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시몬이 세운 나라

죽음을 묻고 새로운 해를 쓰다

한 가문의 마지막 남은 형제가 무너져 가는 민족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는 형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은과 아이들을 보내지만, 형제를 구하지 못합니다. 결국 고향에 돌아와 형제의 유해를 묻고, 부모와 형제들을 위한 거대한 무덤을 세웁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유대 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엽니다.

이 장에는 두 종류의 기념물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시몬이 모데인에 세운 가족의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문서에 기록하기 시작한 새로운 연호입니다.

무덤은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고, 연호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기록하기 위한 것입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913장 본문 읽기 →

「나는 내 형제들보다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3:1–11 본문 →

12장의 마지막에서 요나단은 트리폰의 속임수에 넘어가 붙잡혔습니다. 그의 병사들은 돌아왔지만, 이스라엘은 지도자를 잃은 채 주변 민족의 공격 위협에 놓였습니다.

트리폰은 유다 땅을 없애 버릴 목적으로 많은 병력을 모읍니다. 시몬은 백성이 떨며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나단이 붙잡힌 사건은 백성에게 자신들을 지켜 줄 지도자가 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시몬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백성을 모읍니다.

그는 그들을 격려하며 말했다. 「나와 내 형제들과 내 아버지의 집안이 율법과 성소를 위해 한 모든 일을 여러분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전쟁과 곤경도 알고 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3:3 · 본디새김

그의 아버지 마타티아스는 율법을 버리라는 명령에 저항했고(2:15–28), 형제 유다는 성전을 되찾고 정화했습니다(4:36–59). 이후 요나단은 여러 정치적 변화 속에서 유대 공동체의 지위를 강화했습니다.

시몬의 가문이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싸움은 율법을 따라 살아가고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공동체의 삶을 지키려는 목적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형제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

「이 일 때문에 내 형제들이 모두 이스라엘을 위해 죽었고,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3:4 · 본디새김

그는 형제들이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감당했던 책임을 마지막까지 이어 가야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러니 이제 어떤 환난의 때라도 내가 내 목숨을 아끼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나는 내 형제들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3:5 · 본디새김

시몬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위대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형제들과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물러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받아들입니다.

두려움에서 다시 타오르는 기운으로

시몬은 자신의 민족과 성소, 아내들과 자녀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말은 원수를 갚겠다는 전쟁의 언어를 사용합니다(13:6). 그는 실제로 군대를 모아 적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지도자와 병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군이 들어오면 예배의 장소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삶도 파괴될 수 있습니다. 시몬은 백성이 두려워하는 이유를 외면하지 않고, 바로 그들을 위협하는 현실에 맞서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자 그의 백성의 기운이 다시 타올랐다.마카베오기 상권 13:7 · 본디새김

본문은 아직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군사적 위협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백성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당신의 형제 유다와 요나단을 대신할 우리의 지도자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3:8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외국 왕이 시몬에게 관직을 부여하는 장면과 다릅니다. 이후 시몬은 실제로 대제사장이자 군사령관이며 민족의 지도자라는 지위를 공식 문서에 기록하게 됩니다. 그보다 앞서 백성의 입에서 나온 이 인정은 그의 지도력이 공동체의 요청과 응답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곧바로 군대를 모으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완성하는 일을 서두릅니다. 욥바에는 다른 지휘관을 보내 수비 체제를 강화합니다.

다시 일어선 백성은 도시를 지키는 실제적인 일에 착수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실제로 요나단은 이 시점에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는 트리폰에게 붙잡혀 있으며, 그의 죽음은 23절에서야 기록됩니다. 시몬 자신도 뒤에서 요나단을 풀어 주겠다는 트리폰의 제안을 받고 몸값을 보냅니다. 따라서 4절을 모든 형제가 이미 사망했다는 정확한 시점의 보고로 읽으면 뒤의 사건과 맞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사실상 공동체에서 사라진 상황을 죽음에 가까운 상실로 표현했을 수도 있고, 요나단의 최후를 이미 알고 있는 서술자가 시몬의 연설을 정리하면서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몸값을 보낸 이유

마카베오기 상권 13:12–19 본문 →

트리폰은 요나단을 포로로 데리고 유다 땅을 향해 나아옵니다.

시몬은 하딧에 진을 치고 그와 대치합니다. 트리폰은 시몬이 새로운 지도자로 나섰다는 사실을 알고 사절을 보냅니다.

트리폰은 요나단이 왕실에 갚아야 할 돈 때문에 붙잡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은 백 탈란톤과 요나단의 아들 둘을 볼모로 보내면 요나단을 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앞 장의 사건과 맞지 않습니다.

