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82편

이 장의 자리 · 73–89편 · 셋째 권

신들마저 심판받는 법정

시편 82편은 성경에서 가장 낯선 법정 장면 가운데 하나로 시작합니다. 재판석에 선 피고인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을 「신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권위를 지녔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먼저 그들이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물으십니다.

이 장면에는 뜻밖의 역전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재판하던 자들이 이제 재판받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잘못을 단순히 몇몇 사람에게 해를 끼친 일로 다루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불의 때문에 땅의 모든 기초가 흔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82편에서 정의는 하나님이 세상에 부가적으로 요구하시는 미덕이 아닙니다. 세상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질서 자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은 여덟 절밖에 되지 않지만, 하나의 재판이 시작되고 끝나는 과정을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법정에 서십니다(1절). 불의한 재판관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다시 명령하십니다(2–4절). 그들의 무지가 세상에 가져온 결과를 밝히십니다(5절). 마침내 그들에게 주어졌던 높은 지위와 그들이 맞을 심판을 선언하십니다(6–7절). 그러자 마지막으로 시인이 하나님께 직접 땅을 심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8절).

시편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시작하여 온 땅을 향한 기도로 끝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682편 본문 읽기 →

하나님이 신들 가운데 서시다

시편 82:1 본문 →

아삽의 시편. 하나님은 하나님의 회중에 서 있었다. 신들 가운데서 재판했다.시편 82:1 · 본디새김

이 절은 동일한 단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처음 나오는 「하나님」도 엘로힘이고, 뒤에 나오는 「신들」도 엘로힘입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첫 번째 엘로힘(⁨אֱלֹהִים⁩)은 단수 동사의 주어이고, 두 번째 엘로힘은 그분이 심판하시는 복수의 대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이 「신들」은 누구입니까?

첫째는 하늘의 존재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입니다. 이 경우 시인은 고대 근동에 알려져 있던 신들의 회의라는 장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시편 82편은 하나님이 하늘의 회의에 나타나셔서 그 구성원들을 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높은 지위를 지녔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인간 통치자들이나 재판관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판결하는 인간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특별한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시편 82편은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을 남용한 인간 지도자들을 하나님이 직접 심문하시는 장면이 됩니다.

두 해석에는 각각 본문상의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중」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하늘의 회의를 떠올리게 합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재판과 악인의 손에서 사람을 구출하라는 명령은 인간의 정치적·사법적 책임에 잘 들어맞습니다.

시편 자체는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명시적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권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존재조차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고인들의 신분을 논쟁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행한 재판을 문제 삼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의 회중」에 해당하는 말은 아다트 엘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임 또는 신적인 회의를 가리킬 수 있는 표현입니다. 첫째 읽기의 배경으로, 열왕기상 22:19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보좌에 앉아 계시고 하늘의 군대가 그 곁에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욥기 1:6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편 89:5–7 역시 하늘의 존재들이 모인 회의를 묘사합니다. 둘째 읽기의 근거로, 출애굽기 21:6과 22:8–9의 엘로힘도 문맥에 따라 하나님 자신 또는 하나님 앞에서 재판하는 권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신명기 1:17은 인간 재판관에게 내리는 명령의 근거를 분명히 밝힙니다. 재판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하는 자들이 재판받다

시편 82:2–4 본문 →

하나님의 첫 말씀은 질문입니다.

「너희는 언제까지 불의하게 재판하고, 악인들의 편을 들겠느냐?」 셀라.시편 82:2 · 본디새김

「언제까지」라는 말은 잘못이 한 번 일어난 데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부당한 판결과 편파적인 행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전제하는 질책입니다.

「악인들의 편을 들다」(⁨נָשָׂ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하면 ‘악인들의 얼굴을 들어 주다’라는 뜻입니다. 고대의 재판 문맥에서 얼굴을 들어 준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이나 영향력에 따라 그를 유리하게 대우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재판관들이 마땅히 버려야 할 편파성을 받아들여, 정의를 세우도록 맡겨진 권력을 악인을 위한 도구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약한 이와 고아를 위해 재판하여라. 고통받는 이와 가난한 이가 옳다고 판결하여라.」시편 82:3 · 본디새김

힘 있는 사람은 재판 밖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에게 남은 마지막 보호 장치마저 사라집니다.

「옳다고 판결하여라」는 누군가의 정당함을 인정하거나 그 사람에게 마땅한 판결을 내려 주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선언하라는 뜻을 끌어내서는 안 됩니다. 앞 절에서 하나님은 악인에게 유리하도록 판결을 왜곡하는 일을 책망하셨습니다. 따라서 3절은 편파성을 반대 방향으로 뒤집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사람에게 정당한 판결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정한 판결만으로 말씀을 마치지 않으십니다.

