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83편
이 장의 자리 · 73–89편 · 셋째 권
지워질 이름과 알려질 이름
시편 83편에는 두 가지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원수들이 지워 버리려는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이 온 땅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이름입니다.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이름이 다시는 기억되지 않게 하자」(5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마지막에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야훼이며 당신만이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심을 그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19절)라고 기도합니다.
두 문장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세상에서 없애려 하고, 시인은 바로 그 원수들이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대조가 시편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시인은 자기 민족의 생존을 위해 기도하지만, 단지 살아남는 것만을 마지막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데까지 기도를 이끌어 갑니다.
그렇다고 이 시편이 평화로운 화해의 노래인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수치를 당하고 멸망하기를 구합니다. 그의 말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탄원으로 시작합니다(2–3절). 이어서 원수들의 계획과 그 동맹의 규모를 밝힙니다(4–9절). 그다음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셨던 구원을 떠올리며 같은 일을 요청합니다(10–13절).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직접 원수들을 흩으시고 심판하셔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시기를 기도합니다(14–19절).
이 흐름을 따라가면,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에워싼 원수들만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그 모든 민족 위에 계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원수들은 소란한데 하나님은 잠잠하시다
하나님,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침묵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시지 마십시오, 하나님.시편 83:2 · 본디새김
보십시오, 당신의 원수들이 소란을 피우고,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시편 83:3 · 본디새김
시편의 첫 기도는 매우 다급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먼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시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2절에는 침묵과 정지를 나타내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됩니다. 세 표현은 의미가 상당히 겹치지만, 마지막의 「가만히 계시지 마십시오」는 말뿐 아니라 행동하지 않는 상태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이유는 곧바로 드러납니다. 원수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의 진영에서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공격을 준비하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합니다. 반면 시인이 도움을 기대하는 하나님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떠들썩하게 움직이는데, 하나님은 잠잠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시인이 하나님이 정말로 무력하시거나 상황을 모르신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는 원수들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 제시하며 개입을 요청하는 호소입니다.
또한 원수들이 「머리를 들었다」는 표현에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담겨 있습니다. 고개를 든다는 표현 자체가 항상 악한 뜻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원수들의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이 대담하게 움직이는데도 그들을 막을 하나님의 행동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 간격에서 시작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행동하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그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부르짖습니다.
조금 더 깊이
「소란을 피우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הָמָה)는 웅성거리거나 떠들썩하게 소리를 내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사야 17:12에서는 많은 민족들의 소란이 바다의 거센 소리에 비유됩니다.
하나님이 숨겨 두신 백성을 지워 버리려 하다
원수들의 목적이 드러나면서 위협의 성격도 분명해집니다.
그들이 당신의 백성을 거슬러 간교한 계략을 꾸미고, 당신이 숨겨 두신 이들을 거슬러 모의합니다.시편 83:4 · 본디새김
「당신이 숨겨 두신 이들」은 숨겨져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이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시편 27:5에서는 하나님이 재앙의 날에 시인을 자신의 초막에 숨기시는 장면이 나타나고, 시편 31:20에서도 하나님이 사람들의 음모를 피하도록 자신의 임재 가운데 사람들을 숨기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그들이 이미 모든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시인은 바로 그 사람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에 시인의 절박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없애려는 계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그들을 보호하시는 분께 행동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원수들이 꾸미는 계획은 5절에서 직접 인용됩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자, 가자. 그들을 없애 민족으로 남지 못하게 하자. 이스라엘의 이름이 다시는 기억되지 않게 하자.」시편 83:5 · 본디새김
그들은 이스라엘을 패배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존재와 기억,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름이 기억되지 않게 한다는 것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만이 아니라 민족으로서의 존속과 기억 자체를 없애려 합니다.
그런데 6절은 이러한 계획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모의하고, 당신을 거슬러 동맹을 맺기 때문입니다.시편 83:6 · 본디새김
원수들은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모였는데, 시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동맹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자기 민족을 하나님과 무조건 동일시하여, 이스라엘이 행하는 모든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은 본문에 없습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공동체의 존재를 지워 버리려는 계획입니다.
창세기 12:2–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시고,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이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역사에서 완전히 지우려는 계획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 맺으신 관계와 약속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됩니다.
