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하권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8–13장 · 되찾은 성전
칼로 빼앗으려던 것을 편지로 돌려주다
마카베오기 하권 11장은 거대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보병 수만 명과 기병대, 전투 코끼리 여든 마리가 동원됩니다. 나랏일을 책임지는 리시아스는 예루살렘을 그리스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만들고, 성전에서 세금을 거두며, 대제사장 자리까지 해마다 돈을 받고 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전쟁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마카베오와 그의 동료들이 하나님께 간청하자 하늘에서 온 이가 말을 타고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유대 군대는 승리하고, 리시아스는 수치스럽게 달아납니다.
그런데 11장의 진짜 특징은 그다음에 나타납니다.
38절로 이루어진 이 장에서 마지막 23절은 거의 전부 편지와 외교 문서에 쓰입니다. 전쟁의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저자는 네 통의 편지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리시아스가 유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새 왕이 리시아스에게 보낸 편지, 왕이 유대 사람들에게 직접 보낸 편지, 그리고 로마 사절들이 보낸 편지입니다.
왜 저자는 이렇게 많은 지면을 행정적인 문서에 사용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 장의 승리가 적군을 물리치는 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조상의 율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왕국의 권력자들에게 인정받으려 합니다.
성전마저 왕국의 수입원으로 만들려는 계획
리시아스는 무엇을 빼앗으려 했는가
리시아스는 단순한 군사 지휘관이 아닙니다.
1절은 그를 왕을 보살피는 후견인이자 왕의 친척이며 나랏일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친척」은 왕실과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헬레니즘 왕국에서는 궁정의 높은 지위나 칭호를 가리키는 용법도 있었습니다.
그는 앞서 유대 사람들이 거둔 승리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유대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2–3절은 그가 단순히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던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먼저 예루살렘에 누가 살고 그 도시가 어떤 성격을 띨지를 바꾸려 합니다. 이어서 성전을 왕국이 돈을 거두는 체계 안에 넣으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성전을 섬기는 최고 종교 지도자의 자리까지 매년 돈으로 거래하려 합니다.
결국 그는 도시와 성전과 제사장 자리를 모두 왕국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직을 해마다 판다는 말의 의미
3절에서 대제사장 자리를 팔겠다는 계획은 앞서 4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할 때 훨씬 심각하게 들립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4장 7–10절에서 야손은 왕에게 막대한 돈을 약속하고 대제사장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4장 23–25절에서는 메넬라오스가 야손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하여 그 자리를 빼앗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동체의 중요한 직분이었지만, 그 시대에는 왕에게 돈을 얼마나 더 많이 제시하는가에 따라 차지할 수 있는 자리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런데 리시아스의 계획은 이것을 아예 정기적인 제도로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대제사장 자리는 일정한 기간마다 왕국이 다시 팔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왕에게 더 많은 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위험이 커집니다. 이것은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동시에 공동체 내부의 질서까지 무너뜨리는 계획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속한 장소이지만, 리시아스에게는 왕국의 재정을 위해 관리하고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됩니다.
코끼리 여든 마리와 하나님의 능력
전투 코끼리는 헬레니즘 시대 군대의 중요한 전력이었습니다. 거대한 몸집으로 적군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었고, 전투에서 보병 대열을 무너뜨리는 데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힘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수만 명의 보병과 수천 명의 기병, 코끼리 80마리를 믿고 우쭐해 있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4 · 두루새김
리시아스는 자기가 가진 군사력을 셉니다. 보병의 수를 알고, 기병의 수를 알고, 코끼리의 수를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자신의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문제는 리시아스가 자신의 군사력을 절대적인 힘으로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1장은 그가 계산하지 않았던 도움을 곧 보여 줍니다.
눈물로 구한 천사가 군대 앞에 나타나다
벳술에서 시작된 위기
리시아스는 유대에 들어와 벳술을 공격합니다.
벳술은 예루살렘 남쪽의 산지에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남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접근하는 군대가 마주할 수 있는 전략적 장소였습니다. 그곳이 무너지면 유대의 중심부도 더 큰 위협에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마카베오와 동료들은 리시아스가 요새들을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백성과 함께 큰 소리로 울며, 이스라엘을 구하도록 선한 천사를 보내 달라고 주께 간청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6 · 두루새김
왜 하필 천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을까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천사는 종종 그분의 보호와 인도를 나타냅니다.
