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언약과 전쟁, 성전 터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집

다윗은 자신의 왕궁에 살게 되자 한 가지 불균형을 발견합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집에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여전히 천막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합니다. 예언자 나단도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은 나단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주십니다.

이 장의 중심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려던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17장 본문 읽기 →

좋은 계획에 대한 나단의 동의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역대상 17:1–4 본문 →

다윗은 예언자 나단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다윗이 자기 집에 살게 되었을 때, 예언자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집에 사는데,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는 천막 안에 있다.」역대상 17:1 · 두루새김

다윗은 직접 성전을 짓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집과 언약궤가 놓인 장소를 대조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드러냅니다.

백향목은 왕궁과 고급 건축물에 사용되는 귀한 목재였습니다. 다윗이 백향목 집에 산다는 것은 그의 왕권이 안정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 장에서 궤를 예루살렘에 모시고 예배를 위한 일까지 마련한 다윗은 이제 그 궤가 계속 머물 건물을 생각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에 두신 일을 모두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십니다.」역대상 17:2 · 두루새김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고,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위해 더 좋은 장소를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상황이 바뀝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역대상 17:3 · 두루새김

나단의 처음 대답은 왕의 계획을 지지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실제로 주신 말씀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을 하나님이 받아들이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다거나 그가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절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일이 좋은 일인가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며,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가가 중요했습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나 여호와야훼의 말을 전하여라. 『내가 살 집을 나에게 지어 줄 사람은 네가 아니다.』」역대상 17:4 · 두루새김

하나님은 성전 건축 자체를 영원히 금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12절에서는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지을 수 없는 이유보다, 자신이 다윗을 위해 하실 일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 22:8과 28:3에서는 다윗이 많은 피를 흘리고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이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17장에서는 그 이유를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왜 자신을 위한 백향목 집을 요구하지 않으셨는가

역대상 17:5–6 본문 →

하나님은 다윗에게 자신이 이스라엘과 함께해 온 역사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서 살지 않았다. 천막에서 천막으로, 성막에서 성막으로 옮겨 다녔다.』」역대상 17:5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이동하던 시절, 성막도 백성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한곳에 정착할 때까지 백성과 함께하시는 일을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동하는 백성 가운데 머무시겠다는 약속이 성막의 중요한 의미였습니다(출애굽기 25:8; 40:34–38).

「『내가 온 이스라엘을 두루 다니는 동안, 내 백성을 돌보라고 세운 재판관들 가운데 누구에게라도 왜 나를 위해 백향목 집을 짓지 않았느냐고 한마디라도 물은 적이 있느냐?』」역대상 17:6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의 왕궁과 하나님의 천막을 비교하면서 건물의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백성과 어떻게 관계해 오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성전이 훌륭해서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성전이 의미를 갖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베풀려던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이야기를 다윗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십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17:5에는 「천막에서 천막으로, 성막에서 성막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앞의 「천막에서 천막으로」에는 이동의 도착점이 나오지만, 뒤의 성막을 가리키는 표현에는 도착점이 직접 적혀 있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뒤의 표현도 앞과 나란히 이해하여 「성막에서 성막으로」라고 옮깁니다.

양 떼 뒤에서 왕좌까지, 누가 다윗을 이끌었는가

역대상 17:7–10 본문 →

하나님은 다윗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제 내 종 다윗에게 만군의 여호와야훼인 나의 말을 전하여라. 『나는 양 떼를 돌보던 너를 풀밭에서 데려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역대상 17:7 · 두루새김

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백성을 「돌보라고」 명령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실제로 양을 돌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왕권은 백성을 자기 소유로 삼을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맡아 돌보는 일로 제시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반복해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어도 이스라엘은 다윗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 내가 너와 함께 있었고, 네 앞에서 네 원수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이제 네 이름을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처럼 널리 알려 주겠다.』」역대상 17:8 · 두루새김

다윗이 풀밭에서 왕좌에 이른 과정은 그의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성전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다윗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 한 사람에게서 이스라엘 전체로 시선을 돌립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을 그곳에 심겠다. 그들은 자기 자리에서 살며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악한 자들이 예전처럼 내 백성을 괴롭히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역대상 17:9 · 두루새김

나무를 심는 모습은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동하고 위협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더 이상 악한 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왕이 위대한 이름을 얻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안정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그 약속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재판관들을 세운 때부터 내 백성이 겪었던 괴롭힘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네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겠다. 내가 네게 알린다. 나 여호와야훼가 너를 위해 집안을 세울 것이다.』」역대상 17:10 · 두루새김

이 말은 1절의 다윗이 하려던 일과 정확히 방향이 반대입니다.

