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81편

이 장의 자리 · 73–89편 · 셋째 권

입을 채우려 하신 하나님과 귀를 닫은 백성

축제가 시작됩니다. 소고와 현악기가 울리고, 뿔나팔 소리가 사람들을 부릅니다. 시인은 백성에게 기쁨의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 축제의 음악은 오래 이어지지 않습니다.

찬양이 한창인 가운데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분은 이집트에서 백성을 구원하신 일을 기억시키고, 자신만을 섬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네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그것을 채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백성은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겠다고 선언하시는 대신, 더욱 가슴 아픈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자기 고집과 계획대로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하고 탄식하십니다.

이것이 시편 81편의 뜻밖의 반전입니다. 처음에는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노래의 중심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해 안타까움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자신을 찬양하는 소리만 듣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백성이 자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편의 첫머리는 「환성을 올려라」라는 명령으로 가득하지만, 중심부에서는 「들어라」라는 하나님의 요청이 반복됩니다. 노래하라는 부름이 들으라는 부름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앞선 시편 80편에서는 백성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되돌려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시편 81편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자신이 인도하시는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시편을 나란히 읽으면 관계의 회복을 구하는 백성의 목소리와, 그 관계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881편 본문 읽기 →

기쁨의 노래는 무엇을 기억하기 위한 것인가

시편 81:1–5 본문 →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를 울려라. 야곱의 하나님께 환성을 올려라.시편 81:2 · 본디새김

시편은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기뻐하고, 환성을 올리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분위기는 분명합니다.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활기찬 예배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우리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이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넘어, 백성이 의지하는 힘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군사력이나 풍요를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환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노래를 소리 높여 불러라. 소고를 쳐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리라를 하프와 함께 연주하여라.시편 81:3 · 본디새김

사람의 목소리와 타악기, 현악기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예배가 단순히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소리로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동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15:20–21에서도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뒤 미리암과 여자들이 소고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기쁨이 음악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기분이 좋을 때 찬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초하루에 뿔나팔을 불어라. 보름에, 우리의 축제 날에 불어라.시편 81:4 · 본디새김
이는 이스라엘을 위한 규례이며, 야곱의 하나님께 속한 법이기 때문이다.시편 81:5 · 본디새김

이제 음악은 정해진 축제의 시간과 연결됩니다. 초하루와 보름이 언급되고, 뿔나팔이 울립니다. 원문만으로 축제의 정확한 날짜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축제의 정확한 이름보다 그 축제가 지닌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정하신 규례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규례와 법에 따라 울려 퍼집니다.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일정한 시간에 반복하도록 하셨을까요? 이 축제는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도록 마련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노래는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현재로 불러오는 행동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함께 노래하면서 자신들이 어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인지 다시 깨닫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 음악을 통해 백성이 무엇을 기억하고, 누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시편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조금 더 깊이

표제의 「깃딧」은 다른 시편의 표제에도 등장하는 음악적 용어입니다(시편 8:1; 84:1). 가드라는 지명이나 포도주 틀과 관련된 표현일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히 어떤 음악적 지시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초하루」는 달이 새로 시작되는 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호데쉬를 따른 것입니다. 반면 「보름」에 해당하는 케세는 뜻이 확정적이지 않은 낱말입니다. 보름달을 가리킨다고 읽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해진 축제의 때나 달이 가려진 시점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특정한 달의 위상보다 축제의 특별한 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옮깁니다. 민수기 29:1에는 일곱째 달 초하루에 나팔을 부는 날이 규정되어 있고, 같은 장 12절에는 일곱째 달 열닷새 날부터 시작하는 초막절이 등장합니다. 이런 규정은 시편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이 반드시 초막절에만 사용되었다거나, 오직 한 가지 특정 절기만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축제 가운데 낯선 목소리가 들리다

