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2–20장 · 용과 짐승과 바벨론
바벨론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무엇을 잃고 우는가?
요한계시록 18장은 한 도시의 몰락을 보여 줍니다.
바벨론이 무너집니다. 왕들이 울고, 상인들이 울고,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탄식을 자세히 들어 보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왕들은 함께 사치하던 도시에 닥친 심판을 슬퍼합니다. 상인들은 더 이상 상품을 사 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합니다. 선원들은 자신들을 부유하게 해 주었던 도시가 사라졌다고 슬퍼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울지만, 그 도시가 피를 흘리게 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우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상인들이 슬퍼하는 상품 목록에는 금과 은, 보석과 비단뿐 아니라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 곧 사람의 목숨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울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상품을 더 이상 팔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웁니다.
이것이 18장의 가장 불편한 장면입니다.
바벨론의 화려한 번영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의 비용을 누가 치렀는지는 사람들의 슬픈 노래가 아니라, 장의 맨 마지막에 놓인 하나님의 선언 「그 도시에서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발견되었다」에서 밝혀집니다. 바벨론은 단지 너무 부유해서 심판받는 도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을 높였던 도시입니다.
17장에서 요한은 바벨론이 짐승과 결합한 거대한 권력임을 보았습니다. 18장은 그 권력이 사람들의 일상과 경제활동 속에서 어떻게 움직였으며, 몰락할 때 누가 무엇을 슬퍼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멸망의 선언이 들립니다. 이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도시에서 나오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 뒤 왕들과 상인들, 선원들의 슬픈 노래가 잇따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음악도, 맷돌 소리도, 결혼식의 기쁨도 사라집니다.
요한은 요란한 슬픈 노래로 시작한 도시의 이야기를 완전한 침묵으로 끝냅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 빛나는 천사가 폐허를 선포하다
그 뒤에 나는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해졌습니다.요한계시록 18:1 · 두루새김
첫 장면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시작합니다.
17장의 바벨론은 자줏빛과 선명한 붉은빛 옷,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자신을 꾸몄습니다. 그녀의 영광은 자신이 가진 값비싼 물건들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18장의 천사에게는 어떤 장신구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영광 자체가 땅을 밝힙니다.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재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도시의 화려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자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 빛 가운데서 바벨론에 대한 선언이 울려 퍼집니다.
그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바벨론이! 그 도시는 귀신들이 사는 곳이 되었다. 온갖 더러운 영이 갇힌 곳, 온갖 더럽고 미움받는 새가 갇힌 곳이 되었다.」요한계시록 18:2 · 두루새김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고 외칩니다.
이 표현은 이사야 21:9를 직접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의 신상들이 부서졌다고 선포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8에서도 한 천사가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언했는데, 이제 그 선언이 더 길고 구체적인 심판의 환상으로 펼쳐집니다.
아직 독자가 바벨론의 몰락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멸망은 이미 확정된 일처럼 선포됩니다. 묵시적 환상은 사건을 반드시 시간순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선언이 먼저 주어지고, 뒤이어 그 뜻이 여러 장면을 통해 드러납니다.
화려한 도성은 어떻게 더러운 영들의 거처가 되는가?
사람들과 재물이 모여들던 큰 도시가 이제 귀신들이 사는 곳, 더러운 영들과 더럽고 미움받는 새들이 갇힌 곳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13:19–22와 연결됩니다. 이사야는 한때 영광을 누렸던 바벨론이 폐허가 되어 황야의 짐승과 새들이 자리 잡는 모습을 묘사했고, 요한은 그 폐허의 모습을 자신이 말하는 큰 바벨론에 다시 적용합니다.
여기서 요한이 보여 주는 변화는 단순한 건물의 파괴가 아닙니다.
바벨론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그 도시는 더러운 존재들의 거처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다음 절이 그 이유를 밝힙니다.
