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2장 · 무너진 성벽 소식

한 사람의 마음에서 여러 사람의 손으로

느헤미야 2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페르시아 왕이 예루살렘 재건을 허락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가 한밤중에 몇 사람만 데리고 무너진 성벽을 살피는 장면입니다.

왕은 이미 그를 보내 주었습니다. 통행을 보장하는 서신도 주었고,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얻을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군대 지휘관과 기병까지 동행시켰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밤에 조용히 밖으로 나가 성벽을 살펴보고, 길이 막혀 짐승조차 지나갈 수 없는 곳까지 확인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왕의 허락은 성벽 재건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것만으로 성벽이 다시 세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는 왕의 허락과 별개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의 실제 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길을 열어야 했으며,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에도 대응해야 했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72장 본문 읽기 →

왕이 먼저 느헤미야의 슬픔을 알아보다

느헤미야 2:1–3 본문 →

얼굴에 드러난 슬픔이 이야기를 움직이다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었다. 나는 포도주를 들어 왕에게 주었다. 나는 그전까지 왕 앞에서 슬픈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느헤미야 2:1 · 본디새김

분명한 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은 바로 그날 왕 앞에 나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무엇을 준비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왕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요청을 보면, 그는 단순히 유다로 보내 달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통행 허가와 목재 공급까지 구체적으로 요청합니다.

그런데 왕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계기는 느헤미야의 제안이 아니라 그의 얼굴입니다.

왕이 내게 말했다. 「네 얼굴이 왜 슬프냐? 너는 병든 것도 아니니, 이것은 마음의 슬픔일 뿐이다.」 나는 몹시도 두려웠다.느헤미야 2:2 · 본디새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왕의 도움을 요청할 기회는 그가 의도적으로 준비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열린 것이 아니라, 감추지 못한 슬픔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왕에게 말했다. 「임금님, 영원히 사시기를 빕니다. 제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읍이 폐허가 되고 그 성문들이 불에 타 버렸는데, 제 얼굴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느헤미야 2:3 · 본디새김

「영원히 사시기를 빕니다」라는 말은 왕을 향한 충성과 존경을 나타내는 궁정의 인사 표현입니다. 느헤미야는 처음부터 예루살렘의 정치적 위상이나 과거의 왕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조상들의 무덤을 둔 성읍의 황폐함 때문에 슬퍼한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조상의 무덤은 한 사람이 자기 가문과 땅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무덤이 있는 고향이 폐허가 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무너졌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기억이 이어지는 장소가 훼손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왕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앞 장의 기도는 기슬르월에 시작되었고, 이번 장은 니산월로 넘어갑니다. 기슬르월은 대체로 11~12월, 니산월은 3~4월에 해당하므로, 두 장면 사이에는 여러 달이 흘렀습니다. 두 장 모두 제20년으로 기록된 것은 당시의 연도 계산 방식과 관련하여 설명이 갈리는 부분이지만, 정확한 계산 방식까지 본문이 밝혀 주지는 않습니다. 왜 두려웠는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 앞에서 평소와 다른 표정을 보인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거나, 왕의 질문에 따라 자신의 민감한 요청을 밝혀야 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궁정에서 슬픈 표정을 지으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특정 법률이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이 구절에 없습니다. 「제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읍」이라는 표현을 왕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볼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느헤미야의 정확한 계산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의 요청을 왕이 이해할 수 있는 개인적 슬픔의 언어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땅의 왕에게 요청하다

느헤미야 2:4–8 본문 →

두 질문과 그 사이의 짧은 기도

왕이 내게 말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청하느냐?」 나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다.느헤미야 2:4 · 본디새김

이 기도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했는지, 마음속으로 기도했는지도 본문은 명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왕의 질문과 느헤미야의 대답 사이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놓여 있습니다.

앞 장에서는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여기서는 긴 기도를 드릴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왕이 직접 질문한 자리에서 그에 대한 대답이 이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두 기도의 모습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향한 태도는 같습니다.

왕은 그를 유다로 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권한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최종적인 근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왕에게 요청할 말이 있을 때에도, 느헤미야가 먼저 마음을 향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나는 왕에게 말했다. 「임금님께서 좋게 여기시고 임금님의 종인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신다면, 저를 유다로, 제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읍으로 보내 주십시오. 제가 그 성읍을 다시 세우겠습니다.」느헤미야 2:5 · 본디새김

이 요청에는 분명한 책임의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져 있으니 누군가를 보내 고쳐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서 그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시기를 기도했지만, 그 회복에 자신이 참여할 책임을 피하지 않습니다.

