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지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바다의 모래알을 모두 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흘러온 모든 날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집회서는 이런 질문으로 지혜에 관한 가르침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의 첫 장은 지혜를 정의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방법부터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지혜를 얼마나 알 수 없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헤아릴 수도 없는 지혜에 시작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어떻게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지혜를 인간이 배우고, 자기 삶의 일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일까요?

집회서 1장의 중심에는 인간이 지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실제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역설이 놓여 있습니다.

집회서는 예루살렘의 지혜 교사인 벤 시라가 남긴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집회서 50:27). 책의 그리스어 번역에 붙은 서문에 따르면,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가 율법과 예언서와 조상들의 다른 문헌을 깊이 연구하여 이 가르침을 기록했고, 자신은 히브리어 원작을 그리스어로 옮겼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집회서는 이스라엘이 오래도록 배워 온 하나님의 가르침을 새로운 세대의 실제 생활 속에 전달하려는 책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1장 본문 읽기 →

지혜의 근원을 아시는 분

집회서 1:1–10 본문 →

인간은 헤아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헤아리신다

첫 문장은 집회서 전체의 토대입니다.

모든 지혜는 주에게서 오고, 영원히 그와 함께 있다.집회서 1:1 · 본디새김

지혜가 주에게서 온다는 것은 인간이 지혜의 최초 근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배우고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지만, 지혜 자체를 만들어 내는 궁극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지혜는 인간의 발견보다 앞서 있으며, 인간이 이해하기 전부터 존재합니다.

그런데 지혜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다는 선언은 지혜를 하나님과 무관하게 떠도는 독립적인 힘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지혜의 근원과 기준은 언제나 주에게 있습니다.

지혜는 모든 것보다 먼저, 슬기의 깨달음은 영원 전부터 창조되었다.집회서 1:4 · 본디새김
지혜로운 이는 오직 하나다. 그는 지극히 두렵고 자기 왕좌에 앉아 있다.집회서 1:8 · 본디새김

지혜가 모든 것보다 먼저 창조되었다는 표현은 잠언 8:22–31의 창조 이전 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잠언에서는 지혜가 인격화되어 창조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말합니다. 집회서 역시 지혜를 창조 세계의 질서와 연결합니다.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누가 다 세겠는가?집회서 1:2 · 본디새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너비, 심연과 지혜를 누가 헤아리겠는가?집회서 1:3 · 본디새김

지혜는 하늘과 땅과 심연에 나란히 놓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그 끝을 모두 살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감추어진 뿌리에서 온 세상으로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드러났는가? 지혜의 묘안을 누가 알았는가?집회서 1:6 · 본디새김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가지와 잎과 열매를 볼 수 있지만, 땅속에 뻗어 있는 뿌리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의 생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급됩니다. 인간은 지혜의 결과를 경험하고 그 일부를 배울 수 있지만, 지혜의 근원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 자신이 지혜를 창조하고, 그것을 보고 다 헤아리고, 자신이 한 모든 일 위에 쏟아부어, 자신이 주는 몫에 따라 모든 육신과 함께 있게 했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혜를 넉넉히 주었다.집회서 1:9–10 · 본디새김

인간에게는 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추적할 수 없는 지혜의 깊이가 하나님에게는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지혜는 모든 피조 세계와 연결됩니다. 10절은 그것이 「모든 육신」과 함께 있도록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혜를 특별히 넉넉하게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거나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자체에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졌다는 선언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바르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문제는 별도로 다루어집니다.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도 자기 삶을 그르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아는 능력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집회서는 이제 후자의 문제로 들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말하는 지혜의 창조를 하나님이 이전에는 지혜롭지 못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8절은 오직 한 분이 지혜로우시다고 선언하고, 9절은 바로 그분이 지혜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관심은 하나님이 언제 지혜를 획득하셨는지가 아니라, 세상에 드러난 지혜가 하나님의 창조적 행동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24는 기독교 신학에서 지혜의 의미를 더 깊게 읽게 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집회서 1장의 창조된 지혜를 저자가 직접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려움이 어떻게 기쁨이 되는가