원수들은 「한마음으로」 모의합니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하나의 뜻으로 연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추구하는 목적은 무언가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한 민족을 없애는 일입니다.
이제 시인은 그 동맹에 누가 참여했는지 하나씩 이름을 부릅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더 3:6과 연결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을 없애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모르드개가 속한 유다 민족 전체를 멸하려고 계획합니다. 두 본문이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집단을 향한 적대감이 한 민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계획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방에서 모여든 민족들
에돔의 천막들과 이스마엘 사람들, 모압과 하갈 사람들,시편 83:7 · 본디새김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 블레셋과 두로 주민들이 그러합니다.시편 83:8 · 본디새김
아시리아도 그들과 합세했습니다. 그들은 롯의 아들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셀라.시편 83:9 · 본디새김
이 목록을 처음 읽으면 낯선 이름들의 나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명과 민족들을 어느 정도 알고 읽으면 시인이 왜 그토록 다급하게 기도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남동쪽에 자리했던 민족으로, 성경에서는 에서의 후손과 연결됩니다(창세기 36:1). 모압과 암몬은 사해 동쪽의 민족들이며, 롯의 후손으로 소개됩니다(창세기 19:36–38). 이스마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연결됩니다(창세기 25:12–18). 하갈 사람들 역시 성경에서 동쪽 지역의 집단으로 나타납니다(역대상 5:10, 19).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던 때부터 적대적인 관계로 등장합니다(출애굽기 17:8–16).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에서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충돌했던 집단입니다. 두로는 북쪽 해안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시리아까지 등장합니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큰 군사적 위협이 되었던 제국입니다.
목록 전체가 만들어 내는 인상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가까운 민족들뿐 아니라 더 먼 지역의 세력까지 그들을 대적하는 데 참여합니다. 여러 방향에서 위협이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이 민족들이 모두 동시에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한 단일한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이 시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작성 시기와 직접적인 역사적 사건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이 시편의 핵심 의미를 흐리지는 않습니다. 시인이 보여 주려는 것은 적대 세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결집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9절의 「롯의 아들들」은 모압과 암몬을 가리킵니다. 아시리아가 합세한 일이 언급된 직후, 동맹의 힘이 이들에게 더해졌다고 말합니다. 원수들의 연합은 각자의 적대감이 단순히 병렬되어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서로의 힘을 보태어 더 큰 위협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힘의 불균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시인은 원수들의 숫자나 힘을 계산하는 일을 멈추고, 과거에 있었던 두 사건을 떠올립니다.
조금 더 깊이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하갈 사람들의 계보를 아브라함의 하갈과 직접 연결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발」이 정확히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도 논의가 있습니다. 북쪽의 페니키아 도시 그발, 곧 비블로스를 떠올릴 수도 있고, 에돔과 관련된 남쪽 지역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역대하 20:1–30에는 모압과 암몬을 중심으로 한 연합 세력이 여호사밧 시대의 유다를 공격하려는 이야기가 나와 시편 83편과 닮았지만, 시편 83편에는 두로와 아시리아 등 역대하 20장의 이야기에서 확인되지 않는 세력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두 본문을 곧바로 동일한 사건의 기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시편은 실제 위기를 배경으로 작성되었을 수도 있고, 여러 시대에 경험한 민족적 적대와 위협을 하나의 시적 장면에 집중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기손 시내와 미디안의 기억
미디안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해 주십시오.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하신 것처럼 해 주십시오.시편 83:10 · 본디새김
시인은 하나님께 새로운 방식으로 도와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하셨던 일을 다시 해 달라고 구합니다.
먼저 시스라와 야빈은 사사기 4–5장에 등장합니다. 야빈은 하솔에서 통치하던 가나안 왕이고, 시스라는 그의 군대 지휘관입니다. 사사기 4:3에 따르면 야빈의 군대에는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었으며,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그들의 압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 바락을 부르시고, 시스라의 군대를 기손 시내로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사기 4:6–7). 그 결과 시스라의 군대는 패배했고, 시스라는 도망하다가 야엘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사사기 4:15–22).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이 전투를 단순히 인간 군대들의 충돌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별들이 싸우고, 기손 시내가 원수들을 휩쓸어 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사사기 5:20–21).
