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는 하나님
신명기 15장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문장이 등장합니다.
4절에서 모세는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 가운데 궁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일곱 절 뒤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 가운데서 궁핍한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제가 당신에게 명령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과 가난한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어떻게 같은 가르침 안에 있을 수 있을까요?
신명기 15장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손입니다. 빚을 돌려받을 권리를 쥔 손, 궁핍한 사람에게 열어야 하는 손, 자유롭게 떠나는 종에게 양식과 재산을 건네는 손입니다.
이 장이 묻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그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일곱 해마다 빚을 면제하라 — 갚을 권리가 있어도 내려놓아야 할 때
빚을 면제하는 해는 누구의 해인가
모세는 일곱 해가 끝날 때마다 빚을 면제하라고 명령합니다.
「면제에 관한 규정은 이러합니다. 모든 채권자는 자기가 이웃에게 빌려준 것을 면제해야 합니다. 자기 이웃과 자기 형제에게 갚으라고 독촉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야훼를 위한 면제가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15:2 · 본디새김
이 규정에서 정확히 무엇이 면제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한 가지 읽기는 일곱째 해가 되면 해당 채무 자체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면제의 해 동안 채무 상환을 강요할 수 없도록 추심을 중단하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기본 의미와 2절의 독촉 금지는 두 읽기 모두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만 9절에서 면제의 해가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상황을 경고한다는 점은, 채권자가 실질적인 손실을 우려할 만한 제도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영구적인 채무 소멸인지 일정 기간의 추심 중단인지는 이 장의 표현만으로 완전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빚을 빌려준 사람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토지와 농산물, 가축이 생계의 중요한 기반인 사회를 전제로 합니다. 흉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빚을 진 사람이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지고, 결국 자기 가족의 생계와 노동의 자유까지 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 규정은 그런 상황에서 채권자의 청구권이 끝없이 행사되지 못하도록 제한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개인적인 합의가 아닙니다. 빚을 면제하는 행위가 여호와야훼께 속한 질서로 선포됩니다.
출애굽기 23:10–11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 땅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전합니다. 신명기 15장은 그와 같은 일곱 해의 질서를 채무 관계에 적용합니다. 신명기 31:10–13에서는 이 면제의 해에 온 백성이 율법을 듣도록 합니다.
땅의 생산, 빚의 상환, 율법의 가르침이 모두 일곱 해라는 시간의 질서 안에 놓여 있습니다.
형제와 외국인을 구별하는 이유
3절은 외국인에게는 갚으라고 독촉할 수 있지만 형제에게 받을 것은 면제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의 「외국인」은 히브리어 노크리(נׇכְרִי)입니다. 신명기에서 이 말은 공동체 내부에 거주하며 보호받는 거류민을 가리키는 게르와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실제로 신명기 14:21은 두 부류를 나란히 언급하고, 14:29는 거류민을 경제적으로 돌보아야 할 사람들 가운데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15:3을 이스라엘 바깥 출신의 모든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가혹하게 대하라는 명령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규정은 먼저 이스라엘 내부의 형제 관계를 중심으로 채무 면제의 범위를 정합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모든 채권 관계를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땅은 어떻게 가능한가
4–6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주실 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당신 가운데 궁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차지하도록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당신에게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신명기 15:4 · 본디새김
그러나 5절은 이 전망에 중요한 조건을 붙입니다.
「다만 당신이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의 목소리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 오늘 제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경우에만 그렇습니다.」신명기 15:5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가 주시는 땅과 복, 그리고 그 복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의 순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야훼의 복은 단지 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궁핍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 빚에 종속되지 않는 사회,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까지 포함합니다.
신명기가 말하는 복은 개인의 풍요와 공동체의 상태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근거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5절의 조건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향한 것이며, 7–11절은 실제로 궁핍한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비난하는 대신 도우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손을 펴라 — 가장 위험한 것은 닫힌 마음이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왜 누군가는 가난해지는가
7절은 앞의 약속에서 현실의 한 장면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땅의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당신의 형제 중 궁핍한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당신의 궁핍한 형제에게서 손을 거두지 마십시오.」신명기 15:7 · 본디새김
하나님의 선물이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선물을 동일하게 누리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세는 그 상황에서 궁핍한 사람이 왜 가난해졌는지 먼저 조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을 발견한 이웃의 마음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마음과 손은 함께 움직입니다.