집회서 1:11–13 본문 →

지혜의 근원을 밝힌 뒤, 본문은 갑자기 「주를 경외함」을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주를 경외함은 영광과 자랑거리, 즐거움과 환희의 면류관이다.집회서 1:11 · 본디새김
주를 경외함은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며, 즐거움과 기쁨과 장수를 줄 것이다.집회서 1:12 · 본디새김

앞에서 하나님은 「지극히 두렵고 자기 왕좌에 앉아」 계신 분이셨습니다(1:8). 그런데 그분을 경외하는 일이 즐거움과 환희와 연결됩니다.

경외를 단순히 처벌에 대한 공포로 이해하면 이 구절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사람을 위축시키거나 도망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집회서가 말하는 경외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분,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아시는 분, 자기 피조물에게 지혜를 베푸시는 분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외에는 두 측면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엄숙함과, 그분이 베푸시는 지혜를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면류관은 영예와 기쁨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집회서는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영예 대신 주를 경외하는 일을 인간의 영광으로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영광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데 있지 않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을 경외한다는 데 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이는 마지막에 잘될 것이며, 자신이 죽는 날에 은혜를 얻을 것이다.집회서 1:13 · 본디새김

이 구절의 초점은 죽음 이후의 상태를 상세히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라는 관점에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고난도 일어나지 않으며 언제나 행복한 죽음이 보장된다는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욥기와 전도서는 의로운 사람의 삶에서도 인간이 설명하기 어려운 고난과 불확실성이 일어남을 보여 줍니다. 집회서는 여기서 지혜로운 삶의 복된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태어나고, 둥지를 틀고, 열매를 맺는다

집회서 1:14–20 본문 →

이 단락에서 집회서는 지혜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출생과 집, 농작물과 나무의 이미지를 차례로 불러옵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지혜는 신실한 이들을 위해 태 안에서 그들과 함께 창조되었다.집회서 1:14 · 본디새김
지혜는 사람들 가운데 영원한 터전에 둥지를 틀었고, 그들의 후손 가운데서도 신뢰를 받을 것이다.집회서 1:15 · 본디새김

4절은 지혜와 세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지혜는 인간이 나타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창조에 속해 있었습니다. 14절은 지혜와 인간의 삶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지혜는 인간의 생애가 시작되는 가장 이른 자리와도 연결됩니다.

본문은 지혜가 단지 오랜 경험을 쌓은 노년의 사람에게만 뒤늦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와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후손들이 지혜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는 진술은 지혜의 전승을 바라보게 합니다. 지혜는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세대 사이에서 배우고 전해지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시작과 충만함과 뿌리

본문은 주를 경외하는 일을 네 가지 방식으로 지혜와 연결합니다.

· 14절: 지혜의 시작

· 16절: 지혜의 충만함

· 18절: 지혜의 면류관

· 20절: 지혜의 뿌리

시작은 지혜를 어디에서부터 배워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충만함은 지혜가 충분히 자라 이루는 풍성함을 말합니다. 면류관은 그 지혜가 드러내는 영광을 말합니다. 뿌리는 그 모든 것을 지탱하고 계속 자라게 하는 근원을 가리킵니다.

경외는 지혜의 출발점이면서, 지혜가 성숙한 뒤에도 여전히 그것을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6절은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드러났는가?」라고 물었습니다. 20절은 「지혜의 뿌리는 주를 경외하는 것이며」라고 답합니다.

6절의 질문은 지혜의 심오한 근원과 모든 묘안을 인간이 남김없이 파악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20절은 인간이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밝힙니다.

인간은 지혜의 모든 비밀을 알아낼 수 없지만, 지혜가 자라나는 삶의 토대는 알 수 있습니다.

