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는 하나님

신명기 15장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문장이 등장합니다.

4절에서 모세는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일곱 절 뒤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과 가난한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어떻게 같은 가르침 안에 있을 수 있을까요?

신명기 15장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손입니다. 빚을 돌려받을 권리를 쥔 손, 가난한 사람에게 열어야 하는 손, 자유롭게 떠나는 종에게 양식과 재산을 건네는 손입니다.

이 장이 묻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그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615장 본문 읽기 →

일곱 해마다 빚을 면제하라 — 갚을 권리가 있어도 내려놓아야 할 때

신명기 15:1–6 본문 →

빚을 면제하는 해는 누구의 해인가

모세는 일곱 해가 끝날 때마다 빚을 없애 주라고 명령합니다.

「빚을 없애 주는 규정은 이렇다. 이웃에게 빌려준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빚을 없애 주어야 한다. 자기 이웃인 동족에게 갚으라고 재촉하지 마라. 여호와야훼를 위해 빚을 없애 주도록 선포되었기 때문이다.」신명기 15:2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히 빌려준 사람과 빚진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합의가 아닙니다. 빚을 없애 주는 행위가 하나님께 속한 질서로 선포됩니다.

이 규정에서 정확히 무엇을 놓아주어야 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한 가지 읽기는 일곱째 해가 되면 해당 빚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그해 동안 빚을 갚으라고 강요할 수 없도록 빚을 거두는 일을 중단하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빚을 빌려준 사람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땅과 농산물, 가축이 먹고사는 데 중요한 바탕인 사회를 전제로 합니다. 흉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빚을 진 사람이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지고, 결국 자기 가족이 먹고살 길과 일할 자유까지 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 규정은 그런 상황에서 빌려준 사람이 빚을 갚으라고 끝없이 요구하지 못하도록 제한합니다.

출애굽기 23:10–11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 땅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전합니다. 신명기 15장은 그와 같은 일곱 해의 질서를 빚을 주고받는 관계에 적용합니다. 신명기 31:10–13에서는 이 빚을 없애 주는 해에 온 백성이 율법을 듣도록 합니다.

사람이 일하고 생산하고 소유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가 있습니다.

형제와 외국인을 구별하는 이유

3절은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갚으라고 재촉할 수 있지만 동족이 진 빚은 없애 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다른 나라 사람」은 히브리어 노크리(⁨נׇכְרִי⁩)입니다. 신명기에서 이 말은 공동체 안에 살며 보호받는 거류민을 가리키는 게르와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실제로 신명기 14:21은 두 부류를 나란히 언급하고, 14:29는 거류민을 경제적으로 돌보아야 할 사람들 가운데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15:3을 이스라엘 바깥 출신의 모든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가혹하게 대하라는 명령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규정은 먼저 이스라엘 안의 동족 관계를 중심으로 빚을 없애 주는 범위를 정합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모든 빚 관계를 똑같이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땅은 어떻게 가능한가

4–6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몫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반드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신명기 15:4 · 두루새김

그러나 5절은 이 전망에 중요한 조건을 붙입니다.

「다만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따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모든 명령을 성실히 지킬 때에만 그렇게 될 것이다.」신명기 15:5 · 두루새김

따라서 4절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무조건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복, 그리고 그 복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의 순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복은 단지 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 빚에 매이지 않는 사회,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까지 포함합니다.

신명기가 말하는 복은 개인의 풍요와 공동체의 상태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근거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5절의 조건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향한 것이며, 7–11절은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비난하는 대신 도우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히브리어의 기본 의미와 2절의 재촉 금지는 두 읽기 모두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9절에서 빚을 없애 주는 해가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상황을 경고한다는 점은, 빌려준 사람이 실제 손해를 걱정할 만한 제도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빚을 영구히 없애는 일인지 일정 기간 빚을 거두지 않는 일인지는 이 장의 원문 표현만으로 완전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손을 펴라 — 가장 위험한 것은 닫힌 마음이다

신명기 15:7–11 본문 →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왜 누군가는 가난해지는가

7절은 앞의 약속에서 현실의 한 장면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의 어느 성읍에든 가난한 동족이 있으면, 그에게 마음을 모질게 먹거나 손을 움켜쥐지 마라.」신명기 15:7 · 두루새김

하나님의 선물이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선물을 똑같이 누리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세는 그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이 왜 가난해졌는지 먼저 조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을 발견한 이웃의 마음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마음과 손은 함께 움직입니다.

