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지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바다의 모래알을 모두 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영원히 이어지는 날들을 모두 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집회서는 이런 질문으로 지혜에 관한 가르침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의 첫 장은 지혜를 정의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방법부터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지혜를 얼마나 알 수 없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그런데 몇 절 뒤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다 알아낼 수도 없는 지혜에 시작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어떻게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지혜를 인간이 배우고, 자기 삶의 일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일까요?

집회서 1장의 중심에는 인간이 지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실제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역설이 놓여 있습니다.

집회서는 예루살렘의 지혜 교사인 벤 시라가 남긴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집회서 50:27). 책의 그리스어 번역에 붙은 서문에 따르면,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가 율법과 예언서와 조상들의 다른 문헌을 깊이 연구하여 이 가르침을 기록했고, 자신은 히브리어 원작을 그리스어로 옮겼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집회서는 이스라엘이 오래도록 배워 온 하나님의 가르침을 새로운 세대의 실제 생활 속에 전달하려는 책입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71장 본문 읽기 →

지혜의 근원을 아시는 분

집회서 1:1–10 본문 →

인간은 헤아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헤아리신다

첫 문장은 집회서 전체의 토대입니다.

모든 지혜는 주께로부터 오며,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다.집회서 1:1 · 두루새김

지혜가 주께로부터 온다는 것은 인간이 지혜의 최초 근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배우고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지만, 지혜 자체를 만들어 내는 궁극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지혜는 인간의 발견보다 앞서 있으며, 인간이 이해하기 전부터 존재합니다.

그런데 지혜가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다는 선언은 지혜를 하나님과 무관하게 떠도는 독립적인 힘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지혜의 근원과 기준은 언제나 주께 있습니다.

바다의 모래알과 빗방울을 누가 다 세겠느냐? 영원히 이어지는 날들을 누가 다 세겠느냐?집회서 1:2 · 두루새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너비를 누가 다 헤아리겠느냐? 깊고 깊은 바다와 지혜를 누가 다 알아내겠느냐?집회서 1:3 · 두루새김

지혜는 하늘과 땅과 깊고 깊은 바다에 나란히 놓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그 끝을 모두 살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혜는 모든 것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슬기로운 깨달음도 영원 전부터 창조되었다.집회서 1:4 · 두루새김
지혜로운 분께서는 오직 하나이시다. 그분께서는 자기 왕좌에 앉아 계시며, 더없이 두려운 분이시다.집회서 1:8 · 두루새김
주께서 직접 지혜를 창조하고, 그것을 살펴보고 모두 헤아리셨다. 그리고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 위에 지혜를 쏟아부어, 자신이 나누어 주시는 몫에 따라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함께 있게 하셨다. 또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혜를 넉넉히 주셨다.집회서 1:9–10 · 두루새김

지혜가 모든 것보다 먼저 창조되었다는 표현은 잠언 8:22–31의 창조 이전 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를 사람처럼 그려, 창조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말합니다. 집회서 역시 지혜를 창조 세계의 질서와 연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의 창조를 하나님이 이전에는 지혜롭지 못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8절은 지혜로운 분께서는 오직 하나이시라고 선언하고, 9절은 바로 그분이 지혜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관심은 하나님이 언제 지혜를 얻으셨는지가 아니라, 세상에 드러난 지혜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일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추적할 수 없는 지혜의 깊이가 하나님에게는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욥기 28장과 매우 가까운 생각입니다. 욥기에서는 인간이 땅속 깊은 곳에서 보물을 캐내지만 정작 지혜가 있는 곳은 찾아내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지혜에 이르는 길을 아시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길이 제시됩니다(욥기 28:12–28).

감추어진 뿌리에서 온 세상으로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드러났느냐? 지혜의 뛰어난 방법들을 누가 알았느냐?집회서 1:6 · 두루새김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가지와 잎과 열매를 볼 수 있지만, 땅속에 뻗어 있는 뿌리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의 생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급됩니다.

지혜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혜의 결과를 경험하고 그 일부를 배울 수 있지만, 지혜의 근원을 완전히 알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먼저 지혜는 하나님이 지으신 온 세상과 연결됩니다. 10절은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함께 있도록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혜를 특별히 넉넉하게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거나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자체에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졌다는 선언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바르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문제는 별도로 다루어집니다.

