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2–20장 · 용과 짐승과 바벨론
바벨론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무엇을 잃고 우는가?
요한계시록 18장은 한 도성의 몰락을 보여 줍니다.
바벨론이 무너집니다. 왕들이 울고, 상인들이 울고,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울부짖습니다. 모두가 그 도성의 멸망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탄식을 자세히 들어 보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왕들은 함께 사치하던 도성에 닥친 심판을 슬퍼합니다. 상인들은 더 이상 상품을 사 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합니다. 뱃사람들은 자신들을 부유하게 해 주었던 도성이 사라졌다고 슬퍼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울지만, 그 도성이 피를 흘리게 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우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상인들이 애도하는 상품 목록에는 금과 은, 보석과 비단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목숨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울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상품을 더 이상 팔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웁니다.
이것이 18장의 가장 불편한 장면입니다.
바벨론의 화려한 번영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의 비용을 누가 치렀는지는 사람들의 애가가 아니라, 장의 맨 마지막에 놓인 하나님의 선언 「그 도성 안에서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그리고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이의 피가 발견되었다」에서 밝혀집니다.
그제야 독자는 이 도성의 멸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온전히 알게 됩니다. 바벨론은 단지 너무 부유해서 심판받는 도성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을 영화롭게 했던 도성입니다.
17장에서 요한은 바벨론이 짐승과 결합한 거대한 권력임을 보았습니다. 18장은 그 권력이 사람들의 일상과 경제활동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으며, 몰락할 때 누가 무엇을 슬퍼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멸망의 선언이 들립니다. 이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도성에서 나오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 뒤 왕들과 상인들, 뱃사람들의 애가가 잇따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음악도, 맷돌 소리도, 결혼식의 기쁨도 사라집니다.
요한은 요란한 애가로 시작한 도성의 이야기를 완전한 침묵으로 끝냅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 빛나는 천사가 폐허를 선포하다
이 뒤에 나는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큰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땅이 그의 영광으로 밝아졌습니다.요한계시록 18:1 · 본디새김
첫 장면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시작합니다.
이 모습은 바벨론이 17장에서 보여 주었던 화려함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바벨론은 자줏빛과 진홍빛 옷,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자신을 꾸몄습니다. 그녀의 영광은 자신이 소유한 값비싼 물건들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18장의 천사에게는 어떤 장신구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영광 자체가 땅을 밝힙니다.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재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도성의 화려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자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 빛 가운데서 바벨론에 대한 선언이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그가 힘센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바벨론이. 그 도성은 귀신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감옥과 온갖 더럽고 미움받는 새의 감옥이 되었다.」요한계시록 18:2 · 본디새김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무너졌다, 무너졌다」고 외칩니다. 이 표현은 이사야 21:9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의 신상들이 부서졌다고 선포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8에서도 한 천사가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언했는데, 이제 그 선언이 더 길고 구체적인 심판의 환상으로 전개됩니다.
아직 독자가 바벨론의 몰락을 상세히 보기도 전에 멸망은 이미 확정된 일처럼 선포됩니다. 묵시적 환상이 사건을 반드시 시간순으로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선언이 먼저 주어지고, 뒤이어 그 선언의 의미가 여러 장면을 통해 드러납니다.
화려한 도성은 어떻게 더러운 영들의 거처가 되는가?
사람들과 재물이 모여들던 큰 도성이 이제 귀신들과 더러운 영들, 더럽고 미움받는 새들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13:19–22에 나타난 바벨론 멸망의 묘사와 연결됩니다.
이사야는 한때 여러 나라 가운데 영광을 누렸던 바벨론이 폐허가 되어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곳이 되고, 그곳에 황야의 짐승과 새들이 자리 잡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본래의 예언은 고대 바벨론의 교만과 몰락을 다루지만, 요한은 그 폐허의 이미지를 자신이 말하는 큰 바벨론에 다시 적용합니다.