12장에서는 트리폰이 요나단을 자신의 권력 장악에 방해가 될 인물로 여겨 붙잡아 죽이려 했다고 분명히 설명했습니다(12:39–40). 왕실에 진 빚이 체포의 실제 이유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트리폰은 정치적 제거를 정당한 채무 문제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몬이 속지 않습니다.

시몬은 그들이 자기를 속이려고 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과 아이들을 보냈다. 백성에게 큰 미움을 살까 염려했으니,마카베오기 상권 13:17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요나단은 트리폰을 믿고 병력을 돌려보냈습니다. 시몬은 트리폰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의 요구에 응합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왜 돈과 아이들을 보냈을까요?

시몬이 몸값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요나단이 죽었다고 백성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바로 앞에서 백성의 인정을 받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형제를 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데 자신이 그 기회를 거절한다면, 공동체 안에 심각한 불신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속임수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은 백 탈란톤은 상당한 양의 은이었고, 두 아이를 볼모로 보낸다는 것은 그들의 안전을 상대의 손에 맡기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결정을 결과적으로 성공한 협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트리폰은 약속을 어기고 요나단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시몬이 처음부터 협상을 거절했다면 요나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시몬은 무엇이 거짓인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선택해야 반드시 옳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트리폰의 진격을 막은 눈, 그러나 구하지 못한 형제

마카베오기 상권 13:20–24 본문 →

트리폰은 몸값을 받은 뒤에도 유다 땅을 공격하려 합니다.

시몬은 그가 이동하는 곳마다 군대를 이끌고 대응합니다.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기보다 트리폰의 진입을 막으며 그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형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루살렘 성채가 다시 등장합니다.

성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트리폰에게 사절을 보내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특히 먹을거리를 보내 달라고 재촉합니다.

앞 장에서 요나단은 예루살렘 성채를 도시와 분리하여 물건을 사고팔 수 없게 하려는 장벽을 세우고 있었습니다(12:35–36). 그 봉쇄가 실제로 성채 안의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었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리폰은 자기 기병대 전체에 출동 준비를 시켰다. 그러나 그날 밤 눈이 매우 많이 내려 가지 못했다. 그는 진을 거두어 길르앗 땅으로 갔다.마카베오기 상권 13:22 · 본디새김

트리폰은 많은 병력과 기병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력만으로 자연환경의 모든 장애를 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스카마 근처에서 요나단을 죽입니다.

요나단의 죽음은 긴 전투 장면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트리폰이 그를 죽였고, 그곳에 묻혔다고 기록합니다.

요나단은 여러 왕과 협상하고 군대를 지휘하며 유대 민족의 지위를 높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적국의 왕도 아닌 권력 찬탈자의 손에서 포로로 죽는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트리폰의 진격을 막아 냈지만, 자신의 형제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서 얻은 성과가 개인적인 상실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성경의 다른 역사 서술에서는 날씨나 자연 현상이 하나님께서 전쟁의 방향을 바꾸시는 수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호수아 10:11은 큰 우박으로 적군이 죽는 사건을 명시적으로 여호와야훼의 행동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마카베오기 상권 13장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트리폰이 이동하지 못했다는 사실만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 폭설이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키신 기적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데인의 일곱 피라미드 —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남기다

마카베오기 상권 13:25–30 본문 →

요나단이 죽자 시몬은 사람을 보내 그의 유해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는 요나단을 모데인에 묻습니다. 모데인은 이 가족의 고향이며 마타티아스의 저항이 시작된 곳입니다(2:1–28).

그는 형제를 가문의 역사와 저항의 출발점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요나단을 위해 크게 통곡하며 여러 날 동안 애도합니다.

그런데 시몬은 장례를 치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무덤 위에 거대한 기념물을 세웁니다. 다듬은 돌로 높이 쌓고, 큰 기둥과 갑옷과 무기의 형상을 장식합니다. 배를 새겨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까지 볼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사적인 가족 묘지의 규모를 넘어섭니다. 그는 마카베오 가문의 역사를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기려 합니다.

일곱 피라미드에 남은 한 자리

28절은 일곱 피라미드가 세워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면서 그 대상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형제라고 설명합니다.

계산하면 여섯 사람입니다. 마타티아스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고, 시몬을 제외한 네 형제는 요한, 유다, 엘르아살, 요나단입니다(2:2–5).

그렇다면 일곱째 피라미드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시몬 자신을 위한 것으로 추정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피라미드가 일곱 개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므로 일곱째의 대상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무덤에 새긴 갑옷과 배

갑옷과 무기는 마카베오 가족이 겪은 전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배는 그보다 조금 낯섭니다.