지혜의 집에 무엇이 쌓이는가

지혜의 충만함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며, 지혜는 자기 열매로 그들을 취하게 한다.집회서 1:16 · 본디새김
지혜는 자기 집 전체를 탐나는 것들로 채우고, 곳간들을 자기 소출로 채울 것이다.집회서 1:17 · 본디새김
지혜의 면류관은 주를 경외함이며, 그것은 평화와 치유로 얻는 건강을 꽃피운다.집회서 1:18 · 본디새김

앞에서 보이지 않던 뿌리가 이제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집과 곳간은 실제 생활의 풍요와 안정을 연상시킵니다. 평화와 건강, 장수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복을 가리킵니다. 집회서는 지혜의 복을 오직 내면의 정신적 만족으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을 모든 경건한 사람이 반드시 물질적으로 부유해진다는 보장으로 바꾸는 것도 본문의 시적인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입니다. 이 단락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인간의 삶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풍성하게 한다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집회서 24장에서는 이 이미지가 더 발전합니다. 지혜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처를 얻고(24:8–12), 여러 나무처럼 자라며(24:13–17), 마침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과 연결됩니다(24:23). 첫 장의 둥지와 뿌리와 열매는 그 뒤에 나올 지혜의 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에서는 지혜가 「둥지를 틀었다」고 말합니다. 함께 쓰인 표현은 지혜가 영원한 터전에 자리를 잡는다는 뜻으로도, 그러한 터를 세운다는 뜻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지혜가 사람들 사이에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손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혜의 첫 시험은 분노와 침묵이다

집회서 1:22–24 본문 →

지금까지 집회서가 보여 준 지혜의 세계는 웅장하고 풍요로웠습니다. 그런데 22절은 분위기를 갑자기 바꿉니다.

부당한 분노는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분노하는 이는 자기 분노의 기세에 넘어지기 때문이다.집회서 1:22 · 본디새김

앞에서는 지혜가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지를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혜를 받은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 첫 번째 시험이 분노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거나 부당하게 대했을 때, 사람은 쉽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자기 분노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집회서는 사람이 자신의 분노에 압도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분노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22절에서 중요한 수식어는 「부당한」입니다. 본문은 모든 분노를 동일하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분노를 두고 말합니다.

분노는 당장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큰소리를 내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면 자기가 상황을 장악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끌려가는 사람은 정작 자기 행동을 다스리는 능력을 잃습니다.

오래 참는 이는 때가 될 때까지 견딜 것이고, 뒤에는 그에게 즐거움이 솟아날 것이다.집회서 1:23 · 본디새김
그는 때가 될 때까지 자기 말을 감출 것이고, 신실한 이들의 입술이 그의 깨달음을 낱낱이 이야기할 것이다.집회서 1:24 · 본디새김

23절과 24절에는 「때가 될 때까지」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됩니다. 오래 참는 사람은 언제나 침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말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구별할 줄 압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자기 감정이 치솟는 순간 행동하려 합니다. 반면 오래 참는 사람은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차이는 감정의 유무보다 시간에 대한 태도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감정이 자신의 다음 말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즉시 높이려 합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자기 말을 잠시 감추지만, 때가 되면 그의 깨달음이 다른 이들의 입술을 통해 이야기됩니다.

지혜로운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 생기는 침묵이 아니라, 말할 때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침묵입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의 「신실한 이들의 입술」이라고 옮겼지만, 이 구절의 그리스어 케일레 폴론은 직역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술」입니다. 따라서 원문은 기다리던 사람의 지혜가 나중에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알려지는 장면을 그린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잠언 16:32에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이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고 한 말씀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지혜는 얻어 내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 내는 가르침이다

집회서 1:25–27 본문 →

지혜의 보물 창고에는 지식의 비유가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은 죄인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다.집회서 1:25 · 본디새김

지혜는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 주지만, 때로는 그가 보기를 원하지 않던 것도 보게 만듭니다. 자신의 잘못과 교만을 직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가르침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판단이 최종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5절의 대조는 지식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바란다면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주가 네게 지혜를 넉넉히 줄 것이다.집회서 1:26 · 본디새김

지혜가 있어야 계명을 잘 지킬 수 있을 텐데, 먼저 계명을 지키면 지혜를 주신다니 순서가 거꾸로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지혜와 순종을 서로 분리된 두 단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 외부에서 치르는 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제 삶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정직이 옳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행동할 때 비로소 그 가르침이 자신의 선택과 관계와 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배우게 됩니다. 인내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실제로 분노를 참는 사람 사이에도 비슷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전히 지혜를 주시는 분은 주이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지혜를 생산하거나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순종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응답입니다.