여기서 요한이 보여 주는 변화는 단순한 건물의 파괴가 아니라, 바벨론이 자랑했던 도시의 영광이 뒤집히는 것입니다. 한때 온갖 사람이 모여들고 값비싼 상품이 거래되던 곳이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처럼 묘사됩니다. 바벨론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그 도성은 더러운 존재들의 거처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다음 절이 그 이유를 밝힙니다.
「모든 민족이 그 여자의 음행의 분노의 포도주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땅의 왕들이 그 여자와 음행했고, 땅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의 힘으로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3 · 본디새김
여기에는 바벨론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 세 집단, 민족들과 왕들과 상인들이 등장합니다. 민족들이 그 포도주로 「무너졌다」(사본에 따라 「마셨다」)는 말은, 어느 쪽으로 읽든 바벨론이 다른 민족들을 자신의 죄에 끌어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새롭게 등장하는 요소는 상인들입니다.
17장에서 바벨론의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배신이 두드러졌다면, 18장에서는 그녀의 경제적 영향력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바벨론은 왕들의 도움을 받는 도성일 뿐 아니라, 상인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도성입니다. 그녀의 사치는 다른 사람들의 부를 만들어 내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바벨론은 단지 폭력을 행사하는 통치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돈을 벌고 지위를 얻는 방식과 깊이 결합된 권력입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몰락은 그 도성과 거래하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이 됩니다.
그러나 그 충격을 보여 주기 전에 하늘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번에는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목소리입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라고 옮긴 표현에는 사본상의 차이가 있어, 「무너졌다」는 읽기와 「마셨다」는 읽기가 전해집니다. 「마셨다」로 읽으면 바벨론의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이 직접 강조되고, 「무너졌다」로 읽으면 바벨론 자신이 무너졌다는 선언과 민족들이 그녀의 포도주로 무너졌다는 선언이 서로 이어집니다. 또 2절의 「감옥」에 해당하는 원문의 퓔라케는 감옥이나 구금 장소를 뜻할 수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더러운 존재들이 머무는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이해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귀신들이 어떤 형벌을 받는지에 관한 상세한 지도를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내 백성아, 나오너라」 — 도성의 죄에 가담하지 말라는 부름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나는 다른 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의 죄에 함께 가담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여자에게 내릴 재앙을 받지 않도록 그 여자에게서 나오너라.」요한계시록 18:4 · 본디새김
18장에는 여러 명령이 등장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직접 부르는 이 말씀은 특별합니다. 천사는 앞서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늘의 다른 목소리는 그 도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부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에서 나와야 합니까? 단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일까요? 본문은 두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그 여자의 죄에 함께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여자에게 내릴 재앙을 함께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재앙을 피하기 전에 먼저 죄에 가담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는 일은 무엇보다 그 도성의 죄와 관계를 끊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바벨론을 떠나라는 명령
이 명령은 예레미야 51:45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에서 나와 여호와야훼의 맹렬한 분노를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문맥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던 유다 백성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그곳에 머물던 하나님의 백성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명령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합니다. 요한의 독자들은 로마 제국의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사회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세계는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 불의한 권력의 요구와도 얽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오너라」라는 명령은 독자들에게 심각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바벨론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이 명령이 실제로 도시를 떠나는 행동만을 뜻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특정 도시에서 이주하라는 구체적인 경로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명령을 단지 마음속에서 바벨론을 싫어하는 것으로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죄에 함께 가담하지 않도록」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따라서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은 그 도성이 요구하는 거짓된 경배와 불의에 참여하지 않는 구체적인 삶의 선택을 포함합니다. 어떤 관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어떤 행위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재화는 사용할 수 있지만, 어떤 이익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거부해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 경계선을 상세한 규칙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삶과 경제활동이 바벨론의 죄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 분별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현대의 모든 시장경제나 무역, 사치품 소비를 한꺼번에 바벨론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경제활동 자체를 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문제 삼는 것은 경제적 번영이 우상 숭배와 불의, 착취와 생명의 희생에 결합된 모습입니다.
