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장 · 성전을 더럽힌 왕

제국이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할 때

마카베오기 상권은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출발한 한 왕이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수많은 민족을 정복하고, 땅끝까지 진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광대한 세계를 손에 넣은 사람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가 남긴 제국은 여러 왕의 손에 나뉘고, 그 가운데 한 왕의 통치가 마침내 예루살렘의 작은 가정에까지 미칩니다.

이 장의 처음에는 세계를 정복한 왕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정작 중요한 질문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권력이 인간에게서 무엇까지 빼앗을 수 있는가가 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장은 외부의 박해만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언약을 떠나는 선택과, 언약을 버리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어떻게 만나 하나의 비극을 이루는지 보여 줍니다.

이 책은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101장 본문 읽기 →

땅을 잠잠하게 만든 왕, 그러나 죽음을 이기지 못한 왕

마카베오기 상권 1:1–10 본문 →

첫 문장은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오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여기서 다리오는 페르시아 제국의 마지막 왕인 다리오 3세이며,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기원전 4세기의 일입니다.

그가 나왔다는 ‘깃딤 땅’은 지중해 서쪽 세계를 가리키는 성경의 오래된 지리적 표현입니다. 본래 키프로스와 관계된 이름이지만, 성경에서는 점차 그리스와 서방 세력까지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이사야 23:1, 다니엘 11:30 참조). 마카베오기 저자는 알렉산드로스의 출신을 설명하면서도 이스라엘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세계 지도의 언어를 유지합니다.

땅끝까지 나아가 수많은 민족에게서 노획물을 빼앗았다. 땅은 그의 앞에서 잠잠해졌다. 그는 높아졌고 그의 마음은 교만해졌다.마카베오기 상권 1:3 · 본디새김

정복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평화의 장면입니다. 더는 저항할 나라가 없고, 그를 막아설 왕도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잠잠함을 곧바로 그의 교만과 연결합니다.

힘으로 얻은 침묵은 반드시 평화와 같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갑작스럽게 끝납니다.

그 뒤 그는 병상에 쓰러졌고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마카베오기 상권 1:5 · 본디새김

수많은 요새를 점령했던 사람이 자기 목숨만은 지킬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죽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왕이었는지를 말한 다음, 단순히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점에서는 다니엘서 4장의 느부갓네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두 본문은 같은 사건을 말하지 않지만, 인간 통치자가 자신의 힘과 높아짐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할 때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만납니다.

6–9절은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나라를 나누어 가지고 왕관을 쓰는 과정을 압축합니다.

그가 죽은 뒤 그들은 모두 왕관을 썼고, 그들의 아들들도 그 뒤를 이어 오랫동안 왕관을 썼다. 그들은 땅에 악을 늘려 갔다.마카베오기 상권 1:9 · 본디새김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것은 거대한 영토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후계자들은 더 많은 권력 경쟁과 폭력을 낳았습니다.

그들에게서 죄악의 뿌리 하나가 나왔으니, 안티오코스 왕의 아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였다. 그는 로마에서 볼모로 지냈으며, 그리스 왕국 137년에 왕이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10 · 본디새김

한 사람을 뿌리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행동이 그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갈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 왕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입니다. 137년이라는 연도는 대략 기원전 175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의 정치적 이력만이 아닙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의 역사에서 나온 이 왕이, 이제 이스라엘의 언약을 직접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역사적으로 제국의 분할과 후계 왕조의 확립은 그가 죽은 뒤 오랜 권력 투쟁을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은 이 복잡한 과정을 알렉산드로스가 살아 있을 때 나라를 나누어 주었다는 서술로 단순화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세부 연대기를 그대로 복원한 기록이라기보다, 그의 제국이 여러 왕국으로 나뉘었다는 결과를 전달하는 역사적 요약으로 읽어야 합니다.