이 가족은 주로 유대 산지에서 싸웠는데, 왜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배를 새겼을까요?

본문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해안 지역까지 퍼진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그들의 명성이 멀리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연결하여 이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배의 상징을 특정한 전쟁이나 해상 활동과 직접 연결할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모데인의 기념물이 어느 거리에서 보였는지도 이 장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29절은 무기와 기둥의 장식 목적을 「이름이 영원히 남도록」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적들이 유대 민족을 완전히 없애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까지 지우려 했던 말(12:53)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적들은 유대인들의 기억을 지우려 했습니다. 시몬은 죽은 가족들의 기억을 돌에 새겼습니다.

지우려는 사람들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다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모데인에 만든 무덤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마카베오기 상권 13:30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저자가 자신의 독자들에게 그 기념물의 존재를 증언하는 방식입니다. 반드시 오늘날까지 그 무덤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장은 무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죽음을 기념하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가 시작되는 이야기로 이동합니다.

왕관을 쓴 트리폰과 왕관을 쓰지 않은 시몬

마카베오기 상권 13:31–42 본문 →

시몬이 가족의 무덤을 세우는 동안 트리폰은 또 하나의 배신을 저지릅니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세웠던 어린 안티오코스를 죽이고 직접 왕관을 씁니다.

그는 안티오코스를 대신해 왕이 되어 아시아의 왕관을 쓰고, 그 땅에 큰 재앙을 일으켰다.마카베오기 상권 13:32 · 본디새김

그런데 서술자는 왕관을 썼다는 사실과 큰 재앙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연달아 기록합니다.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 성공을 설명하지만, 그 성공이 백성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와 나란히 시몬의 활동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는 유대의 요새를 강화하고 성벽과 성문, 망대를 세웁니다. 그리고 요새마다 식량을 비축합니다. 요새의 방어 능력은 높은 성벽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포위당했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외교적 선택을 합니다.

다시 데메트리오스에게 편지를 보내다

시몬은 사람들을 데메트리오스 왕에게 보내 세금 면제를 요청합니다.

앞서 11장에서 데메트리오스는 요나단의 도움을 받고도 약속을 어긴 왕이었습니다(11:53). 따라서 이 요청을 데메트리오스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가 회복되었다는 증거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트리폰은 데메트리오스의 경쟁자였고, 이제 스스로 왕이 되어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데메트리오스에게는 유대인들을 자기 편으로 확보할 이유가 있었고, 시몬에게는 그 경쟁을 이용하여 유대의 자율성을 확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데메트리오스는 시몬을 「대제사장이며 왕들의 친구」라고 부르고, 장로들과 유대 민족에게 함께 인사를 전합니다. 그는 유대 측이 보낸 금 면류관과 종려 가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호를 나타내는 외교적 선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세 면제와 요새에 대한 권리를 인정합니다. 과거의 잘못도 용서하고, 예루살렘에 매기던 다른 세금도 더는 거두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39절의 「죄들을 용서하고」는 여기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표현입니다. 왕이 용서한다고 말하는 대상은 자신이 행사하는 권위 아래에서 문제가 되었던 행위들입니다. 이는 정치적·법적 사면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신학적 의미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방 민족들의 멍에가 벗겨지다

170년에 이방 민족들의 멍에가 이스라엘에서 벗겨졌다.마카베오기 상권 13:41 · 본디새김

멍에는 본래 짐승의 목에 얹어 짐을 끌거나 밭을 갈게 하는 도구입니다. 사람이나 민족에게 사용되면 다른 사람의 지배 아래 놓이거나 무거운 부담을 지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유대인들이 겪었던 외국 왕국의 지배에는 세금, 군사적 간섭, 정치적 종속이 함께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데메트리오스의 조세 면제는 그 종속 관계가 실질적으로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근대적인 의미의 완전한 독립 국가가 수립되었다는 뜻인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시몬은 여전히 데메트리오스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있고, 왕과 외교 관계를 유지합니다. 왕실의 권위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본문이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이전과 다른 정치적 자유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역사의 날짜를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지다

이스라엘 백성은 문서와 계약서에 「위대한 대제사장이며 유대 사람들의 군사령관이자 지도자인 시몬의 통치 일 년째」라고 쓰기 시작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3:42 · 본디새김

여기에는 토지 거래나 재산 관계와 같은 일상적인 삶의 영역까지 새로운 정치 질서가 들어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선언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매일 작성하는 문서의 날짜가 달라진다는 것은 그 변화가 제도와 일상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트리폰은 어린 왕을 죽이고 왕관을 썼습니다. 시몬은 왕관을 썼다는 기록 없이 새로운 연호의 중심 인물이 됩니다.

