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서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역사를 이끈 지혜

역사 속에서 함께한 지혜

지혜서 10장에는 아담과 가인, 노아와 아브라함, 롯과 야곱, 요셉과 모세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에는 그들의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처음 빚어진 세상의 아버지」로, 노아는 「의로운 이」로, 야곱은 「형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는 의로운 이」로 불립니다. 요셉은 「팔려 간 의로운 이」이며, 모세는 「주의 종」입니다.

저자는 독자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사건의 특징만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평소 익숙하게 읽던 이야기에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이 장의 주인공은 아담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과 함께했던 지혜입니다.

앞 장에서 화자는 하나님의 지혜가 사람들의 길을 바로잡고 그들을 구원했다고 고백했습니다(9:18). 10장은 이제 그 고백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역사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의 보호를 받지만, 어떤 사람은 지혜를 떠납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 덕분에 살아남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세상에 남깁니다. 지혜가 함께하는 사람도 고난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도망치고, 억압받고, 구덩이에 갇힙니다.

지혜가 함께했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뜻합니까? 그리고 지혜가 그들과 함께했는데도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까?

읽는 시간 26분소단락 910장 본문 읽기 →

인간의 역사는 실패로 시작되었지만, 지혜는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지혜서 10:1–4 본문 →

이 지혜는 처음 빚어진 세상의 아버지, 홀로 창조된 그를 지켰고, 그 자신의 잘못에서 그를 건져 냈다.지혜서 10:1 · 본디새김

첫 번째 인물은 아담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아담을 소개하면서 창조의 영광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잘못부터 언급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깁니다. 땅은 저주를 받고,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며, 죽음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아담이 잘못했지만 지혜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잘못에서 건져 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잘못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나고, 고통과 죽음의 현실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담이 범한 죄의 모든 결과가 즉시 제거되었다는 뜻으로 읽으면 창세기의 서술과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세기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고(창세기 3:21), 에덴에서 쫓겨난 뒤에도 인간의 삶과 역사는 계속됩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그런 역사를 지혜의 보호와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이는 창세기에서 지혜라는 인물이 직접 나타나 아담을 구원했다고 기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혜서가 앞선 성경 이야기를 하나님의 지혜가 일한 역사로 다시 읽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힘을 주었다.지혜서 10:2 · 본디새김

아담은 잘못을 범했지만, 인간에게 맡겨진 다스림의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창세기 1:26–28에서 주어진 인간의 소명은 죄로 손상되었지만, 지혜서의 시선에서 인간은 여전히 그 소명을 감당하도록 지혜의 도움을 받는 존재입니다.

지혜의 첫 번째 일은 잘못한 인간을 즉시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인간이 살아가도록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음 인물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혜를 떠난 사람, 가인 (3절)

그러나 의롭지 않은 이는 자기 분노 속에서 지혜를 떠나, 형제를 죽이는 격분에 휩쓸려 망했다.지혜서 10:3 · 본디새김

아담 다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인입니다.

아담은 잘못했지만 지혜가 그를 건져 냈습니다. 가인은 분노 속에서 지혜를 떠났습니다. 저자는 두 사람을 단순히 죄의 경중에 따라 나누지 않습니다. 지혜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창세기 4:5–8에서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몹시 화를 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 경고를 따르지 않고 아벨을 죽입니다.

창세기의 이야기에서는 분노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지혜서는 그것을 지혜를 떠난 결과로 읽습니다. 지혜를 떠났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형제를 올바르게 대하는 길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분노에서 온 땅의 심판으로 (4절)

그 때문에 물에 잠기던 땅을 지혜가 다시 구해 냈다. 보잘것없는 나무로 의로운 이를 이끌어서였다.지혜서 10:4 · 본디새김

여기서 이야기는 가인에게서 노아의 홍수로 넘어갑니다.