시편 81:6–8 본문 →

그가 이집트 땅을 치러 나아갈 때, 요셉 가운데 그것을 증언으로 세웠다. 나는 알지 못하던 말을 듣는다.시편 81:6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시편에서 가장 독특한 전환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에서는 모두 함께 찬양하라는 명령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떤 증언이 세워졌다는 말과 함께 「나는 알지 못하던 말을 듣는다」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먼저 「그가 이집트 땅을 치러 나아갈 때」라는 표현에는 주어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 심판을 행하시기 위해 나아가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2:12에서 하나님은 이집트 땅을 지나가시며 그 땅의 맏이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요셉이 이집트 땅을 다닌 사건과 연결하여 읽을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창세기 41:45–46에서도 요셉이 이집트 땅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시인이 출애굽 때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증언을 세우신 일을 가리킨다는 이해는 자연스럽지만, 문장의 모든 세부 사항이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어려운 부분은 「나는 알지 못하던 말을 듣는다」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낯선 언어를 들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4:1에서는 이스라엘이 낯선 말을 하는 백성에게서 나왔다고 묘사됩니다.

반면 시편을 인도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면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구절은 뒤이어 나오는 하나님의 직접 발언을 소개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시인은 찬양을 부르다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어느 읽기가 반드시 옳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뒤따르는 구절에서 화자가 하나님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짐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의 두 손은 바구니에서 벗어났다.」시편 81:7 · 본디새김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먼저 떠올리시는 모습은 웅장한 기적이 아닙니다. 짐을 지던 어깨와 바구니를 들던 손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 노동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1:11–14에는 강제 노동과 건축 작업에 시달리던 백성의 처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셨고, 그 손을 노동에서 해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한 민족을 다른 나라에서 이동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짐을 지고 살던 사람들의 몸을 억압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네가 곤경 속에서 부르짖었고, 나는 너를 건져 냈다. 천둥의 은신처에서 네게 대답했고, 므리바의 물가에서 너를 시험했다.」 셀라.시편 81:8 · 본디새김

「천둥의 은신처」는 하나님의 위엄과 감추어진 임재를 나타내는 시적 표현입니다. 출애굽기의 시내산 현현에서도 천둥과 구름이 등장하지만(출애굽기 19:16), 이 표현을 반드시 그 사건 하나에만 연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감추신 채 천둥 가운데 응답하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므리바의 물가」는 이스라엘이 물을 두고 다투었던 사건과 연결되는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17:1–7에서는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하며 모세와 다투고 여호와야훼를 시험했습니다. 민수기 20:1–13에도 므리바 물가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81편에서는 하나님이 「너를 시험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이 시편에서는 그 사건이 백성의 신실함이 드러나는 시험의 자리로 묘사됩니다.

이 두 표현은 반드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시험하며 그분의 돌보심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위기에서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그분의 말씀에 어떻게 응답하는지가 드러났습니다.

8절의 마지막 단어는 「셀라」입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건져 내셨다는 선언과 므리바의 시험이 함께 놓인 뒤, 노래는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다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데서 현재의 백성에게 요구하는 일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요셉」은 일반적인 히브리어 표기와 달리 특별한 형태인 예호세프로 나타납니다. 이 이름을 사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창세기의 요셉 개인이 이 구절의 주인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시편에서 요셉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사용됩니다(시편 80:2). 또 「바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두드는 이 문맥에서 운반 용기로 이해할 수 있지만, 재료나 그 안에 담긴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시편 81:9–11 본문 →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네게 경고하겠다. 이스라엘아, 네가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좋으련만.」시편 81:9 · 본디새김

여기서 시편의 중심 단어가 등장합니다. 「들어라」입니다.

시편은 이미 여러 차례 소리를 강조했습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환성을 올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뿔나팔을 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백성에게 듣기를 요구하십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 많은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축제나 더 많은 악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 셰마(⁨שָׁמַע⁩)는 듣는다는 뜻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문맥에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6:4의 「이스라엘아, 들어라」라는 부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는 여호와야훼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시편 81편에서도 듣는 일은 곧 하나님만을 섬기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네 가운데 낯선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이방 신에게 엎드려서는 안 된다.」시편 81:10 · 본디새김