마음을 모질게 먹으면 손을 움켜쥡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손이 열립니다. 모세는 사람의 속마음과 실제적인 경제적 행동을 하나의 문제로 다룹니다.

「오히려 그에게 손을 활짝 펴고, 그가 필요한 것을 채울 만큼 넉넉히 빌려주어라.」신명기 15:8 · 두루새김

단순히 얼마를 주었다는 사실로 의무를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실제로 무엇이 부족한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움의 출발점은 주는 사람이 얼마나 적게 내놓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어떤 부족함을 겪고 있는지에 있습니다.

면제의 해가 가까울수록 더욱 빌려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돈이나 곡식을 빌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빌려줄 사람이 계산해 보니 곧 일곱째 해가 됩니다.

「마음속으로 『빚을 없애 주는 일곱째 해가 가까워졌다』 하는 못된 생각을 품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런 생각으로 가난한 동족을 인색하게 대하며 아무것도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는 너희를 두고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을 것이고, 너희가 그에게 주지 않은 일은 죄가 될 것이다.」신명기 15:9 · 두루새김

빚을 없애 주는 해는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빌려줄 사람이 손해를 피하려고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면, 정작 가난한 사람은 그해가 가까워질수록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사람을 돕지 않을 이유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법의 목적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마음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난한 동족을 도와야 할 이웃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손해를 가져올 위험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궁핍한 사람의 부르짖음은 누구에게 향하는가

「그는 너희를 두고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을 것이고」라는 표현은 출애굽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3:7–9에서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십니다.

신명기 15장에서는 그 역할이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이 억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기 동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궁핍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

11절은 마침내 처음의 역설로 돌아옵니다.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다. 너희 땅에 사는 가난하고 어려운 동족에게 반드시 손을 펴서 도와주어라.」신명기 15:11 · 두루새김

가난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현실은 도움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계속 도와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 말씀은 가난이 계속되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동안 도움의 책임도 끝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의 「인색하게 대하며」는 원문에서는 눈이 나쁘게 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단지 재산을 아끼는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입니다.

종을 자유롭게 내보내라 — 자유를 주되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

신명기 15:12–15 본문 →

빚을 놓아주는 일에서 사람을 놓아주는 일로

12절에서는 새로운 규정이 시작됩니다.

「너희 동족인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너희에게 종으로 팔려 와서 여섯 해 동안 일하면, 일곱째 해에는 자유롭게 하여 보내 주어라.」신명기 15:12 · 두루새김

고대 이스라엘의 법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람이 일정 기간 다른 사람에게 매여 일하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레위기 25:39–43도 가난해진 이스라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경우를 다룹니다.

물론 고대의 이런 노동 관계를 현대의 일반적인 고용계약과 똑같이 볼 수는 없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자유가 제한되고, 주인과 종 사이에 실제적인 권력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5장은 이러한 제도를 완전히 없애지는 않습니다. 다만 동족인 종이 일하는 기간에 한계를 두고, 자유롭게 보내 줄 때 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를 명령합니다.

여기서 「일곱째 해」는 앞에서 말한 공동체 전체의 빚을 없애 주는 해와 반드시 같다고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12절의 직접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여섯 해 동안 일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21:2에도 여섯 해를 일하고 일곱째에 자유롭게 되는 규정이 나옵니다.

신명기는 이 원칙을 설명하면서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분명하게 포함합니다. 출애굽기 21:7–11의 여종에 관한 별도 규정과 비교하면, 두 법률이 여종의 지위와 해방 조건을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유만 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13절에서 모세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를 자유롭게 하여 보낼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마라.」신명기 15:13 · 두루새김

이 명령은 종의 해방을 단순한 신분의 변화에서 실제 생활의 문제로 옮겨 놓습니다.

