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3–31장 · 세 친구와의 논쟁

인간이 끝내 찾지 못한 지혜

인간은 어둠 속에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한 땅속을 파고들어 바위를 깨뜨리고, 숨겨진 금과 은을 찾아 빛 가운데 꺼내 놓습니다. 맹금의 날카로운 눈도 발견하지 못하고 사자도 지나간 적 없는 곳에 인간은 길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땅속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인간이 정작 찾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분별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28:12)

사람은 땅속에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낼 수 있지만, 세상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하나님이 왜 어떤 일을 허락하시는지, 자신이 겪는 고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모두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발견할 수 없는 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욥기 28장의 중심에는 인간이 알고 싶어 하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알려 주신 것 사이의 차이가 놓여 있습니다.

이 시는 앞 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욥기 27장에서 악인은 은을 먼지처럼 쌓아도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려졌습니다(27:16–17). 그런데 28장은 바로 그 은과 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합니다.

28장에는 새로운 화자를 알리는 표지가 없으므로 앞의 욥의 발언이 이어진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29:1에서 욥의 발언을 다시 도입하기 때문에, 28장을 욥의 논쟁 사이에 놓인 독립적인 지혜의 노래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현재 책의 배열에서 이 장은 인간의 지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뒤이어 전개될 욥의 마지막 발언을 준비합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28장 본문 읽기 →

인간은 어둠에 끝을 정한다

욥기 28:1–4 본문 →

「참으로 은이 나오는 곳이 있고, 금을 정련하는 곳도 있네.」욥기 28:1 · 본디새김
「철은 흙에서 꺼내고, 돌을 녹여 구리를 얻네.」욥기 28:2 · 본디새김

28장은 광산에서 시작합니다.

은과 금은 땅 위에서 아무렇게나 주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캐낸 뒤에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첫 두 절은 인간이 자연 속에 감추어진 물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능력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시인이 정말로 보여 주려는 것은 금속의 유용성이 아닙니다. 금속을 얻기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어둠에 끝을 정하고, 캄캄함과 죽음의 그늘 속 돌을 가장 먼 끝까지 찾아 살피네.」욥기 28:3 · 본디새김

어둠은 사람이 볼 수 없고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안에 들어가 끝을 정합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돌을 살피고, 어디에 귀한 것이 감추어져 있는지 찾아냅니다.

욥기에서 죽음의 그늘은 단순한 밤의 어둠보다 깊고 위협적인 어둠을 나타냅니다. 욥기 10:21–22에서 욥은 죽음이 가까운 땅을 어둠과 깊은 그늘의 세계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28장에서 인간은 바로 그런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갱도를 뚫네. 발길에도 잊힌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멀리 매달려 흔들리네.」욥기 28:4 · 본디새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고,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내려갑니다.

인간은 보이는 것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나서고, 발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인간의 탐구 정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 준 다음, 그 능력으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4절의 히브리어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앞의 ‘갱도’로 번역한 말은 본래 물길이나 시내와 관련된 표현이어서, 땅속에 뚫린 통로나 수직 갱도로 이해하는 데에는 문맥에 따른 판단이 들어갑니다. 뒤의 문장 역시 구체적인 장면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광부들이 줄에 매달려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고,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광산의 위험한 작업 환경을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그림은 분명합니다.

땅 아래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욥기 28:5–11 본문 →

「땅에서는 빵이 나오지만, 그 아래는 불로 뒤집힌 듯하네.」욥기 28:5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땅의 위와 아래를 한순간에 대비시킵니다.

땅 위에서는 곡식이 자라고 사람이 먹을 것이 생산됩니다. 그러나 같은 땅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바위를 부수고 흙을 뒤집으며 금속과 보석을 얻어 냅니다.

