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하권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8–13장 · 되찾은 성전

칼로 빼앗으려던 것을 편지로 돌려주다

마카베오기 하권 11장은 거대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11장의 진짜 특징은 그다음에 나타납니다.

38절로 이루어진 이 장에서 마지막 23절은 거의 전부 편지와 외교 문서에 할애됩니다. 리시아스가 유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새 왕이 리시아스에게 보낸 편지, 왕이 유대 사람들에게 직접 보낸 편지, 그리고 로마 사절들이 보낸 편지입니다.

그 편지들에는 전투의 영웅적인 장면이 없습니다. 대신 청원서, 허가, 법규, 안전 보장, 왕의 승인, 추가 협의 같은 말들이 반복됩니다.

왜 저자는 이렇게 많은 지면을 행정적인 문서에 사용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 장의 승리가 적군을 물리치는 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조상의 율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왕국의 권력자들에게 인정받으려 합니다.

이 긴장 속에서 11장은 하나님의 구원이 전쟁터의 승리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협상과 정치적 결정 속에서도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11장 본문 읽기 →

성전마저 왕국의 수입원으로 만들려는 계획

마카베오기 하권 11:1–4 본문 →

리시아스는 무엇을 빼앗으려 했는가

리시아스는 단순한 군사 지휘관이 아닙니다.

1절은 그를 왕의 후견인이자 친척이며 국정 책임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친척」은 왕실과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헬레니즘 왕국에서는 궁정의 높은 지위나 칭호를 가리키는 용법도 있었습니다.

그는 앞서 유대 사람들이 거둔 승리 때문에 크게 불쾌해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유대로 들어옵니다.

그의 계획은 세 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을 그리스 사람들의 거주지로 만들고, 성전에 세금을 부과하고, 대제사장직을 해마다 팔아넘기는 것입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주민 구성과 정치적 성격을 바꾸려 합니다. 이어서 성전을 왕국의 재정 체계 안에 편입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성전을 섬기는 최고 종교 지도자의 지위까지 매년 돈으로 거래하려 합니다.

결국 그는 도시와 성전과 제사장직을 모두 왕국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직을 해마다 판다는 말의 의미

3절의 대제사장직 매각 계획은 앞서 4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할 때 훨씬 심각하게 들립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4장 7–10절에서 야손은 왕에게 막대한 돈을 약속하고 대제사장직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4장 23–25절에서는 메넬라오스가 야손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하여 그 자리를 빼앗습니다.

그런데 리시아스의 계획은 이것을 아예 정기적인 제도로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대제사장직은 일정한 기간마다 왕국이 다시 팔 수 있는 지위가 됩니다.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왕에게 더 많은 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위험이 커집니다. 이것은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동시에 공동체 내부의 질서까지 무너뜨리는 계획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속한 장소이지만, 리시아스에게는 왕국의 재정을 위해 관리하고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이 됩니다.

코끼리 여든 마리와 하나님의 능력

그는 하나님의 힘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수만 명의 보병과 수천 명의 기병과 코끼리 여든 마리 때문에 우쭐해 있었다.마카베오기 하권 11:4 · 본디새김

전투 코끼리는 헬레니즘 시대 군대의 중요한 전력이었습니다. 거대한 몸집으로 적군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었고, 전투에서 보병 대열을 무너뜨리는 데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리시아스는 자기가 가진 군사력을 셉니다. 보병의 수를 알고, 기병의 수를 알고, 코끼리의 수를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자신의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문제는 리시아스가 자신의 군사력을 절대적인 힘으로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잠언 21장 31절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말은 전쟁의 날을 위해 준비하지만 승리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사람의 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준비하되 결과를 자기 힘만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11장은 그가 계산하지 않았던 도움을 곧 보여 줍니다.

눈물로 구한 천사가 군대 앞에 나타나다

마카베오기 하권 11:5–12 본문 →

벳술에서 시작된 위기

리시아스는 유대에 들어와 벳술을 압박합니다.

