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2장
이 장의 자리 · 25–32장 · 여러 민족을 향한 선언
괴물의 몰락과 죽은 왕들
이집트의 파라오가 강물 속에서 움직입니다. 그의 거대한 몸이 솟구칠 때마다 물이 흐려지고,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강줄기가 더러워집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내십니다.
거대한 괴물은 들판에 내던져지고, 그의 살은 산들 위에 흩어지며, 그의 피는 물길을 채웁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먼 나라의 왕들은 이 소식을 듣고 자기 목숨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강줄기들을 기름처럼 흐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물을 흐리던 존재가 사라지고, 그 물가에 사람과 가축마저 없어졌기 때문일까요?
예언자는 땅 아래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곳에는 한때 온 세상을 두렵게 했던 나라들이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아시리아와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과 시돈의 군주들이 모두 칼에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파라오도 그들 사이에 눕게 됩니다.
본문은 파라오가 그들을 보며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위로가 된다는 것일까요? 함께 멸망한 나라들이 많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에스겔 32장은 두 편의 애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하던 권력이 어떻게 무력해지고, 끝내 자신도 그 공포와 죽음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젊은 사자라 불렸지만, 강물을 더럽히는 괴물이었다
에스겔 32장의 첫 예언은 십이 년째 열두째 달 첫날에 주어집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585년 초 무렵으로 이해하는 시점입니다. 이때는 예루살렘이 이미 함락되고, 유다의 왕권과 국가 체제가 무너진 뒤였습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명령은 이집트 왕 파라오를 위해 애가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애가가 한 사람의 죽음을 회고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아직 살아 있는 왕에게 다가올 운명을 선포하는 형식으로 사용됩니다. 이는 왕의 몰락을 이미 결정된 죽음처럼 들리게 합니다.
그런데 애가는 파라오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듯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집트 왕 파라오를 두고 애가를 불러 그에게 말하여라. 『너는 민족들의 젊은 사자에 비유되었다. 그러나 너는 바다들에 있는 큰 괴물 같았다. 너는 네 강줄기들에서 솟구쳐 나와, 네 발로 물을 흐리고 그들의 강줄기들을 짓밟아 더럽혔다.』」에스겔 32:2 · 본디새김
젊은 사자는 왕의 용맹과 위엄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동물입니다. 반면 큰 괴물은 바다와 강의 깊은 물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고대 근동의 이미지 세계에서 바다의 괴물은 인간이 쉽게 제어할 수 없는 위험한 힘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실제 악어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단순한 동물 묘사로 의미를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파라오가 자기 영역에서 움직이면서도 다른 물줄기들까지 더럽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을 이집트의 영향력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강대한 나라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주변 세계까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자는 위엄과 용맹의 이미지지만, 물을 더럽히는 괴물은 다른 생명들이 의지하는 환경을 어지럽히는 존재입니다. 어떤 권력이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권력이 주변 세계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애가는 그가 남긴 흔적, 곧 흐려지고 더러워진 강물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심판은 바로 그 물속의 괴물을 대상으로 시작됩니다.
그물에 걸린 괴물 — 위대한 왕이 거대한 주검이 되다
3절에서 여호와야훼는 파라오를 붙잡을 방법을 선언하십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동원하여 네 위에 내 그물을 펼치겠다. 그들이 내 그물로 너를 끌어 올릴 것이다.』」에스겔 32:3 · 본디새김
여러 민족이 실제로 심판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지만, 그물의 주인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분은 그것을 「내 그물」이라고 부르십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때 그의 거대한 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물에 걸리자 그 거대한 몸은 벗어나기 어려운 짐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발휘하던 영역에서 끌려 나옵니다.
「『내가 너를 땅에 버려두고, 들판 위에 내던지겠다. 하늘의 모든 새가 네 위에 내려앉게 하고, 온 땅의 짐승들이 너로 배부르게 하겠다.』」에스겔 32:4 · 본디새김
29:3–5에서도 파라오는 강물의 괴물로 나타났고, 물 밖으로 끌려 나와 짐승과 새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2장은 그 장면을 훨씬 넓고 끔찍한 풍경으로 발전시킵니다.
「『내가 네 살을 산들 위에 놓고, 네 거대한 몸으로 골짜기들을 채우겠다.』」에스겔 32:5 · 본디새김
여기서 파라오의 몸은 더 이상 한 마리 짐승의 크기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거대한 몸이 파라오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죽은 뒤에는 바로 그 몸의 크기가 몰락의 참혹함을 드러냅니다.