「분노를 불러오는 그 여자의 음행의 포도주로 모든 민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땅의 왕들은 그 여자와 음행했고, 땅의 상인들은 그 여자의 엄청난 사치로 부자가 되었다.」요한계시록 18:3 · 두루새김
민족들은 바벨론의 포도주로 무너졌습니다. 왕들은 그녀와 음행했습니다. 상인들은 그녀의 사치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사본을 따라 읽든 바벨론이 다른 민족들을 자신의 죄에 끌어들였다는 중심 의미는 같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상인들입니다. 17장에서 바벨론의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배신이 두드러졌다면, 18장에서는 그녀의 경제적 영향력이 앞에 나섭니다. 그녀의 사치는 다른 사람들의 부를 만들어 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은 단지 폭력을 행사하는 통치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지위를 얻는 방식과 깊이 결합된 권력입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몰락은 그 도시와 거래하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이 됩니다.
그러나 그 충격을 보여 주기 전에 하늘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번에는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목소리입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의 「갇힌 곳」은 원문의 퓔라케로, 감옥이나 가두어 두는 장소를 뜻할 수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더러운 존재들이 머무는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이해됩니다. 따라서 귀신들이 어떤 형벌을 받는지에 관한 상세한 지도를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3절의 「무너졌기 때문이다」에는 사본상의 차이가 있어 「무너졌다」와 「마셨다」 두 읽기가 전해집니다. 「마셨다」로 읽으면 바벨론의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이 직접 강조되고, 「무너졌다」로 읽으면 바벨론 자신이 무너졌다는 선언과 민족들이 그녀의 포도주로 무너졌다는 선언이 서로 이어집니다.
「내 백성아, 그 도시에서 나와라」 — 도성의 죄에 가담하지 말라는 부름
나는 하늘에서 다른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아, 그 도시에서 나와라. 그 도시가 짓는 죄에 함께하지 않고, 그 도시에 닥칠 재앙도 함께 받지 않기 위해서다.」요한계시록 18:4 · 두루새김
천사는 앞서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하늘의 다른 목소리는 그 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부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에서 나와야 합니까? 본문은 두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그 도시가 짓는 죄에 함께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그 도시에 닥칠 재앙을 함께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재앙을 피하기 전에 먼저 죄에 함께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는 일은 무엇보다 그 도시의 죄와 관계를 끊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바벨론을 떠나라는 명령
이 명령은 예레미야 51:45와 직접 연결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던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그곳에서 나와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를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명령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합니다. 요한의 독자들은 로마 제국의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사회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세계는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 불의한 권력의 요구와도 얽혀 있었습니다.
여기서 실제로 도시를 떠나는 행동만을 뜻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요한은 특정 도시에서 이주하라는 구체적인 경로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명령을 단지 마음속에서 바벨론을 싫어하는 것으로 줄여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그 도시가 짓는 죄에 함께하지 않고」라고 분명히 말하므로,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은 그 도시가 요구하는 거짓된 경배와 불의에 참여하지 않는 구체적인 삶의 선택을 포함합니다.
어떤 관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어떤 행위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어떤 물건은 사용할 수 있지만, 어떤 이익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거부해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 경계선을 상세한 규칙으로 제시하지 않고, 독자가 자신의 삶과 경제활동이 바벨론의 죄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 분별하게 합니다.
그 선택은 때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령의 시작은 「내 백성아」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바벨론보다 깨끗한 집단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름은 도덕적 우월함을 증명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삶으로 드러내라는 말입니다.
하늘까지 쌓인 죄
「그 도시의 죄가 하늘에 닿도록 쌓였고, 하나님께서 그 도시가 저지른 악한 일들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5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도시를 세우고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 했습니다(창세기 11:4). 그러나 18장에서 하늘에 닿은 것은 도시의 건축물이 아니라 죄입니다. 두 본문이 같은 표현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지만, 바벨론이라는 이름과 하늘까지 이른다는 모습을 함께 놓으면 의미 있는 대비가 생깁니다.