「그 때문에」라는 표현은 앞에 등장한 의롭지 않은 사람, 곧 가인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홍수는 가인 한 사람의 살인 때문만이 아니라 온 땅에 악과 폭력이 가득해진 결과로 나타납니다(창세기 6:5, 11–13). 따라서 지혜서는 가인의 형제 살인을 이후 인류에게 퍼진 악의 시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연결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나무는 노아의 방주를 가리킵니다. 온 땅을 뒤덮는 물 앞에서 나무로 만든 방주는 얼마나 보잘것없어 보입니까. 그러나 지혜는 바로 그것을 통해 의로운 사람을 이끕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지만, 지혜서는 그가 살아남은 이유를 인간의 제작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창세기는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창세기 6:14–22; 7:1–5). 지혜서는 그 순종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일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지혜는 인간이 가진 수단을 반드시 크고 화려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수단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는 길을 열어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망했다」라는 말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 4장은 가인이 살인 직후 죽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땅을 떠나 살아가고, 후손을 남깁니다(창세기 4:16–17). 그러므로 지혜서의 표현을 가인이 곧바로 육체적으로 죽었다는 역사적 진술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가인이 분노와 살인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했다는 도덕적·신학적 평가로 읽는 것이 창세기의 서술과 더 잘 연결됩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갈 때, 지혜는 한 사람을 찾아냈다

지혜서 10:5 본문 →

악한 일에 한마음이던 민족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도 이 지혜는 의로운 이를 찾아냈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흠잡을 데 없도록 지켰으며, 자식을 향한 애정마저 이겨 내도록 그를 굳세게 지켰다.지혜서 10:5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바벨탑 사건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창세기 11:1–9에서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한곳에 모여 성읍과 탑을 세우려 합니다. 그들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시면서 그들은 땅 위로 흩어집니다.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같은 일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일치 자체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한다고 해서 그 목표가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지혜서는 공동의 열망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5절은 모든 민족이 혼란에 빠졌다는 이야기에서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 직후에는 셈의 족보가 이어지고,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바벨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그의 이름을 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창세기 12:2). 사람들이 스스로 이름을 높이려는 시도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의 이름을 높이시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민족들이 악한 일에 한마음이 되었을 때, 지혜는 그 가운데서 의로운 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지혜는 아브라함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했다

5절의 후반부는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특별히 어려운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사건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지혜서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자식을 향한 애정을 넘어서는 일로 묘사합니다.

창세기 22장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창세기 22:11–12). 사건은 실제 자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이 찬양하는 것은 자녀를 해치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해야 하는 어려운 순간에 아브라함이 보인 신실함입니다. 그렇지만 이 설명이 창세기 22장의 모든 윤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서 역시 그 긴장을 자세히 논증하기보다 아브라함의 신실함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지혜가 그를 「굳세게 지켰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실함은 인간의 결단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가 신실함을 지킬 수 있도록 지혜가 그를 붙들었다는 관점에서 설명됩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소금 기둥으로 남은 사람

지혜서 10:6–9 본문 →

아브라함 다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롯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이들이 멸망할 때, 이 지혜는 다섯 성읍에 내리는 불을 피해 달아난 의로운 이를 건져 냈다.지혜서 10:6 · 본디새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떠났습니다. 롯은 멸망이 임박했을 때 달아났습니다.

창세기 19:16을 보면 롯은 떠나기를 망설이기까지 합니다. 천사들이 롯과 그의 가족들의 손을 잡아 성읍 밖으로 이끕니다. 그럼에도 지혜서는 그를 「의로운 이」라고 부르며 지혜가 건져 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롯의 삶 전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에 묘사된 롯의 행동에는 도덕적으로 매우 어려운 장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혜서는 그 모든 장면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순간에 그가 구출되었다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멸망한 성읍은 왜 흔적을 남기는가? (7–8절)

7절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땅의 풍경으로 옮겨 갑니다.