신명기 4:5–8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지혜와 슬기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집회서 역시 지혜를 율법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에 관한 가르침과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와 교훈이며, 믿음과 온유함이 그가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1:27 · 본디새김

지혜를 배우는 것은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으로 믿음과 온유함이 제시됩니다. 이 구절의 피스티스는 믿음뿐 아니라 신실함, 믿을 만함이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습니다.

온유함이 등장하는 것도 앞의 분노에 관한 가르침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온유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강한 감정이 있더라도 그것에 이끌려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집회서가 가르치는 지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앎이 어떤 사람을 만들어 내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후대의 신약에서는 야고보서 3:13–18이 참된 지혜를 온유함과 화평함과 연결합니다. 이는 집회서 1:22–27과 주제적으로 통하지만, 직접 인용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다가가지 마라

집회서 1:28–30 본문 →

이 장의 마지막은 엄숙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일을 거스르지 말고, 두 마음을 품고 그에게 다가가지 마라.집회서 1:28 · 본디새김
사람들과 말을 나눌 때 위선을 떨지 말고, 네 입술을 조심해라.집회서 1:29 · 본디새김
넘어져 자신에게 치욕을 불러들이지 않도록 너 자신을 높이지 마라. 주는 네가 감춘 것들을 드러내고, 회중 한가운데서 너를 거꾸러뜨릴 것이다. 네가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았고, 네 마음이 속임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집회서 1:30 · 본디새김

「두 마음」은 단순히 어떤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29–30절에서 위선과 속임수를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높이거나 타인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동시에 말을 이용해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회서는 말의 능력보다 말하는 사람의 진실성을 문제 삼습니다.

지혜의 뿌리는 감추어져 있지만, 인간의 속임수는 감추어지지 않는다

6절에서는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드러났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지혜의 감추어진 뿌리가 문제였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인간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자기 왕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사람들의 회중 가운데 감추어진 속임수를 드러내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왕좌와 인간의 회중은 서로 동떨어진 두 세계가 아닙니다. 하늘의 지혜를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진실과 거짓에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집회서가 말하는 경외는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조금 더 깊이

29절의 그리스어 표현은 사람들과 마주하여 말하는 상황으로도,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평판과 관련된 표현으로도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전자의 독법에서는 실제 대화 속에서 위선을 경계하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뒤에 이어지는 입술에 대한 경고와 마음의 속임수는 서로 연결됩니다.

오늘,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집회서 1:1–30 본문 →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것을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지혜롭게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의 분노를 살피며, 말할 때를 분별하고, 속임수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집회서가 말하는 지혜는 인간을 전지전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진실하게 감당하도록 이끕니다.

이제 1장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다 셀 수 없는 모래알과 빗방울이 있습니다. 인간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하늘과 땅과 심연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지혜를 아시는 하나님이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지혜를 세상 위에 쏟아부으시고, 인간의 삶에 둥지를 틀게 하시며, 그 뿌리에서 평화와 온유와 인내의 열매가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맺혀야 할 가장 가까운 자리는 먼 하늘이나 깊은 바다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서 한마디를 쏟아 내고 싶은 순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때,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싶은 자리, 다른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높이고 싶은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인간은 지혜의 뿌리를 모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에서 어떤 열매가 자라야 하는지는 배울 수 있습니다.

집회서 1장은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지혜를 한 사람의 마음과 입술이 있는 자리까지 데려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