마음이 완고해지면 손이 닫힙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손이 열립니다. 모세는 사람의 내적인 태도와 실제적인 경제적 행동을 하나의 문제로 다룹니다.
「오히려 그에게 반드시 손을 펴고, 그에게 필요한 것, 곧 그에게 모자라는 것을 채울 만큼 반드시 빌려주십시오.」신명기 15:8 · 본디새김
단순히 얼마를 주었다는 사실로 의무를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궁핍한 사람에게 실제로 무엇이 부족한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움의 출발점은 주는 사람이 얼마나 적게 내놓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어떤 부족함을 겪고 있는지에 있습니다.
면제의 해가 가까울수록 더욱 빌려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돈이나 곡식을 빌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채권자가 계산해 보니 곧 일곱째 해가 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일곱째 해, 면제의 해가 가까워졌다』라는 악한 생각을 품어, 당신의 궁핍한 형제를 인색한 눈으로 보고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그에게 주지 않으면 그가 당신을 두고 여호와야훼께 부르짖고, 당신에게 죄가 있게 될 것입니다.」신명기 15:9 · 본디새김
면제의 해는 궁핍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채권자가 손실을 피하려고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면, 정작 가난한 사람은 면제의 해가 가까워질수록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사람을 돕지 않을 이유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법의 목적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마음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궁핍한 형제를 도와야 할 이웃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손실을 가져올 위험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궁핍한 사람의 부르짖음은 누구에게 향하는가
9절의 「그가 당신을 두고 여호와야훼께 부르짖고」라는 표현은 출애굽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3:7–9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십니다.
신명기 15장에서는 그 역할이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이 억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과거에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기 형제의 부르짖음이 여호와야훼께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궁핍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
11절은 마침내 처음의 역설로 돌아옵니다.
「그 땅 가운데서 궁핍한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제가 당신에게 명령합니다. 『당신의 땅에서 당신의 형제, 곧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반드시 손을 펴십시오.』」신명기 15:11 · 본디새김
궁핍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현실은 도움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계속 도와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 말씀은 가난의 지속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동안 도움의 책임도 끝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4절과 11절의 긴장도 여기서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궁핍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를 바라보되, 그 모습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 눈앞의 궁핍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의 「인색한 눈」에 대해 히브리어 원문은 눈이 나쁘게 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단지 재산을 아끼는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입니다.
종을 자유롭게 내보내라 — 자유를 주되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
빚을 놓아주는 일에서 사람을 놓아주는 일로
12절에서는 새로운 규정이 시작됩니다.
「당신의 형제인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당신에게 팔려 와서 여섯 해 동안 당신을 섬기면, 칠 년째에는 그를 자유롭게 하여 당신 곁에서 내보내십시오.」신명기 15:12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의 법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노동력을 일정 기간 다른 사람에게 종속시키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레위기 25:39–43도 가난해진 이스라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경우를 다룹니다.
물론 고대의 이런 노동 종속 관계를 현대의 일반적인 고용계약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노동하는 사람의 자유가 제한되고, 주인과 종 사이에 실질적인 권력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5장은 이러한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동족인 종의 복무 기간에 한계를 두고, 자유롭게 내보낼 때 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를 명령합니다.
오랫동안 섬겼다는 사실이 사람을 영구히 소유할 권리를 주지는 않습니다.
자유만 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13절에서 모세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를 자유롭게 하여 당신 곁에서 내보낼 때, 빈손으로 내보내지 마십시오.」신명기 15:13 · 본디새김
이 명령은 종의 해방을 단순한 신분의 변화에서 실제 생활의 문제로 옮겨 놓습니다. 종살이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무런 재산도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노동을 종속시켜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는 그런 가능성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지만, 해방되는 사람에게 재산을 주어야 한다는 명령은 자유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당신의 양과 염소 떼에서, 당신의 타작마당에서, 당신의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반드시 넉넉히 주십시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으로 주신 것에서 그에게 주십시오.」신명기 15:14 · 본디새김
양과 염소는 가축의 재산이며, 타작마당은 곡식의 수확을, 포도주 틀은 포도 생산의 결과를 나타냅니다. 주인은 종을 내보내면서 자신의 생산 기반에서 나온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주는 것은 오직 자신이 만들어 낸 부를 아낌없이 베푸는 자선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미 여호와야훼께 복으로 받은 것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종에게 주어야 할 몫은 주인이 자유롭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을 때 선택적으로 덧붙이는 선물이 아닙니다. 자유롭게 내보내라는 명령에 포함된 의무입니다.
