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마타티아스의 봉기

언약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카베오기 상권 2장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한 제사장은 왕의 명령에 따라 이방 제단에 제사하려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입니다. 그는 율법을 위해 열심을 낸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얼마 뒤 광야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안식일에 공격받으면서도 무기를 들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지키려고 했고, 결국 가족들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두 무리는 모두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한쪽은 싸웠고, 다른 쪽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충실하다는 것은 끝까지 율법의 규정을 지키는 것입니까, 아니면 율법이 지키려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까?

이 장은 율법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며 살아남을 길도 찾아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82장 본문 읽기 →

예루살렘의 비극이 한 제사장의 탄식이 되다

마카베오기 상권 2:1–14 본문 →

마타티아스는 시므온의 손자이며 요한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그는 여호야립 가문에 속한 제사장입니다.

여호야립은 역대상 24:7에서 제사장 직무의 첫 번째 반열로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그는 단순히 고향을 빼앗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자신의 소명과 연결하여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전의 모독을 목격했습니다.

그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한, 시몬, 유다, 엘르아살, 요나단입니다. 이 명단은 뒤에 이어질 이야기에서 중요해질 인물들을 미리 소개합니다. 특히 유다에게 붙은 ‘마카베오’라는 별칭은 이 책의 명칭과 연결됩니다.

말했다. 「아, 슬프다. 나는 어찌하여 태어나 내 백성이 부서지는 모습과 거룩한 도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그 도시가 원수들의 손에, 성소가 낯선 이들의 손에 넘어갈 때 거기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마카베오기 상권 2:7 · 본디새김

마타티아스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묻기보다, 왜 자신이 이런 일을 보아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욥기 3장에서 욥이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탄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통이 너무 커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기구들은 포로처럼 끌려갔고, 그 성의 어린아이들은 그 성의 광장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그 성의 젊은이들은 원수의 큰 칼에 죽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9 · 본디새김

성전 기구들을 포로처럼 묘사함으로써, 저자는 물건을 빼앗긴 사건을 사람들을 사로잡아 간 사건처럼 그립니다. 이것은 마타티아스에게 성전 기구들이 단순히 값비싼 물건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 기구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과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의 모든 장식이 벗겨졌고, 자유로운 여인이던 그 성은 여자 노예가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11 · 본디새김

성전의 기구를 빼앗긴 일이 도시 전체의 자유를 빼앗긴 일과 연결됩니다. 이러한 의인화는 예레미야애가 1:1의 예루살렘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때 민족들 가운데 위대했던 도시가 이제 종처럼 되었다는 탄식입니다.

「우리가 더 살아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마카베오기 상권 2:13 · 본디새김

그는 단지 성전이 아름다웠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 곧바로 무기를 드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14절에서 마타티아스와 아들들이 먼저 하는 일은 옷을 찢고 베옷을 입으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애도와 회개, 극심한 고통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공동체의 비극 앞에서 애통하는 모습입니다.

이 장의 저자는 저항의 출발점에 애도를 놓습니다.

마타티아스는 처음부터 싸움을 원했던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가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던 공동체가 파괴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 슬픔의 한복판으로 왕의 관리들이 찾아옵니다.

「그 성의 성전은 영광스러운 사람처럼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8 · 본디새김
조금 더 깊이

제공된 본디새김이 따르는 독법에는 ‘영광스러운’이라는 말, 곧 그리스어 엔독소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어 본문에는 ‘영광을 잃은’이라는 뜻의 아독소스가 나옵니다. 후자의 경우 성전이 영광을 잃은 사람처럼 되었다는 뜻이므로 탄식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주변 문맥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표현에 의존해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왕의 벗이 될 것인가, 조상들의 언약 안에서 걸을 것인가

마카베오기 상권 2:15–22 본문 →

왕의 사자들이 모데인에 도착합니다. 목적은 주민들에게 왕이 명령한 제사를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왕의 사자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이 도시의 지도자이며 명망이 높고 큰 인물이십니다. 아들들과 형제들도 당신을 든든히 받쳐 주고 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2:17 · 본디새김

왕의 관리들은 마타티아스가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먼저 제사를 드리면 다른 주민들도 왕의 명령을 따르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이제 맨 먼저 나와 왕의 명령을 실행하십시오. 모든 민족과 유다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이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은 왕의 벗들 가운데 들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은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영예를 얻을 것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2:18 · 본디새김

‘왕의 벗들’은 단지 왕과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을 뜻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헬레니즘 왕국에서 왕의 ‘벗들’은 왕실과 가까운 관계를 인정받은 인물들을 가리키는 궁정의 명예 칭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제안은 실질적인 정치적 후원과 사회적 지위를 약속하는 말입니다.

