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서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의와 죽지 않는 삶

비웃던 사람이 마침내 일어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한때 그들에게 억압당했고, 그의 삶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믿음을 어리석다고 여겼고, 그가 죽었을 때는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장면에서 의로운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옳았다고 변호하거나,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들 앞에 서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데, 그를 비웃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의로운 사람의 명예가 회복되는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재물과 권력과 성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명예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 마지막에는 창조 세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왜 의로운 사람 한 명을 억압한 일이 이렇게 거대한 심판의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지혜서 5장은 바로 이 두 삶을 대조합니다. 사람들에게 무가치하게 여겨졌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지 않은 삶과, 세상에서는 힘과 영광을 누렸지만 마지막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삶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5장 본문 읽기 →

의로운 사람은 서 있고, 악한 사람들은 떨고 있다

지혜서 5:1–2 본문 →

그때 의로운 이는 자기를 억누르고 자기의 수고를 하찮게 여기던 이들 앞에 아무 거리낌 없이 설 것이다.지혜서 5:1 · 본디새김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그의 지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 드러나면서, 이전에 그를 억누르던 권력이 더 이상 그를 위협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장면은 4:20에서 악한 사람들이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때에 두려워하며 오는 모습과 이어집니다. 이제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들은 보고 끔찍한 두려움에 떨 것이며, 그 뜻밖의 구원에 넋을 잃을 것이다.지혜서 5:2 · 본디새김

특히 그들이 놀라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닥친 형벌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의 구원입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이 그의 믿음을 반박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여겼습니다.

이 장면의 힘은 두려움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의 죽음으로 자신의 승리를 확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구원을 보는 순간, 자신들이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그들의 입에서 긴 고백이 쏟아져 나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본문은 그 구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죽었던 의로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되었는지도 묘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구체적인 부활의 순간이나 최후 심판의 절차에 관한 상세한 기록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는 의로운 사람의 구원이 드러나는 심판의 장면을 통해 인간의 잘못된 평가가 뒤집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을 어리석다고 부르다

지혜서 5:3–5 본문 →

그들은 회개하며 자기들끼리 말하고, 마음이 짓눌려 탄식할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한때 웃음거리와 조롱의 비유로 삼았던 사람이다.」지혜서 5:3 · 본디새김

여기서부터 13절까지는 악한 사람들 자신의 말이 이어집니다.

앞서 지혜서 2장에서도 그들은 긴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는 자신들의 생각과 욕망을 자신 있게 말했고, 의로운 사람을 어떻게 시험하고 죽일지 의논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설은 전혀 다릅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판단을 평가합니다.

그때는 의로운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을 어리석다고 부릅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그의 삶을 미친 짓으로 여기고, 그의 죽음을 불명예스럽게 여겼다.」지혜서 5:4 · 본디새김

그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의 가치를 정반대로 해석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이익보다 의를 선택하는 것을 어리석게 보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난을 견디는 것을 미친 행동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죽음 역시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데 사용했던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꼽혔으며, 그의 몫이 거룩한 이들 가운데 있는가?」지혜서 5:5 · 본디새김

그들은 그를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밀어내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는 귀하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물과 권력, 당장의 즐거움을 자신들의 몫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의로운 사람이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다른 몫을 받았음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이들 가운데 주어지는 자리입니다.

이 질문에는 부러움만이 아니라 깊은 당혹감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들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여겼던 사람이 하나님께 귀하게 여겨졌다면, 자신들의 삶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그들의 다음 고백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뉘우침을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받는 회개로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는 그들이 실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거룩한 이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하늘의 존재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욥기 1:6; 38:7). 따라서 여기에서도 의로운 사람이 하늘의 거룩한 존재들과 함께하는 지위를 얻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와 거룩한 이들을 하나님께 속한 의로운 사람들의 공동체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얻었다는 뜻이 됩니다. 본문은 어느 쪽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읽기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악한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의 소속과 지위를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는 사실입니다.

