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3–31장 · 세 친구와의 논쟁

거짓 변호보다 진실한 항변

욥기 13장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집니다. 「자네들은 하나님을 위해 부당한 말을 하려는가? 그분을 위해 속이는 말을 하려는가?」(7절) 이 질문은 친구들이 그동안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공격하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를 지키려 합니다.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항의하자, 그들은 하나님이 잘못하실 리 없으므로 욥에게 반드시 어떤 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의 의도는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바로 그 변호가 하나님 앞에서 부당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옹호하려는 마음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확인하지 못한 죄를 사실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변호가 아니라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하나님께 항의하면서도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 가운데 누가 하나님을 더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까?

욥은 자기편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줄 다른 신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 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나는 전능자께 말하겠네. 하나님과 변론하고 싶네.」(3절) 이 말이 욥기 13장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대로 소환하거나 심문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욥 자신도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장은 친구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데서 시작하여, 하나님께 말씀해 달라고 요청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 사이에서 욥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소송을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1013장 본문 읽기 →

거짓을 발라 대는 의사들

욥기 13:1–5 본문 →

욥은 앞 장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자신이 친구들보다 무지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보게, 내 눈이 이 모든 것을 보았고, 내 귀가 듣고 깨달았네.」욥기 13:1 · 본디새김

욥의 지식은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접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경험한 것을 생각해 왔습니다.

「자네들이 아는 만큼 나도 알고 있네. 나는 자네들보다 못하지 않네.」욥기 13:2 · 본디새김

욥은 자신이 친구들보다 더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자신을 가르침이 필요한 무지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태도를 거부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지혜 강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전능자께 말하겠네. 하나님과 변론하고 싶네.」욥기 13:3 · 본디새김

‘변론하다(⁨יָכַח⁩)’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거나, 서로의 주장을 따져 밝히는 행위에 사용됩니다. 욥기에서는 특히 법정에서 다투고 자신의 사정을 밝히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욥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쏟아 놓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판단의 근거를 묻고 싶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듣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받고 싶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판단하실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판단을 내리시는 분께 직접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 사이에 서서 이미 결론을 내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자네들은 거짓을 발라 대는 사람들이고, 모두 쓸모없는 의사들이네.」욥기 13:4 · 본디새김

‘거짓을 발라 대는’이라는 표현에는 무엇인가를 표면에 바르거나 덧씌우는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실제로 확인하지 못한 죄를 자신에게 덧씌운다고 비판합니다.

의사는 병든 사람을 고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어디가 아픈지 듣고, 병의 원인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원인을 이미 정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욥의 상처를 치료하기보다, 자기들이 내린 진단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합니다.

욥의 비판은 그들이 위로의 말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치료해야 할 사람에게 잘못된 병명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자네들이 제발 입을 굳게 다물었으면 좋겠네. 그것이 자네들에게 지혜가 될 텐데.」욥기 13:5 · 본디새김

욥의 요구는 단순히 친구들이 말을 적게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고난 앞에서 무엇인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아는 신앙의 원리로 욥의 처지를 해석하려 했습니다.

고통을 설명하려는 말이 실제 고통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그 말은 치료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침묵이 지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잠언 17장 28절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어리석은 사람도 잠잠하면 지혜롭게 여겨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편을 드는 거짓말을 기뻐하실까

욥기 13:6–10 본문 →

욥은 「부디 내 논박을 들어 보게」(6절) 하고 친구들에게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연이어 질문을 던집니다.

「자네들은 하나님을 위해 부당한 말을 하려는가? 그분을 위해 속이는 말을 하려는가?」욥기 13:7 · 본디새김
「자네들은 그분의 편을 들려는가? 하나님을 위해 다투려는가?」욥기 13:8 · 본디새김

이 질문에는 법정의 언어가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변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변론한다고 해서 사실을 바꿀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8절의 ‘편을 들다(⁨נָשָׂא⁩)’는 히브리어로 문자적으로는 ‘얼굴을 들어 주다’라는 관용 표현입니다. 문맥에 따라 특정한 사람을 편애하거나 그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판단의 기준은 상대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옳은가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 원칙을 하나님을 대하는 친구들에게 적용합니다.

하나님이 누구보다 위대하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유리한 결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므로,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은 더욱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거짓된 증언을 통해서만 자신의 의로움을 지킬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공의가 참되다면, 공의를 지키기 위해 부당한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9절에서는 법정의 자리가 뒤집힙니다.

