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3–8장 · 유다 마카베오의 싸움
멍에를 벗기 위한 동맹
마카베오기 상권 8장에는 전투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유다는 군대를 소집하지 않고, 적의 진영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을 아주 먼 나라에 보냅니다. 그들이 가져오려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약속입니다.
그 나라는 로마입니다.
로마가 강대국이 된 과정에는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고 조공을 바치게 하며 노예로 삼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유다는 바로 그런 나라에 도움을 청하여 자기 민족이 노예처럼 사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다른 민족에게 멍에를 씌워 강해진 나라가, 이스라엘의 멍에를 벗겨 줄 수 있을까요?
유다가 먼저 들은 것은 로마의 군대가 아니라 로마의 명성이었다
이야기는 유다가 로마의 명성을 들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유다는 로마 사람들의 명성을 들었다. 그들은 힘이 세고 강하며, 자기들과 손잡은 모든 이에게 호의를 보이고, 누구든 자기들과 손잡거나 자기들에게 다가오면 그들과 우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8:1 · 본디새김
1절부터 16절까지는 이러한 소식이 길게 이어집니다. 독자가 보고 있는 것은 로마의 역사를 직접 관찰한 기록이 아니라, 유다에게 전해진 로마의 명성입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뒤에서 로마의 정치 제도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묘사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합니다.
로마가 단순히 강한 나라였다면 이스라엘에 또 다른 위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하면서도 동맹을 받아들이는 나라라면, 유다에게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깁니다.
본문은 로마의 군사력보다 먼저 그 우호 관계의 성격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로마의 힘이 무엇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로마가 갈라디아 사람들을 제압하고 조공을 바치게 했다고 말합니다. 이 이름을 신약 갈라디아서의 수신 지역인 소아시아 갈라디아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어 문헌에서는 이탈리아와 유럽의 켈트계 민족들에게도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로마의 전쟁 이야기는 이어 스페인의 은광과 금광으로 향합니다.
로마가 먼 지역의 광산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로마가 전쟁을 통해 막대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냅니다.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려면 무기와 식량, 군사의 급료를 감당할 자원이 필요합니다. 정복한 지역에서 확보한 광물과 조공은 이러한 군사력의 물질적 토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책과 끈기로 그 지역 전체를 장악했다고 했다. 그곳은 그들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 땅끝에서 자기들을 치러 온 왕들도 제압하여, 마침내 그들을 쳐부수고 큰 타격을 입혔다고 했다. 남은 자들은 해마다 그들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8:4 · 본디새김
로마는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 나라까지 군대를 보내고, 오랜 시간 전략을 세우고, 저항하는 세력을 꺾어 가며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이 점은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도 연결됩니다. 유다와 형제들은 여러 차례 셀레우코스 군대를 물리쳤지만, 왕국은 새로운 장군을 계속 보내 왔습니다. 한 번의 승리만으로 제국의 지배를 끝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 유다에게 오랫동안 전쟁을 수행할 힘을 가진 로마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호적인 나라로 소개된 로마의 다른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을 압박하던 왕국도 로마 앞에서는 약한 나라였다
유다에게 전해진 이야기에는 마케도니아 왕 빌립과 페르세우스를 무너뜨린 로마의 승리도 포함됩니다.
빌립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를, 페르세우스는 그 뒤를 이은 마케도니아의 왕을 가리킵니다. 두 왕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로마는 알렉산드로스 이후 그리스 세계에서 강력한 왕국으로 자리 잡았던 마케도니아까지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유다에게 더 중요한 이름은 다음에 등장합니다.