언약을 떠나기 위해 또 다른 언약을 맺다

마카베오기 상권 1:11–15 본문 →

안티오코스가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전에 본문은 뜻밖에도 이스라엘 내부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그 무렵 이스라엘에서 율법을 어기는 자가 나와 많은 사람을 꾀며 말했다. 「가서 우리 둘레의 이방 민족들과 언약을 맺자. 우리가 그들과 갈라진 뒤로 많은 재앙이 우리에게 닥쳤다.」마카베오기 상권 1:1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이미 오랫동안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주변 세계와 정치적·문화적으로 구별되어 살아가는 일에는 실제 어려움이 따랐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더 안전하고 유리한 길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다는 재앙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실제로 어떤 불이익을 당했는지는 이 절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집중하는 것은 그들의 해결책입니다.

그들은 주변 민족들과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15절은 이 사람들이 ‘거룩한 언약’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새로운 언약을 맺으려는 그들의 선택은, 이미 자신들을 규정하고 있던 언약을 버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자기 몸을 할례받지 않은 몸으로 만들고 거룩한 언약을 떠났다. 이방 민족들과 결속했으며, 악을 행하는 데 자신을 팔아넘겼다.마카베오기 상권 1:15 · 본디새김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언약의 표징으로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할례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지를 몸에 새긴 표지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체육관은 운동 시설인 동시에 젊은 남성들의 교육과 사회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운동이 나체로 이루어지는 관습 때문에 할례받은 몸은 그리스인들과의 차이를 눈에 띄게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의 흔적을 감추려는 행동은 단지 외모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적인 공간에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지를 없애려는 행동이었습니다. 본문만으로 이들이 어떤 구체적인 신체적 방법을 사용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 행위가 언약과의 결별을 뜻한다는 저자의 평가는 분명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본문이 모든 그리스 문화의 수용을 곧바로 죄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리스식 시설을 이용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떠나면서 다른 민족들의 규례를 따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더 자유롭게 살려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결말을 ‘팔아넘겼다’고 표현합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선택한 길이 도리어 자신들을 다른 권력에 종속시키는 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은 곧 더 무거운 강제와 만납니다.

이집트를 정복하려던 왕이 성전으로 들어오다

마카베오기 상권 1:16–24 본문 →

안티오코스는 이집트를 정복하여 자신의 왕국과 합치려 합니다.

17절은 전차와 코끼리와 기병과 함대를 열거합니다. 코끼리는 당시 헬레니즘 왕국의 군대가 사용하던 중요한 전쟁 자산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군사력의 압도적인 규모를 보여 줍니다.

안티오코스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와 싸워 승리하고 노획물을 얻는 이야기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군대를 모으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며, 그 나라의 재물을 빼앗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 그의 군대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는 교만하게 성소로 들어가 금 제단과 불을 밝히는 등잔대와 그에 딸린 모든 기구를 빼앗았고,마카베오기 상권 1:21 · 본디새김

알렉산드로스에게도 교만이라는 평가가 붙었고(1:3), 안티오코스가 성소로 들어가는 행동에도 같은 평가가 붙습니다. 군사적 승리를 거둔 왕이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공간에까지 자기 권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그가 빼앗은 물건들의 목록은 단순한 귀금속 목록이 아닙니다.

금 제단은 향을 피우는 데 쓰였고, 등잔대는 성소를 밝히는 기구였습니다. 빵을 차려 놓는 상 역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성전 예배의 일부였습니다. 그 형태와 용도는 출애굽기 25장과 30장에 자세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빵을 차려 놓는 상과 부어 드리는 제물에 쓰는 잔들과 대접들과 금 향 접시들과 휘장과 관들과 성전 앞면의 금 장식도 빼앗았다. 그는 모든 것을 벗겨 냈다.마카베오기 상권 1:22 · 본디새김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지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표현하던 물건들이 정복자의 노획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왕이 얻은 것은 금과 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잃은 것은 그것보다 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배가 외국 군주의 손에 의해 중단될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43년, 대략 기원전 169년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22절의 그리스어 동사는 표면을 벗기거나 긁어 내는 행동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앞의 금 장식들과 이어 읽으면 성전의 귀한 장식마저 벗겨 가져갔다는 뜻이 선명해집니다.

신랑은 애가를 부르고 신부는 슬픔에 잠기다

마카베오기 상권 1:25–28 본문 →

성전 약탈이 끝나자 이야기의 문체가 달라집니다.

