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누가 우리를 구하겠느냐?

사무엘상 11장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읽힙니다.

앞 장의 마지막에서 사울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이자가 어떻게 우리를 구하겠느냐?」 (10:27)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의 한 성읍이 적군에게 포위됩니다. 그곳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항복을 생각하면서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붙잡습니다.

누가 우리를 구하겠느냐는 질문이 이제 한 성읍의 생사가 걸린 절박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장은 사울이 왕으로서 능력을 입증한 이야기이면서, 그 능력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 11장은 외부의 적에게 승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승리한 공동체가 자기 안의 반대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다룹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11장 본문 읽기 →

한 성읍을 굴복시켜 온 이스라엘을 모욕하려는 왕

사무엘상 11:1–3 본문 →

항복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잔혹한 조건

이야기는 암몬 사람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하려고 진을 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의 이스라엘 성읍입니다. 암몬은 이 지역과 이웃한 세력으로, 사사기 10–11장에서도 이스라엘과 충돌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하려고 진을 쳤습니다. 야베스의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말했습니다. 「저희와 조약을 맺어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사무엘상 11:1 · 두루새김

성읍이 더 이상 저항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암몬의 지배를 받아들여 살아남으려는 요청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살아갈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하스의 대답은 그들이 예상했을 법한 지배의 조건을 넘어섭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대답했습니다. 「너희 모두의 오른쪽 눈을 뽑는 조건으로 조약을 맺겠다. 이 일로 온 이스라엘을 모욕하겠다.」사무엘상 11:2 · 두루새김

그는 야베스 한 성읍을 공격하고 있지만, 모욕하려는 대상은 온 이스라엘입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눈을 잃고 굴복한다면, 그들의 고통은 이스라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시가 됩니다.

「7일 동안 시간을 주십시오」

야베스의 장로들은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야베스의 장로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7일 동안 시간을 주십시오. 이스라엘 온 땅에 사람들을 보내겠습니다. 저희를 구해 줄 사람이 없으면 당신에게 나가 항복하겠습니다.」사무엘상 11:3 · 두루새김

그들은 자신들의 성읍이 포위되었지만,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고통에 응답해 줄 가능성을 붙잡습니다.

이 장면은 사사기 21장의 야베스 길르앗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야베스 길르앗은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였을 때 참여하지 않은 성읍으로 등장합니다(사사기 21:8–9).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 일을 문제 삼아 야베스 주민들을 공격했고, 살아남은 처녀들을 베냐민 지파의 생존자들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21:10–14).

그 사건은 이스라엘 내부의 폭력과 분열을 보여 주는 사사기 마지막 부분의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1장에서는 야베스가 다시 이스라엘의 응답을 기다리는 성읍으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베냐민 출신 사울이 그들을 구하러 가게 됩니다.

두 본문은 야베스와 베냐민을 함께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다만 그 과거 사건이 이번 구원 요청이나 사울의 행동을 직접 일으켰다고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야베스에서 보낸 사람들은 이스라엘 온 땅으로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쿰란에서 발견된 사무엘서 사본 4QSamᵃ에는 이 장의 시작 부분에 더 긴 설명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나하스는 이미 요단강 동쪽의 갓과 르우벤 사람들을 심하게 억압하면서 그들의 오른쪽 눈을 뽑았고, 그 가운데 칠천 명이 야베스 길르앗으로 피신했습니다. 다만 이 긴 설명은 두루새김 본문의 바탕이 되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없습니다. 어느 형태가 더 오래된 본문을 보존하고 있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내용을 11장의 확실한 역사적 배경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는 백성 사이로 소를 몰고 돌아오는 왕

사무엘상 11:4–6 본문 →

아무도 해결책을 말하지 못하는 순간

야베스에서 보낸 사람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도착합니다.

야베스에서 보낸 사람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와서 백성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온 백성이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사무엘상 11:4 · 두루새김

자기 백성이 잔혹한 모욕을 당할 위기에 놓였지만, 당장 어떻게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이미 사울이 왕으로 선택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사람들이 즉시 사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때 사울이 나타납니다.

