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기 (그리스어)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6–8장 · 뒤바뀐 처지

목숨을 청하는 왕후와 목숨을 구걸하는 하만

왕은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까지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요구한 것은 왕의 영토도, 재물도, 권력도 아니었습니다.

왕의 약속은 엄청났지만, 왕후가 실제로 요청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바로 이 모순이 에스테르기 7장의 문을 엽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왕후가 왕이 승인한 명령 때문에 죽을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주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죽이려는 결정이 자신의 권한으로 내려졌다는 사실은 아직 대화의 중심에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이제 이 모순을 왕 앞에 드러내야 합니다.

이 장은 누가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이고, 누가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뒤바꾸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더의 신중한 말, 왕의 분노, 하만의 절박한 행동, 한 내시의 보고가 서로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에스더의 용기뿐 아니라 왕권의 불안정함과 인간의 판단이 가진 한계도 함께 드러납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77장 본문 읽기 →

나라의 절반 대신 자기 목숨을 청하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1–3 본문 →

왕과 하만은 에스더가 마련한 두 번째 술잔치에 참석합니다.

앞서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 특별한 호의를 얻었지만, 자신의 진짜 청을 바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잔치에서도 청을 밝히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와 달라고 했습니다(5:3–8). 이제 왕은 세 번째로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습니다.

둘째 날 술자리에서 왕이 에스더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냐, 에스더 왕후? 네가 간청하는 것은 무엇이며, 네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냐?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네게 주겠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2 · 본디새김

‘나라의 절반’이라는 표현은 왕이 실제로 국토의 절반을 양도하겠다는 구체적인 계약이라기보다, 왕후의 청을 크게 받아들이겠다는 궁정의 과장된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의 말에는 자신의 권력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나라의 절반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제시합니다.

에스더가 대답했다. 「제가 폐하 앞에서 은혜를 얻었다면, 제 간청대로 제 목숨을 살려 주시고, 제 요청대로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3 · 본디새김

「제가 폐하 앞에서 은혜를 얻었다면」은 에스더가 처음 왕 앞에 나아갔을 때부터 반복된 언어입니다(5:2, 8). 왕후라는 지위가 그녀에게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왕의 호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에스더는 처음부터 하만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이 죽을 위기에 놓여 있음을 알립니다. 왕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궁정의 관리가 저지른 악행이 아니라, 자기 앞에 있는 왕후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 왕에게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본디새김의 문면에서는 자기 생명의 위협을 먼저 알린 뒤, 그 위협이 자기 백성 전체에 닥친 일임을 설명하는 순서가 더욱 뚜렷합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왕권을 나누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왕의 권력이 자기 백성의 생명을 빼앗는 데 사용되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번역의 바탕이 된 그리스어 본문은 두 번째 청을 호 로고스 무, 곧 ‘나의 말’이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다른 그리스어 본문 전승에는 호 라오스 무, 곧 ‘나의 백성’이 있으며, 히브리어 본문도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민족을 함께 구해 달라는 표현입니다. ‘제 백성’으로 읽으면 에스더는 첫 문장에서 이미 두 가지 요청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자신의 생명과 자기 민족의 생명을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반면 본디새김이 따르는 ‘제 말’로 읽으면, 에스더는 우선 자신의 생명을 언급하고 이어서 자신이 하려는 말을 받아 달라고 청합니다. 그 말의 내용은 다음 절에서 드러납니다.

왕후가 자신을 '팔린 백성'이라고 부르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4 본문 →

에스더는 왜 자신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저와 제 백성이 팔려 넘겨져 멸망과 약탈과 종살이를 겪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와 저희 자녀들은 남종과 여종이 되도록 팔렸고, 저는 못 들은 체했습니다. 그 모함꾼은 폐하의 궁정에 어울리지 않는 자이기 때문입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4 · 본디새김

에스더는 자신을 왕후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놓고, 죽음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녀는 왕후이지만, 왕궁 밖의 유대인들과 별개의 운명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과 백성의 목숨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자신의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말라고 했고, 에스더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2:10, 20). 그러나 이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던 침묵을 끝냅니다.

왕후를 사랑하는 것과 유대인들을 죽이도록 허락하는 일이 더 이상 서로 양립할 수 없게 됩니다.

‘팔려 넘겨졌다’는 말의 의미

에스더는 백성이 ‘팔렸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하만이 왕에게 유대인들을 없애도록 건의하면서 막대한 은을 왕의 창고에 바치겠다고 제안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3:8–11). 에스더의 입장에서 그 일은 자기 백성과 자녀들의 생명이 거래의 대상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멸망과 약탈은 이미 내려진 유대인 말살 명령의 내용과 직접 연결됩니다(3:13). 종살이는 그리스어 본문이 함께 나열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7:4의 말을 유대인 전체가 이미 실제로 노예로 팔려 갔다는 역사적 서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더는 그들에게 내려진 처분과 닥쳐오는 위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름을 말하지 않은 원수

에스더는 아직 하만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규정합니다.