왕은 한 아버지에게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면 가족은 부와 영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거부하면 가족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마타티아스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 안의 모든 민족이 왕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조상들의 예배를 버리고 왕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해도,」 「나와 내 아들들과 내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따라 걷겠소.」마카베오기 상권 2:19–20 · 본디새김

그는 왕의 명령과 조상들의 언약을 서로 다른 권위로 구별합니다. 자신의 삶을 언약이 정한 길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왕의 법에 복종하지 않겠소. 우리의 예배에서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벗어나지 않겠소.」마카베오기 상권 2:22 · 본디새김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벗어나지 않겠다’는 표현은 신명기 5:32와 17:11, 여호수아 1:7에 나타나는 율법의 언어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자기 편의에 따라 바꾸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제국의 권력 앞에서 제국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조상들에게 주어진 언약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설명합니다.

이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왕이 약속하는 미래보다 조상들의 언약을 물려주기로 선택했습니다.

그의 선언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 선언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율법을 위한 열심이 칼을 들다

마카베오기 상권 2:23–28 본문 →

마타티아스가 말을 마치자, 한 유대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제단에 다가갑니다.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 향을 피우려 합니다.

앞에서 왕의 관리는 마타티아스에게 먼저 제사를 드려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제 다른 유대인이 그 역할을 하려는 듯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마타티아스는 그것을 보고 열심에 불탔으며 그의 속이 떨렸다. 그는 판결에 따라 격분을 터뜨리고 달려가 그를 제단 위에서 베어 죽였다.마카베오기 상권 2:24 · 본디새김

그는 유대인을 죽이고, 제사를 강요하던 왕의 관리도 죽이고, 제단을 허뭅니다.

그는 비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시므리에게 했던 것처럼 율법을 위해 열심을 냈다.마카베오기 상권 2:26 · 본디새김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 숭배와 관련된 사건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집니다. 그때 제사장 비느하스는 시므리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죽입니다. 민수기 25:11–13은 그의 열심이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게 했으며, 그에게 평화의 언약과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 주어졌다고 기록합니다.

마카베오기 저자는 마타티아스를 바로 그 비느하스의 계보에 놓습니다.

하지만 두 본문 사이에는 차이도 있습니다. 민수기 25장에는 하나님이 비느하스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2장에는 그러한 직접적인 신적 선언이 없습니다. 저자가 마타티아스의 행동을 비느하스의 열심에 비추어 긍정적으로 그린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마타티아스의 모든 행동을 직접 승인하셨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본문은 마타티아스의 행동을 저항의 출발점으로 제시하지만, 오늘의 독자가 이 장면을 근거로 종교적 열심을 내세운 폭력을 일반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가 이해한 당시의 언약적 상황과,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는 판단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타티아스에게 문제의 중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다른 신에게 바치는 제사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언약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타티아스가 도시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율법을 위해 열심을 내고 언약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 나를 따라 나서라.」마카베오기 상권 2:27 · 본디새김

이 선언으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저항은 한 제사장과 그의 가족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타티아스는 누구든지 언약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함께하라고 부릅니다.

그와 그의 아들들은 산으로 달아났으며, 도시에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버려두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28 · 본디새김

그는 왕의 벗이 되어 얻을 수 있었던 부와 영예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재산까지 잃었습니다.

언약을 지키겠다는 그의 선언은 그를 높은 자리로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살던 곳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산과 광야로 떠난 사람들은 이제 더 어려운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마타티아스가 율법에 따른 정당한 판결을 집행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고, 저자가 그의 분노를 의로운 것으로 평가한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절은 구체적으로 어느 법조항에 따른 판결인지, 누가 그 판결을 내렸는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24절의 ‘판결에 따라’라는 표현만으로 모든 폭력적 행동에 법적 정당성이 부여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죽을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싸울 것인가

마카베오기 상권 2:29–41 본문 →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광야로 떠납니다.

