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기 (그리스어)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6–8장 · 뒤바뀐 처지

악인이 남긴 명령은 살아 있었습니다

하만은 죽었습니다. 그의 재산은 에스더에게 넘어갔고, 왕의 반지는 모르드개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왕궁의 권력은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다시 왕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원수는 제거되었고, 그녀를 도와줄 모르드개까지 높은 지위에 올랐는데,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요?

답은 하만이 남긴 문서에 있습니다.

하만은 죽었지만, 그가 왕의 이름으로 발행했던 유대인 말살 명령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명령을 내리도록 부추긴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할 사람들은 제국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악행이 권력과 제도를 통해 퍼져 나가면, 그 사람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그 악행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 장에는 특별히 두 종류의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에스더가 왕 앞에서 직접 하는 간청이고, 다른 하나는 왕의 이름으로 온 제국에 공포되는 칙령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말하고, 왕의 칙령은 제국의 평화와 정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두 말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를 보여 줍니다. 에스더는 백성이 멸망하는데 자신만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왕의 칙령은 모든 잘못을 하만에게 돌리면서 왕의 선의를 강조합니다.

읽는 시간 25분소단락 118장 본문 읽기 →

왕의 반지는 새로운 주인을 찾았지만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2 본문 →

8장은 「바로 그날」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만이 처형된 바로 그날, 아닥사스다 왕은 하만의 모든 재산을 에스더에게 줍니다. 또한 에스더가 모르드개를 자신의 친족이라고 밝히자, 모르드개를 왕 앞으로 부릅니다.

이전에는 왕후라는 지위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에스더는 두 관계를 감추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힌 데 이어, 모르드개가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도 왕에게 알립니다.

왕은 하만에게서 거두어들인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줍니다.

에스테르기 3:10에서 왕이 하만에게 반지를 넘겨주었을 때, 하만은 그 권한을 이용해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는 문서를 발행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반지가 상징하는 것은 왕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입니다. 누가 그 반지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왕의 이름으로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재산을 받은 사람은 에스더이고, 그것을 관리하도록 맡기는 사람도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왕의 결정에 따라 수동적으로 보호받는 사람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제국에 흩어져 있는 유대 사람들은 아직 아무런 새로운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알려진 마지막 왕의 명령은 여전히 자신들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궁 안에서 권력이 바뀌었다는 사실과, 왕궁 밖의 백성이 안전해졌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재산도 지위도 아닌 명령의 철회를 원한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3–6 본문 →

본문은 에스더가 다시 왕에게 말하며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고 전합니다.

그녀는 하만의 악행과 유대인들에게 행한 모든 일을 되돌려 달라고 청합니다. 왕이 금 홀을 내밀자 에스더는 일어나 왕 앞에 섭니다.

금 홀은 5장에서 에스더가 처음 왕에게 나아갔을 때도 등장했습니다(5:2). 이제 에스더는 왕의 총애를 이미 확인했고, 하만도 제거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왕의 허락을 받아 말해야 합니다.

그녀는 왕후이지만 왕의 명령을 자신의 권한만으로 없앨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반지를 받았어도 이미 온 제국에 발송된 명령을 저절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더가 말했다. 「폐하께서 좋게 여기시고 제가 은혜를 얻었다면, 하만이 보낸 문서들이 철회되도록 전갈을 보내 주십시오. 그 문서들은 폐하의 나라 안에 있는 유대 사람들이 멸망하도록 쓰인 것입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5 · 본디새김

단순히 하만을 처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가 만들어 놓은 결과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제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제가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제 고향이 멸망하는데 제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6 · 본디새김

7장에서 에스더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생존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백성의 고통을 ‘보는’ 문제이고, 두 번째 질문은 그 멸망 속에서 자신이 ‘살아남는’ 문제입니다.