이어지는 미디안의 이야기도 비슷한 역전을 보여 줍니다. 사사기 6–8장에서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압박하며 농작물과 가축을 빼앗았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부름받아 그들과 맞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사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한 뒤 자기 힘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사사기 7:2). 결국 기드온은 삼백 명과 함께 미디안의 큰 군대를 상대했고, 하나님은 적군 진영에 혼란을 일으키셨습니다(사사기 7:19–22).
시인이 기억하는 역사는 강한 자들이 언제나 이겼다는 기록이 아닙니다. 인간이 의지하던 힘이 하나님의 행동 앞에서 무너졌다는 기록입니다.
그들은 엔돌에서 멸망했고, 땅의 거름이 되었습니다.시편 83:11 · 본디새김
「땅의 거름이 되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죽은 자들이 제대로 묻히지 못하고 땅 위에 버려지는 참혹한 패배를 나타냅니다. 시인은 전쟁의 잔혹함을 완화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2절에는 기드온의 전쟁에서 죽거나 패배한 지도자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오렙과 스엡은 사사기 7:25에 등장하는 미디안의 지도자들이고, 세바와 살문나는 사사기 8:12, 21에 등장하는 미디안의 왕들입니다. 시인은 현재의 적대 세력 지도자들이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기를 구합니다.
앞에서는 원수들의 민족들이 하나씩 불렸습니다. 이번에는 과거 패배한 적들의 지도자들이 하나씩 불립니다. 앞의 목록은 위협의 규모를 보여 주었고, 뒤의 목록은 그 위협이 어떻게 끝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13절에서 적들의 목소리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초지들을 우리 것으로 차지하자.」시편 83:13 · 본디새김
5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지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목초지들을 차지하겠다고 합니다.
「목초지」는 목초지나 거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로 여겨지는 땅과 거처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표현만으로 특정 성소나 특정 지역만을 가리킨다고 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시편 74:1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목장의 양 떼라고 부르고, 시편 79:13에서도 백성은 자신을 하나님의 양 떼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표현들을 배경으로 보면 이곳의 목초지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돌보시는 영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구절의 「그들」이 앞에서 언급된 과거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지, 현재 연합한 원수들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든 시인이 적대 세력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식은 드러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들의 것으로 차지하려 합니다.
원수들은 땅을 빼앗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만, 시인은 그 땅을 하나님의 목초지라고 부릅니다.
시인의 눈에 땅은 강한 자가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는 빈 공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자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엔돌이라는 지명은 기손 시내 전투와 관련된 지역을 떠올리게 하지만, 사사기 4–5장에는 적들이 엔돌에서 멸망했다는 명시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시편의 언급을 사사기의 사건 기록에 그대로 대응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바람 앞의 지푸라기가 되게 하십시오
과거의 구원을 기억한 뒤, 시인의 기도는 자연의 이미지들로 바뀝니다.
저의 하나님, 그들을 굴러가는 것처럼, 바람 앞의 지푸라기처럼 만들어 주십시오.시편 83:14 · 본디새김
「굴러가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로 뒤에 「바람 앞의 지푸라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시인이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굴러가는 가벼운 물체를 떠올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체의 정확한 정체보다 그 움직임입니다.
앞에서 원수들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한마음으로 모여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제 그들이 자기 움직임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를 구합니다. 바람 앞의 지푸라기는 어디로 갈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원수들이 가진 힘과 주도권이 뒤집히는 장면입니다.
그다음 이미지에서는 상황이 훨씬 격렬해집니다.