출애굽기 2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그들을 지키고 준비된 곳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천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어서 8절에서 흰옷 차림에 금으로 된 무장을 갖추고 무기를 휘두르는 이가 말을 타고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자신들보다 앞서 가는 존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방식
모두 함께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음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뿐 아니라 가장 사나운 짐승들과 쇠로 된 성벽까지도 뚫고 나갈 기세였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9 · 두루새김
그들은 아직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습니다. 적군은 여전히 앞에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를 확인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들이 쇠로 된 성벽을 뚫었다는 사건 보고가 아닙니다. 그들이 얻은 용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전쟁의 결과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게 되는 순간에도 드러납니다.
목숨을 걸고 형제들을 도우러 가다
7절에서 그는 직접 맨 먼저 무기를 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와 함께 목숨을 걸고 형제들을 도우러 가자고 권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위험을 감수합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위협받는 동족을 구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물론 이 전쟁에도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11절은 적군 만 천 명과 기병 천육백 명을 쓰러뜨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숫자를 더 자세히 풀어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12절에서 리시아스가 수치스럽게 달아났다는 사실을 기록한 뒤,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 줍니다.
이것이 11장의 본격적인 전환점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8절에서 그를 명시적으로 「천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6절의 기도와 8절의 출현, 10절의 「하늘에서 온 이가 그들과 함께 싸워 주었습니다」라는 표현을 연결하면 저자가 그를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카베오기 하권 3장 24–26절이나 10장 29–30절에서 나타난 하늘의 개입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패배한 리시아스가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다
적군의 지휘관이 어리석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
하지만 리시아스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당한 패배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으신 하나님께서 히브리 사람들과 함께 싸우시므로 그들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13 · 두루새김
앞에서 리시아스는 하나님의 힘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군사력만 믿었던 인물입니다. 자기가 가진 군사력이 왜 뜻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본문은 그가 믿음을 바꾸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유대 사람들을 기존의 방식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전처럼 더 많은 군대를 모아 다시 공격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바로 협상입니다.
적을 없애는 대신 조건을 협의하다
14절에서 리시아스는 사람을 보내 정당한 조건이라면 모두 받아들여 화해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선언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요구를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앞서 리시아스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바꿀지 자신이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대 사람들과 합의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15절은 그가 「무엇이 유익할지 생각하여」 리시아스의 제안에 동의했다고 기록합니다. 공동체에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한다는 뜻입니다.
마카베오는 앞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협상이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자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가 전쟁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공동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언 21장 31절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말은 전쟁의 날을 위해 준비하지만 승리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사람의 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준비하되 결과를 자기 힘만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제 저자는 그 결과를 단순히 자기 말로 요약하지 않습니다. 실제 합의와 관련된 문서들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15절에서 요청들을 허락한 주체에는 본문 차이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서기관」이 허락했다고 옮겼습니다. 다른 그리스어 전승은 「왕」이 허락했다고 읽습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편지들에서는 왕의 허락이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따라서 세부적인 허락 절차에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마카베오가 요청들을 글로 제출했고 왕국 측에서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는 흐름은 분명합니다.
리시아스의 편지 — 적군이 협상의 상대가 되다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청원서를 들고 오다
첫 번째 편지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요한과 압살롬입니다. 17절에서 리시아스는 이들이 유대 사람들을 대표하여 서명된 요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병력의 규모와 코끼리의 수가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두 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제출한 문서가 중요해집니다. 유대 사람들의 요구가 협상할 수 있는 정식 안건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리시아스는 그 가운데 왕에게도 알려야 할 일들을 자세히 말씀드렸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왕이 허락했다고 말합니다. 20절을 보면 리시아스는 자신이 보낸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 유대 사람들과 자세한 내용을 하나하나 의논하도록 했다고 기록합니다. 즉, 합의의 기본적인 방향은 마련되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의논은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만나야 합니다.