6절에서는 그의 피가 땅을 산들까지 적시고 물길을 가득 채웁니다. 처음에 파라오는 자신의 발로 물을 더럽혔습니다. 이제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물길을 채웁니다.
이것은 단순히 적에게 보복하는 장면이라기보다, 파라오의 권력이 뒤집히는 장면입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주변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이제 그의 죽음이 그 세계 전체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땅과 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늘까지 어두워집니다.
조금 더 깊이
‘거대한 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높이 또는 큰 덩치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수 있고, 쌓인 주검의 더미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앞에 나온 살과 이어지는 신체의 이미지를 따라 거대한 몸으로 옮겼습니다.
왕이 꺼지자 하늘의 빛도 사라진다
7절에서 여호와야훼는 파라오의 몰락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내가 너를 꺼뜨릴 때 하늘을 덮고, 그 별들을 어둡게 하겠다. 해를 구름으로 덮고, 달도 제 빛을 비추지 못하게 될 것이다.』」에스겔 32:7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는 파라오를 단순히 죽이거나 패배시키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빛나는 불꽃이나 등불을 꺼뜨리듯 그의 존재를 끝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예언서에서는 나라와 권력이 무너지는 사건을 우주적 어둠으로 표현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가 흔들리고, 자신들이 의지하던 세계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빛을 내는 모든 것을 네 위에서 어둡게 하고, 네 땅에 어둠을 드리우겠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2:8 · 본디새김
이 이미지는 출애굽기 10:21–23의 흑암 재앙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이집트 땅은 짙은 어둠에 덮입니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을 붙잡아 두는 파라오를 향해 어둠의 재앙이 내려졌고, 에스겔에서는 제국의 몰락이 하늘의 어둠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왕권과 신성한 질서가 여호와야훼의 통치 아래 있다는 주제는 서로 이어집니다.
9–10절에서는 그 충격이 이집트 밖으로 퍼져 나갑니다.
「『내가 네 파멸을 민족들 사이로, 네가 알지 못했던 땅들로 가져갈 때, 많은 백성의 마음을 뒤흔들겠다.』」에스겔 32:9 · 본디새김
여기서 파라오의 파멸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나라로 옮겨지는 소식처럼 묘사됩니다. 그 소식이 도착하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내가 많은 백성이 너 때문에 질겁하게 하겠다.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내 칼을 휘두를 때, 그들의 왕들은 너 때문에 공포에 몸서리칠 것이다. 네가 쓰러지는 날, 그들은 저마다 제 목숨을 두고 순간마다 떨 것이다.』」에스겔 32:10 · 본디새김
강대국의 왕이 몰락하는 것을 본다면, 다른 왕들도 자신의 권력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파라오가 쓰러지는 사건은 그를 적대하던 왕들에게만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그 사건은 모든 왕에게 자기 권력의 불안정성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죽음에서 자기 운명의 가능성을 봅니다.
파라오가 퍼뜨리던 공포는 이제 파라오의 몰락을 통해 다른 왕들의 마음속으로 돌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13:10에서는 바벨론을 향한 심판에서 별과 해와 달이 빛을 잃습니다. 요엘 2:10에서도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은 왕권과 종교적 질서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지위 역시 신성한 질서와 관련하여 이해되었습니다. 그런 이집트의 왕이 꺼질 때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파라오의 몰락이 단순히 왕위의 교체가 아니라 그가 대표하던 질서의 붕괴처럼 그려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의 태양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를 이 구절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물을 흐리지 않는 강 — 평화처럼 보이는 황폐함
11절에서 심판을 실행할 역사적 세력이 분명해집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닥칠 것이다.』」에스겔 32:11 · 본디새김
앞에서는 여호와야훼의 그물과 칼이 등장했습니다. 이제 그 심판이 바벨론의 군사적 공격으로 구체화됩니다. 12절은 바벨론 군대가 이집트의 위세를 짓밟고 그 무리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풍부한 물 곁에서 이집트의 모든 짐승을 없애겠다. 사람의 발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않고, 짐승의 발굽도 그 물을 흐리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32:13 · 본디새김
처음에는 거대한 괴물이 발로 물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그 물을 흐리게 하는 발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그들의 물을 가라앉히고, 그들의 강줄기들을 기름처럼 흐르게 하겠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2:14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처음 읽으면 회복의 약속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살피면 이 고요함은 단순한 평화의 모습이 아닙니다. 13절에서는 사람과 짐승이 사라진다고 했고, 15절에서는 이집트가 황무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그 물을 흐리지 않을 만큼 생명의 활동이 사라진 상태를 보여 줍니다. 기름의 매끄럽고 느린 움직임에 빗대어 강물의 잔잔함을 묘사한 것입니다.