「기억하셨기 때문이다」는 하나님이 잊으셨던 일을 뒤늦게 떠올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동안 쌓인 악한 일들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외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 도시가 제공한 부와 즐거움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도시가 저지른 악한 일들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이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나는 여왕의 자리에 앉아 있다」 — 바벨론의 자기 확신이 무너지다
「그 도시가 남들에게 갚아 준 대로 그 도시에 갚아 주어라. 그 도시가 한 일의 두 배로 갚아 주어라. 그 도시가 술을 섞던 잔에 두 배로 섞어 주어라.」요한계시록 18:6 · 두루새김
바벨론은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제 자신이 술을 섞던 잔에 더 큰 몫이 섞입니다. 「두 배」는 형벌의 양을 계산하라는 표현이라기보다, 그 행위에 걸맞은 충분하고 엄중한 갚음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을 받는 이가 누구인지는 본문에서 분명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실행하라는 명령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문맥은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며, 8절은 그 도시를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근거는 바벨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로 깊어집니다.
「그 도시가 자신을 높이고 사치를 부린 만큼 고통과 슬픔을 주어라. 그 도시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왕의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남편을 잃은 여자가 아니다. 나는 결코 슬픔을 겪지 않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8:7 · 두루새김
처음으로 바벨론 자신의 마음속 말이 직접 들립니다. 그녀는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있고, 보호받는 관계를 잃지 않을 것이며, 슬픔을 겪을 일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바벨론의 교만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몰락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사야 47장의 바벨론
이 문장은 이사야 47:7–9와 매우 가깝습니다. 이사야에서 바벨론은 자신이 영원히 여왕으로 있을 것이며 남편이나 자녀를 잃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일들이 갑자기 닥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요한은 고대 바벨론을 향한 이 예언을 다시 사용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힘을 자신의 영원한 미래로 착각합니다. 지금 여왕이므로 앞으로도 여왕일 것이고, 지금 번영하므로 앞으로도 슬픔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권력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슬픔과 굶주림의 재앙이 하루 만에 그 도시에 닥칠 것이다. 그 도시는 불에 타 버릴 것이다. 그 도시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께서 강하시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8 · 두루새김
바벨론은 결코 슬픔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죽음과 슬픔과 굶주림이 하루 만에 닥칩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신뢰했지만,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께서 강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이유는 단지 자신보다 강한 세력을 만나서가 아닙니다. 자기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그 힘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최종 보장도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한은 그 몰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들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하루 만에」는 뒤에 반복되는 「한 시간 만에」와 함께 바벨론의 몰락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결정적인지를 강조합니다. 이를 각각 문자적인 하루와 육십 분으로 계산하여 사건의 시간표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첫 번째 애가 — 멀리서 우는 왕들
그 여자와 음행하며 함께 사치하던 땅의 왕들은 그 도시가 불타는 연기를 볼 때, 그 도시를 두고 울며 가슴을 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8:9 · 두루새김
바벨론이 불타자 왕들이 웁니다. 그들은 그 도시의 권력과 번영을 함께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타는 도시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구조하러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멀찍이 서서 웁니다.
왕들은 그 도시가 받는 고통이 두려워 멀찍이 서서 말할 것입니다. 「재앙이 닥쳤구나, 재앙이 닥쳤구나! 큰 도시야, 강한 도시 바벨론아! 한 시간 만에 네게 심판이 닥쳤구나.」요한계시록 18:10 · 두루새김
그들은 바벨론의 번영을 가까이에서 누렸지만, 고통이 시작되자 멀리 떨어집니다. 바벨론이 제공하는 이익은 누렸지만, 그 도시가 당하는 심판까지 함께 짊어지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울음이 거짓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본문은 실제로 그들이 울며 가슴을 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함께 고통받을 만큼 가까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을 「강한 도시」라고 부르고, 바로 다음에 그 도시의 심판이 한 시간 만에 닥쳤다고 탄식합니다. 그토록 강한 도시였지만, 그 힘이 심판을 막아 주지 못했습니다.
왕들의 슬픈 노래는 바벨론을 찬양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바벨론의 무력함을 증언하는 말이 됩니다.
왕들의 눈에 정치적 권력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면, 이어 등장하는 상인들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입니다. 사라진 시장입니다.