이 대조를 곧바로 시몬이 왕권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내면적인 정치 구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트리폰은 기존 왕을 죽이고 그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시몬은 공동체의 요청을 받아 지도자가 되었고, 외교적 협정을 통해 유대 민족의 권한을 넓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41–42절은 마카베오 가문의 투쟁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책도 그동안 셀레우코스 왕조의 연호에 따라 사건의 연대를 기록했습니다. 41절의 170년 역시 그 연호로, 대략 기원전 143–142년 무렵에 해당합니다. 고대의 연도 시작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현대 연도로 환산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구약의 출애굽 전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레위기 26:13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으며 그들의 멍에 막대기를 부러뜨려 바로 서서 걷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3:41은 레위기의 문장을 직접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지배를 멍에로 표현하고 그것이 제거되는 일을 공동체의 새로운 출발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같은 해방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레위기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멍에를 부러뜨리신 주체로 직접 말씀하십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에서는 멍에가 벗겨졌다고 서술할 뿐, 그 행위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시몬의 모든 외교적 결정을 하나님께서 직접 승인하셨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자비에 따라 대해 주십시오」

마카베오기 상권 13:43–48 본문 →

새로운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대 민족이 모든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몬은 곧 한 도시를 공격합니다. 시몬은 도시를 포위하고 공성탑을 만들어 성벽의 망대 하나를 점령합니다. 공성탑에 있던 사람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주민들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도시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옷을 찢은 채 아내들과 자녀들과 함께 성벽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큰 소리로 외치며 시몬에게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간청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3:45 · 본디새김

옷을 찢는 행위는 슬픔과 절박함을 나타내는 오래된 표현입니다. 앞서 이스라엘은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이제 적대적인 도시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두려워하며 옷을 찢습니다.

전쟁의 양쪽에 서로 다른 이유로 슬퍼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말했다. 「저희의 악행에 따라 저희를 대하지 마시고, 당신의 자비에 따라 대해 주십시오.」마카베오기 상권 13:46 · 본디새김

중요한 것은 승리한 사람에게 그가 행사할 수 있는 힘보다 더 큰 자비를 요청한다는 점입니다.

시몬은 그들과 화해하고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도시에서 내보내고 우상들이 있던 집들을 깨끗하게 했다. 그런 다음 찬송하고 찬양하며 그 도시에 들어갔다.마카베오기 상권 13:47 · 본디새김

시몬은 이미 군사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도시를 끝까지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항복을 받아들이고 전투를 멈춥니다.

시몬은 주민들의 목숨을 보존했지만, 그들이 이전처럼 그 도시에서 살아갈 권리까지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서술은 이 사건을 정복과 정화의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유대 공동체의 시각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것은 종교적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조치에는 강제적인 이주와 공동체의 재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몬의 행동을 무조건적인 관용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의 자비가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유대 민족에게는 자유의 확대였던 사건이,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은 43절의 지명을 그리스어 본문에 따라 「가자」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가자라」는 문맥에 따른 추정 교정이며, 바로 뒤인 53절과 14:7, 14:34에는 가자라가 등장합니다. 두 지명은 서로 다른 장소를 가리킬 수 있으므로 이것은 단순한 철자 차이만은 아닙니다. 뒤의 이야기에서는 시몬이 정복한 도시와 그의 아들 요한이 거주하는 가자라가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따라서 43절의 사건 역시 가자라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디새김이 따른 본문의 「가자」라는 독법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4:17–18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다는 사실과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구속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하면서, 그 기억을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대해야 할 책임과 연결합니다. 이것은 마카베오기 상권 13장에서 직접 인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해방의 기억을 어떻게 살아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중요한 정경적 연결을 이룹니다. 해방받은 공동체는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채에서 끝난 오랜 싸움

마카베오기 상권 13:49–52 본문 →

이제 이야기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 성채는 마카베오기 상권의 첫 부분부터 유대 민족을 위협하는 장소였습니다. 성전이 정화된 뒤에도 성채에는 외국 군대와 그들에게 협력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시몬은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그 승리의 방식은 정면 공격보다 봉쇄에 가까웠습니다.

예루살렘 성채에 있던 사람들은 시골로 나가는 것도,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막혀 있었다. 그들은 몹시 굶주렸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굶주림으로 죽었다.마카베오기 상권 13:49 · 본디새김

앞서 요나단이 세운 장벽과 경제적 봉쇄가 결국 성채 사람들의 생존을 압박한 것입니다. 성채를 점령하는 일이 유대 민족에게 중요한 성과였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은 모두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실을 어느 하나로 지워서는 안 됩니다.