사람에게 빵을 제공하는 땅 아래에 귀한 돌과 금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 땅의 돌은 사피르가 있는 곳이고, 거기에는 금가루도 있네.」욥기 28:6 · 본디새김

인간의 눈에 보통 돌처럼 보이는 곳에 값진 광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길은 맹금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했네.」욥기 28:7 · 본디새김
「거만한 짐승들도 그 길을 밟지 않았고, 사자도 그 위를 지나지 않았네.」욥기 28:8 · 본디새김

매의 눈은 아주 먼 곳의 작은 움직임도 찾아냅니다. 사자는 사람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거친 곳을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조차 광부가 발견한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타고난 능력으로도 찾아내지 못하는 길을 인간은 만들어 냅니다. 인간에게는 자연을 관찰하고, 도구를 만들고, 새로운 통로를 개척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부싯돌에 손을 뻗어, 산들을 뿌리부터 뒤집었네.」욥기 28:9 · 본디새김
「바위에 물길들을 뚫었고, 그의 눈은 온갖 귀한 것을 보았네.」욥기 28:10 · 본디새김

‘산들을 뿌리부터 뒤집었다’는 표현은 광산 작업의 규모와 힘을 과장법으로 묘사합니다. 처음에는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어둠 속에 들어가 길을 내고, 결국 자신의 눈으로 보물을 확인합니다.

「그는 강물이 울지 못하게 붙들어 매고, 숨겨진 것을 빛으로 끌어내네.」욥기 28:11 · 본디새김

‘강물이 울지 못하게’는 물의 흐름을 막거나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제어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숨겨진 것을 빛으로 끌어낸다는 후반부는 명확합니다.

인간은 어둠으로 들어가고,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고, 결국 그것을 빛 가운데 드러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인은 이 놀라운 능력에 제동을 겁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불로 뒤집힌 듯하다’는 표현이 반드시 실제 지하의 불이나 화산 활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광산에서 이루어지는 격렬한 굴착과 지하의 뒤집힌 모습을 불에 의한 파괴에 비유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6절의 ‘사피르’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사파이어와 반드시 동일하지 않으며, 청금석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고 이해됩니다. 10절의 ‘물길들’은 본래 물이 흐르는 통로를 나타내는 말로, 여기서는 바위 속에 뚫은 수로 또는 통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1절의 ‘강물이 울지 못하게’는 원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가운데 하나로, 히브리어에는 ‘울음’ 또는 ‘흘러나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채굴 기술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욥기 28:12–14 본문 →

「그러나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분별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욥기 28:12 · 본디새김

12절은 이 장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앞에서는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은에는 나오는 곳이 있고, 금에는 정련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를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사물과 상황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살아가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분별’은 구별하고 이해하며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과 연결됩니다. 두 말은 서로 나란히 놓여 참된 이해와 판단의 능력을 함께 나타냅니다.

욥과 친구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고난에 관해 논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욥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지식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관해 많은 것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지혜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는 지혜를 찾을 수 없네.」욥기 28:13 · 본디새김

‘가치(⁨עֵרֶךְ⁩)’에 해당하는 말은 어떤 것의 값이나 평가된 가치를 나타냅니다. 이 단어는 뒤에 이어지는 금과 은의 가격을 이야기할 준비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금과 은은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있지만, 참된 판단력과 지혜의 가치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깊음은 『그것은 내 안에 없다』 하고 말했고, 바다는 『내게는 없다』 하고 말했네.」욥기 28:14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의 시적 세계에서 깊음과 바다는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영역입니다. 감추어진 것과 알 수 없는 것의 이미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들마저 지혜가 자기 안에 없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광물처럼 어딘가에 묻혀 있어, 더 깊이 파기만 하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보물은 사람이 아직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사람이 더 좋은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면 그것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욥이 묻는 지혜는 그런 종류의 대상이 아닙니다.

지혜는 얼마나 비싼가 — 살 수 없다는 대답

욥기 28:15–19 본문 →

인간이 지혜가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돈을 주고 살 수는 있지 않을까요?

「금을 그 대신 내줄 수도 없고, 은을 달아 그 값을 치를 수도 없네.」욥기 28:15 · 본디새김

고대 사회에서 귀한 물건을 거래할 때 금속의 무게를 달아 값을 계산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23:16에서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과 밭을 구입할 때 은의 무게를 달아 지불한 장면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지혜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피르의 금으로도 그 값을 매길 수 없고, 귀한 쇼함이나 사피르로도 그럴 수 없네.」욥기 28:16 · 본디새김

오피르는 구약에서 귀한 금의 산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열왕기상 9:28에서도 솔로몬의 선박들이 오피르에서 금을 가져옵니다. 17–19절에서는 금과 유리, 순금 그릇, 산호, 수정, 프니님, 쿠시의 핏다까지 등장합니다.