숲을 태우는 불처럼, 산들을 불사르는 불꽃처럼,시편 83:15 · 본디새김
그렇게 당신의 폭풍으로 그들을 뒤쫓으시고, 당신의 거센 바람으로 그들을 겁에 질리게 해 주십시오.시편 83:1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이 그 원수들을 뒤쫓으시기를 구합니다. 공격하던 자들이 도망하는 자들이 되고, 두려움을 주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사기 5장의 기억이 다시 살아납니다. 시스라의 군대가 기손 시내에서 패배하던 장면은 하나님의 행동과 자연 세계의 움직임을 함께 묘사했습니다. 시편 83편의 폭풍과 바람 역시 하나님이 자연의 힘까지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신앙을 드러냅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파멸하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위협을 그린 기도이므로 그 말의 폭력성을 없애거나 단순한 비유로만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이지, 독자에게 특정 민족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신이 직접 원수들을 쓸어 버리겠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위기를 하나님의 행동에 맡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심판을 구하던 기도는 마지막 세 절에서 예상 밖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조금 더 깊이
「굴러가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갈(גַּלְגַּל)은 굴러가거나 회전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퀴를 떠올릴 수도 있고, 바람에 굴러가는 마른 식물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원수들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찾게 하십시오
그들의 얼굴을 치욕으로 채워 주십시오.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찾게 해 주십시오, 여호와야훼.시편 83:17 · 본디새김
여기까지는 앞의 심판 요청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이 뜻밖입니다. 원수들의 수치가 하나님의 이름을 찾는 일과 연결됩니다.
하나의 가능성은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로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하나님의 심판은 원수들이 자신들의 오만에서 돌이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찾는다」는 표현이 반드시 진실한 회심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원수들이 수치를 당한 뒤 자신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거나, 어쩔 수 없이 그분에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18절은 이러한 해석상의 긴장을 더욱 크게 만듭니다.
그들이 영원히 부끄러워하며 겁에 질리게 하시고, 수치를 당하고 멸망하게 해 주십시오.시편 83:18 · 본디새김
17절을 원수들의 회심을 위한 순수한 기도로만 이해한다면, 18절의 멸망 요청은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18절만을 중심에 놓고 읽으면, 원수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찾게 해 달라는 17절의 기도가 지닌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본문은 이 두 방향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이 두 소원 사이의 긴장을 제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의 기도자는 민족의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원수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만 기도할 수 있는 평온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심판을 단지 원수들의 소멸 자체로 끝내지도 않습니다.
그의 마지막 관심은 19절에서 분명해집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야훼이며 당신만이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심을 그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시편 83:1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시편의 모든 움직임이 도달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맺으신 관계 안에서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한 민족의 경계를 넘어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고백됩니다.
시인은 첫머리에서 하나님께 침묵하지 말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거듭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는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이 원수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단지 그분의 호칭을 배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실제로 어떤 권능을 지니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지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에워싼 여러 민족은 처음에는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될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을 원수들이 모두 구원받으리라는 약속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여전히 그들의 멸망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인의 기도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이 인정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14–15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시며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으신 관계를 밝히셨습니다. 이어지는 출애굽 이야기에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여호와야훼가 누구신지 알게 되는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나타납니다(출애굽기 7:5; 14:4). 특히 출애굽기 14:4에서는 하나님이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통해 영광을 얻으실 때 이집트 사람들이 그분이 여호와야훼이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83편의 마지막도 이와 같은 주제를 지닙니다. 또한 시편 83편은 앞선 시편 82편의 마지막과 이어집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땅을 심판하시기를 구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여러 민족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바로 그 하나님이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를 구합니다.
침묵에서 시작하여 이름으로 끝나는 기도
시편 83편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연합군이 실제로 흩어졌는지, 원수들이 패배했는지,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찾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의 멸망을 구하는 기도는 오늘의 독자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시인이 듣고 있는 원수들의 선언은 「이스라엘의 이름이 다시는 기억되지 않게 하자」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원수를 오늘날의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 곧바로 대입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이 열거하는 이름들은 그가 노래하는 역사적·문학적 상황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의 독자가 자신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집단을 하나님의 원수라고 선언할 권한을 이 시편에서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기 욕망에 하나님의 권위를 더하는 일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시다는 고백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 역시 그분의 판단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충분히 바라보았습니다. 원수들의 숫자를 세었고, 그들의 계획을 들었으며, 그들이 얼마나 큰 힘을 모으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원수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않습니다.
에돔도, 모압도, 암몬도, 아시리아도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합니다.
시인은 그 모든 이름들을 지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여호와야훼.」
시편의 처음에는 원수들이 소란을 피우고 하나님은 잠잠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끝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그 기도가 아직 응답받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시인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고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이름을 세상에서 지우려 했지만, 시인은 온 땅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며 기도를 마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