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삼손과 블레셋

천 명을 쓰러뜨려도 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쓰러뜨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힘을 발휘한 사람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천 명을 상대할 수 있었던 사람이 물 한 모금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는 더 근본적인 긴장이 흐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삼손을 세우셨지만, 정작 삼손은 자신의 억울함을 갚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구원해야 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묶어 적에게 넘기려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이런 사람들과 이런 상황을 통하여 이루어집니까? 사사기 15장은 이 질문에 단순한 대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삼손의 분노, 유다 사람들의 두려움, 여호와야훼의 영이 일으키는 놀라운 힘,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내어 주시는 물을 차례로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3분소단락 715장 본문 읽기 →

되찾으려는 아내, 되돌릴 수 없는 관계

사사기 15:1–3 본문 →

이야기는 밀을 거두는 때에 시작됩니다. 삼손은 새끼 염소를 가지고 아내를 찾아갑니다. 그는 아내가 있는 방에 들어가려 하지만 장인이 막아섭니다. 그 사이 장인은 삼손의 아내를 삼손의 동무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삼손은 결혼 잔치에서 수수께끼를 둘러싼 갈등을 겪은 뒤 분노하여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5장에서 삼손은 여전히 그 여자를 자신의 아내라고 부릅니다.

아내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분명 네가 그 애를 몹시 미워하는 줄 알았네. 그래서 그 애를 네 동무에게 주었네. 그 애의 여동생이 언니보다 낫지 않은가? 부디 언니 대신 동생을 네 아내로 삼게.」사사기 15:2 · 본디새김

장인은 삼손이 아내를 버렸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관계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황을 수습하려는 제안이지만, 동시에 혼인 관계를 여성들 사이의 교체 가능한 선택처럼 취급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두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해를 입혀도 내게는 죄가 없소.」사사기 15:3 · 본디새김

이 말은 삼손 자신의 판단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을 근거로 앞으로 저지를 해악을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피해를 입은 직접적인 관계는 장인과의 관계인데, 그의 복수 대상은 블레셋 사람들 전체로 넓어집니다.

개인적인 분노가 민족 사이의 충돌로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사사기 14:4의 설명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서술자는 여호와야훼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맞설 계기를 찾고 계셨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삼손의 개인적인 갈등이 블레셋과의 충돌로 이어지는 것은 이야기 전체에서 우연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러한 갈등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과 삼손이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삼손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지만, 서술자는 아직 그런 판정을 내려 주지 않습니다.

불로 시작된 복수가 불로 돌아오다

사사기 15:4–8 본문 →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를 붙잡아 꼬리 두 개를 서로 마주하게 하고 그 사이에 횃불을 묶습니다. 횃불에 불을 붙인 뒤 동물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밭으로 풀어놓습니다.

삼손이 불태운 것은 쌓아 놓은 곡식만이 아닙니다. 아직 서 있는 곡식과 올리브밭까지 포함됩니다. 곡식을 수확할 시기는 한 해의 수고가 결실로 바뀌는 때입니다. 삼손은 바로 그 시기를 이용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생계 기반을 공격합니다.

삼손에게는 장인과 아내를 둘러싼 보복이지만, 피해를 입은 농작물은 그 갈등의 직접 당사자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지 말하지 않지만, 복수가 처음의 갈등 범위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의 대응은 뜻밖입니다.

그들은 누가 불을 질렀는지 묻고, 그 원인이 삼손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삼손이 아니라 그 여자와 여자의 아버지를 불태워 죽입니다.

사사기 14:15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그녀와 아버지의 집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녀는 그 위협을 받고 삼손에게서 답을 얻어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녀는 자신이 피하려 했던 바로 그 죽음을 맞습니다.

이것을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런 도덕적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폭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취약한 처지에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이렇게 한다면, 나는 반드시 너희에게 복수하고 나서야 그만두겠다.」사사기 15:7 · 본디새김

하지만 그가 앞서 벌인 복수도 다시 복수를 불러왔습니다. 이번에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살육한 뒤 바위틈으로 몸을 피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여우로 번역된 동물은 자칼을 포함하는 명칭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8절의 「철저히 쳐부수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언급하는 특이한 관용구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격 방식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뒤따르는 ‘큰 살육’이라는 설명은 피해가 심각했음을 분명히 합니다.