그는 왕의 궁정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만은 왕의 높은 신임을 받는 인물이지만, 바로 그 지위를 이용해 왕후와 그녀의 백성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에스더는 왕이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궁정과 권위의 문제로 하만의 악행을 제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이 부분의 논리가 다르게 전개됩니다. 유대인들이 단지 남종과 여종으로 팔리는 정도였다면 자신이 침묵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나옵니다. 반면 본디새김이 따르는 그리스어 본문은 멸망과 약탈과 종살이를 나란히 제시한 뒤, 「저는 못 들은 체했습니다」라고 서술합니다. 그리스어 파레쿠사(παρακούω)는 ‘흘려들었다’, ‘듣고도 외면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표현이 앞뒤 문장과 맺는 논리적 관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무엇을, 왜 못 들은 체했다는 것인지 그리스어 문면만으로 매끄럽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의 가정문을 참고하면 침묵에 관한 발언이라는 점은 이해되지만, 그 가정을 그리스어 본문에 그대로 집어넣어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근거로 에스더가 과거에 백성의 고난을 알면서도 고의로 외면했다는 심리적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모함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입니다. 이 단어는 중상하는 사람, 고발자, 적대자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후 성경의 그리스어에서 악마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하만이라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악한 하만입니다」 — 왕이 승인한 일의 실체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5–6 본문 →

왕은 에스더의 말을 듣고 묻습니다.

왕이 말했다.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른 자가 누구냐?」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5 · 본디새김

유대인들을 없애라는 명령은 왕의 권한으로 내려졌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그 일을 제안했고, 왕은 자신의 인장 반지를 넘겨주었습니다(3:10–11). 그러므로 하만의 계획을 왕과 완전히 무관한 독립적인 범죄로 볼 수 없습니다.

왕의 놀라움은 그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워 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악의가 왕의 권력을 통해 제국 전체에 적용되는 명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왕권이 자신이 보호한다고 여겼던 왕후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에스더는 마침내 이름을 밝힙니다.

에스더가 말했다. 「원수인 자, 바로 이 악한 하만입니다.」 하만은 왕과 왕후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6 · 본디새김

지금까지 하만은 왕의 곁에서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그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그 자신이 왕과 왕후의 판단을 기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조금 전까지 그는 왕과 함께 왕후의 잔치에 참석한 특별한 손님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왕과 왕후를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하만은 자신이 제거하려 했던 집단에 왕후가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왕후가 왕 앞에서 자신을 원수라고 고발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왕이 조서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만이 처음 왕에게 건의할 때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고, 다른 민족과 법이 다르며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 백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3:8). 따라서 왕이 그 백성의 정체와 자신의 왕후가 그들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연결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왕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무엇을 몰랐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구해 달라던 에스더, 목숨을 구걸하는 하만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7–8 본문 →

왕은 술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으로 나갑니다.

왕은 술잔치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으로 나갔다. 하만은 왕후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7 · 본디새김

에스더는 자기 백성을 위협하는 명령 때문에 목숨을 청했습니다. 하만은 그 명령을 추진한 사람으로서 이제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 합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왕후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왕에게서 특별한 신임을 받고 있던 사람에게 왕후의 호의가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에스더가 하만의 간청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돌아왔을 때 본 장면

왕이 정원에서 돌아왔다. 하만은 침상 위에 엎드려 왕후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그러면 내 집에서 내 아내까지 겁탈하려 하느냐?」 하만은 그 말을 듣고 얼굴에 당혹감을 드러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8 · 본디새김

하만의 행동과 왕의 해석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생깁니다.

본문의 서술자는 하만이 왕후를 겁탈하려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왕후에게 간청하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하만이 자신을 살리려고 취한 행동이 왕의 눈에는 또 하나의 중대한 잘못으로 보였습니다.

하만은 왕후의 생명을 위협하는 명령을 추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왕 앞에서 왕후의 몸을 침해하려는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듣습니다.

왕은 「내 집에서 내 아내까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왕의 분노는 유대인 전체의 생명에 관한 문제에서 자신의 왕후와 자신의 집이 침해당했다는 문제로도 향합니다.

이 장면은 왕이 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궁정 권력의 판단이 감정과 현장의 인상에 따라 얼마나 급격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얼굴에 드러난 몰락

본디새김이 따르는 그리스어 본문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처지를 통제할 수 없는 하만의 모습이 그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는 왕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상황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하만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왕이 왜 정원으로 나갔는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을 수도 있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석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고대 궁정의 술잔치에는 기대거나 비스듬히 앉는 데 쓰이는 침상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의 침상도 잔치 자리와 관련된 가구입니다. 왕이 실제로 하만의 자세를 보고 왕후를 공격하려 한다고 오해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미 분노한 왕이 하만의 행동을 최악의 의미로 해석하며 그를 몰아붙이는 말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어느 쪽인지 판정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에스더기 7:8에서는 왕의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하만의 얼굴을 가립니다. 반면 그리스어 에스테르기에서는 하만이 왕의 말을 듣고 얼굴에 충격과 당혹감을 드러냅니다. 전자는 궁정 사람들이 하만에게 취하는 행동에 초점이 있고, 후자는 하만 자신에게 나타난 반응에 초점이 있습니다.