그들은 ‘의와 공정을 구하는’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입니다.

이들은 전쟁을 위해 특별히 모집된 병사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와 아내, 가축을 데리고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피난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군대는 그들이 숨어 있는 곳까지 추격합니다.

군대가 공격을 준비한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군사들이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라. 밖으로 나와 왕의 말대로 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33 · 본디새김

이 말은 생명을 조건으로 내세운 요구입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피난민들은 거부합니다.

그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나가지 않겠소. 왕의 말대로 하여 안식일을 더럽히지도 않겠소.」마카베오기 상권 2:34 · 본디새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거룩한 날입니다. 출애굽기 31:12–17은 안식일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으로 설명합니다. 그날은 자신들의 생존과 노동이 전적으로 자기 능력에 달려 있지 않음을 기억하며 하나님 안에서 쉬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맞서 싸우지도, 군사들에게 돌을 던지지도, 은신처들을 막지도 않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36 · 본디새김

그들이 단순히 무기가 없어서 저항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본문은 저항하지 않는 행동 자체를 강조합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 모두 순전함을 지키며 죽자. 너희가 재판도 없이 우리를 죽인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우리를 두고 증언한다.」마카베오기 상권 2:37 · 본디새김

그들 앞에는 왕의 재판관이 없습니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군대가 모든 힘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며 자신들의 죽음이 부당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죽음으로써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증언합니다.

군사들이 안식일에 그들을 치러 일어났다. 그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과 가축들이 죽었으며, 죽은 사람은 천 명가량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38 · 본디새김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이 장은 끝까지 안식일을 지키다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다음에 마타티아스와 그의 동료들이 나눈 대화를 기록합니다. 그들은 죽임당한 사람들을 위해 몹시 슬퍼합니다.

그들은 서로 말했다. 「우리 모두 우리 형제들이 한 대로 하여 우리의 목숨과 우리의 규정들을 지키려고 이방 민족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이제 그들이 우리를 땅에서 더 빨리 없애 버릴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40 · 본디새김

이 판단의 핵심은 ‘우리의 목숨과 우리의 규정들’이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율법을 서로 대립하는 두 가치로만 보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려다 공동체 전체가 죽어 없어진다면, 그 율법을 따라 살아갈 백성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날 그들은 의논하여 결심했다. 「누구든 안식일에 우리와 싸우러 오면 그에게 맞서 싸우자. 은신처에서 죽은 우리 형제들처럼 우리 모두가 죽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41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앞에서 죽은 사람들의 신앙을 잘못된 것으로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마타티아스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을 ‘우리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애도했습니다. 다만 그들의 죽음을 경험한 뒤 같은 선택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어떠한 전쟁이든 벌여도 좋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안식일에 우리와 싸우러 오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본문이 직접 서술하는 것은 공격받을 때 방어적으로 싸우겠다는 결정입니다. 이를 안식일의 모든 군사 행동에 대한 무제한적인 허용으로 확대하는 것은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들은 율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판단했습니다.

이때 그들의 결정이 하나님에게서 직접 계시되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난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함께 의논하여 내린 결정입니다. 다만 이 장이 제시하는 것은 구체적인 위기에서 내린 공동체의 판단이지, 안식일 규정 전체에 관한 체계적인 법 해석은 아닙니다.

마타티아스의 결정은 그들의 죽음을 헛된 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살아남을 다른 길을 찾습니다.

이 장에서 언약에 대한 충실함은 단지 죽음을 각오하는 용기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을 다시 검토하는 책임으로도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30:19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놓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릅니다. 신명기 31:28에서도 하늘과 땅이 이스라엘에 대한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광야의 피난민들도 같은 언약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앞에서 마타티아스가 ‘판결에 따라’ 행동했다고 기록한 것과 37절의 ‘재판도 없이’라는 말을 함께 읽으면, 이 장에는 누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며 무엇이 정당한 행위인가 하는 질문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해받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다

마카베오기 상권 2:42–48 본문 →

안식일에 대한 결정 이후 마타티아스의 무리는 점차 커집니다.