그 선택은 때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러한 선택이 단지 인간의 도덕적 우월함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명령의 시작은 「내 백성아」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바벨론보다 깨끗한 집단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늘까지 쌓인 죄
「그 여자의 죄가 하늘까지 쌓였고 하나님이 그 여자의 불의를 기억하셨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5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도성을 세우고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 했습니다(창세기 11:4). 그러나 18장에서 하늘에 닿은 것은 도성의 건축물이 아니라 죄입니다. 두 본문이 같은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이라는 이름과 하늘까지 이른다는 이미지를 함께 놓으면 의미 있는 주제적 대비가 생깁니다.
사람은 자신이 쌓아 올린 업적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쌓이는 것은 업적만이 아니라, 그 도성이 행한 불의도 쌓입니다. 바벨론은 자신이 쌓은 부와 권력을 바라보며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 도성이 쌓아 온 죄를 기억하십니다.
「기억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잊으셨던 일을 뒤늦게 떠올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불의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외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 도성이 제공한 부와 즐거움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도성이 행한 불의를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이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18장에는 어린양이라는 호칭이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죄를 이해할수록 예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해집니다. 바벨론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시장에서는 사람의 몸과 목숨이 상품이 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여러 백성과 언어와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속량하셨습니다(5:9).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부름은 앞으로 닥칠 심판을 피하라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미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비하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바벨론의 방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도성 밖으로 걸어 나가는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바벨론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다」 — 바벨론의 자기 확신이 무너지다
「그 여자가 갚은 그대로 그 여자에게 갚아 주어라. 그리고 그 여자의 행위대로 갑절로 갑절을 갚아 주어라. 그 여자가 섞은 잔에 갑절로 섞어 주어라.」요한계시록 18:6 · 본디새김
「갚은 그대로」 「그 여자의 행위대로」 「갑절로 갑절을」 — 본문은 바벨론이 행한 일과 그녀가 받을 심판을 서로 연결합니다. 특히 잔의 이미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했던 바벨론의 잔에, 이제 더 큰 몫이 섞입니다.
여기서 「갑절」은 형벌의 양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도록 주어진 표현이라기보다, 그 행위에 상응하는 충만하고 엄중한 보응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명령형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본문에서 분명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실행하라는 명령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문맥은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며, 8절은 그 도성을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명시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근거는 바벨론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일뿐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로 깊어집니다.
「그 여자가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한 만큼 그만큼 괴로움과 슬픔을 주어라. 그 여자가 자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다. 나는 과부가 아니다. 나는 슬픔을 결코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8:7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처음으로 바벨론 자신의 마음속 말이 직접 들립니다. 그녀는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있고, 보호받는 관계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슬픔을 경험할 일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바벨론의 교만은 단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는 몰락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사야 47장의 바벨론
이 문장은 이사야 47:7–9와 매우 가깝습니다. 이사야에서 바벨론은 자신이 영원히 여왕으로 있을 것이며, 과부가 되거나 자녀를 잃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일들이 갑자기 닥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요한은 고대 바벨론을 향한 이 예언을 다시 사용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힘을 자신의 영원한 미래로 착각합니다.
지금 여왕으로 앉아 있으므로 앞으로도 여왕일 것이라고, 지금 번영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슬픔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권력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확신 자체가 그녀의 교만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하루 만에 그 여자의 재앙들이 올 것이다. 죽음과 슬픔과 굶주림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불에 타 버릴 것이다. 그 여자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이 힘세시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8 · 본디새김
슬픔을 결코 보지 않겠다던 그녀에게 죽음과 슬픔과 굶주림이 닥칩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신뢰했지만,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이 힘세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루 만에」라는 표현은 뒤에 반복되는 「한 시간 만에」와 함께, 문자적인 시간표가 아니라 바벨론의 몰락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결정적인지를 강조합니다. 바벨론이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일이 갑자기 닥칩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이유는 단지 자신보다 강한 세력을 만나서가 아닙니다. 자기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그 힘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최종 보장도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한은 그 몰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들려줍니다.
