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9–12장 · 요나단이 이끈 때

성문이 닫히기 전까지

요나단은 적군이 밤에 기습하려 한다는 정보를 얻자 즉시 병사들에게 무기를 갖추고 밤새 깨어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진영 둘레에는 보초를 세웠습니다. 적군은 그의 철저한 대비를 알고 두려워하다가 결국 물러났습니다(12:26–30).

그런데 같은 장에서 요나단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의 말을 믿고 사만 명의 군대를 돌려보냅니다. 천 명만 데리고 그 사람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문이 닫히고, 요나단은 붙잡히며, 함께 들어간 병사들은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12:41–48).

이 두 장면 사이에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요나단의 군사적 능력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달라졌습니다. 앞에서는 적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뒤에서는 적이 친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을 단순히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는 이야기로 읽으면 앞부분의 긴 외교 서신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2장은 요나단의 체포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그가 로마와 스파르타에 보낸 편지를 상당한 분량에 걸쳐 소개합니다.

요나단은 스파르타에 보내는 편지에서 하늘에서 오는 도움이 자신들을 지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변 민족들은 요나단이 사라지자 유대인들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도움을 믿는 백성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동맹과 군사력을 어떻게 바라보는 일입니까? 지도자가 사라졌을 때에도 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1012장 본문 읽기 →

유대 민족이 다시 로마를 찾은 이유

마카베오기 상권 12:1–4 본문 →

요나단은 때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을 골라 로마로 보냈다. 로마 사람들과의 우호를 굳게 세우고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2: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데메트리오스와 어린 안티오코스 사이의 왕위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요나단은 유대 민족의 정치적 지위를 강화했습니다. 이제 그는 시리아 왕실과의 관계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먼 나라들과의 관계까지 확보하려 합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기회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기회를 군사적 공격이 아니라 외교 관계의 확대에 활용합니다.

로마와의 관계는 이번에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앞서 로마에 사절을 보내 우호와 동맹을 맺었습니다(8:17–32). 당시 로마는 지중해 세계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으며, 유대인들이 강력한 셀레우코스 왕국을 상대하는 데 유용한 외교적 상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다가 맺었던 관계를 이제 요나단이 갱신하는 것입니다.

8장에 기록된 협정에는 상호 원조 조항이 있지만, 12장에서는 사절들이 우호와 동맹의 갱신을 요청했고, 로마가 귀국길의 안전을 보장하는 편지를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번 사절단의 활동으로 새로운 군사적 지원이 실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로마뿐 아니라 스파르타와 다른 지역에도 편지를 보냅니다.

유대 민족의 외교적 시야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주변 왕들의 결정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절을 보내고, 다른 나라들의 원로원과 교섭하며, 오래된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로마로 가서 원로원에 들어가 말했다. 「대제사장 요나단과 유대 민족이 여러분과의 우호와 동맹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려고 저희를 보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2:3 · 본디새김

여기에는 외국 왕의 이름이 없습니다. 요나단과 유대 민족이 직접 외교 관계의 당사자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나오는 스파르타 서신은 이러한 정치적 자신감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우리 손에 있는 거룩한 책들」

마카베오기 상권 12:5–18 본문 →

요나단이 스파르타에 보내는 편지는 매우 독특합니다.

「민족의 대제사장 요나단과 원로회와 제사장들과 나머지 유대 백성이 형제인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인사를 보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2:6 · 본디새김

이 문서는 한 지도자의 사적인 외교 서신이 아니라 유대 공동체 전체의 이름으로 보내는 공식적인 편지입니다. 요나단이 이 공동체를 대표하고 있지만, 유대 민족의 정체성은 그의 개인적인 지위보다 넓습니다.