이 명령은 출애굽기 20:2–3의 십계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시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시편 81편에서도 같은 순서가 나타납니다. 먼저 하나님이 구원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께만 충성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에게 충분히 충성했기 때문에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그들을 건져 내셨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살아가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들은 아무 신이나 선택하여 섬기는 독립적인 종교 소비자가 아닙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백성입니다. 따라서 다른 신들에게 엎드리는 일은 단순히 종교적인 선택지를 하나 더 갖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십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올린 여호와야훼, 네 하나님이다. 네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그것을 채우겠다.」시편 81:11 · 본디새김

앞의 문장은 십계명의 서두와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문장은 뜻밖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단순히 명령만 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먹이시고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표현은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가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이나, 배고픈 사람이 충분한 음식을 받으려고 입을 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본문이 특정 동물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므로 어느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입을 크게 벌린다는 행동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공급을 받으려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다른 신들에게 엎드리지 말라는 명령은 백성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신뢰하라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다른 신들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빈손으로 살아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실현되는 데에는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자기 고집대로 살게 하셨다는 말

시편 81:12–13 본문 →

「그러나 내 백성은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내게 응하려 하지 않았다.」시편 81:12 · 본디새김

9절에서는 「들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에서는 「듣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백성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게 응하려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그것을 분명히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구절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병행하여 표현합니다.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의지적인 거부가 강조됩니다.

이것은 시편의 첫 부분과 대조됩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제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이 자신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조가 모든 축제 참여자가 실제로 불순종하고 있었다는 개별적인 판단을 내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시편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불신실함을 회상하면서, 지금 예배하는 공동체에게도 그 말씀을 들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하나님의 행동은 예상과 다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그들 마음의 고집에 내맡겨, 자기들의 계획대로 걸어가게 했다.」시편 81:13 · 본디새김

하나님은 그들을 억지로 순종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의 고집」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완고함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신명기 29:19과 예레미야 7:24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특히 예레미야 7:24에서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계획과 악한 마음의 고집을 따라 걸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심판을 주로 외부에서 닥치는 재앙으로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질병이 발생하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일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심판의 방식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원하는 길을 그대로 가도록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자유와 번영의 표시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자기 고집의 결과에 내맡기시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을 근거로 누군가의 삶이 어려워졌을 때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이런 심판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개인의 실패나 고난에 적용할 수 있는 자동적인 공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이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었으니 이제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안타까움을 드러내십니다.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 하나님의 탄식

시편 81:14–15 본문 →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이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시편 81:14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시편에서 가장 가슴 아픈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다면」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한 조건문 이상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백성이 자신의 말을 듣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불순종을 냉담하게 바라보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백성이 잘못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그들이 그 길에 머무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의 길을 걷기를 바라십니다.

13절에서는 백성이 「자기들의 계획대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14절에서는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걸어간다는 행동은 같습니다.

그러나 길이 다릅니다.

백성의 계획에 따른 길과 하나님의 길입니다. 시편은 인간이 아무 계획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판단과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백성이 하나님의 길을 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는 곧 그들의 원수들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적들을 향해 내 손을 돌릴 텐데.」시편 81:15 · 본디새김

「곧」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구원이 지연된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백성이 실제로 원수들을 물리쳤다는 승리의 기록이 아닙니다. 앞의 「듣기만 한다면」이라는 소망에 이어지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는 신학적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구원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과의 언약 관계에서 백성이 듣고 순종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백성의 응답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을 하나님께 충분히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어떤 적도 이길 수 있다는 일반적인 약속으로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출애굽으로 맺어진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 안에서, 그들의 불순종과 잃어버린 구원의 가능성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의 손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백성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탄식은 시편의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굽실거리는 원수와 영원히 이어지는 때