벳술은 예루살렘 남쪽의 산지에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남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접근하는 군대가 마주할 수 있는 전략적 장소였습니다. 그곳이 무너지면 유대의 중심부도 더 큰 위협에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마카베오 일행은 그가 요새들을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의 무리와 함께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선한 천사를 보내 달라고 주에게 간청했다.마카베오기 하권 11:6 · 본디새김

왜 하필 천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을까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천사는 종종 그분의 보호와 인도를 나타냅니다.

출애굽기 2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그들을 지키고 준비된 곳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천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어서 8절에서 흰옷을 입고 금으로 된 무구를 휘두르는 기병이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자신들보다 앞서 가는 존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방식

모두 함께 자비로운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에 힘을 얻었다. 사람들뿐 아니라 가장 사나운 짐승들과 쇠로 된 성벽까지도 뚫을 태세로,마카베오기 하권 11:9 · 본디새김

그들은 아직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습니다. 적군은 여전히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에 힘을 얻습니다. 자신들이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전쟁의 결과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게 되는 순간에도 드러납니다.

목숨을 걸고 형제들을 도우러 가다

7절에서 그는 가장 먼저 무기를 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와 함께 목숨을 걸고 형제들을 도우러 가자고 권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위험을 감수합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위협받는 동족을 구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물론 이 전쟁에도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11절은 적군 보병 만 천 명과 기병 천육백 명이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숫자를 자세히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12절에서 리시아스가 수치스럽게 달아났다는 사실을 기록한 뒤,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 줍니다.

이것이 11장의 본격적인 전환점입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에는 예루살렘과 벳술 사이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제공된 본디새김의 「다섯 스코이노스」와 다른 그리스어 본문의 「다섯 스타디온」 사이에는 거리 단위의 차이가 있고, 후자의 거리는 실제 지리와 잘 맞지 않습니다. 이 수치를 근거로 정확한 이동 거리를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 기병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8절에서 그를 명시적으로 「천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6절의 기도와 8절의 출현, 10절의 「하늘에서 온 동맹자」라는 표현을 연결하면 저자가 그 기병을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카베오기 하권 3장 24–26절이나 10장 29–30절에서 나타난 하늘의 개입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본문은 유대 공동체가 경험한 승리를 하나님의 초자연적 도움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들이 쇠로 된 성벽을 뚫었다는 사건 보고가 아닙니다. 그들이 얻은 용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패배한 리시아스가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다

마카베오기 하권 11:13–15 본문 →

적군의 지휘관이 어리석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

그러나 리시아스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당한 패배를 곰곰이 생각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 히브리 사람들과 함께 싸우므로 그들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람을 보내어,마카베오기 하권 11:13 · 본디새김

앞에서 리시아스는 하나님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자기 군사력만 믿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처음에 무엇이 중요한지 잘못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패배를 경험한 뒤에는 그 결과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본문은 그의 종교적 회심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유대 사람들을 기존의 방식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전처럼 더 많은 군대를 모아 다시 공격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바로 협상입니다.

적을 없애는 대신 조건을 협의하다

14절에서 리시아스는 사람을 보내 정당한 조건으로 화해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선언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요구를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앞서 리시아스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바꿀지 자신이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대 사람들과 합의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15절은 그가 「유익한 일을 생각하여」 리시아스의 제안에 동의했다고 기록합니다. 공동체에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한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앞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협상이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자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공동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조상의 율법과 예배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왕의 명령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갈 구체적인 정치적 조건과 안전 보장의 방식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자는 그 결과를 단순히 자기 말로 요약하지 않습니다. 실제 합의와 관련된 문서들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15절에서 요구 사항을 허락한 주체에는 본문 차이가 있습니다. 제공된 본디새김은 「서기관」이 허락했다고 옮겼습니다. 다른 그리스어 전승은 「왕」이 허락했다고 읽습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편지들에서는 왕의 승인이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따라서 세부적인 승인 절차에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유다가 요구 사항을 문서로 제출했고 왕국 측에서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는 흐름은 분명합니다.