두 번째 애가 — 상품 목록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람의 목숨
땅의 상인들도 그 도시를 두고 울며 슬퍼합니다. 이제 아무도 그들의 상품을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18:11 · 두루새김
상인들은 바벨론의 몰락을 슬퍼하지만, 글을 들려주는 이가 밝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상품을 팔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바벨론의 죄보다 무너진 거래에 있습니다.
이제 요한은 상품들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합니다.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아마포, 자줏빛 옷감, 비단, 선명한 붉은빛 옷감. 향기 나는 나무와 상아로 만든 물건, 아주 값비싼 나무와 놋쇠와 쇠와 대리석으로 만든 물건. 계피와 향료, 향과 향유와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고운 밀가루, 밀. 가축과 양, 말과 수레.
독자는 거대한 시장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들에 도착해야 합니다.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 포도주와 올리브기름과 고운 밀가루와 밀, 가축과 양, 말과 수레, 그리고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 곧 사람의 목숨입니다.요한계시록 18:13 · 두루새김
금과 보석으로 시작한 목록이 사람의 목숨으로 끝납니다.
왜 사람의 몸이 상품 목록에 들어 있는가?
고대 로마 세계에서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매매되는 재산이었습니다. 사람의 노동력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소유와 거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바로 그 현실을 바벨론의 상품 목록 안에 넣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탐낼 만한 귀한 물건들이, 중간에는 사치와 생활을 유지하는 상품들이, 마지막에는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 곧 사람의 목숨이 등장합니다. 상품을 하나하나 세어 가던 독자가 끝에 이르러 화려한 시장의 진짜 성격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시장에서는 인간의 생명마저 거래됩니다.
그래서 18장의 경제 비판은 부유한 사람들이 사치를 즐긴다는 문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도시의 시장에서는 값으로 환산해서는 안 될 사람의 생명까지 상품이 됩니다. 이 마지막 두 표현이 종 매매만을 가리키는지, 생명을 소모시키는 더 넓은 거래까지 포함하는지는 해석이 갈리지만, 인간이 상품 목록 안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상인들의 애가가 드러내는 욕망
그 도시를 향한 말이 이어집니다. 「네 마음이 바라던 열매가 네게서 떠나갔고, 풍요롭고 화려한 것들이 모두 네게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시는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요한계시록 18:14 · 두루새김
「네 마음이 바라던 열매」는 바벨론이 많은 재물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넘어, 그녀의 욕망이 그 재물에 매달려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벨론의 경제 질서는 중립적인 거래 체계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려는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 거래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결코」라는 표현이 처음 나타납니다. 이 표현은 21–23절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앞에서는 멸망이 「한 시간 만에」 일어났다고 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것을 「다시는 결코」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의 짧음에서 영원히 이어질 상실로 시선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품을 팔아 그 도시에서 부자가 된 상인들은 그 도시가 받는 고통이 두려워 멀찍이 서서 울며 슬퍼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8:15 · 두루새김
왕들의 행동이 반복됩니다. 왕들은 정치적 관계를 맺고 사치를 누렸고, 상인들은 상품을 팔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그녀의 번영은 함께 누렸지만, 그녀의 고통에는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상인들은 바벨론이 걸쳤던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를 떠올리며 탄식합니다.