「그분이 자네들을 샅샅이 살피셔도 괜찮겠는가? 사람을 속이듯 그분을 속이려는가?」욥기 13:9 · 본디새김

조금 전까지 친구들은 욥을 판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욥이 아니라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해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 말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인지, 정당한 근거가 있는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사실처럼 말하지는 않았는지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자네들이 남몰래 편을 든다면, 그분은 반드시 자네들을 꾸짖으실 것이네.」욥기 13:10 · 본디새김

이것은 책의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 더욱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욥기 42장 7–8절에서 하나님은 친구들이 자신에 관하여 올바르게 말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십니다. 다만 13장의 욥이 그 미래의 판결을 알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 욥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를 근거로 친구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하나님께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얼굴을 들어 주다’라는 표현은 구약의 재판 원칙과 연결됩니다. 레위기 19장 15절은 재판할 때 가난한 사람이라고 편들거나 세력 있는 사람이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6장 19절도 재판을 굽게 하거나 사람을 편애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출애굽기 23장 2–3절은 다수의 의견을 따라 재판을 굽게 하지 말고, 특정한 사람의 편을 들어 판단을 왜곡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23장 7절에서는 거짓된 일에서 멀리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명령들은 정의를 이루려는 사람이 먼저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재와 진흙으로 세운 방벽

욥기 13:11–12 본문 →

욥은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위엄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분의 위엄이 자네들을 겁에 질리게 하지 않겠는가? 그분의 공포가 자네들을 덮치지 않겠는가?」욥기 13:11 · 본디새김

친구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들어 욥의 질문을 제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바로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친구들이 자기들의 말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가진 설명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설명이 참된지 살피는 것입니다.

「자네들이 내세우는 격언은 재와 같고, 자네들의 방벽은 진흙 방벽이네.」욥기 13:12 · 본디새김

재는 불에 타고 남은 것입니다. 그것은 한때 무엇인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손에 쥐면 부서지고 바람에 흩어집니다. 친구들의 가르침은 오래전부터 전해진 말이며,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말로 기억되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겪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오래된 격언이라도 그에게는 재처럼 무력합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진흙 방벽입니다.

방벽은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흙으로 만든 방벽은 강한 공격을 오래 견디기 어렵습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을 옹호하기 위해 논리를 세웠지만, 욥의 질문 앞에서 그 논리는 흔들립니다.

여기서 욥이 모든 전통적인 지혜를 무가치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들이 그 지혜를 사용하여 욥의 고난을 설명하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허술한 방벽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욥은 이제 그 방벽 뒤에서 친구들과 다투는 일을 그만두려 합니다. 그는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려 합니다.

죽이신다 해도, 나는 말하겠다

욥기 13:13–16 본문 →

욥의 태도는 13절에서 단호해집니다.

「내게 말하기를 그치고 내가 말하게 두게. 무엇이든 내게 닥칠 테면 닥치라지.」욥기 13:13 · 본디새김

하나님께 자신의 처사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욥은 그 위험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목숨을 내 손바닥에 올려놓겠는가?」욥기 13:14 · 본디새김

‘목숨을 손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쓴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앞의 ‘내 살을 내 이로 물고’라는 표현은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14절을 욥이 왜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는 말로 읽을 수 있으며,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자기 목숨을 걸겠다는 결심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어지는 15절은 욥이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변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보게,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분을 기다리겠네. 다만 내 행실을 그분 앞에서 변론하겠네.」욥기 13:15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욥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고백 가운데 하나이지만, 동시에 본문상의 중요한 어려움이 있는 구절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실 수도 있다는 현실을 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것으로 읽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읽든, 그는 자신의 행실을 하나님 앞에서 밝히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 점을 놓치면 15절이 단순히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찬양하는 구절로만 읽히기 쉽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이 구절의 한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신뢰는 욥이 아무런 질문 없이 하나님의 행동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와 같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하나님과 다투려 합니다.

욥의 믿음은 질문을 포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이것 또한 내게 구원이 될 것이네. 불경한 사람은 그분 앞에 나아오지 못하니 말일세.」욥기 13:16 · 본디새김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자신의 행실을 변론하는 일이 구원의 길이 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사정을 밝히실 것이라는 기대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문맥상 욥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부당한 판단에서 벗어나는 일과 연결됩니다.