많은 것을 아는 능력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는 같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바울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24는 기독교 신학에서 지혜의 의미를 더 깊게 읽게 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집회서 1장의 창조된 지혜를 저자가 직접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집회서 자체가 말하는 바를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지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지혜를 배우려는 인간은 그분을 경외함으로 자신과 세상과 이웃을 바르게 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어떻게 기쁨이 되는가

집회서 1:11–13 본문 →

지혜의 근원을 밝힌 뒤, 본문은 갑자기 「주를 경외하는 것은」을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것은 영광이며 자랑이고, 즐거움이며 큰 기쁨의 관이다.집회서 1:11 · 두루새김
주를 경외하는 것은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오래 살게 할 것이다.집회서 1:12 · 두루새김

앞에서 하나님은 「자기 왕좌에 앉아 계시며, 더없이 두려운 분」이셨습니다(1:8). 그런데 그분을 경외하는 일이 즐거움과 큰 기쁨과 연결됩니다.

어떻게 두려움이 기쁨을 낳을 수 있을까요?

경외를 단순히 처벌에 대한 공포로 이해하면 이 구절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사람을 위축시키거나 도망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집회서가 말하는 경외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분,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아시는 분, 자신이 지으신 것들에게 지혜를 베푸시는 분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외에는 두 측면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엄숙함과, 그분이 베푸시는 지혜를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관은 영예와 기쁨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집회서는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영예 대신 주를 경외하는 일을 인간의 영광으로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영광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데 있지 않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을 경외한다는 데 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삶의 마지막에 잘될 것이며, 죽는 날에 은혜를 얻을 것이다.집회서 1:13 · 두루새김

이 구절의 초점은 죽음 이후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라는 관점에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고난도 일어나지 않으며 언제나 행복한 죽음이 보장된다는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욥기와 전도서는 의로운 사람의 삶에서도 인간이 설명하기 어려운 고난과 불확실성이 일어남을 보여 줍니다. 집회서는 여기서 지혜로운 삶의 복된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태어나고, 둥지를 틀고, 열매를 맺는다

집회서 1:14–20 본문 →

이 단락에서 집회서는 지혜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출생과 집, 농작물과 나무의 이미지를 차례로 불러옵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지혜는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어머니 배 속에서 창조되었다.집회서 1:14 · 두루새김
지혜는 사람들 가운데 영원한 터에 둥지를 틀었고, 그들의 후손에게도 신뢰를 받을 것이다.집회서 1:15 · 두루새김

4절은 지혜와 세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지혜는 인간이 나타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창조에 속해 있었습니다. 14절은 지혜와 인간의 삶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지혜는 인간의 생애가 시작되는 가장 이른 자리와도 연결됩니다.

이 표현을 믿음을 지키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반드시 지혜롭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지혜가 단지 오랜 경험을 쌓은 노년의 사람에게만 뒤늦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와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리스어 에노쎄우센(νοσσεύω)은 둥지를 만드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함께 쓰인 표현은 지혜가 영원한 터전에 자리를 잡는다는 뜻으로도, 그러한 터를 세운다는 뜻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지혜가 사람들 사이에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손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혜는 인간의 삶에 머물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후손에게도 신뢰를 받을 것이라는 진술은 지혜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일을 바라보게 합니다. 지혜는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세대 사이에서 배우고 전해지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시작과 충만함과 뿌리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네 가지 방식으로 지혜와 연결합니다.

· 14절: 지혜의 시작

· 16절: 지혜로 배부르게 되는 것

· 18절: 지혜의 관

· 20절: 지혜의 뿌리

시작은 지혜를 어디에서부터 배워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지혜로 배부르게 되는 것은 지혜가 충분히 자라 이루는 풍성함을 말합니다. 관은 그 지혜가 드러내는 영광을 말합니다. 뿌리는 그 모든 것을 지탱하고 계속 자라게 하는 근원을 가리킵니다.

경외는 지혜의 출발점이면서, 지혜가 성숙한 뒤에도 여전히 그것을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6절은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드러났느냐?」라고 물었습니다. 20절은 「지혜의 뿌리는 주를 경외하는 것이며」라고 답합니다.

