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98편

이 장의 자리 · 90–106편 · 넷째 권

하나님의 승리에 온 세상이 부르는 노래

시편 98편에는 놀라운 방향의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홀로 승리를 이루십니다. 그분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구원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강들이 손뼉을 치고 산들이 함께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온 세상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는 한 문장이 놓여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집안을 향한 자기의 인애와 신실함을 기억했다.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3절) 하나님이 기억하신 대상은 이스라엘인데, 그분의 구원을 본 것은 땅의 모든 끝입니다.

어떻게 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이 온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시편은 크게 세 장면으로 전개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이 여러 민족 앞에 드러납니다(1~3절). 그러자 온 땅이 악기와 노랫소리로 왕을 환영합니다(4~6절). 마침내 바다와 강과 산들까지 그 환호에 합류합니다(7~9절).

이 시의 관심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존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토록 광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킨 하나님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698편 본문 읽기 →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신의 오른손으로 이루신 승리

시편 98:1 본문 →

시편. 여호와야훼에게 새 노래를 불러라. 그가 놀라운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오른손과 그의 거룩한 팔이 그를 위해 승리를 이루었다.시편 98:1 · 본디새김

시인은 처음부터 찬양의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적을 물리쳤는지, 어느 전쟁에서 승리했는지, 언제 일어난 사건인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그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승리를 이루셨다고 말할까요? 하나님도 누군가에게서 구원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셨다는 뜻일까요?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그를 위해 구원을 이루었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행동의 주체는 하나님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입니다. 하나님이 위험에서 구출되셔야 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맥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 승리가 다른 존재의 도움이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인간이 먼저 무언가를 이루어 놓은 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행동하셔서 이루신 승리입니다.

오른손은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며, 팔은 실제로 힘을 행사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강한 팔이라고 하지 않고 「거룩한 팔」이라고 합니다.

그분의 힘은 그분의 거룩하심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신지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 능력이 누구의 능력인지를 밝힙니다. 그것은 어떤 폭군의 힘도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행하는 통치자의 힘도 아닙니다.

거룩하신 여호와야훼 자신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1절의 승리는 하나님 자신에게만 관계된 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59장 16절과 63장 5절에도 하나님의 팔이 직접 구원이나 승리를 이룬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사야 59장에서는 정의를 위해 개입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팔이 직접 구원을 이룹니다. 오른손과 팔은 인간의 몸을 사용한 비유이므로 하나님께 문자 그대로 인간의 팔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5장 6절에서도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오른손이 능력으로 영광스럽다고 노래합니다. 그곳에서는 이집트의 군대가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해방된 사건을 찬양합니다. 시편 98편 역시 하나님의 승리와 구원을 함께 노래하지만,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사건보다 하나님이 친히 승리를 이루셨다는 사실 자체가 전면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을 기억하셨는데, 온 세상이 보았다

시편 98:2–3 본문 →

여호와야훼가 자기의 구원을 알렸고, 민족들의 눈앞에 자기의 의를 드러냈다.시편 98:2 · 본디새김

하나님의 구원은 일어난 일에 그치지 않고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만 아는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목격하도록 드러난 사건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구원을 가리켜 곧바로 「자기의 의」라고도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단순히 하나님이 올바른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계신다는 추상적인 성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구원을 이루신 행동을 통해 그분의 의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그분이 행하신 일을 통해 알려집니다.

그는 이스라엘 집안을 향한 자기의 인애와 신실함을 기억했다.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시편 98:3 · 본디새김

이 절은 서로 다른 두 범위를 한 문장 안에 놓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집안」이고, 다른 하나는 「땅의 모든 끝」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자기의 인애와 신실함을 기억하셨다는 표현은 마치 그분이 한동안 그것을 잊고 계셨던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말은 단순히 잊었던 정보를 다시 떠올리신다는 뜻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십니다. 창세기 8장 1절에서도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있던 생명들을 기억하시자,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시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두 이야기에서 기억은 하나님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시편 98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애와 신실함을 기억하셨고, 그 기억은 구원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애」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변함없는 사랑과 호의를 표현합니다. 「신실함」은 믿을 만함과 충실함을 나타냅니다. 본문에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함을 기억한다는 표현은 출애굽기를 비롯한 구약의 언약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더 강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사야 52장과의 연결

이사야 52장 10절에도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팔, 모든 민족의 눈앞, 땅의 모든 끝, 우리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표현이 함께 등장합니다. 특히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는 표현은 거의 그대로 일치합니다. 이사야 52장의 문맥은 시온의 회복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장면입니다(이사야 52:7~10).