전쟁과 정복의 산문적 기록이 갑자기 공동체 전체의 슬픔을 노래하는 애가로 바뀝니다.

지도자들과 장로들은 탄식했고, 처녀들과 젊은이들은 기운을 잃었으며,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변해 버렸다.마카베오기 상권 1:26 · 본디새김

나라의 지도층에서부터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슬픔이 미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신랑이 애가를 불렀고, 신방에 앉은 신부는 슬픔에 잠겼다.마카베오기 상권 1:27 · 본디새김

결혼은 새로운 가정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공동체가 앞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한 민족의 미래를 축하해야 할 순간이 상실을 애도하는 순간으로 바뀌었다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 7:34도 심판을 받은 유다 땅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기뻐하는 소리가 그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두 본문은 모두 공동체의 붕괴를 결혼의 기쁨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땅은 그곳에 사는 이들 때문에 떨었고, 야곱의 온 집안은 수치를 입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28 · 본디새김

왕의 힘 앞에서 잠잠해졌던 땅(1:3)이 이제 이스라엘의 고통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정복자가 바라보는 세계가 그려졌다면, 여기서는 정복당한 백성이 살아가는 세계가 그려집니다.

군사적 승리의 기록에서 ‘노획물’이라는 한 단어로 처리될 수 있는 사건이,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신랑과 신부의 기쁨까지 빼앗아 가는 비극이었습니다.

다윗의 성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성채가 되다

마카베오기 상권 1:29–40 본문 →

성전 약탈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만 두 해가 지난 뒤 왕은 군대를 거느린 관리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는 속임수를 품고 그들에게 평화를 말했고, 그들은 그를 믿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그 도시를 덮쳐 큰 타격을 입히고 이스라엘 백성을 수없이 죽였다.마카베오기 상권 1:30 · 본디새김

여기서 저자는 외국인과의 모든 협상이나 평화 추구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상대가 평화의 언어를 속임수로 사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도시는 약탈당하고 불타며, 여자들과 아이들은 사로잡힙니다.

그들은 다윗의 성에 크고 견고한 성벽과 튼튼한 망대들을 세웠다. 그 성은 그들의 성채가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33 · 본디새김

‘다윗의 성’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의 기억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여 왕국의 중심지로 삼았던 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5:6–10).

그런데 바로 그 이름을 가진 장소가 이제 이스라엘을 감시하고 위협하는 군사 거점이 됩니다.

35–36절은 그 성채를 ‘큰 올무’, ‘성소를 노리는 매복처’라고 부릅니다. 성벽은 본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벽은 예루살렘 주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협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들 때문에 달아났고, 그 성은 낯선 이들이 사는 곳이 되었다. 그 성은 자신이 낳은 이들에게 낯선 곳이 되었고, 그 성의 자녀들은 그곳을 버리고 떠났다.마카베오기 상권 1:38 · 본디새김

예루살렘은 여기서 자녀를 낳은 어머니처럼 묘사됩니다. 이러한 의인화는 예레미야애가 1장의 예루살렘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을 잃고 울고 있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39절은 그 비극을 세 가지 변화로 요약합니다. 성소는 황폐해졌습니다. 명절은 슬픔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치욕이 되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이고, 명절은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는 시간이며,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리듬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파괴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삶이 공간과 시간 양쪽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안티오코스는 그 붕괴를 국가의 법으로 완성하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에서 이 성채는 흔히 ‘아크라’라고 부르는 셀레우코스의 예루살렘 주둔지와 관계됩니다. 고대 예루살렘의 정확히 어느 부분에 그 시설이 자리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성소를 위협하는 적대적 거점이 예루살렘 내부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왕의 문서가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하려 하다

마카베오기 상권 1:41–53 본문 →

41절은 안티오코스가 나라 전체에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고 기록합니다.