6절의 질문은 지혜의 깊은 근원과 뛰어난 방법들을 인간이 남김없이 알아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20절은 인간이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밝힙니다.

인간은 지혜의 모든 비밀을 알아낼 수 없지만, 지혜가 자라나는 삶의 토대는 알 수 있습니다.

지혜의 집에 무엇이 쌓이는가

주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로 배부르게 되는 것이다. 지혜는 자기 열매로 사람들을 흠뻑 취하게 한다.집회서 1:16 · 두루새김
지혜는 자기 집을 온통 탐나는 것들로 채우고, 창고들을 자기가 거둔 열매로 채울 것이다.집회서 1:17 · 두루새김
지혜의 관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그것은 평화와 건강의 회복을 꽃피운다.집회서 1:18 · 두루새김

16절의 「흠뻑 취하게 한다」는 표현은 특히 생생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술 취함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열매가 주는 기쁨과 풍성함을 강렬하게 그립니다.

집과 창고는 실제 생활의 풍요와 안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평화와 건강, 오래 사는 삶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복을 가리킵니다. 집회서는 지혜의 복을 오직 마음속의 정신적 만족으로 줄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을 모든 경건한 사람이 반드시 물질적으로 부유해진다는 보장으로 바꾸는 것도 본문의 시적인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입니다. 이 단락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인간의 삶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풍성하게 한다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1–10절에서는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지혜를 쏟아부으셨습니다. 이제는 그 지혜를 붙드는 사람들의 영광을 높이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주신 선물이 인간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집회서 24장에서는 이 이미지가 더 발전합니다. 지혜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처를 얻고(24:8–12), 여러 나무처럼 자라며(24:13–17), 마침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과 연결됩니다(24:23). 첫 장의 둥지와 뿌리와 열매는 그 뒤에 나올 지혜의 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9:10은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욥기 28:28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고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고 선언합니다. 전도서 12:13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로 인간의 삶에 관한 긴 탐구를 마무리합니다. 세 책은 강조하는 문제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잠언은 지혜로운 삶의 질서를 풍성하게 가르치고, 욥기는 그 질서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고난을 깊이 묻고, 전도서는 인간이 자신의 수고와 지식으로 삶 전체를 붙잡을 수 없음을 탐구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만납니다.

지혜의 첫 시험은 분노와 침묵이다

집회서 1:22–24 본문 →

지금까지 집회서가 보여 준 지혜의 세계는 웅장하고 풍요로웠습니다. 그런데 22절은 분위기를 갑자기 바꿉니다.

옳지 않은 분노는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런 분노를 품은 사람은 그 분노의 거센 기세에 넘어지기 때문이다.집회서 1:22 · 두루새김

앞에서는 지혜가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지를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혜를 받은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 첫 번째 시험이 분노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거나 부당하게 대했을 때, 사람은 쉽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자기 분노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집회서는 사람이 자신의 분노에 압도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분노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22절에서 중요한 표현은 「옳지 않은」입니다. 본문은 모든 분노를 똑같이 판단하지 않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분노를 두고 말합니다.

분노는 당장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큰소리를 내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면 자기가 상황을 장악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끌려가는 사람은 정작 자기 행동을 다스리는 능력을 잃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단순히 옳은 답을 아는 능력이 아닙니다. 자기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오래 참는 사람은 때가 될 때까지 견딜 것이며, 마침내 그에게 즐거움이 피어날 것이다.집회서 1:23 · 두루새김
그는 때가 될 때까지 말을 아낄 것이며, 믿음직한 사람들은 그의 깨달음을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집회서 1:24 · 두루새김

23절과 24절에는 「때가 될 때까지」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됩니다. 오래 참는 사람은 언제나 침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말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구별할 줄 압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자기 감정이 치솟는 순간 행동하려 합니다. 반면 오래 참는 사람은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차이는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시간에 대한 태도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감정이 자신의 다음 말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즉시 높이려 합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자기 말을 잠시 아끼지만, 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그의 깨달음을 이야기합니다.

지혜로운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 생기는 침묵이 아니라, 말할 때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침묵입니다.