빈손이라는 말에 담긴 출애굽의 기억
15절은 이 명령의 근거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당신이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속량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제가 오늘 당신에게 이 일을 명령합니다.」신명기 15:15 · 본디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이 단순히 이집트에서 탈출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종이었으며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셨다는 관계의 변화를 기억하게 합니다.
13절의 「빈손으로 내보내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출애굽기 3:21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 빈손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2:35–36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은과 금과 옷을 얻어 떠나는 모습을 전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누군가 종을 자유롭게 내보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도 자신이 경험한 해방의 방식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여기서 출애굽은 먼 과거의 기념할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칠 년째」는 앞에서 말한 공동체 전체의 채무 면제 연도와 반드시 동일하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12절의 직접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여섯 해 동안 섬겼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21:2에도 여섯 해를 섬기고 일곱째에 자유롭게 되는 규정이 나옵니다. 신명기는 이 원칙을 설명하면서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명시적으로 포함합니다. 출애굽기 21:7–11의 여종에 관한 별도 규정과 비교하면, 두 법률이 여종의 지위와 해방 조건을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이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 선택과 종속의 긴장
사랑하기 때문에 남겠다는 종
16절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가 당신과 당신의 집안을 사랑하고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그에게 좋아서, 당신에게 『저는 주인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신명기 15:16 · 본디새김
신명기는 이 경우 송곳으로 귀를 문에 대고 뚫는 절차를 규정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평생 그 주인의 종이 됩니다. 여종에게도 같은 절차가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종이 남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지만, 고대의 종속 관계를 오늘날의 완전히 대등하고 자유로운 고용관계처럼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이 제한된 사람에게 남을 자유와 떠날 자유가 어느 정도 같은 무게를 가졌는지, 본문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또한 「평생 당신의 종」이라는 규정은 앞에서 강조한 자유의 원칙과 분명한 긴장을 만듭니다. 신명기 15장은 모든 형태의 종속 관계가 사라진 사회를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사회 구조 안에서 해방과 자발적인 잔류를 함께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긴장을 없애 버리거나, 본문이 말하는 범위를 넘어 이 관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법의 기본 방향은 여전히 분명합니다. 종에게 자유롭게 떠날 길이 먼저 열려 있어야 하며, 주인은 그를 내보내는 일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해방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
18절은 다시 주인을 향합니다.
「그를 자유롭게 하여 당신 곁에서 내보내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가 여섯 해 동안 당신을 섬긴 것은 품꾼의 품삯 두 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신명기 15:18 · 본디새김
여섯 해 동안 일해 온 사람을 보내는 것은 노동력을 잃는 일입니다. 게다가 양과 염소, 곡식, 포도주까지 넉넉히 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주인에게 종을 잃는 손해만 계산하지 말고, 이미 그 사람의 노동을 통해 얻은 유익도 생각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 약속은 주인이 종에게 준 재산을 하나님이 즉시 같은 금액으로 돌려주신다는 계산법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과 노동력을 움켜쥐는 데서만 안전을 찾지 말고, 여호와야훼가 주시는 복을 신뢰하며 명령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빚을 면제하는 사람이 손실을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는 종을 내보내는 사람이 손실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두 상황 모두에서 사람이 자기 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의 회복을 막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종의 봉사를 품꾼의 품삯과 비교합니다. 다만 이 수치가 정확히 어떤 임금 계산이나 노동 기간의 비교를 전제로 하는지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당시 종의 임금이나 생산성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는 없습니다.
가축의 첫 새끼를 여호와야훼께 드려라 — 내 것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왜 갑자기 제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가
19절에서 주제가 달라집니다.