친구들은 욥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실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신의 항변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말하려 한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사람의 모든 행실이 의롭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욥 역시 자신의 결심을 그렇게 완결된 증거로 제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자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12장 3절과 사무엘상 19장 5절에서도 목숨을 손에 두는 이미지가 생명의 위험과 연결됩니다. ‘내 살을 내 이로 물고’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 생명을 붙들려는 행동을 나타낼 수도 있고,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무모한 행동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15절의 경우, 히브리어 기록 본문에는 로, 곧 ‘아니다’라는 부정 표현이 나타납니다. 반면 유대교의 전통적인 낭독 방식에서는 소리는 같지만 ‘그분을’ 또는 ‘그분께’라는 뜻을 가진 로로 읽습니다. 낭독 전승을 따르면 본디새김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신다 해도 하나님을 기다리거나 그분께 희망을 두겠다는 뜻이 됩니다. 기록된 자음 본문의 부정을 따르면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실 것이며 자신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본래의 읽기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읽기 모두에서 ‘다만 내 행실을 그분 앞에서 변론하겠네’라는 말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송을 준비한 사람

욥기 13:17–19 본문 →

욥은 다시 한 번 친구들에게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 잘 듣게. 내 진술에 귀를 기울이게.」욥기 13:17 · 본디새김

이 장에는 듣고 말하는 행위가 반복됩니다. 1절에서 욥은 자신이 보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5절에서는 친구들에게 잠잠하라고 했고, 6절에서는 자기 변론을 들으라고 요구했습니다. 13절에서도 자신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욥에게는 말할 기회 자체가 중요해졌습니다. 친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결론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을 끝까지 들어 달라고 거듭 요구합니다.

「자, 보게. 나는 내 소송을 준비했네. 내가 옳다는 판정을 받으리라는 것을 아네.」욥기 13:18 · 본디새김

이것은 그가 고난의 이유를 모두 이해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고난이 숨겨진 악행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라는 친구들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밝힐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확신도 다음 절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나와 다툴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제 입을 다물고 숨을 거두겠네.」욥기 13:19 · 본디새김

마지막 문장의 연결은 해석하기 쉽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처럼 자신을 논박할 사람이 있다면 입을 다물고 죽겠다는 조건으로 읽을 수 있고, 지금 침묵한다면 자신은 죽을 것이라는 긴박한 고백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욥이 자신의 말을 단순한 말다툼 이상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의 변론에는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15절).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옳다는 판정을 받으리라고 확신합니다(18절). 이것은 모든 결과가 안전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거짓으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결심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제 욥은 친구들에게 하던 말을 멈추고 직접 하나님께 말합니다.

두 가지만 제게 하지 마십시오

욥기 13:20–22 본문 →

20절에서는 화자가 말을 건네는 대상이 바뀝니다.

「다만 두 가지는 제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의 얼굴을 피해 숨지 않겠습니다.」욥기 13:20 · 본디새김

앞에서는 친구들에게 ‘자네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직접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준비한 소송은 더 이상 친구들과의 논쟁이 아닙니다.

「당신의 손을 제게서 거두십시오. 당신의 공포로 저를 겁에 질리게 하지 마십시오.」욥기 13:21 · 본디새김

첫째는 하나님의 손을 거두어 달라는 것입니다. 욥에게 하나님의 손은 추상적인 능력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압박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공포가 자신을 압도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심판할 권한을 가진 이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미 심한 고통을 받고 있고, 상대의 위엄에 압도되어 자신의 사정을 제대로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공정한 변론이 어렵습니다.

「부르십시오.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말할 테니 제게 답해 주십시오.」욥기 13:22 · 본디새김

어느 쪽이든 욥이 원하는 것은 대화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선언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행실을 살피시고 물으시는 것도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권위를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권위 앞에서도 자신의 말이 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의 표현은 욥기 9장 34절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욥은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막대기를 거두어 주시고 그분의 두려움으로 자신을 겁내게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욥기 13:23–25 본문 →

욥이 하나님께 처음 묻는 것은 자신의 죄에 관한 것입니다.

「제게 허물과 죄가 얼마나 있습니까? 제 반역과 제 죄를 제게 알려 주십시오.」욥기 13:23 · 본디새김

욥은 자신에게 어떠한 잘못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이 있다면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그의 관심은 자신이 완벽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왜 지금의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잘못을 문제 삼고 계신 것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죄인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욥은 그 답을 하나님께 직접 요청합니다.

「왜 얼굴을 숨기시고, 저를 당신의 원수로 여기십니까?」욥기 13:24 · 본디새김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그분의 임재와 관심,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얼굴이 감추어지면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왜 침묵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처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원수로 삼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자신의 사정을 밝히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자신을 공격하는 분처럼 느껴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욥을 원수로 판단하셨다는 확정적인 서술이 아닙니다. 욥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탄식입니다.

「흩날리는 잎을 떨게 하시렵니까? 마른 지푸라기를 뒤쫓으시렵니까?」욥기 13:25 · 본디새김

잎은 이미 나무에서 떨어져 바람에 휘날립니다. 지푸라기는 말라 버려 쉽게 흩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것을 뒤쫓으시며 떨게 하신다면, 그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는 이미 무너진 사람입니다. 자신을 지탱하던 재산과 가족과 건강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힘을 자랑하거나 누구와 맞서 싸울 처지가 아닙니다.