42절은 ‘하시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합류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을 나중에 등장하는 특정 유대교 분파와 곧바로 동일시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이들을 율법을 위해 자원한 사람들로 소개한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에는 율법을 위해 자원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박해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기가 완전히 같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을 지키겠다는 신념 때문에 합류했고, 어떤 사람은 당장 살아남을 곳이 필요해서 합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43절의 ‘버팀목’이라는 표현은 이 장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마타티아스 혼자가 이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합류한 사람들도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부터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그들은 군대를 조직하고 분노하여 죄인들을 쳤으며, 격분하여 율법을 어기는 자들을 쳤다. 남은 자들은 목숨을 구하려고 이방 민족들에게 달아났다.마카베오기 상권 2:44 · 본디새김

그들의 상대는 외국 군대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왕의 종교 정책을 따르거나 율법을 어긴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45절에서는 이방 제단들을 허뭅니다. 앞에서 마타티아스가 모데인의 제단을 허물었던 행동이 이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이스라엘 땅 안에서 마타티아스가 찾아낸 할례받지 않은 아이들에게 모두 강제로 할례를 행했다.마카베오기 상권 2:46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안티오코스의 명령은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마타티아스의 무리는 이제 그 명령을 뒤집어 할례를 행합니다.

이 둘의 역사적 상황과 목적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한쪽은 제국이 피지배 민족의 언약 관습을 억압한 것이고, 다른 쪽은 박해받던 공동체가 자신들의 언약 관습을 회복하려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강제력이 행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절은 아이들에게 할례를 시행할 때 부모나 아이의 동의가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행동을 율법을 지키는 일의 일부로 긍정적으로 서술합니다. 실제로 47절은 그들의 일이 잘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고, 48절은 그들이 왕들의 손에서 율법을 지켜 냈다고 말합니다.

마카베오기 저자가 그들의 행동을 언약 회복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본문에서 확인됩니다. 그러나 그 서술이 종교적 목적을 위한 모든 강제를 정당화하는 보편적인 명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강제 할례를 새롭게 명령하시는 말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했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처형되는 현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할례의 회복은 그들에게 언약 공동체가 살아남았다는 증거였을 것입니다.

이 장의 이야기는 바로 그 깊은 절박함과 폭력적인 대응을 함께 기록합니다.

저자는 마타티아스의 저항이 성공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운동을 시작한 마타티아스 자신의 생애는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46절의 ‘강제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엔 이스퀴는 ‘힘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라는 의미를 지닌 표현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단순히 힘차고 용감하게 행동했다는 뜻보다, 대상의 의사와 관계없이 힘을 행사했다는 의미로 읽을 근거가 있습니다.

죽어 가는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남긴 것은 전쟁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마카베오기 상권 2:49–61 본문 →

마타티아스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을 불러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마타티아스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아들들에게 말했다. 「이제 교만과 모욕, 파멸의 때와 타오르는 분노가 굳게 자리 잡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49 · 본디새김

그는 자신의 저항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교만한 권력이 지배하고 있고, 공동체는 파멸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얘들아, 율법을 위해 열심을 내고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위해 너희 목숨을 바쳐라.」마카베오기 상권 2:50 · 본디새김

마타티아스는 이미 싸우지 않고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들들에게 무조건 죽음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도 언약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떠올립니다.

모두 전쟁 영웅이 아닙니다.

마타티아스는 자신이 시작한 무장 저항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한 인물들만을 열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 사람, 유혹을 견딘 사람, 회중 앞에서 올바른 증언을 한 사람, 자비를 베푼 사람, 자신의 믿음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함께 기억합니다.