원문에서는 이 자리에도 집이라는 말이 쓰이지만, 그 뜻은 왕궁이나 성전 같은 건물을 넘어섭니다. 이어지는 11–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우시겠다는 것은 다윗의 후손과 그 왕권으로 이어지는 왕조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드러내어 「집안」이라고 옮깁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지금까지 누린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왔음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신의 후손들에게까지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려던 것은 한 채의 집이었지만,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질 미래였습니다.

성전을 지을 아들과 영원히 세워질 왕좌

역대상 17:11–15 본문 →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 이후의 세대로 향합니다.

「『네가 삶을 마치고 조상들에게로 가면, 내가 네 아들 가운데 하나를 네 뒤를 이을 후손으로 세우겠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겠다.』」역대상 17:11 · 두루새김

다윗은 위대한 왕이지만, 그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이 끝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약속은 우선 솔로몬을 가리킵니다. 역대상 22:9–10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을 다윗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정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대상 28:6에서도 같은 사실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약속은 솔로몬 한 사람의 삶보다 훨씬 멀리 나아갑니다.

「『그가 나를 위해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왕좌를 영원히 굳게 세우겠다.』」역대상 17:12 · 두루새김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수 있지만 영원히 살아서 왕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영원히」는 솔로몬 개인의 통치 기간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자손을 통해 이어질 왕권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합니다.

왕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뜻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너보다 앞서 왕이었던 사람에게서는 나의 한결같은 사랑을 거두었지만, 그에게서는 거두지 않겠다.』」역대상 17:13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왕이 하나님과 실제 혈연으로 맺어진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뒤를 이을 사람을 자신의 아들로 대하시겠다는 왕권에 관한 언약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을 자신들의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4:22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왕이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로 불립니다.

이것은 왕이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왕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오며, 왕은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시편 2:7에서도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은 왕에게 아들이라는 선언을 하십니다. 시편 89:26–29은 다윗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관계와 언약이 계속 이어짐을 함께 노래합니다.

이 표현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대표적인 곳은 히브리서 1:5입니다. 그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약속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여 읽는 것이며, 역대상 17장의 직접적인 역사적 문맥에서는 먼저 다윗의 뒤를 이을 사람과 왕조를 가리킵니다.

사울에게서는 거두었지만, 다윗의 아들에게서는 거두지 않겠다는 것

「너보다 앞서 왕이었던 사람」은 문맥상 사울을 가리킵니다. 역대상 10:13–14에서 사울은 하나님께 신의를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왕권을 잃은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윗의 뒤를 이을 사람을 사울과 다르게 대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같은 약속을 기록한 사무엘하 7:14–15에는 다윗의 후손이 잘못하면 징계를 받겠지만,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사울에게서처럼 거두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역대상 17장은 징계에 관한 문장을 기록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이 이어질 것이라는 약속에 초점을 맞춥니다.

역대기는 다윗 왕조의 모든 행동을 무조건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역대하에는 유다 왕들의 죄와 그 결과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17:13은 잘못에 대한 심판이 사라진다는 선언이 아니라, 다윗의 집안에 주신 언약이 사울 왕조의 경우처럼 끝나지 않으리라는 약속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 집과 내 나라」라는 놀라운 표현

「『내가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영원히 세워 두겠다. 그의 왕좌는 영원히 굳게 설 것이다.』」역대상 17:14 · 두루새김

같은 약속을 전하는 사무엘하 7:16에서는 다윗의 집과 나라가 영원히 굳게 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에서는 이를 다윗에게 속한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역대상 17:14에서는 하나님이 「내 집과 내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뒤를 이을 사람이 왕좌에 앉더라도 그 나라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원문에서 집이라는 말은 사람의 건물에서 왕조로,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속한 집으로 의미를 넓혀 갑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왕조를 주신다는 것은 다윗에게 독립적인 권력을 넘겨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의 나라를 섬길 책임을 다윗의 집안에 맡기신다는 뜻입니다.

유다 왕국은 실제로 멸망했고, 다윗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에서 계속 왕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역대하 36:17–21). 그렇다면 영원한 왕좌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역대상 17장 자체는 그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역대기가 포로와 귀환의 역사까지 기록하면서도 다윗 왕조의 약속을 중요하게 간직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약속은 한 시대의 정치적인 성공만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왕국의 위기를 경험한 뒤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게 하는 말로 남습니다.

시편 89편 역시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을 노래하다가, 왕권이 무너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그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절히 구합니다(시편 89:38–51). 성경은 이 긴장을 언제나 즉시 풀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역사 사이에 남아 있는 질문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가기도 합니다.