「약한 이와 궁핍한 이를 구해 내어라.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 내어라.」시편 82:4 · 본디새김

3절은 주로 재판의 언어입니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반면 4절은 구출의 언어입니다. 악인의 손에 붙잡혀 있는 사람을 실제로 건져 내라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가 계속 악인에게 억압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재판관이 올바른 판결문을 작성했더라도, 그 판결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판결에서 구출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억눌린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고통을 아시며, 그들을 이집트의 손에서 건져 내기 위해 행동하셨습니다(출애굽기 3:7–8). 시편 82편에서 하나님이 재판관들에게 요구하시는 행동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재판은 단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억압당하는 사람이 실제로 악인의 손에서 벗어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19:15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편들거나 권세 있는 사람이라고 우대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6:19도 재판을 왜곡하거나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이 나열하는 약한 이, 고아, 고통받는 이, 가난한 이, 궁핍한 이는 서로 완전히 구별되는 다섯 종류의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표현을 거듭 사용하여 보호와 구제가 필요한 사람들을 폭넓게 드러냅니다. 「옳다고 판결하여라」의 히브리어는 하츠디쿠입니다. 시편 72:1–4에서도 왕의 정의는 가난한 자들을 올바르게 재판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구원하며 압제하는 자를 꺾는 일과 연결됩니다. 시편 82편은 그러한 책임을 저버린 권위가 결국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는지를 보여 줍니다.

땅의 기초가 흔들리는 이유

시편 82:5 본문 →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어둠 속을 돌아다닌다. 땅의 모든 기초가 흔들린다.」시편 82:5 · 본디새김

이 절에서 시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너희」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들」이라는 삼인칭 표현이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화자가 바뀌었다고 보는 읽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재판관들에게 말씀하시던 장면에서 잠시 시인의 평가가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분이 불의한 권위자들에 관해 선언하시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절이 보여 주는 상태는 분명합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이들이 무지와 어둠에 빠져 있고, 그 결과 세상의 질서 자체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여기서 무지는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앞의 명령들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권위를 지닌 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땅을 떠받치는 기초가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을 그립니다. 시편 82편에서는 특히 정의의 붕괴가 땅의 기초를 흔드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한 사람의 판결이 잘못되면 한 사람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집행해야 할 권위 자체가 불의해지면,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를 알아도 정당한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질서가 도리어 잘못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역설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안정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의 불의야말로 세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세상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언제나 질서에 도전하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질서를 지킬 책임을 맡은 자들이 정의를 버릴 때에도 땅의 기초는 흔들립니다.

조금 더 깊이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에도 약간의 여지가 있습니다. 앞에서 책망받은 재판관들을 가리킨다고 읽으면 문맥의 연결이 자연스럽지만, 본문은 주어를 명시적으로 다시 밝혀 주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실제 지진에 대한 예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야 24:5에서도 땅과 그 주민들의 상태는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고 영원한 언약을 깨뜨린 일과 연결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불의가 단지 개인적인 잘못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묘사할 때 이러한 우주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신들이 사람처럼 죽다

시편 82:6–7 본문 →

「나는 말했다. 『너희는 신들이며, 너희 모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다.』」시편 82:6 · 본디새김
「하지만 너희는 분명 사람처럼 죽고,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처럼 쓰러질 것이다.」시편 82:7 · 본디새김

이 두 절은 시편의 절정입니다.

「나는 말했다」라는 표현은 그들의 지위가 언급된 이전의 선언을 돌아보게 합니다. 다만 그것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진 발언이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높은 지위를 지녔는지 먼저 밝히신 뒤, 그 지위가 심판을 막아 주지 못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신들이라고 불리던 자들이 사람처럼 죽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던 자들이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처럼 쓰러집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신들의 정체에 따라 이 죽음의 선언은 서로 다른 울림을 지닙니다. 하늘의 존재들을 가리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어졌던 특별한 지위가 영원한 보증이 아님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처럼 죽는다는 말은 특별히 극적인 심판의 언어가 됩니다.

인간 통치자들을 가리킨다면, 그들이 마치 신적인 권위를 가진 것처럼 높아졌을지라도 결국 다른 인간과 똑같이 죽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왕관을 쓰고 판결을 내리는 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생명의 한계를 지닌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그들의 권위가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 지위에 합당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하십니다. 높은 지위는 그들에게 특권을 주었지만, 동시에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하는 권위로 오히려 악인을 도왔으니, 그 권위 자체가 그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됩니다.