그녀는 왕후라는 신분을 얻었지만, 자기 백성과 그들의 운명을 자신의 정체성에서 지워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백성은 멀리 떨어진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 자체를 생각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도 다른 사람들의 위험을 자신의 문제로 남겨 둡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시 왕 앞에 엎드릴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모습은 모세가 이집트 왕실에서 자랐으면서도 억압받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렸던 장면(출애굽기 2:11–12)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사람의 상황과 행동은 다르지만, 궁정의 지위가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지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왕이 할 수 없는 일과 새롭게 허락한 일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7–8 본문 →

왕의 대답은 에스더의 간청과 묘한 간격을 보여 줍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말했다. 「내가 하만이 가진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선물로 베풀었으며, 그가 유대 사람들에게 손을 댔기 때문에 그를 나무에 매달았는데,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느냐?」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7 · 본디새김

왕의 답변은 문제를 개인에 대한 보상과 처벌의 차원에서 보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반면 에스더는 제국 전체에 남아 있는 위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어서 해결의 길을 열어 줍니다.

「너희도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내 반지로 인을 쳐라. 왕의 명령으로 쓰이고 내 반지로 인이 찍힌 글에는 누구도 거슬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8 · 본디새김

왕은 자신의 이름으로 발행된 명령이 거스를 수 없는 권위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권위 때문에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기존 명령도 문제가 됩니다.

에스더가 요구한 것은 앞서 발송된 문서의 철회였습니다. 왕이 허락한 것은 새로운 문서의 발행이었습니다.

새로운 명령은 기존의 문제를 간단히 없애는 대신 그에 맞서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 장의 그리스어 칙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뒤에 나오는 왕의 편지는 하만이 보낸 문서들을 따르지 말라고 명시합니다(8:117).

왕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의 왕실 문서를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긴장을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한 번 내려진 악한 명령은 그것을 내릴 때보다 바로잡을 때 훨씬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왕이 반지를 건넨 것으로 모든 일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서를 작성하고 제국 전역에 전달하며 그 문서를 실제로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왕궁 안의 대화에서 온 제국의 행정과 정치의 세계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에스더기에서도 왕의 이름으로 인장이 찍힌 문서는 되돌릴 수 없다는 논리가 제시됩니다(8:8). 다니엘 6:8, 12, 15에도 메대와 페르시아의 법령을 변경할 수 없다는 궁정의 관념이 등장합니다. 이 두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 왕의 권력이 막강하면서도 자신의 공식 명령에 묶이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다만 이를 실제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법령이 역사적으로 절대 철회될 수 없었다는 확정적인 법률 규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문서가 온 제국으로 퍼져 나가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9–12 본문 →

새 명령은 첫째 달인 니산월 스무사흗날 작성됩니다.

왕의 서기관들이 불려 오고,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백스물일곱 태수령에 명령이 전달됩니다. 각 지방의 말로 문서를 작성하고, 왕의 이름으로 인장을 찍어 전달자들을 통해 보냅니다.

3장에서 이 행정망은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8장에서는 같은 행정망이 유대인들을 보호할 새로운 명령을 전달합니다.

왕의 인장, 서기관, 지방 관리, 문서 전달자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는 인물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온 제국에 전달하는 체계의 일부입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국가의 행정 체계가 이제 그 사람들의 생존을 허용하고 보호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이제 자신들의 법을 지킬 수 있다

그 문서에서 왕은 유대 사람들에게 도시마다 자신들의 법을 따르라고 명령했다. 또한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들의 적들과 자신들에게 맞서는 자들을 원하는 대로 다루되,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 · 본디새김

하만은 유대인들의 법이 다른 민족들의 법과 다르고, 그들이 왕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3:8). 유대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 자체를 제국에 대한 위협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제거해야 할 위험의 증거로 제시되었던 것이 이제는 허용되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로 제시됩니다.