리시아스의 편지 — 적군이 협상의 상대가 되다

마카베오기 하권 11:16–21 본문 →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청원서를 들고 오다

첫 번째 편지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요한과 압살롬입니다. 17절에서 리시아스는 이들이 유대 사람들을 대표하여 서명된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병력의 규모와 코끼리의 수가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두 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제출한 문서가 중요해집니다. 유대 사람들의 요구가 협상할 수 있는 정식 안건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리시아스는 그 가운데 왕에게 보고해야 할 사항을 보고했고, 허용할 수 있는 것은 왕이 허락했다고 말합니다. 20절을 보면 리시아스는 자신이 보낸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 세부 사항을 더 의논하도록 했다고 기록합니다. 즉, 합의의 기본적인 방향은 마련되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협의는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만나야 합니다.

문서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합의의 세부 내용을 정해야 합니다.

호의를 지킨다는 조건

「그러니 그대들이 국정에 대한 호의를 지킨다면, 나도 앞으로 그대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도록 힘쓰겠소.」마카베오기 하권 11:19 · 본디새김

유대 사람들은 여전히 셀레우코스 왕국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습니다. 리시아스 역시 왕의 관리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립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지배가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관계를 안정시키려 합니다.

강제로 생활방식을 바꾸려던 권력이 이제는 유대 사람들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허용할 수 있는 것들을 허락하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동체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할 여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왕의 첫 번째 편지 — 아버지의 정책을 되돌리다

마카베오기 하권 11:22–26 본문 →

아버지는 신들에게로 갔다

두 번째 편지는 왕이 리시아스에게 보낸 것입니다.

여기서 왕은 9장에서 죽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아들인 안티오코스 5세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신들에게로 옮겨 가셨고, 왕국의 백성들이 평온하게 지내며 유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나서기를 바라셨으며,」마카베오기 하권 11:23 · 본디새김

9장에서 서술자는 왕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왕의 아들은 아버지가 신들에게로 옮겨 갔다고 말합니다. 왕실에서 죽은 왕을 높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자기의 신학적 설명만을 이어 가지 않고, 왕국의 관리와 왕이 실제로 어떤 언어로 상황을 설명하는지도 전합니다. 그들의 표현은 반드시 저자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강요했던 풍습을 이제는 선택의 문제로 인정하다

왕은 유대 사람들이 아버지가 강요한 그리스 풍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조상에게서 내려온 자기들의 생활방식과 법규를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왕국은 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전이 더럽혀지고, 율법을 지키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새 왕은 이제 그 요구를 인정합니다.

「이 민족도 소란 없이 지내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성전을 돌려주고 그들이 조상 때의 관례에 따라 살아가도록 결정한다.」마카베오기 하권 11:25 · 본디새김

이전 왕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되돌리는 결정입니다. 리시아스는 예루살렘을 그리스 사람들의 거주지로 만들고 성전을 수입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왕은 유대 사람들이 자기들의 관례대로 살아가고 성전을 돌려받도록 결정합니다.

2–3절에서 계획했던 일들이 24–25절에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왕이 허락했기 때문에 율법이 정당해진 것인가

유대 사람들이 조상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왕이 허락했기 때문일까요?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그렇습니다. 왕국이 강요하던 정책을 철회했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며 살아갈 법적 여지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에게 율법의 정당성은 왕의 허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율법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왕이 허락하기 전에도 그들은 그 율법이 정당하다고 믿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금지했을 때에도 그들은 율법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의미는 왕이 율법을 새롭게 정당화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왕국이 뒤늦게 자신들이 금지했던 삶의 방식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왕국의 허가보다 앞서 존재하지만, 그 믿음을 자유롭게 실천하는 삶에는 실제적인 제도와 보장이 필요했습니다.