왕은 자기 나라 전체에 글을 보내 모두 한 백성이 되고, 저마다 자기 관습을 버리라고 했다. 모든 민족이 왕의 말대로 받아들였다.마카베오기 상권 1:41–42 · 본디새김

처음에는 주변 세계와 같아지는 일을 스스로 선택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주변 세계와 같아지는 일이 왕의 명령이 되었고, 거부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다만 41–42절의 표현을 실제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종교 정책이 똑같이 집행되었다는 확정적인 행정 기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안티오코스의 정책을 광범위한 통일 명령으로 서술하지만, 구체적인 집행 과정은 특히 유다와 예루살렘에 집중합니다.

왕은 문서를 보내 명령합니다(1:41, 44, 51). 이에 따라 관리들이 각 도시를 감독합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한 책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책들에는 안식일과 명절, 제사와 정결, 할례에 관한 규정들이 있었습니다.

왕의 문서와 율법의 책은 이제 같은 사람의 삶에 서로 다른 명령을 내립니다.

왕의 명령은 성소에서 번제와 제사를 금하고, 안식일과 명절을 더럽히고, 할례를 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모든 명령의 목적을 49절이 밝힙니다.

그리하여 율법을 잊고 모든 규정을 바꾸게 하려 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49 · 본디새김

왕은 백성이 당장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자체를 잊게 하려 합니다.

출애굽기 31:12–17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입니다. 창세기 17:9–14에서 할례 역시 언약의 표징입니다. 레위기 11장의 정결 규정은 무엇을 먹는가 하는 일상적인 행위까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삶과 연결합니다.

왕은 바로 그러한 표지들을 없애려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한 주, 할례를 행하지 않는 한 세대, 율법을 읽지 않는 한 가정이 반복되면 언약은 점점 사람들의 삶에서 잊혀 갈 수 있습니다. 51절의 감독관과 도시마다 행하라는 제사의 명령은 이 정책이 일상에 들어오도록 만드는 수단이었습니다.

53절에 이르러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난처의 은밀한 곳에 숨어 지내게 됩니다. 제국이 ‘모두 한 백성’이 되라고 말하는 동안,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의 땅에서 모습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왕이 약속하는 통일은 언약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살아갈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통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 위에 다른 제단을 세우다

마카베오기 상권 1:54–59 본문 →

45년 기슬르월 열닷샛날, 그들은 제단 위에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웠다. 또 둘레에 있는 유다의 도시들에 제단들을 세웠다.마카베오기 상권 1:54 · 본디새김
그달 스무닷샛날에는 성소의 제단 위에 세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마카베오기 상권 1:59 · 본디새김

기존 제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던 제단 위에 다른 예배를 위한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성전이었지만, 성전의 목적과 정반대되는 의식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치던 제단 위에서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는 것은 그 장소의 의미 자체를 뒤집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유다의 도시들에도 제단이 세워지고, 집의 창가와 거리에서도 향을 피웁니다. 공적인 예배 장소뿐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공간이 왕이 명령한 예배에 참여하도록 바뀝니다.

그 다음 등장하는 것이 율법 책의 소각입니다.

발견한 율법 책들은 찢어서 불에 태웠다.마카베오기 상권 1:56 · 본디새김

성전의 기구를 약탈했던 왕의 권력은 이제 성경의 두루마리를 불태웁니다.

누구에게서든 언약의 책이 발견되거나 누가 율법을 옳다고 받아들이면, 왕의 칙령에 따라 그 사람을 죽였다.마카베오기 상권 1:57 · 본디새김

왕은 단지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까지 자기 명령으로 바꾸려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러나 왕의 칙령은 그 율법을 따르는 것이 범죄라고 선언합니다.

동일한 행동이 하나님의 언약에 따르면 신실함이 되고, 왕의 칙령에 따르면 죽어 마땅한 죄가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조금 더 깊이

제공된 본디새김에는 ‘45년’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어 본문에는 ‘145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143년(1:20), 뒤의 148년(4:52)과 사건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이 사건은 셀레우코스 연호 145년, 대략 기원전 167년에 해당합니다.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은 다니엘 11:31과 12:11에도 등장합니다. ‘가증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는 우상숭배적 행위나 대상을 가리키며, ‘황폐하게 하는’이라는 말은 그것이 성소의 거룩함과 정상적인 예배를 파괴하는 결과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정확히 어떤 물건을 가리키는지는 54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스어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성전 제단을 튀시아스테리온(θυσιαστήριον)이라고 부르고, 그 위에 세운 다른 제단을 보모스(βωμός)라고 구별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6:2는 예루살렘 성전이 올림포스의 제우스에게 봉헌되도록 강요받았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곳에 설치된 이방 제단은 제우스 숭배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상권 1:54는 제단 위에 어떤 형상의 신상이 놓였는지까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기록을 연결하더라도 구체적인 구조물의 모습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할례를 행한 어머니들