이어서 편지는 스파르타와 오랫동안 교류하지 못한 사정을 설명합니다. 과거 스파르타 왕이 대제사장 오니아스에게 편지를 보내 양쪽 민족이 형제라고 주장했고, 오니아스는 그 사절을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이 관계를 새롭게 하자고 요청하면서 뜻밖의 말을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손에 있는 거룩한 책들을 위로로 삼고 있어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지만,」마카베오기 상권 12:9 · 본디새김

동맹을 요청하는 편지에 동맹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적은 셈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책들」은 유대 공동체가 보유하고 존중하던 성스러운 문헌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의 성경과 정확히 동일한 범위의 책들이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 유대인들이 거룩한 책들을 자신의 신앙과 공동체적 정체성의 근거로 삼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위로」는 단순히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을 달래는 위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환난과 전쟁 속에서 공동체가 자신을 지탱할 근거를 얻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 민족은 외국과의 우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 관계만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이미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거룩한 책들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는 새롭게 맺어야 하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은 그 관계를 통해 처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은 바로 다음 절에서 스파르타와 멀어지지 않으려고 형제 관계와 우호를 새롭게 하려 한다고 설명합니다(12:10). 그러므로 9절은 외교적 관계 전체를 거부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거룩한 책들을 가진 유대 민족이 다른 나라들의 도움이 없더라도 자신들의 신앙적 토대를 잃지 않는다는 자의식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이것은 외교 서신에 담긴 자기표현이기도 합니다. 편지의 발신자는 자신들이 절박해서 상대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위로와 도움을 누리는 공동체로서 우호를 제안한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을 서술자 자신이 요나단의 모든 정치적 판단에 내린 무조건적인 승인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 나라의 형제들을 제사와 기도에서 기억하다

「우리는 언제나 끊임없이, 명절과 그 밖의 정해진 날에 제사를 지낼 때와 기도할 때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형제들을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고 합당하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2:11 · 본디새김

외교 동맹은 보통 공동의 적이나 상호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상대의 안녕을 기억하는 관계, 오래 연락하지 못했어도 잊지 않은 관계를 강조합니다.

「여러분과 멀어지지 않으려고」(12:10)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 놓입니다. 그리스어 본문에서 이 표현은 서로 낯선 사이가 되거나 소원해지는 것을 피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동맹 문서를 갱신하려는 것보다 넓은 관계의 언어입니다.

우호를 강조하는 말들은 실제로 동맹을 강화하려는 목적과 함께 사용됩니다. 오히려 이 편지는 고대 외교에서 혈연, 우정, 종교적 기억,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결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동맹자들을 부르지 않은 까닭

13–15절에서 편지는 유대 민족이 겪은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주변 왕들이 공격했고 많은 환난이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스파르타나 다른 동맹국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오는 도움이 있어 우리를 돕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출되었고, 우리 원수들은 꺾였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2:15 · 본디새김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하늘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지칭하지 않으면서 그분의 도움을 말하는 유대적 표현입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강한 군대와 적은 군대 사이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하늘의 도움을 강조했습니다(3:18–22).

이들은 하늘의 도움을 말하면서 동시에 로마에 사절을 보내고 스파르타와 외교 관계를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인간의 준비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그 순서를 구별합니다. 인간적인 관계는 유익하며 필요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믿는 공동체는 어떤 특정 동맹국을 자신의 구원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편지에 담긴 신앙적 자의식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은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묻고, 그 도움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에게서 온다고 선언합니다(시편 121:1–2). 마카베오기 상권 12장이 시편 121편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보호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의 근거를 두는 신앙이라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만납니다.

스파르타 사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마카베오기 상권 12:19–23 본문 →

요나단의 편지 뒤에는 과거 스파르타 왕 아레오스가 대제사장 오니아스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첨부됩니다.