구원자를 묶어 적에게 넘기는 백성

사사기 15:9–13 본문 →

삼손이 에탐 바위틈으로 물러나자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로 올라옵니다. 그들은 삼손을 묶어 데려가려고 합니다.

유다 사람들이 말했다. 「왜 우리를 치러 올라왔소?」 그들이 말했다. 「삼손을 묶으려고 올라왔소. 그가 우리에게 한 대로 그에게 하려는 것이오.」사사기 15:10 · 본디새김

삼손은 자신이 당했기 때문에 복수했고, 블레셋 사람들도 삼손이 자기들에게 한 일을 그대로 되갚겠다고 말합니다. 양쪽 모두 보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상대방의 앞선 행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은 삼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에서 남자 삼천 명이 에탐 바위틈으로 내려가 삼손에게 말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오?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이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이 제게 한 대로 저도 그들에게 했습니다.」사사기 15:11 · 본디새김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의 지배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미 받아들여야 할 현실로 여깁니다. 그들이 삼손에게 따지는 것은 왜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 지배 아래에서 문제를 일으켰느냐는 것입니다.

삼손의 행동 때문에 블레셋 군대가 유다까지 진격했고, 유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느끼는 위협을 실제로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위협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 역설적입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적과 싸우는 대신,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에게 맞선 자기편 사람을 묶습니다.

유다에는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지배자를 상대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지배자가 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장면은 사사기 13:5에 기록된 삼손의 사명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할 인물로 예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해야 할 사람들은 아직 그를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잡으러 온 삼천 명과 싸우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직접 자신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도록 요구합니다. 유다 사람들은 그를 죽이지 않고 결박해서 넘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는 새 밧줄 두 가닥에 묶여 바위에서 끌려 올라갑니다.

사람의 손으로 묶은 밧줄, 여호와야훼의 영으로 풀린 결박

사사기 15:14–17 본문 →

삼손이 레히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함성을 지릅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싸움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삼손은 묶여 있고,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입니다.

그가 레히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향해 함성을 질렀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임했다. 그의 팔에 감긴 밧줄들이 불에 타 버린 아마처럼 되었고, 그의 손을 묶은 줄들이 녹아 떨어졌다.사사기 15:14 · 본디새김

삼손이 곡식에 붙인 불은 파괴를 일으켰고, 블레셋 사람들이 일으킨 불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에 타 버린 아마의 모습이 삼손의 결박을 묘사합니다.

삼손은 주변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나귀 턱뼈를 발견하고 그것을 집어 듭니다.

나귀 턱뼈는 전사를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아닙니다. 삼손은 그 자리에서 발견한 것을 손에 쥐고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합니다.

이 장면의 초점은 특별한 무기의 위력보다 그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임한 여호와야훼의 영에 있습니다.

천 명을 쓰러뜨린 뒤 삼손은 짧은 승리의 노래를 부릅니다.

삼손이 말했다. 「나귀 턱뼈로 한 무더기, 두 무더기. 나귀 턱뼈로 내가 남자 천 명을 쳐 죽였다.」사사기 15:16 · 본디새김

삼손은 그 턱뼈를 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삼손이 부른 승리의 노래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서술자는 분명히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했다고 말했지만, 삼손의 노래는 자신의 행동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승리를 노래하는 이 장면과 바로 뒤에 나오는 그의 기도는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는 한국어로 옮기기 어려운 소리놀이가 들어 있습니다. 정확한 수사적 표현을 한 가지로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삼손이 나귀와 시체의 무더기를 비슷한 소리로 연결해 자신의 승리를 노래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레히는 히브리어로 턱뼈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지명은 삼손이 턱뼈를 발견하기 전인 9절과 14절에도 이미 등장합니다. 따라서 삼손이 이 사건으로 레히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어 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서술자는 이미 등장한 지명과 턱뼈 사이의 소리상 연결을 활용하면서, 라맛 레히라는 이름으로 그 승리를 기억하게 합니다.