첫 번째 애가 — 멀리서 우는 왕들
바벨론이 불타자 왕들이 웁니다.
그들은 그 여자와 「함께 사치하던」 땅의 왕들, 그 도성의 권력과 번영을 함께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타는 도성으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구조하러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멀찍이 서서 웁니다.
그들은 그 여자가 받는 괴로움이 두려워 멀찍이 서서 말할 것입니다. 「화가 있다, 화가 있다, 큰 도성아. 힘센 도성 바벨론아. 한 시간 만에 네 심판이 왔구나.」요한계시록 18:10 · 본디새김
그들은 바벨론의 번영을 가까이에서 누렸지만, 바벨론의 고통이 시작되자 멀리 떨어집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제공하는 이익을 누렸지만, 그 도성이 당하는 심판까지 함께 짊어지려 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실제로 울며 가슴을 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벨론과 함께 고통받을 만큼 가까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을 「힘센 도성」이라고 부르고, 바로 다음에 그 도성의 심판이 한 시간 만에 왔다고 탄식합니다.
이 두 표현은 서로를 무너뜨립니다.
그토록 힘센 도성이었지만, 그 힘이 심판을 막아 주지 못했습니다. 왕들의 애가는 바벨론을 찬양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바벨론의 무력함을 증언하는 말이 됩니다.
왕들의 눈에는 정치적 권력의 붕괴가 보였다면, 상인들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입니다. 사라진 시장입니다.
두 번째 애가 — 상품 목록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람의 목숨
그리고 땅의 상인들이 그 여자를 두고 울며 슬퍼합니다. 아무도 그들의 짐을 더는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18:11 · 본디새김
상인들은 바벨론의 몰락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서술자가 밝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상품을 팔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바벨론의 죄보다 무너진 거래에 있습니다.
이제 요한은 상품들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합니다.
금, 은, 보석, 진주, 아마포, 자주 옷감, 비단, 진홍 옷감.
향나무와 상아, 값진 나무, 놋, 쇠, 대리석.
계피와 향료, 향유와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고운 밀가루, 밀.
가축과 양, 말과 수레.
이 목록은 길고 화려합니다. 독자는 옷감 가게와 귀금속, 향료, 음식과 운송 수단까지 있는 거대한 시장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마지막 두 항목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올리브기름과 고운 밀가루와 밀과 가축과 양과 말과 수레와 몸, 그리고 사람의 목숨들입니다.요한계시록 18:13 · 본디새김
금과 보석으로 시작한 목록이 사람의 목숨으로 끝납니다.
왜 사람의 몸이 상품 목록에 들어 있는가?
「몸」은 문자 그대로 몸들이지만, 고대의 상업적 문맥에서는 노예를 가리킬 수 있었습니다. 두 표현을 함께 노예 매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읽기도 있고, 노예로 거래되는 몸과 경제적 착취 속에서 희생되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더 넓은 의미를 함께 읽는 읽기도 있습니다. 본문의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 거래되는 상품 목록 안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적 과장이 아닙니다. 고대 로마 세계에서 노예는 실제로 매매되는 재산이었습니다. 사람의 노동력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소유와 거래의 대상이 되었고, 요한은 바로 그 현실을 바벨론의 상품 목록 안에 넣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탐낼 만한 귀한 물건들이, 중간에는 사치와 생활을 유지하는 다양한 상품들이, 마지막에는 사람의 몸과 목숨이 등장합니다. 마치 상품을 하나하나 세어 가던 독자가 끝에 이르러, 앞서 보았던 화려한 시장의 진짜 성격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시장에서는 인간의 생명마저 거래됩니다.