유대인들의 법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바뀐 것은 그 법을 바라보는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방어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평소처럼 살아도 된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습니다. 실제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새로운 문서가 발행되었다고 해서 유대인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본디새김의 「원하는 대로 다루되」라는 표현은 상당히 넓은 재량을 나타내지만, 문맥상 자신들에게 맞서는 적들과의 충돌을 다루는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비유대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으로 확대해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표현이 폭력의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놓는다는 사실도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새 명령은 단순한 평화 선언이 아닙니다. 충돌이 일어날 경우 유대인들이 무력으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는 문서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3:12에 따르면 하만의 첫 번째 명령이 작성된 날은 같은 달 열사흗날이었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문서는 첫 번째 문서가 발행된 지 열흘 뒤에 작성된 셈입니다. 히브리어 에스더기 8:9는 이 날짜를 셋째 달 시완월 스무사흗날로 기록합니다. 그리스어 본문에서는 문서가 훨씬 이른 시점에 작성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8:9의 그리스어 본문은 한 가지 세부 사항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명령한 모든 내용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그 명령을 내린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서 왕이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문서 작성 권한을 주었고 모르드개가 왕의 반지를 받았으므로, 새 명령이 그들에게 위임된 권한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8:9의 문법만으로 모르드개가 단독으로 모든 내용을 지시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왕은 자신이 속았다고 말한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01–109 본문 →

8:101부터 8:124까지는 두 번째 칙령의 전문입니다. 다른 판본에서는 흔히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추가 부분 E’로 구분하지만, 본디새김은 이 편지를 이야기 속 해당 위치에 놓았습니다.

왕의 편지에 적혀 있다는 사실과, 이야기의 서술자가 그것을 독립적인 사실로 확인해 준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 문서는 왕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고 정당화하는지 보여 주는 문서입니다. 따라서 왕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앞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비교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칙령은 처음부터 하만의 이름을 꺼내지 않습니다.

「많은 이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이들의 지극한 친절로 더욱 자주 존귀한 대접을 받자 교만해졌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02 · 본디새김

이어서 그들이 자신의 은인들을 해칠 계략을 꾸민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만의 행동을 일반적인 정치적 교훈 속에 배치합니다. 통치자는 신하를 높여 줄 수 있지만, 높은 지위를 얻은 신하가 그 권한을 이용해 통치자와 백성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설명에는 은근한 자기변호가 들어 있습니다.

왕은 자신이 지나치게 권한을 위임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호의와 선량함을 강조합니다.

「일을 처리하도록 신임을 받은 벗들의 설득은 권한을 맡은 많은 이를 죄 없는 이들의 피를 흘리는 데 가담하게 하여,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빠뜨리곤 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05 · 본디새김
「그 벗들이 악의에 찬 거짓 속임수로 통치자들의 순수한 선의를 속였기 때문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06 · 본디새김

물론 하만이 유대인들을 모함했다는 것은 이야기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왕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을 제거하도록 요청했습니다(3:8–9).

그러나 왕이 단순히 아무것도 모른 채 속은 피해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만에게 반지를 주었고, 그 백성을 원하는 대로 처리하라고 허락했습니다(3:10–11). 왕의 편지는 이 책임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습니다. 대신 왕은 자신이 원래 모든 민족에게 선의를 베푸는 통치자였지만 악한 신하에게 기만당했다고 설명합니다.

왕실은 정책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려 합니다. 이전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잘못의 근원은 왕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를 말하는 왕의 언어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선을 모르는 자들의 허풍에 들떠서 늘 모든 것을 굽어보는 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여 내리는 벌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04 · 본디새김

왕은 하만의 잘못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편지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굽어보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통치자는 잘못된 보고에 속을 수 있고, 뒤늦게 자신의 판단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가 묘사하는 하나님은 그런 정보의 한계를 가진 분이 아니십니다.

이것은 왕의 권한을 넘어서는 정의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왕은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평화로운 나라를 마련해 주겠다고 선언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더욱 너그럽게 대응하겠다고 말합니다(8:108–109). 이 약속은 뒤에 나오는 칙령의 마지막 경고와 함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왕은 평화를 약속하지만, 새로운 명령을 따르지 않는 도시와 지방 전체를 불과 창으로 소멸시키겠다고도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칙령에 등장하는 ‘평화’와 ‘정의’를 현대적인 의미의 보편적 인권이나 비폭력적 통치와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서에서 평화는 왕의 권한 아래에서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만은 어떻게 마케도니아 사람이 되었는가?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0–114 본문 →

왕의 편지는 이제 하만을 직접 지목합니다.