상인들의 탄식은 이어집니다. 「그 많은 재물이 한 시간 만에 사라졌구나!」 선장들과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멀찍이 섰습니다.요한계시록 18:17 · 두루새김
왕들은 한 시간 만에 심판이 닥쳤다고 했고, 상인들은 한 시간 만에 재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같은 멸망을 바라보지만, 왕들은 도시의 힘과 심판을 말하고 상인들은 도시의 재물을 말합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로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은 원문의 소마타, 곧 「몸들」로, 고대의 상업적 문맥에서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었습니다. 뒤의 「사람의 목숨」에 쓰인 낱말은 생명이나 목숨, 사람을 뜻할 수 있으므로, 몸과 분리된 영혼을 거래한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두 표현의 관계는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는 둘을 함께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의 거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종으로 거래되는 몸과 경제적 착취 속에서 희생되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더 넓은 의미를 함께 읽는 것입니다. 두루새김은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 곧 사람의 목숨」으로 옮겨 두 표현을 함께 읽는 쪽을 따릅니다. 이 긴 목록의 배경은 에스겔 27장입니다. 에스겔은 바다 무역으로 부유해진 두로의 멸망을 슬퍼하는 노래를 전하며 금속과 옷감, 향료, 가축과 함께 사람을 거래한 일까지 나열하고(에스겔 27:13), 두로를 침몰하는 배처럼 묘사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노래에서 상품 목록과 선원들의 탄식, 재물을 잃는 슬픔을 폭넓게 가져와 바벨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도시에 적용합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름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국의 교만이, 두로의 노래에서는 거대한 무역과 사치와 경제적 몰락이 떠오릅니다. 18장에는 어린양이라는 호칭이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이 상품 목록은 예수님의 구원과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바벨론의 시장에서는 사람이 종으로 팔리고 사람의 목숨이 상품이 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여러 백성과 언어와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속하게 하셨습니다(5:9). 바벨론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세 번째 애가 — 바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부르짖다
이제 장면은 바다로 옮겨 갑니다.
바벨론과 거래하던 선장들과 선원들, 바다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도 17절 끝에서처럼 멀찍이 서 있습니다.
왕들도 멀찍이 섰습니다.
상인들도 멀찍이 섰습니다.
선원들도 멀찍이 섭니다.
요한은 같은 동작을 세 번 반복합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직업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여자가 제공하는 이익은 누리고 싶고 그 여자가 받는 고통은 피하고 싶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어느 도시가 이 큰 도시와 같겠느냐?」
그들은 그 도시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쳤습니다. 「어느 도시가 이 큰 도시와 같겠느냐?」요한계시록 18:18 · 두루새김
이 말은 에스겔 27:32에서 두로의 몰락을 슬퍼하던 사람들의 외침과 가깝습니다. 또 13:4에서 사람들이 짐승에게 경배하며 「누가 짐승과 같으냐」고 한 말도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모두 강력한 대상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처럼 높인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바벨론이 불타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나옵니다. 비교할 수 없는 도시라고 찬양하던 곳이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의도하지 않은 역설이 되어, 바벨론의 영광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머리에 흙먼지를 뿌리고 울며 슬퍼하면서 외쳤습니다. 「재앙이 닥쳤구나, 재앙이 닥쳤구나! 큰 도시야! 바다에 배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네 값진 재물 덕분에 부자가 되었는데, 네가 한 시간 만에 폐허가 되었구나!」요한계시록 18:19 · 두루새김
흙먼지를 머리에 뿌리는 행동은 고대에 슬픔과 애도를 나타내는 몸짓이었습니다. 에스겔 27:30에서도 두로의 몰락을 바라보는 선원들이 같은 행동을 합니다.
세 애가는 모두 바벨론의 위대함을 말하고, 그 여자의 부와 그 여자가 자신들에게 준 이익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어떻게 그 부를 얻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의 피가 흘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몰락은 그들에게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슬퍼하는 것은 바벨론이 행한 죄가 아닙니다.
이제 요한은 갑자기 그 애가들을 중단시키고 전혀 다른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하늘에서는 왜 기뻐하라고 하는가?
하늘을 향한 외침도 이어집니다. 「하늘아,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아, 그 도시 때문에 기뻐하여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그 도시를 심판하셨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20 · 두루새김
왕들과 상인들과 선원들은 울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는 기뻐하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같은 도시의 멸망을 두고 반응이 갈리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왕들과 상인들과 선원들은 바벨론을 통해 얻었던 부와 이익을 기억합니다. 성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도시 때문에 흘려야 했던 피를 기억합니다.
기쁨의 근거는 고통 자체가 아니다
이 구절을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광경 자체를 즐거워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본문이 제시하는 이유를 놓치게 됩니다.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너희를 위해」라는 말은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바벨론이 그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하나님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요한계시록 6:9–10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 때문에 죽임당한 이들은 자기들의 피에 대한 심판과 억울함을 풀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18:20은 그 외침에 응답하는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은 고통을 즐기는 기쁨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당했던 불의가 하나님의 판단 아래 놓였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왕들과 상인들이 바벨론의 번영을 찬양할 때 그들의 피는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피를 기억하십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몰락을 바라보는 하늘과 땅의 시선이 갈라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제 애가도 멈춥니다. 천사 하나가 커다란 돌을 들어 올립니다.