소란이 사라졌다고 해서 반드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요함은 생명이 회복된 결과가 아니라, 생명이 떠난 뒤에 남겨진 침묵입니다.
「『내가 이집트 땅을 황무지로 만들고, 그 땅이 그 안을 채우던 모든 것을 잃어 황폐해질 때, 내가 그 안에 사는 자들을 모두 칠 때,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2:15 · 본디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를 아는 일은 단순한 종교적 깨달음이 아닙니다. 한 나라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힘과 질서가 무너지는 사건을 통해, 그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애가다. 사람들이 이것을 애가로 부를 것이다. 민족들의 딸들이 이것을 애가로 부를 것이다. 이집트와 그 모든 무리를 두고 이것을 애가로 부를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2:16 · 본디새김
‘민족들의 딸들’은 여러 민족에 속한 사람들을 시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때 여러 나라를 두렵게 만들었던 이집트가 이제 여러 민족이 애도하는 대상이 됩니다.
파라오의 이름은 더 이상 위엄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몰락을 기억하는 노래 속에 남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아직 이집트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려면 땅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너는 누구보다 아름다우냐?」 — 땅 아래로 내려가는 두 번째 애가
17절은 십이 년째 열닷샛날을 기록하며, 달은 밝히지 않습니다.
첫 번째 애가가 선포된 지 열나흘이 지난 때입니다. 이번에는 에스겔에게 이집트를 위해 통곡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집트의 무리를 두고 통곡하여라. 이집트와 그 무리, 그리고 위세 있는 민족들의 딸들을,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땅 아래로 내려보내라.」에스겔 32:18 · 본디새김
첫 번째 애가는 하늘과 땅과 강물을 배경으로 제국의 몰락을 그렸습니다. 두 번째 애가는 스올과 구덩이, 무덤들을 배경으로 제국의 최종적인 무력함을 보여 줍니다.
이 장면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지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여러 나라의 왕들과 군대가 죽음 앞에서 어떤 처지가 되는지를 보여 주는 예언적 애가입니다.
「너는 누구보다 아름다우냐? 내려가서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누워라.」에스겔 32:19 · 본디새김
이 질문은 31장 마지막에 등장한 위대함의 질문과 이어집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존재라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자신이 다른 나라보다 아름답고 뛰어나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영역에서는 그 우월함을 근거로 다른 자들과 구별된 자리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의 애가에서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눕는다는 말은 수치와 굴욕의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왕으로서의 명예를 잃고, 칼에 죽임당한 자들과 구별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칼에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쓰러질 것이다. 칼이 주어졌다. 너희는 그 나라와 그 모든 무리를 끌어가라.」에스겔 32:20 · 본디새김
여기서 끌어가라는 명령을 누가 받는지는 본문에 명시되지 않습니다. 한때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군대를 지휘하던 왕이 이제는 끌려가는 존재가 됩니다.
「용사들 가운데 강한 자들이 스올 한가운데서 그와 그를 돕는 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자들, 칼에 죽임당한 자들이 내려와 누웠다.』」에스겔 32:21 · 본디새김
그들은 파라오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영하거나 예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새로 내려온 자들의 처지를 확인합니다. 이 장면에서 죽음의 세계는 여러 민족의 왕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묘역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 묘역을 하나씩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할례는 이스라엘의 언약에서 중요한 표지였지만, 실제 고대 이집트에서도 할례 관습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파라오나 이집트 사람들의 신체적 상태에 대한 단순한 설명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14:10은 그들의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너도 우리처럼 약해졌구나. 너도 우리와 같아졌구나.」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32장은 매우 가까운 문학적 구도를 공유합니다. 이사야 14장에서는 하늘을 향해 자신을 높이려는 왕의 교만과 그 몰락이 두드러집니다. 에스겔 32장에서는 여러 민족에게 공포를 퍼뜨리던 제국들이 죽음 앞에서 모두 무력해지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죽은 제국들의 묘역 — 살아 있는 자들을 두렵게 했던 나라들
22절부터는 여러 민족의 이름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아시리아,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북쪽의 군주들과 시돈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때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공포를 퍼뜨렸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칼에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아시리아 — 거대한 제국의 무덤
첫 번째로 등장하는 나라는 아시리아입니다.