길은 많이 걸었지만, 정작 주의 길은 몰랐다

지혜서 5:6–7 본문 →

「그러니 우리가 진리의 길에서 벗어났구나. 의의 빛이 우리에게 비치지 않았고, 해도 우리에게 떠오르지 않았다.」지혜서 5:6 · 본디새김

그들은 더 이상 의로운 사람에게 잘못된 평가를 내렸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진리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합니다.

빛은 사물을 볼 수 있게 하고, 길은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그들은 둘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리를 알 기회를 전혀 주지 않으셨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앞에서 그들은 의로운 사람의 삶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꾸짖음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진리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리를 마주하고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의의 빛」과 「해」라는 표현은 시편 36:9–10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은 하나님에게 생명의 근원이 있고, 하나님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본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빛이 있어야 하듯, 올바르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참으로 선한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불법과 멸망의 길을 실컷 다녔고, 발길이 닿지 않는 광야들을 두루 다녔으나, 주의 길은 알지 못했다.」지혜서 5:7 · 본디새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많은 곳을 다녔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에는 올바른 방향이 없었습니다.

특히 「발길이 닿지 않는 광야들」이라는 표현은 길이 없는 곳을 헤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길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오래 걸어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많이 걸었다는 사실이 올바른 방향으로 걸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신명기 30:15–20의 생명과 죽음의 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앞에 생명과 복, 죽음과 재앙의 길이 놓여 있다고 말하며 생명을 선택하라고 권합니다.

지혜서의 사람들은 그 선택을 뒤늦게 돌아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야 주의 길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애써 얻으려 했던 것들이 실제로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묻기 시작합니다.

배와 새와 화살 —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삶

지혜서 5:8–13 본문 →

「교만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허풍을 동반한 재물이 우리에게 무슨 보탬이 되었는가?」지혜서 5:8 · 본디새김

교만과 재물은 그들에게 힘과 안전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겼고, 자신의 부유함을 근거로 남을 업신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질문의 초점은 재물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재물이 제공한다고 믿었던 유익입니다. 재물은 사람의 필요를 채우고 삶을 돕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물을 자신의 교만과 결합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힘이자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어서 9–12절에서는 덧없는 삶을 묘사하는 다섯 가지 이미지가 연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림자, 스쳐 가는 소식, 배, 새, 화살입니다.

지나간 배는 물 위에 길을 남기지 않는다

「물결치는 물을 가로지르는 배와 같았다. 배가 지나간 뒤에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물결 속에서 그 용골이 낸 길도 찾을 수 없다.」지혜서 5:10 · 본디새김

그들은 많은 일을 했습니다. 힘을 행사했고, 재물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니, 그 모든 움직임 가운데 진정한 가치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새는 공기를 가르지만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11절에서는 시선이 물 위에서 하늘로 옮겨집니다.

「또 공중을 날아간 새와 같았다. 새가 간 길의 증거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새는 가벼운 공기를 지나갔다. 공기는 깃에 맞아 채찍질당하고, 움직이는 날개가 내는 거센 소리에 갈라졌지만, 그 뒤에는 그 안에서 지나간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지혜서 5:11 · 본디새김

저자는 악한 사람들의 삶에 관해 바로 그 증거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삶이 가치 있었다고 보여 줄 만한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화살은 공기를 가르지만 다시 흔적이 사라진다

12절에서는 더욱 빠른 움직임이 등장합니다.

