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5–32장 · 여러 민족을 향한 선언

하늘을 향하던 나무가 땅 아래로 내려간 날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뿌리는 깊은 물에 닿아 있고, 가지는 사방으로 뻗어 숲처럼 넓은 그늘을 만듭니다. 새들은 그 가지에 둥지를 틀고, 짐승들은 그 아래에서 새끼를 낳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그 그늘에 깃들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나무를 베어 버리십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나무가 너무 크게 자랐기 때문일까요? 다른 나무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그늘 아래 너무 많은 민족이 살았기 때문일까요?

나무를 아름답게 만드신 분은 다름 아닌 여호와야훼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신 나무를 하나님이 베어 버리십니다.

이 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낮은 곳에서 끝납니다. 그 사이에서 높이와 위대함의 의미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31장 본문 읽기 →

「너는 네 위대함으로 누구와 같으냐?」 — 파라오에게 들려주는 아시리아 이야기

에스겔 31:1–3 본문 →

에스겔에게 이 말씀이 주어진 때는 십일 년째 셋째 달 첫날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587년 6월 무렵으로 이해하며,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포위 아래 있던 시기입니다.

앞 장의 마지막 예언이 파라오의 부러진 팔을 보여 주었다면, 이번에는 파라오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역사적 사례가 제시됩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집트 왕 파라오와 그의 무리에게 말하여라. 『너는 네 위대함으로 누구와 같으냐?』」에스겔 31:2 · 본디새김

이 질문은 단순히 얼마나 위대한지를 묻는 말이 아닙니다. 파라오가 자기 힘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지 생각하도록 만드는 질문입니다.

「『보아라, 아시리아는 레바논의 백향목이었다. 가지가 아름답고 숲처럼 그늘을 드리우며 키가 컸다. 그의 꼭대기는 빽빽한 잎가지들 사이에 있었다.』」에스겔 31:3 · 본디새김

아시리아는 한때 고대 근동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강대국이었고(열왕기하 17:3–6), 유다 왕국에도 거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했습니다(열왕기하 18–19장).

그러나 에스겔이 이 말씀을 선포할 때 아시리아의 제국적 지배는 이미 무너진 뒤였습니다. 아시리아의 중심 도시 니느웨는 기원전 612년에 바빌로니아와 메대 군대의 공격으로 함락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니느웨 함락 연대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라오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 불과 수십 년 앞서, 아시리아는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나라의 몰락을 과거의 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파라오에게 그 역사를 거울처럼 보여 주십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높이 자라고 목재가 단단하며, 고대 세계에서 귀중한 건축 자재로 여겨졌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오게 한 일은 그 가치와 상징성을 보여 줍니다(열왕기상 5:6–10). 또한 백향목은 단순히 귀한 나무가 아니라, 높이 솟은 위엄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는 나무의 높이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나무가 만들어 내는 그늘과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들까지 보여 줍니다.

아시리아의 위대함을 단지 군사력으로 설명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아슈르, 곧 아시리아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칠십인역에도 아시리아를 가리키는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말을 나무의 종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달리 읽어, 이 장 전체를 처음부터 이집트에 관한 비유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히브리어 본문을 따르면, 아시리아의 몰락을 파라오에게 보여 주는 비교가 자연스럽습니다.

깊은 물이 키운 나무 — 위대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에스겔 31:4–7 본문 →

4절부터는 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크게 자랐는지를 설명합니다.

「『물이 그를 자라게 했고, 깊은 물이 그를 높이 키웠다. 깊은 물은 자기 강줄기들과 함께 그 나무가 심긴 곳 둘레로 흘렀고, 자기 물길들을 들의 모든 나무에게 보냈다.』」에스겔 31:4 · 본디새김

여기에서는 나무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깊고 풍부한 수원을 가리킵니다. 물의 풍부함이 나무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그 나무가 자리 잡은 환경 전체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의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아졌다. 그가 가지를 뻗을 때 풍부한 물 덕분에 그의 가지들이 많아지고, 그의 큰 가지들이 길어졌다.』」에스겔 31:5 · 본디새김

나무는 특별히 높은 곳에 서 있기 때문에 물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풍부한 물을 공급받았기 때문에 높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나무의 위대함이 다른 생명들과 맺는 관계로 확장됩니다.