「실제로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은 마케도니아 사람으로서 페르시아 사람들의 혈통과는 무관하고 우리의 선량함과도 크게 동떨어진 자였으나, 우리에게 손님으로 받아들여져」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0 · 본디새김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3:1의 서술에서는 하만을 ‘부가이오스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에스더기에서는 ‘아각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칙령과 9:24는 그를 ‘마케도니아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더 나아가 하만이 페르시아 왕권을 빼앗아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넘기려고 했다고 주장합니다(8:114). 이야기의 궁정 서술에서 하만은 왕의 권력을 이용해 유대인들을 제거하려고 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칙령에서는 하만이 페르시아 전체를 배신하고 외부 세력에게 나라를 넘기려 했던 사람으로 확대됩니다.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의 대립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중요한 역사적 기억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전승이 가진 정치적 언어와 역사적 시각을 보여 줍니다. 다만 하만이 실제로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다거나, 페르시아 왕권을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넘기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편지 속 왕이 제시하는 설명입니다.

하만은 이제 단순히 유대인들의 원수가 아니라 페르시아 왕실 전체의 적이 됩니다.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은 특정 민족에게 베푸는 예외적인 호의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조치로 제시됩니다. 앞선 명령에서는 유대인들이 제국의 평화를 해치는 집단이었습니다. 새로운 명령에서는 오히려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려던 하만이 제국의 안전을 위협한 사람입니다.

‘위험한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왕실의 공식적인 판단이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왕이 기억하는 모르드개

「교묘한 계략의 속임수로 우리의 구원자이자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모르드개와, 왕권을 함께 나누는 흠잡을 데 없는 에스더를 그들의 온 민족과 함께 멸망시키도록 요청했던 것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3 · 본디새김

여기서 모르드개를 ‘우리의 구원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과거 왕의 암살 음모를 밝혔던 사건과 연결됩니다(2:21–23). 이 사실은 하만이 유대인 전체를 위험한 집단으로 몰아간 논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드러내는 구체적인 증거가 됩니다.

왕은 두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왕권에 충성했고 왕실에 유익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제국의 관리들에게 유대인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하면서, 그 보호가 왕실의 이익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입니다. 동시에 페르시아 궁정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는 이 두 관계가 반드시 대립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언제나 안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앞서 같은 왕권이 그들을 멸망시키는 명령을 승인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5–118 본문 →

「그러나 우리는 그 극악한 자에 의해 멸망하도록 넘겨진 유대 사람들이 범죄자가 아니라 지극히 의로운 법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며,」 「지극히 높고 더없이 크며 살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확인한다. 이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위해 나라를 가장 좋은 상태로 이끌고 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5–116 · 본디새김

앞서 하만은 유대인들의 법을 제국에 해로운 것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제 그들의 법을 ‘지극히 의로운 법’이라고 부릅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4:22와 연결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이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선언하게 하십니다. 신명기 14:1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불립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8:116은 바로 이러한 구약의 언약적 정체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그들 각자가 신적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왕의 편지는 유대인들을 보호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생명만 돌보시는 분이 아니라 페르시아 왕국의 역사까지 다스리시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하나님은 한 민족과 특별한 언약 관계를 맺으셨지만, 그분의 통치가 그 민족의 영토 안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다. 이사야 44:28–45:1에서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방 군주를 통해서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국의 왕은 자신이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라고 생각하지만, 이 편지는 그 왕국의 운명까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왕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개인적으로 유대인의 신앙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왕이 자신의 새로운 정책을 정당화하면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언어입니다.