마침 사울이 소들 뒤를 따라 밭에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물었습니다. 「백성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우느냐?」 사람들이 야베스에서 전해 온 말을 들려주었습니다.사무엘상 11:5 · 두루새김

사울은 왕으로 세워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집과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가 왜 밭에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 왕의 일이 일상적인 생활과 뚜렷하게 나뉜 모습은 아닙니다.

그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공식적인 보고를 받는 장면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묻습니다.

왕으로 세워진 사람이 처음으로 백성을 구하는 구체적인 일을 맡게 되는 출발점이 바로 이 울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울에게 무엇을 일으키시는가

야베스의 소식을 들은 사울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듣자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세차게 임하셨고, 사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사무엘상 11:6 · 두루새김

이 분노는 사울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야베스 사람들이 당할 위협에 관한 소식을 들은 직후 그가 몹시 화가 났다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세차게 임하신 일과 그가 크게 분노한 일을 연이어 서술합니다. 따라서 이 분노는 단순히 사울의 성격을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사람의 모든 분노가 정당하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분노가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분노가 무엇을 향하고,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울의 분노는 억압당하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앞서 하나님은 사울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이제 그에게 맡겨진 구체적인 상황이 나타나자 하나님의 영이 다시 그에게 임하십니다.

사울에게 주어졌던 능력이 처음으로 실제적인 구원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찢긴 소들이 하나가 된 백성을 불러 모으다

사무엘상 11:7–8 본문 →

사울의 첫 번째 군사적 명령

사울은 소 한 쌍을 잡아 토막 냅니다.

사울은 소 한 쌍을 잡아 토막 낸 뒤,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들에게 맡겨 이스라엘 온 땅으로 보내며 말했습니다.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 나서지 않는 사람의 소도 이렇게 될 것이다.」 여호와야훼에 대한 두려움이 백성을 덮쳤고, 백성은 모두 한 사람처럼 나섰습니다.사무엘상 11:7 · 두루새김

소는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손이며 경제적 바탕입니다. 그것을 토막 내어 보내는 행동은 강한 위협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행동을 단지 감동적인 애국심의 표현으로 아름답게만 그려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강제로 사람들을 전쟁에 불러 모으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행동은 사사기의 한 장면과 매우 닮았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

사사기 19:29에서 한 레위인은 살해당한 첩의 몸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전역에 보냅니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난 극심한 폭력을 알리고 고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뒤 이스라엘은 한 사람처럼 모여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치릅니다(사사기 20:1, 11).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죽임당한 사람의 몸이 나뉘어 보내졌습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소의 몸이 나뉘어 보내집니다. 사사기에서 모인 이스라엘은 자기 안의 한 지파를 공격했습니다. 사무엘상에서는 모인 이스라엘이 외부의 침략자에게 맞섭니다.

이 연결은 사울의 행동을 곧바로 정당화하는 근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얼마나 강한 위협과 충격을 통해 모이곤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울이 위협했는데, 본문은 백성을 움직인 결정적인 힘을 「여호와야훼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현합니다. 히브리어 파하드 여호와야훼(⁨פַּחַד⁩)는 「여호와야훼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여호와야훼에게서 비롯된 두려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은 백성이 모인 일을 사울의 위협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여호와야훼께서 관련되어 계심을 보여 줍니다.

또한 사울은 자기 이름만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 나서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새로 세워진 왕이고, 사무엘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이끌어 온 지도자입니다. 이 명령에는 새 왕의 지도력과 기존 지도자의 권위가 함께 나타납니다.

삼십만 명과 삼만 명

사울은 베젝에서 모인 사람들의 수를 셉니다.