그곳의 악을 증언하는 것으로 아직도 연기 나는 황무지가 남아 있고, 때가 차기 전에 열매를 맺는 초목이 있으며, 믿지 않은 영혼을 기억하게 하는 소금 기둥이 서 있다.지혜서 10:7 · 본디새김

특히 소금 기둥은 창세기 19:26에서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악이 남긴 흔적은 생명의 풍성함이 아니라 황폐함과 불완전함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 저자는 이 풍경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기억의 문제로 연결합니다.

그들은 지혜를 지나쳐 버려 좋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기억하게 하는 표를 세상에 남겼다. 자기들이 그르친 일에서는 남의 눈을 피할 수조차 없도록 한 것이다.지혜서 10:8 · 본디새김

여기에는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기대했던 영원한 기억과 대비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지혜서 8:13에서 화자는 지혜 덕분에 후대에 영원한 기억을 남기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지혜서 10장의 악한 사람들 역시 오래 기억됩니다.

차이는 무엇으로 기억되느냐에 있습니다.

지혜와 함께하는 삶은 영예로운 기억을 남길 수 있지만, 지혜를 떠난 삶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언하는 기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역사에 기억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말이 사람의 모든 불행이나 재난을 그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한 증거로 판단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본문은 소돔과 그 심판을 특별한 사례로 제시하며, 모든 재난의 원인을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고통에서 건져 낸다는 말의 의미 (9절)

그러나 지혜는 자기를 섬긴 이들을 고통에서 건져 냈다.지혜서 10:9 · 본디새김

9절은 앞선 여러 사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뒤에 나올 이야기로 넘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지혜와의 관계가 단지 지혜에게서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관계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따르며, 그 지혜에 맞는 삶을 살아갑니다.

야곱은 형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억압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장이 말하는 구원은 고난을 경험하지 않는 삶이라기보다, 고난 속에서도 지혜가 함께하여 그들을 버리지 않고 마침내 건져 내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다섯 성읍」은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하는 그 지역 성읍들의 집단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14:2에는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 곧 소알이 등장합니다. 다만 창세기 19장에서 소알은 롯이 피신한 곳이므로, 다섯 성읍이 모두 똑같이 불에 멸망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지혜서는 이러한 흔적들을 악에 대한 증언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묘사된 소금 기둥이나 계속 연기가 나는 장소를 오늘날의 특정 지형과 확정적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때가 차기 전에 열매를 맺는 초목」은 번역상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그리스어 아텔레신 호라이스(ἀτελής)는 불완전한 때 또는 제때에 이르지 못한 시기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열매가 지나치게 일찍 맺힌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고, 열매가 끝내 제대로 익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표현만으로 어느 쪽이 확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경우든 이미지의 중심에는 정상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결실이 있습니다.

도망자 야곱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는가?

지혜서 10:10–12 본문 →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집을 떠납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챘고, 에서는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지혜서 10장은 그 복잡한 사연을 모두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야곱을 형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는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지혜서는 야곱의 모든 행위를 평가하기보다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인도하셨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나라 (10절)

이 지혜는 형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는 의로운 이를 곧은 길로 이끌었다.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었고, 거룩한 것들에 관한 앎을 주었다. 고된 일 가운데서 그를 넉넉하게 했고, 그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늘려 주었다.지혜서 10:10 · 본디새김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창세기 28:10–22의 벧엘 환상과 연결됩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향하다가 어느 곳에서 밤을 보냅니다. 그는 돌 하나를 베개 삼아 눕고, 꿈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층계와 그 위를 오르내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신이 함께하시겠으며, 어디로 가든 지켜 주시고, 마침내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창세기 28:13–15). 지혜서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신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에게는 자신의 앞날을 보장해 줄 만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그와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보여 주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힘으로 확보한 미래가 아닙니다. 때로는 인간이 아무것도 확보하지 못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노동과 지혜의 도움 (10–11절)

이어서 본문은 야곱이 겪은 노동과 착취를 이야기합니다.