시편 81:16 본문 →

여호와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은 그에게 굽실거리고, 그들의 때는 영원히 이어질 텐데.시편 81:16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문장의 화자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계속 「내 백성」, 「내 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야훼를 미워하는 자들」, 「그에게」라는 삼인칭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번역은 여기서 하나님의 직접 발언이 일단 끝나고,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어 설명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이것은 가능한 해석입니다. 다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화자가 바뀐다는 명시적인 표시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삼인칭으로 지칭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굽실거리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כָּחַשׁ⁩)는 거짓을 말하거나 진실하지 않게 굴복하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이 그분 앞에서 굴복하거나 마지못해 복종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과는 다릅니다. 적들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저항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굽실거리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원수들처럼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인도하시는 길을 걷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외적인 행동과 하나님을 진실하게 신뢰하는 태도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한편 「그들의 때는 영원히 이어질 텐데」라는 표현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에는 「그들의 때」라는 복수 대명사가 나타나지만, 그것이 앞의 여호와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가리키는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리킨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걸었을 때 오래 지속되는 평안과 번영을 누렸을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반면 앞의 적들을 가리킨다면 그들에게 굴복의 상태나 정해진 운명의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문장 구조만으로 어느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전체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잃어버린 미래가 계속 회상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미래에는 원수들에 대한 승리뿐 아니라 풍성한 공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위에서 나는 꿀 — 하나님이 채우려 하셨던 입

시편 81:17 본문 →

그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좋은 밀을 먹일 텐데. 「나는 바위에서 나는 꿀로 너를 배부르게 할 텐데.」시편 81:17 · 본디새김

시편의 마지막은 음식의 이미지로 돌아옵니다.

「가장 좋은 밀」(⁨חֶלֶב⁩)은 히브리어에서 문자적으로 밀의 기름진 부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곡식 가운데 가장 좋은 것, 풍성하고 질 좋은 양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바위는 원래 꿀을 생산하는 곳이 아닙니다. 물도 부족한 광야의 바위에서 달콤한 꿀이 나온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표현은 신명기 32:13–14와 매우 가깝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바위에서 꿀을 먹이시고, 좋은 양식과 풍성한 것을 주셨다고 노래합니다.

바위에서 꿀을 얻는 모습은 바위틈에 사는 벌이 만든 꿀을 떠올리게 할 수 있으며, 문학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척박한 곳에서도 하나님이 풍성한 양식을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것을 반드시 물리적인 기적을 일으켜 돌 자체에서 꿀이 흘러나오게 하셨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이 인간의 기대와 한계를 넘어선다는 이미지입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네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그것을 채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장 좋은 밀과 바위에서 나는 꿀로 배부르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처음의 약속이 마지막의 구체적인 양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굶주리기를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시고 배부르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결말은 단순한 풍요의 약속보다 더 복잡합니다. 17절 전반의 「그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좋은 밀을 먹일 텐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형태상 과거의 행동을 나타내는 방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과거에 좋은 양식을 먹이셨다고 회상하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반면 14절부터 이어지는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의 문맥을 따르면,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누렸을 풍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나는 … 너를 배부르게 할 텐데」라는 하나님의 일인칭 말씀이 다시 나타납니다. 화자가 바뀌는 정확한 지점에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시편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이 직접 백성을 배부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시편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왔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른 신들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풍성한 양식을 공급하셨다는 완성된 회복의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 속에서 끝납니다.

하나님이 아직 채우지 못하신 입

시편 81:1–17 본문 →

하나님은 백성에게 귀를 열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은 귀를 닫았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셨고, 그러면 자신이 채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명령은 구원을 받기 위해 먼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관계의 방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유가 반드시 더 충만한 삶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편은 그 사실을 명령보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탄식으로 보여 줍니다.

시편 81편은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하는 축제로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뿔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축제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백성이 짐을 지던 어깨와 바구니를 들던 손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먹이고 싶으셨습니다. 그들의 입을 채우시고,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고, 자신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고집대로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그 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이 말은 단순히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감정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편의 예배에 참여하는 백성은 지금 그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불순종을 회상하시는 말씀은 현재의 예배자들에게 다시 한번 선택의 자리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축제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가 끝난 뒤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시편은 그 대답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바위에서 나는 꿀로 너를 배부르게 할 텐데」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약속을 들려줍니다. 바위는 딱딱하고 메마른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바위에서조차 꿀을 공급하실 수 있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시편 81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시작하지만, 하나님이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노래는 울려 퍼졌습니다.

이제 백성이 들어야 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말씀의 끝에는, 메마른 바위에서 흘러나올 꿀의 풍성함이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