천 명을 쓰러뜨린 사람이 목말라 쓰러지다

사사기 15:18–19 본문 →

삼손은 천 명을 쓰러뜨렸지만, 싸움이 끝난 직후 몹시 목이 마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삼손이 여호와야훼를 부릅니다.

그는 몹시 목이 말라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으며 말했다. 「주님께서 주님의 종의 손을 통해 이 큰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목말라 죽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의 손에 떨어져야 합니까?」사사기 15:18 · 본디새김

이제 삼손은 자신을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그 구원이 이루어진 통로로 표현합니다. 자신의 손이 사용되었지만, 구원을 베푸신 분은 여호와야훼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승리를 단순한 복수나 살육이 아니라 「큰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삼손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단순히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기도에서는 인정합니다. 그는 곧바로 목말라 죽게 될 처지를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말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레히에 있는 절구 모양의 움푹한 곳을 갈라 물이 나오게 하십니다. 삼손이 그 물을 마시자 기운이 돌아오고 소생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하자 삼손은 적을 쓰러뜨렸고, 하나님이 물을 주시자 삼손 자신의 기운이 돌아와 다시 살아났습니다.

구원은 적을 물리치는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필요합니다.

삼손은 그 샘에 엔 학코레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름은 흔히 ‘부르짖는 자의 샘’으로 이해됩니다. 실제로 18절에서 삼손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다’는 동사와 이름 속 표현이 연결됩니다.

한 장소에는 적을 쓰러뜨린 사람의 승리가 기억되고, 다른 장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생명을 얻은 사람의 경험이 기억됩니다.

조금 더 깊이

18절의 마지막 문장은 히브리어로 반드시 의문문으로 번역해야 하는 형식은 아니어서,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죽음과 패배를 말하는 탄식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이 선택한 것처럼 여호와야훼께 구원을 요청하는 반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레히라는 말이 턱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실제 나귀 턱뼈 자체에서 물이 흘러나왔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지형이 열리고 그곳에서 물이 나왔다고 전합니다. 14절에서 삼손에게 임한 것은 ‘여호와야훼의 영’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물을 마신 뒤 돌아온 것도 ‘그의 영’이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문맥상 신체적인 기력이 회복되었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장면은 광야에서 물이 없어 갈증을 겪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물을 주신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출애굽기 17:1–7).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갈증 앞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유지할 물을 내어 주신다는 주제는 이어집니다.

스무 해의 통치, 그러나 끝나지 않은 지배

사사기 15:20 본문 →

장은 짧은 문장으로 끝납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지배하던 때에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사사기 15:20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로 가득하지만, 그는 단순한 싸움꾼으로만 소개되지 않습니다.

사사기의 앞선 이야기에서는 사사의 승리 뒤에 땅이 평온해졌다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옷니엘의 이야기에서는 사십 년 동안 땅이 평온했고(3:11), 에훗의 이야기에서는 팔십 년 동안 평온했다고 기록됩니다(3:30). 드보라와 기드온의 이야기에도 비슷한 결말이 있습니다(5:31; 8:28).

그러나 삼손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지만, 블레셋의 지배 자체가 끝났다고 기록되지는 않습니다. 사사기 13:5에서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사람이라고 예고된 사실과도 어울립니다.

그의 활동에는 실제적인 구원의 성격이 있지만, 그 구원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훗날 히브리서 11:32는 삼손을 믿음의 선례들 가운데 언급합니다. 이것은 그의 삶을 돌아보는 신약의 신앙적 평가이지, 사사기 15장에 등장하는 모든 복수 행위를 정당화하는 직접적인 판정은 아닙니다. 사사기 자체가 보여 주는 이 인물의 긴장과 불완전함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구원자의 힘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

사사기 15:1–20 본문 →

삼손은 하나님의 목적보다 자신의 분노에 끌려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기보다 익숙해진 지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일은 그들의 불완전함 때문에 멈추지 않습니다.

조금 전까지 천 명을 쓰러뜨렸던 삼손이 이제는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적의 시체를 무더기로 쌓지도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열어 주신 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십니다.

그렇게 그의 기운이 돌아오고, 그는 다시 살아납니다.

삼손의 손은 천 명을 쓰러뜨렸지만, 그 손의 주인을 살린 것은 하나님이 내어 주신 물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