아시아의 대왕 안티오코스도 코끼리 백스무 마리와 기병과 전차와 매우 큰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과 싸우러 나섰으나, 그들에게 참패했다고 했다.마카베오기 상권 8:6 · 본디새김
여기에 나오는 안티오코스 대왕은 앞서 성전을 더럽혔던 안티오코스 4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안티오코스 3세입니다.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와 전쟁을 벌이다가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습니다. 이후 맺어진 아파메이아 조약으로 셀레우코스 왕국은 상당한 영토와 군사적 능력을 잃었고, 무거운 배상금과 인질 제공 의무를 떠안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벗어나려고 하는 셀레우코스 왕국도 로마 앞에서는 패배하고 조공을 바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직접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던 왕국이지만, 그 왕국 역시 더 강력한 나라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로마가 유다를 동맹자로 받아들인다면, 셀레우코스 왕국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상대로 군사력을 마음대로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다가 찾으려는 보호자는 이미 다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강한 나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아파메이아 조약은 고대 역사 기록인 폴리비오스의 『역사』 21권 42장에 보존된 조약 조항과도 대조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은 로마가 안티오코스를 산 채로 붙잡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피아노스의 『시리아 전쟁』에서 안티오코스는 패전 후 달아나 사절을 보내 평화를 요청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그가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혔다는 표현을 그대로 확정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8절의 영토 목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문면을 따라 「인도와 메대와 루디아」라고 옮겼습니다. 그러나 실제 로마와 셀레우코스 왕국 사이의 영토 양도는 주로 소아시아 서부 지역과 관련됩니다. 인도와 메대를 로마가 빼앗아 에우메네스 왕에게 주었다는 서술은 당시의 영토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이 지명들은 전승 과정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문에 적힌 정확한 목록의 형성 과정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로마의 친구가 되면 안전하다는 말의 이면
로마의 이야기는 그리스 사람들과 다른 왕국들에 대한 승리로 계속됩니다.
9–10절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로마를 없애려 하자 로마가 장군을 보내 그들을 무너뜨리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로로 잡고, 성벽을 허물고, 노예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친구들과 자기들을 의지하는 이들과는 우호 관계를 지켰다고 했다. 그들은 가까이 있는 왕국들과 멀리 있는 왕국들을 장악했고, 그들의 이름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들을 두려워했다고 했다.마카베오기 상권 8:12 · 본디새김
이 구분은 유다의 입장에서 매력적입니다. 유다인들은 지금 셀레우코스 왕국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로마와 친구가 된다면 더 큰 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구분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제가 드러납니다.
로마의 친구와 로마의 적을 가르는 기준은 누가 로마와 함께하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민족이 자기 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로마에 저항하더라도, 로마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적이 됩니다. 따라서 로마의 우호 관계는 모든 민족의 자유를 똑같이 존중하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로마가 주도하는 국제 질서 안에서 친구로 인정받는 사람에게 유리한 관계입니다.
그들이 돕고 왕이 되게 하려는 이들은 왕이 될 것이며, 그들이 몰아내려는 이들은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높아졌다고 했다.마카베오기 상권 8:13 · 본디새김
이는 단순한 군사력 이상의 권력입니다. 어느 왕이 다스릴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다른 나라의 정치 질서에 개입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지금 그런 로마와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본문이 로마를 명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술의 표면에서는 로마의 힘과 동맹에 대한 신뢰가 강조됩니다. 하지만 로마가 다른 민족들을 노예로 삼았다는 사실까지 숨기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우호 관계에 담긴 정치적 긴장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9–10절은 그리스의 아카이아 동맹이 로마에 패배하고 코린토스가 파괴된 기원전 146년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그렇게 읽는다면, 유다가 로마에 사절을 보내던 시기보다 뒤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의 이야기 속에 포함된 셈이 됩니다. 물론 본문이 그 사건의 연도나 아카이아 동맹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대응 가능성은 이 장의 로마 소개를 사건 당시 유다가 들었던 말의 정확한 속기록으로만 볼 수 없게 합니다. 서술자가 나중에 알려진 로마의 역사까지 포함하여 그 명성을 요약했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왕관을 쓰지 않으면서 왕들을 지배하는 나라
로마의 군사적 업적을 길게 설명한 뒤, 서술자는 갑자기 로마의 정치 제도를 소개합니다.