내시가 가리킨 나무 — 하만 자신의 계획이 증거가 되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9 본문 →

왕이 하만에게 분노한 바로 그때, 내시 부가탄이 나서서 말합니다.

내시 가운데 하나인 부가탄이 왕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폐하에 관해 말씀드린 모르드개에게 쓰려고 하만이 나무도 준비했습니다. 하만의 집에 쉰 규빗 높이의 나무가 세워져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를 그 나무에 매달아라.」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9 · 본디새김

부가탄은 단순히 하만의 집에 처형 도구가 있다고 보고하지 않습니다. 그 도구가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는지, 그 사람이 왕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를 함께 말합니다.

모르드개는 왕을 위협하는 음모를 알렸던 사람입니다(2:21–23). 왕은 이제 그에게 영예를 베풀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6:10–11). 그런데 하만은 바로 그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한 나무를 세워 놓았습니다.

하만의 행동은 이제 왕후의 백성을 위협한 일뿐 아니라, 왕에게 충성을 보인 사람을 죽이려 한 일로도 드러납니다.

그가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든 도구가, 이제 그의 악의를 입증하는 물적 증거처럼 왕 앞에 제시됩니다. 부가탄의 보고에 이어 곧바로 처형 명령이 나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죽게 될 장소와 도구를 미리 마련한 셈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쉰 규빗의 높이는 단순한 처형에 필요한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이 수치는 하만의 적의가 얼마나 과장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강조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단지 없애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높이 세운 나무를 통해 그가 당할 수치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구조물의 구체적인 형태나 처형 방식을 오늘날의 십자가형과 동일하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7:10은 하만이 그 나무에 매달렸다고 서술합니다.

왕의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백성의 위험도 끝났는가?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10 본문 →

본문은 하만의 처형을 매우 짧게 기록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쓰려고 준비해 둔 나무에 매달렸다. 그제야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10 · 본디새김

본문은 ‘그제야 유대인들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제야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고 말합니다.

하만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왕의 이름으로 발행되고 인장이 찍힌 유대인 말살 명령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 장에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악한 권력자가 사라지는 것과 그가 만들어 놓은 악한 질서가 사라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하만은 왕의 권력을 이용해 자기 뜻을 실현하려 했고, 왕은 그에게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제 왕은 하만을 제거했지만, 그가 행사하도록 허락했던 권력의 결과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름 없이 등장하는 장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6장은 주께서 왕의 잠을 거두셨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7장에는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는 문장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 이미 에스더는 죽음의 위험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자기 민족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그리스어 에스테르기 4장의 에스더의 기도).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 자신의 백성을 위해 간청하는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7장은 그 기도를 다시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도했던 사람이 이제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물론 본문은 에스더의 모든 선택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잔치의 시간과 장소, 발언의 순서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주셨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책 전체의 문맥에서 보면, 기도와 인간의 결단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왕의 분노와 처형 명령을 하나님의 공의와 곧바로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왕은 앞서 하만의 계획을 승인했던 인물이고, 이번에도 왕후를 침해하려 한다는 자신의 판단에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본문은 그를 완전하게 정의로운 재판관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의 신앙적 시각에서 이 사건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연결하여 읽을 수 있지만, 그 연결을 설명한다고 해서 이야기 속 인물들의 모든 감정과 행동에 하나님의 승인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26:27은 함정을 파는 사람이 그곳에 빠지고 돌을 굴리는 사람에게 그 돌이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에스테르기 7:10은 이 지혜의 가르침과 매우 가깝게 연결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에스테르기가 그 잠언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본문은 악한 계획이 그 계획을 세운 사람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주제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에스테르기 7장이 모든 악인은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벌을 받는다고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은 특정한 이야기 속에서 악한 계획이 어떻게 뒤집혔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만이 준비한 나무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7:1–10 본문 →

하만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한 것이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독자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하만의 실패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너무나 쉽게 결정하려 했던 사람이 자기 생명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용기를 내라고 요구하기보다, 그런 위험을 만들어 낸 권력과 명령이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에스더가 용감했다는 사실이 왕과 하만의 책임을 작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살아 있습니다. 그녀가 왕에게 처음 요청했던 자신의 목숨은 이제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의 목숨에 관한 청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에스테르기 7장은 모든 사람이 안도하는 축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왕의 분노가 가라앉는 것으로 끝납니다.

왕궁에는 다시 침묵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이 실제로 마지막까지 독자의 시선에 남겨 두는 것은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쓰려고 준비한 나무입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위해 세운 그 나무에, 그것을 세운 사람이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왕의 분노가 비로소 가라앉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