탐욕으로 그를 억누르는 이들이 있을 때 그의 곁에 섰고, 그를 부유하게 했다.지혜서 10:11 · 본디새김

창세기 29–31장에서 야곱은 라반을 위해 오랫동안 일합니다.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그의 품삯을 여러 차례 바꿉니다. 야곱은 자신이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디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창세기 31:40–41).

여기서 지혜의 역할은 특별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부당한 관계 속에서도 야곱이 자신의 삶을 이어 가도록 지키는 일에 있습니다.

물론 이 구절을 모든 노동자가 결국 부자가 될 것이라는 보편적인 약속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지혜서는 야곱이라는 특정한 인물의 경험을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한 역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1:42에서 야곱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손의 수고를 보셨다고 말합니다. 지혜서는 그 고백을 지혜가 그의 곁에 섰다는 표현으로 풀어냅니다.

하나님과 겨룬 야곱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12절)

그를 원수들에게서 지켰고, 숨어서 노리는 이들에게서 안전하게 보호했으며, 힘겨운 싸움에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경건이 모든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그가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지혜서 10:12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야곱이 에서를 다시 만나기 전에 씨름했던 사건과 연결됩니다(창세기 32:24–30).

창세기에서는 어떤 사람이 밤새 야곱과 씨름합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기 전에는 그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

본문은 야곱의 육체적 힘이 하나님보다 강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의 싸움을 통해 드러난 것은 경건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씨름을 마친 뒤 자신의 허벅지 관절이 다쳐 절뚝거리며 길을 떠납니다. 겉으로 보면 승리한 사람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축복을 받았고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도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혜서가 말하는 「경건이 모든 것보다 강하다」는 선언은 바로 이 이야기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바실레이안 테우(βασιλεία)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왕권을 뜻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8장에 이 표현 자체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지혜서는 야곱의 환상을 하나님의 통치와 권위가 드러난 사건으로 다시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요셉을 구덩이 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지혜서 10:13–14 본문 →

이 지혜는 팔려 간 의로운 이를 버리지 않고, 그를 죄에서 건져 냈다.지혜서 10:13 · 본디새김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립니다(창세기 37:23–28). 이 장에서 가족 사이의 갈등은 반복됩니다. 가인은 형제를 죽였고, 야곱은 형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났으며,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렸습니다.

죄에서 건져 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를 죄에서 건져 냈다」는 표현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받았던 사건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39:7–12에서 요셉은 주인의 아내가 자신과 함께 자자고 요구했을 때 거절합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합니다(창세기 39:9). 이러한 문맥에서 지혜서 10:13은 지혜가 요셉을 죄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 자체는 어떤 죄를 가리키는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다른 사람들의 죄악으로부터 보호받았다는 의미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해서도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셉이 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지혜가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내려갔다는 놀라운 표현

그와 함께 구덩이로 내려갔고, 그가 사슬에 묶여 있을 때도 그를 버려두지 않았다. 왕권의 홀들과 그를 억누르던 이들을 다스릴 권한을 그에게 가져다줄 때까지 함께했다. 또 그를 헐뜯은 이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드러냈고, 그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었다.지혜서 10:14 · 본디새김

지혜가 단순히 요셉의 운명을 멀리서 지켜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함께했다는 표현입니다. 창세기 39장 역시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고(창세기 39:2–3),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습니다(창세기 39:21–23).

지혜가 함께한다는 약속은 언제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에 떨어졌을 때에도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지혜는 언제까지 함께했는가?

「때까지」라는 표현에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요셉이 팔린 직후 곧바로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종과 죄수의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이집트의 통치에 참여하게 됩니다(창세기 41:39–44).

지혜서의 저자는 요셉이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지혜가 끝까지 그와 함께했다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고난이 즉시 끝나지 않는 동안에도 지혜가 함께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배신으로 이집트에 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바로 그 형제들과 가족들을 기근에서 구해 냅니다(창세기 45:5–8; 50:20).