문서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합의의 세부 내용을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공동체라고 해서 이러한 현실적인 절차가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호의를 지킨다는 조건
「그러니 여러분이 계속 나랏일에 호의를 보여 준다면, 나도 앞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생기도록 힘쓰겠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19 · 두루새김
유대 사람들은 여전히 셀레우코스 왕국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습니다. 리시아스 역시 왕의 관리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지배가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관계를 안정시키려 합니다.
강제로 생활 방식을 바꾸려던 권력이 이제는 유대 사람들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허락하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동체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할 여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왕의 첫 번째 편지 — 아버지의 정책을 되돌리다
아버지는 신들에게로 옮겨 가셨다
두 번째 편지는 왕이 리시아스에게 보낸 것입니다.
여기서 왕은 9장에서 죽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아들인 안티오코스 5세입니다. 23절은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신들에게로 옮겨 가셨다. 아버지께서는 왕국의 백성들이 평온하게 지내며 유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나서기를 바라셨다.」마카베오기 하권 11:23 · 두루새김
9장에서 서술자는 왕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것을 아버지가 실제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진술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왕실에서 죽은 왕을 높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자기의 신학적 설명만을 이어 가지 않고, 왕국의 관리와 왕이 실제로 어떤 말로 상황을 설명하는지도 전합니다. 그들의 표현은 반드시 저자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강요했던 풍습을 이제는 선택의 문제로 인정하다
왕은 유대 사람들이 아버지가 그리스 풍습으로 바꾼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택하고, 자기들의 법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왕국은 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전이 더럽혀지고, 율법을 지키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새 왕은 이제 그 요구를 인정합니다.
「우리는 이 민족도 소란 없이 지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성전을 돌려주고, 조상 때부터 내려온 관습대로 살아가게 하기로 결정한다.」마카베오기 하권 11:25 · 두루새김
이전 왕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되돌리는 결정입니다. 리시아스는 예루살렘을 그리스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만들고 성전을 수입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2–3절에서 계획했던 일들이 24–25절에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왕이 허락했기 때문에 율법이 정당해진 것인가
유대 사람들이 조상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왕이 허락했기 때문일까요?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그렇습니다. 왕국이 강요하던 정책을 거두었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며 살아갈 법적 여지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에게 율법의 정당성은 왕의 허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율법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왕이 허락하기 전에도 그들은 그 율법이 정당하다고 믿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금지했을 때에도 그들은 율법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왕국의 허락보다 앞서 존재하지만, 그 믿음을 자유롭게 실천하는 삶에는 실제적인 제도와 보장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3절에는 번역상 어려움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아버지 안티오코스가 왕국의 백성들이 평온하게 지내며 유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나서기를 바랐다고 옮겼습니다. 반면 새 왕이 왕국 사람들의 평온한 생활을 원한다는 뜻으로 보는 읽기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읽기는 박해를 주도했던 아버지 왕의 뜻을 호의적으로 설명하는 듯한 문장이 됩니다. 두 번째 읽기는 새로운 왕의 정책적 의도를 설명하는 문장이 됩니다. 어느 쪽이 원래 문면인지 여기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은 자기 정책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공식 문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이유와 실제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된 모든 동기가 일치하는지는 이 편지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왕의 두 번째 편지 — 자유를 허락하면서도 조건을 남기다
원로회가 공식적인 수신인이 되다
세 번째 편지는 왕이 유대 사람들에게 직접 보낸 것입니다.
왕이 유대 민족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안티오코스 왕이 유대 사람들의 원로회와 나머지 유대 사람들에게 인사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27 · 두루새김
장로들로 이루어진 모임을 가리킵니다. 이 이름은 유대 공동체가 공식적인 대표 기구를 통해 왕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메넬라오스가 등장하는 뜻밖의 장면
29절에는 앞서 등장했던 메넬라오스가 다시 나옵니다.
「메넬라오스는 여러분이 돌아와 여러분의 일을 돌보게 되기를 바란다고 우리에게 알렸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29 · 두루새김
32절에서도 왕은 유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메넬라오스를 보냈다고 말합니다. 메넬라오스는 앞서 4장에서 대제사장 자리를 돈으로 차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의 물건들을 빼앗아 팔았고, 오니아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유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왕의 사절로 등장합니다.
본문은 메넬라오스가 회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유대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그를 보냈다는 사실만을 기록합니다.