종살이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무런 재산도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먹고살기 어려워지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매여 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는 그런 가능성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지만, 해방되는 사람에게 재산을 주어야 한다는 명령은 자유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너희 양과 염소와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넉넉히 주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복으로 주신 것 가운데서 그에게 주어라.」신명기 15:14 · 두루새김

주인은 종을 보내 주면서 자신의 생산 기반에서 나온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주는 것은 오직 자신이 만들어 낸 부를 아낌없이 베푸는 자선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복으로 받은 것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종에게 주어야 할 몫은 주인이 자유롭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을 때 선택적으로 덧붙이는 선물이 아닙니다. 자유롭게 보내 주라는 명령에 포함된 의무입니다.

빈손이라는 말에 담긴 출애굽의 기억

15절은 이 명령의 근거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이 일을 명령한다.」신명기 15:15 · 두루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이 단순히 이집트에서 탈출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종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셨다는 관계의 변화를 기억하게 합니다.

13절의 「빈손으로 보내지 마라」라는 말은 출애굽기 3:21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 빈손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2:35–36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은과 금과 옷을 얻어 떠나는 모습을 전합니다.

여기서 출애굽은 먼 과거의 기념할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신명기 24:17–22에서는 거류민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추수한 밭의 일부를 남겨 두도록 명령합니다. 여기서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다는 기억이 그 명령의 근거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양과 염소는 가축의 재산이며, 곡식과 포도주는 농사를 지어 거둔 수확입니다. 원문에서는 곡식과 포도주를 얻는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을 들어 말합니다.

종이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 선택과 종속의 긴장

신명기 15:16–18 본문 →

사랑하기 때문에 남겠다는 종

16절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가 너희와 너희 집안사람들을 사랑하고 너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아서, 너희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면,」신명기 15:16 · 두루새김

주인은 종을 반드시 보내 주어야 하지만, 종 자신은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힐 수 있습니다. 신명기는 이 경우 송곳으로 귀를 문에 대고 뚫는 절차를 규정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평생 그 주인의 종이 됩니다. 여종에게도 같은 절차가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이 의식은 출애굽기 21:5–6에도 등장합니다. 신명기에서는 종이 남기를 원하는 이유를 주인과 그 집안사람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곳에서 누리는 좋은 생활로 설명합니다.

본문은 종이 남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지만, 고대의 종속 관계를 오늘날의 완전히 대등하고 자유로운 고용관계처럼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조건이 제한된 사람에게 남을 자유와 떠날 자유가 어느 정도 같은 무게를 가졌는지, 본문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또한 「평생 너희의 종」이라는 규정은 앞에서 강조한 자유의 원칙과 분명한 긴장을 만듭니다. 신명기 15장은 모든 형태의 종속 관계가 사라진 사회를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사회 구조 안에서 해방과 스스로 남는 선택을 함께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긴장을 없애 버리거나, 본문이 말하는 범위를 넘어 이 관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법의 기본 방향은 여전히 분명합니다. 종에게 자유롭게 떠날 길이 먼저 열려 있어야 하며, 주인은 그를 보내 주는 일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해방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

18절은 다시 주인을 향합니다.

「종을 자유롭게 하여 보내는 일을 아깝게 여기지 마라. 그가 여섯 해 동안 너희를 위해 한 일은, 일꾼을 고용해서 줄 돈의 두 배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신명기 15:18 · 두루새김

여섯 해 동안 일해 온 사람을 보내는 것은 노동력을 잃는 일입니다. 게다가 양과 염소, 곡식, 포도주까지 넉넉히 주어야 합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경제적인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인은 지금까지 종의 노동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이제 떠나는 사람에게 합당한 몫을 주어야 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라는 약속은 주인이 종에게 준 재산을 하나님이 즉시 같은 금액으로 돌려주신다는 계산법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과 노동력을 움켜쥐는 데서만 안전을 찾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신뢰하며 명령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빚을 없애 주는 사람이 손해를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는 종을 보내 주는 사람이 손해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두 상황 모두에서 사람이 자기 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의 회복을 막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도 일꾼에게 줄 돈의 두 배라는 비교 표현이 나옵니다. 다만 이 수치가 정확히 어떤 임금 계산이나 노동 기간의 비교를 전제로 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당시 종의 임금이나 일의 성과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가축의 첫 새끼를 여호와야훼께 드려라 — 내 것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신명기 15:19–23 본문 →

왜 갑자기 제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가

19절에서 주제가 달라집니다.