왕이 물은 것은 재건의 정당성이 아니라 여행 기간이었다

왕비가 왕 곁에 앉아 있었고, 왕이 내게 말했다. 「네 여행은 얼마나 걸리겠느냐? 언제 돌아오겠느냐?」 왕은 이를 좋게 여겨 나를 보내 주었고, 나는 왕에게 기한을 밝혔다.느헤미야 2:6 · 본디새김

이 질문은 왕이 느헤미야의 요청을 실제로 허락할 수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의 입장에서 느헤미야는 궁정에서 일하는 관리입니다. 그가 유다에 간다는 것은 왕을 섬기던 자리에서 상당 기간 떠난다는 뜻입니다. 왕에게는 그가 언제 돌아올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허락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허락에서 실제 실행으로

7–8절에서 느헤미야는 두 종류의 서신을 요청합니다.

나는 왕에게 말했다. 「임금님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제가 유다에 이를 때까지 강 건너편 총독들이 저를 통과시켜 주도록 그들에게 보낼 서신들을 제게 주십시오.」느헤미야 2:7 · 본디새김

「강 건너편」은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적 관점에서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지방 관리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자신을 통과시켜 줄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왕의 결정이 지방 행정의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하도록 문서로 보장받으려 합니다.

둘째는 목재 공급을 위한 서신입니다.

「또 임금님의 동산을 지키는 아삽에게 보낼 서신도 주십시오. 성전에 딸린 성채의 성문에 들보를 얹는 데 쓸 목재와 성읍의 성벽에 쓸 목재와 제가 들어가 살 집에 쓸 목재를 그가 제게 주도록 해 주십시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었으므로 왕은 내게 그것들을 주었다.느헤미야 2:8 · 본디새김

느헤미야의 믿음은 구체적인 준비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성공을 구하면서도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을 빠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본문은 왕이 허락한 이유를 느헤미야의 말솜씨나 준비성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자신은 그 일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을 보았습니다.

이는 왕의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왕에게 어떤 생각을 직접 주셨는지, 왕이 어떤 정치적 계산을 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필요한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입니다.

에스라 7:6, 9, 28과 8:18, 31에도 하나님의 손이 그분의 백성을 돕고 인도하신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는 중요한 신앙 언어입니다.

이제 느헤미야에게는 왕의 서신과 물자가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야기는 곧바로 재건 공사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느헤미야는 왕에게 기한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얼마의 기간을 말했는지는 이 장에서 알 수 없습니다. 뒤에 느헤미야 5:14와 13:6을 읽을 때 그의 유다 체류와 왕궁 복귀에 관한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2:6에서 처음 제시한 기간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전에 딸린 성채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후대에 건축된 특정 요새와 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유익한 행동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느헤미야 2:9–10 본문 →

왕이 허락한 내용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서신을 지방 관리들에게 전달했고, 무장한 호위대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이는 그의 여행이 단순한 사적인 귀향이 아니라 제국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이 있다고 해서 현지의 모든 권력자가 그 일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인 종 도비야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의 유익을 구하려고 왔다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느헤미야 2:10 · 본디새김

그들은 느헤미야의 활동에 반대할 수 있는 지역적 관계와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의미를 살려 읽으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매우 나쁜 일이었습니다.

같은 사건이 누구에게는 백성의 회복을 위한 좋은 일이고, 다른 누구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아직 그들이 왜 반대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역적 권한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을 그들의 유일한 동기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은 그를 보내는 것을 좋게 여겼고(2:6),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고백했으며(2:8), 산발랏과 도비야는 이스라엘을 위한 좋은 일을 나쁜 일처럼 여겼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제국의 행정과 지역의 반대를 뒤로하고 예루살렘 내부로 들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산발랏은 「호론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이 지명이 벧호론과 관련되는지, 모압의 호로나임과 관련되는지 등 정확한 출신지의 해석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뒤이은 이야기에서 그는 사마리아 지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납니다(4:1–2). 도비야는 「암몬 사람인 종」이라고 소개됩니다. 여기서 「종」이 낮추어 부르는 표현인지, 어떤 통치자를 섬기는 관리의 지위와 관련된 표현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느헤미야서 후반에는 그가 유다 내부의 유력자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6:17–19).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무너진 성벽을 살피다

느헤미야 2:11–16 본문 →

왕의 지원을 받은 사람이 왜 혼자 움직이는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지만 즉시 공사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흘 동안 머문 뒤 밤에 움직입니다.