아브라함과 요셉 — 충실함은 전쟁터 밖에서도 드러난다

「아브라함은 시험 속에서 신실하다고 드러났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지지 않았느냐?」마카베오기 상권 2:52 · 본디새김

여기에는 창세기의 두 장면이 겹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의로 여겨졌다는 표현은 창세기 15:6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면 시험을 받았다는 표현은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 창세기 22장의 사건과 연결됩니다. 마타티아스는 두 이야기를 하나의 문장 안에서 결합하여, 아브라함이 시험 가운데서 신실함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셉은 막다른 처지에 놓였을 때 계명을 지켰고 이집트의 주인이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53 · 본디새김

요셉이 겪었던 가장 중요한 시험 가운데 하나는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을 때였습니다. 창세기 39:9에서 요셉은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당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다만 유대 전승에는 족장들이 율법을 미리 알고 지켰다는 이해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요셉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요셉은 그 선택으로 당장 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마침내 이집트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마타티아스가 이 사례를 통해 아들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은, 현재의 불이익이 반드시 충실함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비느하스와 엘리야 — 열심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우리 조상 비느하스는 열심에 불타서 거룩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받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54 · 본디새김

마타티아스는 자신이 보인 열심을 조상들의 역사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는 율법에 대한 열심에 불타서 하늘로 향하듯 들려 올라갔다.」마카베오기 상권 2:58 · 본디새김

열왕기상 19:10에서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매우 열심을 냈다고 말합니다. 바알 숭배가 퍼지고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죽임당하는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충실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역시 박해의 위협을 받았고, 광야로 도망쳤으며,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열왕기상 19:4). 이 점에서 마타티아스는 엘리야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삶은 단지 강한 열심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서 하나님은 낙심한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쉬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 사람의 분노와 용기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타티아스의 유언에도 그에 상응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혼자 모든 일을 마무리하려 하지 않고, 아들들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일을 맡깁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 다수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다

「여호수아는 명령을 온전히 이행하여 이스라엘의 재판장이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2:55 · 본디새김
「갈렙은 회중에게 증언하여 땅을 상속 재산으로 받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56 · 본디새김

민수기 13–14장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정탐꾼들 가운데 다수는 그 땅의 주민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충실함은 다수의 판단에 맞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위험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 위험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결정적인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마타티아스 역시 왕의 관리에게서 다른 민족들과 많은 유대인들이 이미 왕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수가 선택한 길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는 그러한 선택을 조상들의 기억 안에서 다시 보게 합니다.

다윗 — 전쟁을 준비하는 유언 속에 들어 있는 자비

「다윗은 자신이 베푼 자비로 영원한 왕국의 왕좌를 물려받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57 · 본디새김

다윗은 전쟁을 많이 치른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타티아스는 그의 무공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자비’를 강조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얻고도 그의 목숨을 해치지 않았던 사건들이 떠오릅니다(사무엘상 24:6–7; 26:9–11). 마타티아스가 구체적으로 이 사건만을 염두에 두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다윗이 원수를 대하는 태도를 드러낸 중요한 장면들입니다.

다윗 왕조에 대한 영원한 약속 자체는 사무엘하 7:12–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단순히 다윗의 한 가지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2:57은 다윗의 삶을 돌아보며 자비와 왕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그의 기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열거하는 충실함에는 용기와 열심뿐 아니라 자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타티아스의 유언을 단순한 전투적 열정의 선언으로 읽지 못하게 합니다.

그가 전해 주려는 조상들의 유산은 적을 쓰러뜨리는 능력보다 넓습니다.

불꽃과 사자굴 —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결과를 지배하지는 못한다

「하나냐와 아사랴와 미사엘은 믿었기에 불꽃에서 구원받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59 · 본디새김
「다니엘은 자신의 순전함으로 사자들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다.」마카베오기 상권 2:60 · 본디새김

다니엘 3장에서 세 사람은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불 속에서 건져 내실 수 있지만, 설령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다니엘 3:16–18).

마타티아스는 왕의 명령을 거부했지만 자신이 반드시 살아남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도 구출받지 못했습니다.

다니엘 6장에서도 다니엘은 왕의 법령 때문에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자굴에 던져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주십니다.

마타티아스는 이러한 구원의 이야기들을 아들들에게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을 누구든 신실하기만 하면 반드시 물리적인 위험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으로 읽는다면, 바로 앞에서 죽은 천 명가량의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세대를 하나씩 돌아보며, 그분에게 희망을 두는 모든 사람이 힘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마카베오기 상권 2:61 · 본디새김

그러므로 61절의 말은 모든 신실한 사람이 언제나 즉각적인 구출을 경험한다는 약속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삶이 눈앞의 위기와 실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이 겪은 위기는 서로 달랐습니다. 그들이 보여 준 충실함의 모습도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더 큰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것이 마타티아스가 아들들에게 물려주려는 기억이었습니다.