「『그의 가지들에는 하늘의 모든 새가 둥지를 틀었고, 그의 큰 가지들 아래에서는 들의 모든 짐승이 새끼를 낳았다. 그의 그늘에는 수많은 민족이 모두 살았다.』」에스겔 31:6 · 본디새김

나무의 높이와 넓은 가지는 다른 생명에게 피난처와 생활 공간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나무는 아시리아라는 제국을 상징하므로, 그 아래 사는 민족들은 제국의 권력 아래 놓인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를 아시리아의 지배가 모든 민족에게 평화롭고 자비로웠다는 평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하 17–18장과 이사야 10장은 아시리아의 정복과 압제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나무의 그늘은 제국이 제공하는 질서와 보호를 나타낼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민족들이 그 거대한 권력의 영향력 아래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강대한 제국은 단지 정복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 권력 아래에는 도로와 교역, 정치적 질서와 보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여러 민족은 그 질서에 의존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는 그 위대함과 길게 뻗은 가지들로 아름다웠다. 그의 뿌리가 풍부한 물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에스겔 31:7 · 본디새김

나무의 높이와 긴 가지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위대함이라면, 뿌리가 닿아 있는 물은 그 위대함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조건입니다.

나무의 모든 영광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공급된 것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신 나무 — 에덴의 나무들이 시기하다

에스겔 31:8–9 본문 →

8절에서 비유의 공간은 레바논을 넘어 하나님의 동산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백향목들도 그를 빛바래게 하지 못했고, 사이프러스나무들도 그의 가지들에 견주지 못했다. 플라타너스나무들도 그의 큰 가지들 같지 못했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도 아름다움에서 그와 같지 못했다.』」에스겔 31:8 · 본디새김

창세기 2:8–10에서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그곳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을 자라게 하십니다. 또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여러 물줄기로 나뉩니다.

에스겔 31장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풍부한 물이 있으며, 그 물에서 여러 물길이 뻗어 나갑니다. 아시리아의 위대함을 창조 세계의 이상적인 풍요와 아름다움에 견주어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28:11–19에서는 두로 왕을 향한 애가에서 에덴과 하나님의 동산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도 뛰어난 아름다움과 높은 지위가 교만, 그리고 몰락의 이야기와 결합합니다.

「『내가 그를 수많은 가지로 아름답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에덴의 모든 나무가 그를 시기했다.』」에스겔 31:9 · 본디새김

풍부한 물이 단지 우연한 자연환경의 결과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무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모든 조건이 여호와야훼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름다움과 능력, 위대함은 반드시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은 존재가 자신을 선물의 근원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좋은 것이 교만의 근거가 됩니다.

에스겔은 그 전환을 다음 한 문장에 담습니다.

나무의 키가 높아지자 마음도 높아졌다

에스겔 31:10–14 본문 →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키가 높아졌고, 그가 자기 꼭대기를 빽빽한 잎가지들 사이에 두었으며, 그의 높이 때문에 그의 마음이 높아졌으므로,』」에스겔 31:10 · 본디새김

히브리어 본문은 나무가 높아진 사실과 그 높이 때문에 마음이 높아진 사실을 나란히 둡니다. 나무의 키가 높아진 것은 이미 5절에서 설명되었습니다. 그때 높아짐은 풍부한 물을 공급받은 결과였습니다.

앞의 높아짐은 성장이고, 뒤의 높아짐은 교만입니다.

문제는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나무보다 높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가에 있습니다. 에스겔은 파라오에게 옛 제국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바로 파라오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합니다.

「『나는 그를 민족들의 우두머리 손에 넘겼다. 그 우두머리는 반드시 그를 다룰 것이다. 그의 악에 따라 나는 그를 내쫓았다.』」에스겔 31:11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나무는 자신의 힘으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권력자의 손에 넘겨지는 존재가 됩니다. 앞에서 나무를 아름답게 만드신 분이 이제 그 나무를 심판에 넘기십니다.

「『낯선 자들, 민족들 가운데서 무서운 자들이 그를 베어 버리고 그를 버려두었다. 산들 위와 모든 골짜기에 그의 가지들이 떨어졌고, 그 땅의 모든 물길에서 그의 큰 가지들이 부러졌다. 땅의 모든 백성이 그의 그늘에서 내려와 그를 버려두었다.』」에스겔 31:12 · 본디새김

그 나무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그 가지들이 얼마나 넓게 뻗어 있었는지를 쓰러진 뒤에야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무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새와 짐승과 민족들이 그 아래 모였습니다. 이제는 나무가 쓰러졌기 때문에 민족들이 그곳을 떠납니다.

나무의 위대함을 보여 주던 넓은 그늘이 더 이상 누구도 지켜 주지 못합니다.