「스파르타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형제이며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내용이 기록에서 발견되었소.」마카베오기 상권 12:21 · 본디새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세계의 스파르타 사람들까지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한다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본문은 단지 어떤 기록에서 그런 내용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 기록이 무엇인지, 누가 작성했는지, 두 민족의 혈통을 어떻게 연결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편지를 근거로 스파르타 사람들이 실제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기 기록된 서신의 모든 내용이 역사적으로 원래의 문서와 일치하는지도 본문만으로 검증할 수 없습니다. 이 장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마카베오기 상권이 이러한 서신 전통을 전하며, 요나단이 그 전통을 스파르타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공동의 조상이나 친족 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서로 다른 도시와 민족이 특별한 우호 관계를 설명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관습이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대들에게 이렇게 답장을 쓰오. 『그대들의 가축과 재산은 우리 것이고, 우리 것은 그대들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내용을 그대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오.」마카베오기 상권 12:23 · 본디새김

이 문장을 모든 재산의 법적 소유권을 서로 이전한다는 뜻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상대의 번영과 소유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겠다는 강한 우호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 이러한 평화로운 서신의 세계에서 다시 전쟁터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2:3). 그러나 그 약속이 곧 스파르타 사람들의 혈통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본문을 연결할 때에는 아브라함의 이름이 민족 간 관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주제적 연결과, 실제 혈통에 관한 역사적 주장을 구별해야 합니다.

밤새 깨어 있었기에 싸우지 않아도 되었던 전투

마카베오기 상권 12:24–32 본문 →

데메트리오스의 지휘관들이 이전보다 더 큰 병력을 거느리고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하맛 지방으로 가서 그들과 맞섰다. 그들이 자기 땅으로 쳐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2:25 · 본디새김

이 행동에는 방어적 목적이 있습니다. 적이 유대 땅 안으로 진입하면 전쟁의 피해가 자기 공동체에 돌아올 수 있으므로, 그 전에 적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그는 정탐꾼을 보냅니다. 적의 기습 계획을 알아냅니다. 밤새 경계하도록 명령합니다. 진영 둘레에 보초를 배치합니다.

그 결과 적군은 싸우기도 전에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적군도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진영에 불을 피워 놓고 물러납니다. 요나단의 군대는 아침까지 적이 떠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평소라면 밤에 보이는 진영의 불빛은 군대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는 그 불빛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합니다.

요나단은 적의 기습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적의 철수를 즉시 알아차리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준비와 상대의 속임수를 완전히 간파하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은 도망가는 적군을 추격하지만, 그들이 엘레우테로스강을 건넜기 때문에 따라잡지 못합니다. 이후 그는 자바드 사람들을 공격하여 노획물을 얻고 다마스쿠스 일대를 지나갑니다.

자바드 사람들과의 전투에 관해서는 서술이 매우 짧습니다. 본문은 요나단이 그들을 쳤다는 사실과 노획물을 얻었다는 결과만 기록합니다. 그들이 먼저 어떤 적대 행위를 했는지, 왜 공격 대상이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공격을 앞선 데메트리오스 군대에 대한 방어와 똑같은 성격의 전쟁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도시 안에 또 하나의 장벽을 세우다

마카베오기 상권 12:33–38 본문 →

요나단이 북쪽에서 움직이는 동안 시몬은 남서쪽의 아스글론과 욥바 일대에서 활동합니다.

시몬은 욥바 사람들이 요새를 데메트리오스의 부하들에게 넘기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먼저 차지합니다. 그리고 수비대를 배치합니다.

욥바는 지중해 연안의 중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곳의 통제권은 해안을 통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 외국 세력과의 연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시몬의 행동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라기보다, 적대 세력이 차지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을 미리 확보하는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요나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모읍니다.

앞부분에서 외국 원로원에 사절을 보내던 요나단이 이제 자신의 공동체 장로들과 의논합니다. 전쟁에 관한 결정만큼이나 도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도 공동체의 중요한 과제가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더 높이는 일, 성채와 도시 사이에 아주 높은 장벽을 세우는 일을 의논했다. 이는 성채를 도시와 갈라놓아 따로 떨어져 있게 하고, 그곳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2:36 · 본디새김

예루살렘의 성채에는 여전히 유대 공동체를 위협하는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대 지도자의 영향 아래 들어왔더라도 성채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방어벽이 아닙니다. 성채의 경제적 생존을 압박하는 봉쇄 시설입니다. 전쟁에서 성벽은 보통 외부의 적을 막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도시 내부의 적대 세력을 고립시키기 위해 세워집니다.