욥의 질문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기실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처럼 무력해진 사람을 하나님이 왜 계속 상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는 잘못을 가리키는 여러 표현이 겹쳐 등장합니다. ‘허물’, ‘죄’, ‘반역’에 해당하는 말들은 서로 의미가 겹치지만, 각각 잘못된 행위와 죄책,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는 측면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시편 13장 1절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이 언제까지 자기에게 얼굴을 숨기시겠느냐고 탄식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로 여기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하나님의 실제 의도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말씀하시며,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창조 세계의 광대함을 보여 주십니다(38–41장).

젊은 날의 죄가 지금까지 따라오는가

욥기 13:26–27 본문 →

욥은 자신을 원수처럼 대하시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 뒤,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다루시는 것으로 느끼는지 설명합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저를 거슬러 쓰라린 것들을 기록하시고, 제 젊은 날의 죄악을 제 몫으로 돌리시며,」욥기 13:26 · 본디새김

법정의 문맥에서 ‘기록하다’는 죄목이나 고발 내용을 문서에 기록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욥에게는 그 기록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자신이 경험하는 것은 죄목을 듣는 일이 아니라 처벌을 받는 듯한 현실입니다.

혹시 젊은 날의 죄악을 지금 자신의 몫으로 돌리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그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잘못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잘못이 지금 겪는 파멸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제 몫으로 돌리시며’라는 표현에는 상속이나 소유와 관련된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오래전에 저지른 잘못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지금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은 하나님이 실제로 욥의 젊은 시절의 죄를 찾아내어 형벌을 내리고 계신다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27절에서는 법정의 이미지가 감옥의 이미지로 바뀝니다.

「제 두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제가 가는 모든 길을 감시하시며, 제 발바닥 둘레에 선을 그으십니다.」욥기 13:27 · 본디새김

발을 차꼬에 채웠다면 이미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가는 길을 하나하나 감시합니다. 나아가 발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까지 제한합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해 놓고도 여전히 도망칠까 봐 감시하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앞서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행실을 살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걸음을 이미 감시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이 원하는 것은 감시 자체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얼굴을 숨기시기에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걸음을 감시하시기에 한순간도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욥은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발바닥 둘레에 선을 긋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의 구체적인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발바닥에 표식을 새긴다는 읽기와, 발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정한다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본디새김은 둘레에 선을 그어 행동의 한계를 정하는 이미지로 이해합니다.

좀이 먹은 옷처럼

욥기 13:28 본문 →

13장의 마지막은 짧고 쓸쓸합니다.

「그는 썩어 가는 것처럼 스러지고, 좀이 먹은 옷처럼 해집니다.」욥기 13:28 · 본디새김

앞의 구절들에서 욥은 계속 자신에 관해 일인칭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갑자기 ‘그는’이라는 삼인칭이 등장합니다. 욥이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삼인칭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인간 일반의 연약함을 말하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썩어 가는 것과 좀이 먹은 옷, 둘 다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무너져 갑니다. 좀이 먹은 옷은 겉으로는 여전히 옷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안쪽에서는 조금씩 손상됩니다.

그는 단지 한 번 큰 재난을 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재난 이후에도 계속 몸과 마음이 소모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건을 준비했으나 아직 재판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자신은 계속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뒤의 14장이 인간의 짧고 덧없는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간 일반에 대한 탄식으로 이어지는 읽기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13장만 놓고 보면 욥 자신의 처지와 연결하여 읽을 근거 역시 충분합니다.

해어지는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려는 사람

욥기 13:1–28 본문 →

욥기 13장의 처음에는 친구들이 서 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에 관한 확신을 통해 욥의 질문을 끝내려 합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을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도 공의롭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실하신 분이시라면, 그분을 위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언제나 옳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 나온 질문도 살펴야 하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말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그가 마지막에 보여 주는 것은 법정에 당당하게 선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좀이 먹은 옷처럼 조금씩 해어지는 존재입니다.

친구들의 격언은 재와 같고, 그들의 방벽은 진흙과 같습니다. 욥 자신도 썩어 가는 물건과 좀이 먹은 옷처럼 약합니다. 이 장에서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견고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연약한 몸으로도 하나님께 말하려 합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짓누르지 않고, 하나님의 공포가 자신의 목소리를 삼켜 버리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할 기회입니다.

그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좀이 먹은 옷처럼 해어져 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직접 아뢰겠다는 뜻을 거두지 않습니다.

욥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