「거기에 아시리아와 그 모든 무리가 있다. 그의 둘레에 그의 무덤들이 있다. 그들 모두 죽임당한 자들, 칼에 쓰러진 자들이다.」에스겔 32:22 · 본디새김
31장에서 아시리아는 높이 자란 백향목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제 32장에서는 그 나라가 무덤들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 나라의 무덤들은 구덩이 맨 깊은 곳에 놓였고, 그 나라의 무리는 그 나라의 무덤 둘레에 있었다. 그들 모두 죽임당한 자들, 칼에 쓰러진 자들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공포를 퍼뜨렸던 자들이다.」에스겔 32:23 · 본디새김
실제로 아시리아 제국은 정복과 강제 이주, 군사적 위협을 통해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열왕기하 17:6은 북이스라엘 주민들이 아시리아로 끌려간 사건을 기록합니다.
23절의 「구덩이 맨 깊은 곳」은 한때 매우 높은 자리에 있었던 나라가 가장 낮은 곳에 놓인 모습을 강조합니다. 살아 있을 때 다른 민족들을 자기 아래에 두었던 아시리아가, 이제 죽음의 영역에서는 스스로를 높일 수 없습니다.
엘람 — 공포를 퍼뜨린 자들이 치욕을 짊어지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나라는 엘람입니다.
엘람은 메소포타미아 동쪽, 오늘날 이란 남서부와 연결되는 고대의 나라였습니다. 구약에서 엘람은 때로 군사적 세력으로 등장하며, 예레미야 49:34–39에도 엘람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나라의 무덤 둘레에 있다. 그들 모두 죽임당한 자들, 칼에 쓰러진 자들이다. 그들은 할례받지 않은 채 땅 아래로 내려갔다.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자기들의 공포를 퍼뜨렸던 그들이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자기들의 치욕을 짊어졌다.」에스겔 32:24 · 본디새김
여기서 공포와 치욕이 연결됩니다. 살아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이 치욕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군사력과 폭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폭력의 기억은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짊어진 치욕과 나란히 놓입니다.
25절은 엘람이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놓였다는 사실을 반복합니다. 엘람의 군사적 능력이나 한때 누렸던 위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누워 있습니다.
메섹과 두발 — 무기를 지닌 용사들도 죄악을 벗지 못한다
26절에서는 메섹과 두발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들은 에스겔 27:13과 38:2–3에도 나타납니다. 고대 아나톨리아와 그 주변 지역의 민족들로 이해되지만, 각 시대의 정확한 정치적 범위를 모두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다. 메섹과 두발 둘레에는 그 나라들의 무덤들이 있다. 그들 모두 할례받지 않은 자들, 칼에 꿰뚫린 자들이다. 그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공포를 퍼뜨렸기 때문이다.」에스겔 32:26 · 본디새김
그런데 27절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할례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 쓰러진 용사들과 함께 눕지 않을 것이다. 그 용사들은 전쟁 무기를 지닌 채 스올로 내려갔고, 자기 머리 아래에 자기 칼을 놓았다.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뼈 위에 남았다.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용사들의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에스겔 32:27 · 본디새김
본문은 그들의 죄악이 뼈 위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뼈는 죽음 이후에 남는 신체의 흔적입니다. 그 뼈 위에 죄악이 남아 있다는 표현은 그들의 폭력과 악행이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영광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강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삶을 의롭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죽은 뒤에도 무기를 지닌 용사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그의 죄악을 지워 주지는 않습니다.
에스겔은 힘과 명예를 동일시하는 관념에 도전합니다.
「너도 할례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 부서지고, 칼에 죽임당한 자들과 함께 누울 것이다.」에스겔 32:28 · 본디새김
여기서 ‘너도’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회고가 아닙니다. 파라오를 향한 직접적인 경고입니다.
에돔과 시돈 — 강했던 자들도 구덩이를 피하지 못한다
29절에서는 에돔과 그 왕들과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 남동쪽에 자리한 나라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및 유다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던 민족입니다. 오바댜 1:3–4에서는 에돔이 높은 곳에 거주하며 자신의 안전을 자랑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끌어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에돔과 그 왕들과 그 모든 지도자가 있다. 그들은 그 힘을 지닌 채 칼에 죽임당한 자들과 함께 놓였다. 그들도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누울 것이다.」에스겔 32:29 · 본디새김
힘이 있었다는 사실과 칼에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놓였다는 사실이 나란히 나타납니다. 에돔의 힘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그 힘이 에돔을 죽음에서 건져 내지는 못했습니다.
30절에는 북쪽의 군주들과 시돈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시돈은 페니키아의 중요한 해상 도시였고, 에스겔 28:20–23에서도 심판의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그들 역시 힘으로 공포를 일으켰지만 수치를 당한 채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내려갔습니다.
이 목록에서 각 나라의 역사적 상황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이들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표현을 반복합니다.