앞에서 모세는 빌려준 사람에게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라고 했고, 주인에게는 종을 보내 주면서 자신의 재산을 나누라고 했습니다. 이제 가축을 소유한 사람에게 그 첫 새끼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세 경우 모두 소유자가 자기 재산이나 권리를 전적으로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첫 새끼를 구별한다는 것은 가축 가운데 가장 먼저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3:11–16에서는 처음 태어난 것을 구별하는 규정이 이집트에서 처음 태어난 것들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원에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하면서 자기 소유를 다루어야 합니다.

첫 새끼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는 이유

「너희 소와 양과 염소의 첫 새끼 가운데 수컷은 모두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바치도록 따로 구별하여라. 소의 첫 새끼에게 일을 시키지 말고, 양과 염소의 첫 새끼의 털을 깎지 마라.」신명기 15:19 · 두루새김

소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양과 염소는 털과 새끼를 통해 경제적인 유익을 줍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첫 새끼를 단지 마음속으로 거룩하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동물을 자신의 생산 활동에 이용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소유자는 하나님께 드릴 것을 자기 필요에 따라 먼저 사용한 뒤 남은 것을 바칠 수 없습니다.

「해마다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너희 집안사람들과 함께 그 첫 새끼를 먹어라.」신명기 15:20 · 두루새김

신명기 14:23에도 첫 새끼를 하나님 앞에서 먹는다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제물은 사람의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먹는 식사의 일부가 됩니다. 하나님께 바치도록 따로 구별한다는 것은 무조건 아무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용의 방식과 장소를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뜻입니다.

흠이 있는 첫 새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1절은 첫 새끼에게 흠이 있는 경우를 다룹니다.

다리를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몸에 심한 흠이 있다면 하나님께 제물로 잡아 바칠 수 없습니다.

「그런 짐승은 너희가 사는 성읍에서 먹어라. 가젤과 사슴을 먹을 때처럼 부정한 사람과 정결한 사람이 함께 먹어도 된다.」신명기 15:22 · 두루새김

가젤과 사슴은 신명기 14:5에서 먹을 수 있는 짐승으로 언급됩니다. 다만 제단에 바치는 제물로 규정된 가축과는 구별됩니다. 흠이 있는 첫 새끼도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식사의 고기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정한 사람과 정결한 사람」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의례상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가리킵니다. 부정한 종류의 동물을 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 경계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러나 그 피는 먹지 마라. 물처럼 땅에 쏟아라.」신명기 15:23 · 두루새김

신명기 12:23은 피와 생명의 관계를 설명하며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흠이 있어 제물로 바치지 못하는 가축이라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가축을 기르고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8:17–18은 소와 양과 염소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치는 일을 규정하면서 그 고기를 제사장의 몫으로 설명합니다. 반면 신명기 15:20은 「너희 집안사람들과 함께」 먹는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신명기의 명령을 제사장에게 주어진 말로 읽어 두 규정을 함께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다른 읽기는 신명기가 가족이 참여하는 거룩한 식사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명기 15장의 문장만 보면 앞에서 가축 소유자에게 하던 명령이 자연스럽게 계속되는 것으로 읽히지만, 민수기의 제사장 몫 규정과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별도의 해석 문제가 남습니다.

맺음 — 자유롭게 떠나는 사람의 손에 무엇을 쥐여 줄 것인가

신명기 15:1–23 본문 →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를 바라보되, 그 모습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 눈앞의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는 사람은 그 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도록 자신의 손을 열어야 합니다.

신명기 15장의 제도를 오늘의 금융이나 노동제도에 그대로 옮겨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 사회의 빚 관계와 고용 구조는 본문이 전제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 구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섯 해 동안 한 집에서 종으로 지내던 사람이 자유롭게 떠나는 날입니다.

그날 주인은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단순히 문을 열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를 자유롭게 하여 보낼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마라.」 주인은 양과 염소와 곡식과 포도주를 넉넉히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 집에 주신 복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주인이 받은 복이 이제 자유롭게 떠나는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갑니다.

누군가는 자기 소유의 일부를 내려놓고,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 장면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자신들의 출애굽을 기억합니다. 자신들도 종이었고, 자신들도 해방되었으며, 자신들도 빈손으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은 자유롭게 되었다는 선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된 사람이 살아갈 길을 열어 주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신명기 15장은 그 길을 여는 일이 거창한 선언보다 가까운 이웃에게 펼치는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