다윗의 첫 반응은 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역대상 17:16–19 본문 →

하나님의 말씀이 끝난 뒤, 다윗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다윗 왕이 들어가 여호와야훼 앞에 앉아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 하나님, 제가 누구이며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까?」역대상 17:16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이 너무 크다는 사실 앞에서 자신의 출발점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풀밭에서 양 떼를 돌보던 자신을 데려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의 일뿐 아니라 먼 훗날의 후손들에 대해서까지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당연한 보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먼 훗날까지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일도 작은 일로 여기시고, 주님의 종인 제 집안의 먼 훗날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야훼 하나님, 주님은 저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처럼 대해 주셨습니다.」역대상 17:17 · 두루새김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자기 이후의 모든 세대를 직접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능력으로 마련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주님의 종을 이렇게 높여 주셨으니, 저 다윗이 주님께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주님은 이 종을 아십니다.」역대상 17:18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을 설명하는 대신, 하나님이 자신을 아신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있습니다.

「여호와야훼, 주님께서는 이 모든 큰일을 알려 주시려고, 주님의 종을 위해 주님의 뜻에 따라 이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역대상 17:19 · 두루새김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에 대한 거래나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에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말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이런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17절 후반에는 번역이 어려운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어 케토르 하아담 함마알라는 단어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을 높은 지위의 사람처럼 대우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먼 훗날에 이어질 인간의 세대나 질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습니다. 같은 기도를 전하는 사무엘하 7:19에도 해석이 어려운 표현이 나타나므로, 두 구절을 단순히 맞추어 하나의 확정적인 뜻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앞뒤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다윗이 자신의 신분과 기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대우를 놀라워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조를 위한 약속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떠올린다

역대상 17:20–22 본문 →

다윗의 기도는 여기서 또 한 번 방향을 바꿉니다.

자신과 자기 집안에 주어진 약속을 감사하던 다윗은 갑자기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질문은 자기 집안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합니다.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같은 민족이 이 땅 어디에 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몸소 나서서 구해 내어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민족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을 떨치시려고 크고 두려운 일을 하셔서,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주님의 백성 앞에서 여러 민족을 쫓아내셨습니다.」역대상 17:21 · 두루새김

두루새김이 「구해 내어」(⁨פָּדָה⁩)라고 옮긴 원문의 말은 어떤 대가나 권리 관계에서 사람을 되찾거나 해방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출애굽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억압에서 건져 내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일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조가 세워지기 훨씬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약속을 이스라엘 전체에 베풀어진 더 오래된 은혜 안에서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다윗의 왕권도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여호와야훼,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역대상 17:22 · 두루새김

출애굽기 6:7과 레위기 26:12에도 같은 언약 관계가 표현됩니다. 이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이 이스라엘 전체의 언약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을 세우겠다고 하셨지만, 그 집안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왕조에 주어진 약속의 더 큰 배경입니다.

그는 자기 집안의 미래를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셨기에 다윗은 기도할 수 있었다

역대상 17:23–27 본문 →

다윗의 기도는 마지막에 이르러 더욱 특별해집니다.

「이제 여호와야훼, 주님의 종과 그 집안에 대해 하신 약속이 영원히 굳게 서게 해 주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역대상 17:23 · 두루새김

이 기도는 앞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셨는데, 다윗은 왜 다시 그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까요?

「제 하나님, 주님께서 이 종에게 집안을 세워 주시겠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종이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할 용기를 얻었습니다.」역대상 17:25 · 두루새김

기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의 기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구합니다. 동시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일이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지도 밝힙니다.

「그 약속이 굳게 서고 주님의 이름이 영원히 높아져, 사람들이 『만군의 여호와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이시다!』 하고 말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종 다윗의 집안이 주님 앞에 굳게 서게 해 주십시오.」역대상 17:24 · 두루새김

이것은 앞서 하나님이 다윗의 이름을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처럼 널리 알려 주겠다고 하신 말씀(17:8)과 서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집안에 주어진 그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영광에서 멈추지 않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데 이릅니다.

이미 주신 복을 다시 달라고 하지 않는 기도

「이제 주님께서는 이 종의 집안이 주님 앞에 영원히 있도록 기꺼이 복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야훼, 주님께서 복을 주셨으니 이 집안은 영원히 복을 누릴 것입니다.」역대상 17:27 · 두루새김

물론 다윗의 후손들이 아직 왕좌에 앉은 것은 아닙니다. 성전도 아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아직 보지 못한 미래를 자신의 능력으로 마련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믿을 만하다고 고백합니다.

23절에서 다윗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27절에서는 「주님께서 복을 주셨으니」라고 고백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요청하는 데서 시작하여,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는 데 이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로 하셨다는 사실을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고백합니다. 두루새김도 「기꺼이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옮겨 이 고백을 드러냅니다.

건축하지 못한 왕이 받은 더 큰 약속

역대상 17:1–27 본문 →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만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떤 은혜를 받았으며 앞으로 어떤 약속 안에서 살아갈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장은 하나님을 위한 인간의 헌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헌신보다 앞서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처음에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때 그의 관심은 자신이 지을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머뭅니다.

다윗은 여전히 자신의 백향목 집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여전히 천막 안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직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제 자신이 지을 수 없는 집보다 하나님이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집안을 바라봅니다.

그는 건축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먼저 말씀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