왕의 편지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왕은 자기 정책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공식 문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이유와 실제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된 모든 동기가 일치하는지는 이 편지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리시아스의 군사적 패배와 왕국의 정치적 필요가 정책 전환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제시하는 범위를 넘어 왕의 숨은 의도를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23절에는 번역상 어려움도 있습니다. 제공된 본디새김은 아버지 안티오코스가 왕국의 안정과 유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원했던 것으로 읽힙니다. 반면 새 왕이 왕국 사람들의 평온한 생활을 원한다는 뜻으로 보는 읽기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읽기는 박해를 주도했던 아버지 왕의 뜻을 호의적으로 설명하는 듯한 문장이 됩니다. 두 번째 읽기는 새로운 왕의 정책적 의도를 설명하는 문장이 됩니다. 어느 쪽이 원래 문면인지 여기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읽기 모두 24–26절의 핵심 결정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새 왕이 유대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성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입니다.

왕의 두 번째 편지 — 자유를 허락하면서도 조건을 남기다

마카베오기 하권 11:27–33 본문 →

원로회가 공식적인 수신인이 되다

세 번째 편지는 왕이 유대 사람들에게 직접 보낸 것입니다.

왕이 유대 민족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안티오코스 왕이 유대 사람들의 원로회와 나머지 유대 사람들에게 인사한다.」마카베오기 하권 11:27 · 본디새김

원로회는 장로들로 이루어진 회의체를 가리킵니다. 이 명칭은 유대 공동체가 공식적인 대표 기구를 통해 왕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메넬라오스가 등장하는 뜻밖의 장면

29절에는 앞서 등장했던 메넬라오스가 다시 나옵니다.

「메넬라오스는 그대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일을 돌보기를 바라며 우리에게 그 뜻을 알렸다.」마카베오기 하권 11:29 · 본디새김

32절에서도 왕은 유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메넬라오스를 보냈다고 말합니다. 메넬라오스는 앞서 4장에서 대제사장직을 돈으로 차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의 기물을 빼앗아 팔았고, 오니아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본문은 메넬라오스가 회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유대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그를 보냈다는 사실만을 기록합니다.

왕국은 유대 사람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전달하는 인물 가운데는 이전의 부패와 박해에 깊이 연루된 사람도 있습니다. 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의 불신까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 보장에는 기한이 있다

30절에서 왕은 특정 날짜까지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신의와 안전을 보장합니다. 그 날짜는 크산티코스월 삼십일입니다. 이 편지의 작성 날짜는 같은 달 열닷샛날로 기록됩니다.

여기서 왕의 약속은 모든 상황에 무조건 적용되는 일반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정해진 기한 안에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구체적인 안전 보장입니다.

무지에서 저지른 일은 처벌하지 않겠다

「유대 사람들은 전과 같이 자기들의 경비를 쓰고 자기들의 법을 따르도록 한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무지에서 저지른 일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마카베오기 하권 11:31 · 본디새김

왕은 일정한 범위의 행위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지에서 저지른 일들」이라는 제한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과거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면이라고 읽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행위가 그 범위에 포함되는지는 편지만으로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 어떤 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 어떤 과거 행위에 대해 처벌받지 않는지를 정하는 문서입니다. 이런 조항들은 추상적인 자유보다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은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만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31절에서는 그들이 이전과 같이 자기들의 경비를 사용하고 자기들의 법을 따르도록 허락합니다. 이 구절에는 번역상의 중요한 갈림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크레스타이는 사용한다는 뜻으로, 뒤에 비용이나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가리킬 수 있는 말과 법을 가리키는 말이 함께 연결됩니다. 따라서 앞의 명사를 일반적인 경비로 읽을 수도 있고,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음식이나 생활 규정과 연결하여 읽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로 읽으면 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식 규정을 다시 따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강해집니다. 전자로 읽으면 재정이나 생활상의 사용 권한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왕이 유대 사람들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인정한다는 큰 흐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경비」를 반드시 음식 규정이라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종교적 생활과 전혀 관계없는 재정적 허가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의 편지 — 평화는 더 넓은 세계의 문제가 되다

마카베오기 하권 11:34–38 본문 →

로마 사절들이 왜 등장할까

마지막 편지는 뜻밖에도 로마 사람들에게서 옵니다.