값을 치를 수 없습니다.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견줄 수 없습니다. 맞바꿀 수 없습니다.

시인은 지혜의 가격이 단순히 아주 높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금을 가지고 와도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땅속에서 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금으로도 지혜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바로 그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통적인 지혜가 있었습니다. 악인은 심판받고 의인은 복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원칙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욥의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지혜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오피르의 정확한 지리적 위치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최고의 금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기능합니다. 쇼함의 정확한 현대 광물명은 확정하기 어렵고, 사피르도 오늘날의 사파이어와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프니님이나 핏다 같은 명칭을 오늘날의 특정 보석에 정확히 대응시키는 데에도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목록을 현대 보석 이름으로 세밀하게 분류하는 것보다, 온갖 귀한 물건을 가져와도 지혜의 값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복을 따라 읽는 편이 좋습니다.

죽음조차 소문만 들었다

욥기 28:20–22 본문 →

「그러면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분별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욥기 28:20 · 본디새김

12절과 거의 같은 질문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인간이 광산에서 온갖 보물을 찾아내는 장면 바로 뒤에 등장했고, 두 번째 질문은 세상의 모든 귀한 것을 가져와도 지혜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등장합니다.

이제 찾는 방법도 실패했고, 사는 방법도 실패했습니다.

「지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눈에 감추어져 있고, 하늘의 새들에게도 숨겨져 있네.」욥기 28:21 · 본디새김

여기서 7절의 이미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앞에서는 맹금과 매의 눈도 광부가 찾아낸 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 인간은 새의 한계를 넘어섰지만, 여기서는 인간과 새가 함께 한계에 부딪힙니다.

「아바돈과 죽음은 말했네. 『우리는 우리 귀로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욥기 28:22 · 본디새김

아바돈은 앞서 26장에서도 등장한 죽음과 파멸의 영역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욥기 26:6에서는 스올과 아바돈이 하나님 앞에 가려져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영역까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죽음의 영역이 하나님의 지혜를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바돈과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이 갈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그들은 지혜에 관해 들었지만, 지혜가 있는 곳을 안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혜를 찾는 시선은 더 이상 땅이나 바다, 죽음의 영역에 머물 수 없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그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욥기 28:23–27 본문 →

「하나님은 지혜의 길을 분별하고, 그는 지혜가 있는 곳을 알고 있네.」욥기 28:23 · 본디새김

23절에서 처음으로 분명한 긍정의 대답이 나옵니다.

시인은 단순히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길’과 ‘곳’은 앞의 광산 묘사에서 이미 중요하게 등장한 말입니다. 광부는 보물이 있는 곳을 찾아내고 그곳에 이르는 길을 만듭니다.

그러나 지혜의 길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땅의 끝들을 바라보고, 온 하늘 아래를 보기 때문이네.」욥기 28:24 · 본디새김

인간의 탐색에는 방향과 거리가 있습니다. 광부는 어느 한 곳에서 시작하여 더 깊고 더 멀리 나아갑니다.

3절에서 인간은 ‘어둠에 끝을 정하고’ 가장 먼 끝까지 탐색했습니다. 24절에서 하나님은 ‘땅의 끝들’을 바라보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들어간 어둠 속에서 경계를 찾아냅니다. 하나님은 세계 전체의 경계를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은 세계의 한 부분을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세계를 세우시고 질서를 부여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바람에 무게를 정하고, 물을 분량대로 재었을 때,」욥기 28:25 · 본디새김
「비에 법도를 정하고, 천둥 치는 번개에 길을 내었을 때,」욥기 28:26 · 본디새김

사람에게 바람은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은 흘러가며, 비는 하늘에서 내리고, 번개는 갑자기 빛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연을 질서 있게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무게와 분량, 법도와 길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욥기 27:20–21에서는 물과 폭풍과 동풍이 사람을 휩쓸어 가는 파괴적인 힘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28장에서는 바로 그런 자연의 힘에 하나님이 질서를 부여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폭풍은 자신을 압도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그 바람과 물의 한계까지 정하십니다.