이것은 18장의 경제 비판을 단순히 부유한 사람들이 사치를 즐긴다는 문제에 머물지 않게 만듭니다. 바벨론의 번영은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할 수 있는 질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27장의 두로가 다시 나타나다
이 긴 상품 목록의 중요한 배경은 에스겔 27장입니다. 그곳에서 예언자 에스겔은 해상무역으로 부유해진 두로의 멸망을 애도하는 노래를 전합니다. 두로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고, 에스겔은 금속과 옷감, 향료, 가축 등 그 도성으로 모인 여러 물건을 나열합니다. 그 목록에는 사람을 거래한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에스겔 27:13).
그리고 그토록 풍요로웠던 두로는 마침내 침몰하는 배처럼 묘사되고, 두로의 선원들과 상인들은 도성의 몰락을 슬퍼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애가에서 상품 목록과 선원들의 탄식, 재물을 잃는 슬픔이라는 요소를 폭넓게 가져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주제적 유사성을 넘어 장면의 구성과 여러 표현이 대응하는 문학적 연결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고대 두로에 관한 예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도성에 그 애가를 적용합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름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국의 교만이, 두로의 애가에서는 거대한 무역과 사치, 그리고 경제적 몰락이 떠오릅니다. 요한은 서로 다른 구약의 예언들을 결합해, 자신이 보고 있는 거대한 권력의 정치적·경제적 성격을 드러냅니다.
상인들의 애가가 드러내는 욕망
「그리고 네 목숨이 탐내던 열매가 너에게서 떠나갔고, 기름지고 빛나던 것이 모두 너에게서 사라졌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는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요한계시록 18:14 · 본디새김
상품 목록이 끝나고 바벨론 자신을 향한 말이 등장합니다. 「네 목숨이 탐내던 열매」라는 표현은 바벨론이 단지 많은 재물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넘어섭니다. 그녀는 그것을 탐냈고, 그녀의 욕망이 그 재물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경제 질서는 중립적인 거래 체계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러 민족의 상품이 모여들고, 심지어 사람의 몸과 목숨도 거래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토록 탐내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는 결코」라는 표현이 처음 나타나, 뒤이어 21–23절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앞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이 「한 시간 만에」 일어났다고 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의 짧음에서 상실의 영속성으로 시선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팔아 그 여자에게서 부자가 된 상인들이 그 여자가 받는 괴로움이 두려워 멀찍이 서서 울며 슬퍼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8:15 · 본디새김
여기서 왕들의 행동이 반복됩니다. 왕들은 정치적 관계를 맺고 사치를 누렸고, 상인들은 상품을 팔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그녀의 번영은 함께 누렸지만, 그녀의 고통에는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인들은 바벨론이 걸쳤던 고운 아마포와 자주 옷, 금과 보석과 진주를 회상하며 탄식합니다.
「한 시간 만에 그 많은 부가 황폐해졌구나.」 그리고 모든 선장과 어디로든 배를 타고 다니는 이들과 뱃사람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이 모두 멀찍이 서서,요한계시록 18:17 · 본디새김
왕들은 한 시간 만에 심판이 왔다고 했고, 상인들은 한 시간 만에 부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같은 멸망을 바라보지만, 왕들은 도성의 힘과 심판을, 상인들은 도성의 부를 말합니다. 요한은 바벨론의 몰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로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그리스어 원문에서 「몸」은 소마타, 「사람의 목숨들」은 프쉬카스 안트로폰입니다. 소마타는 문자 그대로 몸들이지만 고대의 상업적 문맥에서는 노예를 가리킬 수 있었습니다. 「목숨」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생명이나 목숨, 사람을 뜻할 수 있으므로, 마지막 표현을 몸과 분리된 비물질적 영혼을 거래한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두 표현의 관계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려, 둘을 함께 노예 매매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읽기와, 사람의 생명을 소모시키는 보다 넓은 거래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읽기가 있습니다.
세 번째 애가 — 바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부르짖다
이제 장면은 바다로 옮겨 갑니다.
17절에서 바벨론과 거래하던 선장들과 뱃사람들, 해상 운송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도 멀찍이 서 있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왕들도 멀찍이 섰습니다.