사울이 베젝에서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사람이 30만 명이고 유다 사람이 3만 명이었습니다.사무엘상 11:8 · 두루새김

더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구별되어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구별만으로 후대의 북왕국과 남왕국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점의 이야기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등장하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혔을 때에는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를 따라 모인 사람들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그는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내일 햇볕이 뜨거워질 때 여러분은 구출될 거예요」

사무엘상 11:9–11 본문 →

절망의 성읍에 도착한 뜻밖의 소식

사울이 군대를 모은 뒤, 야베스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이 전해집니다.

사람들이 야베스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해 주세요. 『내일 햇볕이 뜨거워질 때 여러분은 구출될 거예요.』」 그들이 돌아가 이 소식을 전하자 야베스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사무엘상 11:9 · 두루새김

야베스의 장로들은 처음에 「저희를 구해 줄 사람이 없으면」 항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누군가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가능성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체적인 시점까지 언급됩니다.

9절에서는 야베스 사람들이 경험할 구원을 약속하고, 13절에서는 그 구원을 누가 이루셨는지를 밝힙니다.

이 두 말씀 사이에 실제 전투가 놓여 있습니다.

같은 말이 전혀 다른 뜻을 갖게 되다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저희가 여러분에게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좋다고 여기시는 대로 저희에게 무엇이든 하십시오.」사무엘상 11:10 · 두루새김

겉으로 보면 항복을 약속하는 말입니다.

나하스의 입장에서 이 말을 들으면, 야베스가 정해진 기한에 성문을 열고 복종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이미 야베스에 구원의 소식이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적을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적 발언으로 읽힙니다.

처음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나가 항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내일 나가겠다고 합니다.

원문에서 되풀이되는 말은 같지만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날이 뜨거워질 때까지

다음 날 사울은 군사들을 세 부대로 나눕니다.

다음 날 사울은 군사들을 세 부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암몬 진영 한가운데로 들어가, 날이 뜨거워질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쳤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흩어져 달아났고, 둘이 함께 남아 있지도 않았습니다.사무엘상 11:11 · 두루새김

9절에서는 「햇볕이 뜨거워질 때」 구출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1절에서는 사울의 군대가 「날이 뜨거워질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쳤다고 합니다.

앞서 예고한 시간에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조직적인 대열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흩어졌다는 표현입니다. 야베스를 포위하고 있던 적군이 함께 버티던 힘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을 모욕하려고 했던 군대가 오히려 이스라엘의 구원 앞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3절에서 장로들이 사용했던 말과 10절의 말에 야차 엘이라는 동일한 구문이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3절에서는 「당신에게 나가 항복하겠습니다」로, 10절에서는 「여러분에게 나가겠습니다」로 옮겼습니다. 사사기 7:16–22에서 기드온도 군사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적군을 기습했습니다. 두 장면은 적은 수의 군사나 나누어진 부대를 활용하여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공격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1장이 기드온의 전략을 의도적으로 되살렸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승리한 날에 누구를 죽일 것인가

사무엘상 11:12–13 본문 →

전쟁의 승리가 내부의 폭력으로 이어지려는 순간

암몬을 물리친 뒤 백성은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백성이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사울이 우리를 다스릴 왕이 되겠느냐?』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들을 넘겨주십시오. 저희가 죽이겠습니다.」사무엘상 11:12 · 두루새김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이 어떻게 자신들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울이 실제로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얻은 승리가 공동체 내부의 처형과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입니다. 왕의 권위가 이제 막 실제적인 승리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사울에게는 반대자들을 제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들을 죽인다면 앞으로 사울이 왕으로 다스리는 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무도 죽여서는 안 된다」

사울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아무도 죽여서는 안 된다.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기 때문이다.」사무엘상 11:13 · 두루새김

첫 번째 「오늘」은 아무도 죽여서는 안 되는 날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오늘」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신 날을 가리킵니다. 두 문장은 이유와 결과로 연결됩니다.

오늘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신 날이기 때문에, 그날을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을 죽이는 날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울의 말은 방금 끝난 전쟁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암몬 군대와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대상은 사울을 반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왕에게는 이제 적을 처벌할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힘을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거나 반대자를 제거하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구원받은 날을 자신의 적을 처벌하는 날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날로 만듭니다.