그런데도 그들 가운데 아무도 왕관을 쓰지 않았고, 자주색 옷을 걸쳐 그것으로 뽐내지도 않았다고 했다.마카베오기 상권 8:14 · 본디새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셀레우코스 왕국은 왕의 죽음과 즉위, 왕권을 둘러싼 경쟁으로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안티오코스가 죽자 리시아스와 빌립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데메트리오스는 경쟁자를 제거한 뒤 왕좌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한 사람의 왕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5절에 따르면 로마에는 삼백이십 명이 모여 백성의 일을 의논하는 원로원이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회의합니다. 16절에서는 해마다 한 사람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맡기며, 모두가 그에게 복종하고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이 설명 역시 로마 공화정의 실제 제도를 정확하게 기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로마는 해마다 한 사람만이 아니라 두 명의 집정관을 선출하는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또한 원로원 의원의 수를 언제나 삼백이십 명으로 고정하여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로마의 정치 제도에는 원로원과 집정관뿐 아니라 민회 등 여러 정치 기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권력의 분담은 폴리비오스의 『역사』 6권 11–18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로마의 정치 체제를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이 전달한 이상화된 모습에 가깝습니다. 특히 「그들 사이에는 시기도 질투도 없다는 것이었다」라는 말은 로마 정치의 실제 갈등을 모두 설명하는 객관적인 평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유다가 들은 로마는 한 사람의 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의논하고 공동체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로 소개됩니다. 왕권을 둘러싼 유혈 경쟁이 계속되는 셀레우코스 왕국과 비교하면 로마의 정치적 안정성이 더욱 돋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습니다.
로마에는 왕이 없지만, 로마는 다른 나라의 왕을 세우고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정치 제도의 형식과 실제 권력의 사용을 구별하도록 만듭니다. 왕관을 쓰지 않는다는 점은 로마의 특징이지만, 그것만으로 로마가 다른 나라에 언제나 정의롭게 행동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다는 로마를 의지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동맹을 맺기로 했다
17절에서 이야기는 로마에 관한 소문을 듣는 장면에서 실제 행동으로 넘어갑니다.
유다는 두 사람을 선택합니다.
한 사람은 학고스의 손자이며 요한의 아들인 에우폴레모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엘르아살의 아들 야손입니다. 이들은 로마로 가서 우호 관계와 동맹을 맺어야 했습니다.
자기들의 멍에를 벗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그리스 사람들의 왕국이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종살이를 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8:18 · 본디새김
여기서 「그리스 사람들의 왕국」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셀레우코스 왕국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목표는 단순히 로마라는 강대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억누르는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두 사절은 먼 길을 떠납니다.
그들은 로마로 갔다. 그 길은 매우 멀었다. 그들은 원로원에 들어가 말했다.마카베오기 상권 8:19 · 본디새김
앞서 로마가 먼 나라의 광산을 차지하고 땅끝에서 온 왕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그 로마까지 실제로 가는 데에는 매우 긴 여정이 필요했습니다. 유다의 사절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 지중해 서쪽의 먼 나라로 향합니다.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더 넓은 국제 질서와 연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카베오라고도 불리는 유다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유대 백성이 저희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여러분과 동맹을 맺고 평화를 이루며, 저희가 여러분의 동맹자와 친구로 등록되게 하려는 것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8:20 · 본디새김
사절들은 유다 개인의 이름만 내세우지 않습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유대 백성이 자신들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특히 「등록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는 표현은 그 관계가 단순한 구두 약속이 아니라 공적인 외교 관계로 인정되기를 원했다는 뜻을 드러냅니다.
처음에 유다는 로마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제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로마의 동맹자로 기록되기를 요청합니다.
멀리서 전해 듣던 로마의 명성이 실제 외교 관계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로마는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문서를 청동판에 베껴 써서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곳 사람들이 평화와 동맹을 기념하는 표로 간직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문서의 사본은 다음과 같았다.마카베오기 상권 8:22 · 본디새김
7장에서는 평화를 약속했던 사람들이 맹세를 어기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8장에서는 평화와 동맹을 문서로 기록합니다.