「또 과녁을 향해 쏜 화살과 같았다. 갈라진 공기는 곧바로 다시 합쳐져, 화살이 지나간 길을 알 수 없게 되었다.」지혜서 5:12 · 본디새김

관심은 화살의 성과가 아니라 그것이 지나간 길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세 이미지 모두 움직임을 보여 주지만, 그 움직임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많이 움직이고, 빠르게 움직이고, 큰 힘을 발휘했다고 해서 반드시 의미 있는 흔적이 남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태어났다가 사라졌고, 덕의 흔적은 하나도 보여 줄 수 없었으며, 우리의 악 속에서 소진되었다.」지혜서 5:13 · 본디새김

바로 앞 장에서 저자는 덕을 지닌 사람이 자녀 없이 살아도 그 덕이 기억 속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4:1). 그런데 여기서는 악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덕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삶이 기억되고 인정받았습니다. 반대로 악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남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니 보여 줄 만한 덕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악 속에서 소진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삶을 하나의 자원처럼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살아갈 시간이 있었고, 행동할 힘이 있었으며, 선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악에 써 버렸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만이 아닙니다. 자기 삶을 잘못된 곳에 소모했다는 깨달음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그들의 연설을 끝냅니다.

흩어지는 소망과 하나님이 지키시는 삶

지혜서 5:14–16 본문 →

실로 경건하지 않은 이의 소망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고, 폭풍에 쫓기는 엷은 서리와 같다. 그 소망은 연기처럼 바람에 흩어졌고, 하루 묵은 나그네에 대한 기억처럼 지나갔다.지혜서 5:14 · 본디새김

13절까지는 악한 사람들의 고백이었습니다. 14절부터는 다시 저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앞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덕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저자는 그들이 품었던 소망 자체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재물과 권력이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겨와 서리처럼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바람에 날리는 겨의 이미지는 시편 1:4와 연결됩니다. 시편 1편은 의로운 사람을 물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하고, 악한 사람을 바람에 날리는 겨에 비유합니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만, 겨는 스스로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그러나 의로운 이들은 영원히 살며, 그들의 보상은 주에게 있고, 그들을 돌보는 일은 지극히 높은 이에게 있다.지혜서 5:15 · 본디새김

본문은 보상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들을 돌보는지를 강조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재물에 소망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들의 보상과 안전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두 소망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의 손에서 화려한 왕관과 왕의 아름다운 머리띠를 받을 것이다. 주가 오른손으로 그들을 감싸고, 팔로 그들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지혜서 5:16 · 본디새김

그들이 얻는 존귀함은 자기 힘으로 쟁취한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손과 팔은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것은 1절에서 의로운 사람을 억누르던 사람들의 권력과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의로운 사람을 지키십니다.

그런데 저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모습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직접 무장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이 갑옷을 입으시는 이유

지혜서 5:17–20 본문 →

주는 자신의 열심을 갑옷과 무기로 삼고, 원수들을 응징하려고 창조 세계를 무장시킬 것이다.지혜서 5:17 · 본디새김

하나님이 갑옷을 입으십니다.

의를 가슴받이로 입고, 거짓 없는 판결을 투구로 쓸 것이다.지혜서 5:18 · 본디새김
거룩함을 꺾을 수 없는 방패로 들 것이다.지혜서 5:19 · 본디새김
가차 없는 분노를 벼려 큰 칼로 삼을 것이며, 세상도 그와 함께 나서서 분별없는 이들과 싸울 것이다.지혜서 5:20 · 본디새김

그들은 의로운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불명예스럽다고 여겼고, 그의 삶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은 자신의 욕망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거짓 없는 판결로 무장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임의적인 폭력이 아닙니다. 불의한 판단을 바로잡고, 악한 사람들이 뒤집어 놓은 의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행위로 묘사됩니다.

거룩함은 단순히 다른 존재보다 더 강하거나 특별하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악과 불의에 동화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시지만,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거짓을 행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의와 거짓 없는 판결과 거룩함이 하나님의 행동을 규정합니다.

지혜서에서 악한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의로운 사람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희생시켜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바로 그러한 불의에 맞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인간이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여 폭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의로운 판결과 거룩함을 가지고 불의를 심판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무장은 창조 세계 전체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인간은 그 창조 세계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처럼 사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창조 세계는 인간의 탐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서의 시적 묘사에서는 창조 세계가 창조주의 명령에 응답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더라도 세상 전체가 인간의 불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제 하늘과 바다와 땅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표현들은 이사야 59:16–18의 하나님을 전사로 묘사하는 장면과 매우 가깝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야훼는 정의가 없는 현실을 보시고, 자신의 팔로 구원을 이루시며, 의를 갑옷처럼 입고 구원을 투구처럼 쓰십니다. 지혜서는 이 전통을 이어받되 무장의 세부 요소를 발전시킵니다.