「『하늘의 모든 새가 그의 쓰러진 몸 위에 깃들고, 들의 모든 짐승이 그의 큰 가지들 곁에 있었다.』」에스겔 31:13 · 본디새김

6절에서도 새와 짐승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새들은 살아 있는 가지에 둥지를 틀었고, 짐승들은 나무 아래에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같은 새와 짐승이지만, 그들이 머무는 장소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는 이 심판을 아시리아나 이집트만의 사건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이는 물가의 어떤 나무도 키가 높아지지 못하고, 자기 꼭대기를 빽빽한 잎가지들 사이에 두지 못하며, 그들의 테레빈나무들, 곧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높은 키로 서 있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죽음에 넘겨져, 땅 아래로, 사람들 가운데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에게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에스겔 31:14 · 본디새김

이 말씀이 모든 나무가 문자 그대로 높이 자라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나무를 아름답게 만드셨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다른 나무들도 자기 높이를 근거로 스스로를 높이고,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높이 자란 나무라도 끝내 죽음에 넘겨집니다.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도 결국 인간의 유한함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나무의 높이를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높이가 그 나무를 죽음과 심판의 한계 밖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착각을 무너뜨리십니다.

이것은 이사야 10:12–15에서 아시리아를 향해 선포된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아시리아 왕은 자기 힘과 지혜로 여러 나라를 정복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도끼가 도끼를 사용하는 자에게 자랑할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도끼가 실제로 나무를 찍는 도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도끼는 그것을 사용하는 자와 독립적으로 자기 힘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에스겔 31장에서도 나무는 실제로 높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의 성장은 공급받은 물과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간의 힘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 힘의 존재가 인간을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에스겔 17:22–24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높은 백향목의 꼭대기에서 연한 가지 하나를 꺾어 높은 산에 심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작은 가지는 자라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고, 온갖 새들이 그 아래에 깃듭니다.

31장의 나무는 이미 높이 자란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17장의 나무는 여호와야훼께서 친히 작은 가지를 가져다가 심으십니다. 그리고 17:24에서 여호와야훼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시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조금 더 깊이

10절은 「네가 키가 높아졌고」라고 말하다가 곧바로 「그가 자기 꼭대기를」이라고 전환합니다. 이 변화는 히브리어 본문에도 나타납니다. 번역 과정에서 모든 인칭을 하나로 통일하면 읽기는 편해지지만, 파라오를 향한 직접적인 책망과 아시리아에 대한 서술이 겹치는 효과는 줄어듭니다. ‘민족들의 우두머리’가 역사적으로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명시하지 않습니다. 아시리아의 몰락에 관여한 바빌로니아와 메대의 세력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을 특정하여 이름 붙일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14절에서 ‘테레빈나무들’에 해당하는 표현은 읽기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라는 전치사로 이해하는 길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물을 충분히 공급받는 다른 나무들조차 자기 높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 중심입니다.

깊은 물이 멈추고 레바논이 어두워진다 — 나무가 스올로 내려가는 날

에스겔 31:15–16 본문 →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스올로 내려가던 날, 나는 애도하게 했다. 그를 두고 깊은 물을 덮었고, 그 강줄기들을 막아 풍부한 물이 가로막혔다. 나는 그 때문에 레바논을 어둡게 했고, 들의 모든 나무가 그 때문에 기진했다.』」에스겔 31:15 · 본디새김

그 제국의 영광과 권세가 죽음의 영역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이러한 표현을 곧바로 개인의 죽음 이후 상태에 관한 상세한 교리로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본문이 다루는 것은 제국의 위대함이 끝내 어디에 이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나무의 성장과 몰락이 같은 물의 이미지를 통해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깊은 물이 흘러나와 나무를 살렸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물의 흐름이 차단됩니다.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누렸던 조건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심판이 단순히 외부의 적이 나무를 베는 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나무의 생명을 지탱하던 근원적인 조건까지 여호와야훼의 손에 있습니다.

앞에서 그 나무는 레바논의 백향목이었습니다. 이제 그 나무가 사라지자 레바논 자체가 어두워집니다. 이 표현은 나무의 죽음을 둘러싼 애도의 이미지이면서, 그 나무가 차지하던 위치가 얼마나 컸는지를 드러냅니다.