그의 높아짐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지혜서 10장은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창세기의 전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요셉에게 주어진 권한이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셉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구원에서 한 민족의 구원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됩니다.

한 사람을 이끌던 지혜가 이제 한 민족을 건져 낸다

지혜서 10:15–17 본문 →

이 지혜는 거룩한 백성과 흠잡을 데 없는 후손을 그들을 짓누르던 민족에게서 건져 냈다.지혜서 10:15 · 본디새김

여기서 이야기의 규모가 갑자기 커집니다.

개인의 삶에서 일하던 지혜가 공동체의 역사에서도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를 읽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나 흠잡을 데 없이 행동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불평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지혜서는 억압받던 백성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을 특정한 신학적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지혜가 모세의 영혼 안으로 들어갔다

주의 종의 영혼에 들어갔고, 놀라운 일들과 표징들로 무서운 왕들에게 맞섰다.지혜서 10:16 · 본디새김

「주의 종」은 모세를 가리킵니다. 지혜가 모세의 바깥에서 길을 안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통하여 일하는 존재로 묘사된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께 부름받았을 때 여러 차례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말을 잘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보내시면 좋겠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런 모세가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집트를 향해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합니다. 지혜서는 그 변화를 지혜가 그의 영혼 안으로 들어간 일로 설명합니다.

모세는 강력한 왕 앞에서 자기 힘을 과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왕은 하나님께 지혜를 보내 주셔서 자신과 함께 수고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9:10). 10장에서 지혜는 모세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 강력한 왕에게 맞섭니다.

이집트에서 받은 것은 단순한 전리품인가?

거룩한 이들에게 그들이 수고한 삯을 갚아 주었고, 놀라운 길로 그들을 이끌었으며, 그들에게 낮에는 덮개가, 밤에는 별빛 같은 불꽃이 되었다.지혜서 10:17 · 본디새김

출애굽기 12:35–36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은과 금 패물과 옷을 요구하여 받습니다. 그런데 지혜서는 이 사건을 「수고한 삯」을 돌려받는 일로 설명합니다.

출애굽기 1:11–14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강제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억압당하며 벽돌을 만들고 여러 가지 고된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재물을 얻어 나온 사건을 그러한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바라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출애굽은 단순히 억압에서 탈출하는 사건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수고했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모든 약탈 행위를 일반적으로 정당화하는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억압과 해방이라는 특정한 역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길이 되고, 덮개가 되고, 불꽃이 되다

17절의 「낮에는 덮개가, 밤에는 별빛 같은 불꽃」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3:21–22에 나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왔지만, 아직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광야는 익숙하지 않았고, 앞길은 불확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지혜는 방향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길 위에서 백성을 보호하고, 밤에도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낮과 밤이라는 표현은 인도가 특정한 순간에만 주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 길은 가장 큰 장애물 앞에 이릅니다.

바다입니다.

같은 물이 누구에게는 길이 되고 누구에게는 심판이 된다

지혜서 10:18–19 본문 →

그들이 홍해를 건너게 했고, 많은 물을 통과하도록 그들을 이끌었다.지혜서 10:18 · 본디새김

홍해 사건은 출애굽기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앞에 이르렀고, 뒤에서는 이집트의 군대가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면서 백성은 마른 땅을 지나 바다를 건넜습니다. 뒤따라 들어온 이집트 군대는 바닷물에 휩쓸렸습니다.

같은 물이 한쪽에는 구원의 길이 되고, 다른 쪽에는 심판의 장소가 됩니다.