밤에 나는 몇몇 사람과 함께 일어났다. 내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할 일을 내 마음에 넣어 주었다. 나는 그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있는 짐승은 내가 타는 짐승뿐이었다.느헤미야 2:12 · 본디새김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이 단지 개인적인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나님께서 재건 공사의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알려 주셨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을 느헤미야의 마음에 넣으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넣어 주신 일을 이루기 위해 성벽을 직접 살펴보러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도록 마음에 넣어 주셨다고 믿는 것과, 그 일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을 자세히 살피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왜 자신의 계획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까요?

본문은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반대 세력에게 계획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 했거나, 성벽의 상태를 먼저 확인한 뒤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왕의 보호 아래 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은, 정작 자신이 하려는 일을 준비할 때에는 눈에 띄지 않도록 움직입니다.

무너진 성벽이 말을 가로막다

나는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 용의 샘 앞을 지나 쓰레기 문 쪽으로 갔다. 나는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보았다. 성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성문들은 불에 타 버렸다.느헤미야 2:13 · 본디새김

느헤미야는 성벽 바깥으로 나가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성벽의 상태를 살핀 것으로 이해됩니다. 골짜기 문, 용의 샘, 쓰레기 문, 샘 문, 왕의 못이라는 장소들이 차례로 나옵니다. 이 지명들은 느헤미야가 막연하게 예루살렘의 참상을 둘러본 것이 아니라 실제 성벽의 특정 구간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나는 샘 문과 왕의 못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내가 타고 있던 짐승이 지나갈 자리가 없었다.느헤미야 2:14 · 본디새김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상태는 말로 전달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수산에서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왕 앞에서도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곳에 도착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가 다시 세워야 할 도시는 문서 속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고, 무너진 돌들이 실제로 길을 막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막힌 길 앞에서 무리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경로를 바꾸어 살펴본 뒤 돌아옵니다. 이후 그가 성벽을 세우는 사람으로 등장하기 전에, 본문은 성벽의 실제 상태를 확인하는 장면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합니다. 이것은 재건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일을 다루는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숨겨 둔 계획이 공동체의 일이 되기까지

관리들은 내가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유다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일꾼들에게도 그때까지 알리지 않았다.느헤미야 2:16 · 본디새김

이 명단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 느헤미야가 혼자 추진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았고, 필요한 자원을 마련했으며, 현장도 살폈습니다.

그러나 성벽은 그 혼자 세울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은 왕궁에서 내려오는 명령만으로 완성될 일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장면 이후에 느헤미야의 말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문의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의 지형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일부 지명의 위치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느헤미야가 이동한 경로를 현대 지도 위에 오차 없이 그릴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왜 길이 막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돌과 잔해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한 장애물의 상태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내가 세우겠습니다」에서 「우리가 세웁시다」로

느헤미야 2:17–18 본문 →

공동체를 설득하는 첫 문장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처한 고난을 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그 성문들은 불에 탔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워 우리가 더는 수치거리가 되지 않게 합시다.」느헤미야 2:17 · 본디새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수산의 왕궁에서 생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처한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한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외부에서 파견된 해결자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고난을 자신의 공동체가 겪는 고난으로 받아들입니다.

왕 앞에서는 「제가 그 성읍을 다시 세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서는 「다시 세워 우리가 더는 수치거리가 되지 않게 합시다」라고 말합니다.

왕에게는 자신이 책임지고 할 일을 밝힙니다. 그러나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공동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미 성벽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살아왔고, 그 상태를 매일 보았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이 모르던 문제를 발견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바꾸어 제시합니다.

수치를 끝내자는 요청

그는 단순히 성벽을 높이 쌓아서 도시를 강하게 만들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수치 가운데 있는 공동체의 처지를 바꾸자고 말합니다. 이 수치의 문제가 성벽 재건과 연결되는 것은 고대 도시에서 성벽이 방어와 안전, 도시의 존속을 위한 핵심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벽을 완성한다고 해서 모든 수치와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느헤미야서 후반에 나타나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들이 그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백성의 삶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과 사람들의 손

나는 내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선하게 임한 일과 왕이 내게 한 말도 그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일어나 다시 세웁시다.」 하고 말했다. 그들은 그 좋은 일을 위해 힘을 냈다.느헤미야 2:18 · 본디새김

히브리어 본문은 이 두 장면을 같은 신체 이미지로 연결합니다. 즉, 하나님의 손이 느헤미야 위에 선하게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좋은 일을 위해 자신들의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의 손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왕이 실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도 전합니다. 공동체는 그 말을 듣고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막연한 희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신앙과 현실적인 근거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이제 재건은 느헤미야 한 사람의 계획만이 아닙니다.