「당신의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에서 태어나는 첫 새끼 가운데 수컷은 모두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십시오. 당신의 소의 첫 새끼에게 일을 시키지 말고, 당신의 양과 염소의 첫 새끼의 털을 깎지 마십시오.」신명기 15:19 · 본디새김
앞에서 모세는 채권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라고 했고, 주인에게는 종을 내보내면서 자신의 재산을 나누라고 했습니다. 이제 가축을 소유한 사람에게 그 첫 새끼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세 경우 모두 소유자가 자기 재산이나 권리를 전적으로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첫 새끼를 구별한다는 것은 가축 가운데 가장 먼저 태어난 것을 여호와야훼께 속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3:11–16에서는 첫 태생을 구별하는 규정이 이집트의 첫 태생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원에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하면서 자기 소유를 다루어야 합니다.
첫 새끼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는 이유
소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양과 염소는 털과 새끼를 통해 경제적인 유익을 줍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첫 새끼를 단지 마음속으로 거룩하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동물을 자신의 생산 활동에 이용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소유자는 하나님께 드릴 것을 자기 필요에 따라 먼저 사용한 뒤 남은 것을 바칠 수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에서,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당신의 집안과 함께 해마다 그것을 먹으십시오.」신명기 15:20 · 본디새김
신명기 14:23에도 첫 새끼를 여호와야훼 앞에서 먹는다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제물은 사람의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먹는 식사의 일부가 됩니다.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무조건 아무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용의 방식과 장소를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뜻입니다.
흠이 있는 첫 새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1절은 첫 새끼에게 흠이 있는 경우를 다룹니다.
다리를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심한 흠이 있다면 여호와야훼께 제물로 잡아 바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고기를 무조건 버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성문 안에서 그것을 먹으십시오. 가젤과 사슴을 먹듯이, 부정한 사람과 정결한 사람이 함께 그것을 먹어도 됩니다.」신명기 15:22 · 본디새김
가젤과 사슴은 신명기 14:5에서 먹을 수 있는 짐승으로 언급됩니다. 다만 제단에 바치는 제물로 규정된 가축과는 구별됩니다. 흠이 있는 첫 새끼도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식사의 고기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정한 사람과 정결한 사람」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의례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부정한 종류의 동물을 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 경계는 여전히 남습니다.
「다만 그 피는 먹지 마십시오. 그것을 물처럼 땅에 쏟으십시오.」신명기 15:23 · 본디새김
신명기 12:23은 피와 생명의 관계를 설명하며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흠이 있어 제물로 바치지 못하는 가축이라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마지막 규정은 생명에 대한 사람의 권리에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8:17–18은 소와 양과 염소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치는 일을 규정하면서 그 고기를 제사장의 몫으로 설명합니다. 반면 신명기 15:20은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먹는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신명기의 명령을 제사장에게 주어진 말로 읽어 두 규정을 함께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다른 읽기는 신명기가 가족이 참여하는 거룩한 식사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명기 15장의 문장만 보면 앞에서 가축 소유자에게 하던 명령이 자연스럽게 계속되는 것으로 읽히지만, 민수기의 제사장 몫 규정과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별도의 해석 문제가 남습니다.
맺음 — 자유롭게 떠나는 사람의 손에 무엇을 쥐여 줄 것인가
여호와야훼의 복을 기대하는 사람은 그 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도록 자신의 손을 열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가질 권리가 있는지뿐 아니라, 그 권리를 행사할 때 다른 사람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도 함께 묻습니다.
여섯 해 동안 한 집에서 종으로 지내던 사람이 자유롭게 떠나는 날입니다.
그날 주인은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단순히 문을 열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빈손으로 내보내지 마십시오.」
주인은 양과 염소 떼에서, 타작마당에서, 포도주 틀에서 넉넉히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두 여호와야훼께서 그 집에 주신 복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주인이 받은 복이 이제 자유롭게 떠나는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갑니다.
누군가는 자기 소유의 일부를 내려놓고,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 장면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자신들의 출애굽을 기억합니다. 자신들도 종이었고, 자신들도 해방되었으며, 자신들도 빈손으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베푸신 구원은 자유롭게 되었다는 선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된 사람이 살아갈 길을 열어 주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