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7–22장 · 엘리야와 아합
두 번 구원받은 왕은 왜 심판받았는가
열왕기상 20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로 가득합니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바알을 섬기고 이스라엘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놀라운 승리를 주십니다.
그런데 두 번째 승리를 거둔 아합이 적국의 왕 벤하닷을 살려 보내자, 갑자기 예언자가 나타나 그를 책망합니다. 적군을 물리친 왕이 패배한 적에게 너그럽게 행동했습니다. 조약을 맺어 빼앗긴 성읍들을 돌려받고 외교적 이익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심판받을 일이 되었을까요?
열왕기상 20장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승리 이후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아합은 적국 왕의 요구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자 그는 상대 왕의 운명을 결정하고 나라 사이의 조약을 맺는 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그 권한이 처음부터 누구에게 속해 있었는가입니다.
사마리아의 포위: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왕
은과 금, 아내와 자녀까지 요구하다
아람 왕 벤하닷은 서른두 명의 왕과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에워쌉니다.
당시 서른두 왕이 각각 어느 지역을 다스렸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들이 벤하닷을 중심으로 연합한 군사 세력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러 왕과 말과 전투용 수레가 함께 등장하는 첫 문장부터 아람 연합군의 압도적인 힘이 강조됩니다.
그들이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벤하닷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은과 금은 내 것이다. 네 아내들과 훌륭한 아들들도 내 것이다.』」열왕기상 20:3 · 두루새김
고대 전쟁에서 패배한 왕이 승리한 왕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인질을 제공하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벤하닷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기도 전에 이미 아합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처럼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대답했습니다. 「저의 주인이신 왕이여,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은 왕의 것입니다.」열왕기상 20:4 · 두루새김
이 말은 그가 현재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있는지 보여줍니다. 아합은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며 벤하닷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본문은 아합이 요구를 말로 받아들였다고 기록할 뿐, 실제로 그들을 넘겨주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벤하닷의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요구가 달랐던 이유
벤하닷은 다시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내일 이맘때 내가 신하들을 네게 보내겠다.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뒤져서, 네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손에 넣어 가져갈 것이다.』」열왕기상 20:6 · 두루새김
이것은 무엇을 넘길지 결정하는 권한마저 아합에게서 빼앗는 일입니다.
아합은 더 이상 상대가 요구한 목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집과 신하들의 집을 마음대로 뒤지도록 허용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로들을 불러 의논합니다.
장로들과 백성은 거절하라고 권합니다. 아합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벤하닷의 두 번째 요구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이 장면은 왕이 자신의 판단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거절당한 벤하닷은 분노합니다.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자랑하다
벤하닷은 사마리아의 흙먼지가 자신을 따르는 모든 군사에게 한 줌씩 나누어 주기에도 모자랄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그의 군사력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사마리아를 완전히 쓸어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아합은 짧은 속담으로 대답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전하여라. 『무기를 차는 사람은 무기를 푸는 사람처럼 자랑하지 말라.』」열왕기상 20:11 · 두루새김
무기를 차는 사람은 아직 싸우기 전의 사람입니다. 무기를 푸는 사람은 싸움을 마친 사람입니다. 아합은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를 장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었을 때 벤하닷은 왕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자리에서 공격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벤하닷은 군사력이 압도적이라고 믿었고, 적군의 저항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합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한 예언자가 찾아옵니다.
첫 번째 승리: 하나님은 왜 아합을 도우셨는가
왕이 구하지 않았는데 먼저 주어진 약속
그때 한 예언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큰 군대를 모두 보았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그러면 너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열왕기상 20:13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경건함을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바알 숭배를 버렸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앞서 아합을 책망했던 것과 같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겠다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시려고 승리를 주십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은 반드시 도움받는 사람의 의로움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충실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행동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인간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자신이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하는 데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7:5, 14:4, 14:18).
19장에서 엘리야는 자신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엘리야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 이백삼십이 명인가
아합이 물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냐?」 예언자가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 지방관을 돕는 젊은이들을 통해서다.』」 아합이 물었습니다. 「누가 싸움을 시작해야 하느냐?」 예언자가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하셔야 합니다.」열왕기상 20:14 · 두루새김
그들의 수는 이백삼십이 명입니다. 이어 모은 이스라엘의 전체 병력은 칠천 명입니다. 여기서 「각 지방관을 돕는 젊은이들」은 각 지방관에게 속한 수행원이나 젊은 일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군사적 계급에 속했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아람의 연합군에는 왕 서른두 명과 말과 전투용 수레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 선두에는 지방관들을 돕는 젊은이들 이백삼십이 명이 있습니다.