성채 사람들은 결국 시몬에게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외칩니다. 시몬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내보냅니다. 그런 다음 성채를 정화합니다.

예루살렘 성채는 단순한 외국 도시가 아닙니다. 유대 공동체가 자기 민족의 중심지라고 여기는 예루살렘 안에 남아 있던 적대 세력의 거점입니다. 따라서 이 성채를 점령하는 일은 외부의 새로운 영토를 얻는 일과 달랐습니다.

자기 도시 안에서 오랫동안 자유롭게 통제하지 못했던 장소를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종려 가지를 들고 성채에 들어가다

171년 둘째 달 스무사흗날, 시몬은 찬미와 종려 가지들, 수금과 꽹과리와 비파, 찬송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성채에 들어갔다. 큰 원수가 이스라엘에서 분쇄되었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3:51 · 본디새김

이 장면은 마카베오기 상권 4장에서 유다가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하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도 사람들은 찬양과 기쁨으로 성전의 회복을 기념했습니다(4:52–59). 그리고 그날을 해마다 지키도록 정했습니다.

시몬도 성채를 점령한 날을 해마다 기념하도록 합니다.

4장은 더럽혀졌던 성전과 제단을 정화하고 예배를 회복한 사건입니다. 13장은 예루살렘 안에 남아 있던 적대적인 성채를 점령한 사건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구별되는 성취입니다.

두 번 등장하는 종려 가지

이 장에는 종려 가지가 두 번 등장합니다.

37절에서 데메트리오스는 유대인들이 보낸 금 면류관과 종려 가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51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종려 가지를 들고 성채에 들어갑니다.

두 장면의 종려 가지가 정확히 같은 의식이나 상징을 뜻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는 외국 왕에게 보내는 외교적 선물의 일부로 등장하고, 뒤에서는 공동체가 승리를 기뻐하는 행렬에 등장합니다.

왕의 편지를 통해 확보한 자유가 이제 예루살렘의 구체적인 공간을 되찾는 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시몬은 이어 성채 곁의 성전 산을 더욱 튼튼하게 하고 자기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삽니다. 이제 그 장소는 외부 세력이 유대 공동체를 위협하던 요새가 아니라 시몬이 직접 지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51절은 셀레우코스 연호에 따른 날짜로, 대략 기원전 141년 무렵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절에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

마카베오기 상권 13:53 본문 →

이 장의 마지막은 예상 밖으로 조용합니다.

왕의 편지도, 대규모 전투도, 온 백성의 환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몬이 자기 아들 요한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시몬은 자기 아들 요한이 장성한 것을 보고 그를 모든 병력의 지휘관으로 삼았다. 요한은 가자라에 살았다.마카베오기 상권 13:53 · 본디새김

이 장은 한 가문의 형제들이 모두 사라져 가는 위기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문의 다음 세대가 등장하는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 세대의 투쟁이 끝나고 다른 세대가 그 책임을 이어받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아직 요한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이 장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가자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은 시몬이 확보한 자유와 책임이 그 개인의 생애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문맥상 이는 군사적 책임을 맡길 만한 성숙함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요한이 어떤 구체적인 능력을 보여 주었는지는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특별한 소명을 내리셨다는 이야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요한을 지휘관으로 세운 사람은 시몬입니다.

맺음 — 무덤의 돌과 새로운 날짜

마카베오기 상권 13:1–53 본문 →

한쪽에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세는 새로운 방식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시몬은 전쟁을 치르고, 성벽을 세우고, 외국 왕과 협상하고, 예루살렘 성채를 되찾았습니다.

이 책의 인물들은 율법과 성소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유란 단순히 외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공동체가 조상들의 신앙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그들의 모든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시몬의 외교와 정복, 봉쇄와 주민 이주는 각각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채에 들어가는 날, 백성은 종려 가지를 들었습니다.

수금과 꽹과리와 비파가 울렸고, 찬송과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오랫동안 자신들을 위협하던 요새였습니다. 이제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포위를 두려워하는 적군이 아니라 자기 도시를 되찾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렬을 이끈 시몬에게는 돌아오지 못한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잊지 않았고, 그들의 죽음이 남긴 책임을 감당하려 했습니다. 성채에 들어간 뒤 시몬은 그곳을 더욱 튼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장성한 아들 요한에게 군사적 책임을 맡겼습니다.

모데인에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새긴 돌이 서 있고, 예루살렘에서는 성채를 되찾은 날을 해마다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의 문서에는 새로운 날짜가 쓰입니다.

시몬은 형제들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시간을 공동체에 남겼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