상인들도 멀찍이 섰습니다.
뱃사람들도 멀찍이 섭니다.
요한은 같은 동작을 세 번 반복해 바벨론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바벨론이 번영할 때 그들은 모두 그 도성을 가까이했지만, 바벨론이 심판받자 모두 거리를 둡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직업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가 제공하는 이익은 누리고 싶고 그녀가 받는 고통은 피하고 싶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어느 도성이 이 큰 도성과 같으랴?」
그 여자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치며 말했습니다. 「어느 도성이 이 큰 도성과 같으랴?」요한계시록 18:18 · 본디새김
이 말은 에스겔 27:32에서 두로의 몰락을 애도하던 사람들이 외쳤던 말과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요한계시록 13:4에서 사람들이 짐승에게 경배하며 누가 짐승과 같으냐고 말한 장면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질문은 동일한 표현은 아니지만, 모두 강력한 대상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처럼 높인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나 18장의 질문은 바벨론이 불타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나옵니다. 그들이 비교할 수 없는 도성이라고 찬양하던 곳이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질문은 의도하지 않은 역설을 만들어 내며, 바벨론의 영광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머리에 티끌을 뿌리고 울며 슬퍼하며 외쳐 말했습니다. 「화가 있다, 화가 있다, 큰 도성아. 바다에 배를 가진 이들이 모두 그 안에서 그 도성의 값진 재물로 부자가 되었는데, 그 도성이 한 시간 만에 황폐해졌구나.」요한계시록 18:19 · 본디새김
이번에도 애도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을 부자로 만든 부의 원천이 사라졌습니다. 티끌을 머리에 뿌리는 행동은 고대에 슬픔과 애도를 나타내는 몸짓이었으며, 에스겔 27:30에서도 두로의 몰락을 바라보는 뱃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합니다.
세 애가는 모두 바벨론의 위대함을 말하고, 그녀의 부와 그녀가 자신들에게 제공한 이익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어떻게 그 부를 얻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의 피가 흘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몰락은 그들에게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슬퍼하는 것은 바벨론이 행한 죄가 아닙니다.
이제 요한은 갑자기 그 애가들을 중단시키고 전혀 다른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하늘에서는 왜 기뻐하라고 하는가?
「하늘아, 그리고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아, 그 도성을 두고 즐거워하여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 도성에 심판을 내리셨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20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앞선 세 애가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같은 도성의 멸망을 두고 한쪽에서는 애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뻐합니다. 왜 이렇게 반응이 다릅니까?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왕들과 상인들과 뱃사람들은 바벨론을 통해 얻었던 부와 이익을 기억하지만, 성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도성 때문에 흘려야 했던 피를 기억합니다.
기쁨의 근거는 고통 자체가 아니다
이 구절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광경 자체를 즐거워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본문이 제시하는 이유를 놓치게 됩니다.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특히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그리스어 표현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바벨론이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하나님이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6:9–10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 때문에 죽임당한 이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피에 대한 심판과 신원을 요청했습니다. 18:20은 그 외침에 응답하는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의 기쁨은 고통 자체를 즐기는 기쁨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당했던 불의가 하나님의 판단 아래 놓였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세상은 그 권력이 희생시킨 사람들의 죽음을 중요하지 않게 여겼을 수 있고, 왕들과 상인들이 바벨론의 번영을 찬양할 때 그들의 피는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18장은 경제적 성공이나 정치적 힘이 하나님의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장면에서는 애가도 멈춥니다. 천사 하나가 커다란 돌을 들어 올립니다.
바다에 던져진 맷돌 — 다시는 발견되지 않을 도성
그리고 힘센 천사 하나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큰 도성 바벨론이 이처럼 거세게 던져질 것이고, 다시는 결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8:21 · 본디새김
요한은 이제 바벨론의 최후를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돌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51:63–64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상징 행동으로, 두 장면이 공유하는 핵심은 무거운 돌이 물속으로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닙니다. 잠시 힘을 잃었다가 다시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는 몰락도 아닙니다.