칼에 죽임당했습니다.
구덩이로 내려갔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공포를 퍼뜨렸습니다.
치욕을 짊어졌습니다.
독자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나라들의 이름을 듣지만, 마지막에는 그들의 운명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게 됩니다. 에스겔은 죽은 자들의 세계를 보여 주며,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권력의 차이가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를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27절의 ‘함께 눕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정문이 앞뒤의 흐름과 긴장을 이룹니다. 앞에서는 메섹과 두발이 다른 죽임당한 자들과 함께 놓인다고 했고, 뒤에서도 파라오가 그들과 함께 누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해석은 무기를 지닌 채 장사된 용사들과 메섹과 두발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무기를 함께 묻는 행위가 전사의 명예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두 집단이 죽음 가운데서도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에서는 히브리어 본문의 난해한 표현을 달리 이해하거나 본문 전승의 차이를 고려하여, 그들도 오래전부터 알려진 용사들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칠십인역과 히브리어 본문 사이의 표현 차이도 이 구절을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 구절로 죽음의 세계에 명확한 명예의 서열이 존재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파라오가 위로를 받는다 — 애가의 가장 기묘한 반전
이제 마침내 파라오가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왕들과 군대가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누워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파라오가 그들을 보고 자기의 모든 무리를 두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는 칼에 죽임당한 자들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2:31 · 본디새김
위로라니?
그러므로 파라오의 위로는 자신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누리는 위로가 아닙니다. 자기보다 강했거나 비슷하게 강했던 나라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에서 얻는 위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씁쓸한 위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멸망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멸망을 되돌려 주지는 않습니다. 자기 군대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 나라가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장면은 인간이 가진 비교의 습성을 마지막까지 드러내는 듯합니다.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얼마나 높은지 비교합니다. 그러나 몰락한 뒤에는 다른 이들도 자기만큼 낮아졌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은 파라오의 내면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실제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 장의 31:16에서도 땅 아래에 있던 나무들이 거대한 백향목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32:31에서 파라오가 받는 위로는 그 장면과 서로 비춥니다.
이 위로는 죽음의 비극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다만 어떤 제국도 그 비극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31절에는 본문 전승과 번역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파라오가 위로를 받는 대상과 이유를 표현하는 부분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그가 다른 민족들을 보면서 자기 무리를 두고 위로를 받는다는 흐름을 따랐습니다.
「내가 ... 내 공포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 공포의 주인이 바뀌다
마지막 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 모든 장면의 의미를 밝히십니다.
「내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내 공포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파라오와 그의 모든 무리는 할례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 칼에 죽임당한 자들과 함께 눕혀질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2:32 · 본디새김
앞의 여러 단락에서는 아시리아와 엘람, 메섹과 두발, 북쪽의 군주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공포를 퍼뜨렸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그 공포는 제국들의 군사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라들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자기들의 성읍이 함락되며, 자신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공포를 퍼뜨리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국들은 자기 힘으로 다른 민족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제국들 역시 여호와야훼의 심판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그들이 퍼뜨린 공포가 그들의 절대적인 권력을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몰락은 모든 나라가 여호와야훼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정복했는지, 얼마나 큰 부를 쌓았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궁전과 신전을 세웠는지는 이 애가의 관심이 아닙니다. 에스겔은 그들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일으켰는지를 기억합니다.
그들이 남긴 것은 공포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위대함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동의 흔적이 됩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권력들이 끝내 자기 힘으로 영원히 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32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대명사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읽기가 전해집니다. 일부 전승과 번역에서는 파라오의 공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본디새김은 「내 공포」라는 읽기를 따랐습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는 많은 왕이 파라오의 몰락을 보고 자기 목숨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공포의 궁극적인 근원이 여호와야훼의 심판으로 드러납니다.
강물이 잠잠해진 뒤에 남는 것
권력의 폭력과 혼란은 사라졌지만, 그 폭력과 심판을 겪은 세계도 함께 황폐해졌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했던 모든 힘이, 죽음의 영역에서는 아무런 권세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에스겔은 그 장면을 통해 인간의 힘이 얼마나 거대해질 수 있는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힘이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파라오는 다른 나라의 왕들과 군대 사이에 누워 있습니다. 그의 몸은 더 이상 강물을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그의 칼도, 그의 군대도, 그의 나라가 누렸던 위엄도 그를 일으켜 세우지 못합니다.
한때 세상을 두렵게 하던 왕이 이제는 아무 말 없이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위에는 더 이상 왕좌도, 군대도, 찬란한 하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먼저 내려온 자들의 무덤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