17절에서 그가 제안했던 「다시 세웁시다」가 18절에서 공동체 자신의 말이 되었습니다. 앞서 10절에서는 느헤미야가 「한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한 사람이 시작한 일이 여러 사람의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너희가 왕에게 반역하는 것이냐?」

느헤미야 2:19–20 본문 →

재건의 반대자들은 왜 반역이라는 말을 꺼냈을까?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인 종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소식을 듣고 우리를 비웃고 업신여기며 말했다. 「너희가 하는 이 일이 대체 무엇이냐? 너희가 왕에게 반역하는 것이냐?」느헤미야 2:19 · 본디새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는 도시가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일 수 있었습니다. 성벽은 외부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외부 통치 세력이 도시를 통제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 도시가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은 제국의 관점에서 충성이나 반역과 관련된 문제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반역자로 몰린다면 예루살렘 재건은 중단될 수 있고, 느헤미야 자신도 왕에게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었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아 시작하려는 일을 두고, 반대자들은 왕에게 반역하는 일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왕의 서신이 있다는 사실을 내세워 반박할까요?

뜻밖에도 그의 대답은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왕의 서신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의 하나님, 바로 그가 우리를 성공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종들로서 일어나 다시 세울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너희 몫도, 정당한 권리도, 너희에 대한 기억도 없다.」느헤미야 2:20 · 본디새김

느헤미야의 확신은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한 종이며,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게 하실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18절에서 공동체가 「일어나 다시 세웁시다」라고 말한 것이 여기서 반복됩니다. 18절에서는 함께 일할 사람들 사이에서 재건 의지가 표현되었습니다. 20절에서는 반대자들을 향해 그 결단이 다시 선언됩니다.

공동체 내부의 결심이 외부의 반대 앞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가 「내가」가 아니라 「우리는」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왕에게 보냄받은 사람이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을 공동체와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종 가운데 하나로 제시합니다.

「너희 몫도, 정당한 권리도, 기억도 없다」

20절 후반의 말은 상당히 강합니다.

이 세 표현을 함께 읽으면 느헤미야가 반대자들의 예루살렘에 대한 권리 주장을 포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반대자들의 조롱과 위협 때문에 그들에게 재건 사업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거나 결정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 말이 단순히 이방 민족은 예루살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선언한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 문맥에서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은 재건 사업을 비웃고, 이를 반역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느헤미야의 말은 그처럼 재건을 방해하는 특정 인물들에게 향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2:20에서 문제는 반대자들의 민족적 출신만이 아니라, 이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향해 취하고 있는 적대적인 태도와 그 일에 개입하려는 주장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어떤 법적 권리를 주장했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으므로, 느헤미야의 선언을 현대적인 의미의 재산권이나 시민권에 관한 판결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세운 모든 계획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법칙도 아닙니다. 이 장에서 느헤미야의 확신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믿음, 왕이 실제로 내린 허락, 그리고 함께 일하려는 공동체의 결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의 믿음을 오늘날 어떤 사업이나 개인적인 계획의 성공을 보장하는 공식처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우려가 실제로 제기된 사례가 에스라 4:12–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루살렘 재건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보내, 예루살렘이 다시 세워지면 세금과 조공을 내지 않고 왕에게 반역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왕은 그 문제를 조사하도록 한 뒤 재건을 중단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에스라서 4장의 시간 배열과 느헤미야 2장의 사건을 정확히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는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 기록이 반드시 같은 시점의 반대 운동을 묘사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정당한 권리」는 츠다카입니다. 보통 의로움이나 정당함과 관련된 뜻을 지니지만, 이 문맥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억」은 지카론으로, 기억이나 기념을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예루살렘과의 관계를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 근거나 인정받는 기억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행정 기록이나 법적 절차를 뜻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라 4:3에서도 성전 재건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재건에 참여할 권리를 둘러싼 비슷한 주장이 나옵니다. 하지만 두 본문을 모든 외국인에 대한 포괄적인 배제 원칙으로 단순화하면 각각의 구체적인 갈등을 놓치게 됩니다. 구약 전체에는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며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룻기의 룻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맺음 — 무너진 성벽 앞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느헤미야 2:1–20 본문 →

느헤미야 2장의 마지막에서 성벽은 여전히 무너져 있습니다.

왕궁에서 시작된 느헤미야의 요청은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그가 혼자 마음에 품었던 일은 이제 공동체가 함께 하려는 일이 되었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은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일이, 하나님의 선한 손에 대한 고백을 거쳐 여러 사람의 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샘 문과 왕의 못 부근에서 짐승조차 지나가지 못했던 길도 아직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불에 탄 성문과 허물어진 돌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지만, 성벽을 세울 사람들이 일어섰습니다.

느헤미야 2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