왕국은 유대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전달하는 인물 가운데는 이전의 부패와 박해에 깊이 얽힌 사람도 있습니다. 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의 불신까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 보장에는 기한이 있다
30절에서 왕은 특정 날짜까지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날짜는 크산티코스월 30일입니다. 이 편지를 쓴 날짜는 같은 달 15일로 기록됩니다.
여기서 왕의 약속은 모든 상황에 무조건 적용되는 일반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정해진 기한 안에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구체적인 안전 보장입니다.
무지에서 저지른 일은 처벌하지 않겠다
「유대 사람들은 전처럼 자기들의 비용을 쓰고 자기들의 법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모르고 저지른 일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11:31 · 두루새김
그러나 여기에는 「모르고 저지른 일들」이라는 제한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과거 행위를 조건 없이 용서하고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행위가 그 범위에 포함되는지는 편지만으로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 어떤 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 어떤 과거 행위에 대해 처벌받지 않는지를 정하는 문서입니다. 이런 조항들은 막연한 자유보다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은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만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31절에는 번역상의 중요한 갈림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크레스타이(χράομαι)는 사용한다는 뜻으로, 뒤에 비용이나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가리킬 수 있는 말과 법을 가리키는 말이 함께 연결됩니다. 따라서 앞의 명사를 일반적인 비용으로 읽을 수도 있고,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음식이나 생활 규정과 연결하여 읽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로 읽으면 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식 규정을 다시 따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강해집니다. 전자로 읽으면 돈이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사용할 권한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비용」을 반드시 음식 규정이라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신앙생활과 전혀 관계없는 돈 사용에 관한 허가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의 편지 — 평화는 더 넓은 세계의 문제가 되다
로마 사절들이 왜 등장할까
마지막 편지는 뜻밖에도 로마 사람들에게서 옵니다.
퀸투스 멤미우스와 티투스 마니우스라는 두 사절이 유대 백성에게 인사합니다. 그들은 리시아스가 허락한 일들에 자신들도 동의한다고 말합니다.
로마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도 로마와 무관하게 행동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사절들이 유대 사람들과 왕국 사이의 합의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지역적인 군사 충돌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로마 사절들이 합의에 동의했다고 해서 유대가 로마의 직접적인 보호령이 되었다거나, 로마가 유대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리시아스가 허락한 일들에 동의하며, 왕께 더 보고해야 할 문제들을 유대 사람들이 검토하고 사람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네 번째 편지도 끝난 협상이 아니라 계속되는 협상이다
왕의 편지를 통해 허락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논의해야 할 문제들도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정리해 대표자를 보내야 합니다. 로마 사절들도 그 내용을 검토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일은 때로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안정된 질서로 이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약속이 필요하고, 합의가 필요하며, 서로 다른 권력자들 사이의 의견을 조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마카베오기 상권 4장 26–35절에도 리시아스가 벳술 부근에서 유다의 군대와 싸우다가 물러나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상권에서는 이 사건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기 전에 일어납니다. 반면 마카베오기 하권에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10장에 먼저 기록되고, 리시아스의 공격은 11장에 등장합니다. 또한 상권 6장 28–63절에는 새 왕 안티오코스 5세 때 리시아스와 왕의 군대가 유대를 공격했다가 평화 협상을 하는 별도의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따라서 하권 11장의 전투와 편지들이 상권의 어느 사건과 정확히 하나씩 맞아떨어지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하권의 저자가 사건들을 주제에 따라 묶어 전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 그 구체적인 편집 과정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한 장의 편지가 아니라, 계속되는 대화였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강한 군대가 패배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유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허락할지를 결정하던 권력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각각의 정치적 결정을 직접 명령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서의 모든 조항을 곧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의 흐름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시작된 변화가 사람들의 현실적인 결정을 통해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11장의 마지막 편지에서 로마 사절들은 유대 사람들에게 서둘러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들이 안디옥으로 가는 중이니, 유대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코끼리 80마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온 이가 말을 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대신 자기 공동체를 대표하여 의견을 전달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적군이 유대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유대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사절들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이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삶에 관한 문제를 스스로 말하고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11장은 바로 그 열린 길 위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