전쟁이 이스라엘의 우월한 군사력으로 결정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칠천 명이라는 숫자는 앞 장에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 칠천 명을 남겨 두시겠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19:18). 다만 두 집단이 같은 사람들임을 본문이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벤하닷의 두 번째 오판
이스라엘 군대가 한낮에 성 밖으로 나갑니다.
그때 벤하닷은 왕 서른두 명과 함께 술을 마시며 취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왔다고 보고하자 벤하닷은 명령합니다.
벤하닷이 명령했습니다. 「평화를 청하러 나왔거든 산 채로 붙잡아라. 싸우러 나왔거든 산 채로 붙잡아라.」열왕기상 20:18 · 두루새김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조차 없다는 태도입니다. 어느 경우든 자신이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앞에 있는 적을 쳐 죽입니다. 아람 군대는 달아나고, 벤하닷도 말을 타고 빠져나갑니다.
그가 산 채로 붙잡으라고 명령했던 적군은 오히려 그의 군대를 무너뜨립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 왕이, 바로 그 힘을 믿고 무방비해졌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 전투를 단순히 벤하닷의 실수 때문에 얻은 승리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군대를 아합의 손에 넘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승리한 뒤에도 준비해야 한다
전투가 끝난 뒤 예언자는 아합을 다시 찾아옵니다.
그 예언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가서 힘을 기르십시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살펴보십시오. 내년 이맘때 아람 왕이 왕을 공격하러 올라올 것입니다.」열왕기상 20:22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사실이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람의 신하들이 첫 번째 패배의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합니다. 그들의 판단이 두 번째 전쟁의 성격을 바꾸어 놓습니다.
두 번째 전쟁: 산에서는 강하지만 평지에서는 약한 신인가
아람 신하들의 신학적 판단
첫 번째 전쟁에서 패배한 벤하닷에게 신하들이 말합니다.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신은 산의 신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보다 강했습니다. 하지만 평지에서 싸우면 우리가 반드시 그들을 이길 것입니다.」열왕기상 20:23 · 두루새김
아람 신하들은 이스라엘이 승리한 이유를 이스라엘의 신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신의 권한이 특정한 지형에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민족은 신들을 특정한 지역이나 자연 현상, 공동체와 연결하여 이해하곤 했습니다. 아람 신하들의 말도 그러한 사고방식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평지는 말과 전투용 수레를 움직이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핵심은 그들의 전술적 선택이 아닙니다. 그 전술의 근거가 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한을 자신들이 아는 신들의 능력처럼 지리적 범위 안에 가두었습니다.
산에서도 골짜기에서도
다음 해에 아람 군대가 아벡으로 올라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도 모여 식량을 받은 뒤 아람 군대를 맞으러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적군 맞은편에 진을 쳤는데, 작은 염소 떼 두 무리 같았습니다. 반면 아람 군대는 그 땅을 가득 메웠습니다.열왕기상 20:27 · 두루새김
앞선 전쟁에서 큰 피해를 당했음에도 아람은 다시 엄청난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이제 군사력의 차이는 더욱 선명하게 묘사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여호와야훼는 산의 신이고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저 큰 군대를 모두 네 손에 넘겨주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열왕기상 20:28 · 두루새김
첫 번째 전쟁에서는 「너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에서도 첫 번째는 단수, 두 번째는 복수 형태입니다.
첫 번째 승리는 특히 아합 왕에게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게 하는 사건으로 제시됩니다. 두 번째 승리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건으로 확대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지에서도 승리를 주심으로써 자신이 특정한 지형이나 지역에 제한된 신이 아님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은 시편 24:1의 고백과도 연결됩니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선언입니다.
