이 되나요?

잔의 내용물을 마신 사람이 비틀거리고,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려던 사람이 상처를 입는 모습을 떠올리게 해요. 두 비유 모두 예루살렘을 건드리는 민족들이 겪을 일을 보여 줘요.

12:6 화로는 무엇이며, 왜 지도자를 화로에 빗대나요?

이 절은 화로와 횃불을 나란히 놓고, 지도자들이 주변 민족들을 ‘삼킨다’고 해요. 불이 탈 것을 집어삼키는 모습에 전쟁의 승리를 빗댄 말이에요.

12:7 ‘유다의 천막들’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이 절은 유다의 천막들을 다윗 왕의 가문과 예루살렘 주민들에 나란히 놓아요.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천막들을 먼저 구해서,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 주민들의 영광이 유다보다 커지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12:8 다윗처럼,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비틀거리는 사람’과 다윗을 비교하고, 다윗 집안은 하나님과 여호와야훼의 천사에 비교해요. 이 비교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예루살렘 사람들을 지키신다는 약속에 이어져요. ‘그들 앞에 선’ 모습은 다윗 집안이 백성을 이끄는 역할을 떠올리게 해요.

12:10 ‘은혜와 간절한 기도의 영’은 무엇인가요?

여호와야훼께서 이 영을 사람들에게 쏟아붓겠다고 하신 뒤, 사람들이 자신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깊이 슬퍼하는 모습이 이어져요. 영을 받는 일과 사람들의 변화가 연결되지만, 이 표현이 뜻하는 모든 내용을 본문이 따로 설명하지는 않아요.

12:10 바라보는 ‘나’와 슬퍼하는 ‘그’는 같은 대상인가요?

히브리어 원문에는 ‘나를 바라볼 것이다’와 ‘그를 두고 슬퍼할 것이다’라는 표현이 함께 있어요. 이 번역은 그 사이의 ‘그들이 찌른 이’를 ‘나’와 연결해 ‘자기들이 찌른 나를’로 옮겼어요. ‘나를 바라보며, 자기들이 찌른 이를 두고 슬퍼할 것이다’처럼 바라보는 대상과 슬퍼하는 대상을 구별해 읽기도 해요. 어느 읽기든 사람들이 찌른 이를 두고 아들을 잃은 부모처럼 깊이 슬퍼한다는 내용은 같아요.

12:11 ‘하닷림몬에서처럼’ 슬퍼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하닷림몬’은 개역개정 성경의 ‘하다드림몬’과 같은 이름이에요. 히브리어 원문의 ‘므깃돈’은 므깃도를 가리키는 다른 형태의 이름이에요. 역대하 35:22–25에는 므깃도에서 싸우다 죽은 요시야를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하닷림몬을 그 지역의 장소로 이해하면 이 애도와 연결해 볼 수 있어요. 하닷림몬을 장소가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보고, 그 신을 위한 애도를 가리킨다고 읽는 해석도 있어요. 본문은 예루살렘에 닥칠 큰 슬픔을 이 애도에 빗대지만, 어느 배경인지 직접 설명하지는 않아요.

12:10 요한복음도 찔린 이를 바라본다는 말을 인용하나요?

요한복음은 이 표현을 예수께 일어난 일과 연결해요. 스가랴에서는 찔린 이를 바라보는 일에 이어 사람들이 깊이 슬퍼하는 모습이 나와요.

12:12 나단 집안과 시므이 집안은 누구인가요?

나단을 다윗의 아들 계열로, 시므이를 레위 자손 계열로 이해하는 읽기가 있어요. 나단을 예언자 나단과 연결하기도 하지만, 본문은 어느 인물을 말하는지 가계를 설명하지 않아요. 14절은 나머지 모든 집안으로 범위를 넓혀, 어느 한 집안에만 슬픔이 머물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