이것은 앞서 노아의 홍수에서도 나타났던 구조입니다. 홍수는 악이 가득한 세상에 심판을 가져왔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를 통해 살아남았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동일한 사건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깊은 곳에서 위로 내던져진 원수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은 물에 잠기게 했고, 깊은 구렁의 바닥에서 그들을 위로 내던졌다.지혜서 10:19 · 본디새김

출애굽기 14:30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혜서는 이 모습을 바다 깊은 곳에서 원수들이 위로 내던져진 것처럼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추격하던 원수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합니다. 소돔의 멸망은 악의 흔적을 남겼고, 이집트 군대의 멸망 역시 이스라엘이 볼 수 있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지혜서는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악이 영원히 자기 힘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장은 원수들의 멸망을 묘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가 듣게 되는 것은 전쟁의 소리가 아니라 노래입니다.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다

지혜서 10:20–21 본문 →

이 때문에 의로운 이들은 경건하지 않은 이들을 노략하였고, 주님,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찬미하였으며,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당신의 손을 한마음으로 찬양하였습니다.지혜서 10:20 · 본디새김

20절에 이르면 문장의 방향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저자는 지혜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 직접 말을 건넵니다. 저자는 더 이상 과거에 일어난 구원을 설명하는 관찰자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의 자리에 섭니다.

지혜가 인간을 구원한 역사를 이야기하는 목적은 지혜 자체에 대한 감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지혜를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노략한 사람들이 왜 찬양하는가?

20절은 의로운 이들이 경건하지 않은 이들을 노략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앞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재물을 얻어 나온 이야기와 연결됩니다(출애굽기 12:35–36). 바다를 건넌 뒤 원수들의 패배를 확인한 장면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찬양의 대상은 자신들의 용맹이나 군사적 능력이 아닙니다.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당신의 손」입니다.

출애굽기 14:13–14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지혜서 10장은 그 약속이 이루어진 사건을 찬양으로 표현합니다.

지혜가 입을 열었다

지혜가 말 못 하는 이들의 입을 열고, 어린아이들의 혀가 또렷하게 말하게 했기 때문입니다.지혜서 10:21 · 본디새김

왜 구원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과 혀에 관한 표현으로 끝날까요?

「말 못 하는 이들의 입을 열고」라는 표현을 모세의 말할 능력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문맥에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이 입을 열었다는 표현은 구원받은 공동체 전체가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10장의 앞부분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보호받고 인도받는 대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그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지혜가 그들의 입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혜서 10장은 구원을 단순히 위험에서 살아남는 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게 되는 일까지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의 사건 순서를 엄밀하게 보면,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재물을 받은 것은 홍해를 건너기 전입니다. 그런데 지혜서 10장은 이를 바다를 건너고 원수들이 멸망한 이야기 뒤에 배치합니다. 해방을 통해 이스라엘이 얻게 된 결과를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4:10에서 모세는 자신이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시고 바로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5:1–21에서는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시편 8:2(히브리어 절 구분으로는 8:3)에도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지혜서 10:21이 실제로 말을 하지 못하던 모든 사람이 기적적으로 말하게 되었다거나, 갓난아이들이 문자 그대로 출애굽의 노래를 불렀다고 확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약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게 되었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 바다를 건넌 사람들이 처음으로 부른 노래

지혜서 10:1–21 본문 →

지혜는 사람들의 삶이 무너질 위험에 처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들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가게 합니다. 그들이 연약하고, 위기에 빠지고, 고난을 겪을 때에도 지혜가 그들을 붙들었다고 말합니다.

마침내 지혜는 한 민족 전체를 이끌어 바다 앞에 섰습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바다를 가를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뒤쫓아 오는 군대를 물리칠 능력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은 갈라졌고, 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이 장의 마지막에서 마침내 입을 엽니다.

이 장을 처음 읽을 때는 위대한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역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의 이름도, 한 왕의 업적도 아닙니다.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지혜가 그들을 지켰기에 그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지혜가 그들을 이끌었기에 그들은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혜가 그들의 입을 열었기에, 그들은 이제 자신들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 노래하는 자리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바다를 건넌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지혜서 10장은 바로 그 노랫소리를 들려주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