칠 일 뒤에 벌어진 전투
두 군대는 칠 일 동안 서로 마주 보고 진을 칩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전투가 벌어집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루 동안 걸어서 싸우는 아람 군사 십만 명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남은 군사들 가운데 이만 칠천 명은 아벡 성으로 달아났다가 성벽이 무너지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벤하닷은 간신히 살아남아 성 안의 가장 안쪽 방으로 숨습니다. 처음에 그는 왕들과 술을 마시며 사마리아를 공격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군대를 잃고 성 안에 숨어 있습니다.
사마리아를 마음대로 뒤지겠다고 했던 왕이 자신이 숨은 방에서 목숨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벤하닷이 아합에게 살려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그는 내 형제다」: 적의 왕을 동등한 왕으로 대우하다
허리에 거친 베를 두르고 머리에 밧줄을 두르다
벤하닷의 신하들이 그에게 조언합니다.
신하들이 벤하닷에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듣기로 이스라엘의 왕들은 인정을 베푼다고 합니다. 저희가 허리에 거친 베를 두르고 머리에 밧줄을 두른 채 이스라엘 왕에게 나가 보겠습니다. 어쩌면 그가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줄지도 모릅니다.」열왕기상 20:31 · 두루새김
허리에 거친 베를 두르고 머리에 밧줄을 두르는 것은 굴복과 비참한 처지를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승리한 왕 앞에서 자신들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들은 아합이 인정을 베푸는 왕이라는 평판에 따라 행동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아합의 반응은 그들의 기대보다 훨씬 더 호의적입니다.
「내 형제」라는 호칭의 변화
그들은 허리에 거친 베를 두르고 머리에 밧줄을 두른 채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왕의 종 벤하닷이 이렇게 말합니다. 『부디 제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아합이 말했습니다. 「그가 아직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다.」열왕기상 20:32 · 두루새김
처음에 벤하닷은 아합에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아합의 종이라고 부르며 목숨을 구합니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이 말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것을 좋은 신호로 여기고 얼른 왕의 말을 받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의 형제 벤하닷입니다.」 아합이 말했습니다. 「가서 그를 데려오너라.」 벤하닷이 나오자 아합은 그를 자기 수레에 올라타게 했습니다.열왕기상 20:33 · 두루새김
벤하닷을 단순한 포로나 패배한 적으로 다루는 것과, 왕의 형제로 인정하는 것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합의 말을 이용하여 벤하닷을 보호받을 수 있는 관계 안에 놓으려 합니다. 왕의 수레에 태운 행동은 그를 단순한 포로 이상으로 대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왕의 관계는 복종과 지배의 관계에서, 적어도 겉으로는 동등한 왕들 사이의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조약으로 얻은 정치적 이익
벤하닷은 자신이 살려질 가능성을 확인하자 제안합니다.
벤하닷이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왕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성읍들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제 아버지가 사마리아에 거리를 마련했듯이, 왕께서도 다마스쿠스에 왕을 위한 거리들을 마련하셔도 됩니다.」 아합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신과 조약을 맺고 놓아주겠습니다.」 아합은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아주었습니다.열왕기상 20:34 · 두루새김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결정에는 분명한 이익이 있습니다. 또한 패배한 적국의 왕을 살려줌으로써 앞으로의 관계를 조정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합은 누구의 권한으로 벤하닷을 놓아주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승리 이후 벤하닷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판단하여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아줍니다. 이 선택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는 뒤이어 등장하는 예언자의 행동을 통해 밝혀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형제」라는 호칭은 혈연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들 사이에서 동등한 지위나 우호적 관계를 나타내는 외교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을 뜻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당시 왕국 사이의 교역이나 상업 활동과 연결된 공간 및 권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예언자: 이상한 명령의 이유
「나를 좀 때려 줘」
전쟁 이야기가 끝난 듯한 순간, 전혀 새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언자 무리에 속한 한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좀 때려 줘.」 그러나 동료는 그를 때리기를 거절했습니다.열왕기상 20:35 · 두루새김
이것은 예언자의 개인적인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언자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실제로 그 사람이 떠나자 사자가 그를 죽입니다.
그 요청을 받은 사람이 어떤 이유로 거절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누구든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을 때리라고 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읽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특정한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예언자는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자신을 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이 실제로 그를 때려서 상처를 입힙니다. 그 예언자는 이제 상처를 입은 사람의 모습으로 왕이 지나가는 길가에 섭니다. 그리고 눈가를 붕대로 가려 자신의 정체를 숨깁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왕에게 자신을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로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행동을 통해 왕이 판단해야 할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왜 사자에게 죽은 이야기를 먼저 기록했을까
이 예언자의 동료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한 장면은 열왕기상 13장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 사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13:20–24). 그런데 20장의 흐름에서는 이 사건이 아합을 향한 예언의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도 합니다.