그러나 둘을 함께 읽을 때 신학적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건은 그 백성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다른 민족들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이 그분의 영광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구약의 선택과 보편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경험한 백성의 이야기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는 말이 모든 사람이 이미 똑같이 구원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구원의 수혜 대상이 모두 같다고 말하기보다,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의 범위와 구원을 목격하는 범위를 구별하도록 합니다.

이제 구원을 본 세상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가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두 본문의 히브리어에는 매우 가까운 구절들이 들어 있고, 거룩한 팔과 민족들의 눈, 땅끝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독특한 표현의 결합이 두 본문에 나타납니다. 다만 이러한 유사성만으로 시편 98편이 반드시 바벨론 유배에서 돌아온 직후에 기록되었다거나, 이사야 52장을 직접 인용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본문의 문학적 선후관계 역시 본문만으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전망은 구약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와 연결됩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전망을 담고 있고, 이사야 49장 6절에서도 하나님의 종이 민족들의 빛이 되어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도록 하는 사명과 연결됩니다. 신약의 누가복음 2장 30~32절에서는 시므온이 하나님의 구원이 여러 민족 앞에 준비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98편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과 여러 민족을 함께 바라본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다만 시편 98편은 이 보편적인 찬양이 역사 속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가 왕을 맞이하다

시편 98:4–6 본문 →

온 땅아, 여호와야훼에게 환성을 올려라. 소리를 터뜨려라. 기뻐 외쳐라. 찬양하여라.시편 98:4 · 본디새김

시인은 조용히 감사를 표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만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기쁨이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오도록 초청합니다.

「환성을 올려라」는 큰 소리로 외치거나 환호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단지 기분이 좋아서 지르는 함성에만 쓰이지 않고, 왕을 환영하거나 전쟁과 같은 중대한 상황에서 외치는 소리에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환성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을 넘어 왕의 승리를 인정하고 선포하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리라로, 리라와 노랫소리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여라. 나팔로, 또 뿔나팔 소리로 왕 여호와야훼 앞에서 환성을 올려라.시편 98:5–6 · 본디새김

리라는 줄을 퉁겨 소리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노랫소리와 함께 사용되어 선율을 이끕니다. 나팔과 뿔나팔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열왕기상 1장 39~40절에서는 솔로몬이 왕으로 세워질 때 뿔나팔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시편 98편의 악기들은 단순히 음악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치가 아닙니다. 왕을 환영하고 그분의 통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 시인은 비로소 그 왕을 「왕 여호와야훼」라고 직접 부릅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승리를 이루셨고, 구원을 알리셨으며, 자기의 인애와 신실함을 기억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일을 행하신 분이 왕으로 불리십니다.

그분은 실제로 구원을 이루신 왕이십니다.

사람들이 왕 여호와야훼 앞에서 환호하는 이유는 그분이 단지 왕이라는 칭호를 지니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왕이 친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시고, 사람들이 그 행동을 보고 찬양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도록 만드는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미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은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6절의 「나팔」은 민수기 10장 2절에서 은으로 만든 나팔로 등장하며, 회중을 모으거나 진영의 이동을 알리는 데 사용됩니다. 같은 장 10절에서는 기쁜 날과 절기, 제사를 드리는 때에도 나팔을 불도록 합니다. 「뿔나팔」은 동물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키며, 전쟁의 경고와 집회, 왕을 맞이하는 장면 등 여러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강들이 손뼉을 치고 산들이 합창하다

시편 98:7–8 본문 →

바다와 그 안에 가득한 것들은 우레처럼 소리를 내어라. 세계와 그 안에 사는 이들도.시편 98:7 · 본디새김

여기서 시편의 무대가 다시 넓어집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리 커도 한계가 있습니다. 나팔도, 뿔나팔도 사람이 숨을 불어 넣어야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바다는 인간이 연주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소리를 냅니다.

시인은 그 거대한 소리를 하나님의 왕권을 환영하는 환호로 듣습니다.

강들은 손뼉을 쳐라. 산들은 함께 기뻐 외쳐라,시편 98:8 · 본디새김

강들은 손을 가진 존재가 아니지만 손뼉을 치도록 초청받고, 산들은 목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지만 함께 노래하도록 초청받습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8절에서는 강들이 손뼉을 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손이 구원을 이루는 주체였습니다. 마지막에는 강들이 손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어 그 구원에 응답합니다. 시인이 이 두 표현을 의도적으로 대응시켰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지만, 한 편의 시 안에서 하나님의 손과 강들의 손이 각각 행동하는 모습은 인상적인 울림을 만듭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승리를 이루자, 강들은 손뼉으로 화답합니다.