퀸투스 멤미우스와 티투스 마니우스라는 두 사절이 유대 백성에게 인사합니다. 그들은 리시아스가 허락한 사항에 자신들도 동의한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이야기를 유대와 셀레우코스 왕국의 관계 밖으로 확장합니다.

로마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도 로마와 무관하게 행동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사절들이 유대 사람들과 왕국 사이의 합의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지역적인 군사 충돌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로마 사절들이 합의에 동의했다고 해서 유대가 로마의 직접적인 보호령이 되었다거나, 로마가 유대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리시아스가 허락한 사항에 동의하며, 왕에게 추가로 보고해야 할 문제들을 검토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네 번째 편지도 끝난 협상이 아니라 계속되는 협상이다

왕의 편지를 통해 허락된 사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논의해야 할 문제들도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정리해 대표자를 보내야 합니다. 로마 사절들도 그 내용을 검토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일은 때로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안정된 질서로 이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약속이 필요하고, 합의가 필요하며, 서로 다른 권력자들 사이의 조정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마카베오기 상권 4장 26–35절에도 리시아스가 벳술 부근에서 유다의 군대와 싸우다가 물러나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상권에서는 이 사건이 성전 정화 이전에 일어납니다. 반면 마카베오기 하권에서는 성전 정화가 10장에 먼저 기록되고, 리시아스의 공격은 11장에 등장합니다. 또한 상권 6장 28–63절에는 새 왕 안티오코스 5세 때 리시아스와 왕의 군대가 유대를 공격했다가 평화 협상을 하는 별도의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따라서 하권 11장의 전투와 편지들이 상권의 어느 사건과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하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하권의 저자가 사건들을 주제에 따라 묶어 전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 그 구체적인 편집 과정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리시아스의 편지는 셀레우코스력 148년, 「디오스 코린티오스월」 스물나흗날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이 달의 이름은 그리스어 달력에서 명확하게 대응되는 이름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두 낱말을 하나의 달 이름으로 결합해야 할지, 서로 다른 날짜 표기의 흔적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왕이 유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와 로마 사절들의 편지는 모두 셀레우코스력 148년 크산티코스월 열닷샛날로 기록됩니다. 셀레우코스력 148년은 사용된 연초 기준에 따라 기원전 165–164년 무렵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안티오코스 5세의 왕위 계승 시점과 편지의 날짜를 그대로 맞추려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따라서 네 편지를 정확한 날짜 순서로 배열하고, 한 번의 전투가 곧바로 네 문서로 이어졌다고 확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 장의 문서들은 하나의 완성된 평화조약을 단순히 네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 공동체의 권리를 둘러싼 여러 단계의 외교적 관계를 보여 주는 자료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한 장의 편지가 아니라, 계속되는 대화였다

마카베오기 하권 11:1–38 본문 →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강한 군대가 패배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유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허락할지를 결정하던 권력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각각의 정치적 결정을 직접 명령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서의 모든 조항을 하나님의 뜻과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의 흐름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시작된 전환이 사람들의 현실적인 결정을 통해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11장의 마지막 편지에서 로마 사절들은 유대 사람들에게 서둘러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들이 안디옥으로 가는 중이니, 유대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코끼리 여든 마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온 기병이 다시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대신 자기 공동체를 대표하여 의견을 전달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적군이 유대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유대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사절들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삶에 관한 문제를 스스로 말하고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11장은 바로 그 열린 길 위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