이 청동판 원본이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마카베오기 상권에 보존된 조약의 문면입니다. 그러므로 그 문면이 당시의 외교 문서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재현하는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6:1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일을 그들의 멍에를 꺾고 똑바로 걷게 하신 사건으로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유다는 로마와의 동맹을 통해 자신들을 짓누르는 멍에를 벗으려 합니다. 이 두 장면을 곧바로 대립시켜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로마를 의지하기 시작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에서도 정치적 협상이나 외교 자체가 언제나 불신앙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8장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직접 언급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멈추고 인간의 힘에 의존하기 시작했다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본문은 그런 판단을 직접 내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이 보여 주는 것은 신앙의 포기라기보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행동의 영역이라고 보는 편이 본문의 서술에 더 충실합니다. 이사야 30:1–5에서 하나님은 자신에게 묻지 않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 도움을 얻으려는 유다의 행동을 책망하십니다. 이사야 31:1도 이집트의 군사력에 의존하면서 여호와야훼를 찾지 않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이 말씀들의 핵심을 모든 외교 관계의 금지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문맥에서 책망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은 채 강대국의 힘을 자신의 궁극적인 안전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반면 에스라 6:8–12에서는 페르시아 왕의 명령으로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예배가 지원됩니다. 외국 왕의 정치적 결정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지혜를 신앙과 대립시킬 필요도 없지만, 정치적 지혜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할 근거도 없습니다.
평화를 약속한 조약은 전쟁이 일어날 때 무엇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조약은 평화를 기원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로마 사람들과 유대 민족이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영원히 잘되기를 바란다. 큰 칼과 적이 그들에게서 멀리 물러나기를 바란다.」마카베오기 상권 8:23 · 본디새김
바다와 육지는 두 나라의 활동 영역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어디에 있든 적의 공격과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영원히」라는 표현 역시 조약이 단기간의 임시 협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우호 관계를 지향한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부터 내용이 바뀝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24–26절은 로마나 그 동맹국에 전쟁이 닥쳤을 때 유대 민족이 해야 할 일을 설명합니다. 유대 민족은 형편에 맞게 온 마음을 다해 함께 싸워야 합니다. 또한 로마의 적에게 곡식과 무기, 은과 배를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27–28절은 같은 원칙을 유대 민족에게 전쟁이 닥치는 경우에 적용합니다. 로마도 형편에 따라 마음을 다해 함께 싸워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조약은 상호적인 구조를 갖습니다.
첫째는 「그때 형편에 맞추어」라는 조건입니다.
25절과 27절에서 도움을 주는 의무는 무조건적이지 않습니다. 그때의 상황에 따라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판단할 여지를 남깁니다. 본문에는 로마가 언제까지 몇 명의 군사를 파견해야 하는지, 얼마의 군비를 제공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맹이 성립되었다는 사실과 실제 군사적 지원이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로마가 결정한 대로」라는 표현입니다.
「로마가 결정한 대로, 로마를 상대로 싸우는 자들에게 곡식이나 무기나 은이나 배를 주지도 않고, 그것들로 돕지도 않을 것이다. 또 아무것도 받지 않고 그들의 조항들을 지킬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8:26 · 본디새김
28절에서도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조약이 상호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구체적인 조건을 정하는 권위가 로마에 집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외교 문서에서는 상호적인 약속을 맺었더라도 실제로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더 강한 나라의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26절의 마지막 표현은 유대 민족이 조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면서 별도의 보상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조약은 로마가 유다에게 돈을 주고 군대를 고용한다는 계약이 아닙니다. 두 민족이 서로를 동맹자로 인정하고, 상대의 적을 돕지 않으며, 필요한 경우 함께 싸운다는 약속입니다.