시몬은 낮은 지대에 있는 하딧을 요새화하고 성문과 빗장을 강화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요나단이 무너진 동쪽 성벽의 일부와 카페나타로 불리는 곳을 보수합니다.

37절의 성벽에 관한 서술은 다소 압축되어 있습니다.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있었고 요나단이 이를 보수한 것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 무너짐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까지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더 이상 전투에서 적을 격퇴하는 일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성벽, 수비대, 요새, 보급과 이동을 통제하는 시설까지 갖추려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술은 놀라운 방향으로 돌아섭니다.

요나단은 자기 도시의 성벽을 높이고 성채를 고립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도시의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전쟁을 두려워한 트리폰이 선택한 방법

마카베오기 상권 12:39–45 본문 →

트리폰은 어린 안티오코스 왕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야망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트리폰은 아시아의 왕이 되어 왕관을 쓰고 안티오코스 왕에게 손을 대려 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2:39 · 본디새김

그런데 이 계획에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입니다. 트리폰은 요나단이 자신의 계획을 가로막거나 자신과 전쟁을 벌일까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요나단을 붙잡아 죽일 방도를 찾습니다.

40절에서 서술자는 트리폰이 요나단을 죽일 계획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그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후 트리폰이 보여 주는 친절은 독자에게 처음부터 거짓으로 보입니다.

요나단은 병사 사만 명을 이끌고 벧산으로 갑니다. 트리폰은 그 대군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정면에서 요나단을 공격했다가는 자신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트리폰은 군사적 대결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는 요나단을 극진히 환대합니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를 소개하고 선물을 줍니다. 자신의 군대에게 요나단의 명령에 복종하라고까지 지시합니다. 요나단이 이전에 왕들로부터 받아 온 영예와 비슷한 대우가 다시 나타납니다.

선물은 우호의 증거가 아니라 함정의 일부입니다. 복종하겠다는 말도 진실한 신뢰의 표현이 아니라 요나단의 경계를 풀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는 요나단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전쟁이 닥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 모든 사람을 지치게 했소?」마카베오기 상권 12:44 · 본디새김

이 질문은 겉으로는 합리적입니다. 전쟁이 없다면 수많은 병사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일이 불필요한 부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트리폰이 이미 요나단을 죽이기로 계획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전쟁이 없다는 말은 평화가 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아직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제집으로 보내시오. 그대와 함께 있을 사람을 몇 사람만 골라 두시오. 그리고 나와 함께 돌레마이로 오시오. 내가 그대에게 그 도시와 나머지 요새들, 많은 병력과 업무를 맡은 모든 사람을 넘겨주고, 돌아서 떠나겠소. 나는 이 일을 위해 여기 와 있소.」마카베오기 상권 12:45 · 본디새김

트리폰은 요나단이 추구해 온 정치적 목표와 밀접하게 관련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실제로 원할 만한 것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군대를 해산하라고 요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돌레마이는 지중해 연안의 중요한 항구 도시이자 군사적 거점이었습니다. 그 도시와 주변 요새들, 병력과 행정 담당자들을 넘겨받는다면 요나단은 해안 지역에서 훨씬 강력한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나단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본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트리폰의 친절에 감동했는지, 정치적 이익을 지나치게 기대했는지, 트리폰을 거절할 경우의 위험을 계산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만 명에서 천 명으로, 그리고 닫힌 성문

마카베오기 상권 12:46–48 본문 →

요나단이 데리고 온 병사는 사만 명이었습니다.