바다에 던져진 맷돌 — 다시는 발견되지 않을 도시
힘센 천사 하나가 곡식을 가는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큰 도시 바벨론도 이렇게 거세게 내던져질 것이며, 다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8:21 · 두루새김
돌은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잠시 힘을 잃었다가 다시 이전의 영광을 되찾는 몰락이 아닙니다. 그 도시는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바다가 삼킨 도시
앞서 바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바벨론과의 무역으로 부자가 되었고, 그 멸망을 보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바다에 커다란 돌이 던져집니다. 바다는 더 이상 바벨론에 부를 가져다주는 길로만 보이지 않고, 그 도시가 영원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소가 됩니다. 이것은 에스겔 27장에서 두로가 거대한 배처럼 묘사되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부서지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바벨론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 준 뒤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도시 안에서 어떤 소리들이 사라지는지 하나씩 들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예레미야 51:63–64의 상징 행동과 직접 연결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스라야에게 주며, 바벨론에서 그것을 읽은 뒤 돌을 묶어 유프라테스강에 던지도록 지시했고, 바벨론이 그처럼 가라앉아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는 두루마리에 묶인 돌이 강에,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맷돌 같은 돌이 바다에 던져지지만, 무거운 돌이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는 핵심은 같습니다.
음악이 멈추고 맷돌이 멈추다 — 도시의 소리가 사라지는 심판
「수금 타는 사람들과 음악가들과 피리 부는 사람들과 나팔 부는 사람들의 소리가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술을 가진 사람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맷돌 소리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8:22 · 두루새김
천사는 무너진 건물의 높이나 죽은 사람의 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라지는 소리들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23절에서는 등불이 꺼지고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처음에 바벨론은 온갖 상품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사고팔고, 왕들이 사치를 즐기는 도시였습니다. 이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도시가 됩니다.
왜 하필 음악과 맷돌 소리인가?
음악은 인간이 함께 기쁨을 나누는 활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맷돌 소리는 곡식을 갈아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상적인 노동과 관련됩니다. 등불의 빛은 밤에도 계속되는 가정의 생활을,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는 새로운 가정의 시작을 나타냅니다.
이것들은 본래 악한 것들이 아닙니다.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범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본문은 바벨론의 멸망을 왕궁이 불타는 사건으로만 보여 주지 않고, 사람들이 일하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연주하고 결혼하며 살아가던 삶의 질서 전체가 끝나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바벨론은 스스로를 영원히 번영하는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고, 그 목적을 위해 사람들의 노동과 상품과 생명까지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삶의 영원한 풍요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번영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키던 도시에서, 마침내 삶의 소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다시는 결코」라는 반복
22–23절에서 「다시는 결코」가 거듭 울립니다. 이 반복은 그 멸망이 되돌릴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앞선 애가에서 왕들과 상인들과 선원들은 모두 「한 시간 만에」라고 외쳤지만, 천사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얼마나 빨리 무너졌는가가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벨론은 한때 모든 것이 자신에게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것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곳이 됩니다.
그리고 이 장의 마지막 두 절은 그 침묵의 이유를 밝혀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묘사는 예레미야 25:10과 매우 가깝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기쁨의 소리와 신랑과 신부의 소리,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사라질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표현들을 다시 사용해 바벨론의 멸망을 일상이 완전히 멈추는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상인들은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민족들은 속았다
「등불의 빛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비치지 않을 것이다.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네 안에서 다시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네 상인들은 땅에서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모든 민족이 네 주술에 속았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23 · 두루새김
여기서 상인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땅에서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한은 상인들이 모두 악하다고 일반화하지 않고, 바벨론의 사치로 부자가 되어 세상에서 큰 권력을 얻은 바벨론의 상인들을 말합니다. 바벨론의 경제 질서가 정치적·사회적 권력과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드러납니다.