그 도성은 다시는 발견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가 삼킨 도성
앞서 바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바벨론과의 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다며 그 멸망을 보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바다에 커다란 돌이 던져집니다. 바다는 더 이상 바벨론에 부를 가져다주는 길로만 보이지 않고, 그 도성의 영원한 소멸을 보여 주는 장소가 됩니다.
이것은 에스겔 27장에서 두로가 거대한 배처럼 묘사되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부서지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바벨론이 의지했던 경제적 번영과 그 몰락의 이미지가 바다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바벨론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 준 뒤에도 설명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도성 안에서 어떤 소리들이 사라지는지 하나씩 들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읽은 뒤, 그 두루마리에 돌을 묶어 유프라테스강에 던지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그처럼 가라앉아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요한은 이 상징 행동을 새로운 환상으로 옮겨 와, 두루마리에 묶인 돌 대신 큰 맷돌 같은 돌이, 유프라테스강 대신 바다에 던져지게 합니다.
음악이 멈추고 맷돌이 멈추다 — 도성의 소리가 사라지는 심판
「수금 타는 이들과 음악가들과 피리 부는 이들과 나팔 부는 이들의 소리가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술의 어떤 장인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맷돌 소리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8:22 · 본디새김
천사는 무너진 건물의 높이나 죽은 사람의 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라지는 소리들을 말합니다.
음악 소리가 사라집니다.
장인들의 활동이 멈춥니다.
맷돌 소리가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등불이 꺼지고 신랑과 신부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처음에 바벨론은 온갖 상품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사고팔고, 왕들이 사치를 즐기는 도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도성이 됩니다.
왜 하필 음악과 맷돌 소리인가?
음악은 인간이 함께 기쁨을 나누는 활동을, 장인들의 기술은 물건을 만들고 삶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활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맷돌 소리는 곡식을 갈아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상적인 노동과, 등불 빛은 밤에도 계속되는 가정의 생활과, 신랑과 신부의 소리는 결혼과 새로운 가정의 시작과 관련됩니다.
이것들은 본래 악한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범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소리들이 모두 사라져야 할까요?
본문은 바벨론의 멸망을 단순히 왕궁이 불타는 사건으로만 보여 주지 않고, 하나의 도성이 가진 삶의 질서 전체가 끝나는 모습으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일하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연주하고, 결혼하며 살아가던 공간이 더 이상 그런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 묘사는 예레미야 25:10과 매우 가깝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기쁨의 소리와 신랑과 신부의 소리,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사라질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표현들을 다시 사용해 바벨론의 멸망을 일상의 완전한 중단으로 보여 줍니다.
바벨론은 스스로를 영원히 번영하는 도성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그 목적을 위해 사람들의 노동과 상품과 생명까지 자신의 번영에 종속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삶의 영원한 풍요가 아니라 삶의 소리들이 사라지는 심판입니다.
자신의 번영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키던 도성에서, 마침내 삶의 소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다시는 결코」라는 반복
22–23절에서는 「다시는 결코」가 거듭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단순히 멸망의 규모를 강조하지 않고, 그 멸망이 되돌릴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앞선 애가에서 왕들과 상인들과 뱃사람들은 모두 「한 시간 만에」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그렇게 빨리 무너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벨론은 한때 모든 것이 자신에게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것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곳이 됩니다.
그리고 이 장의 마지막 두 절은 그 침묵의 이유를 밝혀 줍니다.
상인들은 높은 이들이었고, 민족들은 속았다
「등불 빛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비치지 않을 것이다. 신랑과 신부의 소리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네 상인들이 땅의 높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네 약술로 모든 민족이 헤맸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23 · 본디새김
여기서 상인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땅의 높은 이들입니다. 경제적 부가 사회적 지위와 권력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요한은 상인들이 모두 악하다고 일반화하지 않고, 바벨론의 상인들이 가진 특별한 지위를 말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사치로 부자가 되었고, 그 부를 통해 세상의 높은 이들이 되었습니다. 이 문장은 바벨론의 경제 질서가 정치적·사회적 권력과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벨론이 민족들에게 행사한 또 다른 힘이 언급됩니다.