왕의 칙령과 서술이 어긋나는 자리

「이 일을 꾸민 그자가 수산의 성문 곁에서 온 집안과 함께 나무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그에게 마땅한 심판을 신속히 내린 것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8 · 본디새김

그러나 7:10의 서술은 하만 자신이 매달렸다고 기록합니다. 하만의 열 아들에 관한 사건은 뒤의 9:10, 13–14에서 별도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8:118의 표현을 본문의 사건 진행과 정확히 일치하는 보고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왕의 공식 문서는 하만의 몰락을 인간 권력의 결정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이 악에 내리신 심판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만을 심판하셨다는 편지의 주장과, 그 심판의 세부적인 경위를 설명하는 왕실 문서의 모든 진술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이름을 사용하는 인간의 모든 설명과 행동이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멸망의 날을 기쁨의 날로 바꾸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9–124 본문 →

칙령은 이제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령합니다.

하만의 문서들을 따르지 말고, 새로운 편지의 사본을 모든 곳에 공개적으로 내걸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법을 따르도록 허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8:11에서는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권한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8:120에서는 지방 관리들에게 그들을 돕도록 명령합니다.

보호의 책임이 유대인들에게만 맡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전달했던 제국의 통치 구조가 이제는 유대인들의 방어를 지원하도록 요청받습니다. 이 점에서 에스더가 처음 청했던 ‘문서의 철회’는 단순히 과거 명령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보다 넓은 형태로 실현됩니다.

같은 날짜, 전혀 다른 의미

왕의 편지는 아달월 열사흗날을 특별히 언급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이날을 선택된 민족의 멸망이 아니라 그들의 기쁨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21 · 본디새김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날짜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날짜가 가지게 될 의미를 바꾸시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창세기 50:20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형들은 요셉을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생명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이끄셨다고 요셉은 고백합니다. 에스테르기 8장 역시 사람들의 악한 계획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두 이야기에서 인간의 악행이 처음부터 선한 일이었다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은 여전히 악이며, 생명을 해치려는 의도도 그대로 악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 악을 선하다고 선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악이 의도한 마지막 결과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데 있습니다.

기쁨을 명령하는 왕의 칙령

8:122–123에서 왕은 이 날을 특별한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벌이라고 명령합니다. 편지는 이날이 왕실과 왕에게 호의적인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멸망하지 않는 일이 제국의 평화를 보존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절에서 편지는 매우 거친 경고를 덧붙입니다.

「어느 도시나 지방이든 이대로 행하지 않는 곳은 통째로 진노 속에서 창과 불로 소멸될 것이다.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곳이 될 뿐 아니라, 들짐승과 새들에게도 영원히 가장 혐오스러운 곳이 될 것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24 · 본디새김

왕의 편지는 앞부분에서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악한 신하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새로운 명령을 따르지 않는 도시와 지방 전체를 무력으로 파괴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정의를 말하는 문서가 집단적인 파괴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이런 방식의 집단 처벌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장은 페르시아 왕이 제국의 통치자로서 내리는 위협입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는 이 긴장을 별도로 해소하지 않습니다. 왕의 명령이 유대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과, 그 왕이 여전히 강압적인 제국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함께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신앙 고백과 인간의 통치가 언제나 정의롭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본문에는 날짜와 관련된 작은 불일치도 남아 있습니다. 앞선 첫 칙령의 전문(3장의 추가 편지)은 아달월 열나흗날을 적지만, 이 장의 새 명령과 두 번째 칙령은 열사흗날을 적습니다. 이 차이를 없는 것으로 처리하기보다 그리스어 본문 안에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날짜 전승이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왕의 반지를 찍은 문서가 다시 수산에 내걸리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3–14 본문 →

긴 칙령이 끝나자 이야기는 다시 간결해집니다.

「사본들을 온 나라에 누구나 볼 수 있게 내걸어라. 모든 유대 사람은 그날 자신들에게 맞서는 자들과 싸울 준비를 갖추어라.」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3 · 본디새김

그리고 기병들이 서둘러 떠납니다. 명령은 수산에도 내걸립니다.

하만의 명령이 발행되었을 때도 전달자들이 서둘러 나갔습니다. 당시 왕과 하만은 술을 마셨고, 수산은 혼란에 빠졌습니다(3:15).

하지만 이번에는 수산의 반응이 다릅니다.