28절에는 해석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함께 싸우는 자들에게는」이라고 옮긴 그리스어 쉼마쿤신(συμμαχέω)은 문자적으로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정확히 누구와 함께 싸우는 사람들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앞 절들과 평행하게 읽으면 유대 민족을 공격하는 세력이나 그 세력을 지원하는 자들에게 물자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법만으로 그 대상을 확정할 수 없으므로 번역에서 남겨 둔 모호함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조항들을 정한 뒤에 양쪽이 무엇을 더하거나 빼기로 결정하면, 자기들의 선택에 따라 그렇게 할 것이며, 더하거나 뺀 것은 효력을 지닐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8:30 · 본디새김
양쪽이 합의하여 조항을 더하거나 빼면 그것도 공식적인 약정으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조약이 단순히 처음 작성된 문구에 머무르지 않고, 양측의 합의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관계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독자가 가장 궁금해할 문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는 지금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는 데메트리오스 왕에게 실제로 무엇을 할 것입니까?
로마는 데메트리오스 왕에게 멍에를 거두라고 요구한다
조약의 끝에는 데메트리오스 왕을 향한 로마의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메트리오스 왕이 그들에게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그대는 왜 우리의 친구이자 동맹자인 유대 사람들에게 그대의 멍에를 무겁게 씌웠소?』」마카베오기 상권 8:31 · 본디새김
18절에서 유다는 이스라엘의 멍에를 벗기 위해 로마에 사절을 보냈습니다. 8장의 처음에는 유다의 목표로 등장했던 것이 마지막에는 로마의 외교적 항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조약이 맺어지기 전에는 유다의 사절들이 로마의 친구로 등록되기를 요청했습니다. 조약이 성립된 뒤에는 로마가 데메트리오스에게 그들을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합니다.
유다인들이 원했던 외교적 지위가 문서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순간입니다.
로마는 유대 민족의 멍에가 무겁다는 사실을 문제 삼으면서도, 모든 나라가 다른 민족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로마 자신도 다른 나라들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 인질을 내놓도록 강요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로마가 문제 삼는 것은 자신들의 친구이자 동맹자가 부당하게 압박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다시 그대를 상대로 호소하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판결을 내리고 바다로도 육지로도 그대와 전쟁을 벌이겠소.』」마카베오기 상권 8:32 · 본디새김
이전까지 데메트리오스는 유다 땅의 문제를 자신의 왕국 내부 문제로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알키모스의 고발을 듣고 바키데스와 니카노르를 보냈습니다. 이제 로마가 유다인들을 자신의 동맹자라고 선언하면서, 유다 땅의 문제는 셀레우코스 왕국과 로마 사이의 외교 문제로 확대됩니다.
유다는 로마 군대를 직접 데려오지 않았지만, 로마의 이름으로 데메트리오스에게 경고를 보낼 수 있는 관계를 얻었습니다.
조약은 23절에서 로마 사람들과 유대 민족이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로마가 데메트리오스에게 「바다로도 육지로도」 전쟁을 벌이겠다고 경고합니다. 같은 공간을 가리키는 표현이 처음에는 평화의 소망으로, 마지막에는 전쟁의 위협으로 사용됩니다.
로마가 약속하는 평화는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진 평화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힘을 배경으로 유지하는 평화입니다.
맺음말 — 청동판에 새겨진 약속
동맹은 멍에를 벗기 위한 수단입니다. 동맹 자체가 멍에에서 벗어난 삶은 아닙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8장은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기록한 것이지, 자유가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장이 아닙니다.
이제 예루살렘에는 멀리 떨어진 로마가 유대 민족을 자신의 동맹자로 인정한다는 문서가 보존됩니다.
그 문서의 끝에는 데메트리오스 왕을 향한 경고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문서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로마 군대가 유다 땅에 도착했다는 기록도 없고, 데메트리오스가 멍에를 거두었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유다는 약속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성소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싸움은 이제 멀리 로마의 원로원까지 이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보존된 청동판은 유다인들이 더 이상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동판에 새겨진 약속만으로 멍에가 벗겨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는 자신들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약속이 이스라엘의 삶을 실제로 어떻게 바꾸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