화살은 과녁을 찾고, 바람은 겨를 날려 버린다

지혜서 5:21–23 본문 →

과녁을 정확히 겨눈 번개의 화살들이 날아갈 것이고, 잘 휜 활에서 쏘아지듯 구름에서 과녁을 향해 뛰쳐나갈 것이다.지혜서 5:21 · 본디새김

앞에서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공기를 가르며 지나간 화살에 비유했습니다. 두 화살 모두 과녁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러나 앞에서는 흔적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여기서는 정확하게 겨누어진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인간의 악은 자기 삶을 소진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자신이 향하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격분으로 가득한 우박들이 투석기에서 내던져질 것이다. 바닷물은 그들에게 노여워할 것이며, 강들은 그들을 가차 없이 휩쓸 것이다.지혜서 5:22 · 본디새김

번개와 우박, 바다와 강은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에 맞서는 도구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현상을 모두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이 장에서 미래의 심판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폭풍이나 홍수, 우박이 일어날 때마다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판단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의 목적은 자연재해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실 때 그분의 뜻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23절에서는 마지막으로 바람이 등장합니다.

거센 바람이 그들에게 맞서고, 폭풍처럼 그들을 키질해 날려 버릴 것이다. 온갖 불법이 땅을 황폐하게 하고, 악행이 권세 있는 이들의 왕좌를 뒤엎을 것이다.지혜서 5:23 · 본디새김

14절에서는 경건하지 않은 사람의 소망이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소망을 품었던 사람들이 폭풍에 키질당하듯 날아갑니다.

그러나 23절의 마지막은 단순한 자연의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무장시키시고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땅을 황폐하게 하는 것이 불법이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왕좌를 뒤엎는 것이 악행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들이 행한 불의 자체가 세상을 황폐하게 하고, 자신들이 의지했던 권력의 기반까지 무너뜨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불의를 사용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불의가 자신들이 앉아 있던 왕좌를 뒤엎습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9:22–26에서는 이집트에 우박이 내리고, 출애굽기 14:26–28에서는 바닷물이 이집트 군대를 덮습니다. 그 사건들에서 자연의 힘은 우연히 등장하는 배경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억압하는 세력을 심판하시는 일과 연결됩니다. 사사기 5:20–21에서도 하늘의 별들이 시스라와 싸우고 키손강이 적군을 휩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전투에 창조 세계가 참여하는 이미지입니다. 지혜서 5장은 이 오래된 성경의 언어를 사용해 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변호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 줍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곡식을 타작한 뒤 알곡과 겨를 분리하기 위해 바람을 이용했습니다. 곡식을 공중에 던지면 무거운 알곡은 아래로 떨어지고 가벼운 겨는 바람에 날아갑니다. 저자는 악한 사람들을 바로 그렇게 날려 버릴 대상으로 묘사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장면

지혜서 5:1–23 본문 →

이 모든 장면을 관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입니다. 처음에는 억압당한 의로운 사람 한 명이 그를 괴롭혔던 사람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앞에서 악한 권력과 창조 세계 전체의 질서가 문제로 드러납니다. 한 사람의 삶을 하찮게 여기고 억압하는 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과 정의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장은 단순히 악한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하게 되므로 의로운 사람이 끝까지 참고 견디면 된다는 교훈으로 축소할 수 없습니다. 본문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행동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그저 서 있습니다. 그를 비웃던 사람들은 이제 그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그가 거기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내린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한때 그의 삶을 미친 짓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의 입에서 다른 고백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그의 삶을 미친 짓으로 여기고, 그의 죽음을 불명예스럽게 여겼다.」

그들은 그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눈이 열렸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자신들이 비웃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