그의 분노는 야베스를 억압하는 암몬 사람들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업신여겼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행동을 언제나 옳을 왕의 성품을 보증하는 것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권력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가리지 않도록 행동합니다.

승리의 주인을 분명히 하다

이 본문에서 여호와야훼는 사울에게 자신의 영을 주셨고, 백성을 모으는 일에 작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실제로 판단하고 명령하며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사울이 구원을 이루는 일에 사용되었지만, 그 구원을 궁극적으로 이루신 분은 여호와야훼이시라는 뜻입니다.

왕이 승리를 오직 자기 능력의 결과로 여긴다면, 그 승리는 자신의 권력을 넓힐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 그 승리를 여호와야훼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이해한다면, 자신의 권력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백성을 구하신 분이 여호와야훼라면, 그 구원은 승리한 집단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보복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인정하는 일이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왕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무엘상 11:14–15 본문 →

왕은 이미 세워지지 않았는가

전쟁이 끝나고 사울이 보복을 막은 뒤, 사무엘이 백성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자, 길갈로 가자. 거기서 사울이 다스릴 왕임을 새롭게 확인하자.」사무엘상 11:14 · 두루새김

10장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어 미스바에서 온 백성 앞에 사울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백성은 왕을 향해 환호했습니다.

미스바에서 사울이 선택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야베스 길르앗을 구한 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길갈에서의 행사는 앞서 이루어진 선택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실제적인 구원의 사건을 거치며 공동체 안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갈에서 다시 모인 사람들

사무엘의 제안에 따라 온 백성이 길갈로 갑니다.

온 백성이 길갈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또 여호와야훼 앞에서 화목제물을 잡아 바쳤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그곳에서 크게 기뻐했습니다.사무엘상 11:15 · 두루새김

사울의 왕권은 사무엘 개인의 권위나 백성의 환호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웁니다.

왕은 백성에게 인정받지만, 여호와야훼 앞에 세워집니다.

여호수아 4장에서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넌 뒤 길갈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에 요단강에서 가져온 돌들을 세워 여호와야훼께서 강을 건너게 하신 일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여호수아 4:19–24). 여호수아 5장에서는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장소로 기억됩니다. 이제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왕권이 새롭게 확인됩니다.

화목제물과 큰 기쁨

길갈에서의 행사는 왕권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레위기 3장과 7:11–21의 규정에서 화목제는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일과 더불어 제물의 일부를 함께 먹는 공동체적 성격을 지닙니다. 감사와 서원 등의 상황에서 드려질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와 교제를 나타내는 제사입니다.

사무엘상 11장은 길갈에서 실제로 어떻게 식사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물을 잡아 바쳤다는 사실은 그들의 기쁨이 단순한 군사적 승리의 환호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사울의 왕권이 새롭게 확인되는 순간은 백성이 그의 힘을 두려워하는 순간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함께 기뻐하는 순간입니다.

처음의 소와 마지막의 제물

사무엘상 11:1–15 본문 →

처음에 짐승을 토막 내는 행동은 전쟁을 위한 소집과 연결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제물을 바치는 행동은 여호와야훼 앞에서의 기쁨과 연결됩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을 전쟁에 불러 모으기 위한 위협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사울이 구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다는 선언으로 끝납니다. 왕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힘을 사용했고, 승리한 뒤에는 자기 사람들을 죽이려는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들을 구해 줄 사람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적군의 지배를 받아들일 준비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에서 그들은 더 이상 나하스에게 나가 항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길갈에 모여 있습니다.

나하스가 요구했던 오른쪽 눈의 상처 대신, 그들에게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왕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죽임을 면한 채, 공동체는 새로운 출발을 맞습니다.

마지막에 들리는 것은 야베스의 울음소리도, 군대를 불러 모으는 위협의 말도 아닙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그곳에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왕을 세운 이스라엘의 첫 큰 기쁨은 왕이 얼마나 강한가를 확인한 데서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구해 주셨다는 사실에서 완성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