이 장면은 이사야 3:13–15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재판하기 위해 서시고, 백성의 장로들과 통치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짓밟은 일을 심문하십니다. 시편 82편은 이 책임을 가장 높은 차원까지 끌어올립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운 지위에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멀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사람처럼」의 히브리어는 케아담입니다. 이 표현을 첫 사람 아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맥에서는 일반적인 인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바로 다음 행의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처럼」이라는 표현도 일반적인 인간의 몰락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는 요한복음 10:34–36에서 시편 82:6의 「너희는 신들이며」라는 말을 직접 인용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에게도 신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변호하십니다. 이는 시편의 직접 인용이지만, 요한복음의 논증을 시편 82편의 원래 재판 장면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일어나십시오

시편 82:8 본문 →

하나님, 일어나 땅을 심판해 주십시오. 당신이 모든 민족을 소유로 얻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편 82:8 · 본디새김

마지막 절에서 시편은 다시 한번 방향을 바꿉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시인이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판결을 듣고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판결이 온 세상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첫 절에서는 이미 하나님이 회중 가운데 「서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는 다시 하나님께 일어나시라고 요청합니다. 앞의 표현은 하나님이 재판관으로 법정에 서 계신 모습을 보여 주고, 마지막 요청은 그분이 이제 온 땅을 심판하기 위해 행동하시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처음에는 신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던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땅 전체를 심판하시도록 요청받으십니다.

본문은 악한 권위자들이 세상의 기초를 흔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는 단순히 몇몇 재판관을 교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더 근본적인 심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심판을 요청하는 근거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언급합니다. 「소유로 얻다」는 단순히 어떤 대상을 지배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몫이나 기업으로 삼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옮기든 하나님의 통치가 한 민족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분이 땅을 심판하셔야 합니까?

그 땅과 민족들이 그분의 통치에서 벗어난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민족도, 어떤 권력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 바깥에 설 수 없습니다.

여기에 시편의 마지막 역설이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신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은 약한 이들의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께 온 세상의 재판관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람들과 민족들을 책임져야 할 자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시인은 모든 민족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는 분의 직접적인 통치를 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틴할은 상속받거나 소유로 차지한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입니다. 다만 이어지는 「모든 민족」 앞에는 전치사 베가 사용되어 있어, 소유의 관계를 한국어로 정확히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소유하신다는 뜻이나 모든 민족 가운데서 기업을 가지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명기 32:8–9과의 연결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본문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시는 장면과, 야곱이 여호와야훼의 몫이라는 선언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특히 8절은 마소라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언급하지만, 사해 문서와 칠십인역 계열에는 하늘의 존재들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읽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 전승을 배경으로 시편 82편을 읽으면, 민족들과 신들의 관계를 전제로 하던 세계에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자신의 통치 아래 두시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시편 82편이 신명기 32장의 특정 본문 형태를 직접 전제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시편 82:1–8 본문 →

시편 82편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질문은 단지 「신들」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있지 않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세상을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까? 높은 지위나 특별한 능력,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분이 자신의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편을 들어 주는 판결을 책망하십니다. 약한 이와 고아에게 정당한 판결이 내려지기를 요구하십니다. 궁핍한 이들이 악인의 손에서 건져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버린 권위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세상 질서의 주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권위가 과연 자신의 목적에 충실한지를 가늠하는 중심적인 기준입니다.

이 시편이 문제 삼는 것은 단지 왕이나 법관이라는 직책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위가 어떻게 사용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너희는 언제까지 불의하게 재판하고, 악인들의 편을 들겠느냐?」라는 물음은 우리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누구의 말을 더 쉽게 믿고, 누구의 고통을 더 쉽게 지나치며, 누구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는 소극적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을 단순히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겸손해져야 한다는 교훈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은 직접 법정에 서셔서 불의를 밝히시고, 그 불의를 행한 자들에게 판결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시편 82편은 그래서 고발인 동시에 희망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들이 아무리 막강해 보여도 그들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억울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시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 앞에는 높은 지위를 지닌 자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한때 신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높은 이름과 권위도 하나님의 판결 앞에서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그들의 잘못 때문에 땅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시인은 그 무너진 질서를 바라보며, 신들에게도 통치자들에게도 아닌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 일어나 땅을 심판해 주십시오.」

시편은 그 기도가 실현된 장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 요청을 마지막 말로 남깁니다.

땅의 모든 기초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시인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곳은 그 흔들리는 땅이 아니라 땅을 심판하실 하나님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