마카베오기 상권 1:60–61 본문 →

그들은 명령에 따라 자기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한 여자들을 죽였다.마카베오기 상권 1:60 · 본디새김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는 일은 창세기 17장의 언약에 따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습이었습니다. 본문은 죽임당한 여자들의 이름이나 그들이 살았던 장소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왕이 금지했음에도 자기 아이들에게 언약의 표징을 남겼습니다.

61절은 젖먹이들마저 잔혹한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에는 고통을 완화할 만한 수식이 없습니다.

본문은 이 어머니들이 자신의 행동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언약을 지키려는 행동 때문에 그들과 그 가족들이 처형당했습니다.

그들의 신실함이 고통을 막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왕이 그들의 자녀를 제국의 법 아래에 두려 했을 때, 그들은 자녀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속한다는 표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출애굽기 1장의 히브리 산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파라오는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출애굽기 1:15–21). 출애굽기의 산파들은 아이들의 생명을 보존하려 했고, 마카베오기 1장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하지만 두 본문에서는 모두 강대한 왕의 명령이 아이들의 삶에까지 침입하며, 그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진노

마카베오기 상권 1:62–64 본문 →

앞에서는 할례가 문제였다면, 마지막에는 음식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매달렸다. 그들은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다졌다.마카베오기 상권 1:62 · 본디새김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거룩한 언약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죽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63 · 본디새김

레위기 11장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동물을 먹고 어떤 동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거룩함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일상적인 식사에서도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기억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사람들의 죽음을 곧바로 승리의 이야기로 바꾸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적적으로 구해 주셨다는 말도 없고, 박해자에게 즉각적인 벌이 내렸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64절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위에 매우 큰 진노가 닥쳤다.마카베오기 상권 1:64 · 본디새김

여기서 ‘진노’가 정확히 누구의 진노인지 본문은 명시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여러 문맥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이 겪는 재앙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절 자체는 하나님을 행위 주체로 밝히지 않으며, 앞에는 왕의 잔혹한 박해가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죽임당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진노를 오직 사람들의 감정이나 왕의 분노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장은 그 고난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다니엘 3장의 세 친구는 왕이 명령한 우상숭배를 거부합니다. 그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불 가운데서 건져 내십니다. 그러나 마카베오기 상권 1장에서는 언약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죽습니다.

그 차이를 지워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제공된 본디새김에는 ‘매달렸다’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본문에는 ‘굳세어졌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쓰여, 많은 사람이 부정한 것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앞의 독법을 따르면 매달린 사람들과 음식을 거부한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뒤의 독법을 따르면 62–63절은 결심에서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읽힙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언약의 무게

마카베오기 상권 1:1–64 본문 →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율법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이스라엘의 삶에 새겨져 있습니다. 왕이 그것을 없애려 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과 언약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국은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거룩하게 여기고 무엇에 충성할 것인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는 신학적 선언과는 다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서술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언약이 사람들의 선택을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이 본문을 읽을 때 안티오코스와 같은 박해자를 찾아내거나, 어떤 외부 문화를 곧바로 신앙의 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조심해야 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장이 기록한 사람들의 선택은 당시 이스라엘의 언약과 율법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의 독자가 이들의 음식 규정을 그대로 모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단순한 소속의 이름이 아니라, 삶에서 실제로 지켜야 할 관계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거부했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으려 했으며,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거부한 것은 한 끼의 음식이었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성전의 금은 빼앗겼고, 제단은 더럽혀졌으며, 율법 책은 불탔습니다.

그런데 아직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명령보다 거룩한 언약을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장은 그들이 구출되는 장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만 그 어두운 시대 한가운데서도,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깁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