왕의 문서는 종이에 적힌 말이지만, 그 말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누군가에게는 살인과 약탈을 허용하고, 누군가에게는 방어와 보호를 허용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왕의 이름으로 새로운 문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왕실의 권력을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장이 그들의 권력 행사를 무조건 찬양하는 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권력의 결과가 어떤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져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 세 절은 바로 그 결과를 묘사합니다.

베옷에서 왕실 예복으로, 혼란에서 기쁨으로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5–17 본문 →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나옵니다.

모르드개는 왕실 예복을 차려입고 금관을 쓰고, 고운 아마포로 만든 자주색 머리띠를 두르고 나왔다. 수산 사람들은 그를 보고 기뻐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5 · 본디새김

4:1에서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라는 명령을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으며 재를 뒤집어썼습니다. 그는 성읍 한가운데서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당시 그는 베옷을 입은 채 왕궁 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4:2).

두 장면은 옷을 통해 이야기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베옷은 슬픔과 애도의 표지였습니다. 왕실 예복은 인정과 영예의 표지입니다.

이전에는 왕궁의 문턱에서 슬퍼하던 사람이 이제는 왕의 권한을 위임받아 왕궁에서 나옵니다.

앞서 하만이 권력을 얻고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는 문서를 내보냈을 때, 수산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제 모르드개가 왕실 예복을 입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수산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같은 성읍의 분위기가 뒤바뀝니다.

유대인들에게 빛이 생겼다

유대 사람들에게 빛과 기쁨이 생겼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6 · 본디새김

앞서 유대인들은 애통하며 울부짖었고, 금식하며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4:3). 여기서 빛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 발견한 생존의 가능성,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의 이름으로 내려진 멸망의 명령 앞에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빛은 그들의 삶에 다시 미래가 열렸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기쁨과 함께 찾아온 두려움

명령이 내걸린 곳마다, 공고문이 내걸린 곳마다, 도시와 지방마다 유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고 술잔치와 기쁨이 있었다. 또 다른 민족들 가운데 많은 이가 유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할례를 받고 유대 사람처럼 살았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7 · 본디새김

이 반복은 단순히 사람들이 기뻐했다는 감정을 강조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제국의 중심 수산에서 시작된 변화가 멀리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들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을 일으킨 이유로 제시된 것은 두려움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많은 이방인이 순수한 믿음으로 회심했다는 기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는 유대인들이 새롭게 얻은 권력과 보호를 보며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인의 동기까지 본문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두려워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이제 다른 민족들이 그들을 두려워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기쁨과 그 백성의 달라진 지위를 두려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27:1은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빛과 구원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사야 9:2 역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에스테르기 8:16이 이 구절들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난과 구원을 어둠과 빛으로 표현하는 구약의 언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히브리어 에스더기 8:17은 많은 사람이 유대인이 되었다고 서술하지만, 그리스어 본문은 할례라는 행위까지 명시합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의 언약 전통에서 중요한 표지입니다(창세기 17:10–14). 따라서 이 문장은 단순히 유대인들의 편을 들었다는 정도보다 더 강한 표현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공동체와 생활방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수산에 다시 걸린 공고문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8:1–17 본문 →

그 명령을 바로잡기 위해 에스더는 다시 왕에게 나아가야 했습니다. 왕은 새로운 권한을 주어야 했고, 서기관들은 문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전달자들은 온 제국을 돌아다녀야 했고, 지방 관리들은 새로운 명령을 실행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원은 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적용되는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그런데 본문은 유대인들이 이미 모든 싸움을 끝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닥칠 날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기쁨은 싸움이 완전히 끝난 뒤에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아직 위험이 남아 있지만, 그 위험에 맞설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생긴 기쁨입니다.

왕궁에서는 모르드개가 왕실 예복을 입고 나오고, 거리에는 새로운 명령이 내걸립니다. 사람들은 그 명령을 읽으며 기뻐합니다.

아직 아달월 열사흗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에게는 이제 다른 미래가 열려 있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빼앗으라는 문서가 퍼져 나갔던 바로 그 제국의 길을 따라, 이번에는 그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문서가 퍼져 나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