「그때 그는 지혜를 보고 선포했으며, 그것을 굳게 세우고 또한 살폈네.」욥기 28:27 · 본디새김

하나님이 바람과 물을 다스리시고 비와 번개에 법도를 정하실 때, 지혜는 그분의 창조 사역과 함께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고, 굳게 세우시고, 살피십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어디에 있는지만 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지혜는 창조 세계에 질서가 세워지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욥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세계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야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세계의 질서를 세우시는 분이므로 그 질서 전체를 아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알려 주십니까?

조금 더 깊이

27절을 지혜가 이 순간 처음 창조되었다는 확정적인 진술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굳게 세웠다’는 표현은 지혜를 확립하거나 견고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본문의 관심은 지혜의 존재가 시작된 시점을 밝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잠언 8:22–31에서는 지혜가 하나님이 세계를 세우시기 전부터 그분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창조의 과정에 함께하는 모습으로 의인화됩니다. 욥기 28장은 지혜를 그렇게 상세한 인격적 모습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 모두 창조 세계의 질서와 하나님의 지혜를 밀접하게 연결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신 지혜

욥기 28:28 본문 →

「그리고 사람에게 말했네. 『보아라. 주를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지혜이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분별이다.』」욥기 28:28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혜의 길을 아신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이제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혜의 모든 내용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주의 숨겨진 질서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방향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경외나 두려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문맥에 따라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앞에서 인간은 지혜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그 길을 아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세계의 모든 원인을 알고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삶을 하나님의 눈으로 완전히 판단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실제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악을 인식하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며, 그 길에서 떠나는 것이 분별입니다.

광부는 어둠을 뚫고 지하로 내려갑니다. 그가 찾는 것은 바깥에 있는 보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신 지혜는 더 먼 곳으로 가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욥기를 처음부터 읽어 온 독자에게는 이 마지막 절이 더욱 특별하게 들립니다.

욥기 1:1에서 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나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1:8과 2:3에서도 하나님은 욥의 그러한 성품을 인정하셨습니다. 28장은 인간이 지혜를 찾아내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마지막에는 욥이 처음부터 살아온 삶의 특징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자신의 삶을 쓰라리게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이것은 그의 고난을 설명하는 열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고난을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석한 친구들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다시 보여 줍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받은 것이 아닙니다. 욥은 바로 그 경외와 온전함을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고난받았습니다.

따라서 28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고난을 피할 수 있다’는 약속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도나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네 글자 여호와야훼와 구별되는 호칭입니다. 본디새김이 ‘주’라고 옮긴 것은 이러한 본문의 표현을 반영합니다. 잠언 1:7에서도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잠언 9:10에서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욥기 28장은 이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독특한 상황에 놓습니다. 잠언에서는 주를 경외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제시됩니다. 욥기에서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기에서 지혜는 단순히 성공적인 삶을 위한 기술이 될 수 없습니다.

광부가 찾아내지 못한 길

욥기 28:1–28 본문 →

광부가 찾아내지 못한 길 앞에서 욥기 28장을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인간의 지식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일정한 원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아는 것이 전체 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욥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이 정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의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는 것과 자신이 그 지혜를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이유를 알아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난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짓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설명할 지혜를 얻지 못했지만, 앞 장에서 맹세한 대로 자신이 진실이라고 아는 것을 거짓으로 바꾸지 않으려 했습니다. 욥의 이러한 태도를 곧바로 완전한 지혜의 실현이라고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욥 자신도 앞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 새롭게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지혜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지혜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욥기 28장은 광부의 모습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고, 어둠 속에 길을 냅니다.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고 산을 뒤집어 금과 은을 찾아냅니다. 광부의 노력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는 실제로 귀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탐색을 마친 뒤에도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그 질문을 따라 시선은 땅속에서 바다로, 깊음에서 죽음의 영역으로 옮겨 갑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지혜를 찾지 못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신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 모든 길을 보여 주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지혜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알고, 악에서 떠나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말씀하신 지혜입니다.

광부는 다시 땅속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찾아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찾아내기 위해 끝없이 더 깊이 내려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