요나단은 그를 믿고 그가 말한 대로 했다. 그는 병력을 돌려보냈고, 그들은 유다 땅으로 갔다.마카베오기 상권 12:46 · 본디새김

트리폰이 먼저 군사력을 과시해서 요나단을 굴복시킨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상대를 믿고 스스로 병력을 줄였습니다.

그는 트리폰의 제안을 받아들여 대부분을 돌려보내고 삼천 명만 남깁니다. 그 가운데 이천 명을 갈릴리에 두고, 자신은 천 명을 데리고 돌레마이로 향합니다.

사만 명을 거느리고 벧산에 나타났을 때 트리폰은 요나단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돌레마이에 들어가는 요나단 곁에는 천 명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에게서 실제적인 방어 능력이 하나씩 제거된 것입니다.

그는 적이 무기를 들고 다가올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무기를 내려놓은 것처럼 행동하며 선물을 주고 높은 지위를 약속할 때에는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돌레마이에 들어갑니다.

요나단이 돌레마이에 들어가자, 돌레마이 사람들은 성문을 닫아걸고 그를 붙잡았다. 그들은 요나단과 함께 온 사람들을 모두 큰 칼로 죽였다.마카베오기 상권 12:48 · 본디새김

돌레마이는 트리폰이 요나단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도시입니다. 요나단은 그 도시를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성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도시를 차지하기는커녕, 그 도시의 주민들이 성문을 닫고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가 얻으려던 장소가 그를 가두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열린 길을 보장하던 편지와 닫힌 성문

로마 사람들은 유대 사절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지역에 보내는 편지를 주었습니다(12:4). 그 편지는 사람들의 이동을 안전하게 보장하려는 문서였습니다. 그러나 트리폰은 요나단에게 안전과 영예를 약속하고도, 그가 도시로 들어가자 문을 닫아 버립니다.

앞부분에서는 외교 관계가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귀환을 보호합니다. 뒷부분에서는 외교적 신뢰가 지도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통로가 됩니다.

따라서 문제는 신뢰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근거로 신뢰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요나단은 트리폰이 보여 주는 존경과 선물, 그리고 영토를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확인해 주는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이 장은 그렇게 믿었던 사람의 실패를 설명하지만, 그의 실패를 조롱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책임은 먼저 속임수를 계획하고 실행한 트리폰에게 있습니다. 요나단이 위험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트리폰의 배신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지도자가 사라진 뒤에도 무너지지 않은 병사들

마카베오기 상권 12:49–52 본문 →

트리폰의 계획은 요나단을 붙잡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갈릴리에 남아 있는 요나단의 병사들까지 없애려고 군대와 기병대를 보냅니다. 요나단을 제거한 뒤 그의 군사 조직까지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갈릴리에 남아 있던 요나단의 병사들은 요나단이 붙잡혀 죽었으며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죽은 것으로 알았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한데 뭉쳐 싸울 채비를 갖추고 행군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2:50 · 본디새김

요나단의 체포 이야기는 여기서 곧바로 공동체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뒤쫓던 자들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있음을 보고 돌아갔다.마카베오기 상권 12:51 · 본디새김

앞에서는 요나단의 군대가 밤새 전투 준비를 마치자 적들이 두려워하며 물러났습니다. 여기서는 지도자를 잃었다고 생각한 병사들이 서로 힘을 북돋아 싸울 준비를 하자 적들이 물러났습니다.

이제 요나단은 그들 가운데 없습니다.

앞에서는 지도자의 명령이 군대를 지켰다면, 여기서는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병사들이 서로를 붙들어 줍니다.

편지의 「위로」가 병사들의 「격려」로 이어지다

앞에서는 공동체가 거룩한 책들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뒤에서는 지도자를 잃은 병사들이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넵니다.

거룩한 책들이 공동체를 위로한다는 말은 단지 경건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 위기가 닥쳤을 때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버티는 장면이 뒤따릅니다.