동료는 자신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정하신 사람을 자신의 손에서 놓아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행동이 똑같은 사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다는 문제가 연결됩니다.
이제 예언자는 그 문제를 아합 자신이 판단하도록 만듭니다.
왕이 자기 입으로 내린 판결
전쟁터에서 포로를 놓친 사람의 이야기
상처 입은 예언자는 왕이 지나가자 외칩니다.
왕이 지나가자 예언자가 왕을 향해 외쳤습니다. 「왕의 종인 제가 싸움터 한가운데로 나갔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제 쪽으로 와서 한 사람을 맡기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지켜라. 혹시라도 그가 없어지면 네 목숨으로 그의 목숨을 대신하거나, 은 한 달란트를 달아 내야 한다.』」열왕기상 20:39 · 두루새김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왕에게 판단을 요구하기 위해 마련된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서 맡겨진 사람을 지키는 것은 분명한 책임입니다. 포로를 놓치면 자신의 목숨이나 막대한 은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왕의 종인 제가 이리저리 일하는 동안 그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말했습니다. 「네가 받을 벌은 네가 말한 대로다. 네가 스스로 정했다.」열왕기상 20:40 · 두루새김
그는 포로를 일부러 풀어 주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일들을 하다가 맡겨진 사람을 놓쳤다고 말합니다. 맡겨진 사람을 지킬 책임이 있었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놓쳤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받은 명령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합이 아직 자기 행동과 이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붕대를 벗고 드러난 예언자
예언자는 눈가를 가렸던 붕대를 벗습니다.
아합은 그가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임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언자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이기로 정한 사람을 네가 손에서 놓아주었다. 그러므로 네 목숨이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이 그의 백성을 대신할 것이다.』」열왕기상 20:42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정하신 사람을 아합이 자신의 권한으로 놓아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구약에는 원수를 향한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본문들도 있습니다. 잠언 25:21은 원수가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면 마실 물을 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열왕기상 20장의 심판을 모든 시대의 전쟁에서 패배한 적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원칙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나단의 이야기와 닮은 방식
이 장면은 사무엘하 12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예언자 나단은 다윗에게 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윗은 그 이야기에 분노하며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자 나단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사무엘하 12:7).
아합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진 포로를 놓친 잘못은 판단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놓아준 벤하닷의 문제는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예언자는 그에게 새로운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쁨이 아니라 분노로 돌아가다
이야기는 아합의 반응으로 끝납니다.
이스라엘 왕은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난 채 자기 집을 향해 가서 사마리아에 이르렀습니다.열왕기상 20:43 · 두루새김
본문은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예언자의 심판 선언을 들었으므로, 그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 번 구원하신 일에 감사하거나, 예언자의 책망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헤렘(חֵרֶם)과 관련된 표현이 사용됩니다. 헤렘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거나, 특히 전쟁을 다루는 문맥에서는 멸망하도록 정해지는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벤하닷이 죽임을 당하도록 정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차례 아람 군대를 아합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0:13, 28). 그러나 그 말씀에는 벤하닷을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이 직접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벤하닷을 죽이기로 정하셨다는 사실은 42절에서 비로소 밝혀집니다. 한 가지 읽기는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를 넘겨주겠다고 하신 말씀이 벤하닷의 운명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며, 아합이 그 뜻을 따라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저자가 앞선 전쟁 장면에서는 벤하닷에 대한 구체적인 명령을 기록하지 않고, 마지막 예언자의 판결을 통해서야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서술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합이 이전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 명령을 알았는지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맺음말 — 승리한 왕의 어두운 귀환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합은 그 승리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대상과 왕이 자신의 권한으로 맺은 조약 사이의 충돌입니다.
그는 두 번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난 채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
열왕기상 20장은 전쟁에서 패배한 왕이 아니라, 승리하고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못한 왕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왕은 사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길가에서 들었던 예언자의 판결은 그가 돌아가는 길 내내 이미 그의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