「약술」은 무엇을 뜻하는가?
「약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파르마케이아(φαρμακεία)입니다. 이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약물의 사용과 관련될 수 있지만, 마술이나 주술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18:23에서는 그것이 모든 민족을 미혹하는 수단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오늘날의 일반적인 의약품이나 의학적 치료를 비난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핵심은 바벨론이 사람들을 속이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힘을 행사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바벨론의 포도주가 민족들을 취하게 했다는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의 화려함에 매혹되고, 그녀의 사치에 참여하고, 그녀와 거래하며 부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그녀가 실제로 무엇을 행하는지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바벨론의 미혹은 거짓 종교적 주장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치적 관계와 경제적 번영, 사람들의 욕망을 통해 작동하는 힘으로 묘사됩니다. 그녀가 제공하는 것은 너무 매력적이고, 그녀와의 거래는 실제로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 모든 번영은 사람의 목숨마저 상품으로 취급하는 질서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속임수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번영을 보여 주지만, 그 번영의 비용을 온전히 보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천사는 바벨론의 마지막 죄목을 선언합니다.
마지막에 발견된 것 — 바벨론 안에 있던 피
「그리고 그 도성 안에서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그리고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이의 피가 발견되었다.」요한계시록 18:24 · 본디새김
18장은 이 문장으로 끝납니다.
긴 상품 목록도, 왕들과 상인들과 뱃사람들의 애가도, 음악과 노동과 결혼식의 소리가 사라지는 선언도 끝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발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피입니다.
상인들이 찾지 못한 것과 하나님이 발견하신 것
14절에서는 바벨론이 탐내던 화려한 것들을 사람들이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1절에서는 바벨론 자체가, 22절에서는 장인들도 더 이상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는 피가 발견됩니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던 것은 사라지고, 도성의 영광은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도성의 죄를 드러내는 피는 발견됩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단순한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도덕적인 심판입니다.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이의 피」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뿐 아니라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이의 피가 언급됩니다. 이것을 바벨론이 역사상 일어난 모든 살인을 문자 그대로 직접 실행했다는 주장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은 바벨론의 폭력과 책임을 극대화된 예언적 언어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의 폭을 지나치게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바벨론이 흘린 피는 예수님의 증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18장에서는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특별히 강조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가 받은 박해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폭력 자체를 드러냅니다.
이것은 13절의 상품 목록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18장은 인간의 생명을 두 번이나 결정적인 자리에 놓습니다. 한 번은 시장의 상품 목록 끝에서, 다른 한 번은 도성의 죄를 밝히는 마지막 선언에서입니다.
그 도성은 사람의 생명을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을 잊지 않으십니다.
바벨론은 사람을 상품으로 셌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피를 기억하십니다.
바벨론에 대한 애가가 끝나고 남는 것
바벨론이 무너질 때 왕들은 힘을, 상인들은 시장을, 뱃사람들은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던 재물을 잃고 웁니다. 그들의 애가는 바벨론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바벨론이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는지 드러냅니다. 그들이 끝내 기억하지 않는 것, 곧 상품 목록 끝에 놓여 있던 사람의 목숨과 도성 안에서 발견된 피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벨론의 죄는 몰락의 순간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 도성이 가장 화려하고 부유했던 때에도 이미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성의 모든 소리가 사라집니다. 음악가들의 연주도,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도, 맷돌 소리도 그칩니다. 등불도 비치지 않고, 신랑과 신부의 기쁜 목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한때 온 세상에서 사람과 재물이 모여들던 도성이 이제 침묵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이 잃어버린 재물의 규모를 계산하며 끝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재물 아래에 가려져 있던 피를 보여 주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