강들과 산들은 각자 따로 기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인은 이들을 하나의 거대한 합창 속에 놓습니다. 4~6절에서 인간의 목소리와 여러 악기가 함께 울렸다면, 이제는 바다와 강과 산이 그 합창에 합류합니다.

사람들은 정치적 권력이나 민족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왕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이 그리는 이 왕의 통치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바다와 강과 산까지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왕 여호와야훼의 다스림이 창조 세계 전체에 관계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왜 자연 세계까지 이렇게 기뻐해야 하는가요?

이미 오신 왕, 앞으로 있을 공평한 판결

시편 98:9 본문 →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가 땅을 심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를 의로 심판하고, 백성들을 공평하게 심판할 것이다.시편 98:9 · 본디새김

6절에서는 사람들이 「왕 여호와야훼 앞에서」 환성을 올렸습니다. 9절에서는 바다와 강과 산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환호합니다. 왕 앞에 모인 사람들의 찬양이 마침내 창조 세계 전체의 찬양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 시인은 기쁨의 이유를 심판과 연결합니다.

「왔다」와 「심판할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그가 땅을 심판하러 왔기 때문이다」라고 옮긴 뒤, 「그는 세계를 의로 심판하고」라고 이어 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승리를 이루셨고, 자기의 구원을 알리셨으며, 이제 왕으로서 세계를 심판하십니다. 그분이 이루신 구원은 그분의 의로운 통치를 드러내며, 그분의 통치는 공평한 판결로 나타납니다.

심판은 어떤 의미에서 기쁜 소식인가

이 구절에서 「심판하다」는 말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의미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재판하고 판단하며, 문맥에 따라 다스리는 일을 가리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재판은 왕의 중요한 책임이었습니다.

시인은 그 판결의 기준을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의」와 「공평」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의로 심판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무엇이 올바른지를 굽히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또 백성들을 공평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은 힘과 지위나 편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이 민족들 앞에 자기의 의를 드러내셨습니다.

9절에서는 그분이 세계를 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의는 구원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의가 세계를 다스리는 판결의 기준이 됩니다. 그분이 자기 백성에게 인애와 신실함을 보이시는 일과 온 세계를 공평하게 판단하시는 일은 같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옵니다.

그 때문에 이 시편의 기쁨은 단지 자신이 적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 큽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세상에 드러났고, 그분이 그 의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강과 산은 인간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의로운 왕의 통치 아래 놓인 창조 세계를 대표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서 「왔다」(⁨בּוֹא⁩)에 해당하는 말은 문맥에 따라 도래했거나 도래하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형태입니다. 본디새김은 이미 이루어진 도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만으로 하나님이 언제, 어떤 역사적 사건을 통해 오셨는지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은 어느 왕의 즉위식이나 특정 전쟁의 승리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므로, 실제 역사적 사건 하나에 이 구절을 고정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대의 왕은 단순히 군대를 지휘하거나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 올바른 판결이 이루어지도록 책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을 기억하는 사람의 노래

시편 98:1–9 본문 →

시편 98편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기쁨을 만들어 내기 위해 먼저 어떤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의 기쁨이 하나님의 구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기쁨의 근거가 됩니다.

사람은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뻐하라는 명령만 들으면, 기쁨조차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할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98편은 기쁨의 출발점을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에 둡니다.

그분은 기억하시고, 행동하시고, 이루신 일을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이 땅의 모든 끝에 알려졌듯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을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설명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시편이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특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승리를 얻었다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승리를 이루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이스라엘의 경계 안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승리를 이루신 분이 온 세계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리라가 울리고, 나팔과 뿔나팔 소리가 그 뒤를 따릅니다. 사람들은 왕 앞에서 환성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더 넓은 곳으로 번져 갑니다.

바다가 우레처럼 울리고, 강들이 손뼉을 치고, 산들이 함께 기뻐 외칩니다.

맨 처음 승리를 이루신 것은 여호와야훼의 오른손이었습니다.

이제 그분 앞에서 강들이 손뼉을 칩니다.

하나님이 홀로 이루신 승리에, 온 세상이 함께 노래로 응답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