왕의 영광은 사라지지만,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길을 남긴다

마카베오기 상권 2:62–70 본문 →

마타티아스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현재의 위협으로 돌아옵니다.

「죄인의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라. 그의 영광은 거름과 구더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62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앞에서 왕의 관리가 약속했던 영예와 대조됩니다. 그들은 마타티아스에게 왕의 벗이 되면 은과 금과 많은 선물을 얻고 영예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대한 왕의 권세도 죽음 앞에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늘 높아지겠지만, 그를 결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가 제 흙으로 돌아갔고 그의 계획이 사라졌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63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시편 146:3–4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 시편은 통치자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숨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날 그의 계획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타티아스는 지금 자신들을 박해하는 왕 역시 그런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들들에게 일깨웁니다. 왕은 자기 명령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까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얘들아, 너희는 너희 율법 안에서 힘을 내고 용기를 내라. 너희는 그 율법 안에서 영광을 얻을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64 · 본디새김

두 종류의 영광이 서로 마주합니다.

하나는 왕이 부여하고 왕이 거두어 갈 수 있는 영광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한 삶에서 얻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아들들에게 막연한 용기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지도 체계를 마련합니다.

「보라, 너희 형제 시몬은 지략 있는 사람임을 내가 안다. 언제나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에게 아버지가 될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65 · 본디새김
「유다 마카베오는 젊을 때부터 싸움에 강했다. 그가 너희 군대의 지휘관이 될 것이다. 너희는 여러 민족과 전쟁을 벌일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2:66 · 본디새김

마타티아스는 군대를 지휘할 사람과 공동체가 의지할 조언자를 구별합니다. 이 결정은 앞에서 안식일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과도 어울립니다. 그때 사람들은 단순히 용기를 내어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살피고, 형제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함께 의논하여 판단했습니다.

그가 유다에게 군대의 지휘를 맡기면서도 시몬의 말을 들으라고 요구한 것은, 힘을 행사하는 역할과 신중하게 판단하는 역할을 함께 세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율법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모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백성의 원수를 갚으며, 이방 민족들이 행한 대로 갚으라고 말합니다.

「이방 민족들에게 그들이 한 대로 갚아 주고, 율법의 명령들에 마음을 기울여라.」마카베오기 상권 2:68 · 본디새김

이 명령 역시 당시의 전쟁과 복수의 언어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마타티아스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인 세력에 맞서 싸우라고 아들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절을 오늘날 다른 민족 전체에 대한 적개심이나 집단적 보복의 정당화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유언의 마지막 명령은 다시 율법으로 돌아옵니다.

마침내 그는 죽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자기 조상들 곁으로 갔다.마카베오기 상권 2:69 · 본디새김

그는 아들들에게 조상들을 기억하라고 했고, 이제 자신도 조상들 곁으로 갑니다.

조금 더 깊이

‘조상들 곁으로 갔다’는 표현은 창세기 25:8의 아브라함과 창세기 35:29의 이삭 등에게도 사용되는 죽음의 관용적인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2장이 보여 주는 언약과 충실함

마카베오기 상권 2:1–70 본문 →

그의 시대에 언약을 지킨다는 것은 이전 세대의 삶을 단순히 반복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왔던 길을 기억하고, 새로운 위기 앞에서 그 믿음에 합당한 선택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생명을 지킬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마타티아스는 아들들에게 자신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세세하게 모두 알려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두 아들에게 서로 다른 책임을 맡겼으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완성된 승리가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을 감당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장의 처음에 마타티아스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자신이 더 살아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회복하는 날까지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끝날 때, 그 질문 앞에는 한 가지 구체적인 결과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지키려 했던 언약을 이어 갈 사람들이 그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통곡하는 가운데, 다섯 아들은 아버지를 모데인의 조상들 곁에 묻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대신할 새로운 성전도, 빼앗긴 나라를 대신할 새로운 왕국도 아직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가 들려준 조상들의 이야기와, 앞으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언약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