「주술」은 무엇을 뜻하는가?
「주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파르마케이아(φαρμακεία)입니다. 이 낱말은 약물의 사용과 관련될 수 있지만, 마술이나 주술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민족을 속이는 수단으로 나타나므로, 오늘날의 의약품이나 의학적 치료를 비난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핵심은 바벨론이 사람들을 속이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힘을 행사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포도주가 민족들을 취하게 했다는 3절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치에 참여하고, 거래하며 부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그 여자가 실제로 무엇을 행하는지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바벨론의 속임수는 거짓 종교적 주장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치적 관계와 경제적 번영, 사람들의 욕망을 통해 작동합니다. 그 여자와의 거래는 실제로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 모든 번영은 사람의 목숨마저 상품으로 취급하는 질서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번영을 보여 주지만, 그 번영의 비용을 온전히 보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천사는 바벨론의 마지막 죄목을 선언합니다.
마지막에 발견된 것 — 바벨론 안에 있던 피
「또 그 도시에서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발견되었다.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도 그곳에서 발견되었다.」요한계시록 18:24 · 두루새김
18장은 이 문장으로 끝납니다.
긴 상품 목록도, 왕들과 상인들과 선원들의 애가도, 소리가 사라지는 선언도 끝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발견되는 것은 피입니다.
상인들이 찾지 못한 것과 하나님이 발견하신 것
14절에서는 풍요롭고 화려한 것들을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1절에서는 바벨론 자체를, 22절에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는 피가 발견됩니다. 원문에서는 이 자리들에 찾거나 발견한다는 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던 것은 사라지고, 도시의 영광은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도시의 죄를 드러내는 피는 발견됩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단순한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도덕적인 심판입니다.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
이것을 바벨론이 역사상 일어난 모든 살인을 문자 그대로 직접 실행했다는 주장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은 바벨론의 폭력과 책임을 최대한 크게 드러내는 예언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표현의 폭을 지나치게 줄여서도 안 됩니다.
바벨론이 흘린 피는 예수님의 증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18장에서는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특별히 강조되지만, 마지막 문장은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에게까지 시선을 넓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가 받은 박해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폭력 자체를 드러냅니다.
13절에서는 종으로 팔리는 사람들, 곧 사람의 목숨이 상품 목록 끝에 등장했습니다. 여기서는 죽임당한 사람들의 피가 발견됩니다. 18장은 인간의 생명을 한 번은 시장의 상품 목록 끝에, 다른 한 번은 도시의 죄를 밝히는 마지막 선언에 놓습니다.
바벨론은 사람을 상품으로 셌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피를 기억하십니다.
바벨론에 대한 애가가 끝나고 남는 것
사람들은 바벨론이 무너질 때 무엇을 잃고 울었습니까? 힘이었습니다. 부였습니다. 사치였습니다.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지 않은 것은 사람의 목숨이었고, 요한은 바로 그것을 마지막에 드러냅니다. 바벨론의 죄는 몰락의 순간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 도시가 가장 화려했던 때에도 이미 그곳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았거나, 보면서도 이익 때문에 외면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내 백성아, 그 도시에서 나와라」는 부름은 바벨론이 무너진 뒤가 아니라, 아직 그 번영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 주어졌습니다. 다만 이를 근거로 현대의 모든 시장경제나 무역, 사치품 소비를 한꺼번에 바벨론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문제 삼는 것은 경제활동 자체가 아니라 경제적 번영이 우상 숭배와 불의, 착취와 생명의 희생에 결합된 모습이며,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런 불의에 함께 가담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얻는 부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도시의 모든 소리가 사라집니다. 음악가들의 연주도,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일도, 맷돌 소리도, 등불도, 신랑과 신부의 기쁜 목소리도 없습니다. 한때 온 세상에서 사람과 재물이 모여들던 도시가 이제 침묵합니다. 그 침묵 속에 「그 도시에서 예언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발견되었다」는 마지막 선언이 남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이 잃어버린 재물의 규모를 계산하며 끝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재물 아래에 가려져 있던 피를 보여 주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