거대한 나무는 혼자 서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주변에는 다른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그 나무의 가지 아래에는 새와 짐승이 있었고, 그늘에는 수많은 민족이 살았습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던 세계가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내가 그를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스올로 내려보낼 때, 그가 쓰러지는 소리로 민족들을 떨게 했다. 에덴의 모든 나무, 레바논의 가장 빼어나고 좋은 나무들,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땅 아래에서 위로를 받았다.』」에스겔 31:16 · 본디새김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이 무너지는 사건은 그 나라와 직접 싸우던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 소식을 통해 자기들이 알고 있던 세계의 질서가 더 이상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의 첫 문장인 「나는 애도하게 했다」는 목적어가 명시되지 않아, 정확히 무엇을 애도하게 하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뒤의 깊은 물을 덮는 행동과 연결하여 읽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디새김처럼 애도의 선언과 물의 차단을 나란히 읽으면, 나무가 쓰러지는 날에 자연 세계 전체가 반응하는 장면이 형성됩니다.

땅 아래의 나무들은 왜 위로를 받았을까

에스겔 31:17 본문 →

16절의 ‘위로를 받았다’는 말은 이 장에서 가장 뜻밖의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나무들은 이미 땅 아래에 있습니다. 한때 아름답고 위대했던 나무들이었지만, 이제는 죽음의 영역에 내려와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높고 아름답던 나무가 자기들과 같은 곳으로 내려오자 위로를 받습니다.

그 나무는 생전에 다른 어떤 나무도 자신과 견줄 수 없을 만큼 높았습니다. 에덴의 나무들까지 그의 아름다움을 시기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영역에서는 그 특별함이 아무런 우월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는 다른 나무들처럼 땅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로의 근거는 그가 더 이상 자신들보다 높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창세기 3:19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서 나온 인간이 자기 존재의 한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그와 함께 스올로, 칼에 죽임당한 자들에게 내려갔다. 그의 팔이 되어 민족들 가운데서 그의 그늘에 살던 자들도 그러했다.』」에스겔 31:17 · 본디새김

여기에는 두 부류가 겹쳐 있습니다. 앞서 말한 다른 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의 팔이 되어 그늘에 살던 자들이 있습니다.

‘그의 팔’이라는 표현은 제국의 힘을 떠받치거나 함께 행사했던 세력을 가리키는 비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구체적으로 어느 군대나 동맹국인지 밝히지 않으므로, 그 범위를 지나치게 좁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6절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뒤집습니다.

나무의 그늘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보호와 소속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죽음에 넘겨질 때, 그 그늘은 죽음에서 벗어날 길이 되지 못합니다. 한 존재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힘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지만, 그 힘이 무너질 때 그 몰락의 결과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국의 위대함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너는 ... 누구와 같으냐?」 — 처음의 질문이 마지막에 돌아오다

에스겔 31:18 본문 →

마지막 절에 이르면 에스겔은 처음의 질문을 다시 꺼냅니다.

「『에덴의 나무들 가운데서 너는 영광과 위대함으로 이처럼 누구와 같으냐? 너도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땅 아래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너는 할례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 칼에 죽임당한 자들과 함께 누울 것이다. 이것이 파라오와 그의 모든 무리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1:18 · 본디새김

처음에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아시리아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시리아가 쓰러지고 스올로 내려간 뒤에 같은 질문이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질문의 의미를 바꿉니다.

처음에는 ‘너만큼 위대한 존재가 누구인가?’라는 비교처럼 들렸지만, 마지막에는 ‘너보다 위대해 보였던 존재도 이렇게 되었는데, 너는 어떤 운명을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이 됩니다. 파라오는 아시리아의 위대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아시리아의 몰락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시리아처럼 위대하다고 말한다면, 자신도 아시리아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핵심은 그가 왕의 존엄과 특별한 지위를 잃고, 칼에 죽임당한 자들과 같은 자리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언약 백성의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따라서 할례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 놓인다는 표현은 수치와 배제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집트에도 할례 관습이 알려져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라오가 할례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 눕게 된다는 말은 더욱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파라오의 개인적인 할례 여부를 판정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 이 장이 남기는 질문

에스겔 31:1–18 본문 →

에스겔 31장은 위대함 자체의 죄를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위대함을 자기 존재의 절대적인 근거로 삼는 순간, 그 위대함이 어떻게 파멸의 이유가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파라오에게 필요한 것은 아시리아보다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계산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시리아가 왜 쓰러졌는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에스겔 31장의 마지막 장면에는 더 이상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가 없습니다.

풍부한 물은 막혔고, 가지들은 산과 골짜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 아래 살던 민족들은 떠났습니다.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땅 위의 민족들을 떨게 했지만, 땅 아래에 있던 나무들은 그가 자기들 곁으로 내려온 것을 봅니다.

한때 그 나무는 모든 나무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 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에스겔은 그 장면을 파라오 앞에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파라오와 그의 모든 무리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