요나단은 붙잡혔지만 그의 병사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무사히 유다 땅으로 돌아옵니다.

다만 무사한 귀환이 곧 기쁜 귀환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요나단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애도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크게 슬퍼합니다. 본문은 그들이 위협을 벗어났다는 사실과 공동체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는 사실을 나란히 기록합니다.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와 지도자를 잃었다는 비탄은 함께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실제로 요나단은 이 시점에 아직 살아 있으며, 그의 죽음은 13:23에서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50절은 요나단이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정하는 구절이 아니라, 그의 부하들이 당시 받아들인 소식을 전달하는 구절입니다. 「위로」와 「서로를 격려하고」 두 표현은 같은 어근을 공유합니다. 이 반복이 저자의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거룩한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귀환을 표현하는 말도 4절의 로마 사절단 귀환을 보장하는 말과 같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에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한 사람의 죽음과 하나님의 약속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말씀은 모세의 위대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전합니다(여호수아 1:1–9). 다만 마카베오기 상권 12장의 끝에는 아직 그런 새로운 지도자의 소명이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약속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저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릴 것이다」

마카베오기 상권 12:53 본문 →

이 장의 마지막에서 주변 민족들은 유대인들의 상황을 보고 공격할 기회를 찾습니다.

그들 주변의 모든 이방 민족이 그들을 없애 버리려 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저들에게는 다스리며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이제 저들과 싸우자.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릴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2:53 · 본디새김

여기서 말하는 「다스리며 도와줄 사람」은 인간 지도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들은 유대 민족의 정치적·군사적 지도력이 무너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미 그 판단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요나단의 병사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살아 돌아왔습니다. 시몬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53절에서 주변 민족들이 지도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유대 공동체의 실제 역량 전체를 정확하게 평가한 객관적 설명이라기보다, 그들이 공격의 기회로 받아들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릴 것이다.」 이 말은 유대인이라는 공동체 자체를 없애겠다는 위협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앞부분에서도 주변 민족들이 유대인들을 없애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5:1–2). 이제 지도자 요나단이 붙잡히자 비슷한 위협이 다시 등장합니다.

요나단은 스파르타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면서 형제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왔다고 말했습니다(12:11). 그런데 마지막에서 적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 자체를 없애겠다고 말합니다.

한쪽에는 오래 떨어져 있어도 관계를 기억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한 민족의 기억을 지우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책들을 보유하고, 명절과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의 역사와 형제 관계를 기억하는 백성입니다. 그런 공동체를 없앤다는 것은 단지 정치적 권력을 제거하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이어 가고 기억할 수 있는 삶의 토대를 파괴하려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붙잡힌 뒤 가장 위태로워진 것은 그의 개인적인 권력만이 아닙니다. 유대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맺음 — 돌아온 사람들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

마카베오기 상권 12:1–53 본문 →

하늘의 도움을 믿는 공동체에도 실제적인 실패가 일어났습니다. 중요한 지도자가 붙잡혔고 많은 병사가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서로 힘을 북돋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요나단이 편지에서 고백했던 하늘의 도움은 어떤 한 지도자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보증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12장은 15절의 신앙 고백 외에 하나님의 개입을 직접 서술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트리폰이 요나단을 붙잡을 때 하나님이 왜 그것을 허락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으며, 갈릴리의 병사들이 무사히 돌아왔을 때에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구하셨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나단이 붙잡힌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거나, 그가 외국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반대로 병사들의 생존을 하나님이 특정한 기적으로 구출하신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적들은 이제 유대 민족을 완전히 없앨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자가 없으니 그들을 도와줄 사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오기 직전에 독자는 이미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한 병사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12장은 유대 민족이 마침내 안전해졌다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향한 새로운 위협이 시작되려는 자리에서 멈춥니다.

돌레마이의 성문은 닫혀 있고, 요나단은 그 안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의 병사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와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서로의 곁에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