잠언 16:32에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이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고 한 말씀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지혜는 얻어 내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 내는 가르침이다

집회서 1:25–27 본문 →

지혜의 보물 창고에는 지식을 담은 비유가 있다. 그러나 죄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몹시 싫어한다.집회서 1:25 · 두루새김

지혜는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 주지만, 때로는 그가 보기를 원하지 않던 것도 보게 만듭니다. 자신의 잘못과 교만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가르침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판단이 최종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5절의 대조는 지식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바란다면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주께서 네게 지혜를 넉넉히 주실 것이다.집회서 1:26 · 두루새김

지혜가 있어야 계명을 잘 지킬 수 있을 텐데, 먼저 계명을 지키면 지혜를 주신다니 순서가 거꾸로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지혜와 순종을 서로 분리된 두 단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 외부에서 치르는 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제 삶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정직이 옳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행동할 때 비로소 그 가르침이 자신의 선택과 관계와 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배우게 됩니다. 인내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실제로 분노를 참는 사람 사이에도 비슷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전히 지혜를 주시는 분은 주이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지혜를 만들어 내거나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순종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응답입니다.

신명기 4:5–8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지혜와 슬기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집회서 역시 지혜를 율법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에 관한 가르침과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교훈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직함과 온화한 마음이다.집회서 1:27 · 두루새김

지혜를 배우는 것은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으로 믿음직함과 온화한 마음이 제시됩니다.

온화한 마음이 등장하는 것도 앞의 분노에 관한 가르침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강한 감정이 있더라도 그것에 이끌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집회서가 가르치는 지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앎이 어떤 사람을 만들어 내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후대의 신약에서는 야고보서 3:13–18이 참된 지혜를 온유함과 화평함과 연결합니다. 이는 집회서 1:22–27과 주제적으로 통하지만, 직접 인용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다가가지 마라

집회서 1:28–30 본문 →

이 장의 마지막은 엄숙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일을 거스르지 말고, 두 마음을 품고 그분께 다가가지 마라.집회서 1:28 · 두루새김
사람들과 말할 때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말고,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해라.집회서 1:29 · 두루새김
너 자신을 높이지 마라. 그러다가 넘어져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주께서는 네가 감춘 것들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모인 한가운데서 너를 쓰러뜨리실 것이다. 네가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았고, 네 마음이 속임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집회서 1:30 · 두루새김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두 마음」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29–30절에서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태도와 속임수를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동시에 말을 이용해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회서는 말의 능력보다 말하는 사람의 진실성을 문제 삼습니다.

지혜의 뿌리는 감추어져 있지만, 인간의 속임수는 감추어지지 않는다

6절은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드러났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인간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전부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감추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집회서는 두 생각을 모두 흔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자기 왕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감추어진 속임수를 드러내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왕좌와 사람들이 모인 자리는 서로 동떨어진 두 세계가 아닙니다. 하늘의 지혜를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진실과 거짓에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집회서가 말하는 경외는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조금 더 깊이

29절의 그리스어 표현은 사람들과 마주하여 말하는 상황으로도,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평판과 관련된 표현으로도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 읽기에서 실제 대화 속에서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말라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뒤에 이어지는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경고와 마음의 속임수는 서로 연결됩니다.

오늘,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집회서 1:1–30 본문 →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것을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지혜롭게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의 분노를 살피며, 말할 때를 구별하고, 속임수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집회서가 말하는 지혜는 인간을 전지전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진실하게 감당하도록 이끕니다.

이제 1장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다 셀 수 없는 모래알과 빗방울이 있습니다. 인간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하늘과 땅과 깊고 깊은 바다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지혜를 아시는 하나님이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지혜를 세상 위에 쏟아부으시고, 인간의 삶에 둥지를 틀게 하시며, 그 뿌리에서 평화와 온화한 마음과 인내의 열매가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맺혀야 할 가장 가까운 자리는 먼 하늘이나 깊은 바다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서 한마디를 쏟아 내고 싶은 순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때,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싶은 자리, 다른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높이고 싶은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인간은 지혜의 뿌리를 모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에서 어떤 열매가 자라야 하는지는 배울 수 있습니다.

집회서 1장은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지혜를 한 사람의 마음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는 자리까지 데려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